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하루 - 언젠가 그리울 일상의 기록 하재욱의 라이프 스케치 1
하재욱 지음 / 헤르츠나인 / 2014년 9월
평점 :
품절


 

 

#1. 이 남자의 '언젠가 그리울 일상의 기록'은  역설적으로 찬란하고 아름답다.

 

   저의 가까운 지인인 하재욱 화백의 단행본이 드디어 나왔습니다. 페이스북에 연재하듯 올리는 일상의 스케치와 단상들이 너무나 공감이 되고 좋았는데 그 그림과 기록들 중 일부를 모아 단행본으로 출간한 모양입니다. 제가 잘 알던 사람의 책이 그것도 독특한 형식으로 출간되니 무척 행복합니다.

 

   이책의 부재인 '언젠가 그리울 일상의 기록'이라는 표현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여러번 읽었습니다. 제가 워낙 소시민이라 딱히 특별히 내세울만 한게 없어서 그런지 일상속의 행복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고 고민하고 노력하는 편이다보니 작가의 태도와 표현이 무척이나 공감이 갔습니다.

 

   세아이의 아빠, 40대에 들어선 직장인, 촉촉한 감성을 소유한 휴머니스트이자 로멘티스트인 저자는 삶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소탈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저자의 이야기가 바로 이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우리 소시민들의 이야기이기에 애절하고 가슴저리는 공명이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게다가 짠한 마음 절로 들게 만드는 다양한 그림들이 독자입장에서는 '으응?' 하고 따로 놀 수도 있는 감성과 메세지를 직관적으로 잘 표현해줍니다.

 

   한편 감탄도 하고 한탄도 하고 절망도 하는 그의 담담한 일상의 고백들에 녹아있는 넘치는 위트와 탁월한 관찰력은 읽는 이를 깜짝 놀라게 만듭니다. 심하다 싶을 정도로 참으로 우울하고 궁상맞은 죽는소리가 넘치는데도 묘하게 역설적으로 찬란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2. 그림 잘 그리는 그림쟁이? 글 잘쓰는 그림쟁이?

 

   기본적으로 하재욱 화백의 그림은 기술적으로는 잘 모르겠지만 펜화입니다. 조금은 거칠어 보이는 펜 끝의 촉감이 오히려 그림을 편안하고 따뜻하게 보이게 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리고 조금은 톤이 어두운 색감으로 채색합니다. 40대 중년의 칙칙함입니다. 저는 아직 30대 이기 때문에 저같으면 알록달록하게 칠했을지도 모릅니다. 후훗...

 

   원래 그림을 특색있게 개성적으로 그리는 건 익히 봐왔고, 그 만의 장점이 있는 그림쟁이라는 것은 충분히 알고 있었습니다. 세상을 비판하고 비꼬는 시사만화가로 지낼 때는 사실 크게 호응을 받지 못한 부분이 있었는데, 페이스북이라는 매체를 통해 일상을 편안하고 담담하고 솔직한 그림과 글로 표현해내기 시작하자 점점 많은 사람들이 입소문으로 찾고 공감하고 좋아해주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정작 제가 이 책을 읽고 놀랐던 부분은 그림이 아니라 글이었습니다. 제가 기대한 이상으로 글을 정말 잘 쓰는 사람입니다. 이거 놀랐습니다. 글의 내용이 좋은 것은 아마도 평소에도 고민을 많이하고 평범한 사물과 인물과 세상만사를 따뜻한 시각으로 찬찬히 바라보기 때문에 아닐까 짐작해봅니다. (저자를 개인적으로 잘 아니 짐작하기 너무 편합니다.) 거기에 기술적인 문장력이나 표현력 자체도 의외로(?) 무척 훌륭합니다. 삶을 살아내는 통찰력이 있습니다. 그것들이 이 책을 통해 풍성하게 잘 표현되고 있습니다.

 

"어느덧 저도 세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중략) 아이도 셋인 데다 날개옷도 없을 뿐더러 남자인 제가 어디로 도망갈 수 있겠어요. 하루하루 꾸역꾸역 견디며 걸어갑니다. 내 아이들이 좀 더 단단한 길을 갈 수 있도록 먼저 다져놓습니다. 아이들은 모를 겁니다. 그게 저의 유일한 행복이라는 것을. 그때 제가 미처 몰랐던 것처럼...(중략) 아버지가 되고 나서야 알겠더군요. 저를 묵묵히 지켜봐 주던 그 눈빛이 오로지 사랑이었다는 것을. 아버지들 모두 같은 마음일 겁니다. 저는 이 땅의 모든 아버지들의 어깨에 검붉은 눈물 말고 찬안한 별이 내렸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하루 만큼이라도." p13

 

 

 

"세상이 내게 허락한 최대치의 속력을 냈지만 제자리 걸음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최선을 다해 산다는 거 바보같다.

