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손 ㅣ 밀리언셀러 클럽 104
모치즈키 료코 지음, 김우진 옮김 / 황금가지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1. 전개면에서 굉장히 흥미로운 작품

 

   모치즈키 료코라는 작가를 처음 접했습니다. 우선 책을 조금 읽으면서 저자가 남성인지 여성인지 궁금해졌습니다. 당최 작가의 성별이 표시가 안되어 있는데다가 사진도 없어 알수가 없더군요. 작가의 페이스북 페이지까지 가서야 여성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작가의 성별이 궁금했던 이유는 필체는 선이 굵고 시원시원한 느낌이 분명 있는데 묘사하는 내용은 너무 섬세해서 도대체 남성적인 것인지 여성적인 것인지 한마디로 딱 잘라 말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작가의 데뷰작이라는 이 작품은 사실 제가 무척이나 좋아하는 소재이자 설정입니다. 주인공이 작가이거나 작가 지망생이고 게다가 무척이나 재능이 있어서 그냥 쥐어짜내고 수정에 수정을 가하는 노력파가 아니라 하늘에서 뚜껑이 열리고 쓸꺼리와 아이디어를 쏟아부어주는 그런 신의 재능을 부여받은 선택받은 자라는 점 말입니다. 그리고 출판계의 여러가지 양상이나 사정을 잘 묘사하고 있는 부분까지 저의 Favorite 소재 중 하나입니다.

 

   사실은 이 작품이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것은 애초의 저의 기대와 조금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라는 점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미스터리니 뭔가 비정상적으로 이야기가 흘러가서 놀랄만한 결말을 보여주는 것이 미덕이겠으나, 이 작품은 좀 과한 설정인데도 불구하고 작가가 지닌 문학적 힘 때문에 그걸 또 의미있고 아름답고 깊이있는 여운이 남도록 마무리를 해주고 있다보니 참으로 뭐라고 하기 애매한 상황까지 가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작가를 소재로 한 누쿠이 도쿠로의 "신월담"이라든가, 김영하 작가의 "옥수수와 나" 같은 작품과는 결이 무척 다릅니다. 기존 작품들보다 이야기가 안개속을 끝없이 맴도는 듯한 분위기가 지속되고 상대적으로 뭐랄까? 좀더 기담스러운 이야기라고 표현해야 할 것 같습니다. 여튼 신선함은 좋은 것이니 좋은 쪽으로 흥미롭다고 해두겠습니다.

 

 

 

#2. 작품성이냐 대중성이냐?

 

   미스터리류 장르소설이 가벼울 필요는 없지만 역시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고의 미덕은 가슴 쫄깃하게 만드는 빠른 전개와 긴장감, 넘치는 가독성으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라는 감상이 절로 나와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데 이 책은 솔직히 그리 가독성이 좋지는 않습니다. 전개가 빠르지도 않고 긴장감 넘치게 흘러가지도 않습니다. 완급조절에서 '슬로우 슬로우 고고'스러운 진행을 보여주는데 독자 입장에서는 녹녹치 않은 리듬입니다.

 

   게다가 상당히 문학적입니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다각적이고도 섬세하고 깊이있는 통찰이 많이 녹아 있습니다. 게다가 그 통찰을 표현하는 방식도 다분히 시적이고 디테일이 넘칩니다. 그러다보니 문장이 상당히 좋습니다. 때때로 감탄하기도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표현들이 제법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지금까지 사랑한다고 믿어 오던 아내에 대해 새삼 의구심을 품게 된다는 것. 안정돼 보이는 생활에도 사실은 꽤 심리적 모순 위에 이루어져 있다는 겁니다. 안정을 지키기 위해, 인간은 사물을 단순화해 인식하려 합니다. 대부분의 인간은 그렇게 살아가죠. 위선이나 포기, 그 가정을 지키기 위해 희생해 온 무언가...... 외면하고 있던 사실과 잊고 있던 과거의 일들이 제각각 인간 앞에 끔찍하고 흉악한 모슴으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정신이 들었을 때 그들은 상대를 잔혹하게 살해하는 중입니다. 인간은 모두 긴 인생에서 그런 무언가를 지니고 있습니다. 타인이 보면 아무것도 아닌데, 본인 속에선 이상한 모습으로 커져 버리는 것을." p106

 

   그런가 하면 사회적인 문제를 슬쩍 언급하며 아쉬움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시간은 감정을 씻어 내린다. 유아에게 일어난 불행, 그게 주는 슬픔에 계속 몰두하는 건 어느 시점 이후론 강박관념으로 변 할 수밖에 없다. 감정적 짐덩어리가 되는 것이다. 그래도 미치코는 생각했다. 20년 전의 지역 사회였다면, 아니 지역 문화였다면 사람 하나가 실종되었다는 사실을, 그 사실이 가진 무게를 모두가 조금씩 등에 짊어지고 살아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흔적도 없이 지워진 팻말, 사건에 대해 알 수 있는 물건 한 조각도 남지기 않는 이 공원에 그런 상냥함은 없었다. 미치코는 현대 사회에서 문득문득 느껴지는 '방해물'에 대한 냉담함을, 질서정연하게 원래 모습으로 돌아간 공원과 거리에서 느꼈다. p158

 

   작품성이 먼저인가 대중성이 먼저인가를 논할 것도 없이 작품성이 뛰어나지만 대중들이 쉽게 읽고 접근하기 쉽도록 해주는 것이 최선의 방향입니다. 그러나 이 작품 [신의 손]은 대중성보다는 작품성 쪽으로 더 치우쳐진 느낌이 있습니다. 아마도 데뷰할 때 공모전이나 작품상 같은 것을 염두에 두어서 그런 걸 수도 있겠고, 그저 작가의 스타일 일 수도 있겠습니다. 이 작품을 일본의 많은 독자들이 열광했다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사실이라면 일본 독자들의 수준이 상당히 높은 것이 아닌가 생각 할 수 밖에 없겠습니다. 물론 독자층 자체가 많고 탄탄한 탓이겠지만 말입니다.   

