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의 거짓말 : 성서 편 명화의 거짓말
나카노 교코 지음, 이연식 옮김 / 북폴리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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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을 여행하다보면 성당과 박물관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다양한 미술작품을 만날 수 있는 박물관 뿐만아니라 성당 자체가 크고 작은 미술관이자 박물관임을 알게됩니다. 오늘 만나본 책 <명화의 거짓말 - 성서 편>은 서양 역사와 문화 그리고 미술작품에 대하여 잘 몰라도 즐겁게 명화를 즐길 수 있는 시간을 가지기에 충분한 것 같습니다. 특히나 성경을 모르면 더욱 어려운게 서양 미술작품인데 불구하고 구약성서와 신약성서의 차이점과 그로인한 미술작품들의 차이점을 쉽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성서(구약성서와 신약성서)를 바탕으로한 명화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구약성서에서는 천지창조 이야기를 담은 '코는 그만, 손가락으로'라는 타이틀로 미켈란젤로의 <아담의 창조>에 담겨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시작합니다. 아홉 편의 이야기 속에 담겨있는 열네 편의 명화를 남다른 눈으로 볼 수 있는 해설로 만나봅니다.
 
신약성서에서는 성모마리아의 이야기를 담은 '축복받았다고 하지만'이라는 타이틀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수태고지>와 로세티의 <주님의 여종을 보라!>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신약성서에서는 총 열두 편의 이야기와 열일곱 편의 명화를 구약성서에 담겨있는 명화의 해설과 마찮가지로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에게도 흥미롭고 귀가 솔깃한 이야기로 들려주고 있습니다.
 
이 책의 첫 작품과 마지막 작품은 미켈란젤로의 <아담의 창조>와 <최후의 심판> 입니다. 시작과 끝을 보여주는데 딱 맞는 명화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책 중간에 배치한 루벤스의 <삼손과 들릴라>와 프란체스카의 <그리스도의 세례>는 영국 방문 때 내셔널갤러리에서 직접 보았던 작품이라서 그런지 해설과 작품이 눈 앞에서 다시 펼쳐지는듯 했습니다. 
 
저자는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종교화를 통해 서양 역사와 화가에 대해 알 수 있었으면 바란다고 합니다. 성경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았거나 읽어보지 않은 사람들도 어렵지 않게 명화를 즐겼으면 하는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조금은 우스게 소리를 썩어가며 들려주는 저자의 글에는 가볍지만 재치넘쳐 즐거운 시간을 갖기에 충분한듯 합니다. 다만, 하나님과 예수를 믿는 종교인들에게는 조금 불편한 부분도 없지않아 있다는 것은 저자 스스로도 밝히고 있습니다.  
 
명화를 본다는 것. 이 책에서 말하는 거짓말은 우리가 알고 있는 거짓말이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다른 눈으로 보면 어떨까? 아니 다른 눈으로도 보는 다양한 방법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였습니다. 명화도 마음 편하고 흥미롭게 즐길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좋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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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세계 악녀 이야기
시부사와 타츠히코 지음, 이성현 옮김 / 삼양미디어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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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 생각을 많이 하던 때도 있가 있었습니다. 아니 지금도 그렇고 지금보다 조금 나이를 더 들어도 그 생각을 여전히 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그것은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해 나 스스로 꾸준히 바뀌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쩌면 오늘 올리는 <세계 악녀 이야기>는 앞에서 이야기한 소중한 것과 마찮가지로 선과 악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 아닌가 싶습니다.
 
<세계 악녀 이야기>는 BC 1세기 세계를 움직인 악녀 클레오파트라부터 20세 나치스와 최후를 같이 했던 여인 마그다 괴벨스까지 열한 명의 악녀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야기 속에서 그녀들과 대응하는 인물도 더 만나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후 '동양에서 악명을 떨친 악녀들'을 소개하는 챕터에서는 중국 최초의 나라를 멸망시킨 악녀 달기와 중국 3대 악녀로 불리는 한고조의 여후, 당나라의 측천무후, 청나라의 서태후까지 네 명의 악녀를 만나봅니다.
 
