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의 킬링필드 - “나”와 “우리”와 “세계”를 관통하는 불평등의 모든 것
예란 테르보른 지음, 이경남 옮김 / 문예춘추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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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불평등, 그 무섭고도 불편한 단어는 킬링필드를 넘어선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킬링필드"는 캄보디아에서 벌어진 양민(지식인층 중심의) 학살 사건을 뜻합니다. 이 때 학살된 인원만 200만명 정도로 추산하며 이는 "킬링필드"라는 제목의 영화로도 제작되었습니다. 이런 희대의 무시무시한 사건을 뜻하는 단어를 "불평등"이라는 추상적이고도 모호한 단어에 떡하니 붙여놓으니 이거 뭘 의미하는지 궁금해질만 합니다.
 
   예란 테르보른의 [불평등의 킬링필드]는 제목에 붙은 단어의 강력함과 함께 표지 디자인의 꿀벌 색감이 저를 확 끌어당겨 선택한 책입니다. 제가 가장 사랑하는 온리, 올 옐로우에 심플하면서도 뜻이 명확한 기호와 제목 카피가 조화롭게 배열된 디자인이 너무 마음에 듭니다.
 
   사실 기본적으로 이런 류의 책은 사실 대중적이라고 할 수 없는 책입니다. 이 책을 읽은 저는 대중적이지 않은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기는 합니다만 제목부터 주제며 내용이 모두 대중들의 흥미를 끌기 보다는 불편함을 불러일으키는 것입니다. 누가봐도 "불평등"에 대한 담론이 담겨 있을 것이 뻔하고, 이 역사적, 사회적 불평등의 의미를 따져가다 보면 필연적으로 내가 처한 현실의 상황적 불평등을 생각하게 되고 그렇다고 당장 뭔가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극히 제한적이다보니 답답함만 가중시킬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에 이런 류의 담론은 쉽사리 결론도 없고 속만 터지게 될 거란걸 독자들이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에 만연해 있는 불평등에 대해 살펴보고 고민해 보는 것은 매우 유익하고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펼쳐든 이 책은 대학자 예란 테르보른의 폭넓고 깊이있는 통찰을 통해 세상속에 우리를 인식하는 이해의 폭을 넓혀주기에 충분하고도 넘쳤습니다.
 
   이 책의 제목이 [불평등의 킬링필드]가 된 데는 초반 첫 챕터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만연한 불평등은 실제로 "생명의 불평등"을 초래한다는 것입니다. 평등하지 못한 상황에 놓인 인간들은 흔히 말하는 "제 명"에 죽지 못하고 단명하게 되며 기본적인 생명력에 방해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를 개념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전 세계 곳곳의 사례와 실제 수치를 보여주는데 이 수치가 어마어마 하다보니 사실상 "킬링필드" 사건에서 생명력을 강탈 당한 피해자보다 더하면 더했지 모자람이 없다는 것이죠. 그리하여 [불평등의 킬링필드]라는 용어는 꽤나 적확하다는 것을 단박에 수긍하게 되는 것입니다.
 
 
#2. 인간 존엄의 모독, 불평등
 
   "불평등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모독이다. (중략) 불평등은 사회적 문화적 서열과 직결되어, 대부분의 경우 사회 활동에 참여하는 데 필요한 자원뿐 아니라 인간으로서 우리의 역량, 우리의 건강, 우리의 자존감, 우리의 자아의식을 손상시킨다."p9
  
   불평등은 극단적으로 단순화 시켜보면 인간들 사이의 일종의 "제로섬 게임"의 과정에서 파생되는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먹을 것은 정해져 있고 나는 많이 먹어야겠고, 오늘 뿐 아니라 내일도 먹어야 하니 비축을 해야하므로 모두가 먹을 양의 절반, 아니 전부라도 내가 차지해야겠다는 생각들의 결과물인 것입니다. 이 과정에 많이 가지는 사람과 못가지는 사람은 반드시 나타납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수많은 사람들 중 이 먹을꺼리의 대부분은 소수가 가져가게 됩니다. 이 비율이 심하면 심할수록 불평등이 높은 것입니다.
 
   많이 못 가진자의 입장에 주목해보면 여러가지 문제점이 발생합니다. 우선 생존자체에 위협을 받습니다. 생명을 정상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기회의 불평등이 발생하는데 이는 "생명력 불평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 제로섬 게임의 패자 입장에 놓인 못 가진자는 존엄성, 존중받을 권리, 자아를 개발할 권리 등 인격과 관련해 중요한 불평등 상황에 놓입니다. '먹을 것도 없는데 자아개발은 개뿔...' 뭐 이렇게 되는 것이죠. 이를 "실존적 불평등"이라고 부릅니다. 세번째로 기본적으로 먹을 것을 놓고 경쟁하는 그 자체가 행위자로서의 인간이 활동하는데 필요한 자원을 공평하게 제공받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를 "자원 불평등"이라고 합니다. 이 3가지가 인간의 근본적인 불평등의 종류라 할 수 있습니다.
 