 

 

#3.장점이 단점이 되고 단점이 장점이 되는 순간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은 인간의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한 부분이 아닐까 합니다. 앞에서 기술한 바와 같이 그 섬세함을 문장으로 잘 형상화 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장점은 문장을 하나하나 음미할 때 작품 전체에 상당한 힘을 실어줍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 전체적인 스토리가 탄탄하게 잘 살기가 어려운데 스토리 라인을 잘 짜도 읽어나가는 독자가 한 호흡으로 쭈욱 이어가기가 불편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더우기 저처럼 한번에 다 읽을 수 없고 여러번에 걸쳐 나눠 읽는 경우 상당히 크게 느껴지는 단점이 됩니다.

 

   반면 뭔가 끝을 알 수 없는 인물들의 행적과 비정상적으로 느껴지는 지나치게 홀린듯한 행동과 표현들은 또 하나의 불편함으로 다가 올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이런 불편함을 특유의 표현력으로 커버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뭔가 이상한 듯 하고 완전히 공감은 안되는데 자꾸 그렇다니까 그런가보다 하는 그런 느낌입니다. 이런 느낌은 결말 부분에서 사실 더욱 커지기만 합니다. '응? 왜에~~?' 이런 소리가 절로 나는 결말이랄까...

 

   한편으로는 전체적인 이야기의 구조가 주인공 기스키 교코의 "꽃의 사람" 도작 사건과 아동 납치사건 두가지를 소개하고 어떻게 연관되고 결착지워지는가를 보여주는 것인데, 냉정하게 보면 두가지 이야기 축이 비슷한 비중의 사건이 아니라 아동 납치 사건은 그저 도작 사건과 주인공의 캐릭터, 기묘함을 돋보이도록 하는 하나의 설정에 지나지 않는다는 느낌입니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내내 '근데 아동 납치에 대한 내용은 왜 이렇게 자꾸 나오는거지?'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또 하나의 역할은 결국은 전체 사건의 연결점을 찾아내고 실마리를 풀어내는 역할을 하는 미치코가 사건을 파헤치는 단서를 제공하는 정도입니다. 이 미치코라는 여기자가 이 작품에서는 가장 동화적인 사람인데, 기자라 사실관계를 철저히 파악하는데 익숙하다는 설정을 고려하더라도 지나치게 똑똑해서 거의 셜록 홈즈 급입니다. 복잡해 보이는 단서들을 단번에 통합하고 실수 없이 원하는 정보를 분석해서 결론을 도출하는데 너무 정확합니다. 그리고 사람을 보고 파악하는 능력도 발군입니다. 겁도 드럽게 없어서 여자가 산중에 목숨의 위협이 있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막 거침없이 나갑니다. 그리곤 모든 사건을 하나로 연결지어 해결해 버립니다. 대단한 여성입니다. 이것이 지나치게 비 현실적이죠.

 

   초반에는 흥미롭다가 결말 부분에서 황당했다는 반응이 많았는데 저는 사실 반대로 초반 200페이지까지는 무척 힘들었습니다. 뭔 뜬구름 잡기같은 소리를 하고 있나 싶기도 하고 좋은 소재인데 너무 벌려놓고 수습이 되겠나 싶기도 하고 그랬었습니다. 저는 오히려 종반으로 가면서 흡입력이 많이 좋아지는 것이 느껴져서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마지막 결론 부분은 뭐.. 좀 거시커니했습니다만 전체적으로는 좋은 작품이라는 생각을 하며 읽었습니다. 대회화전도 평이 분분한 것 같은데 한번 읽어봐야 이 작가의 스타일을 알 수 있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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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 제주 여행 - 관찰력, 표현력, 창의력을 키우는 가족 체험 여행 가이드 ㅣ 우리 아이 여행 시리즈 1
김성희 지음 / 시공사 / 2013년 9월
평점 :
품절


 

 

 

#1. 이거슨 아이와의 제주여행에 특화된 참 실용서인가봉가~~

 

 

   갑작스럽게 약간의 여유가 생겨 다음주 주말즈음에 휴가를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디를 갈까? 집에서 쉴까? 노여사와 심도있게 고민해 보다가 노여사가 최근에 사들인 [우리아이 제주여행]을 훑어보면서 "하은이가 7살쯤되니 예전과는 다르게 제주도에서도 가 볼만한 곳이 많겠다"라는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났습니다. 그래서 급하게 제주도 여행을 하게 되었고, 저도 자연스럽게 이 책을 펴보게 되었습니다.

 

   차근 차근 살펴보니 일단 주제에 너무도 충실한 책입니다. 아이와 함께하는 제주여행의 거의 모든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정말 꼭 필요한 것들이 빠짐없이 다 들어있습니다. "관찰력, 표현력, 창의력을 키우는 가족 체험 여행 가이드"라는 부제가 딱 어울립니다. 물론 개인적으론 여행은 여행에서 끝나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만 여행중에 보고 느낀 것들이 아이들에게 큰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일 테지요.

 

 

#2. 한번만 훑어보면 여행견적이 나와요.

  

   이 책을 보면 여행전 준비할 것부터 함께 가는 구성원 및 테마별 추천코스 10가지가 우선 소개되어 있습니다. 우리가족이 여러번 가본 곳과 다시 가보고 싶지는 않은 곳이 섞여 있어서 똑같이 따라 갈만한 코스는 없군요. 파트2로 넘어가니 좀더 자세한 소개가 등장합니다. 동부, 남부, 서부, 북부 및 중부지역 등 지역별로 주요 여행지를 추천해줍니다. 이 중에서 가볼 곳을 읽어보고 선별하는 것은 아주 유용했습니다. 특히 각 지역별 추천코스 마지막에 아이들과 함께 먹기 좋은 맛집 정보와 아이와 머물기 좋은 숙소를 따로 소개해 둔 것이 무척 좋더군요. 참고해서 식당을 골라야 겠습니다.