 

- 중부고속도로 모두가 시속 110km" p.44

 

 

 

"삶의 버거움에 그리움 따위는 언제든 털려버릴 수 있다는 말이 이해가 가네요. 씁쓸하지만 고개를 끄떡일 수밖에요.

 그렇지만 그리움을 푸석푸석 부서지게 놔둘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주머니 속에 마구 구겨 넣지 않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쉽게 꺼내보지는 못하더라도 정성껏 접어서 마음 깊숙한 곳 서늘한 장소에 차곡차곡 쌓아 두어야겠습니다.

충분히 익으면 저절로 차고 넘쳐 올라오겠죠. 좋은 술처럼요.

 

이런, 첫눈 오네요." p95

 

 

"일어설 힘없는 연약한 사람과 눈을 맞추려면 배를 깔고 엎드려야지.

 눈을 띄는 것조차 힘겨운 사람과 눈을 맞추려면 기다려야지.

 그러고도 웃어주면 다행이고 혹시나 울면 달래줘야지.

 그게 사람 사는 원칙이지.

 

 - 눈맞춤." p142

 

 

   그런가 하면 묘하게 위트 넘치는 재미있는 글과 그림들도 의외로 많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쯧

 

이거

적당하게 복용하시면

 

살짝

부품어 오르는 정도에서

끝나

괜찮긴 한데

 

과다복용 시 오히려 허파 쪽에 바람도 들고 간이 붓기도 하고

그러다 쫘아악 빠져요 특히 환자분 나이 때는 부작용 심각합니다.

 

이거

마약같은 거예요.

 

단호히 끊으셔야 합니다.

 

- 꿈과 희망" p40

 

 

 

#3. 오랜만에 만나는 나의 일상에 대한 힐링서

 

   편안하고 쉬운 그림과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일상의 기록들을 한장 한장 넘겨가며 읽는 동안 정신없이 보내고 있는 저의 하루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 일상이 돌아올 수 없는 일회성이 가장 큰 특징이고 그 일회성 때문에 특별한 날들의 연속이라는 사실과 먼훗날 언젠가 미소지으며 떠올릴 수 있는 너무도 그리운 기억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일상의 소중함을 되새기게 해 주었습니다.

 

   이 책을 읽는 짧은 시간 동안 저자의 일상과 만나고 또 저의 일상과 가족과 삶의 의미와 행복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너무 부담되지 않고 짧은 시간에 읽을 수 있고, 짧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여운이 길고 삶의 행복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면 저에게는 힐링 그자체였던 시간이었고, 한편으로는 가슴 뿌듯한 시간이었습니다. 아울러 아이는 둘이 딱 적당하고 좋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강하게 하게 되었습니다.

 

 

##. 내가 이 남자를 좋아하는 이유

 

   책 내용과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사실 얼마전부터 단행본 출간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그 때 비교적 규모가 큰 출판사에서 제의가 왔었던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다 규모가 작은 출판사에서 출간한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사실 저는 저자에게 무조건 큰 출판사에서 책을 내라고 강하게 권했습니다. 작금의 출판시장 여건을 생각하면 초대형 출판사에서 출간을 한다해도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소개될지, 판매되고 실제로 읽어질지가 의문인 이 어려운 상황에서 1인 출판인 듯한 신생 출판사라니요? (제가 '헤르츠나인'이라는 출판사를 잘 몰라서 오해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아마도 이쪽 출판사분이 지인이거나 다른 이유가 있는 관계인 모양입니다. 소식을 듣고도 직접 전화하지 못했습니다. 어차피 이 양반 의리지킨다며 다른 출판사 출간제의는 안중에도 없을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뻔히 보이는데도 의리를 택하는 이 남자. 제가 이 남자를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천상천하 유아독존, 우리가 남이가으리~~, 남녀칠세 부동석 격인 그의 휴너미즘 절절 끓어 넘치는 태도 때문일 겁니다. 이 남자 앞에서 저는 한낱 졸부이자, 눈앞의 작은 이득을 탐하는 소인배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하루하루를 괴롭게 살아가는, 버텨내는 많은 분들이 이 책을 읽고 따뜻한 위로와 역설적인 희망을 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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