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두리 없는 거울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박현미 옮김 / arte(아르테)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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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묘한 느낌의 기묘한 이야기


   기본적으로 무서운 이야기를 피하는 저에게 호러는 아무래도 불편함이 앞섭니다. 더우기 일본 기담같은 이런 류의 호러소설은 마치 캐주얼만 즐겨입는 사람이 정장을 입었을 때의 불편함과도 같은 느낌을 받게 합니다. 아마도 그것은 호러라는 장르에 대한 선입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합니다. [테두리 없는 거울]은 귀신이 등장하다보니 공포 또는 호러 소설로 분류해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이 호러가 기묘합니다. 생각보다 무섭지 않더란 말입니다. '아.. 이거.. 무서운 이야기 같기는 한데.. 무서워 해야하나?'라는 생각이 드는 상황이 의외로 많았습니다. 극강의 공포라기 보다는 오히려 어린시절 들어봄직한 이야기들의 연속에 반가움마저 들었기 때문입니다.


   익숙하지 않았지만 뭔가 익숙한 듯한 이 이야기들, 일본 작가가 쓴 일본 소설이 분명한데도 등장인물만 한국인으로 바꾸면 전혀 이상하지 않을 듯한 정감있는 설정과 전개가 마냥 불편할 것만 같던 일본 호러소설에서 향수마저 느껴지는 희한하고도 기묘한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었습니다. 의외로 이런 느낌이 나쁘지 않네요. 역시나 사람의 선입관이 호환, 마마보다 더 무서운 것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2. 전작이 익숙한 츠지무리 미즈키


   이 책을 접했을 때 '츠지무라 미즈키'는 그야말로 듣보잡같은 생소한 작가였습니다. 하지만 호기심에 정보를 찾아보니 하나도 읽어보지 않았지만 [태양이 앉는 자리]나 [열쇠 없는 꿈을 꾸다], [달의 뒷면은 비밀에 부쳐]와 같은 작품들은 너무나 익숙합니다. 그때 그때 블로그 이웃들을 통해서 이런 작품들의 이야기를 여러번 접했는데 저는 생소한 장르라거나 '그런가보다, 나중에 기회되면 읽어봐야지..' 이정도로 넘겼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작품 자체에 대해서는 자주 들어서 익숙한 거죠. 이 작가의 전작들을 살펴보다보니 '아, 왜 이 작가에게 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었지?'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게다가 기묘한 이야기는 이래저래 많이 접해보아서 익숙한데  '계단의 하나코'는 본적은 없네요. 동영상을 찾아 보니 원작을 잘 살려서 공포스러운 부분이 있습니다. 근데 제가 이 책을 읽으면서 결정적으로 혼자 오해한 것이 선생님인 "아이카와"를 여자 선생님으로 생각하고 읽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부분에 성희롱 비슷한 내용이 나올 때 의아하게 생각했었고요. 기묘한 이야기 동영상을 보자마자 '아, 선생님은 남자구나..'하며... 허어.. 이래저래 선입관은 참 무서운 것입니다.





#3. 우리를 공포에 빠지게 하는 것은 귀신, 귀신보다 더 무서운 인간...


   매일 신문과 뉴스를 통해 쏟아지는 무시무시한 이야기들은 공포에 대한 우리의 감각을 더디게 만듭니다. 현실인지 픽션인지 구분이 힘들 정도의 무서운 사건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다보니 어지간히 무서운 이야기는 접해도 반응조차 하지 못하게 된지 오래된 듯 합니다. 아침에 아내와 약국에 들렀다 오늘 길에 학교앞 복도식 아파트를 보면서 '학교바로 앞이라 위치가 참 좋다. 방향도 좋아서 햇볕도 너무 잘 드는 것 같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집집마다 예외없이 모두 방범창을 설치해두었더군요. 그걸 보면서 입지적 특성 때문에 대부분 어린 학생들을 키우는 젊은 부부가 사는 아파트인데 이 부부들의 심리상태를 반영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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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로 집앞에서도 무서운 일을 당할 수 있는 세상이 되어버린게 아닌가 합니다. 하기야 더 옛날에는 그 보다 더한 일도 많았지만 개인미디어가 발달하지 않아 알려지지 않고 나쁜일도 쉬쉬하는 풍토 때문에 그냥 덮어버리기도 했겠지요. [테두리 없는 거울]에 등장하는 다섯가지 이야기는 우리의 어린시절, 그리고 지금 자라는 아이들의 환경과 멀지 않은 이야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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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독 이런 류의 이야기에 많이 등장하는 학원폭력과 왕따문제는 이 작품속에도 "계단의 하나코", "그네를 타는 다리", "8월의 천재지변" 등에 적나라 하게 등장합니다. 학창시절에 한번쯤 해보았거나 들어보았을 '분신사바'도 어김없이 소재로 등장합니다. 시체가 끝도 없이 난무하는 "아빠, 시체가 있어요"는 정말 묘하고도 파격적인 이야기여서 인상깊었습니다. 거울을 보며 현실과 상상의 경계 속에서 고뇌하고 재능없는 아이를 미워하는 부모의 어긋난 애정의 파국을 잔인하게 표현한 "테두리 없는 거울"은 무척이나 섬뜩했습니다. 표제작이라 할만큼 무섭고 끔직하게도 현실적인 이야기였습니다. 어린시절 누구나 겪어봤을 법한 가상의 이상적인 친구에 대한 이야기인 "8월의 천재지변"역시 묘한 분위기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며 향수를 자극하는 특징적인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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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수를 자극하는 소재들로 무서운 듯하지만 묘하게 향수를 자극하는 이야기를 다룬 [테두리 없는 거울]은 참으로 괴담보다 현실이, 그리고 현실속에 만나는 인간들이 더 무서운 존재임을 다시한번 생각하게 하는 좋은 작품입니다. 아직도 어색한 일본 호러, 그리고 어쩌면 일반적인 일본 작가의 호러와 궤를 달리할지도 모르는 이 이야기는 저에게 그야말로 기묘한 이야기였습니다. 앞으로 이런 류의 이야기를 조금 더 읽어봐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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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러 심리학을 읽는 밤 - <미움받을 용기> 기시미 이치로의 아들러 심리학 입문
기시미 이치로 지음, 박재현 옮김 / 살림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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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타인과 사회에 의해 규정된 삶을 살 것인가? 미움받을 용기를 낼 것인가?