어쩌면 그녀들은 선이라고 불리우는 허울의 가면을 던져버린 어두운 천사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기준은 시대나 상황에 따라 변하기도 합니다. 물론 그 중심에는 변해서는 안되고 변할 수 없는 생명의 존중이 있을 것입니다. 그녀들이 악녀로 불리우는 이유중 가장 큰 하나가 아마도 그 생명의 존중이 없기 때문이 아닌가 습니다. 그렇지만 생각해보면 악녀로 불리우는 그녀들의 시대의 풍속과 도덕적 가치관에서는 다만 악녀가 아니라 무서운 여인들로 불렸을지도 모릅니다. 지금과 다르게 그녀들은 자신들의 본분(?)에 충실했다고 믿을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젊음이란 무엇일까요? 건강을 위해 운동이나 다양한 영양제를 복용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젊은 피부를 위해 우유 목욕이나 다양한 화장품 등 보조제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인간의 피로 젊음을 찾으려고 했던 악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17세기 헝가리의 유서 깊은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자신의 미용과 회춘을 위해 처녀의 피로 목욕했던 잔인한 악녀 에르체베트 바토리를 보여줍니다. 피의 악녀를 보면서 종종 메스컴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생각이 납니다. 건강과 회춘을 위해 동물의 피나 쓸개를 복용하는 사람들도 시대가 변하면 과거에 이러이러한 사람들도 있었다(?)라고 문헌에 남겨지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동양의 악녀 네 명을 소개하는데 모두 중국입니다.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일본 아니 아시아에서도 악녀들은 분명 많습니다. 세기의 악녀라고 불리지는 않을지 모르지만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그 못지 않은 악녀로 해당되는 것은 분명 많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세기의 잔혹녀'라 불리는 한고조의 여후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왕가의 사람들을 처벌하는 수위가 따를자가 없었다고 합니다.
 
악녀들을 만나면서 그녀들만의 사정(?)은 분명 있었다.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시대가 변해 바라보는 기준이 바뀌면 또다른 이름으로 불릴지도 모릅니다. 그녀들의 선택은 지금 이 시대의 기준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나또한 지금의 나의 기준으로보면 그녀들의 사정이 어떠하든 악녀라는 호칭을 버리기는 힘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소설이나 영화를 보면 선과 악을 조금은 과장하여 보여줍니다. 그래서 현실보다 더 매력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 책<세계 악녀 이야기>의 그녀들도 어쩌면 그녀들의 진실한 사랑 앞에서는 악녀가 아닐수도 있지 않았을까? 물론 그녀들의 진실한 사랑이 신이나 악마 이외에 아무도 없을지도 모르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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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스랄 : 위상들의 황혼 제우미디어 게임 원작 시리즈
크리스티 골든 &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 지음, 김지현 옮김 / 제우미디어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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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스타크래프트> 시리즈와 <디아블로> 시리즈로 유명한 세계적인 게임 제작사 블리자드의 게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세계관을 그대로 이어받은 소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 스랄 : 위상의 황혼>을 만나보았습니다. 블리자드는 게임과 더불어 게임을 기반으로한 다양한 소설을 선보이고 있는데 이번에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중에서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 스랄 : 위상의 황혼>은 다섯 용군단과 호드 종족의 영웅 스랄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한떄 위대하고 막강한 호드의 대족장이었던 스랄은 이제 그저 한 명의 주술사에 지나지 않았다.'라는 문구를 시작으로 스랄이 더이상 호드 종족의 영웅이자 대족장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또한 검은 용군단의 위상 데스윙이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이야기는 시작합니다. 세계의 중심부 '혼돈의 소용돌이'라 불리우는 대지를 치유하기 위해 모여든 스랄과 강력한 주술사 모임 '대지고리회'. 그러나 그 중심에서 대지를 안정시켜야 할 스랄은 무엇엔가에 홀린듯 집중을 하지 못합니다.
 
스랄 앞에 잠에서 깨어난 녹색 용군단의 위상 이세라의 출연은 이 책의 제목에서도 느낄 수 있듯 스랄이 용군단과 함께 세계의 운명을 함께 짊어지고 나아갈 운명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이세라가 선택한 스랄은 용군단의 용도 아닌 다른 용들이 보기에 하찮은 종족에 불과함에도 이세라에게는 독특한 존재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조각은 한 남자였다. 이세라가 꿈속에서 보았던 어떤 남자. 그 남자가 아제로스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와 돌이켜보면 그가 이 세계에 얼마나, 어떻게 이바지하는지 이세라는 아직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 남자는 용이 아니었다. 하지만 의식적으로든 아니든 간에 용군단들과 동일한 관심사를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었다. 그는 여러 세상에 발을 걸치고 있으면서도 그 세상들을 다스리거나 휘두르거나 파괴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실로 독특한 존재였다. - p. 64