   발생학적인 차원보다 불평등이 만들어지는 매커니즘에 초점을 맞추면 또 눈물이 앞을 가리는 슬픈 유형들을 만납니다. 첫번째 유형은 "거리두기"입니다. 달리기를 할 때 특정 계층은 저만큼 앞에서 출발하도록 해서 아무리 빨리 뛰어도 따라잡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죠. 인도의 카스트 제도가 가장 대표적인 거리두기의 예라 할 수 있겠습니다. 두번째 유형은 "배제"입니다. 이는 폐쇄적으로 차별과 독점화를 자행하는 상황을 말합니다. 우리 나라에서 최근에 경제적으로 어려워지자 기득권 세력이 청년계층의 사회진출을 방해하는 구조를 만들고 진입 문턱을 높이는 것으로 쉽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미 사회생활을 하는 계층이 자리 내주기가 두려워 새로운 계층의 진입을 배제하는 것이죠. 이는 진입계층에게는 심각한 불평등으로 작용합니다. 세번째는 "위계화"입니다.  작게는 조직 내에서 수직적 위계를 설정하고 위치상승이 어렵도록 조직화하는 것에서 부터 민족적/인종적/성별의 차이로 위계화하는 것 등을 모두 포함합니다. 마지막으로 "착취"가 있는데 이 착취라는 개념은 모든 불평등에서도 상당히 악질적인 불평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착취는 실존적 불평등을 확실하게 한쪽 끝으로 몰아붙인다. 다른 사람의 사랑과 존경과 감탄을 착취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누구나 알 고 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용할 뿐 그에 대한 답례로 주는 것은 거의 없는 것이 바로 착취다. (중략) 일반적으로 착취는 불평등 가운데에서도 최악의 형태로 간주된다."p80
 
   무엇보다도 불평등이 가장 나쁜점은 그 매커니즘 자체에 인간의 존엄을 훼손하게 되는 필연적 한계를 지닌다는 점이고, 그렇기에 그냥 사람 사는 곳에 당연히 따라오는 그 어떤 필요악 정도로 받아들이기에는 문제의 정도가 심각하다는 점입니다.
 
 
#3. 불평등, 극복은 가능한 것인가?
 
   그렇다면 이 더럽게도 열받는 불평등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가 결국은 중요한 문제로 다가옵니다. 불평등은 극복할 수 있는 문제일까요? 그래 쉬우면 왜 여지껏 해결이 안되었고, 갈수록 더 심해지는 것만 같이 여겨질까요? 저자는 불평등을 단번에 없앨 묘책을 말하지는 않지만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기본적으로 불평등은 사회적 구조물이기 때문에 해체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프랑스 혁명으로 대표되는 세계역사의 주요한 사건을 계기로 불평등이 크게 개선되고 여러관점에서의 평등화가 이루어졌다고 지적해 줍니다.
 
   불평등이 사라지는 중요한 전제조건은 불평등을 타파하고자하는 평등 세력이 존재하고 그 세력이 힘과 기술이 있을 때라고 합니다. 평등 세력이라하면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것이 과거 근로계층과 노조운동 등이겠지만 소수집단이나 최근의 동성연애자 모임 등도 이에 해당합니다. 이런 계층의 지속적인 운동이야말로 평등으로 가는 높고 긴 계단의 한계단 한계단 오름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이런 더딘 발걸음은 불평등 상태를 유지하기를 원하는 강력한 세력들에 의해 퇴보를 거듭하기 좋습니다. 계단을 오르는 속도보다 더 위쪽으로 계단을 만들어내는 속도가 훨씬 빠르다면 불평등을 극복하기는 커녕 점점 그 차이만 심해지는 상황이 발생하고 말 것입니다. 불평등의 종류와 지역간의 차이는 있지만 결국 불평등은 심화되어 가는 추세로 보여집니다. 근래에 보여지는 특징은 저자의 지적처럼 국가간의 불평등은 좁혀지고 있으나 국가내 계층간의 불평등은 심화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자는 평등을 향한 투쟁은 중산층이 평등을 위한 투쟁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다양한 불평등의 원인과 역사, 세계 여러나라의 생생한 사례와 객관적 정량화된 데이터로 설명하던 전개에 비해 해결책은 상당히 궁색한 느낌입니다. 대학자의 비교적 뜬구름 잡는 듯한 이상적인 해결책 제시는 아쉽기만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시도한 전세계적, 역사적,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폭넓은 리서치와 통계적 접근, 의미부여는 비교하기 힘든 가치를 가지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데이터가 많아 읽는 도중 약간 지루함도 있었고 특히 우리나라와 상관없는 세계 여러나라의 수치들은 그다지 와닿지 않는 한계도 있었습니다. 단기간에 쉬원하게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은 이미 읽기 시작할 때부터 인지하고 있던 바라 크게 아쉬워 할 일도 아니었지만 좀더 명확하게 방향이 제시되었다면 얼마나 통쾌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을 보면 저는 불평등의 계단에 그다지 높이 올라있는 입장은 아니라는 증거인 모양입니다.    
 
