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을 예고합니다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애거서 크리스티 에디터스 초이스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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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두 가지가 인상 깊었다.


첫째, 전후 영국의 자그마한 시골마을의 모습이다. 마을에서만 발행되는 신문은 마을의 모든 소식을 공유한다. 집 뒷뜰에는 오리, 돼지 등을 키우거나 작물을 경작한다. 마을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를 잘 알고 지낸다. 집 문을 잠가두지 않기 때문에 누구나 드나들 수 있다. 돈을 주고 물건을 사기보다는 물물교환을 한다(불법이지만). 국사 교과서에 묘사된 고조선 시대의 풍습을 보는 듯하다. 

그런데, 이런 모습도 전쟁을 전후로 각 나라 사람들이 이동이 활발해짐에 따라 불신감이 커진다. 서로를 알고 지낸다고는 하지만 그의 신분은 확실하지 못하다. 신분증은 위조도 하기 쉽고. 그렇기에 특히 범죄에 취약하며, 수사기관은 애를 먹기 일쑤이다. 작가가 이전의 시골 마을의 생활을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적어도 독자들은 ― 특히 빽빽한 아파트에 사는 지금의 우리들은 ― 아름답다고 여길 법하다.


둘째, '평범한 사람이 갖는 살의'에 관한 것이다. 우리는 원한 때문에, 돈을 갈취할 목적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것은 악으로 규정한다. 그러나 '공익' 목적으로, 혹은 '순리대로' 나에게 올 수도 있었던 막대한 재산을 갖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 것에 대해서는, 그 당사자는 '그럴 수도 있는 것'이라며 스스로를 합리화한다. 얼마 전 재관람한 '본 슈프리머시'에서, 한 CIA 간부는 자신의 악행이 '애국'에 기반한 것이었다며 항변한다. 이처럼 '대의'라는 명분하에 이루어지는 범죄를 우리는 지금도 얼마나 많이 보고 있는가. 상식적으로 윤리와 도덕, 법에 어긋난는 것들은 모두 단죄해야 함에도, '그럴 수도 있는 것'이라며, 많은 지지자들이 억지를 부리는가. 


한편, 이야기가 전개되는 기법은 '김전일'과 상당히 닮았다(나는 마플 시리즈가 처음이다). 범인은 이 안에 있다. 범인이 블라인드 처리되어 등장하고, 피살자에게 다가가 그를 살해하고, 사건에 관계된 모든 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마플이 범인을 지목하거나, 함정을 파서 범인이 스스로 정체를 드러내도록 유도한다. 


등장인물도 워낙 많고, 그들의 과거도 복잡하며, 사건이 발생한 집 구조가 그림으로 주어지지 않아 앞으로 몇번씩 돌려 다시 읽는 등 애를 좀 먹었지만 보람있는 작업이었다. 이제 웬만한 추리소설에서 범인은 예상범위를 거의 벗어나지 않지만, 트릭이 궁금해서 읽는 것이니... 그런데, 이 작품은 추리문학으로서도 상당하지만, 맨 처음 언급한 것처럼 1940년대 영국 시골의 모습을 후세의 우리에게 전해 준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있는 게 아닌가 한다. 애거서 크리스티가 워낙 오랫동안 집필 활동을 했기에(1920년대~1970년대), 앞으로도 그의 작품 속 변화해 가는 영국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도 큰 재미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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