뿔을 가지고 살 권리 - 열 편의 마음 수업
이즈미야 간지 지음, 박재현 옮김 / 레드스톤 / 201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1. 다르게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하는 책

 

   이름마저 간지나는 "이즈미야 간지"상이 쓴 책 "뿔을 가지고 살 권리"는 심리학 책으로 분류되어있습니다만 삶의 태도에 관한 책이라고 보는 편이 옳을 듯합니다. 소설에서도 가끔 인간 군상에 대한 심리묘사를 통해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볼 기회가 있기는 하지만 이런 류의 책으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효용이 바로 "사는 것", "삶의 태도" 등에 대해 고민해 볼 여지를 제공한다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제목이 독특해서 끌렸던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자 매력은 내가 속한 사회에서 그냥저냥 휩쓸려 어울려 살던 내 인생에 대한 참신한 시각을 제공함으로써 당장 내 인생이 어떻게 바뀌지는 않지만(인간이 원래 남의 말은 드럽게 안 듣습니다. 그냥 듣는 시늉만 하는 겁니다.) 한 번쯤 멈춰 서 생각해보게 한다는 것입니다. 인문서적이나 심리학 입문서 등에서 일반적으로 독자들이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핵이득이 이 정도가 아닌가 해요.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무척이나 의미 있는 책으로 기억에 남을 듯합니다.

 

 

#2. 내가 가진 뿔을 자르면 안 되는 이유

 

   한마디로 아무 생각 없이 남들처럼 살지 말자는 것이 저자의 핵심입니다. 원래 우리는 한 명 한 명이 독특하고 특별하고 이상하고 괴상한 개별적 인격체들입니다. 그렇게 생겨먹은 거죠. 우리는 제각각 이상하게 생긴 뿔을 이마에 달고 있어요. 유니콘처럼요. 그런데 이 뿔을 달고선 무리에 끼기가 힘듭니다. 이상한 변태 취급을 받으니까요. 손가락질 받으며 배척당해요. 사회가 정한 룰에 순응하고 그 무리에 끼려면 일단 내 멋대로 생긴 뿔을 잘라야 합니다.

 

"사회 곳곳에 다수파가 신봉하는 가치관이 스며들어 있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일종의 세뇌를 당하고 '스스로 느끼고 생각하는 것'에서 멀어진다. 뿔이 잘린 사람들은 처음에 느꼈을 거북함도 잊고 어느새 자신이 '보통'이기를 바라고 주위 사람이나 아이들에게도 똑같은 가치관을 전파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자신의 뿔을 잘라내고 보통이 되는 것이 곧 어른이 되는 것'이라는 세뇌가 점차 확대되어 간다. (중략) 그러나 나는 이것을 사회적 문제로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사회 제도상의 문제를 제아무리 해결한다 해도 개개의 인간에 침투해 있는 기본적 가치관이 변하지 않는다면 문제는 두더지 잡기 놀이처럼 다른 곳에서 다른 형태로 분출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힘써야 하는 것은, 인간이라는 생물의 근원적인 특성을 깊이 이해하고 '스스로 느끼고 생각한다'라는 기본에 맞게 살아가는 태도를 회복하는 일이다.' p.9

 

   이 책에 담긴 핵심을 잘 표현한 부분입니다. '스스로 느끼고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태도를 회복해야 진정한 자신만의 오리지널리티를 가지고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의견이죠. 어디까지나 저자의 의견에 지나지 않습니다. 맹목적으로 따를 필요는 없고,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고 사회 속에서 스스로가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이니 사회에 맞추는 것이 옳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계신 분은 그렇게 사시면 됩니다. 그냥 저자의 이런 의견이 얼마나 타당한지 책 한 권에 걸쳐 자세히 설명되어 있으니 읽어보고 한 번쯤 고민하고 생각해보는 정도는 해보면 좋겠습니다.