 
 
"민주주의는 완벽한 평등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시민들이 공동의 생활을 공유할 것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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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의 복합 세이초 월드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경남 옮김 / 모비딕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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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행(답사)와 사진을 사랑한 작가의 성향이 그대로 묻어나는 뺑뺑이 미스터리의 완성판
 
   익히 알려진대로 마츠모토 세이초옹은 사십대에 데뷰를 한 이후로 정말 인간인가 싶을 만큼 다작을 해내었을 뿐만 아니라 그 와중에 엄청나게 돌아댕기고, 사진도 전문가 수준을 찍어 재끼면서 수집한 정보들을 작품에 충분히 녹여냅니다. 정말이지 이 양반의 인생여정을 살펴보면 볼수록 기이하기 까지 합니다. 왜냐면, 어지간하게 독한 사람이라도 이렇게까지 악착같이 할까 싶고, 그러면서도 이렇게까지 독자적일수 있을까 싶기도 하거든요. 세이초옹의 대단함은 이런저런 여건 속에 탄생한 것이지요.
 
   얼마나 "쒜리"돌아 댕겼는지 본인만 다니는 것이 아니라 많은 작품 속에 주인공들을 온 일본 전역으로 뺑뺑이를 돌리는데... 완전 얼차려 수준으로 이리저리 정신 못차리게 막 굴립니다. 이런 형국이다보니 이 작품 [D의 복합]뿐 아니라 다른 작품에도 초장에 도표라든가, 지도가 제공됩니다. 일본인이거나 일본지리나 문화, 교통수단에 정통한 사람이 아닌 다음에야 자꾸 어딜 돌아댕기는데 어디가 어딘지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이야기에 집중하기가 힘든 것이지요. 그나마 지도라도 그려주니 그거라도 뒤적거려 가면서 '아~~ 여기구나.... 아, 이번엔 여기로 갔단 말이네...' 하면서 더듬더듬 읽어가는 것이지요. 이 와중에 지도에 없는 지명들이 추가로 등장하면 마... 돌아버립니다.
 
   일본 미스터리류를 많이 읽으신 독자님들은 아마 저보다 더 편히 읽으실 수 있으시겠지만 사실 저만해도 세이초옹 작품의 스타일을 어느정도 이해도 하고 익숙해져있는데다가 "세이초빠" 혹은 설정상 "세이초광팬"인 것으로 되어 있다보니 그럭저럭 참을만 했습니다. 게다가 상당히 긍정적 마인드와 넘치는 호의를 가지고 접근을 하게 되다보니 "뭐? 좋잖아? 이게 매력이지?"라고 대범하게 말할 수 있는 정신승리의 경지까지 올랐던 것이었던 것입니다.
 
 
 
#2. 엎친데 덮친격이라니 지명도 인명도 헤깔리는데 일본 전통 민속설화까지 엮었더냐...
 
   이미 언급한데로 세이초옹의 정보수집능력과 분석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왜냐하면 흔한 전문가들처럼 어릴 때, 소위 공부를 한창해야할 시기에 배우고 익힌 지식들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한이 맺혔는지(한은 한국 고유의 정서이건만...) 전통 민속설화도 모티브만 따온 것이 아니라 너무 들입다 팠는지 작품에 막 때려넣습니다. 고추뿌리고 후추뿌리는 양념수준이 아니라 미스터리반 민속설화반인 것입니다.  
 
   저처럼 설정상 "세이초빠"가 아니고서야 어느 누가 "아~~~ 미스터리소설에 절반을 일본의 지명과 민속설화 이야기가 지속적으로 나오니 너무 행복해~~~"라고 반응하겠습니까? 솔직히 좀 과했습니다. 한 1/3 정도만 하고 말았어야지요. 아예 대놓고 '나... 민속설화까지 엄청 조사했다~~~'라고 광고하시는 느낌입니다.
 
   참, 이쯤에서 진지하게 짚고 넘어가자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는 참 재미있었습니다. '이런 식으로도 쓰는구나' 하고 감탄하기도 했고, '역시 세이초옹이야~~~, 신선해~~~' 하며 즐거워 했으니까요^^.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아... 이러니까 한국에서 뜨지를 않지...'하는 생각도 동시에 했습니다. 너무 색깔이 짙어요.

 

 

#3. 최고의 작품 Vs 최악의 작품
 
   이 작품은 중반을 넘을 때까지도 미스터리로써는 뭔가 형태가 안 잡힐만큼 진척이 더딥니다. 전반 이후로 급격히 진척이 되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 임팩트 있는 사건도 흡입력 넘치게 매력있는 주인공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이 작품의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무명작가 "이세"와 뭔가 종잡을 수 없는 태도를 일관하는 편집자 "하마나카"는 둘다 이야기에 흠뻑 빠져들게 할만한 캐릭터적 매력은 사실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긴 이야기가 부드럽게 흘러가는 것을 보면 역시나 심심하게 끌고가는데는 타고난 세이초옹의 재능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 매력을 느끼기 시작하면 이런 이야기 전개가 조금도 심심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도 참 신기할 따름입니다.
 
   이 작품을 끌어나가는 주요한 키워드인 숫자 135와 35, 그리고 몇가지 사건의 단서들이 서서히 풀려나가기보다는 계속 미궁으로 미궁으로 들어가다가 '이거뭐 어쩌자는거지?' 정도까지 가야 막판에 한꺼번에 해소가 됩니다. 그렇게 결말이 풀어헤쳐지고나면 남는 반응은 두가지입니다.  '아~~~~ 이런 뒷이야기가 있어서 이렇게까지 이어졌던 거구나~~~'하는 반응과 '뭐 이래?'하는 반응이죠.
 