   [아들러 심리학을 읽는 밤]은 이미 국내에 [미움받을 용기]로 익숙한 기시미 이치로 작가의 아들러 심리학 입문서 시리즈라고 보시면 될 듯 합니다. 전세계에 대세로 굳어 있는 프로이트 심리학과 상당한 차이를 보이는 아들러 심리학이 근래에 관심을 많이 받는 현상은 개인적으로 상당히 바람직하고 기쁜일입니다. 아무래도 아들러 심리학에서 이야기하는 바가 저의 개인적인 인생관이나 가치관에 너무 잘 들어맞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무척이나 공감이 가고 지지하는 내용들로 가득합니다.


   저같은 경우는 착한아이 컴플렉스(아들러는 컴플렉스에 대한 의미부여가 일반적인 이 용어의 통용의미와 무척 다릅니다만)를 가지고 살아오다 보니 제가 원하는 것과 상관없이 나에게 어떤 행동을 하기를 원하는지 끊임없이 눈치보며 좋은 평가를 듣기 위해 노력했던 어린시절을 자주 떠올립니다. 그리고 대학시절 스스로를 돌아보고 성격유형이니, 기질이니 이런 것들에 관심을 가지다 보니 어린시절의 반대급부로 누가 뭐라든 내가 하고싶은 데로 살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온 것도 꽤나 오래되었습니다.


   저자가 소개하는 아들러 심리학은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를 아주 명확하고 경쾌하게 대답해주는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책에 따르면 인생의 의미는 자기자신이 정하는 것이며 누구에게나 통용되는 일반적인 '인생의 의미'라는 것은 없다고 딱 잘라 얘기하고 있습니다. 모든 고민과 태도의 중심에 '나'가 있습니다. 다른 어떤 과거나 환경에 핑계를 댈 필요도 영향을 받을 필요도 없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들러의 심리학은 "태도의 심리학"이라고도 불립니다. 자신 앞에 놓여진 인생의 과제를 용기있게 직면하고 스스로의 행복한 미래를 위해 나아가는 심리학, 이것이 바로 아들러의 심리학입니다.




#2. 프로이트 Vs 아들러


   조금만 깊이 들어가면 훨씬 복잡한 양상을 띄지만 바쁜 우리가 심리학 교제를 붙들고 씨름할 이유는 없으므로 조금 단순화 극단화 해서 풀어보자면 인간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크게 프로이트 식과 아들러 식으로 나눠 볼 수 있습니다.


   프로이트의 경우는 인간의 행동을 주로 과거의 인과관계의 산물로 해석했습니다. 기억도 나지않는 어린시절의 경험이 현재의 성격을 형성한다는 주장이죠. 이드, 에고, 슈퍼에고 등의 어려운 용어가 등장하고 무의식의 본능영역과 의식영역, 이상을 추구하는 의식넘어의 영역으로 구분합니다. 또한 꿈의 내용을 해석해서 개인의 욕구, 감정, 갈등 등을 탐색하고자 했습니다. 프로이트 심리학의 주요한 내용인 '불안'이라거나 '방어기제', 그리고 '성격발달의 5단계(구강기, 항문기, 성기기, 잠복기, 생식기)' 이론을 공부하다보면 특징적인 것이 있는데 상당히 인간이 이상한 존재라는 느낌이 들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흔히 많이 이야기하는 거세불안이라든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일렉트라 콤플렉스 등등 자라면서 누구나 뭔가 이상한 사람이 되거나 약간의 변태성향은 당연히 가지고 있고, 좀 심하면 "돌아이"가 되는 그런 뉘앙스가 강하게 느껴지는 것이죠. 개인적으로 프로이트 심리학을 가볍게 공부하다보면 기분이 무척 나빠집니다. 제가 프로이트를 좋아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저도 모르게 '아, 프로이트 이양반 실제로 본인이 변태라 성적인 충동이라든가 이런걸 엄청 강조한 것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죠.


   아들러의 경우 초기에 프로이트와 함께 연구했지만 위에서 언급한 프로이트의 발달단계 등이 지나치게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일반화하는 것에 거부감을 가지고 프로이트와 결별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인간은 프로이트의 주장처럼 어린시절의 경험이나 상처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개개인의 목적의식에 의해 행동이 결정된다고 파악합니다. 최근에 우리 아이에게 생겼던 일을 반추해보면 이 두 심리학자의 차이는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우리 둘째는 약 30개월쯤 된 여아입니다. 얼마전 이상하게 음식을 잘 먹지 않고 입에 물고 삼키지도 않고 있더니 급기야 뱉어내었습니다. 부모입장에서 밥을 잘 안먹는 아이가 당연히 걱정이 되지요. 그러면 안된다고 얼르고 달래고 해보아도 나아지지 않더니 심지어 더 심해졌습니다. 이런 이상행동을 하는 것이 너무 이상해서 원인이 뭘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EBS 육아프로그램 중에 입에 밥을 물고 있는 아이에 대한 사례가 있더군요. 찾아서 보았습니다. 우리아이는 저리가라 엄청 심각한 아이의 사례가 소개되면서 전문가가 나서서 그 원인이 이유식을 하는 시기에 이유식을 제대로 안했던 기억 때문에 퇴행현상을 일으킨 거라고 분석했습니다. 그리고는 씹기 좋은 음식을 주고 식단을 대폭 수정하고 해서 고쳐지는 것을 보여주더군요. 이런 식의 접근과 원인을 분석하는 것이 프로이트 심리학에 가깝습니다. 어린시절의 어떤 특정 상황에 현재 이상행동의 원인이 있다는 것이죠.


   고민이 되었습니다. 둘째도 이유식을 제대로 안하긴 했거든요. 긴가민가 하면서 죽을 먹여보려고 해도 밥이나 죽이나 똑같은 반응을 보입니다. 그런데 아들러의 경우는 동일한 상황을 전혀 다르게 해석합니다. 아이가 밥을 안삼키고 물고 있는 것은 무언가 목적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 목적이란게 무얼까요? 이런 방향으로 접근하자 쉽게 이해가 되었습니다. 밥을 입에 물고 부모에게 무언가를 어필하려는 목적이 있다면 뻔한것이지요. 관심을 받고 싶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충분히 관심을 주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아이가 아이입장에서 생각하기에 관심이 충분치 않다고 판단한 것이고 더 관심을 받아야겠다는 목적이 있었던 것이지요.


