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 서점의 크리스마스 이야기
에드 맥베인.로런스 블록 외 지음, 오토 펜즐러 엮음, 이리나 옮김 / 북스피어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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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이 책에 관심을 가진 이유가  서너 가지 정도 됩니다. 일단 기본적으로 단편집을 다른 분들보다 좋아하고 선호하는 편이고, 저자에 제가 애정 하는 87분서 시리즈의 에반 헌터, 매튜 스커드 시리즈의 로렌스 블록이 이름을 올리고 있어서입니다. 또한 서점에 대한 이야기는 항상 관심이 가기 마련이고요. 마지막으로 이 책의 역자가 이리나 씨라는 점을 들 수가 있겠습니다.

   그리하여 이 책을 읽게 되기는 했지만, 사실은 읽기 전에 걱정이 좀 앞섰습니다. 이런 형태의 미스터리 작가들이 뭔가 의기투합해서 단편집을 낸 책들을 읽고 크게 좋은 기억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책도 역시나 좋은 취지와 아름다운 제작 스토리에 비해 정작 담겨 있는 이야기들이 재미가 없으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을 할 수밖에 없었죠. 객관적으로 재미가 없다고 평가될 작품들이냐를 떠나 제가 취향에 좀 안 맞거나 재미있게 읽기 어려울 수가 있거든요. 왜냐하면, 이런 식의 기획인 경우 유명 작가들이 나름 다른 작품을 패러디하거나 자기 작품의 유명 등장인물을 살짝 비틀어서 독자에게 재미를 더하는 방식이 많고, 이 책의 경우는 현존하는 서점과 서점 주인이 등장하다 보니 서점도 모르고, 서점 주인도 전혀 모르는 독자가 이 책의 원래 의도만큼 재미를 느끼기는 사실 어려움이 많기 때문이죠.

   그러거나 말거나 이 책을 읽어보니 기우였습니다. 읽으면서 허리를 접을 만큼 재미가 있거나, 눈물이 앞을 가려 효..라고 할 만큼 너무나 슬프거나, 감동적이지는 않았지만, 단편집답게 소소하면서도 이외로 허를 찌르는 미스터리 특유의 재미만큼은 잘 살아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몇 개 안 읽었지만 유사한 기획 단편집 중에서는 가장 재미있게 읽은 책이 되었습니다.

   사실 위에 설명한 걱정 외에도 위험부담이 한가지 더 있었는데, 제 기억으로는 북스피어 마포 김 사장님의 취향은 저와 상당히 안 맞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이었습니다. 여기에 한가지 변수가 있다면 개인적으로 역자인 이리나 씨에 대한 믿음이랄까? 안목에 대한 신뢰랄까? 그런 것이 있어 위험부담을 상쇄시킬 수 있었더랬지요. 책 한 권 읽으면서 뭐 이런 소리를 늘어놓는지 스스로도 웃기기는 하지만 책 한 권 완독하기가 더럽게 어려운 현실 속에 살아가는 중년탐정.. 아니 중년 독자는 책장에 쌓인 수많은 책들, 그리고 소리 소문 없이 사들이 근래의 신간들, 게다가 이 또한 지나치다 싶을 만큼 구매한 이북들 중에서 독서의 우선순위를 정하기가 쉽지가 않기 때문에 한 권 한 권 읽기가 끝나면 다음 책을 고르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모든 작품들이 한결같이 좋고 마음에 든 것은 아니었지만, 대체로 상당히 좋았습니다. 그중에서도 유독 제 마음을 끈 작품을 꼽아 보자면 토마스 H. 쿡의 "크리스마스가 남긴 교훈"이었는데, 이 짧은 단편에 감동도 있고 실제로 교훈도 있고 등장인물의 사연도 살아있어서 무척 좋았습니다. 토마스 쿡이 상당히 훌륭한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고, 마지막 역자 후기에 역자도 저와 같은 작품이 좋았다고 적어두셔서 역시 취향은 소중하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나랑 비슷하면 훌륭하다는 생각이 참 훌륭해...