   그래서 좋게 표현하면 호불호가 갈릴 가능성이 극도로 높은 작품입니다. 세이초옹의 위엄에 눌려 무조껀 재밌다고 우기기는 조금 부담스러운 작품입니다. 세이초옹의 작품을 몇권 읽어보셨거나, 그의 작풍이 취향에 맞으시는 분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 만족하고 읽으신 여지가 많은 작품입니다. 하지만 익숙치 않으시거나 기대가 크신 상태로 읽으시다가는 중간을 넘기지 못하고 집어던질 가능성이 농후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분명 저에게는 무척이나 흥미롭고 매우 만족스럽게 읽힌 작품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고나니 불호쪽으로 손드실 분들이 꽤나 많겠구나 하는 걱정과 염려가 절로드는 작품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세이초옹이 작품이 제목 붙이는 재주도 엄청나시지만 "D의 복합" 이라는 표현이 있어보이는 것에 비해 본문에 언급되는 그 이유는 솔직히 억지스러웠습니다. 너무 갔다붙였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제목은 참 멋진데, 차라리 설명을 구차하게 안했으면 어떨까 싶습니다.
 
   또한 사회파 거장이라는 호칭답게 이 작품도 사회파의 색채가 강합니다. 결국은 왜 이런짓을 벌였느냐? 가 중요한 시사점이니까요. 이 작품의 결말에도 넌지시 나타나듯이 악한 짓을 저지른자는 그에 응당하는 벌을 반드시 받는 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또한 억울한 일로 인해 일생을 엉뚱한데다 쏟아붇는 사람들이 없는 세상에 되었음 좋겠습니다. 참, 일본은 신사가 참 많은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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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의 모험 셜록 홈즈 전집 3
아서 코난 도일 지음, 박상은 옮김 / 문예춘추사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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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원작을 알아야 수많은 패스티시 책, 드라마를 더욱 재미있게 즐길 수 있다?
 
   사실 저는 원작인 셜록 홈즈 시리즈를 제대로 읽지 않은 상태로 홈즈 패스티시 소설도 읽고, "셜록" 같은 드라마도 보았습니다. 책이건 드라마건 패스티시인 것은 유사한데 설정을 차용하느냐? 캐릭터를 빌려오느냐? 원작의 사건들을 거의 그대로 재해석하느냐 등등 여러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중요한 건 원작을 변형해서 새로운 창작을 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그 작품들을 감상하면서 원작을 모른다는 것은 변형과 재해석을 가하는 작가의 깊은 의도나 장치들을 거의 제대로 이해를 못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원작내용도 모른채로 읽거나 보게 된  패스시티 작품들이 의외로 재미가 있었다는 점은 그만큼 원작의 훌륭함을 반증한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리고 원작을 일부 읽고 난 지금에 와서는 당시 재미있게 읽었던 내용들이 사실은 숨겨진 재미의 대부분을 놓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앞으로는 원작과 어느정도 비교하며 즐기는 일이 가능할 듯 해 뿌듯합니다. 확실한 것은 원작을 알아야 수많은 변형된 작품들을 더욱 재미있게 즐길 수 있다는 점입니다. 
 
 
#2.  다양한 단편들을 통해 만나는 셜록홈즈와 왓슨 박사
 
    결혼을 하나 뭘 하나 왓슨은 역시 셜록을 쫏아다닙니다. 이번 시리즈는 1,2편 이후로 홈즈와 왓슨이 해결한 여러 기묘한 사건들을 기록해 놓은 사건 파일과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 땐 그랬지? 느낌입니다. 재미있는건 왓슨이 딱히 변한게 없다는... 결혼을 해도 외박도 막하고 돌아댕깁니다. 그 당시 영국 사회 풍토는 전혀 모르니까 당연한건지 흔히 있는 일이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뭐하러 저렇게 악착같이 위험한데 쫒아다니나 싶기도 했습니다. 물론 왓슨이 따라다녀야 이야기를 진행하고 기록도 하겠지만 말입니다.
 
   원작들에 녹아있는 홈즈는 상당히 신사적입니다. 영드 셜록의 영향인지 모르겠지만 상대적으로 너무 차분하고 예의 바르고 스마트합니다. 명탐정의 규칙 같은 책에 보면 탐정은 문제를 후루룩 풀고, 그 사이 계속 헛다리 짚는 경찰관이나 형사가 바보짓하고 뭐 이런 컨셉이 기본이라고 쓰고 있는데 헛다리 짚고 우기고 우월감을 드러내는 멍청한 짓을 하는건 사실입니다. 이 책 전체에서 나타난 홈즈의 태도는 그저 받아주고, 그게 아니라고 설명해주고, 문제를 해결한 공을 몽땅 형사들에게 넘기고도 화를 내지도 않습니다. 그렇다고 형사들이 능력이 없다고 비난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왓슨이 살짝 그런 태도를 취할 뿐이고, 마약에 괴팍한 성격의 셜록 홈즈를 사실상 찾기 힘들었습니다.  
  