 

 

#3. 머리보다 마음의 이끌림대로 살아가는 것이 인간 본연의 모습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태도에 대한 부분이 이 책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면 또 다른 하나의 축은 개인 내부로 들어갔을 때, 현대 사회에 만연한 지성이 인간 본성을 통제하고 억누르는 것이 얼마나 부자연스러운 것인지에 대한 지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원래 '머리'보다 '몸+마음'이 훨씬 인간 본연에 가깝고 파워풀한 것인데, 어느새 우리는 머리로 모든 것을 통제하려다가 이상한 삶을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간 안에 있는 짐승 같은 사악함이 날뛰지 못하도록 철저히 이성으로 제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배워왔지만 그것은 완전히 엉터리다. 짐승 같은 사악함은 사실 이성에 의해 만들어진다. (중략) 인간의 '몸'과 '마음'이 본래는 알아서 적절한 판단을 하고 쾌/불쾌라는 신호로 자기 자신에게 좋은 것을 가르쳐준다는 말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인간은 그것을 믿지 않게 되었고, 오히려 '머리'로 반대의 명령을 내려 자연스럽지 못한 상태에 자신을 몰아넣게 되었다." p.70

 

   우리는 경험적으로 몸에 필요한 영양분이 부족하면 몸이 알려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어느 날 문득, '아, 소고기가 먹고 싶은걸?' 이런 식이죠. 그런데 그런 자연스러운 몸의 신호를 무시하고 통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건강이 눈부시게 좋아졌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는 겁니다. 어설픈 이성이 통제를 하려다 보니 오히려 개판이 된다는 것이죠. 마치 우리나라 정치처럼 말입니다. 이런 예는 식욕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나타납니다. 잠을 자는 시간과 일어나는 시간을 딱딱 정해놓고 지키려는 태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 사라는 게 다 그렇기도 하지만 어떤 것이건 자연스럽지 못함은 항상 좋지 못한 결과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우리 삶에 나쁜 영향을 미치죠. 왜 그럴까 고민하게 만듭니다. '열심히 사는데 왜 이렇지?' 이렇게 되는 거죠. 좋다는 거 악착같이 다 해보는데 왜 이모냥이지? 하고 머리를 쥐어뜯죠.

​​​

   적당한 선에서 균형 있게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것이 어떤 효율을 떠나서 "편안"하고 "인간다운" 삶을 사는데 더 적절하지 않느냐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 책은 이런 부분에서 상당 부분 설득력 있고 생각해 볼 만한 내용을 많이 담고 있습니다. 지금 시점에 한 번쯤 읽어보기에 좋은 책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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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머트리 ㅣ 히메카와 레이코 형사 시리즈 3
혼다 테쓰야 지음, 한성례 옮김 / 씨엘북스 / 2013년 2월
평점 :
절판


 

 

 

 

#1. 시리즈를 이끌고 가는 캐릭터의 힘


   일본 경찰 소설의 대표주자 혼다 테츠야는 제가 무척 애정 하는 작가 중 한 명입니다. 혼다 테츠야의 다양한 작품 중에 국내에서 가장 인기를 끈 작품이 바로 "스트로베리나이트"지요. 꽤나 많이 팔렸습니다. 혼다 테츠야는 스트로베리나이트를 시작으로 여형사 히메카와 레이코 시리즈를 여러 편 발표했는데, "시머트리"는 두 번째 작품 "소울 케이지" 이후 발표된 연작 단편집입니다. 전작 소울 케이지가 다소 무거운 느낌이었다면 이번 "시머트리"는 단편집답게 비교적 가볍게 읽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시리즈를 이어가는 중에 갑자기 단편집을 끼어 넣은 것이 이채로운데 가만 생각해보면 시리즈 전체의 흐름을 생각할 때 무척 현명한 선택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어차피 시리즈가 지속적으로 인기를 끄는 여러 요소 가운데 가장 중요한 부분이 바로 캐릭터이고 그중에서도 역시나 주연 캐릭터의 매력도 인 것을 생각하면 장편 두 편 이후에 단편집의 흐름이 괜찮다는 것이죠.


