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릴리언스
마커스 세이키 지음, 정대단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1월
평점 :
절판


 

 

 

 

#1. 대중성과 오락성이라는 장르소설의 미덕을 충실하게 따른 수작.

   S.S. 밴다인으로 더 잘 알려진 월럿 헌팅턴 라이트는 그의 저서 "위대한 탐정소설"에서 순문학과 장르소설의 차이를 전제하고 장르소설을 크게 낭만(연애) 소설, 모험소설, 미스터리소설, 탐정소설로 분류한 바 있습니다(리뷰에 뭔가 이렇게 그럴듯한거 꼭 한번 넣어보고 싶었음). 그의 분류는 지금 시대에 와서는 큰 의미를 부여하기 어려울 만큼 장르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습니다만, 마커스 세이키의 이번 작품 [브릴리언스]는 분류하면 모험소설 쪽에 가깝습니다. 좀더 세부적으로 내용으로 보면 첩보 혹은 스파이스릴러라고도 할 수 있겠고 SF적인 특징도 가미되어 있습니다. 또한 "헐리우드가 주목하는 작가"라는 수식에 걸맞게 그의 작품은 마치 헐리우드 영화제작을 위해 쓰여진 작품같이 느껴질만큼 대중적이고 오락적인 요소가 풍부한 작품입니다

   600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이야기의 흐름은 흡사 "페이지 터너"라는 평가를 받는 로버트 러들럼의 [본 시리즈]를 대하는 듯한 느낌입니다. 본시리즈 세편(원작에서 많이 벗어난데다 맷 데이먼이 출연하지 않은 본 레거시는 논외로 하겠습니다)을 한작품에 축약해놓은 듯 말입니다. 꼼꼼히 따져보면 두 작품사이에는 차이가 많지만 그만큼 잘 만들어졌고 무척이나 대중적이며 장르소설의 최대장점이 흡입력과 가독성이 정말 뛰어나 훌륭한 작품입니다.


#2. 세밀하고 사실적인 내면묘사와 장면마다 철저히 잘 짜여진 미장센

   [브릴리언스]를 더욱 재미있게 만드는 요소는 단연 내면묘사입니다. 주인공의 처지와 상황과는 모순되는 내면의 갈등을 적제적소에 잘 묘사함으로 해서 독자가 주인공 캐릭터에 충분이 몰입하게 도와줍니다. 주인공의 행동을 결정짓는 요소는 크게 두가지 정도가 계속 나오는데 첫번째는 대의명분입니다. 권력을 휘두르고 타인을 위협함에도 불구하고 그 행동이 대의에 부합된다고 믿는 명분입니다. 그러나 그 대의를 위한 행동 자체가 왜곡되고 조작되고 더러운 이권을 위해 조작된 이유임을 깨달으면서 내면의 복잡한 충돌을 겪게 됩니다. 그런 다음 진짜 적이 누구인지, 정말 해야할 행동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과정의 심경변화에 대해 잘 묘사해주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주인공에게 충분히 공감을 가지고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가족, 특히 아이에 대한 사랑입니다. 가정이 쉽게 깨지면서도 늘 가족을 목숨보다 중시하는 태도를 취하는 미국인들의 대표적 이미지이자 설정이 아닐까 합니다. 게다가 전세계 어느나라에서나 공통으로 통할 만한 정서입니다. 저 역시 딸을 가진 아버지로서 주인공 쿠퍼의 감정에 쉽게 동화되고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이야기의 결말까지 구구절절 아이에 대한 사랑이 이 모든 사건을 벌이는 동기임을 설득력있게 잘 표현해주고 있습니다.

"쿠퍼가 자신의 아이들을 마지막으로 보고 난 지 6개월이 지났다. 누군가 다른 사람인 척하며 지냈던 6개월, 자신이 사랑하는 삶을 외면하고 오히려 그에 맞서 싸웠던 6개월이었다. 결국 그가 하는 모든 이은 아이들을 위해서였다.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에 했던 일조차, 나탈리를 만나기도 전에 했던 일조차도, 그것은 쿠퍼가 부모가 되기 전에는 결코 이해할 수 없었고, 부모가 된 이후로는 결코 잊어버릴 수 없는 진실이었다. "p.338
   또하나의 큰 장점은 허술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배경설정과 공간구도, 그리고 미래기술에 해당하는 장치들의 세부적인 묘사까지 빈틈없는 미장센입니다. 적절한 타이밍에 배경의 이동을 통한 분위기 환기도 매우 좋습니다. 이 작품에 배경처럼 등장하는 3D 디스플레이라든가 홀로그램, 무동력 비행기술 등의 SF적 요소가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어색함이 없도록 자연스럽게 서술한 점도 눈에 띕니다. 적당히 어렵지도 생소하지도 않은 정도의 수준에서 분위기를 잘 잡아주고 있습니다. 한편 이런 설정은 이 모든이야기의 발단이 되는 브릴리언스, 즉 변종들의 특별한 능력을 더욱 부각시켜줍니다.