   크리스마스가 한참 지나 읽기를 끝내다 보니 이건 내년 크리스마스 즈음에 리뷰를 쓸까 하는 생각도 했으나 며칠 이상 지속되지 않는 휘발성 기억 시스템을 가진 저로서는 무리무리무리 데쓰!! 우리나라도 점점 특징적인 전문, 소규모 서점이 엄청 늘어나는 추세에 있는데, 책방 주인은 물론이고 출판사와 작가, 역자들까지 다 함께 힘을 모아 서로서로 지켜주는 "느슨한 연대(계속 써먹을 예정임)"를 해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 드는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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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정말 나일까? 초등 저학년을 위한 그림동화 6
요시타케 신스케 글.그림, 김소연 옮김 / 주니어김영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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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아.. "이게 정말~~" 시리즈가 초등 저학년용 그림동화인데 어쩐지 딱 저랑 잘 어울린다는 느낌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초등학생처럼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네, 진짜 그런 거였네. 어쩐지.. 뭔가 살기가 힘들다 했어..

   이 시리즈 중 핵심이 아닐까 싶은 책이 이번 책 "이게 정말 나일까?"인데, 이거 초등 저학년이 내용을 알고 고민하며 읽기엔 좀 어렵지 않으려나? 싶게 철학적인 내용이 있습니다. 물론 그 나이에 맞게 받아들이도록 재미있고 기발한 부분이 충분히 가미되어 있지만 말입니다.

   스토리는 내가 편하려고 로봇을 하나 구해서 나를 대신해 내일을 하도록 로봇에서 "나는 어떤지?"를 설명해주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내 역할을 대신 맡길 정도로 나를 자세히 설명하자고 보니 보통 일이 아닌 것이죠. 논리적이고 객관적으로 나를 설명해서 나를 대신하도록 한다는 일이 생각보다 막막합니다. 나라는 존재가 그렇게 딱 떨어지는 특징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니니까요.

   우여곡절 끝에 이런저런 설명을 해주었는데 엄마 앞에서 로봇이 한마디를 하자마자 "넌 누구니?"라는 반응. 바로 실패!!! 이런 내용인데 그 과정에서 주인공이 자신을 돌아보고 정의해보려고 노력하는 부분이 무척 흥미롭습니다. 예의 저자의 놀라운 상상력과 표현력이 빛을 발합니다.

   짧고 간단한 책인데 내용도 알차고 그림도 재미집니다. 스윽 훑어보기 적당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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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링 - 제22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도선우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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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치밀하고 성실하게 세상을 움직이는 질서에 대한 이야기

   도선우 작가의 등단작 "스파링"은 일종의 이중구조 같은 구조의 이야기입니다. 외연을 형성하고 있는 주인공 장태주의 불우한 성장기와 성공, 그리고 몰락에 관한 이야기만 보면 진부하기 이를 데 없는 스토리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 와중에 이런 진부한 스토리텔링이 심지어 재미있어서 대단하기도 하지만, 이 소설의 진가는 장태주의 독백과 은인 "담임"의 목소리 등으로 전달되는 내연의 메시지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내연의 이야기는 기실 저자가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가치관이자 세계관의 정수가 담긴 엑기스와도 같습니다.

   저자는 이야기의 시작부터 인간들이 무리를 지은 세상을 굴리고 있는 철벽과 같은 힘의 논리에 대해 설명합니다. 참으로 징하고 성실하고 디테일하게 차근차근 설명하고 있어요. 이게 소설인가? 사회인문학서인가? 싶을 정도로 우직하게 설명합니다. 

   그래서 어떤 이야기하고 있는지는 책을 꼼꼼히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책을 읽지 않으신 분들이라 하더라도 저자 도선우의 또 다른 분신 블로거 "까칠한 비토씨"의 리뷰를 꾸준히 접하신 분들이라면 어느 정도 익숙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실 이 소설에 담긴 사회학적 관점에서의 정의와 불의에 대한 개념은 어쩌면 "까칠한 비토씨"의 2000개의 리뷰를 통해 산발적으로 주장해오던 그만의 철학이 정제되고 집약된 결과물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2. 가진 자에 의해 움직이는 세상에 속한 개인이 할 수 있는 선택

   도선우 작가는 책을 통해 가진 자가 짜놓은 촘촘한 착취 구조에 대해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 개개인이 별생각 없이 그 착취 구조에 동참하고 있음을 상기시켜줍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개인으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차근차근 들려줍니다.

