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 작가를 위한 장르 가이드 4 : SF ㅣ 웹소설 작가를 위한 장르 가이드 4
김창규.전홍식 지음 / 북바이북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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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SF를 즐기기 위한 완벽한 가이드

 

   일단 기본적으로 제목에 "웹소설 작가를 위한"이라는 수식이 붙어서 대상이 무척 한정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어 스스로 책을 많이 안 팔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는 것만 같기는 하지만 막상 읽어보니 웹소설 작가는 물론 알아야 할 내용이기는 하지만 그냥 아무나 읽어도 좋을 내용입니다. 당연히 상세한 내용은 전혀 없고 무척 개괄적인 소개이기는 하지만 어찌 되었건 뭐 하나 빼먹지 않고 꼼꼼하게 SF의 세계를 짚어주고 있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기본적으로 SF를 설명하는 개괄서라 하면 포함되어 있을 법한 여러분이 상상하는 바로 그 내용이 정말 정직하게 들어있습니다. SF가 무엇인가? 정의부터 SF의 두 개의 축인 과학과 상상, 그리고 너무 많이 들어가면 주객이 전도되는 판타지 요소까지 가볍게 설명해주고 있어요. 게다가 저는 처음 들었던 하드 SF와 소프트 SF의 분류도 흥미로웠습니다.

 

   가이드서라면 빼먹지 말아야 할 SF의 하위분류와 그 분류에 포함될만한 작품들이 꼼꼼하게 잘 설명되어 있고, SF의 역사도 짚어줍니다. 이 과정 중에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부분은 각 분류에 해당하는 역사적인 SF 명작들에 대해 소개가 되고 있어서 읽으면서 계속 '아, 이걸 빠뜨렸구나, 이 작품을 모르고 있었어.' 내지는 '아, 이 작품은 꼭 읽어봐야지.' 하면서 메모해가면서 읽었습니다. 제가 책을 읽으면서 메모를 하는 일은 정말 흔치 않거든요. 그냥 재미로 호로록 읽고 마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근데 이 책은 앞으로 책을 읽으면서 SF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주장하기 위해서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들이 대거 소개되고 있기 때문에 필요한 책들을 체크하는 게 무척 유용했습니다.

 

   지속 가능한 SF 읽기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책이었다고 할까요?

 

 

#2. SF를 사랑하는 사람이 고민해봐야 할 만한 문제들

 

   거뭐.. 이런 거 고민하고 하는 건 원래 업계 유관계자들이 하는 거지만 워낙에 SF 쪽에서는 마이너 중에서도 마이너다 보니 업계에서는 호러 다음으로 외면받기 딱 쉬운 장르라 이 책의 중후반부에 등장하는 "한국 SF와 SF 장르의 가능성" 부분을 읽으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의 약 2/3지점까지는 앞으로 놓치지 말고 읽어야 할 작품들을 정리하는 계기가 되었다면 후반 1/3 정도는 SF를 즐기는 독자로서의 기본적인 자세랄까? 정신교육을 받는 느낌으로 살짝 읽었습니다. 깊이 고민하기에는 내용이 너무 짧았거든요. 기본적으로 장르소설 쪽에서는 영미나 일본 쪽 장르소설보다는 국내 장르소설을 조금은 무시하는 태도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막 최근에 와서야 국내 작가들의 작품을 아끼고 사랑하는 풍토랄까? 그런 것들이 생겨나는 것 같아 다행스럽습니다. 그런데 무조건 우리나라니까 사랑해야 하는 건 시대적으로 설득력이 없고, 그만큼 수준이 좋아진 부분이 분명히 있죠. 한편으로는 한국적 장르소설의 특색에 대해서 작가들이 고민하고 잘 잡아나가는 노력이 필요해 보입니다.

 

 "좋은 SF는 자연스럽게 재미를 전하며 경이로움과 감동을 준다. SF의 불모지인 한국에서 "마션"같은 소설이 성공한 이유는 이 작품이 편하게 볼 수 있으며, 이야기를 통해 과학적 상상력과 재미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과학 설정이나 이론에 집착하고, 철학적 고찰이나 논의를 따지기보다 먼저 재미를 생각하는 것이 좋은 SF를 쓰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다."p.114

 

SF가 더 이상 그들만의 리그에 빠져있지 않도록 대중적인 재미를 겸비한 작품들이 발굴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기대합니다.

 

 

#3. 도대체 왜 웹소설 작가를 위한 가이드란 말인가?