   가만 생각해보니 아이가 이제 좀 컸다는 이유로 응석을 받아주던 태도에서 언니에게 함부러 하지 말 것을 요구하고 훈육을 좀 많이 했던 것이 기억이 났습니다. 조금 더 안아주고 공감을 해주자 딱히 이유식이니 뭐니 하지 않았는데도 완벽하지는 않지만 금새 밥을 잘 먹습니다. 주의해야할 것은 관심을 받는 것이 목적이므로 입에 음식을 물고 있는 것을 막 혼내면 목적이 어느정도 달성되는 것이라 그 증상이 더 강화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음식을 물고 있는 행위와 상관없는 부분에서 충분히 관심을 보여주고 애정을 표현해주면 관심을 끌고자 하는 행위는 사라지게 할 수 있습니다."



   프로이트와 아들러의 차이는 무척 다양하게 설명할 수 있지만 현대인들이 가장 쉽게 차이를 느낄 수 있는 것은 역시나 어떤 개인의 문제나 이상행동을 과거의 어떤 원인에서 찾느냐, 과거와 상관없이 어떤 목적을 위한 행동으로 이해하느냐의 접근방식입니다. 어느 것이 맞다 틀리다 쉽게 판단하기는 힘들지만 어느것이 더 바람직하냐는 쉽게 생각해볼 수 있을 듯 합니다. 과거의 상처나 경험이 현재 나의 행동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분석을 하다보면 과거의 자신과 직면하고 고통받는 것 까지는 좋은데 어찌어찌 원인을 발견했다고 하더라도 해결하기까지는 무척 어렵습니다. 생각보다 인간이 잘 바뀌지 않으니까요. 반면 현재의 행동이 어떤 목적을 위한 행동으로 이해하면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용기를 내기만 하면 생각보더 어렵지 않게 삶의 태도를 유지할 수도, 바꿀 수도 있습니다.





#3. 행복의 세 가지 조건


   아들러의 심리학에서 제시하는 행복의 세 가지 조건은 "자기수용", "타자 신뢰", "타자 공헌"입니다. 이중 "자기수용"은 "미움받을 용기"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미움받을 용기는 자기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태도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미움받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방식에 따라 자유롭게 살고 있다는 증거다. 어쩌면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는다는 것은 세상에서 내 뜻대로 자유롭게 살아가기 위해 지불해야만 하는 대가일 것이다. 모든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사람이 될 것인가? 아니면, 미움받는 사람이 될 것인가? 만일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나는 단연코 후자를 선택할 것이다. 비록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 있어도 자유롭게 살고 싶기 때문이다." p26


   미움받을 용기는 평범해질 수 있는 용기와도 같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누가 뭐라든 나는 나지'라고 생각할 수 있고 누구에게 평가받지 않아도 나는 소중한 존재라 스스로 여겨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자기 수용"의 태도입니다.


   혼자서 살 수는 없는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언제든 나를 해칠 수 있다고 두려워하는 채로는 행복하게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사람들을 믿고 신뢰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타자 신뢰"입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을 신뢰한다고 해도 그것 만으로 충분하지는 않습니다. 사회속에서 조화를 이루며 타인을 위해 공헌할 줄 아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이것을 "타자 공헌"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 경우도 지나치게 자신을 희생할 필요는 없습니다. 모든 것이 과하면 독이 됩니다. '타자 공헌'은 인간이 기본적으로 공동체에 속해 있을 때 안도감을 느끼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4. 인생의 과제를 이겨나가는 용기


   아들러 심리학의 큰 특징 중 하나는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콤플렉스"의 영향을 부정한다는 점입니다. 아들러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신이 수행해야할 인생의 과제 앞에서 그것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자신의 콤플렉스를 들먹인다고 보았습니다. 그리하여 콤플렉스를 '인생의 거짓말'이라고 불렀습니다. 저만해도 지금도 그렇지만 무언가 중압감을 주는 일이 있을 때 늘 그것을 피하려하고 실제로 회피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한 예로 대학시절에 교양으로 중국어 회화를 등록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대학시절에 공부를 참.. 안했거든요. 학점을 위해 중국에서 살다가 오거나 유학을 해서 중국어를 유창하게 하는 학생들이 제법 속해있었습니다. 그러니 저와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었죠. 게다가 시간강사셨던 남자강사님은 특히 중국어가 유창한 학생, 예쁜 여학생에게 친절한 태도를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발음이 안좋거나 잘 대답을 못하는 학생에 대해서는 상당히 기분나쁘게 비아냥거리고 무시하는 모습을 보였지요. 학기말 시험에 필기에 교수님과 일대일 대화로 성적을 주었는데 관심도 없고 공부도 안한 저는 필기만 응시하고 나와버렸습니다. 대충 C정도는 받을 수 있을거란 판단에서였지만, 핀잔을 들을 상황자체를 피해버린거죠. 이런 상황에 대해서 제가 어린시절에 형들에게 억압을 받아서 움추리고 주눅이 들었기 때문에 그런 압박 상황을 싫어하고 피하는 것이라고 주변 사람에게 설명을 해왔습니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면 노력하지 않은 것에 대한 비겁한 변명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죠. 제 형이 어린시절에 예민해서 저를 힘들게 한 것은 사실이지만 따지고 보면 막내인 저를 챙겨주고 대학시절에는 심지어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를 대신해 등록금과 생활비까지 도와주었기 때문에 오히려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말입니다. 아들러가 보기에는 정말 말도 안되는 인생의 거짓말인 것이지요.



   아들러는 똑같은 조건에서 자란 쌍둥이도 서로다른 성격과 태도를 보이는 것을 들어 인과관계에 따른 원인론을 부정합니다. 중요한 것은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느냐가 아니라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고 주체적으로 살아갈 것인가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저처럼 중요한 인생의 과제가 놓였을 때 과거의 상처나 트라우마, 콤플렉스에 기대 회피하려 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는 용기를 가지는 것이 삶을 살아가는 지혜가 아닐까 합니다.