"때론 생각이라는 걸 안 하고 살면 그게 제일 편한 것 같지만, 또 막상 자기 생각이라는 걸 하지 않고 살면 명확히 제 세계를 구축하고 사는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질서에 휩쓸리게 돼. 문제는 그들이 세운 질서가 네가 원하는 질서와 다를 수도 있다는 거야. 너한테 무조건 불리하고, 너한테 무조건 억울한"

   그렇습니다. 일단 도대체 이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왜 이렇게 점점 이상한 구조인지 생각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개, 돼지"소리를 안 들으려면 우리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생각 없이 일방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바꾸기 어려워집니다. 이미 우리가 겪고 있는 이 세상처럼 말입니다.

"그걸 알고 뒤늦게 상황을 바꿔보려고 해도 그땐 쉽지 않아.
처음에 잘 생각해서 행동했을 때보다 적어도 만 배 이상은 힘이 들겠지."

   문제는 있는데 이걸 해결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 문제 상황에서 어떤 사람은 어쩔 수 없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주장하고 어떤 사람은 뒤집어엎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각자에 입장이 상충되거나 다양하게 전개되어 문제의 핵심을 숨고, 서로 다른 주장끼리의 대립으로 변질되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가 그러하듯이 말입니다.



"저마다 각자의 의견이 있지 않겠습니까? 하고 누군가 말해버리면 그게 곧 정답이 되고 마는 상황이지. 자, 그러면 이런 상황에서도 계속 득을 보고 있는 사람을 누굴까? (중략)
문제는 그대로 남아 있고, 결과도 하나 달라진 게 없는데, 저마다의 의견이 존재한다는 이상한 결론 하나로 결국 문제 자체는 사라져 버리고 말았어. 마술처럼."

 

   다원주의를 들먹이며, "당신도 옳고 나도 옳고, 당신도 좋은 사람, 나도 좋은 사람, 우리는 좋은 사람. 행복하다 행복해~~" 이런 식으로 본질을 흐려버리는 방식입니다. 그래서 본질은 감추고 계속 착취구조는 유지됩니다. 저자는 일단 개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생각"이라는 것을 해야 한다고 계속 주장합니다. 거의 다리끄댕이를 붙잡고 애원하는 수준으로 생각이라는 것을 좀 해야 하지 않겠냐고 읍소해요. 주인공과 '담임'의 대화로 써놓았지만 사실 "제발 이 양반들아, 생각이란 것을 좀 하란 말이야!"라는 한 문장으로 읽히는 대목들이 길게 늘어져 쓰여있습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거 쓰다가 거의 울먹였겠는데..' 싶을 정도의 뉘앙스란 말이죠.

"그렇다면 이 문제의 문제는 뭘까? (중략)
맞아, 이 또한 충분히 생각하지 않아서 벌어진 일이야. (중략)
너희가 내는 돈이 모여 너희를 강제하는 집단이 유지된다는 거야.(중략)
그러니까 그들의 질서를 유지하고 있는 건 그들이 아니라 너희들이라는 말이야.(중략)

앞으로 시간이 흐르면 흐르는 만큼 더 확고한 질서가 자리 잡힐 거야. 그러면 과연 그때도 그들이 돈 천 원으로 모든 걸 다 편하게 해결해주겠다고 말할까? (중략)

아마 그렇지 않을 거야. 무언가 더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할 거야. 그리고 그게 꼭 금액이 올라가는 형식일는지도 알 수 없어. 뭔가 다른 미묘한 방식을 만들어내겠지. 그들은 그러기 위해 너희와는 다르게 끊임없이 생각이라는 걸 할 테니까."

   자, 여기까지만 해도 심각한 사태입니다만, 이 상태가 계속 진행된다면 어떻게 되느냐...제가 이 와중에 맛이 가는 부분은 바로 그다음 부분입니다.

"이미 부당한 질서에 순응한 너희들은 그 새로운 질서에도 곧 순응하게 될 거야. 그때도 그게 물 흐르는 듯이 순리대로 사는 거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고. 그렇지? 그러면 곧 네 보육원 후배들이 그 지역 중학교에 올라갈 즈음이면 천 원으로 끝나지 않는 시대를 살게 될 수도 있어. 자 그럼, 그 아이들이 그런 세상을 살게 되는 데에 너희의 책임이 있을까. 없을까?"

   이런 거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사회의 구조적인 착취에 대해 순응하고 눈을 감은 채 어쩔 수 없지라 하며 받아들이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의 아이들이 겪게 될 착취는 훨씬 더 강력하고 개인의 능력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악랄한 것으로 진화해 있을 겁니다. 우리의 아이들이 살게 될 세상이 무척이나 무시무시합니다.