 

   여기에다 추가적으로 오름에 대한 자세한 정보가 수록되어 있고, 올레길 정보도 자세히 나와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아이 제주여행]이란 제목에 걸맞게 어린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도록 올레길을 끊어서 다녀올 수 있는 좋은 코스들도 소개해주고 있습니다. 물론 둘째가 아직 두돌도 채 안되서 오름이나 올레길은 무리인지라 다음 여행때 오름과 올레길 위주로 다녀오기로 하고 오름, 올레길은 내년이나 내 후년으로 미뤄둡니다.

 

  저희는 요번 여행은 에 7살 하은냥 위주로 박물관이나 체험 등을 하는 여행을 하려고 생각중입니다. 그 사이에 둘째 뉼냥의 취향도 조금(아주 조금) 고려해주고 말입니다.

 

   그래서 여러번 가본 곳은 다 제외하고 이번 여행에 저희 가족이 대충 예상하는 여행경로는 첫날 제주북부(국립제주박물관 -> 제주민속자연사 박물관 -> 삼양검은 모래해변) -> 제주서부(소인국 테마파크 -> 다빈치 뮤지엄) -> 제주남부(테디베어뮤지엄 -> 이중섭거리 -> 서귀포매일올레시장) -> 제주동부(신풍신천바다목장 -> 김영갑 갤러리) -> 제주북부(김녕미로공원 -> 만장굴) => 집으로...

 

이정도 입니다. 아이들이 좋아했으면 좋겠네요.

 

  

#3. 여행은 다 같이 떠납시다...

 

   이 책의 프롤로그를 보면 저자께서 아이들을 위해 남편없이 한달간 제주여행을 떠나서 겪은 것들을 토대로 정리한 책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시작부터 약간의 쇼크를 받았습니다. 저는 아내와 아이들 없이 한달간 지내는 것은 생각해본 적이 없거든요. 가족은 정말 어지간하면 다 같이 있어야 하고,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기억과 장소와 시간을 공유해야 한다고 믿는 편이라 '아이들이 엄마와 제주에서 멋진 경험을 한달간 할 동안 아빠는 뭐하나?' 하는 생각이 저도 모르게 들더라구요. 형편상 남편께서 한달이나 회사를 비우고 함께 떠날 수는 없을거란건 말하지 않아도 알겠고, 그러니까 저자나 아이들도 그렇게 여행을 가면 안된다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여튼 조금 충격적이긴 했습니다.

 

   개인적인 의견일 뿐이지만 아이들 공부시킨다고 기러기 아빠니 뭐 이런거 딱 질색입니다. 절대 반대입니다. 이런 부분은 노여사와 동일한 입장인데 가족은 정말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제외하고는 '할 수만 있으면 함께 있어야 한다' 라는게 제 지론입니다.합니다. (아... 괜히 이런소리하니 꼰대같다...)  여튼, 나이들어 따로놀기 신공 펼치지 말고 여행은 가족끼리 다 함께 떠납시다.

 

 

#4. 아, 김영갑 갤러리...

 

   제가 좀처럼 어디에 꽂히거나 메이거나 하는 일이 없는데 이상하게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에는 저도 이해하기 힘들정도로 저를 잡아끄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그 실체가 무엇인지 모르겠는데, 제주도에 갈 때마다 여기를 들르게 되고, 이 양반의 인생에 대해서도 찾아보게 되고 묘한 메임이 있습니다. 김영갑 갤러리에 들어가 있으면 정말 기묘한 기분이 듭니다. 그 어둡고 쓸쓸한 기운에 휩싸이고 무언가 동화되는 느낌이 들죠. 제가 전혀 예민한 성격이 아니기 때문에 아내도 정말 신기해합니다.

 

   이 장소를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는 조그만 무인 카페 때문입니다. 잘 따지고 보면 별로 특별한 맛도 없었는데 무인 카페의 네스프레소 캡슐 머신커피의 맛과 코코아 맛은 이상하게 끌립니다. 갤러리 안의 분위기와 상반되는 따뜻한 분위기라 더욱 아늑합니다. 이번 여행도 테마에 안맞아서 이 곳을 들를 계획이 없었는데 제가 부탁해서 마지막 날 들르기로 했습니다. 이번엔 어떤 느낌일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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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하루 - 언젠가 그리울 일상의 기록 ㅣ 하재욱의 라이프 스케치 1
하재욱 지음 / 헤르츠나인 / 2014년 9월
평점 :
품절


 

 

#1. 이 남자의 '언젠가 그리울 일상의 기록'은  역설적으로 찬란하고 아름답다.

 

   저의 가까운 지인인 하재욱 화백의 단행본이 드디어 나왔습니다. 페이스북에 연재하듯 올리는 일상의 스케치와 단상들이 너무나 공감이 되고 좋았는데 그 그림과 기록들 중 일부를 모아 단행본으로 출간한 모양입니다. 제가 잘 알던 사람의 책이 그것도 독특한 형식으로 출간되니 무척 행복합니다.

 

   이책의 부재인 '언젠가 그리울 일상의 기록'이라는 표현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여러번 읽었습니다. 제가 워낙 소시민이라 딱히 특별히 내세울만 한게 없어서 그런지 일상속의 행복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고 고민하고 노력하는 편이다보니 작가의 태도와 표현이 무척이나 공감이 갔습니다.

 

   세아이의 아빠, 40대에 들어선 직장인, 촉촉한 감성을 소유한 휴머니스트이자 로멘티스트인 저자는 삶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소탈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저자의 이야기가 바로 이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우리 소시민들의 이야기이기에 애절하고 가슴저리는 공명이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게다가 짠한 마음 절로 들게 만드는 다양한 그림들이 독자입장에서는 '으응?' 하고 따로 놀 수도 있는 감성과 메세지를 직관적으로 잘 표현해줍니다.