 

   거의 책이 끝나갈 무렵까지도 '웹소설 작가를 위한 가이드라는 책의 컨셉에 이 내용이 부합하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냥 누구나, 특히 독자들이 읽으면 좋을 교양에 가까운 내용들이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무협"편과 마찬가지로 거의 말미에 달랑 15페이지에 걸쳐서 "SF 쓰는 법"이 나와 있었어요. 근데 이게 뭐 딱히 그렇게까지 작가 지망생만 읽어야 될 내용인지 헷갈려요. 여튼 "무협"편에 비하면 좀더 작법에 비중이 있는 내용이었기는 합니다. 책 전체 내용에 비하면 거의 일할 이하라고 해야 할 정도로 작가를 위한 작법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차라리 그 뒤에 있는 부록 "SF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작품들"이 더 유익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참, 이거 제대로 봤나 모르겠지만 "무협"편과 "SF"편의 서문이 똑같더라고요. 아마도 시리즈 6권 모두 서문이 똑같은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딱히 상관은 없지만 돌려 막기의 전형이 아닌가 했습니다. ㅋㅋㅋ

 

   여튼 웹소설 작가가 될 생각이 전혀 없는 사람도 SF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꼭 읽어보시면 좋을 책입니다. 내용 중에 등장하는 SF계의 레퍼런스와 같은 작품들을 하나씩 골라 읽어보는 것도 매우 좋을 것으로 생각되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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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소파
조영주 지음 / 해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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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추리소설의 옷을 입은 순문학 작품


   조영주 작가의 세계문학상 수상작인 "붉은 소파"는 풍문에 "추리소설로 세계문학상을 받은 이례적인 케이스"라고 들었습니다만 전혀 이례적이지 않네요. 개인적인 소감을 정리하자면 "추리소설의 외연을 입은 순문학 소설"이라고 해야 옳습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세계문학상을 수상할 만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작품은 본격 추리소설의 틀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습니다. 거기에 내용상 사회파에 가까운 특성을 보이고 있지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용이 전개될수록 추리소설을 읽을 때 느끼게 되는 기본적인 감상과는 사뭇 다른 방향으로 의식이 흘러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이 지점에서 약간의 생경함을 느끼게 되었고요. 독특하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작가만의 개성이 확연히 느껴지는 지점이 있었습니다.


   일반적인 추리소설은 당연히 범인이 누구인가? 범행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동기는 무엇이며,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등의 의문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입니다. 그 과정에 예상치 못한 결론에 이르면 짜릿한 반전에 놀라기도 하고, 사건의 이면에 가려진 우리 사회의 어두운 현실이 드러나게 되기도 합니다. 범인이 누구냐의 여부나 범행 수법 등에 주목하게 되면 본격 추리소설 쪽으로 분류하게 되고, 범죄의 동기나 사회적 풍조가 강조되면 사회파 추리소설의 범주에 들어가게 됩니다.


   "붉은 소파"는 누가 범인인지, 어떻게 범행이 일어났는지 등에 대한 의문이 스토리를 끌고 가는 것도 맞고, 극 초반부터 중요한 단서를 정석적으로 잘 흘려주고 있고 결말 부분의 반전도 좋아서 기술적으로 거의 완벽한 추리소설이기는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상 읽으면서는 누가 범인인지, 왜 범행을 저질렀는지가 이 이야기의 핵심이 아니라는 것을 쉽게 깨닫게 됩니다. 그보다는 등장인물들의 내면적 갈등과 상처, 회복과 구원을 향한 갈망과 집념이 묵직하게 다가옵니다. 문단에서 원하는 순문학적 특성을 충분히 채우고도 남는 느낌입니다.



#2. "붉은 소파"에 담긴 결정적 순간


   이 작품에 담긴 몇 가지 중요한 시사점이 끊임없이 저를 괴롭혔는데 가장 주목할 만한 부분은 상처에 대처하는 집요한 "태도"였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아름다운 세상이기도 하면서 참으로 잔혹한 세계이기도 합니다. 그 천국과 지옥의 경계를 결정짓는 것은 개개인의 경험이고 천국과 같은 경험이 가족을 비롯한 사랑하는 사람에 의해서 얻어지는 것이라면 지옥 같은 경험은 주로 타인에 의해 강요됩니다. 한편 극복하기 더욱 난해한 것은 가족에게서 비롯된 상처입니다.


   주인공 석주는 전형적인 예술가입니다. 무척 예민하다는 의미입니다. 무난하고 평범한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일부러 그러는 것이 아니라 그런 사람인 것입니다. 무언가 홀린 사람처럼 집착하고 집요하게 행동하는데, 사이코패스나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들의 특성이기도 합니다. 표면적으로는 딸이 살해당한 지옥 같은 경험이 주인공을 비정상의 일상으로 초대하는데, 그 이면에는 누이의 죽음이 깊이 관여하고 있습니다. 이 정도의 원투펀치 쓰리 강냉이 수준의 충격을 받으면 맛이 가기 마련입니다.