   시머트리에 실린 일곱 편의 단편은 주인공 히메카와 레이코의 입체적인 캐릭터를 잘 살려주는 내용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한 작품 한 작품이 마치 여주인공인 레이코의 여러 가지 성격을 이루는 요소들을 한 조각 한 조각 드러내주는 듯한 인상을 받게 되거든요. 혼다 테츠야쯤되는 작가가 촌스럽게 "여주인공인 히메카와 레이코는 정의감에 불타고 직감이 뛰어난 형사다." 뭐 이렇게 설명을 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리하여 캐릭터의 맛을 살리는데 혼신의 힘을 다하는 한 방편으로 다채로운 단편을 등장시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각 편마다 레이코의 성격적 특성이나 의외의 모습이 유독 한 가지씩은 부각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주인공의 팔색조 같은 매력이야말로 시리즈를 질리지 않고 지속적으로 즐겁게 읽어나가는 가장 큰 힘이 되는 것을 작가가 잘 이해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비단 주인공 레이코뿐만 아니라 주변 캐릭터들 역시 상당히 매력이 있습니다. 단편들이다 보니 같은 반 동료라든가, 앙숙인 다른 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다루어지지는 않아서 다소 아쉽지만 그렇기에 살짝살짝 드러나는 인물들의 묘사가 맛이 있어요. 지속적으로 레이코를 괴롭히는 간데츠 같은 매력적인 악역이 등장하지 않아서 극적 긴장감은 반감된 모양새가 있지만 이 단편집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읽는 재미가 있습니다.

 


#2. 직관으로 범인을 찾아가는 판타지의 맛


   시리즈 전체가 그렇지만 특히 이 단편집에 등장하는 다양한 에피소드들에서 여주인공 히메카와 레이코가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지켜보면 약간은 병맛입니다. 보통 경찰 소설은 주인공 경찰이 등장하고 난해한 사건을 여러 가지 조사를 통해서 조금씩 진실에 다가간다. 그리고 사건을 해결한다. 뭐 이런 식으로 흘러가야 되는 것이죠. 그런데 경찰인 레이코가 사건을 풀어가는 방식을 보면 뭐... 거의 감이에요. 그리고 그 감이라는 것이 결과적으로 다 맞아. 헐... 초등력자야... 안 봐도 다 알아. 그냥 왠지 내가 범인이라면 그랬을 거 같아...라며 맞춘다니깐요.


   문제는 혼다 테츠야가 얄밉게도 그런 이야기인데도 전혀 어색하거나 짜증스럽지 않게 천연덕스럽게 이야기를 이어가요. 읽히는 맛이 좋아. 이거 참.. 엄청 대단한 이야기는 아닌데 말입니다. 뭔가 매력이 있어요. 사실 엄청난 판타지 아닙니까? 누가 살인사건 조사를 감으로 합니까? 그냥 직관으로 때려 맞추는 게 어딨단 말입니까?라고 생각하는데 레이코가 바로 그렇습니다. 타율이 거의 10할 타자예요. 때려 맞추는 족족 결과적으로는 맞아들어가.. 그러니 조직 내에서 견제도 많이 받고 미움도 많이 받고. 그런 상황이죠. 그런데도 다행히 눈치도 없어요. 그러거나 말거나 자기 직관과 육감이 발동하면 참지를 못해요. 이런 전반적인 구도가 묘하게 독자에게 판타지를 제공합니다. 독특해요.


   이즈야마 간지의 "뿔을 가지고 살 권리"에 보면 이런 직관에 대해 표현한 문장이 재밌습니다.


"직관이라는 것은 이성을 뛰어넘는 통찰력을 가지고 있다. 눈에 보이는 것을 넘어 세상의 본질을 간파한다. 직관은 인간이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는 훌륭한 감각이다."