#3. 일반인과 변종, 다수와 소수사이의 대립과 공존의 메시지

   브릴리언스에 등장하는 변종이란 뇌기능이 비약적으로 우수한 인간들의 출현이 주류입니다. 상대방의 의도와 거짓말을 금방 알아내는 "리더"라든가, 주인공 처럼 상대방의 행동 패턴을 인식하는 능력이라든가, 엄청난 암기력이나 계산력을 소유한 능력이라든가 말입니다. 유사한 소재로 큰 성공을 거두고 대중들에게 익숙한 엑스맨시리즈 뮤턴트들의 경우는 DNA자체가 변종이 되어 생물학적 외형과 기능이 근본적으로 달라지는 설정이 많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인간과 다른 종족과의 대립으로 여겨졌었죠. 그에 비해 브릴리언스들은 상대적으로 훨씬 현실적이고 외모도 완전 일반인과 동일하다보니 받아들이기에 편안합니다. 변종이라고 똑같은 음식을 먹고, 생활도 동일하게 하며, 총을 맞으면 똑같이 죽는다는 것이죠. 그러나 가공할 두뇌회전으로 세계경제를 주무를 수 있으니 일반인들의 세계에 엄청난 위협적인 존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변종들이 늘어나고 그 능력 또한 위협적인 상황을 맞이하는 기존세력, 즉 인간세계의 모든 권력과 부를 독점하는 특권층이 보여주는 태도는 예의 단호하면서도 배타적입니다. 물론 대외적으로는 포용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진짜 의도는 기득권을 빼앗을지도 모르는 세력의 존재자체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위협의 상존을 허용하지 않고 단호하고 냉혹하게 잘라내고 싶은 것이고 이를 위해 동족, 정상인들을 의도적으로 살해하기까지 합니다. 이를 통해 위험을 부각시키고 대립으로 상대방을 말살하고 싶은 것이지요. 능력은 뛰어나지만 전체 인구의 1%밖에 안되는 극소수이므로 숫자로 눌러 없애버리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설정은 가만 음미해보면 참으로 현실적이고 있을 법하고 이미 충분히 일어나고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더욱 섬뜩한 생각이 들기도 하고 뭔가 착찹한 마음이 떠나지 않는 상태로 이 이야기를 읽게 되는 것입니다. 소설속 인물들, 권력자들은 한치의 어긋남도 없이 무모할 정도로 이권을 따지고 대다수의 사람들을 선동합니다. 이 소설의 배경이 실제로 최근인 것을 생각하면 작가가 브릴리언스의 세계를 현실세계와 유사하게 지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겪고 있는 다수 대 소수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폭력적이고 일방적인 문제들을 그대로 묘사해주고 있습니다. 큰 틀에서 고민꺼리를 앉겨주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4. 지나치게 헐리우드적인 설정의 한계

   [브릴리언스]는 사실 너무 재미있게 읽어서 뭔가 부족했느니 나빴느니 하는 이야기를 쓰고 싶지 않은게 사실입니다만, 큰 단점은 있었습니다. 이야기의 전개가 너무 너무 너무 전형적입니다. 첩보물을 조금만 접해본 사람이라면 초반 몇장을 읽으면 벌써 다음, 그 다음 상황이 어느정도 그려집니다. 심지어 이 책은 세파트로 나누어 놓았기 때문에 첫파트를 조금 읽다보면 아, 두번째 파트는 이런 설정에 이런 내용일 것이고, 세번째 파트에서는 이런 입장이 되어서 이런저런 문제를 안고 있다가 해소가 되겠구나, 하고 예상하게 만듭니다. 그런데, 그 예상이 대부분 맞아 버립니다. 그야말로 반전도 변수도 없이 안전한 헐리우드 공식을 그대로 적용한 작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전형적인 공식에 따라 진행되는 스토리임에도 읽는 내내 흥미롭게, 집중해서 읽을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단점이 단점으로 크게 느껴지지 않았던 점이 되려 훌륭한 점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주 만족스럽게 끝까지 읽었고 기억에 남을 좋은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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