 

   한편 감탄도 하고 한탄도 하고 절망도 하는 그의 담담한 일상의 고백들에 녹아있는 넘치는 위트와 탁월한 관찰력은 읽는 이를 깜짝 놀라게 만듭니다. 심하다 싶을 정도로 참으로 우울하고 궁상맞은 죽는소리가 넘치는데도 묘하게 역설적으로 찬란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2. 그림 잘 그리는 그림쟁이? 글 잘쓰는 그림쟁이?

 

   기본적으로 하재욱 화백의 그림은 기술적으로는 잘 모르겠지만 펜화입니다. 조금은 거칠어 보이는 펜 끝의 촉감이 오히려 그림을 편안하고 따뜻하게 보이게 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리고 조금은 톤이 어두운 색감으로 채색합니다. 40대 중년의 칙칙함입니다. 저는 아직 30대 이기 때문에 저같으면 알록달록하게 칠했을지도 모릅니다. 후훗...

 

   원래 그림을 특색있게 개성적으로 그리는 건 익히 봐왔고, 그 만의 장점이 있는 그림쟁이라는 것은 충분히 알고 있었습니다. 세상을 비판하고 비꼬는 시사만화가로 지낼 때는 사실 크게 호응을 받지 못한 부분이 있었는데, 페이스북이라는 매체를 통해 일상을 편안하고 담담하고 솔직한 그림과 글로 표현해내기 시작하자 점점 많은 사람들이 입소문으로 찾고 공감하고 좋아해주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정작 제가 이 책을 읽고 놀랐던 부분은 그림이 아니라 글이었습니다. 제가 기대한 이상으로 글을 정말 잘 쓰는 사람입니다. 이거 놀랐습니다. 글의 내용이 좋은 것은 아마도 평소에도 고민을 많이하고 평범한 사물과 인물과 세상만사를 따뜻한 시각으로 찬찬히 바라보기 때문에 아닐까 짐작해봅니다. (저자를 개인적으로 잘 아니 짐작하기 너무 편합니다.) 거기에 기술적인 문장력이나 표현력 자체도 의외로(?) 무척 훌륭합니다. 삶을 살아내는 통찰력이 있습니다. 그것들이 이 책을 통해 풍성하게 잘 표현되고 있습니다.

 

"어느덧 저도 세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중략) 아이도 셋인 데다 날개옷도 없을 뿐더러 남자인 제가 어디로 도망갈 수 있겠어요. 하루하루 꾸역꾸역 견디며 걸어갑니다. 내 아이들이 좀 더 단단한 길을 갈 수 있도록 먼저 다져놓습니다. 아이들은 모를 겁니다. 그게 저의 유일한 행복이라는 것을. 그때 제가 미처 몰랐던 것처럼...(중략) 아버지가 되고 나서야 알겠더군요. 저를 묵묵히 지켜봐 주던 그 눈빛이 오로지 사랑이었다는 것을. 아버지들 모두 같은 마음일 겁니다. 저는 이 땅의 모든 아버지들의 어깨에 검붉은 눈물 말고 찬안한 별이 내렸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하루 만큼이라도." p13

 

 

 

"세상이 내게 허락한 최대치의 속력을 냈지만 제자리 걸음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최선을 다해 산다는 거 바보같다.

 

- 중부고속도로 모두가 시속 110km" p.44

 

 

 

"삶의 버거움에 그리움 따위는 언제든 털려버릴 수 있다는 말이 이해가 가네요. 씁쓸하지만 고개를 끄떡일 수밖에요.

 그렇지만 그리움을 푸석푸석 부서지게 놔둘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주머니 속에 마구 구겨 넣지 않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쉽게 꺼내보지는 못하더라도 정성껏 접어서 마음 깊숙한 곳 서늘한 장소에 차곡차곡 쌓아 두어야겠습니다.

충분히 익으면 저절로 차고 넘쳐 올라오겠죠. 좋은 술처럼요.

 

이런, 첫눈 오네요." p95

 

 

"일어설 힘없는 연약한 사람과 눈을 맞추려면 배를 깔고 엎드려야지.

 눈을 띄는 것조차 힘겨운 사람과 눈을 맞추려면 기다려야지.

 그러고도 웃어주면 다행이고 혹시나 울면 달래줘야지.

 그게 사람 사는 원칙이지.

 

 - 눈맞춤." p142

 

 

   그런가 하면 묘하게 위트 넘치는 재미있는 글과 그림들도 의외로 많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쯧

 

이거

적당하게 복용하시면

 

살짝

부품어 오르는 정도에서

끝나

괜찮긴 한데

 

과다복용 시 오히려 허파 쪽에 바람도 들고 간이 붓기도 하고

그러다 쫘아악 빠져요 특히 환자분 나이 때는 부작용 심각합니다.

 

이거

마약같은 거예요.

 

단호히 끊으셔야 합니다.

 

- 꿈과 희망" p40

 

 

 

#3. 오랜만에 만나는 나의 일상에 대한 힐링서

 

   편안하고 쉬운 그림과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일상의 기록들을 한장 한장 넘겨가며 읽는 동안 정신없이 보내고 있는 저의 하루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 일상이 돌아올 수 없는 일회성이 가장 큰 특징이고 그 일회성 때문에 특별한 날들의 연속이라는 사실과 먼훗날 언젠가 미소지으며 떠올릴 수 있는 너무도 그리운 기억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일상의 소중함을 되새기게 해 주었습니다.

 

   이 책을 읽는 짧은 시간 동안 저자의 일상과 만나고 또 저의 일상과 가족과 삶의 의미와 행복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너무 부담되지 않고 짧은 시간에 읽을 수 있고, 짧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여운이 길고 삶의 행복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면 저에게는 힐링 그자체였던 시간이었고, 한편으로는 가슴 뿌듯한 시간이었습니다. 아울러 아이는 둘이 딱 적당하고 좋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강하게 하게 되었습니다.