   석주가 그냥 피해자이기만 하면 읽기가 편하겠습니다. 주인공에 공감하고 동정하면서 이야기를 따라가면 되지요. 그런데 책에서는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누님의 죽음은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석주의 행동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그리고 석주는 스스로 그 사실을 인지합니다. 이제 범인을 쫓는 행적과 스스로의 죄책을 처리하는 과정이 동시에 진행될 수밖에 없는데 이런 상황에 연쇄살인의 가해자와 피해자, 관계자들이 뒤섞여서 무척 복잡한 형국으로 흘러갑니다.


   저자가 어디선가 이야기 구조는 잘 짜는데 캐릭터의 부재 때문에 고전했다는 이야기를 접한 기억이 있는데 적어도 이 작품만을 놓고 보면 저에게는 캐릭터가 너무 입체적이고 현실적으로 다가와서 힘들었던 케이스입니다. 저로서는 석주는 물론 재혁도 나영도 마지막에 등장하는 정국에 대해서도 이입을 하다 보니 정신이 없어서 진도를 빨리 나갈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모든 등장인물들이 "붉은 소파"에 앉거나 누운 사진을 매개로 연결되는데 이 글을 읽는 독자에게도 예외 없이 다가옵니다. 나의 붉은 소파는 무엇이며, 붉은 소파에서 안식하고 싶은 기억과 고통은 무엇이며 어떻게 극복해 나갈 거냐고 묻는 듯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책을 다 읽은 지 이틀째가 지나가는데도 아직도 고민스럽습니다. 사이코패스가 등장하는데 나와는 상관없는 특별하고 이상한 존재라면 그런가 보다 하고 분리해버리면 속 편하게 털겠는데 분명 비정상적이고 이상한 등장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사이코 패스적 특징을 한껏 가지고 있는데, 이들의 말과 행동이 남 일 같이 않은 것입니다. 거울에 비친 나의 일부분 같은 느낌입니다. 그래서 상당히 괴롭고 답답함이 느껴집니다. 주인공도 조연도 모두 안쓰럽고 아픕니다.



#3. "붉은 소파"를 넘어서야 할 작가의 과제에 대해...


   이 작품을 읽으면서 작품의 메시지와 상관없이 머리가 복잡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조영주 작가가 기존에 발표했던 초기작을 생각해보면 셜록 홈스 오마주로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추리소설이거나 팩션 소설에 인간의 내면에 담긴 문제를 잘 녹여낸 작품 등이 있는데, 이번 작품은 거기에 좀 더 인간의 심연으로 들어가는 문제를 다뤄내어 상당히 무거운 소설이 탄생했습니다. 그리하여 끊임없이 독자를 힘들고 불편하게 하는 면이 있습니다. 가볍게 추리소설적 특징에 집중해서 읽는 독자에게는 "생각보다는 가독성이 좋지 않고, 막 재미지지는 않았다."라는 반응을 얻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한편, 이 작품을 진지하게 접근하는 독자에게는 추리소설적 요소가 방해로 작용할 가능성도 존재합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마치 예술영화처럼 평론가의 별점은 높은데 정작 일반인들에게는 그다지 호응을 받지 못하는 형국으로 갈 위험성이 보입니다. 그러니까 좋은 작품인데 안 팔릴 수 있다는 얘기죠.


   그렇다면 저자가 방향을 잘 못 잡았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안타깝게도 작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봅니다. 이는 결국 한국 문학계의 한계일 수밖에 없는데, 이른바 "맨 부커상 신드롬"에서 극명하게 드러난 바와 같이 독자들은 좋은 책을 고르고 고를 여력이 없고 그럴 정성도 없습니다. 그냥 사서 읽을 책을 선택할 때 가능한 권위에 기대려 하는 것이죠. 유행에 민감한 것도 한몫하고 말입니다.


   주요 문학상을 수상하는 것은 자신의 책을 알리고 최소한의 판매 부수를 확보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길입니다. 이를테면 저 같은 사람이 블로그서 "A라는 책이 유명 출판사에 유명 저자는 아니지만 내용이 너무 좋아요~~"라고 아무리 떠들어봤자 그런가 보다 할 정도지 구매로까지 이어질 확률은 매우 낮은 것이 엄연한 현실입니다. 하지만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성공한 작가들을 다수 배출한 세계문학상 수상작이라고 하면 적어도 '한번 읽어나 볼까?' 하는 정도까지는 이끌어 낼 수 있는 것이지요. 일단 무대에 올라야 노래 한 곡을 완창은 못하더라도 적어도 개인기라도 선보일 거 아니겠습니까?