   이 표현이야말로 시머트리에 등장하는 히메카와 레이코를 가장 잘 설명해주는 표현이 아닌가 싶습니다. 레이코에 해당하는 세상의 본질이라는 것은 바로 "범죄자들의 심리"입니다. 레이코는 자신이 범인이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생각해서 범인의 행동을 유추해냅니다. 너무나도 정확하게 말입니다. 레이코가 범죄자의 그것과 비슷한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데, 이에 대한 자세한 에피소드는 인비저블 레인에서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참, 히메카와 레이코의 스트로베리나이트 시리즈는 영화화되기도 했고, 드라마로도 제작되었는데 제가 본 것 중에서는 가장 원작의 흐름에 충실한 영상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통상은 활자와 영상이라는 특성 차 때문에 원작과 드라마, 영화는 판이한 경우가 많은데, 이 시리즈만은 거의 원작과 다르지 않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작가가 영상미를 고려해서 창작을 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고, 영상 제작 시 원칙적으로 원작을 손상하지 않도록 신경을 많이 쓴 것 같기도 합니다. 같은 작가의 "지우" 같은 경우는 원작을 조금 보다가 뭔가 아니다 싶어서 접었거든요. 그러니 드라마, 영화를 찾아보시는 것도 좋은 방법 같습니다.


 

#3. 잊지않고 던지는 작가의 메시지


   혼다 테츠야는 사회파 추리소설 작가라고 하기엔 본격 경찰 소설의 특성이 너무 강한 작가인데도 결코 사건과 범인 그 자체에 집중하는 스타일은 아닙니다. 항상 사회 저변에 깔린 문제들을 들추거나 고민거리를 던져주는 특징이 있습니다. 장편의 경우는 사회에 만연한 문제를 끈질기게 파고드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번 단편들에도 다양한 사회적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비판하는 시각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단편이라 깊이 다루지는 못하지만 작가가 던져주는 화두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것이라 보입니다.


   다만 이 소설이 일본의 특징적인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보니 좀 공감이 안되는 부분도 있었어요. 우리랑 환경이 다르니까요. 아예 관심업는 문제도 있고 말입니다. 이 작품에서도 등장하는 소년법의 문제 등은 사실 좀 식상한 느낌이 있지요. 지나친 정의감이라는 작품에서 나타나는 부모가 자식의 악을 막기 위한 정의감으로 자신의 자식을 직접 처단하려 한다는 설정은 정말 이상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자식이 잘못해도 어떻게든 빼주고, 피하게 도와주는 것이 오히려 문제가 될 터라 남의 나라 이야기라는 것이 확연히 느껴졌던 부분이었습니다.


   앞에서 잠깐 언급한 "지나친 정의감"이나 "시머트리" 같은 작품에서는 법적인 한계나 구조적 모순, 사회적 불평등에서 기인한 처벌의 불합리성에 대해 특정 개인이 죄를 지은 자를 벌할 자격이 있는 것인가? 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어설프게 어느 것이 옳다고 편들기를 하거나 독자를 가르치려 들지 않는 점이 무척 매끄러웠습니다. 작품 안에서 가르치려 들지 않기 때문에 책을 덮고서도 가만히 생각해 볼 만한 여유를 누리는 것입니다. 이거 적자니 끝도 없고... 읽을만한 재미는 충분한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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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에서
김상묵 지음 / 모비딕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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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적 상상과 문학적 문체의 조우가 환상적입니다. 국내 SF의 새로운 출현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작가의 상상과 구체적인 설정, 인문학적인 내용전개가 눈에 띄는 작품입니다. 다소 잔잔하게 진행되는 면은 호불호가 예상되지만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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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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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을 쓴다는 것...

 

   제가 하루키 슨상의 에세이를 좋아하는 이유는 누가 뭐래도 글을 잘 쓰기 때문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호불호도 많고 늘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작가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은 단편, 장편소설은 물론 에세이까지 언제나 그 만의 오리지널리티가 있습니다. 소설은 소설대로 에세이는 에세이대로 하루키의 글을 읽는 맛이 있어요. 이를테면 대한민국에 노래 잘하는 사람은 지겨우리만큼 넘쳐나지만 가왕 조용필 사마의 노래를 들으면 '아, 조용필이구나!' 반응이 자동으로 나오는 것과 같죠.