 
 
#3. 여전히 어색한 홈즈와 그들을 통해 만나는 과거와의 조우
 
   이번 편에 실린 단편들을 읽어나가다보니 몇몇 장면들이 조그만 단편 책에서 읽었던 기억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어린 시절에 신기하다는 생각을 해가면서 읽었던 그 부분들이 생각나자 좋은 추억에 잠기기도 하고 정말 그땐 그랬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을 잘 안읽어서 그런지 읽었던 내용들에서 아주 단편적인 장면이나 누가 범인이었는지 정도만 생각이 나지 중간 과정은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 나온 대부분의 단편들을 어쨌거나 다 읽기는 했었다는 것은 생각이 나더군요. 책 드럽게 안 읽던 제가 읽었으니 뭐 셜록 홈즈의 위엄은 대단하기는 합니다.
 
   첫 단편 '보헤미안 스캔들'은 셜록 드라마에서 보고 아이린 애들러가 어떻게 묘사될지 무척 기대하고 읽었는데 의외로 내용이 단편적이고 풍성하지 못하더군요. 아이린 애들러에 대해 충분히 나오지 않아 아쉬웠습니다. '빨간 머리 연맹' 같은 이야기가 참 기똥차다 하는 생각을 하면서 아주 어릴때 흥미진진하게 읽었던 작품이었습니다. 조금 읽다보니 내용의 대부분이 기억이 나더라구요. 이 이야기의 내용이 여러 영화에서 차용되어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떠올렸습니다.
 
   '녹주석 보관' 같은 작품을 읽다보니 자연스레 어딘가 익숙한 설정인걸? 하고 생각했습니다. 기본적인 내용은 많이 다르지만 "보관이 망가져있고 그 현장을 들킨다"라는 장면 설정에서 문뜩 이전에 읽었던 조영주 사마의 "트위터 탐정 설록수"가 생각이 났습니다. 이 책에서 "협찬은 아무나 받나"파트의 내용이 바로 요 장면과 유사한 내용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러니까 트위터 탐정 설록수를 읽을 시점에서 이미 이 원작을 읽었더라면 이 단편에 대한 패스티시라는 걸 알고 좋아했을텐데 말입니다. 순서가 뒤집히긴 했지만 거꾸로 가도 만나기만 하면 반갑기는 마찬가지네요.
 
   셜록 홈즈 전집의 세번째 책인 "셜록 홈즈의 모험"은 셜록 홈즈의 주요 단편들이 알차게 담겨있어 무척 즐겁게 읽었습니다. 옛추억에 빠져들고 근래에 읽은 책들의 유사점이나 연관성을 찾아가며 읽으니 더욱 좋았습니다. 다음 권도 기대되고 있습니다. 참, 내용 자체만으로는 최근의 자극적인 작품들에 비해 좀 심심한 감도 없지 않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역시 고전, 원작, 대작의 위엄은 그런 단점을 가리고도 남음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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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화 - 꽃을 사르는 불
이경민 지음 / 노블마인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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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Five tool player

 

   야구에 Five tool player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야수의 능력을 평가하는 다섯 항목에서 골고루 좋은 자질을 갖춘 선수를 묘사하거나 평가할때 쓰는 표현인데, 타격능력(정확성), 파워(장타력), 수비, 송구(어깨힘), 주루 능력(스피드) 등의 5가지 항목입니다. 이 5툴 플레이어라는 평가가 중요한 것은  희귀성 때문입니다. 한 두가지 능력만 특출해도 야구선수로 대성할 수 있는데, 다섯가지를 두루 갖춘 선수는 정말 손에 뽑을 만큼 드물기 때문입니다. 예를들면 과거에는 시대를 풍미했던 이종범 선수가, 근래에는 5툴 플레이어하면 추신수 선수를 뽑곤 합니다. 중요한건 한정된 선수로 운영하는 야구에서 5툴 플레이어의 가치는 표현하기 힘들만큼 크다는 점입니다.

 

   장황하게 5툴 플레이어 이야기를 늘어놓은 이유는  [멸화 - 꽃을 사르는 불]의 이경민 작가가 바로 이런 5툴 플레이어 같은 자질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소설가에게 있어 5툴이 무엇이라고 딱잘라 말하기는 힘들겠지만 일반적으로 좋은 작품을 쓰는 작가들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랄까 자질이라면 아마도 플롯, 문장력, 서사, 소재, 캐릭터 등(아님 말고ㅋ)을 들 수 있을듯 합니다. 이 작가님은 첫작품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다방면에서 탄탄하고 안정감있는 작품을 탄생시켰습니다. 그렇기에 국내작가를 응원하는 입장인 저로써는 이 작품을 아주 즐겁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2. 생생하게 살아있는 캐릭터들과 그들간의 얽히고 설힌 관계

 