   이런 현실에서 이번 작품은 무척 영민한 선택이었다고 평가할 만 합니다. 그러나 메이저리그에 계약하기 위해 보여준 이번 작품이 평단과 상관없는 평범한 독자들에게 마냥 호평을 받을 수 있을지 약간의 의문이 생깁니다. 계속 언급했듯이 상당히 진지하고 깊은 주제의식으로 독자가 후루룩 읽기에는 무척 불편한 작품입니다. 평소 읽던 추리소설을 생각하고 책장을 넘기다가는 '이거 뭐지?' 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으니 말입니다.


   이제 차기작을 어떤 작품을 들고 나오느냐가 중요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참으로 다행스럽게 저의 걱정은 기우에 그쳤으면 좋겠습니다. 그 정신없는 "곡성"도 수많은 사람들이 보고 다양한 해석을 쏟아내는 현상을 염두에 두면 성숙한 독자들이 좋은 평가를 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조영주 작가의 차별화된 작품 성향이 무척 좋습니다. 더 좋은 작품을 계속 읽고 싶습니다. 장르와 순문학의 경계를 확실히 허물어내는 작가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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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제나 술래 - 과자장수가 골목에서 만난 바삭 와삭 와락 왈칵하는 이야기
박명균 지음 / 헤르츠나인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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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러가지로 놀라게 만드는 에세이


   이 에세이의 시작은 이렇습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동시대를 살면서 우리가 함께한 작지만 재미있고, 시시한 시작들에 대해서 말하고 싶은 거였다. (중략) 그냥 얼마만큼 왔나 시작을 한 번 뒤돌아본다. 꽤 온 듯하다. 그 시시한 시작에 비하면, 바다까지 갈 생각이다. 지금은 바다에 꽤 가까워져 있는 편이다. 바다 냄새가 난다." p136~137


   작가의 말처럼 전반부 100여 페이지는 정말 시작을 말합니다. 작가의 어린 시절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시간과 장소, 인물들, 일어났던 일들, 그리고 그 당시의 공기와 냄새까지 깜짝 놀랄 만큼 디테일하게 기억해내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슈퍼컴퓨터 두뇌인가 싶을 만큼 세세하게 기억하고 있어요. 그리고 당시의 정취와 감상들, 잊지 말아야 할 추억을 꼼꼼하게 곱씹어 줍니다.


   개인적으로 전혀 모르지만  이 책을 읽다 보니 저자 박명균이란 분을 잘 알게 된 듯한 착각이 들어요. 그만큼 무척 솔직한 생활밀착형 글들이 담겨있습니다. 흔하다면 흔한 가난한 어린 시절 이야기와 고생한 이야기가 담담하게 흐르고 있어요. 사실 초반에는 이게 양날의 검과 같아서 애매했습니다. 제 이야기가 아니잖아요? 딱히 애정도 없는 작가의 어린 시절 기억을 하나하나까지 제가 읽고 있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렇게 1/4지점까지는 묘한 향수와 애잔한 마음, 감동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반면 이걸 계속 읽어야 하나 싶을 만큼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이어졌습니다. 공감반, 거리감 반 정도의 느낌? 마치 처음 만난 사람이 친해지는 최소한의 시간도 없이 본인 살아온 이야기며 속 깊은 이야기를 끝없이 늘어놓는 느낌이 좀 있었거든요. 부담스럽게 말입니다.


   그 지점을 넘어서기 시작하니까 놀랄 만큼 공감되는, 저자의 희로애락이 담긴 담담한 글이 저를 압도했습니다. 음.. 압도당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아요. 저는 사실 권위에는 조금 반발하고 불편해하는 편입니다. 인간의 평등 원리에 어긋난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런데 형편과 환경이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주어진 환경에서 악착같이 최선을 다하며 글까지 쓰는 저자의 삶을 대하니 그 자체만으로 상당한 감동이 있었어요. 그런 형국이다 보니 글이 어쩌니 저쩌니 하는 생각은 안드로메다로 가버렸는데 다 읽고 가만 생각해봐도 좋은 글입니다.



#2. 솔직하고 담백한 일상 글, 그러나 짜임새 있는 글들


   초반에 몇 장 읽으면서는 출판사에서 왜 이런 "팔리지도 않을 글"과 "듣보잡 저자"를 내세워서 책을 출간했을까? 하는 의문이 제법 들었는데, 어느덧 편집자가 어떤 마음으로 이 책을 출간했을지 충분히 수긍이 가더군요. '음.. 책으로 만들어보겠다는 생각이 들 만 했겠는걸..' 하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는 글들이었으니까요.