   [아들러 심리학을 읽는 밤]은 인생을 좀더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미래지향적으로 살아가는데 큰 용기와 도움을 주는 책입니다. 아들러 선생은 훌륭한 사람이군요. 저도 자신을 사랑하고 타인을 신뢰하며 공동체에 공헌하는 긍정적인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에게 이런 삶의 태도를 가지도록 가르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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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커밍제인 2015-04-07 2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로이트에 관해 저도 공감이에요 한번도 와닿은 적이 없어요 ㅎㅎㅎㅎ
 
위대한 탐정 소설 ㅣ 에스프레소 노벨라 Espresso Novella 1
윌러드 헌팅턴 라이트 지음, 송기철 옮김 / 북스피어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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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 내용에 앞서 궁금해 질 수 밖에 없는 윌러드 헌팅턴 라이트, 그가 누구길래 탐정소설에 대해 정의하고 평가하나?
 
   [위대한 탐정 소설]은 윌러드 헌팅턴 라이트가 수많은 탐정소설을 섭렵하고 탐정소설은 어떤 것이며, 어떤 것이어야하고 그동안 출간된 작품들 중에 인상적인 작품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비평한 에세이입니다. 탐정소설의 역사서라 할 수도 있고 비평이라고 해도 무방할 내용들입니다.
 
   윌러드 헌팅턴 라이트는 도데체 누구입니까? 이 양반은 아는 사람은 잘 알고 모르는 사람은 이름조차 들어본 적이 없을 법한 인물입니다.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밴슨 살인사건", "카나리아 살인사건", "그린 살인사건"의 저자인 S.S. 반다인은 대부분 잘 아실테고, S.S 반다인의 실명이 바로 윌러드 헌팅턴 라이트라는 사실도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이 양반 인생 스토리가 참으로 재미집니다. 잘 알려진 데로 원래 그림과 문예 등에 비평을 쓰고 고상한 글을 쓰는 지식인이었습니다. 그런데 병을 얻어 의사에게 책을 읽는 것을 금지당하게 되고 다만 미스터리 소설 "따위"는 재미삼아 읽어도 된다고 처방을 받습니다. 그 때부터 무지막지하게 미스터리류, 탐정소설을 섭렵을 하게 된 라이트는 그야말로 전문가적 식견을 얻게 됩니다. 저라도 지금까지 나온 미스터리 소설을 다 읽어본다면 미스터리 소설이 어때야 하는지, 어느 작가의 어느 작품이 좋은지 나쁜지 한마디할 자격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딱히 누가 자격을 주는 건 아니겠지만은... 여튼 그는 병 때문에 시작한 미스터리 소설 독서를 근 2천권 정도 했다고 하니 얼마나 눈알 빠지게 읽었을지 상상이 갑니다.
 
   이 쯤되면 누구나 예상하시겠지만 '음.. 진정한 탐정 소설이란 자고로 이래야 하는 것이여!'하는 생각이 들지 않았겠습니까? 그리고 연이어 '에이, 내가 쓰면 정말 멋진 탐정 소설하나 나오겠는데?'하는 생각도 했을 것입니다. 게다가 평론일로 크게 재미를 못보았고 고상하기는 하나 돈은 없었던 그는 오랜 투병으로 경제적 어려움까지 겪었으니 이참에 용돈벌이나 해볼까 하는 생각은 자연히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여튼 그는 결과적으로 탐정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그야말로 대박, 초대박이 났습니다. 그리고... 부자로 떵떵거리고 살았다는 이야기도... (아이고 부러워라.... )
 
   그런데 아무래도 고상한 지식인이 탐정 소설을 쓰는 것에 대한 주변의 평판이 신경이 쓰였던 모양인지 "S.S. 반다인"이라는 희한한 필명으로 소설을 썼습니다. 나중에 이래저래 알려진 모양인데 거뭐 중요한 것도 아니고.. ㅋㅋ 최근에 헤리포터 어머니 "조엔 K. 롤링"이 이런저런 이유로 "쿠쿠스 롤링"을 쓸 때 "로버트 캘브스?" 뭐 이런 필명으로 글을 썼던게 생각나네요.
 
   유명한 작가이기도 한 S.S 반다인이자 윌러드 헌팅턴 라이트는 탐정 소설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쓸만큼 충분한 식견이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2. 그래서 탐정소설이란 무엇인가?
 
   이 책에 소개된 내용은 아니지만 탐정소설이 무엇이고 어떠해야 하는지는 저자 라이트의 "탐정 소설을 쓰기 위한 스무 가지 규칙"에 잘 드러납니다. 스무가지 규칙까지 언급하지 않더라도 다음의 문구만으로도 설명이 됩니다.
 
"탐정 소설은 일종의 게임인 동시에 스포츠이기도 하다. 따라서 작가는 독자에 대해 공정함을 유지해야 한다. 작가는 브리지 게임을 할 때 사기가 허락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속임수나 책략 따위에 의존해서는 안 되며, 순수한 창의력만으로 독자의 의표를 찌르고 독자의 흥미를 끌어야 한다."
 

   좀 더 자세히 탐정 소설에 대한 저자의 설명을 보면, 우선 탐정소설은 순수한 오락 소설로 문학적 가치를 지향하는 소설과는 창작 동기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들어 동일한 잣대로 평가 절하하는 태도를 경계합니다. 탐정 소설이 문학 작품들 사이에서 고유의 가치를 차지하는 이유는 일반적인 소설의 원칙에 지배받기 보다는 오히려 수수께끼, 확장된 퍼즐 혹은 십자말 풀이와 같은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독자에게 정확한 힌트를 주어야하고 거짓말을 하거나 말도 안되는 설정을 해서는 안되는 것이지요. 그건 정당한 게임이 아니라 속임수니까 말입니다.

 

   이 밖에도 탐정 소설에 대한 다양한 원칙이나 인물론, 배경론 등을 전반부에 잘 다뤄주고 있습니다. 이 글을 읽다보면 자연히 탐정소설에 대해서 이해하게 됩니다. 자세한 내용은 얼마 하지도 않는 이 책을 직접 읽어보시면서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아는 척하는데 상당한 도움이 됩니다.

 

  

#3. 엄청나게 재미나거나, 믿을 수 없을 만큼 지루하거나... 그러나 대안은 있다.
 