 

   글이라는 게 누구나 원하는 데로 표현할 수 있지만 잘 다듬어진 음악처럼 특유의 리듬이 갖추어져 있지 않으면 편안하고 즐겁게 읽기가 의외로 쉽지가 않아요. 저는 대체로 입에서 나오는 데로 뱉듯이 막 쓰는 편인데다가 글이 좀 길고 장황하죠. 생겨먹기를 그렇게 생겨먹은데다가 딱히 프로페셔널도 아니고 해서 이 나이에 뭐 그냥 생긴 대로 살기로 했습니다만 SSG 읽으면 SSG 읽히는 글을 쓴다는 것은 어지간해서는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하루키 슨상이 재즈에 심취한 것도 이 양반이 전문적으로 글을 쓰게 된 것과 무관하지 않은 듯합니다. 제가 일본어도 모르고 영문으로 책을 읽을 만큼 영어를 잘 하는 것도 아니라 번역본 말고 원문의 문장감을 느끼기는 어렵지만 번역된 글을 읽어도 무척 편안한데다가 마치 대화를 하는 듯이 무리 없이 읽어지는 것은 그만큼 쉽고 좋은 문장을 구사한다는 의미겠지요. 그리하여 하루키 슨상의 에세이가 항상 그랬듯이 옆집 아저씨의 수다를 듣는 듯한 느낌으로다가 편안하게 읽었습니다. 다만 이번 에세이의 경우는 기존에 접했던 에세이보다는 내용이 조금은 더 무겁기는 했어요.

 

 

#2. 하루키식 에세이 쓰기라는 것...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글을 잘 쓴다는 것은 참으로 부러운 일입니다. 그러고 보니 노래를 잘 부르는 것도, 악기를 잘 다루는 것도 그러네요. 세상에 모두 모두 부러운 것 투성이입니다. 하루키식 에세이 쓰기처럼 써보자면 이렇게 되겠습니다.

​

 "저 같은 경우는 질투를 잘 하지 않는 편입니다. '그 양반은 그 양반대로 노래를 잘하고 또 저 양반은 저 양반대로 악기를 잘 다루는 참 좋겠어.. 나야 뭐 생긴 대로 사는 거지.' 정도에서 멈추죠. 누군가 기분 나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그러니까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다지 부럽지는 않습니다. 저는 저대로 또 잘하는 게 있으니까요."

 

   대충 이런 느낌의 글들이 끊임없이 반복됩니다. 엄청 쿨하다고 계속 우기면서 쿨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얘기도 중간중간에 끼워 주면서 분명 뭔가 변명 같은데 본인이 아니라고 하니 변명이라고 단정 짓기는 좀 뭐하고 그래도 뭔가 계속 굳이 말하는 거보니 변명 같기도 한 내용으로 계속 채우고 있어요. 그러니까 "나는 괜찮다. 나는 괜찮다니까... 문단에서 나를 욕하던데, 상을 못 탄다고 무시하던데, 사실대로 말하면 나는 진짜 괜찮다... 나는 정말 괜찮아..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아. 정말 신경 쓰지 않는다니깐.. 오해할까 봐 얘기하는 건데 나는 정말 괜찮아요~~" 이런 내용 말입니다. 계속 읽다 보면 이런 스탠스가 좀 웃기기도 하고 참 독특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하루키식 에세이는 그래요. 다 읽어본 것도 아니고 일반화하기는 무리가 있지만 제가 느끼기엔 "쿨하지만 쿨하지 못해 미안한 동네 아저씨의 고백" 같은 겁니다. 그래서 자랑 같기도 하지만 아닌 것도 같은 이야기도 많고 말이죠. 엄청 고생했다고 우기면서 또 까이꺼 별거 아닌데 뭐라고 하기도 하고 웃깁니다. 그래서 재미있어요. 하루키식 에세이의 매력은 여기에 있습니다. 좀 애쓴다는 생각도 들면서 피식피식 웃게 만듭니다. 저 대단한 하루키 슨상이 말이죠.

 

 

#3.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라는 것.

 

   근래에 참 많이 느끼지만 소설가라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정말 일반화가 불가능한 독특한 사람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디 내놔도 동질감을 가지긴 힘든, '무리 아닌' 무리가 아닌가 싶어요. 문단에 속해서 어떤 소속감을 누리는 사람들은 개중 독특함이 좀 덜한 사람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말이죠. 서로 서로를 따돌리기도 하고 절대적으로 고독자이기도 한 묘한 직업이죠. 우리나라에서 소설가로 밥벌이를 한다는 것은 어떤 일보다 어려운 일이기도 하고, 그래서 매력이 있지만 선뜻하기 힘든 직업이기도 합니다.