   [멸화]는 눈에 띄게 캐릭터 묘사가 잘 되었고, 그들 각각의 사연이 적절하게 잘 설명이 되어 왜 각각의 캐릭터가 서로 다른 이해관계와 동기속에 이야기를 움직여 나가는지가 설득력 있고 자연스럽게 이어진다는 점이 큰 특징입니다. 이를테면 박하와 우주라는 신인부부 작가의 데뷰작이었던 "나는 어제 나를 죽였다" 같은 작품에서는 같은 상황에 놓인 여러 캐릭터가 등장하고 이야기를 진행하면서 캐릭터별 과거를 천편일률적으로 몇단락에 걸쳐 기술하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는데, 독자로 하여금 이야기 전개와 캐릭터 설정이 무척 '서툴다'라는 인상을 남기게 됩니다. 이에 반해 [멸화]에서는 메인 캐릭터 들의 사연과 관계가 촘촘하고 쫀쫀한데다가 의외의 반전도 잘 숨겨져 있어 말그대로 "읽는 재미"를 잘 살려줍니다. 주연들의 말과 행동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는 건 결국 그만큼 캐릭터 설정이 잘 되었고 설정에 따른 묘사가 훌륭했다는 의미로 볼 수 있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호림'이나 '의준'같은 캐릭터가 무척 매력적이었습니다. 각각의 성격이나 행동들의 묘사가 무척 좋았고, 이 둘간의 미묘한 관계로 인한 긴장감도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또한 "기-승-전-멸화"까지 살얼음처럼 이어지는 그들의 관계와 결착이 작품전체의 생동감을 잘 살려주는 것으로 느껴졌습니다. 그외 각각의 인물도 개성이 뚜렷해서 '이 이야기를 영상으로 만나게 된다면 어떤 배우들이 맡게 될까?' 하는 생각까지 자연스럽게 들 정도로 캐릭터는 물론 그 관계를 무척 성공적으로 잘 살렸습니다. 

 

 

#3. 좋은 소재를 잘 살리는 구성의 탄탄함

 

   '한양 대화재'라는 사건은 독자들의 흥미를 끌기에 아주 좋은 소재라고 생각합니다. 조선이니 역사니 하면 벌써 손사레가 쳐지는 저같은 사람도 결국 읽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재난은 늘 그 소용돌이 속에 있는 인간에게는 극한의 상황과 긴장을 주기 때문에 스토리를 이어나가기 좋은 소재임이 틀림없습니다. 끊임없이 재난 영화가 제작되고 흥행에 성공하는 것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실 화재는 물난리 같은 재난에 비해 무척이나 잔혹하고 긴 상처를 남기는 재난입니다. 사람들의 무의식속에 굉장히 터부시하고 꺼리는 것이기도 합니다. 물에 빠지는 상황은 대부분의 독자가 마치 본인이 물에 빠진 것처럼 숨을 참으며 공감하기가 좋은 소재입니다. 평소에 물에 들어갈 일이 종종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화재같은 경우는 '아, 난 평소에 신체의 일부분이 타본 경험이 있지?'라며 생생하게 떠올릴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불에 데이면 화상을 남기고 조금만 심해도 목숨이 위태롭고 전혀 컨트롤이 안되는 강력한 그 특성 탓에 화재에 얽힌 이야기는 읽기가 참 불편한 것이 사실입니다. "리베라메"나 "타워" 등 화재를 소재로한 영화가 사실상 그리 크게 흥행하지 못한 탓도 저는 "불"에 관한 이야기 자체가 가지고 있는 한계와 기술적으로 유연하게 묘사해내기 어려운 점 등이 작용했다고 봅니다. 그런 관점에서는 이 작품은 심지어 조선시대 이야기 이므로 그 당시의 진화도구라던가 "멸화군"의 존재 등등 흥미로운 설정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영화화되면 얼마나 흥행이 될까 하는 의구심을 가지게 됩니다.

 

   이 좋은 소재속에 사건과 사건을 일으키는 모종의 배후세력에 대한 설정, 그들의 움직임과 그들을 파헤치는 소수이자 약자인 세력간의 충돌, 권력의 악행 등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벼슬아치란 것들은 어딜 가나 똑같았다. 잘한 것은 내 덕이고 못한 것은 남 탓이었다. 불을 끄기 위해 얼굴에 검댕이 내려앉도록 동분서주한 이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 듯 싶었다. 마음 같아서는 수총기를 저 잘난 입에 대고 한바탕 쏴주고 싶을 지경이었다. "보고는 수시로 받겠네. 참, 멸화군의 기강을 다시 잡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야."" p82 

 

   이런 식의 표현들 속에 나타나는 인간사를 관통하는 부조리가 전반적으로 권력 계층의 음모와 의도 때문에 고통받고 상처받는 서민들의 모습을 통해 잘 표현되었습니다. 참으로 인간사는 세상은 몇백년 전이던 지금이 시대건 별반 차이가 없나 봅니다. 끝까지 씁쓸한 마음으로 이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4. 기-승-전-멸화

 

   이 표현이 정확히 뭘 의미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무척 인상깊은 표현입니다. 이 작품을 생각하면 계속 이 표현이 머리에 맴돕니다. 아마도 결말의 강력함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소재도 훌륭하고 기본 스토리도 좋은데다가 그 스토리에 설득력을 부여하는 플롯도 잘 짜였습니다. 이야기 속에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각각의 캐릭터들이 생동감 넘치게 잘 살아있습니다. 신인이라는 생각이 전혀 안들만큼 문장 또한 유려하고 조선시대 이야기인 만큼 참신한 표현이 돋보이는 문장도 많았습니다. 다양한 관점에 완성도 높에 마무리된 [멸화 - 꽃을 사르는 불]을 통해 앞으로 이 작가의 새로운 이야기를 무척이나 기대하며 기다리게 해줍니다. "기-승-전-멸화"에서 또다른 "기-승-전-OO"이 빠른 시기에 출간되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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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와 아메리카인 김영사 모던&클래식
존 스타인벡 지음, 안정효 옮김 / 김영사 / 2011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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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존 스타인벡의 적나라함을 만나다. 그의 눈에 비친 미국과 미국인을 만나다.
 