   이 책을 읽는데 문제는 초반 이후에 있습니다. 어차피 워낙에 짧은 내용이기는 하지만 초반의 탐정 소설론에서 시대별 작가론, 작품론으로 이어지는 부분에 도달하면 이제 고민이 시작됩니다. 풍문으로 들어 익숙한 작가들이 대거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듣도보도 못한 당대의 탐정 소설 작가와 작품도 줄줄이 등장하고 이 작품들의 인상평이 끝도 없이 이어지죠. 이 지점에서 엄청나게 흥미롭고 재미날 수도 있고, 완전 질릴만큼 지루해 질 수도 있습니다. 저의 경우는 적어도 이 부분에서 만큼은 상당히 읽기 힘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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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쨌거나 읽고서 새털처럼 가벼운 지식을 어디선가 뽐내야하기 때문에 열심히 읽기는 했습니다만, 읽다보니 이거 뭐 '이렇게 검은 것은 글이요, 누런 것은 종이로다' 수준의 이해도로 읽어봐야 머리속에서 꺼내놓을 수도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이럴 때는 또 방법이 있지요. 그저 남들이 많이 읽지 않은 라이트의 에세이를 읽었다는 사실 그 자체에 만족하는 것입니다. 정신승리란 그런 것이지요.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내서 유리하게 해석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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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 대안이 있습니다. 이 작품의 백미는 내용도 내용이지만 짧은 본문에 비해 턱없이 길고도 알찬 "출간​에 부쳐"에 있습니다. 마포 김사장님의 이런저런 솔직한 이야기를 읽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심지어 이 짧은 글에 번역후기, 출간 후기까지 붙으니 뭐랄까? 핫도그를 먹는데 쏘씨지는 얇고 빵껍질이 무척 두꺼운 형국입니다. 그런데 쏘세지도 맛나지만 이 껍딱이 또 겁나게 고소하고 바삭하더란 말이지요. 북스피어 에스프레소 노벨라 시리즈 1권인 윌러스 헌팅턴 라이트의 [위대한 탐정 소설]은 그런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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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스머신
노리즈키 린타로 지음, 박재현 옮김 / 반니 / 2014년 12월
평점 :
품절


 

 

 

 

 

#1. SF를 사랑하는 독자라면 흥분할 만큼 흥미로운 소재와 전개가 가득한 작품

 
   저는 이 작품의 저자 노리즈키 린타로를 잘 모르지만 신본격이라는 표현으로 무언가 범접하기 힘든 분위기를 느끼게 되는 작가입니다. 적절할지 모르지만 [녹스머신]으로 이 작가를 만난 것이 괜찮은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녹스머신]이 저자의 일반적인 작풍을 반영한 작품인지 알 길은 없지만 매력적인 것 만은 사실입니다.
 
   조금 찾아보니 무척 진지하게 고민하고 연구하는 스타일인 듯 한데, 딱 그 결과가 작품에 깊이 반영된 듯 합니다. 아무리 따지고 봐도 이 작품은 사이언스 픽션의 범주에 넣는 것이 옳다고 생각됩니다. 미스터리라는 요소는 상당히 애매하기는 하지만 네 개의 단편 중 두번째 [들러리클럽의 음모] 정도에서만 느낄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두번째 작품이 표제작인 [녹스머신]은 물론 전반적인 소설집의 분위기와 가장 들러붙지 않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저는 이 소설집은 SF로 분류하고 싶습니다.
 
   워낙 이공계 출신이고 SF에도 관심이 많은 저에게 이 작품은 정말 취향에 잘 맞는 내용이었습니다. 블랙홀이라던가 평행이론, 타임머신 이론 등이 익숙하기도 하고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양자역학이라던가 양자비트를 활용한 양자컴퓨터니 이런 내용은 자세히는 모르지만 뭔소리인지는 충분히 개념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라 흥미진진했습니다. 게다가 최근에 자주 접하게 되는 타임 슬립, 타임 패러독스 등의 개념에 "우로보로스의 뱀"까지 등장하자 얼마나 반갑던지요. 한편으로는 공학적인 분야에 관심이 없는 독자는 어떻게 하라고 이정도로 심각하게 썼을까? 하는 의문도 들기는 했습니다. 뭐, 모르면 모르는데로 그런가보다 하고 읽는게 또 이 소설의 묘미이기도 하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2. 공부하듯 따져보고 고민해 볼 것이 많은 진중한 작품
 
   이 소설집을 이루고 있는 네 개의 단편은 표제작 [녹스머신], [들러리 클럽의 음모], [바벨의 감옥], [논리증발-녹스머신2]입니다. [녹스머신]과 [논리증발]은 사실상 하나의 이야기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전반적인 배경과 인물, 그리고 설정이 동일합니다. 다만 다루고 있는 핵심 포인트가 서로 상이하다보니 별도록 분리해 놓은 듯 합니다.
 
 
(1) 녹스머신
 
   녹스머신은 기본적으로 타임 패러독스와 평행이론에 관한 내용입니다. 타임 패러독스와 평행이론은 사실상 상호영향을 미치는 이론이라고 보는게 적절한데, 타임 패러독스란 "내가 과거로 돌아가서 어린시절의 나를 죽이거나 나의 부모를 죽이면 그 시점을 기준으로 미래의 나는 존재하지 않고, 그러므로 나는 없으므로 내가 과거로 돌아가는 일 자체가 있을 수 없어서 과거로 가서 나를 죽일 수 없다" 뭐 이런 것이죠. 그런데 이 이론이 성립하려면 시간의 단일성이 성립해야 합니다. 즉, 과거로 부터 현재, 미래까지 세계가 딱 하나만 존재해야 하는 것이죠. 무언가의 영향을 받아서 역사가 바뀌면 바뀌기 전의 역사는 없어지고 새로운 역사가 거기에 덮어쓰기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평행이론을 접목시키면 조금 양상이 달라집니다. 아까처럼 내가 과거로 가서 어린 나를 죽인다고 치면 원래의 역사가 변형이 되는 그 시점에 두개의 세계로 갈라집니다. 원래의 세계는 그대로 원형을 유지하고 내가 죽어서 없는 새로운 세계가 하나더 생겨서 기존과 평행하게 별도로 시간이 흘러가는 것이죠. 문제는 그 시점부터 원래 세계의 '나'는 내가 죽어서 없는 새로운 세계에 올라탄 꼴이 되어서 원래 내가 있던 세계로 돌아갈 수가 없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 작품에서 말하는 "양방향 시간여행"이 불가능한 이유입니다.
 