 

 

##. 내가 이 남자를 좋아하는 이유

 

   책 내용과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사실 얼마전부터 단행본 출간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그 때 비교적 규모가 큰 출판사에서 제의가 왔었던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다 규모가 작은 출판사에서 출간한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사실 저는 저자에게 무조건 큰 출판사에서 책을 내라고 강하게 권했습니다. 작금의 출판시장 여건을 생각하면 초대형 출판사에서 출간을 한다해도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소개될지, 판매되고 실제로 읽어질지가 의문인 이 어려운 상황에서 1인 출판인 듯한 신생 출판사라니요? (제가 '헤르츠나인'이라는 출판사를 잘 몰라서 오해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아마도 이쪽 출판사분이 지인이거나 다른 이유가 있는 관계인 모양입니다. 소식을 듣고도 직접 전화하지 못했습니다. 어차피 이 양반 의리지킨다며 다른 출판사 출간제의는 안중에도 없을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뻔히 보이는데도 의리를 택하는 이 남자. 제가 이 남자를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천상천하 유아독존, 우리가 남이가으리~~, 남녀칠세 부동석 격인 그의 휴너미즘 절절 끓어 넘치는 태도 때문일 겁니다. 이 남자 앞에서 저는 한낱 졸부이자, 눈앞의 작은 이득을 탐하는 소인배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하루하루를 괴롭게 살아가는, 버텨내는 많은 분들이 이 책을 읽고 따뜻한 위로와 역설적인 희망을 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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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남들의 세계사 - 2014년 제47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ㅣ 죄 3부작
이기호 지음 / 민음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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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차남들의 세계사, 피해자도 가해자도 구분하기 힘든 우리 모두의 이야기

 

   이기호작가님의 [차남들의 세계사]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군사정권 시절에 살아남기 위한 가해자와 그 과정에서 피눈물나게 억울한 말도 안되는 상황을 겪었던 피해자들 모두의 이야기 입니다. 있지도 않은 허구를 사실로 만드는 작업(?)을 거쳐 개인의 인생을 송두리채 뒤흔들어 망가뜨려 놓는 인생파괴를 자행했던 차남들은 사실 모두 평범한 사람들이자 조직의 일원일 뿐입니다. 그저 무서운 형님에게 '알아서 기는' 과정에서 도구와 소재가 필요했고 이 소재로 활용된 타인은 자동으로 피해자가 되었을 뿐입니다.

 

   작품의 도입부부터 약간의 충격을 받았는데, 아무리 지나간 시절의 이야기라 하더라도 전두환이니 안기부니 미문화원 방화사건이니 모두 실제했던 인물과 지명과 사건들을 대놓고 써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이 소설은 마치 세이초옹의 논픽션 시리즈나 누쿠이 도쿠로의 르포르타주를 연상시키는 사건의 정리집이나 사실보도와 같은 현실성을 띄는 것입니다. 소설이 실제 현실세계의 처절함을 뛰어넘지 못하는 시대는 오래전부터 계속되어왔고 이미 너무 익숙해진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에서 묘사하고 있는 서사를 따라가다 보면 현실의 처절함이 어느 수준이상 적나라하게 구현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소설 속에서 우리의 배고프고 서글프고 서슬퍼랬던 지난날을 보는 듯해 가슴이 아팠고, 한 편으로는 군인이 정권을 잡고 맹위를 떨치며 인간이 인간을 파괴하는 시대를 빗겨나 태어나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게 만들었습니다. 아무리 그 아픔이 내 아픔이라고 떠들어봤자 '나만 아니면 된다'라는 마음 속 깊은 곳의 조용한 속삭임을 숨길 수는 없었습니다. 오히려 감사한 마음을 가질 지경이었으니 말입니다.

 

   형님에게 충성하는 자였거나 그 가족, 친인척이었거나 아니면 그 과정에 필연적으로 발생한 수많은 피해자들 당사자거나 그 가족이거나 일가친척이거나 친구, 지인이거나 본적도 들은적도 없는 이야기라 대답할 젊은이거나 너나 할 것 없이 우리가 겪어오고 살아내어 왔던 우리의 역사인 것입니다. 그 속에서 주연이었을수도혹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가해자였을 수도 있으며 그저 방관자거나 적당히 눈치껏 피해를 줄여가며 웅크리고 순응해온 엑스트라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 웅크려 살아남았다면 진정학 역사의 주인공일지도 모르겠군요. 그만큼 험한 시절을 지내왔으니까 말입니다.

 

   차남들이 세계사에서 우리의 위치와 스탠스가 어디에 가 있던 간에 큰 그림의 한 축이자 담당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하여 작가의 끊임없는 요청과도 같이 '귀 귀울여' '들어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2. 비극을 비극스럽지 않게 표현해내는 이기호 작가의 특별한 배려

 

   저자도 인터뷰 등을 통해 밝히고 있지만 우리나라 순문학(?)의 가장 큰 맹점은 너무나 처절하고 무겁고 한맺힌 이야기로 풀어놓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한 그런 작품을 높이 평가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다보니 무슨 문학상이나 하는 수상집을 읽다보면 다들 '한국적 한의 정서'를 필요 이상으로 표현하며 무겁고 먹먹한 결말로 치닫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는 문단내에서 그들끼리 "잘했군 잘했어. 어화둥둥 내새끼"하며 한껏 치켜세우는 듯한 삐딱한 생각이 들게 만듭니다. 이런 그들만의 리그는 필연적으로 시대적 트렌드와 간극을 만들어 책을 좋아하는, 아니 책을 사는데 기꺼이 지갑(아니 전자지갑이라고 해야하나?)을 여는 독자들의 수를 한없이 줄여놓는데 일조를 한 것입니다.