 

   
 
이세라가 선택한 스랄은 새로운 적의 탄생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그 탄생의 기다림은 페이지를 오래 넘기지 않아 만날 수 있었으며 그 새로운 적의 활약이 더욱 기대되는 것은 다섯 용군단의 이야기와는 또다른 재미를 선사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새로운 공공의 적이 탄생하게 된 배경은 다섯 용군단에게 세상을 지키라는 임무를 맏긴 고귀한 티탄들과도 연관이 되어있음을 스랄은 청동 용군단의 위상이며 시간의 지배자 노즈도르무를 찾아 떠난 시공간의 여행을 통해 독자들에게 귀뜸하듯 알려주고 있습니다.
 

    또 다시 햇빛에 반짝이는 노즈도르무의 청동 비늘만이 눈앞에 보였다. 그 환영은 나타나는 빈도가 점점 잦아지고 있었다. 아직도 스랄은 올바른 시간대에 이르지 못한 모양이었다.

   언젠가 아주 오래 전에 케른이 한 말이 떠올랐다.

   '올바른 때가 되면 운명이 그대를 찾을 것이오.'  - p. 64

 

   스랄은 눈을 깜빡였다. 파도처럼 덮쳐오는 막대한 깨달음에 몸이 떨려올 정도였다. 그동안 스랄 자신과 개인적으로 연관된 시간의 길 속에서만 허우적거렸던 이유도, 그런데도 매번 노즈도르무의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까닭도 이제야 다 이해가 되었다. 스랄은 자기 과거의 결정적인 순간들 속에 얽매여 있었고, 위대한 시간의 지배자는 시간의 '모든 순간들' 속에 갇혀 있었던 것이다.

   이 평온한 깨달음의 순간 속에서 스랄은 자신이 노즈도르무를 찾을 수 있으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 p. 178~179

 
 
세계의 시간들은 모두 연결되어 있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모두 우연히 발생한 것이 아님을 상기시켜주고 있습니다. 스랄의 활약은 다섯 용군단 중 푸른, 붉은, 녹색, 청동까지 네 용군단의 화합과 새로운 힘 그리고 검은 용군단을 대신하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나는 나 자신이구나. 행복하든 괴롭든, 나는 결국 나 자신이구나." - p. 307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 스랄 : 위상의 황혼>의 본문을 만나기 전에 스랄의 여정을 담은 지도와 푸른, 붉은, 녹색, 청동 그리고 검은 용군단의 위상의 직계 서열을 나열한 가계도(?)를 볼 수 있었습니다. 소설 속 용군단의 서열이나 관계등을 이해하기에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힘의 균형을 이루는 마법과 시간의 제어와 생명의 힘과 창조의 꿈 그리고 대지를 다스리는 힘이 어쩌면 게임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소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스랄 - 위상의 황혼>은 소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시리즈 중에서 제작년에 만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 제이나 프라우드무어 : 전쟁의 물결 http://happypas.blog.me/10148776584>와 지난해 만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 볼진 : 호드의 그림자 http://happypas.blog.me/10172005225> 이후 세 번째로 만나본 책이였습니다. 만나면 만날수록 세계관을 좀 더 이해할 수 있어서인지 앞에서 만난 두 권보다 깊이있는 만남이였던 것 같습니다. 또한, 용의 등에 타고 하늘을 나는 스랄의 느낌을 고스란히 전해받는 기분은 직접 만나봐야 그 기분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은 어떤 종족의 이야기를 다루게 될지 모르지만 다음에 만날 소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가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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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아마추어의 미술작품 쉽게 읽기 - 서울예고 학생 16명의 작품에서 배우는 미술작품 감상과 비평
조준모 외 15명 지음 / 밥북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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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세상은 온통 다양한 작품이라고 말씀했던 문장이 생각납니다. 그 다양한 작품을 속속들이 다 알 수 있어도 머리가 아플 것 같기는 합니다. 그렇지만 내가 보고자하고 느끼고자하는 작품에 대해 제대로 보고 좀 더 쉽게 읽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 작품이 변화하는 이 세상의 한 분야로 한정한다고해도 내게는 너무나 큰 도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미술작품을 제대로 보고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 한 권 <어느 아마추어의 미술작품 쉽게 읽기>를 만나보았습니다.
 