   '이런 평행한 세계가 만날 수 있는 시점이 있다면?' 이라는 착상에서 시작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바로 [녹스머신]입니다. 그리고 그 시점으로 바로 주인공 유안이 날아갑니다. [녹스머신]에는 이런 모험을 한 주인공이 과연 자신의 원래 세계로 되돌아 왔을지 어떨지 의문을 남긴채로 끝이납니다.
 
 
(2) 들러리 클럽의 음모
 
   들러리 클럽은 전형적인 탐정소설에 한결같이 등장하는 탐정의 조수들로 이루어진 가상의 클럽이고 이 클럽과 애거서 크리스티의 대결을 그린 굉장히 독특하고 참신한 미스터리입니다. 요즘 정말 자주 만나는 S.S 반다인의 등장이 무척 반가웠습니다. 고전 탐정소설의 매니아들이라면 정말 재미있게 읽을 만한 신선한 내용입니다.
 
   저로써는 고전 탐정소설을 별로 접해보지 않아서 그다지 흥미를 가지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읽다보니 "열개의 인디언 인형(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의 내용을 놓고 클럽내에서 찬반 대립을 하는 진행이 무척 긴장감 넘치고 좋아서 점점 빠져들었습니다. 각각 구성원의 입장에 따라 첨예하게 대립하는 모습이 가상이지만 현실과 다를바 없어보여 좋았습니다.
 
   결국은 크게보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힘들고 위협을 느끼는 기존 세력이 난국을 타파하기 위해 극단적인 방법도 불사하는 모습이 묘사되는데 이거이거 참 자주보는 모습이다 싶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이 작품속에 등장하는 많은 등장인물과 언급되는 작품들을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전체 작품중에는 개인적으로는 가장 별로였고, 전체 흐름에 어색한 작품이라는 생각입니다.
 
 
(3) 바벨의 감옥
 
   이 작품은 뭐 너무 진보적이고 그로테스크하달까... 이런 내용은 논문에서나 쓸만한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일단 가장 기본적인 형식은 탈출입니다. 그러나 탈출 직전까지에서 내용이 끊어지죠. 주요한 컨셉은 인간의 육체와 사념의 분리, 그 사념이 본 인격과 경상인격이라는 두개의 동일한 쌍을 이루고 이를 통해 2차원적인 사념 스캔으로부터 정보를 보호한다는 것입니다. 키랄성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는데 어찌되었건 격자형태의 3차원의 방에 분리된 채 갖힌 비동기화 된 것으로 보여지는 한 개인의 사념이 서로의 존재를 파악하고 관찰자의 눈을 피해 탈출점을 찾고 탈출하는 것이 골자입니다.
 
   굳이 설명을 하자면 평평한 종이 두장이 겹쳐져 있다고 할 때, 본 인격과 경상인격은 각각 종이의 서로 마주보는 면의 서로 반대쪽을 보고있는면의 같은 위치에 찍힌 점과 같습니다. 종이 두장을 겹치면 서로 반대편에 붙어있지만 딱 만나는 위치에 있는 그런 구조인 셈이죠. 이 종이 두장을 각각 반대방향으로 접어올려서 육면체를 만들었다고 가정하면 접는 방법에 따라 두 점의 위치는 틀어지기도 하고 거리상으로 멀어지게 됩니다. 이런 상황이 이 작품에서 말하는 행렬격자 형태, 책의 모양과 같은 형태안에 갖혀있다고 하는 구조와 유사합니다. 이런 조건에서는 원래 거리상 딱 붙어 있던 두 점이 멀어지고 즉 본 인격과 경상인격이 분리가 되는 것이죠. 게다가 본 인격에서 보낸 정보가 경상인격으로 가는 경로와 반대로 경상인격에서 본 인격으로 보내는 정보의 경로가 동일하다면 시간지연이 있을 지언정 동기화된 통신이 가능하겠지만 서로 다른 경로로 주고 받는 경우에는 정보의 교환자체가 뒤죽박죽 될 수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말하는 사념의 도달과 피드백의 문제는 이런 조건에서 벌어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결론적으로 이런 조건을 잘 파악해서 두 인격이 동시에 만나서 탈출할 수 있는 좌표를 찾아서 동시에 빠져나가야 탈출할 수 있는 것이고 결과는 없이 시도하는 장면에서 이야기가 끝납니다.
 
   에 또... 이 이야기에 묘사된 개념은 마지막 작품 [논리증발]의 전개에 도움이 되는 이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용상 전체 소설집에서 나름 유의미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입니다. 별로 재미는 없었습니다만...
 
 
(4) 논리증발
 
   [논리증발]은 [녹스머신]의 이야기가 확장되는 형태입니다. 쌍방향 시간여행에 대한 국가간 대립의 피해자로 은거중인 후안이 재등장하고 이야기속의 문제를 풀어내는 핵심 키 역할을 합니다.
 
   큰 틀은 종이책이 사라진 전자책 데이터베이스 사회가 일반화된 이후의 세계를 기반으로 합니다. 이러한 전자책으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이 데이터를 제어하는 기술로 양자비트와 양자역학을 설명합니다. 이 이야기에 언급된 양자역학이란 굉장히 쉬운 개념입니다. 일반적으로 데이터를 표현하는 디지털이라는 것은 결국은 "0"과 "1"로 이루어진 비트 단위의 데이터의 집합입니다. 이를 어떻게 저장하고 가공하고 유지하는가가 관건입니다. 그런데 양자역학을 접목시키면 "0"이나 "1" 하나를 표현하는 비트 하나에 다가 "00", "01", "10", 혹은 "11" 총 4가지의 서로다른 데이터를 담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비트를 두칸으로 쪼개서 더욱 많은 정보를 담아낸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양자비트입니다.
 