 

   이 와중에 충성 독자들을 때려잡고 쥐어짜내 출판계를 살리겠다며 할인을 금지하는 도서정가제를 전면시행한다고 하니 소비자 입장에서는 기가 찰 노릇입니다. 예를 들자면, 스마트폰의 눈부신 발전으로 어중간한 디지털카메라나 MP3 플레이어를 아무도 찾지 않자 디카나 MP3플레이어를 유독 사랑하는 일부 유저에게 비싼 돈에 팔아서 명맥을 유지해보자는 가전업체의 심산과 일맥상통하는 것이 아닌가 말입니다. 도서정가제는 할말이 많지만 논지에서 완전 벗어나니 이쯤해야 겠습니다.

 

   이런식으로 지나치게 무겁게 다루는 과거사의 문제는 그 시절을 온 몸으로 겪지 않은 독자에게는 상당한 부담으로 다가옵니다. 빠르고 가볍고 쿨함을 지향하는 세대적 특성에 잘 들러붙지 않는 지나친 무게입니다. 저자는 이런 트렌드에 뒤처진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지 않으려 노력을 많이 한 것이 느껴집니다.

 

   정말 찬찬히 따지고 보면 심각한 이 문제를 풀어놓으면서 쿨함을 유지하려는 노력은 눈물겨울 지경입니다. 우선 화자가 이 이야기들로부터 거리를 두고 객관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한 것이 눈에 띕니다. 등장인물을 모두 성까지 붙여 쓴 것이 그 일환입니다. 통상 이름만 쓰는 작품들보다 성까지 모두 붙여 표현함으로써 화자와 등장인물의 간격을 일정하게 유지하려 합니다. 그리고 꽤나 효과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또한 마치 그 옛날 '변사'가 이야기를 설명도 하고 더빙도 하듯 서사를 풀어나갑니다. 당연히 이런 방식은 진행되는 이야기와 화자의 입장을 명확하게 분리해줍니다. 그냥 내 얘기가 아니라 전해듣고 전달하는 차원으로 설정이 되기 때문에 말입니다. 이런 구술방식으로 진행되면 한 단계를 더 거치면서 이야기의 부담이 희석되는 효과가 나타납니다.

 

   게다가 장면이 바뀔 때마다 '들어보아라', '~~하며 들어보아라' 등의 문구를 다양하게 삽입하여 이야기의 무게를 경감시키려 노력합니다. 사실 저는 저자의 노력과 의도와는 무관하게 책을 읽는 내내 무지하게 거슬리고 방해가 되었습니다. 의도는 이해하지만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몽땅 없애버리고 읽고 싶었습니다. 몰입에 상당한 걸림돌이더군요. 이런 방식의 희극화는 전 반대입니다. 어처구니 없는 문장도 많았습니다.

 

"자, 이것을 듣도 보도 못한 8대 2 가르마를 탄 나이팅게일을 상상하며 들어 보아라." p261

 

   이런 헉소리 나는 문구들이 종종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중간 중간에 화자가 끼어들어 남의 이야기인양 하는 경우가 있는데 해설에 가까운 서술들이 등장합니다. 이런 서술들도 기가찬 내용들이 꽤나 있습니다. 이 또한 읽는 재미라면 재미겠지만 저에게는 조금 힘들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도 안기부 입사 시험을 브로커를 통해...... 아아, 그럼 그건 또 무슨 소설이 되는 걸까? 이게 무슨 브로커를 고용해 쓴 소설도 아니고......)." p176

 

"그리고..... 그 비밀로 인해 우리의 이야기는 다시 1982년 5월 21일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중략) 그날 그때로, 뭐. 비밀이 없어도 돌아가려 했지만, 어쨌든, 어쨌든 말이다. 그것이 이 이야기의 구조니까." p171

 

   제가 마음에 들고 안들고는 차지하고 이런 저자의 여러가지 기교로 인해 오랜 시간 등장했던 유사한 이야기들이 너무 심각하고 무겁다는 단점을 보완하고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이 작품을 읽어나갈 독자들을 배려한 모습이 보인다는 점이 독특한 이기호작가만의 분위기이자 특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미 일어난 지난 일을 너무 심각하게 그려서 외면받느니 좀 가볍게 가고, 함께 생각해보자는 것이겠지요. 그렇다고 일어난 사실 자체를 흐리는 것은 전혀 아니니 적절한 판단이라고 생각됩니다.

 

 

 #3.  예나 지금이나 조금도 변치 않은 우리들의 문제를 가감없이 묘사하고 있는, 그러나 문학적 관점을 놓치 않는...

 

   비록 지난시절의 이야기지만 차남들의 세계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그들의 리그와 무대와 스타일이 조금 바뀌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지금 이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가해자이거나, 방관자이거나, 피해자이거나 그도 아니면 잠정 가해자나 피해자입니다. 전혀 의식하지 않고 평온하게 일상을 살아가고 있을 뿐이지만 엄연한 사실입니다. 이는 지나온 역사가 견고하게 증명한 진실인 것입니다.

 

"때때로 평온하게만 보이던 우리의 일상이 부욱, 소리를 내며 찟어진 후, 그 틈에서 낮선 손 하나가 불쑥 튀어나올 때가 있다. 어쩌면 그 순간이야말로 의식 중이든 무의식중이든 우리가 감추고자 애를 쓰던 유일한 진실이 눈앞에 나타나는, 아프지만 흔치 않은 기회이기도 한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외면하기에 급급해한다. 그만큰 우리의 진실이 더럽고, 하찮고, 추악하고, 섬뜩한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그것을 외면하는 방식이다. 그 손이 마치 다른 사람의 것인 양, 자신의 손이 아닌 것처럼, 다시 틈 안으로 억지로 욱여넣고 겹겹이 시멘트를 발라 버린다. 그리고 시멘트를 바르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 안의 또 다른 괴물을 눈앞에 호명해낸다." p232

 

