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머트리 히메카와 레이코 형사 시리즈 3
혼다 테쓰야 지음, 한성례 옮김 / 씨엘북스 / 2013년 2월
평점 :
절판


 

 

 

 

#1. 시리즈를 이끌고 가는 캐릭터의 힘


   일본 경찰 소설의 대표주자 혼다 테츠야는 제가 무척 애정 하는 작가 중 한 명입니다. 혼다 테츠야의 다양한 작품 중에 국내에서 가장 인기를 끈 작품이 바로 "스트로베리나이트"지요. 꽤나 많이 팔렸습니다. 혼다 테츠야는 스트로베리나이트를 시작으로 여형사 히메카와 레이코 시리즈를 여러 편 발표했는데, "시머트리"는 두 번째 작품 "소울 케이지" 이후 발표된 연작 단편집입니다. 전작 소울 케이지가 다소 무거운 느낌이었다면 이번 "시머트리"는 단편집답게 비교적 가볍게 읽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시리즈를 이어가는 중에 갑자기 단편집을 끼어 넣은 것이 이채로운데 가만 생각해보면 시리즈 전체의 흐름을 생각할 때 무척 현명한 선택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어차피 시리즈가 지속적으로 인기를 끄는 여러 요소 가운데 가장 중요한 부분이 바로 캐릭터이고 그중에서도 역시나 주연 캐릭터의 매력도 인 것을 생각하면 장편 두 편 이후에 단편집의 흐름이 괜찮다는 것이죠.


   시머트리에 실린 일곱 편의 단편은 주인공 히메카와 레이코의 입체적인 캐릭터를 잘 살려주는 내용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한 작품 한 작품이 마치 여주인공인 레이코의 여러 가지 성격을 이루는 요소들을 한 조각 한 조각 드러내주는 듯한 인상을 받게 되거든요. 혼다 테츠야쯤되는 작가가 촌스럽게 "여주인공인 히메카와 레이코는 정의감에 불타고 직감이 뛰어난 형사다." 뭐 이렇게 설명을 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리하여 캐릭터의 맛을 살리는데 혼신의 힘을 다하는 한 방편으로 다채로운 단편을 등장시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각 편마다 레이코의 성격적 특성이나 의외의 모습이 유독 한 가지씩은 부각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주인공의 팔색조 같은 매력이야말로 시리즈를 질리지 않고 지속적으로 즐겁게 읽어나가는 가장 큰 힘이 되는 것을 작가가 잘 이해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비단 주인공 레이코뿐만 아니라 주변 캐릭터들 역시 상당히 매력이 있습니다. 단편들이다 보니 같은 반 동료라든가, 앙숙인 다른 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다루어지지는 않아서 다소 아쉽지만 그렇기에 살짝살짝 드러나는 인물들의 묘사가 맛이 있어요. 지속적으로 레이코를 괴롭히는 간데츠 같은 매력적인 악역이 등장하지 않아서 극적 긴장감은 반감된 모양새가 있지만 이 단편집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읽는 재미가 있습니다.

 


#2. 직관으로 범인을 찾아가는 판타지의 맛


   시리즈 전체가 그렇지만 특히 이 단편집에 등장하는 다양한 에피소드들에서 여주인공 히메카와 레이코가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지켜보면 약간은 병맛입니다. 보통 경찰 소설은 주인공 경찰이 등장하고 난해한 사건을 여러 가지 조사를 통해서 조금씩 진실에 다가간다. 그리고 사건을 해결한다. 뭐 이런 식으로 흘러가야 되는 것이죠. 그런데 경찰인 레이코가 사건을 풀어가는 방식을 보면 뭐... 거의 감이에요. 그리고 그 감이라는 것이 결과적으로 다 맞아. 헐... 초등력자야... 안 봐도 다 알아. 그냥 왠지 내가 범인이라면 그랬을 거 같아...라며 맞춘다니깐요.