"내 생활을 유지하는 것은 무난한 일상과 간간이 빛나는 기쁨이었지만, 내 삶을 만드는 건 아프게 울었던 일들이었다. 사람을 따뜻하게 안아주는 것, 그리고 같이 우는 것이 내겐 삶의 보상이었다. 내 가슴을 따뜻하게 채워주는 순간들은 항상 아프게 울었던 일이었는데, 그 안에 항상 보상이 있었다. 그 보상들은 내 가슴에 보관되었다. 어쩌면 내가 안아준 가슴들은 내 가슴이었는지도 모른다." p.138


   이 책이 단순히 일상 잡글만 담긴 건 아닙니다. 나름 짜임새가 좋아요. 초반 어린 시절의 향수와 시작을 이야기한다면 중반에는 작가가 한 가정의 가장으로 과자 장수로 고군분투하는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그리고, 작가 주변 인물들의 다양한 이야기도 곁들여지는데 이 이야기들이 또 진국입니다. 작가의 관찰력도 돋보이고 이야기꾼으로서의 능력도 확인할 수 있어요.


   말미에 이르러서는 이 나라의 구조적 모순을 적나라하게 이야기합니다. 본인이 직접 당한 이야기, 주변 소시민들이 겪은 이야기들로 이루어져 있어 직접적인 주장을 하지 않아도 어떻게 구조적으로 가난이 이어지는지, 개인의 노력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상황인지 아주 설득력 있게 들려줍니다. 책으로 배운 지식이 아니라 본인이 온몸으로, 인생으로 겪은 일들을 통해 우리 사회의 구조적 한계와 모순을 드러내고 있어요. 저 역시 모양새는 전혀 다르게 살았지만 비슷하게 느껴오던 것들이죠. 흙수저들끼리 통했다고나 할까.. 그런 동질감으로 불끈하게 만드는 애잔함이 있어요.


"처음부터 하지 않으면 되는데 창고 임대기간이 있고, 기존에 하던 통신판매는 되지 않고, 당장 때려치우기엔 뭔가 이유가 없어서 방법을 찾고 찾아가면서 이렇게 돼버린 거다. 얼렁뚱땅하는 사람이 아니라, 치밀한 사람이 머리를 쥐어뜯어가며 모든 노력을 통해서 얻어낸 결과물이 손해인 셈이다. 그 손해를 보려고 그렇게 노력했다는 것이 열받는 거다."p306 


   위 발췌한 부분은 거래처이던 권 사장이라는 분이 통신판매를 하다가 치열한 가격경쟁에 활로를 찾다가 대기업 판매대행에 끼어들었고 결국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꼼짝없이 손해만 보고 기존에 하던 일마저 털어먹고 사업을 포기하는 것을 바라보며 쓴 글의 일부분입니다. 대기업이 입점 업체는 손해가 나건 말건 수수료만 챙기고 나가떨어지면 다른 판매업자를 찾고 그것도 아니면 공급처와 직거래를 해버리는 형태에 대해, 그 과정에서 삶이 망가지는 소상인들에 대한 한 단면을 그리고 있어요.


   이런 것뿐 아니라 과자 공급자인 본인이 주변 거래처인 구멍가게와 슈퍼, 문방구들이 대기업 체인에 밀려 없어지는 것을 바라보며 느낀 소회들이 가감 없이 적혀있어요. 가난이 어떻게 이어지는지 말입니다. 이 세상이 어떻게 더 단단히 계급화되어가는지 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과자를 팔며, 운전을 하며 시간을 내어 삶을 기록하고 글을 이어갑니다. 세상을 사는 것이 돈을 많이 버는 것만은 아니라고 그 뻔한 진리를 알려주고 있는 것 같아요.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일단 가지고 봐야 말발도 먹히는 거지.'하고 나도 모르게 생각해버리고 말았던 것을 한 번쯤 돌아보게 만드는 글입니다.


   아무래도 세대나 성별에 따라 개취가 많이 작용할 만한 내용이기는 합니다. 젊은 세대들의 노곤함은 전혀 다른 지점에 있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 책을 어떻게 읽을지 궁금해집니다. 물론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이 책이 유명 저자들의 책만큼 많이 팔릴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으니까요. 대부분 이 책을 살 돈으로 한강 작가의 화제작을 사겠지요. 바로 여기에 안타까움이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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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작가를 위한 장르 가이드 6 : 무협 ㅣ 웹소설 작가를 위한 장르 가이드 6
좌백.진산 지음 / 북바이북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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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색적이고 흥미로운 무협의 세계


   사실은 이 책을 읽기 위해 준비작업 같은 마음으로 "대도오"를 읽었더랬는데 그 작품이 의외로 너무나 재미져서 얼릉 구매했습니다. 역시 제 예상대로 얇군요. 후훗... 얇은 책을 사랑합니다. 오래오래 읽을 여유가 좀 없다 보니 가벼운 것이 참으로 좋습니다. 북바이북에서 출간된 책이라 내용이 부실할 거란 걱정은 애초에 하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내용면에서는 믿을 수 있는 출판사니까요.


