롤리타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05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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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롤리타, 내 삶의 빛, 내 몸의 불이여. 나의 죄, 나의 영혼이여. 롤-리-타. 혀끝이 입천장을 따라 세 걸음 걷다가 세 걸음째에 앞니를 가볍게 건드린다. 롤.리.타.'

- 17쪽

 

소리 내어 읽고 싶게 하는, 뒤를 읽지 않을 수 없게 하는 첫문장. '롤리타'는 어린 소녀에 성적 취향을 갖는 중년 남성(험버트 험버트)의 수기 또는 변론 형식으로 전개된다.(그 대상이 누구인지는 잘 모르겠다.) 롤리타에 대한 연민을 수시로 이 첫문장처럼 애절하게 드러내고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인기가 포르노그라피 같은 성애 묘사 때문이 아닌 것처럼, '롤리타'의 매력 역시 포르노그라피가 아니다. 그것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언어유희이다. 나보코프는 '배트맨'의 리들러와 같다. 곳곳에 작가의 말장난이 있다. 그야말로 '언어의 마술사'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다. 아직 내가 (또는 번역자조차) 찾아내지 못한 것이 있을 것이다. 

 

또한 이 작품은 '여행기'이다. 1부는 롤리타와 연인이 되기까지 과정, 2부는 롤리타와 또는 험버트 혼자 한 미국 여행을 그리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1부는 단숨에 읽었지만, 2부는 여전히 매력적인 문장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흥미가 떨어졌다. 그러나 '사람은 책을 읽을 수 없다. 다시 읽을 수 있을 뿐(545쪽)' 이라는 나보코프의 지론처럼, 이 작품을 다시 읽는다면 2부의 참맛도 알게 되지 않을까.

 

첫 문장이 매력적인 작품은 많다. 그러나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이 모두 뇌리에 남는 것은, 이전까지는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밖에 없었다. 여기에 '롤리타'를 추가해야겠다. 경이롭기까지 한 나보코프의 언어 구사능력에 다시 한 번 경의를 표하며.

 

'지금 나는 들소와 천사를, 오래도록 변하지 않는 물감의 비밀을, 예언적인 소네트를, 그리고 예술이라는 피난처를 떠올린다. 너와 내가 함께 불멸을 누리는 길은 이것뿐이구나, 나의 롤리타.'

- 497쪽

 

2013.3.24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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