 

   하루키 슨상의 지적처럼 소설가만큼 진입장벽이 낮은 일도 없기는 합니다. 하지만 진입장벽이 낮은 직종은 어디나 경쟁이 드럽게 치열하기 마련이고 소설가도 역시나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궤도 오르기란 드럽고 드럽게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아주 잠깐 생각해봤던 작가라는 직업을 애당초 포기했습죠. 저는 포기가 번개처럼 빠르거든요. 어디 가서 내세울 만한 저의 장점입니다. 쓸데없이 고집을 부리지 않아요. 게다가 가만 보면 저는 상당히 규칙적이고 예상 가능한 일상을 영위하죠. 큰 틀에서 모양새가 몇 번 변하기는 했지만요. 루틴한 것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작가들은 하루키 슨상같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규칙적으로 생활하는 작가는 그다지 많은 것 같지 않아요. 감정적으로 섬세하기 때문에 칼같이 규칙적으로 생활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어릴 때는 출퇴근을 안 해서 작가가 무척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했는데, 가만 생각해보면 출퇴근이 없는 직업이 정말 지옥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루키 슨상은 드럽게도 규칙적으로 작가 생활을 이어가고 있지만 "미스터리를 쓰는 방법" 같은 책에서 등장하는 수많은 작가들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작가마다 다들 제각각 자신만의 독특한 방법으로 글을 쓰고, 퇴고하는 것입니다. 정답도 없고 표준도 없는 소설가라는 직업은 분명 타고난 자질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더욱 견고하게 하게 됩니다. 여튼 누가 뭐래도 충실한 자신만의 삶을 살아내고 있는 하루키 슨상이 참으로 부럽군요. 오늘은 뭔가... 뜬구름 잡는 소리를 계속하는 기분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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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집
기시 유스케 지음 / 창해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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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1. 사이코패스를 다룬 20년전 하드코어 호러 소설

 

   기시 유스케의 "검은 집"은 블로그 이웃님들께 무서운 소설을 추천해달라고 부탁드렸을 때 "샤이닝"과 더불어 압도적으로 많은 분들이 추천해주신 작품으로 한마디로 독자들에게 오랜세월 검증된 무시무시한 작품입니다. 역시 잘 안 읽은 장르를 접할 때는 그 분야의 레퍼런스부터 접하는 것이 좋은 것 같습니다.

 

   소설 속에서 사이코패스를 본격적으로 다룬 작품이 언제 얼마나 있었는지 찾아보고 싶지만 매우 귀찮으므로 역시나 그리 오래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하기로 합니다. 왜냐면 20여년 전에 쓰여진 이 작품에서 사이코패스를 다루는 뉘앙스는 "사이코패스라는 것이 있는데, 믿기 어렵겠지만 정말 그러하다." 뭐 이런 느낌이거든요. 작금에 와서 사이코패스가 작품에 전면적으로 등장한다 하여 "그게 뭐야?"라는 반응을 보일 독자는 거의 없겠지요. 그런 면에서 보면 이 작품은 나름 최신 트렌드를 공부해서 준비하는 작가의 노력이 엿보이는 작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본에는 공포물이 나름 다양한 장르로 성행하는 편인 듯한데, 우리나라에서는 그리 선호하지 않는 분야가 호러 자체이기도 하지만 그중에서도 "목 댕강 피 철철"류가 아닌가 싶습니다. 오히려 갑자기 훅 나타나서 놀래는 "전설의 고향"류의 호러가 더 잘 통하는 분위기인데, "검은 집"은 전반적으로 "목 댕강 피 철철"쪽에 가깝습니다. 물론 주인공이 궁지에 몰리는 피 말리고 쫄리는 느낌이야 충분히 좋지만 역시나 잘근잘근 잘라내고 썰고 피도 쪽쪽 뽑는 그런 하드코어 쪽에 주력함으로써 사이코패스의 무시무시함을 알리려는 목적성이 강합니다.