   사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확고한 착취구조는 말하자면 새마을운동으로 "잘 살아보세~"를 외쳐가며 중동까지 가서 열심히 나라를 위해, 가족을 위해 일한 죄밖에 없는 우리 부모님 세대의 업적이자 그 결과물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부모님 세대는 그 공을 누구에게 돌립니까?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이라고 찬양한단 말입니다.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그들의 질서를 유지하고 있는 건 그들이 아니라 너희들"이라고 했던 설명과 정확히 일치하는 부분이 아닙니까? 이 나라가 이 정도로 발전한 것은 그 누구의 공도 아니라 바로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하고 희생적으로 열심히 일한 우리 부모님 세대 개개인의 공이란 말입니다. 이 업적을 지금 누가 차지하고 있습니까? 게다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또다시 누구에게 갖다 바치려고 자신의 투표권을 사용하고 있단 말입니까?

   우리가 생각 없이 포기하는 우리의 권리가 우리 다음 세대를 더욱 힘든 세상 속에 내던집니다. 결혼도 안한 저자는 앞으로 생길지 안 생길지 확실하지도 않은 자기 아이를 걱정하고 있어요. 그리고 우리의 아이들까지 걱정하는 오지랖을 부리고 있는 것입니다.


#3. 개인의 선택으로도 바뀌지 않는 세상, 느슨한 연대의 필요성

   심사위원을 포함해 아마도 이 소설이 전반부와 후반부의 톤이 다르다는 지적을 꽤나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자가 이 소설 전체를 두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생각해본다면 꼭 그렇지마는 않습니다. 그것보다는 후반부로 가서는 동일한 문제에 대해 좀 더 폭넓은 시각으로 방향을 모색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소설의 전반부까지는 고아에 아무 힘없고, 배경도 없고 사회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주인공의 처지에 빗대어 사회의 구조적 문제에 대해서 설명하는데 집중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천부적 소질을 깨닫고, 담임을 만나는 상황으로 국면이 전환되죠. 이는 개인이 자기계발을 하고, 좋은 스승과 교육기관을 만나 개인적 능력을 향상시키는 과정을 은유합니다. 우리가 살면서 스펙을 쌓고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라고 목놓아 말하는 것과 하등 다를 바가 없죠. 그리고 실제로 주인공은 자신의 실력을 쌓아 세계에서 최고가 됩니다.

   그렇다면 세계 최고가 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느냐? 소설에서 그의 인생에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다만, 친 가족과 같은 믿고 의지할 사람들이 생겼다는 것만이 그에게 유일한 위안이죠. 그 와중에 사회의 관심과 편견에 시달리고 순응하지 못하는 주인공은 폭발하고, 모든 것을 잃습니다.

   이 후반부의 이야기를 통해 저자는 무엇을 또 목놓아 부르짖고 싶었던 것일까요? 저자가 그 치밀하고 성실하고 디테일한 설명을 쏟아붓던 전반부와 전혀 다르게 사회의 부조리에 대항하는 개인의 인생사를 논하고 싶었을까요? 그럴 리가 없습니다. 이 양반 한 놈만 패는 스타일이 아니던가요?

   복서로 흥망을 거듭하는 후반부 이야기는 결국 한 개인이 자신의 능력으로 성공한다 하더라도 큰 틀에서 짜인 사회구조를 바꿀 수도 그 구조에서 벗어날 수도 없다는 것을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세상이 바뀌려면 개개인의 노력이 아니라 사회 구조 자체를 바꾸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제도적으로 뒷받침이 되는 방법 밖에 없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그만큼 나약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즉, 부정과 부패, 부조리를 목도하고 목소리 높여 욕하고 비난하지만 막상 그 개인을 그 위치에 데려다 놓으면 주어진 상황에서 결국 똑같이 부정한 행동을 하게 된다는 경험칙이 작용한 거라 볼 수 있습니다.

   저 또한 이러한 저자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리하여 구조적 변화, 저자가 가볍게 언급한 협동조합 등의 새로운 가능성. 저자가 정확히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느슨한 연대의 가능성에 대해 넌지시 말해주고 있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왜 "느슨한 연대냐?" 이 책에서 해결책, 대안에 대해서까지 자세히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앞서 언급한 인간의 나약함 때문에 쫀득한 연대를 만들어놓으면 또 그 속에서 누군가가 헤게모니를 잡고 연대를 좌지우지하는 병폐가 발생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누구도 일방적으로 타인을 구속하지 않는 느슨한 연대가 막연하지만 대안이 될 수 있는 것이지요. 아님 말고..