   어찌하여 웹 소설 작가를 위한 장르 가이드라는 시리즈가 기획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웹 소설 전성시대인 것만은 사실인 모양입니다. 웬만한 웹 소설 사이트에서 월 천만 원 이상 수익을 올리는 작가가 수두룩하다는 소문은 이미 익숙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정작 유명한 작가 소설도 출간되면 몇천 부 이상 팔리는 건 거의 기적인 세상에 살고 있으니까 이거 참 새삼 상전벽해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뽕나무로 만든 책밭이 웹 소설 바다가 되어버렸나 봅니다. 억지로 끼워 붙여보려니 억수로 어색하네.. 참말로..


   여튼 그중 거의 접해본 적이 없는 "무협"부분이야말로 호기심이 가장 크게 이는 분야가 아닐 수가 없었기 때문에 이 책부터 읽어보았습니다. 요런 책은 사실 가만 보면 정작 웹 소설을 쓰는 작가가 되려는 분들은 잘 안 읽죠. 저처럼 하지도 않을 거면서 그냥 호기심만 있는 사람이 주로 읽는 책이 아닙니까? 그러니까 어깨너머로 기웃기웃 거리면서 웹 소설 이야기라도 나오면 쉐리 아는 척을 작렬하려는 그런 사람 말입니다. 무협이라니 덕후가 아닌 이상 얼마나 이색적이고 생소하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분야입니까?



#2. 장르 가이드로서 이 책은..


   읽은 계기나 의도가 뭔들 이 책이 읽으면 재미지냐 아니냐가 핵심인데, 재미가 5할에 유익함이 3할, 생소함 1할에 지겨움 1할 정도 다양하게 섞인 책입니다. 나름 장르 가이드로서의 역할은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책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책은 서문, 정의와 구성, 하위 장르 분류, 무협소설의 역사, 무협소설의 현재, 작법 한 작은 술 정도에 몇 작품 소개하는 부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항상 정보나 이론을 담고 있는 책은 서론을 무척 신경 써서 읽는 편인데, 전체 내용의 요약이 담겨있기도 하고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 쓰여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어떤 책을 읽을 때 시간이 없으면 서문만 읽어도 반은 이해하고도 남는다는 생각입니다. 역시나 이 책도 서론에 웹 소설의 정의부터 흐름과 현주소, 그리고 이 책이 만들어진 과정 등을 짧게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저에게 가장 유익했던 부분은 "1장 무협소설이란 무엇인가?" 파트였습니다. 무협소설이 무, 협, 중원, 과장의 네 가지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는 설명은 무척 간결하고 이해하기 쉽고 흥미로웠습니다. 그중 항상 의아했던 게 바로 "중원"의 문제였는데, 중국 무협은 그렇다 치고 한국 무협은 왜 한국이 배경이 아니라 중국의 중원이란 말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중원"이 지정학적으로 중국의 어느 곳인가를 지칭하기는 하나 사실은 상상의 공간의 의미가 더 크다는 것이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왜 중원이어야만 하는가에 대해서, 현대에 와서 중원이 왜 설득력이 떨어지는 지도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저도 어릴 때는 우리나라는 몰라도 중국은 워낙 넓고 외진 곳도 많으니까 거기 어디매에는 엄청 수련을 해서 거의 날다시피 해서 돌아댕기는 영감들이 분명 있을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을 했었으니까 말입니다. 여기서 제가 그 내용을 써버리면 이 책을 사서 읽을 이유가 없어지기 때문에 요 정도만...


   그리고 덕후들이 무협을 좋아하는 이유이자 많은 독자들이 외면하는 이유인 과장에 대해서 잘 설명해주고 있는데 무협소설에서 과장, 즉 구라가 빠지면 재미가 없겠죠. 일단 막 날아다니고 물 위도 지나가고 막 바위도 날려버릴 만큼 강하고 그러지 않습니까? 이런저런 과장법은 무협소설의 핵심 요소입니다. 중원이라는 배경과 같은 맥락에서 과장은 드넓은 중국 어딘가엔 이런 일이 가능한 고수가 숨어있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에서 막연한 가능성을 생각하고 받아들일 부분이 있어서 설득력이 있기도 했지요. 한나절이면 중국 어디든 날아가는 현대에는 물론 말이 안 되는 일이죠. 그래서 코웃음을 당할 가능성이 있고 외면받을 수 있죠. 하지만 판타지보다는 훨씬 현실적이지 않습니까? 후훗...


   내용과 상관없이 이 책은 문장도 매끄럽고 이해하기 좋은 쉬운 용어로 설명하고 있어 편안히 읽을 수 있습니다. 후반부엔 웹 소설 작가를 지망하는 분들에게 보내는 편지 같은 글이 실려있는데 역시나 만만치 않다, 결국은 니가 알아서 해야 한다,라는 이야기 이기는 하지만 오랜 경력의 작가가 보내는 따뜻한 격려 같은 글이 좋았습니다.