이 책은 크게 두 파트로 구분됩니다. 첫 번째 파트는 미술에 대한 기초를 다지는 '그림 읽기를 위한 자음과 모음' 을 살펴봅니다. 두 번째 파트는 서울예고 학생 15명의 작품에 대하여 개개인의 짧은 감상평과 저자의 작품해설 그리고 작가의 말을 들어봅니다.
 
그림이나 미술작품은 그 안에 담겨있는 이야기를 말로 풀어주지 않기에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미술작품이 다르게 보일 것입니다. 어떤 기준으로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미술작품의 이야기는 시대에 따라 변화고 또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할 것 같습니다. 미술작품에 대한 보는 새로운 눈, 새로운 마음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경계를 허무는 것이 현대미술의 큰 특징 중 하나라고 하는데 첫 번째 파트의 기초를 시작으로 두 번째 파트의 15편의 작품에서 내가 알고 있는 기존 미술, 그림이나 조형미술에서 시대에 따라 경계가 조금씩 넘나들며 현대미술까지 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기초와 본격적인 그림읽기의 작품해설 그리고 작가의 말보다 오히려 기초에서 설명하는 마지막 페이지의 '작가의 죽음''감상자의 탄생'이라는 글이 '그림읽기' 를 시작하려는 내 마음을 마구 두들겼습니다.
 
예술의 경계를 구분하던 시대에서 모든 것이 예술로 이야기 될 수 있는 현대 사회가 오늘의 미술을 더욱 어렵게 만들지만 그만큼 보고 읽을 거리가 넘치는 것 같습니다. 결국 모든 것은 내 안에서부터 그것을 볼 수 있는 눈을 갖게 될 것 같습니다. 세상 모든 것이 작품이라는 말씀. 그 말씀에 다시한번 공감하며 <어느 아마추어의 미술작ㅍ무 쉽게 읽기>를 통해 좀 더 쉽게 읽는 방법을 배워보았습니다.
 
16편의 작품에서 작품만으로도 혹은 제목만으로 미술작품을 조금 더 읽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일부 작품은 작품해설과 작가의 말을 읽어도 나와는 서로다른 눈을 가졌구나. 싶었습니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지만 그렇기에 더 다양하고 넓은 시야로 미술작품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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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는 길에도 풍경은 있다 - 길에서 만난 인문학, 생각을 보다
김정희 지음 / 북씽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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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전문가도 인문학 전문가도 아닌 사람에게서 여행과 인문학에 대해 듣는다면 어떤 느낌일까요? <돌아가는 길에도 풍경은 있다>는 여행과 인문학을 오늘의 길을 걸으면서 옛사람들의 흔적을 찾는다는 컨셉트를 가지고 떠나봅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을 지나 다시 봄으로의 발걸음을 옮기며 여행을 떠나봅니다. 그저 현재 걷고 있는 이 길이 옛사람들에게는 어떤 길이였는지 궁금했었다는 저자의 발걸음에서 과거로의 여행을 따라가봅니다.
 
길에서 만나는 세상은 마음이 가는 곳에 모든 것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맑게 평정되는 마음을 찾아 청평사로'에서 연못 옆 명문바위에 누가 새겼는지 모르는 선시의 내용이 지금 멈춘 이곳에서 여유와 무언가를 깨닫는 시간을 갖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마음이 일어나면 모든 것이 일어나고

  마음이 사라지면 모든 것이 사라지네

  이와 같이 모든 것이 사라지고 나면

  곳곳이 모두 극락세계로구나  - p. 31

 

  
 
같은 장소를 계절에 따라 방문해보면 같은 장소지만 다른 모습과 다른 느낌을 받습니다. 과거 그 분들이 걷던 혹은 머물던 그 장소에 지금 저자가 걷는 것도 내가 머물러 있는 곳도 그렇게 생각하면 결코 같은 장소라는 이름만 있을 뿐 전혀 다른 장소가 아닌가 싶습니다. 지리적으로 같은 장소일지는 모르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곳은 결코 같은 곳일 수 없기에 과거 그 분들이 머물러 느꼈던 그 느낌을 그대로 전해받기는 결코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그 분들이 걷고 느꼈던 그 길을 나 역시 저자를 따라 걷고 느껴보고자 합니다.
 