 

   당시 대중들에게는 익숙하지 않는 소재이자,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 여지가 큰 문제를 다룬 것으로 작가의 센스가 돋보이기도 하고, 해당 분야에 대한 철저한 준비와 사례연구가 대단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2, 나는 내가 더 무섭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의아했던 부분이랄까? 그것은 바로 제 자신이입니다. 그렇습니다. 마치 주인공 신지가 사이코패스를 죽이고서도 전혀 죄책감을 느끼거나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처럼 많은 분들이 무시무시하다고 추천해주신 이 작품이 왜 이렇게 안 무섭던지요. 중반까지는 지루하지는 않았지만 생명보험사기라등가 이런저런 문제에 대한 일본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에서 흥미를 느끼기는 했지만 솔직히 호러소설이라는 느낌이 전혀 없었습니다.

 

   중반이 지나면서 슬슬 한사람 한사람 죽어나가면서도 후덜덜하거나 막 잔인하다는 느낌보다는 공포영화에서 전형적으로 느끼는 멍청이 주인공 증후군에 대한 속 터짐 증상이 나타나더군요. '아, 미친놈. 편지를 굳이 왜 써? 거기서 아는 척을 왜 하냐고.. 굳이 거길 왜 들어가?' 뭐 이런 거 있죠. 원활하게 호러스러운 분위기와 스토리를 이어나가기 위해 현실세계에서는 절대로 하지 않을 만한 짓을 주인공이 척척한다는 겁니다. 그냥 모른척하고 외면하면 되는데 굳이 나서서 사건의 현장으로 달려가는 것이죠. 마치 각본을 보고 움직이는 것처럼요. 이부분이 속터져가지고 무서운지 어떤지 그닥..(나도 사이코패스 기질이 있는 것인가?) 다만 마지막 결말 부분에 주인공이 사이코패스에게 쫓기는 장면에서는 심장이 제법 쫄깃해졌습니다. 주인공이 이긴다는 거 다 알고 보면서도 무서우면 꽤나 무서운가다잉.

 

 

#3. 대단한 필력, 교훈은 적당히...


   작가들이 글을 쓰기 전에 너무 공부를 많이 하면 안 됩니다. 기시 유스케는 초보 작가들이 실수하는 것처럼 심하지는 않았지만 아무래도 살짝 사회파와 계몽주의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왔다 갔다 비틀거리는 듯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캐릭터들을 통해, 스토리를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거나 어느 정도 연출된 모습이라 할지라도 독자가 고민할 것들을 던져주는 정도가 적당하다고 봅니다. 우리가 인생의 놀라운 교훈을 얻자고 호러소설을 읽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까 말입니다. 


   이 소설에는 전반적으로 사이코패스를 인정할 것인가? 사회에서 경리해야 하는가? 과연 사회에 해악을 미치는 존재는 누구인가? 등등의 문제들을 놓고 다양하고 심도 있는 고찰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작가가 고민했던 것들을 지문으로 막 쏟아내는 정도의 최악의 실수는 하고 있지 않지만 주인공과 등장인물의 대화와 논쟁 등을 통해 조금은 지나칠 정도의 교훈을 던져주려 하는 태도를 보입니다. 대단히 필력이 좋아서 '이 정도는 할 수 있지' 하고 넘어갔지 안 그랬으면 '뭘 자꾸 가르쳐?'라며 짜증이 꽤나 났을 듯합니다. 


   독자들을 상대로 쉽게 설명해둔 사이코패스에 관한 연구서적이라든가, 심리학 입문서라든가 교양서적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범죄학에 대한 책도 많고요. 누가 이 책을 읽으면서 사이코패스에 대한 사회학을 연구하거나 강의를 듣거나 윤리학을 따지고 싶어 하겠습니까? 그런 부분이 조금 절제가 되었다면 훨씬 읽기 편하고 받아들이는 자유도가 높았을 것인데 살짝 아쉬웠습니다. 모쪼록 교훈은 적당히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꼰대의 지름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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