#3. 생소함과 지겨움에 대해


   전반적으로 무협이 무엇인지도 간단히 정리하고, 중국부터 시작한 무협의 역사와 주요한 작가, 작품들에 대한 다양한 정보도 얻게 되어 무척 유익했습니다. 그러나 역시나 살짝 우려했던 데로 별 다섯을 줄만큼 재미있다고만 할 수는 없었습니다. 장르적 생소함이 그 이유죠. 아마도 궁금해서 이 책을 접하는 대다수의 독자가 비슷하게 겪게 될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생소해요. 용어 중에는 한자어도 많고, 사자성어 같은 느낌의 단어도 많이 등장합니다. 이게 어쩔 수 없이 그들만의 용어를 쓰는 거거든요. 이를테면 생전 처음으로 교회에 갔는데 첨 보는 사람들이 형제님 자매님 하면서 샬롬~~ 하고 다가오면 바로 불편해지게 되죠. 이 책의 소개를 접하면서도 비슷한 느낌이 좀 있었습니다. '이건 맥락상 무슨 뜻인지 알겠는데 뭔 이런 용어를 쓰지?' 요런 생각이 사알짝 아주 사알짝 듭니다. 공력으로 치면 그저 일할 정도랄까?


   그리고 역사 부분은 좀 지겨워요. 아는 건 김룡뿐인데 중국의 구무협부터 신무협, 각종 장르에 속하는 대표 작가와 작품을 반복적으로 읽다 보니 어디 써먹을 때도 없는 정보구만.. 하는 생각도 들도 지겨움이 조금 있었습니다. 역사 부분은 가볍게 그런갑다 하고 읽으면 될 듯 합니다. 이런 부분만 아니었으면 아주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8할은 아주 좋고 2할 정도 어색함과 지겨움이 있는 고런 책입니다. 그래도 읽고 나니 가장 유익한 점은 이제 "무협이 뭐예요?" 내지는 "무협소설을 왜 읽어요?"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공기반, 구라고 반 섞어서 설명해 줄 정도는 될 거 같아 좋군요. 그리고 "무협소설 하나 추천해주세요"하면 추천해 줄 만한 소설이 몇 개 된다는 점도 아주 좋았던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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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한강 지음 / 창비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1. 울트라 권위로 무장한 소설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흥미로운 작품입니다. 맨부커상을 받지 않았다면 '독하고, 특이하고, 매력 있으나 대중적이지 않은" 작품으로 기억되었을 작품입니다. 수많은 국내 작가의 창의적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이 작품이 베스트셀러에 올라 부동의 판매 1위를 차지할 작품인지는 의문입니다. 이미 이렇게 많이 팔리고 있으니 할 말 없지만요. 마치 영화 "곡성"의 기현상을 보는 것 같기도 합니다. 누군지도 모를 맨 그룹과 부커님께서 한강 작가에게는 세계적인 작가의 명성을, 독자에게는 그녀의 작품을 찬찬히 읽어볼 기회를 주었으니 고마울 따름입니다.


   우리는 권위에 약합니다. 사실 이 정도 표현은 부족합니다. 권위에 매우 취약합니다. 나라밖에서 주어진 권위에 대해서는 놀랄 만큼 취약하죠. 저도 맨부커상 후보에 올랐다는 소식을 접한 다음 관심을 가졌으니 말입니다. 아마도 다들 비슷한 마음이겠지만 왜 맨부커상이 이 작품에 주목했는지 무척 궁금했습니다. 읽어보니 보편적인 문제를 한국적 정서와 환경에 맞게 잘 풀어낸 느낌입니다.


   "채식주의자"는 연작소설입니다. 채식주의자와 몽고반점, 그리고 나무 불꽃이라는 세 중편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중편들은 여주인공 "영혜"가 구심점 역할을 하고 사실상 소설의 메시지를 이어주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이 연작들은 "연작소설"이란 어떻게 구성되어야 하는 것인지를 보여주는 것처럼 잘 짜여 있습니다. 한편 한편 읽을수록 무릎을 탁... 치지는 않지만 '그렇구나...' 하고 놀라는 지점이 있어요.


  

#2. 어떤 방법으로도 해결이 어려운 트라우마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


   나름 평범하게 살던 "영혜"가 어느 순간 육식을 거부하고 급기야 모든 식사를 거부하고 나무가 되고 싶어 합니다. 굉장히 이상한 행동이고 극단적인 선택이라 주변 누구도 이해하지 못 합니다. 그녀의 가족들은 그녀의 선택을 받아들 일 수 없습니다. 그녀를 이해 못 하는 문제도 있지만 최소한의 건강을 유지하지 못해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는 상황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소설은 그녀가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한 원인을 어렴풋이 알려줍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반복적으로 받은 폭력입니다. 이는 직접적인 폭력을 당한 피해자로써 생긴 트라우마이기도 하지만 어릴 적 그녀를 물었던 개를 오토바이에 매달아 죽이고 그 고기로 잔치를 벌이는 아버지와 주변인들에 대한 잊지 못할 기억 때문이기도 합니다. 어린 시절 이런 자극적이고 난폭한 기억은 무척 위험한 폭탄처럼 가슴에 깊이 남기 마련입니다.