#4. 스파링이 끝났으면 실전 경기를...

   도선우 작가의 데뷔작 "스파링"은 실제로 작가가 소설가로 세상에 나서는 스파링 같은 책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스파링만 하다가 실전에 못 나가고 주저앉을 수도 있습니다. 산다는 게 그런 경우가 많으니까요. 여튼, 스파링만 드럽게 많이 한 것 같으니까 아마도 더욱 강력해진 실력으로 경기를 치러 나가겠지요. 이번 작품은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압축적으로 많은 이야기를 쏟아낸 느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다른 작품들을 통해 이 책에 담긴 액기스와 같은 저자의 생각들이 좀 더 디테일하게 차근차근 풀어나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외연에 다양한 모양을 입히겠지요.

   또한 이번 책에서 다 담아내지 못한 내용들이 꽤나 있어 보이는데, 이를테면 신자유주의 시대의 문제점 같은 것은 "신자유대교"라는 지나치게 대놓고 지은 듯한 상징물"로 드러내주고 있지만 더 나아간 사고의 결과물은 실려 있지 않아요. 아마도 일종의 속편 같은 이야기로 다뤄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일 최근에 저자가 관심을 많이 기울이던 부분 중에 한 부분이 "차세대 인공지능과 인간"이런 부분인데 이런 문제는 SF 같은 형식으로 담아도 좋을 주제입니다. 앞으로 계속해서 작품 활동을 해 나가고 가진 생각들을 잘 펼쳐 낼지 여부는 결국 독자들이 얼마나 저자의 책을 선택해주느냐의 문제일 텐데, 이미 너무 노장이라 어떨지... 다행히 소설이라는 것은 몸으로 하는 것은 아니라 나이가 들어도 더 좋은 작품을 써내는 작가가 여럿 있어 걱정은 안됩니다만,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들기 마련이어서 헬스는 계속하셔야 될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제 충분히 꼰대력을 드러낼 나이가 되셨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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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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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카렐 차페크의 로슘의 유니버셜 로봇(R.U.R)을 너무 흥미롭게 읽어서 희곡이라는 이 작품에 관심이 갔습니다. 1920년에 쓰인 로슘의 유니버셜 로봇은 오래된 만큼 허점을 많을지라도 상당히 중요한 통찰이 있어서 결과적으로는 감탄하며 읽었거든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인간"은 희곡스럽기도 하고, 희곡적 성격을 띤 소설이라고 해야 할 것도 같고, 상당히 애매한 구성입니다. 이 이야기가 전개되는 공간이 전혀 이동 없는 한정된 공간이라 연극으로 올리기에는 딱 적합한 형식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그냥 대사로만 이어지다가 끝이 나는 이 희곡 같은 소설, 소설 같은 희곡은 죄송하지만 제 입장에서는 읽고 난 후 별다른 감흥이 없었네요.

   나름 재미있게 읽기는 했는데, 밑도 끝도 없는 설정 속에 남녀 주인공의 캐릭터나 태도도 그다지 매력이 없었을뿐더러, 읽으면서 뒷이야기가 전혀 궁금하지도 않았습니다. 대충 예상되는 결말이 있었고, 뻔한 이야기로 마무리가 되었군요. 마지막의 반전은 없느니만 못했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접근이 독특하다는 정도는 인정해줄 만 합니다.

   두 사람의 대화로 우리 인류가 살아 마땅한가에 대한 문제를 다루게 되는데, 딱히 깊은 통찰이나 촌철살인과 같은 대사도 없었을뿐더러 하나 마나 한 결론까지 너무 평범했습니다. 좋은 설정을 잘 살리지 못한 느낌이네요. 그러거나 말거나 많은 분들이 이 작가를 사랑해주시니 저 한 사람쯤 별로라고 해도 큰 무리는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만, 내용이 짧았던 것은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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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만에 신혼여행
장강명 지음 / 한겨레출판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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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적당한 거리의 필요성에 대해...