   [아메리카와 아메리카인]은 존 스타인벡의 마지막 유작입니다. 저는 부끄럽게도 아직도 존 스타인벡의 작품을 하나도 접해보지 못해서 이 작가가 얼마나 훌륭한 작품을 써낸 작가인지 감이 없습니다만 이 저서 하나만으로도 저자의 기본적인 성향과 가치관, 세상을 바라보는 깊이 있고 폭넓은 안목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메리카와 아메리카인]은 사실 지루한 미국 역사 이야기가 아닐까 의심스러워 책을 펼쳐 읽으면서도 곧장 꿈의 나라로 인도하는 티켓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본문으로 들어가자 시작부터 미국과 미국인들에 대한 강렬하면서도 적나라한 평가와 비판이 가미된 이야기들이 쏟아졌습니다. '아, 이양반... 쎈데...' 이런 생각이 절로드는 내용이었고,  미국의 역사와 성향에 대한 이해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특히 뼈속까지 친미라며 권력과 부에 가까운 분들이 여전히 득세하고 있는 우리나라 현실을 생각해 볼때 타국민이 아닌 오리지날 미국인의 시각으로 쓰여진 자폭스러운 비평서의 내용은 참으로 통쾌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이렇게 통렬한 글을 전개하는 저자는 그러나 미국과 미국인에 대한 자신의 주장들이 모두 진리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저 견해이자 추측이자 추론일 뿐이고 그럴 수밖에 없다고 피력합니다.
 
"이것은 적어도 아메리카와 아메리카인들의 정열적인 사랑과, 호기심과, 짜증과, 그리고 약간의 분노가 빚어내는 시각이며 아메리카에서 직접 보고 들은 견해들이다. 그 까닭은 우리들이 지닌 과거의 갖가지 특성과 의견 충돌, 그리고 수많은 관심과 취향이 하나의 전체를 이루었으며, 그 총체에서 무엇인가 온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독특한 것이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것은 복잡하고, 역설적이고, 고집이 세고, 소심하고, 잔인하고, 시끄럽고, 형언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하고, 매우 아름다운 것. 아메리카다." p81
 
   그러니까 미국은 복잡하고, 역설적이고, 고집이 세고, 소심하고, 잔인하고, 시끄럽고, 형언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하고, 매우 아름다운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책 전반에 계속 미국의 역사, 문화, 인종 등의 흐름에서 부정적인 평가가 끊이질 않습니다.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갈수록 뭔가 좀 과했다 싶었는지 슬슬 부드럽고 좋은 쪽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슬그머니 내놓습니다. 이런 전개가 무척 흥미롭습니다. '이 할배가 막 쓰다보니 살짝 쫄으셨나보군'하는 생각이 들게 만들거든요. 그래서 단예님은 후반부로 갈수록 힘이 빠진다고 하신 모양입니다.  
 
 
 
#2 복잡다난한 미국의 특성과 미국문화 미국인에 대한 다양한 시각과 견해
 
   존 스타인벡의 [아메리카와 아메리카인]을 읽다보면 이 양반이 참으로 폭넓은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성향자체가 상당히 진보적이라는 사실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사용되고 있는 보수와 진보는 무언가 기본적인 정의에서 많이도 벗아나 있는 느낌이라 이 뉘앙스가 잘 전달이 되어질지 모르겠지만 존 스타인벡의 시각은 부드럽고 휴머니즘 넘치면서도 현실 체계에 대한 부정적 시각과 비판이 아낌없이 쏟아진다는 점에서 진보적입니다. 비판을 위한 비판이 아니라 진보를 위한 비판을 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스타인벡이 이 글에서 설명하는 미국의 여러가지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 다양한 인종이 모여 이룬 세로운 종족, 아메리카인
- 항상 불안정하고 불만으로 가득차고, 항상 갈망하는 민족이라는 편견을 듣는 아메리카인
- 400년이 넘는 나름의 역사를 가지고 노동과, 피 흘림과, 외로움과, 공포가 창조한 땅 아메리카
- 평등하게 태어나서 평화, 안락함, 안정, 그리고 사랑을 추구하는 아메리카인
- 발전에 밑바탕이 되는 필요와 빈곤을 통해 변화와 복합성을 촉진하는 아메리카인
- 아이들을 유별나게 우선시하는 아이병에 걸린 아메리카인
- 과거부터 땅따먹기에 열을 올렸던 땅 정복자 아메리카인
- 예술과 문화의 우수성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옮겨졌다고 믿는 자신감 넘치는 아메리카인
- 과거의 수많은 실수와 과오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가능성이 많은 아메리카인
 
   뭐 이정도 쯤 되겠네요. 가만보니 우리도 우리나라의 역사나 특성을 기술하면 뭐 이정도는 충분히 나오지 않을까요? 공무원식으로 작성하면 장점이 단점의 몇배는 되지 않을까 합니다.
 