   양자비트 개념을 굳이 집어 넣은 이유는 이러한 양자가 열에 취약하고 제어하기 힘들다는 점 때문입니다. 만약 어떤 이유에서건 열이 발생하면 저장된 양자비트의 정보가 안정성을 잃고 제멋대로 어긋나버려서 데이터가 모조리 엉망이 되는 것이지요. 이런 상황이 되면 종이책도 없는 판에 고유의 정보가 훼손되어서 쓸모없는 쓰레기 정보가 되어버립니다. 이런 위기 상황을 설정해서 이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을 설명한 것이 이 작품 [논리증발]의 핵심 스토리입니다.
 
   그러면 반드시 이 양자비트로 저장된 데이터를 뒤흔드는 열을 발생시키는 매개가 있어야 위기상황이 조성이 되는데, 이 위기상황을 만드는 열을 발생하는 현상을 이 책에서는 '호킹 방사'라는 개념을 도입해 설명합니다. 블랙홀의 사상에서 아까 바벨의 감옥에서 등장했던 쌍(페어)의 개념을 도입해서 두 개의 쌍이 분리되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즉, 하나는 블랙홀로 다른 하나는 블랙홀의 반대방향으로 탈출하는 상황이 발생할 때, 균형이 깨지면서 블랙홀이 급속히 무너지고 이때 열과 빛이 방출된다는 것이죠. 이 것이 호킹 방사입니다.
 
   저장된 원전 중 엘러리 퀸의 <샴쌍둥이 미스터리>의 독자의 도전에서 시작한 이러한 호킹방사에 따른 열로 인해 저장된 데이터가 줄줄이 훼손되는 현상이 발생하고 이를 막을 방법이 없는 위기가 펼쳐집니다. 물론 녹스장 이론의 개발자인 유안이 등장해 또 한번의 모험을 하게 됩니다. 이 과정을 또 설명하자면 한도 끝도 없어서 블랙홀에 몸을 던지고 허수의 몸을 갖추고 결합하고... 아.. 그냥 그렇다고 칩시다. 여튼 유안은 증발하고 전자책 세계는 다행히 불길이 진화되고 대부분 복구 됩니다.  
 
   사족이지만, 데이터가 불타서 사라지는 부분에서는 에반게리온에서 중앙제어시스템인 "마기"가 해킹 당하던 그 에피소드가 떠오르더군요. 에반게리온 덕후는 아니지만 말입니다.
 
 
 
 
#3. 표지디자인, 공중정원의 고퀄리티가 돋보인다.
 
   사실 이 소설이 눈에 띈 가장 큰 이유는 표지 디자인입니다. 디자인이 일단 예쁘고 무슨 내용일지 궁금해지는 디자인이 무척 좋았습니다. 실물을 보고 표지를 펴보니 안보이는 부분까지 깔끔하게 잘 만들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표지 디자인으로 무척 유명하신 "공중정원"님께서 작업하셨군요. 역시나 명불허전입니다. 개인적으로 아는 바는 없지만 이분 디자인은 항상 신뢰가 갑니다. (​아... 뒤늦게 확인해보니 디자인은 일본어 원본 그림과 동일하네요... 완전 헛다리... 이미지 받아서 레터링 작업 정도만 한게 아닌가 싶습니다.. 쯥...)
 
   한꼭지의 내용은 이정도로 몇 줄만 해야 되는데 이번 리뷰는 이게 뭔가 싶은 희한한 리뷰가 되었습니다. 작가가 워낙 진중하게 성의있게 글을 쓰신 듯 하여 리뷰도 성의를 조금 보여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에 길어졌습니다. 비슷하게 이해했는지도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알던 모르던 놀랍도록 신선하고 발상이 독특한 작품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이거 또 찾아 읽어야할 작가가 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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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릴리언스
마커스 세이키 지음, 정대단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1월
평점 :
절판


 

 

 

 

#1. 대중성과 오락성이라는 장르소설의 미덕을 충실하게 따른 수작.

   S.S. 밴다인으로 더 잘 알려진 월럿 헌팅턴 라이트는 그의 저서 "위대한 탐정소설"에서 순문학과 장르소설의 차이를 전제하고 장르소설을 크게 낭만(연애) 소설, 모험소설, 미스터리소설, 탐정소설로 분류한 바 있습니다(리뷰에 뭔가 이렇게 그럴듯한거 꼭 한번 넣어보고 싶었음). 그의 분류는 지금 시대에 와서는 큰 의미를 부여하기 어려울 만큼 장르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습니다만, 마커스 세이키의 이번 작품 [브릴리언스]는 분류하면 모험소설 쪽에 가깝습니다. 좀더 세부적으로 내용으로 보면 첩보 혹은 스파이스릴러라고도 할 수 있겠고 SF적인 특징도 가미되어 있습니다. 또한 "헐리우드가 주목하는 작가"라는 수식에 걸맞게 그의 작품은 마치 헐리우드 영화제작을 위해 쓰여진 작품같이 느껴질만큼 대중적이고 오락적인 요소가 풍부한 작품입니다

   600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이야기의 흐름은 흡사 "페이지 터너"라는 평가를 받는 로버트 러들럼의 [본 시리즈]를 대하는 듯한 느낌입니다. 본시리즈 세편(원작에서 많이 벗어난데다 맷 데이먼이 출연하지 않은 본 레거시는 논외로 하겠습니다)을 한작품에 축약해놓은 듯 말입니다. 꼼꼼히 따져보면 두 작품사이에는 차이가 많지만 그만큼 잘 만들어졌고 무척이나 대중적이며 장르소설의 최대장점이 흡입력과 가독성이 정말 뛰어나 훌륭한 작품입니다.


#2. 세밀하고 사실적인 내면묘사와 장면마다 철저히 잘 짜여진 미장센

   [브릴리언스]를 더욱 재미있게 만드는 요소는 단연 내면묘사입니다. 주인공의 처지와 상황과는 모순되는 내면의 갈등을 적제적소에 잘 묘사함으로 해서 독자가 주인공 캐릭터에 충분이 몰입하게 도와줍니다. 주인공의 행동을 결정짓는 요소는 크게 두가지 정도가 계속 나오는데 첫번째는 대의명분입니다. 권력을 휘두르고 타인을 위협함에도 불구하고 그 행동이 대의에 부합된다고 믿는 명분입니다. 그러나 그 대의를 위한 행동 자체가 왜곡되고 조작되고 더러운 이권을 위해 조작된 이유임을 깨달으면서 내면의 복잡한 충돌을 겪게 됩니다. 그런 다음 진짜 적이 누구인지, 정말 해야할 행동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과정의 심경변화에 대해 잘 묘사해주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주인공에게 충분히 공감을 가지고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가족, 특히 아이에 대한 사랑입니다. 가정이 쉽게 깨지면서도 늘 가족을 목숨보다 중시하는 태도를 취하는 미국인들의 대표적 이미지이자 설정이 아닐까 합니다. 게다가 전세계 어느나라에서나 공통으로 통할 만한 정서입니다. 저 역시 딸을 가진 아버지로서 주인공 쿠퍼의 감정에 쉽게 동화되고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이야기의 결말까지 구구절절 아이에 대한 사랑이 이 모든 사건을 벌이는 동기임을 설득력있게 잘 표현해주고 있습니다.