  

 이런대로 저런대로 되어가는대로

바람부는대로 물결치는대로

밥이면 밥, 죽이면 죽, 이런대로 살고

옳으면 옳고 그르면 그런대로 보고

손심 접대는 집안 형편대로

시정물건 사고파는 것은 시세대로

세상만사 내 맘대로 되지 않아도

그렇고 그런 세상 그런대로 보낸다. - p. 82

 

 

세상 일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무작정 떠나고 싶을 때 길을 나서 무작정 걷기도 합니다. 여행이라는 이름하여 어디론가 떠나기도 합니다. 그리고 무언가를 소리내어 읽어보면 마음의 평온을 찾을 수 있기도 하는데 책 속에 '활짝 핀 내소사 꽃창살'이라는 글에서 부설거사의 팔죽시가 이럴때 읽으면 딱 좋은 글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쩌면 그냥 정처없이 떠돌던가 계획하에 떠나는 여행이던가 모두 내 맘 같지는 않겠지만 그것이 세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시가 아닌가 싶습니다.

 

가을에 접어들어 이 책 속 가을 이야기 중 '가을 서련지에 연꽃이 피면'을 읽다보니 요즘 인터넷의 새로운 다양한 모임에 대한 생각이 떠오릅니다. 옛사람들에게서 지금 우리가 모이는 연유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듭니다. '음주가무'라는 글을 옛사람과 지금 우리들은 같이 읽지만 그 뜻은 분명 조금 차이가 있는듯 합니다.

 

  살구꽃이 처음 피면 한 번 모이고, 복숭아꽃이 처음 피면 한 번 모이고, 한여름에 참외가 익으면 한 번 모이고, 초가을 서늘할 때 서련지에서 연꽃 구경을 위해 한 번 모이고, 국화가 피면 한 번 모이고, 겨울철 첫눈이 내리면 한 번 모이고, 한 해가 저물 무렵 분에 매화가 피면 한번 모이되, 모임 때마다 술, 안주, 붓, 벼루 등을 준비하여 술 마시며 시 읊는데에 이바지한다. - p. 128

  

 

겨울. 이제 곧 겨울이 찾아옵니다. 누군가는 자신의 두 발과 온 몸으로 여행을 다니지만 그렇게하지 못하는 다양한 사연이 있는 분들은 책에서 그 여행의 즐거움을 찾는 것 같습니다. 바로 겨울에 만나는 '책으로 만나는 여행의 즐거움'에서 표암 강세황의 <산향기>에서 이런 마음을 옅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다시 봄, '남도의 바람소리에 잠 못 이루다'에서 <남도흥타령>의 가사를 보니 무엇이 꿈이고, 무엇이 생인지... 지금보다 어렸을 때 비슷한 꿈을 수없이 반복적으로 꾸었던 그 시절이 생각이 납니다. 과연 무엇이 내가 있는 현실의 이야기였는지 말입니다.

 

 꿈이로다 꿈이로다 모두가 다 꿈이로다.

너도 나도 꿈속이요 이것 저것이 꿈이로다

꿈깨이니 또 꿈이고, 깨인 꿈도 꿈이로다.

꿈에 나서 꿈에 살고, 꿈에 죽어 가는 인생 부질없다

깨려는 꿈, 꿈은 꾸어서 무엇을 헐거나

아이고 대고 어허 흥 성화가 났네 헤  - p. 237

 

 

 

<돌아가는 길에도 풍경은 있다>라는 제목이 이 책을 만나게 했습니다. 그런데 돌아가는 길 뿐만이 아니라 잠시 멈춘 이 자리, 그냥 앞으로 나아가는 자리, 그 길에도 풍경은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압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 다시 길은 시작되고'라는 글이 아니더라도 내가 걷는 이 길이 내가 잠시 멈췄다고해서 길이 아닌 것은 아닌 것처럼 언제나 그 길이 이어져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길에는 여전히 풍경이 있다는 것을...

 

어제 옛사람들이 걷던 그 길과 내가 걷는 이 길이 같을수도 다를 수도 있지만 변화하는 풍경 속에 분명 비슷한 무언가도 얻을 수 있고, 서로 다름 속에 더 낳은 무언가를 찾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두루두루 돌아보는 길 위의 풍경이 오늘도 내일도 즐거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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