   한편, 가정폭력이 정말 무서운 이유는 피해자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기댈 곳이 부재하다는데 있습니다. 누구도 신뢰할 수 없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마치 자라면서부터 허리가 꺾여 옆으로 자라는 나무와 같습니다. 그러다가 뿌리째 뽑혀 넘어가게 되는 그런 나무 말이죠.


   모든 행동의 원인을 트라우마로 설명하는 변태 프로이트 형님이나 트라우마는 없고 핑계며, 오히려 개인의 의지에 달린 문제라고 주장하는 야들야들한 아들러 형님도 결국 이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개별적 주체의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못 합니다. 적극적으로 치료받고 어린 시절의 쓴 뿌리에서 벗어나 건강한 생활을 하는 사례도 종종 있겠습니다만, 대부분 그 문제를 죽을 때까지 안고 살아가기 마련입니다.

 

   주인공 영혜는 이 트라우마를 외면하고 피하는 선택을 합니다. 가만히 내면으로, 자신만의 동굴로 들어가려 하는 것이죠. 어떤 관점에서 보면 무척 적극적으로 대응한 것으로 볼 수도 있겠습니다. 선택하고 행동하는 건 적극적인 행동이죠. 그러나 그 결말이 정상적이고 보편적인 인간들의 삶의 모습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는 심연으로 숨어드는 행동에 더 가깝습니다.

​

   뇌리에 깊이 박힌 개고기의 영향인지 육식을 거부하는데 건강을 위한 선택이 아닌 정신적 문제다보니 지나치게 철저합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아예 식물이 되어 버리고 싶어 합니다. 나무가 되어 땅속에 머리를 묻고 홀로되려 합니다. 일상적인 "나"의 존재로는 이 트라우마를 해결할 방법이 없습니다.



#3. 정상과 이상 사이 선택하는 인간.


   주인공 영혜만 이런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 소설의 핵심이 되는 장면인 가족이 모두 모이는 자리에서 매우 정상적으로 보이던 영혜의 언니, 그리고 형부는 모두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몽고반점에서 나타나는 "그"의 예술적 열망은 지극히 비정상적입니다. 이 열망을 어떻게 해갈하느냐의 문제는 자못 심각합니다. 그냥 두 자니 삶이 무기력하고 깊은 우울로 빠져듭니다. 해결을 하자니 일반적인 사회의 도덕규범의 범위를 한참이나 벗어납니다. "그"는 결국 예술적 열망을 실현하고 그 결과로 정상적인 삶에서 내쳐집니다.


   영혜의 남편도, 언니도 모양새는 모두 다르지만 비슷한 문제를 안고 살아갑니다. 가정은 허울로 가지고 있으면서 사회 속에서 인정받고 안정된 위치에 오르기 위해 갖은 애를 쓰는 영혜의 남편도, 예술가 남편을 이해하려 애쓰며 꾸역꾸역 삶을 이어가는 영혜의 언니도 상처와 결핍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얼마나 건강하게 품고 가느냐, 어떤 형태로든 외부로 털어내느냐의 문제가 핵심입니다.

​

   우리는 모두 영혜나 영혜 주변 등장인물들과 비슷한 문제들을 안고 살아가는 존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따뜻한 가족과 친구와 주변 사람들로 인해 때로는 보듬고 때로는 잊고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참을 수 없는 고통으로 일탈하고 삶을 포기하는 "영혜"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자신은 그런 식으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녀의 주변에서 그녀로 인해 또 다른 고통의 늪에 빠지는 사람들이 반드시 있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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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은 오롯이 자신의 것임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몇 할 정도는 타인과 공유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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팡팡 2016-06-03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입니다. 제 견해와 비슷하군요! 잘 읽었습니다.

돈다돌아 2016-06-05 07:45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부족한 글에 댓글 감사드립니다. 팡팡님~~

데카당스 2016-07-10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채식주의자는 과거에 한번, 그리고 맨부커상 수상 이후 재구매하여 한번 더 읽었습니다.

영혜의 아픔과 공유되는 바가 있어서, 제게 감정적인 큰 파장을 몰고 온 작품이기도 하고요.

돈다돌아님의 후기를 보며 많은 부분을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돈다돌아 2016-09-15 10:52   좋아요 0 | URL
아, 저는 사실 소양이 많이 부족한데 읽어주시고 댓글 남겨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