"쿠퍼가 자신의 아이들을 마지막으로 보고 난 지 6개월이 지났다. 누군가 다른 사람인 척하며 지냈던 6개월, 자신이 사랑하는 삶을 외면하고 오히려 그에 맞서 싸웠던 6개월이었다. 결국 그가 하는 모든 이은 아이들을 위해서였다.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에 했던 일조차, 나탈리를 만나기도 전에 했던 일조차도, 그것은 쿠퍼가 부모가 되기 전에는 결코 이해할 수 없었고, 부모가 된 이후로는 결코 잊어버릴 수 없는 진실이었다. "p.338
​
   또하나의 큰 장점은 허술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배경설정과 공간구도, 그리고 미래기술에 해당하는 장치들의 세부적인 묘사까지 빈틈없는 미장센입니다. 적절한 타이밍에 배경의 이동을 통한 분위기 환기도 매우 좋습니다. 이 작품에 배경처럼 등장하는 3D 디스플레이라든가 홀로그램, 무동력 비행기술 등의 SF적 요소가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어색함이 없도록 자연스럽게 서술한 점도 눈에 띕니다. 적당히 어렵지도 생소하지도 않은 정도의 수준에서 분위기를 잘 잡아주고 있습니다. 한편 이런 설정은 이 모든이야기의 발단이 되는 브릴리언스, 즉 변종들의 특별한 능력을 더욱 부각시켜줍니다.


#3. 일반인과 변종, 다수와 소수사이의 대립과 공존의 메시지

   브릴리언스에 등장하는 변종이란 뇌기능이 비약적으로 우수한 인간들의 출현이 주류입니다. 상대방의 의도와 거짓말을 금방 알아내는 "리더"라든가, 주인공 처럼 상대방의 행동 패턴을 인식하는 능력이라든가, 엄청난 암기력이나 계산력을 소유한 능력이라든가 말입니다. 유사한 소재로 큰 성공을 거두고 대중들에게 익숙한 엑스맨시리즈 뮤턴트들의 경우는 DNA자체가 변종이 되어 생물학적 외형과 기능이 근본적으로 달라지는 설정이 많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인간과 다른 종족과의 대립으로 여겨졌었죠. 그에 비해 브릴리언스들은 상대적으로 훨씬 현실적이고 외모도 완전 일반인과 동일하다보니 받아들이기에 편안합니다. 변종이라고 똑같은 음식을 먹고, 생활도 동일하게 하며, 총을 맞으면 똑같이 죽는다는 것이죠. 그러나 가공할 두뇌회전으로 세계경제를 주무를 수 있으니 일반인들의 세계에 엄청난 위협적인 존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변종들이 늘어나고 그 능력 또한 위협적인 상황을 맞이하는 기존세력, 즉 인간세계의 모든 권력과 부를 독점하는 특권층이 보여주는 태도는 예의 단호하면서도 배타적입니다. 물론 대외적으로는 포용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진짜 의도는 기득권을 빼앗을지도 모르는 세력의 존재자체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위협의 상존을 허용하지 않고 단호하고 냉혹하게 잘라내고 싶은 것이고 이를 위해 동족, 정상인들을 의도적으로 살해하기까지 합니다. 이를 통해 위험을 부각시키고 대립으로 상대방을 말살하고 싶은 것이지요. 능력은 뛰어나지만 전체 인구의 1%밖에 안되는 극소수이므로 숫자로 눌러 없애버리겠다는 것입니다.
​
   이런 설정은 가만 음미해보면 참으로 현실적이고 있을 법하고 이미 충분히 일어나고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더욱 섬뜩한 생각이 들기도 하고 뭔가 착찹한 마음이 떠나지 않는 상태로 이 이야기를 읽게 되는 것입니다. 소설속 인물들, 권력자들은 한치의 어긋남도 없이 무모할 정도로 이권을 따지고 대다수의 사람들을 선동합니다. 이 소설의 배경이 실제로 최근인 것을 생각하면 작가가 브릴리언스의 세계를 현실세계와 유사하게 지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겪고 있는 다수 대 소수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폭력적이고 일방적인 문제들을 그대로 묘사해주고 있습니다. 큰 틀에서 고민꺼리를 앉겨주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
​
#4. 지나치게 헐리우드적인 설정의 한계

   [브릴리언스]는 사실 너무 재미있게 읽어서 뭔가 부족했느니 나빴느니 하는 이야기를 쓰고 싶지 않은게 사실입니다만, 큰 단점은 있었습니다. 이야기의 전개가 너무 너무 너무 전형적입니다. 첩보물을 조금만 접해본 사람이라면 초반 몇장을 읽으면 벌써 다음, 그 다음 상황이 어느정도 그려집니다. 심지어 이 책은 세파트로 나누어 놓았기 때문에 첫파트를 조금 읽다보면 아, 두번째 파트는 이런 설정에 이런 내용일 것이고, 세번째 파트에서는 이런 입장이 되어서 이런저런 문제를 안고 있다가 해소가 되겠구나, 하고 예상하게 만듭니다. 그런데, 그 예상이 대부분 맞아 버립니다. 그야말로 반전도 변수도 없이 안전한 헐리우드 공식을 그대로 적용한 작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전형적인 공식에 따라 진행되는 스토리임에도 읽는 내내 흥미롭게, 집중해서 읽을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단점이 단점으로 크게 느껴지지 않았던 점이 되려 훌륭한 점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주 만족스럽게 끝까지 읽었고 기억에 남을 좋은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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