   문제는 혼다 테츠야가 얄밉게도 그런 이야기인데도 전혀 어색하거나 짜증스럽지 않게 천연덕스럽게 이야기를 이어가요. 읽히는 맛이 좋아. 이거 참.. 엄청 대단한 이야기는 아닌데 말입니다. 뭔가 매력이 있어요. 사실 엄청난 판타지 아닙니까? 누가 살인사건 조사를 감으로 합니까? 그냥 직관으로 때려 맞추는 게 어딨단 말입니까?라고 생각하는데 레이코가 바로 그렇습니다. 타율이 거의 10할 타자예요. 때려 맞추는 족족 결과적으로는 맞아들어가.. 그러니 조직 내에서 견제도 많이 받고 미움도 많이 받고. 그런 상황이죠. 그런데도 다행히 눈치도 없어요. 그러거나 말거나 자기 직관과 육감이 발동하면 참지를 못해요. 이런 전반적인 구도가 묘하게 독자에게 판타지를 제공합니다. 독특해요.


   이즈야마 간지의 "뿔을 가지고 살 권리"에 보면 이런 직관에 대해 표현한 문장이 재밌습니다.


"직관이라는 것은 이성을 뛰어넘는 통찰력을 가지고 있다. 눈에 보이는 것을 넘어 세상의 본질을 간파한다. 직관은 인간이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는 훌륭한 감각이다."


   이 표현이야말로 시머트리에 등장하는 히메카와 레이코를 가장 잘 설명해주는 표현이 아닌가 싶습니다. 레이코에 해당하는 세상의 본질이라는 것은 바로 "범죄자들의 심리"입니다. 레이코는 자신이 범인이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생각해서 범인의 행동을 유추해냅니다. 너무나도 정확하게 말입니다. 레이코가 범죄자의 그것과 비슷한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데, 이에 대한 자세한 에피소드는 인비저블 레인에서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참, 히메카와 레이코의 스트로베리나이트 시리즈는 영화화되기도 했고, 드라마로도 제작되었는데 제가 본 것 중에서는 가장 원작의 흐름에 충실한 영상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통상은 활자와 영상이라는 특성 차 때문에 원작과 드라마, 영화는 판이한 경우가 많은데, 이 시리즈만은 거의 원작과 다르지 않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작가가 영상미를 고려해서 창작을 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고, 영상 제작 시 원칙적으로 원작을 손상하지 않도록 신경을 많이 쓴 것 같기도 합니다. 같은 작가의 "지우" 같은 경우는 원작을 조금 보다가 뭔가 아니다 싶어서 접었거든요. 그러니 드라마, 영화를 찾아보시는 것도 좋은 방법 같습니다.


 

#3. 잊지않고 던지는 작가의 메시지


   혼다 테츠야는 사회파 추리소설 작가라고 하기엔 본격 경찰 소설의 특성이 너무 강한 작가인데도 결코 사건과 범인 그 자체에 집중하는 스타일은 아닙니다. 항상 사회 저변에 깔린 문제들을 들추거나 고민거리를 던져주는 특징이 있습니다. 장편의 경우는 사회에 만연한 문제를 끈질기게 파고드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번 단편들에도 다양한 사회적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비판하는 시각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단편이라 깊이 다루지는 못하지만 작가가 던져주는 화두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것이라 보입니다.


   다만 이 소설이 일본의 특징적인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보니 좀 공감이 안되는 부분도 있었어요. 우리랑 환경이 다르니까요. 아예 관심업는 문제도 있고 말입니다. 이 작품에서도 등장하는 소년법의 문제 등은 사실 좀 식상한 느낌이 있지요. 지나친 정의감이라는 작품에서 나타나는 부모가 자식의 악을 막기 위한 정의감으로 자신의 자식을 직접 처단하려 한다는 설정은 정말 이상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자식이 잘못해도 어떻게든 빼주고, 피하게 도와주는 것이 오히려 문제가 될 터라 남의 나라 이야기라는 것이 확연히 느껴졌던 부분이었습니다.


   앞에서 잠깐 언급한 "지나친 정의감"이나 "시머트리" 같은 작품에서는 법적인 한계나 구조적 모순, 사회적 불평등에서 기인한 처벌의 불합리성에 대해 특정 개인이 죄를 지은 자를 벌할 자격이 있는 것인가? 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어설프게 어느 것이 옳다고 편들기를 하거나 독자를 가르치려 들지 않는 점이 무척 매끄러웠습니다. 작품 안에서 가르치려 들지 않기 때문에 책을 덮고서도 가만히 생각해 볼 만한 여유를 누리는 것입니다. 이거 적자니 끝도 없고... 읽을만한 재미는 충분한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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