   인간이 무언가를 획득하기 가장 손쉬운 방법은 또 다른 인간에게 직, 간접적으로 착취하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은 꽤나 버젓이 당연하게 벌어지곤 합니다. 가장 최악인 것은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가해자의 위치에서 오는 부담감 혹은 죄책감을 피하기 위해 명분을 세우고 떠드는 행위입니다. '원래 인간사는 경쟁의 논리다.' '그 과정중에 승리를 위해 착취는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지극히 유치하고 이기적인 발상이 꽤나 먹히는 것을 보면 너나 나나 가해자 입장이 되면 실로 비슷한 명분을 슬쩍 갖다쓰게 된다는 걸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 공고한 시스템을 생각하면 오래전부터 인간사는 이 저질스런 법칙에서 한치도 나아가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고보면 또 역사적으로 증명된 변명 아닌 슬픈 진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인간사에 벌어지는 모든 상황을 경쟁으로, 만인대 만인의  전쟁논리로 치환해버리는 편의주의는 언뜻 인간적 죄책감을 뒤로하고 쉽게 앞으로 나아가는 기분을 느끼게 할지도 모르지만  잠시 멈춰서서 뒤돌아보면 서로가 서로의 말목을 움켜쥐고 서서히 퇴보를 거듭하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깨닫게 될 것입니다.

 

   [차남들의 세계사] 는 이런 경쟁의 논리와 가학적 착취의 논리에서 벌어진 슬픈 현실을 담고 있습니다. 아직도 '삼성이 성장해야 내가 잘 산다'거나 부자들이 잘 살아야 그 이름도 유치찬란한 낙수효과로 뭐라도 떨어져서 줏어먹는다는 생각을 가지고 언제든 가해자가 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이 있다면 제 사비와 시간을 털어서라도 안기부 원주지부 지하 3호실에 "쳐"넣어드리고 각종 구타와 물고문, 전기고문을 친히 체험하게 해드릴 용의가 있습니다. 겪어봐야 피해자도 가해자도 한치도 다르지 않은 똑같은 무게를 지닌 인생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지 않을까요? 나에게 능력이 있건 없건, 타인이 가진게 있건 없건 그를 착취할 어떤 권리도 없다는 사실을 느끼게 되지 않겠습니까?

 

   "쉽게 읽히지만 빨리 덮기 어려운, 깊이 상처입은 사람의 쓸쓸한 농담같은 소설이다 "라는 신형철 교수님의 추천사마자도 이 소설의 일부분으로 느껴지게 만드는 대단히 실험적이고도 독특한 소설, [차남들의 세계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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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을 뒤바꾼 아이디어 100 ㅣ 100 IDEAS 시리즈 4
마이클 버드 지음, 김호경 옮김 / 시드포스트(SEEDPOST) / 2014년 7월
평점 :
품절


 

 

#1. 무엇이 예술을 뒤바꾸는가?

 

   에..또.. 제가 어쩌다가 이런 책을 읽게 되었는지 신기합니다. 예술이니 미술이니 하는 것들은 저와는 솔직히 좀 딴나라 이야기 같아서 가까운 블로그 이웃들의 미술작품 소개나 전시회 소식 등을 접할 때마다 생소하고 신기한 마음이 여전한 상황인데 말입니다. 어쩌다가 미술과 일반 프로젝트 절차에 관한 반쯤 걸친 책 [프로세스를 디자인하라]를 읽으면서 미술 분야에도 흥미를 느끼고 '마냥 어려워만 할 것은 아닌가보다' 하는 생각을 하면서 다양한 체계와 사조와 관점들이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이 책 [예술을 뒤바꾼 아이디어 100]을 얼레벌레 읽게 되었는데 사실 이 책의 전체 내용을 하나 빠짐없이 소화하기는 상당히 힘들었습니다. 글씨체도 작고 양도 많을 뿐더라 곳곳에 산재해있는 생소한 용어와 표현들이 이 책을 읽는 저에게 과부하가 걸리는 현상을 겪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하루에 10개의 아이디어만 읽고 좀 있다가 다시 10개를 읽고, 이런식으로 읽어야겠다는 생각에 미치게 되었고, 그리하야 이 책을 다 읽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고, 마지막까지 읽을 때 즈음엔 책의 앞부분에서 무엇을 소개했는지 조차 가물거리는 상황에 닥쳤지요.

 

   여튼 예술을 뒤바꾸는 아이디어란 도데체 어떤 것인가? 를 생각해보는 것이 이 책을 읽으면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수확이 아닐까 합니다. 예술사조를 바꿀만 한 아이디어는 기본적으로 신선해야하고 기존의 굳건한 사조를 깨서 변화시킬 만큼 임팩트가 있어야 합니다. 임팩트라는 것이 예술작품을 창조해내는 과정의 변화를 가져오는 것일 수도 있고, 그 변화를 가져올 도구적인 것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변화를 느끼지도 못할 만큼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경우도 많이 있겠지만 말입니다. 저자는 이런 변화를 가져온 아이디어는 또 다른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생산해내는 촉매제 역할을 해서 체인 리액션으로 아이디어를 재생해 내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아이디어가 예술사조를 바꾸면 그 예술사조가 또 다른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며 그것 자체로 인식할 수 있는 새로운 사조를 만들어내곤 한다. (중략) 결국 예술사에 있어서 변천이란 공학에서의 신소재 개발이나 정치적 프로세스라기보다는 화학반응에 비유되는게 더 적합할 것이다."  - 서문 중에서 -

 

   결국 새로운 아이디어는 예술의 양상에 변화를 가져오고 그 변화의 아이디어가 또 다른 변화를 양산해 내어 발전되기도 하고 변종되기도 함으로써 더욱 세련되고 진일보한 예술사조를 형성한다는 말이되겠습니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예술에 더 낫고 더 좋은 것과 모자란 것으로 위계를 나눌 수 있는 것인지가 의문스럽기는 합니다.