   사실 제가 장강명 작가를 싫어하지는 않습니다. 이 분의 책도 가능하면 꼬박꼬박 읽는 편이고, 거의 다 샀으니 우수고객이기도 합니다. 늘 기본 이상은 해주는 작가기도 하고요. 최근작 "우리의 소원은 전쟁"도 재미지게 읽었습니다. 그래서 차기작도 기대하고 있는 중입니다.

   장강명 작가의 첫 에세이인 이 작품은 엄청나게 적나라한 내용들이 담겨있어요. 아내와의 연애 스토리와 가족 이야기, 그리고 뒤늦게 신혼여행 형식으로 다녀온 여행기입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 기억을 남기기 위해 책을 쓰신 건가 싶기는 합니다.  

   그런데 에세이는 읽으면서 의문이 좀 들었습니다. '나는 왜 이 에세이를 읽어야 하지?' 이런 의문이 계속 남는 글이었어요. 그냥 편안하게 재미있는 에피소드로 받아들일 만 했으면 그런 생각이 안 들었겠죠. 그냥 편히 재미있게 읽기에는 너무 일방적으로 깊은 일상이었어요. 좋게 말하면 솔직한 것인데, 제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불편했어요. 서로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을 만났는데, 보자마자 자기 속 이야기를 막 하면 이게 뭔가 싶고 꺼려지고 그런 감정이 들게 마련이죠. 이 책이 바로 그런 케이스였습니다. 독자들의 관음증을 만족시켜줄 생각이었다면 성공적이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작가의 첫 에세이고, 강연이나 사인회 등이 아니라면 대다수의 독자와 어쩌면 첫 만남이라고도 할 수 있는 책일 텐데, 너무 훅 들어온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면대 면의 만남은 아닐지라도, 책으로 만나는 독자의 입장을 배려한다면 조금은 격식을 두는 태도였다면 어땠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그건 이분 스타일이 아니니 싫으면 중이 떠나라 식이 되겠지만 말입니다. 저는 그랬다는 겁니다.


#2. 나의 가치관을 전달하는 태도에 대해...

   이 책이 정말 희한한 게, 너무 구차하다 싶을 정도로 적나라한 실생활이 묘사되고 있어요. 그리고, 장면 장면을 디테일하게 묘사하거든요. 그런데 특정 장면에서 뜬금없이 폭발적으로 작가의 생각을 쏟아냅니다. 그것도 '나는 이 문제에 대해 이렇게 생각한다.' 정도가 아니라 '보통 이 문제를 이렇게 접근하는 인간들이 있는데, 나는 싫다. 나는 이런 사람이고 이렇게 생각한다.'라며 자신의 생각을 비판적인 방식으로 담고 있어요. 아무 생각 없이 여행기로 생각하고 읽던 저는 당황스럽죠. '응? 왜 갑자기 발끈하는 거지? 어느 대목에서 이렇게 감정이 격앙되는 거야?' 이런 생각이 드는 겁니다.

   자주 밝히지만 자신의 생각을 상대방에게 전달할 때, 특히 상대방의 태도에 대한 비판과 수정을 요구할 때에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정서적으로 충분히 공감하고, 상대방이 나에 대해 신뢰하는 사이가 아닌 경우에는 나의 주장이 옳고 그름의 문제를 떠나 일단 거부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어, 니가 뭔데 그러는데?'라는 생각이 앞서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서 작가가 특정 시점에서 갑작스럽게 쏟아내는 비판적 시각에 입각한 본인 주장은 그런 관점에서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사실 작가가 일반적인 범주에서 약간 벗어난 태도로 세상을 살아간다고 분류할 수도 있기는 하지만 그러면 어떻습니까? 그건 작가의 선택이고 가치관이니까 말입니다. 그런데 작가의 삶의 방식과 가치관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불필요한 공격적 감정이 고스란히 저에게까지 전해지니 읽는 제 입장은 곤란한 겁니다. '응? 내가 뭐라고 한 것도 아닌데..'이런 느낌이 좀 들었거든요.

   에세이에 사실 묘사를 할 때나 자신의 생각을 전달할 때도 약간의 배려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단 말이야! 받아들이든가 말든가 나는 그래!"라는 태도가 마치 무척 쿨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보다는 오히려 세심한 배려가 동반될 때, 호감도 상승하고 책을 쓴 저자의 목적이 더 밝게 빛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해. 그러거나 말거나 지지하는 독자가 넘쳐나니 받아들이든가 말든가 마음대로 하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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