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두리 없는 거울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박현미 옮김 / arte(아르테) / 2015년 1월
평점 :
품절


 

 

 

 

#1. 기묘한 느낌의 기묘한 이야기


   기본적으로 무서운 이야기를 피하는 저에게 호러는 아무래도 불편함이 앞섭니다. 더우기 일본 기담같은 이런 류의 호러소설은 마치 캐주얼만 즐겨입는 사람이 정장을 입었을 때의 불편함과도 같은 느낌을 받게 합니다. 아마도 그것은 호러라는 장르에 대한 선입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합니다. [테두리 없는 거울]은 귀신이 등장하다보니 공포 또는 호러 소설로 분류해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이 호러가 기묘합니다. 생각보다 무섭지 않더란 말입니다. '아.. 이거.. 무서운 이야기 같기는 한데.. 무서워 해야하나?'라는 생각이 드는 상황이 의외로 많았습니다. 극강의 공포라기 보다는 오히려 어린시절 들어봄직한 이야기들의 연속에 반가움마저 들었기 때문입니다.


   익숙하지 않았지만 뭔가 익숙한 듯한 이 이야기들, 일본 작가가 쓴 일본 소설이 분명한데도 등장인물만 한국인으로 바꾸면 전혀 이상하지 않을 듯한 정감있는 설정과 전개가 마냥 불편할 것만 같던 일본 호러소설에서 향수마저 느껴지는 희한하고도 기묘한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었습니다. 의외로 이런 느낌이 나쁘지 않네요. 역시나 사람의 선입관이 호환, 마마보다 더 무서운 것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2. 전작이 익숙한 츠지무리 미즈키


   이 책을 접했을 때 '츠지무라 미즈키'는 그야말로 듣보잡같은 생소한 작가였습니다. 하지만 호기심에 정보를 찾아보니 하나도 읽어보지 않았지만 [태양이 앉는 자리]나 [열쇠 없는 꿈을 꾸다], [달의 뒷면은 비밀에 부쳐]와 같은 작품들은 너무나 익숙합니다. 그때 그때 블로그 이웃들을 통해서 이런 작품들의 이야기를 여러번 접했는데 저는 생소한 장르라거나 '그런가보다, 나중에 기회되면 읽어봐야지..' 이정도로 넘겼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작품 자체에 대해서는 자주 들어서 익숙한 거죠. 이 작가의 전작들을 살펴보다보니 '아, 왜 이 작가에게 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었지?'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게다가 기묘한 이야기는 이래저래 많이 접해보아서 익숙한데  '계단의 하나코'는 본적은 없네요. 동영상을 찾아 보니 원작을 잘 살려서 공포스러운 부분이 있습니다. 근데 제가 이 책을 읽으면서 결정적으로 혼자 오해한 것이 선생님인 "아이카와"를 여자 선생님으로 생각하고 읽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부분에 성희롱 비슷한 내용이 나올 때 의아하게 생각했었고요. 기묘한 이야기 동영상을 보자마자 '아, 선생님은 남자구나..'하며... 허어.. 이래저래 선입관은 참 무서운 것입니다.





#3. 우리를 공포에 빠지게 하는 것은 귀신, 귀신보다 더 무서운 인간...


   매일 신문과 뉴스를 통해 쏟아지는 무시무시한 이야기들은 공포에 대한 우리의 감각을 더디게 만듭니다. 현실인지 픽션인지 구분이 힘들 정도의 무서운 사건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다보니 어지간히 무서운 이야기는 접해도 반응조차 하지 못하게 된지 오래된 듯 합니다. 아침에 아내와 약국에 들렀다 오늘 길에 학교앞 복도식 아파트를 보면서 '학교바로 앞이라 위치가 참 좋다. 방향도 좋아서 햇볕도 너무 잘 드는 것 같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집집마다 예외없이 모두 방범창을 설치해두었더군요. 그걸 보면서 입지적 특성 때문에 대부분 어린 학생들을 키우는 젊은 부부가 사는 아파트인데 이 부부들의 심리상태를 반영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바로 집앞에서도 무서운 일을 당할 수 있는 세상이 되어버린게 아닌가 합니다. 하기야 더 옛날에는 그 보다 더한 일도 많았지만 개인미디어가 발달하지 않아 알려지지 않고 나쁜일도 쉬쉬하는 풍토 때문에 그냥 덮어버리기도 했겠지요. [테두리 없는 거울]에 등장하는 다섯가지 이야기는 우리의 어린시절, 그리고 지금 자라는 아이들의 환경과 멀지 않은 이야기 입니다.

   유독 이런 류의 이야기에 많이 등장하는 학원폭력과 왕따문제는 이 작품속에도 "계단의 하나코", "그네를 타는 다리", "8월의 천재지변" 등에 적나라 하게 등장합니다. 학창시절에 한번쯤 해보았거나 들어보았을 '분신사바'도 어김없이 소재로 등장합니다. 시체가 끝도 없이 난무하는 "아빠, 시체가 있어요"는 정말 묘하고도 파격적인 이야기여서 인상깊었습니다. 거울을 보며 현실과 상상의 경계 속에서 고뇌하고 재능없는 아이를 미워하는 부모의 어긋난 애정의 파국을 잔인하게 표현한 "테두리 없는 거울"은 무척이나 섬뜩했습니다. 표제작이라 할만큼 무섭고 끔직하게도 현실적인 이야기였습니다. 어린시절 누구나 겪어봤을 법한 가상의 이상적인 친구에 대한 이야기인 "8월의 천재지변"역시 묘한 분위기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며 향수를 자극하는 특징적인 작품이었습니다.

   향수를 자극하는 소재들로 무서운 듯하지만 묘하게 향수를 자극하는 이야기를 다룬 [테두리 없는 거울]은 참으로 괴담보다 현실이, 그리고 현실속에 만나는 인간들이 더 무서운 존재임을 다시한번 생각하게 하는 좋은 작품입니다. 아직도 어색한 일본 호러, 그리고 어쩌면 일반적인 일본 작가의 호러와 궤를 달리할지도 모르는 이 이야기는 저에게 그야말로 기묘한 이야기였습니다. 앞으로 이런 류의 이야기를 조금 더 읽어봐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