 

 

 

#2. 이 책의 독특한 구성 "나열식"

 

   저자 마이클 버드는 철학적 분석과 분류보다는 주요한 키워드를 제시하고 설명해주는 것이 더욱 적절할 뿐만 아니라 특히 미술사적 시각이 부족한 사람들에게는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말도 안되게 광범위한 미술사와 그 속에서 수없이 생기고 변하고 없어진 사건과 사조, 아이디어와 인물들을 모두 다루기에는 적절치 않다는 고민을 한 듯 합니다. 오히려 다양한 아이디어들을 지나치게 정제하고 분류하기보다는 케이스 별로 나열하고, 각 아이디어를 잘 설명해주는 것이 미술사 입문에 더욱 효과적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이 책의 아이디어는 미술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판단되는 것으로 간추렸다. 따라서 각각의 아이디어는 그 자체로 한 권의 책이 될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하며 되도록 흥미로운 소재들만 골라서 담으려고 했다. (중략) 나의 의도는 미술사 입문자들에게 문을 열어주는 것이지 방 안에 가구를 빼곡하게 들여놓는 게 아니다." - 서문 중에서 -

 

   정말 아이디어 하나 하나를 만나다보면 엄청 광범위한 아이디어도 있고 친숙한 아이디어도 있었습니다. 좀 난해한 아이디어도 등장하고 말입니다. 완전히 시대순으로 나열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100개의 아이디어를 잘 분류해서 비슷한 것끼리 묶어서 배열한 것도 아닙니다. 처음에는 '이거 도데체 무슨 기준으로 막 쏟아지는 거지?'하는 생각이 들만큼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튀어나왔습니다. 그리고 왜 종류별로 묶어서 소개하지 않았을까 의문이었습니다. 이를테면, 1부는 각 화풍의 종류 정밀화, 산수화, 누드화 등등 회화 종류를 설명하고, 2부는 종이, 튜브 물감, 플라스틱 등등 재료에 대해 설명하고 하는 형식이 일반적인 책의 구성이겠지요. 그런데 전혀 그렇지가 않습니다. 암각화가 나왔다가 동상이 등장했다가 프로파간다가 나오는가 하면 원근법을 설명하기도 하고 엉뚱해 보이는 예술인의 마을도 나옵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헤깔리는걸? 그랬는데 점점 다음 아이디어는 어떤 게 나올까? 하는 기대감을 갖게 하더군요. 이런 나열식 구성의 묘한 장점이 느껴졌습니다.

 

   단순히 늘어놓기만한 나열식이라면 좀 실망했을 수도 있는데 그 하나 하나의 요소들에 대한 설명이 아주 적확하고 충실해서 무척 좋았습니다. 두 페이지에 걸쳐 하나의 아이디어를 소개하는데 간단한 압축적인 설명문장 혹은 문구하나에 한 두문장의 정의와 핵심설명, 다음 페이지에 상세한 설명과 역사적 의의와 변천, 주요 작가와 작품소개, 현대에 와서의 의미 등으로 설명이 이어져서 하나의 아이템에 대한 이해를 개략적으로 할 수 있도록 충실히 도와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이 미술사 입문책으로 매우 유익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저같은 경우는 들어만 보았던 여러가지 용어들에 대해서 새롭게 알게 된 것들이 너무 많아서 무척 좋았습니다.

 

 

#3. 나무보다 숲을 보게 하는 개괄서의 유익

​ 

   이 책을 통해서 미술사의 주요한 테마들이 어떤 것들이 있는지 큰 틀에서 훑어 볼 수 있어서 무척 좋았습니다. 아는 척하기에 특별히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상식 차원에서 알아야할 기본적 소양을 쌓기에 좋습니다. 워낙 모르는게 많은데도 그 와중에 좀 알고 있던 것들이나 어디서든 본 적이 있는 작품이 등장할 때는 얼마나 반갑던지요.

 

   제일 반가왔던 게 Idea NO.29 "Window of the world(세상으로 향한 창)" 설명이었습니다. 창문을 사용하여 회하에서 '그림 너머 다른 세계를 응시하고 있는 듯한 환상을 준다'는 내용인데 여기에 등장하는 예시 그림으로 일본의 "안도 히로시게"의 <아사쿠사 논밭>이 소개 되었습니다. 근데 이 "아도 히로시게"는 북스피어의 미야베미유키 에도시리즈 표지로 늘 사용되는 작품이거든요. 이 책에 소개된 <아사쿠사 논밭>은 바로 미미여사의 "그림자밟기" 표지로 사용되었던 그림입니다.

  

 

 

 

   색감차이는 크게 나지만 같은 그림이 틀림이 없군요. 찾아서 꺼내놓고 비교해보니 무척 즐거웠습니다. 뭔가 신기하고 친숙한 걸 찾아내었을 때의 기쁨이 있더군요. 그 밖에도 흥미로운 아이디어들이 정말 많았는데 '프로파간다'나  '팝아트' 등 나름 친숙한 내용에 대한 정확한 정의와 소개는 아주 좋았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아이디어는 58번 "Dealing(딜러)" 였습니다. 예술 시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딜러에 대해서는 사실 그리 생각해봤던 개념은 아닌데 얼마전 '피카소'에 대한 책에서 딜러의 역할이 크다는 걸 어렴풋이 느끼기는 했습니다. 그러고보니 음악시장에서도 마찬가지지만 미술계에서도 미술품을 사고 팔고, 전시회에 관여하고 특정 작가의 명성이나 지명도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을 딜러의 역할을 중요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고 실제 작가의 실력외에 작가의 명성에 크게 관여를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단순한 미술적 기교에서 전반적인 흐름, 사조의 변화와 미술소재는 물론 기술의 변화까지 폭넓게 미술계 전체를 조망한 이 책은 그냥 편안하게 읽어 넘기기만 해도 시각을 넓혀주는 무척 효용이 큰 책입니다. 집에 두고 관심이 갈 때마다 꺼내 찾아 읽어도 좋을 법한 책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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