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노멀 시대에는 발상을 뛰어넘는 새로운 연출이 필요하다.
오페라의 본고장이자 유럽 코로나의 종주국 이탈리아에서 마침내 한가지 솔루션을 제안한다.
일주일 전 유투브에 올라온, 2020년 10월 18일의 공연, 따끈따끈한 동영상이다.
오랜 휴관을 깨고 공개된 프로덕션인데, 그 동안 놀지만은 않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준비했나보다.
무대 위치부터 기존 관행을 깼다. 거리두기가 필요한 시대, 빽빽한 플로어 객석은 거리두기를 하는 대신 아예 없애버리고 그 자리를 배우들이 오가는 무대로 만들었다. 오케스트라는 무대로 젖혀버리고(그래서 관객의 시야에서 사라지고), 객석은 (거리두기가 가능한) 발코니만 개방했는데, 무대를 중심으로 말발굽형으로 빙 둘러싸 있다. 플로어 객석을 모두 무대로 쓰다보니 배우들의 활동공간이 넓어지고, 등장인물 간 자연스레 거리두기가 된다.
(사진에 잘 안 나오는데, 관객들은 마스크를 쓰고 있다.)
공연을 촬영하는 카메라는 대부분 위에 설치되어 있고, 플로어에 설치된 카메라도 있는 것 같으나 적다. 관객은 위에서 둥그런 무대를 오가는 배우들을 보게 되는데, 위치에 따라 아리아를 부를 때 등이 보이는 경우가 빈번히 발생한다. 음향은 아직 이런 환경변화에 대비를 못해서인지 깨끗하지 않고 노래가 울리고 약간의 고음으로 올라가면 잡음도 들렸다(밤에 TV 관람 기준).
기본 설정 뿐 아니라, 배우들의 연기 역시 방역 지침을 엄격히 준수한다. 비올레타와 알프레도 사이에는 대서양도 들어갈 만하다. 둘이 가장 가까운 장면이 알프레도가 뒤에서 숄을 잡아 끄는 것. 두 사람의 플라토닉 러브가 애틋하다.
(동료 시민에게 비말을 튀기는 연기는 과태료 10만원)
이 영상은 이외에도 내가 기존에 본 영상물들과 다른 점이 몇개 있는데, 위에서 잡은 장면이 많아 발코니뷰를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다는 것, 편집을 최소화해서 막 간 정리장면까지 가감없이 보여줘(그래서 러닝타임이 3시간 가까이 된다) 유럽 공연장의 실제 분위기를 느끼게 해주는 점, 1막과 2막 사이에는 두 주연배우와 지휘자, 연출가의 인터뷰를 수록해서 DVD-BD의 부클릿이 없더라도 공연의 내막을 들여다 볼 수 있다는 점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이제는 스트리밍 서비스의 시대이다. 디스크라는 물리적 제한이 사라지므로 이런 러닝타임-용량에 구애받지 않고 영상 하나만으로 정보를 습득할 수 있는.
이야기를 작품으로 옮기면, 앞서 언급한 대로 음향이 울리다보니 음악 파트에 대해서는 뭐라 말을 못 하겠다. 비올레타 역의 마리아 Mudryak(발음 모름)은 카자흐스탄 출신의 94년생 소프라노. 불과 26세의 나이에 이런 큰 무대에서 주연을 꿰찼다는 점에서 (그리고 미모에서) 앞날이 기대된다. 비교대상으로, 게오르규는 29세, 네트렙코는 33세였다. 성악적으로도 완벽하지는 않지만 나이를 감안하면 훌륭했다.
(1막의 카발레타가 너무 좋다)
테너는 준수하고, 바리톤의 무게감이 굉장했다. 다만, 내가 최애하는 2막의 '알프레도, 당신은 모를거에요...'는, 나는 이 장면에 이르면 항상 눈시울이 뜨거워지는데 이 공연은 그렇지 못한 점은 무척이나 아쉽다.
이 방역오페라는 연출 자체는 평범하지만 2005년 잘츠부르크, 2006년 라 페니체 공연이 그러했듯 '라 트라비아타'와 실내 공연이 나아갈 실마리를 제공하지 않았나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거리두기 행정명령으로 비상이 걸렸을, 또는 기피대상이 됐음직한 '므젠스크의 맥베스 부인'이나 '돈 조반니' 같은 작품들도 이렇게 한계를 뛰어넘는 연출로 돌아오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