   위와 같은 여러가지 특징을 기술해 나가면서 저자는 아메리카가 완벽하지도 완벽했던 적도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한때 들었던 '의롭다'라는 값지고 아름다운 자질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해줍니다. 또한 누구나 지적하는 미국의 전형적인 문제점인 물질만능주의에 대해서도 꼬집습니다.
 
"우리는 온갖 물건을 보유하게 되었지만, 그것들에 대한 사고의 방향을 정리하고 발전시킬 시간이 없었다." p279
 
이뿐 아니라 도덕의 문제를 비롯해 다양하게 산재되어 답이 없는 미국의 여러가지 총체적 난국에 대해 염려합니다. 그런 한편 이 글의 최 말미에 아주 적은 분량을 통해 아직까지 희망은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 희망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제시하는데는 실패한 듯 하지만 말입니다.
 
 
#3. 날것 그대로의 원문을 접하는 기회를 주는 것의 미덕을 생각하다.
 
   에 또... 어떤 유명한 가수가 있다고 칩시다. 이미 고인이 된 이 가수의 노래를 들으러 추모콘서트 장에 갔어요. 그런데 노래는 안들려주고 진행자가 나와서 계속 이 가수의 생애와 마지막에 남긴 곡에 대한 설명을 늘어놓습니다. 아마 진행자는 이 가수가 남긴 마지막 역작이 너무 난해하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노래를 듣고 오해하지 않고 더 잘 이해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것 저것 막 설명을 하는 모양새가 된 것 입니다. 
 
   추모콘서트에 온 사람들이 과연 이 가수의 마지막 유작곡을 감상하는데 도움이 되는 상황이었을까요? 아마도 그 곡이 어떤 상황 속에서 만들어진 것인지 주로 어떤 내용인지, 가수가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설명을 듣는다면 더 귀에 쏙쏙 들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정말 훌륭한 곡은 잡다한 설명이 아니라 곡 자체로 사람들에게 메세지를 전달하고 감동을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 진행자가 가타부타 말없이 유작곡을 먼저 들려준 다음, 그 곡에 대해 여러가지 설명이나 소회를 덧붙였다면 어땠을까요? 과연 어떤 진행이 듣는 사람 입장에서 더 유익한 진행일까요? 개인적으로 저는 후자의 경우가 더 적절한 순서라고 생각합니다.
 
   노래가 아니라 책이라고 해도 상황은 다르지 않습니다. 문학작품이 되었건 에세이가 되었건 작가가 남긴 작품 날 것 그대로를 번역해 전달해 주는게 무엇보다 우선이 아닐까 합니다.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느 정도까지 이해하고 소화하느냐는 독자의 몫입니다. 저자의 의도를 오해하더라도 그건 또 그 나름대로 각자의 수준과 취향에 따라 취사선택 될 수 있는 자유도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원하는 사람들은 작품을 읽고 보다 배경지식이 풍부한 평론가나 역자의 해제라던가, 후기 등을 추가로 읽으며 독서를 더 풍성하게 해나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 [아메리카와 아메리카인]은 초반 80페이지 이상이 역자의 해제로 이루어져있습니다. 그 이후 본문이 약 200여 페이지 정도 수록되어 있습니다. 초반 1/3 정도가 본 내용에 앞선 해제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역자의 의도는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저처럼 존 스타인벡에 대한 이해가 없는 사람에게 미리 어느정도 배경지식을 제공해 주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 책의 경우는 조금 지나치다고 느껴집니다.
 
   마치 "이 책은 이런저런 이유로 이렇게 이해하고 이런 관점에서 읽어야 되는 것이야"라고 제한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니까 말입니다. 저처럼 빈정이 잘 상하는 사람에게는 적절하지 않은 배치라고나 할까... 그냥 내맘대로 읽고 내마음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그리고 해설을 읽으면서 오해한 부분은 수정도 하고 더 풍성하게 이해하기도 하는 과정을 거치고 싶습니다. 그래서 아, 존스타인벡의 다른 작품도 읽어봐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본문을 보기도 전에 주의사항을 너무 과하게 전하는 느낌이 들어서 이건 좀 아닌데 싶었습니다. 참, 그런데 작품해제의 내용 자체는 참 훌륭했습니다. 다만 배치 순서가 좀 마음에 안들었을 뿐입니다.
 
 
#4. 끝으로
 
   저자는 그 많은 시간동안 다양하게 잘못을 저질러 왔던 미국과 미국인들의 과오를 처절하게 내놓고 평가하고 반성하면서도 미국인 특유의 자존심은 여전히 내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여러가지 문제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누구? 우리가 누구~~~~~~~~? 하며 자존심 한번 세우며 글을 마무리합니다. 전반적으로 미국이라는 나라와 다양한 인종이 뒤섞인 미국인에 대한 폭넓은 시각을 키울 수 있는 이 책은 흥미롭고 내용도 충실하며, 술술 읽기에도 무척 좋은 훌륭한 작품임이 분명합니다.
 
"우리들은 때때로 실패했고, 길을 잘못 들었고, 기운을 차리려고 멈추었고, 배를 채웠으며 상처를 치유했지만, 우리는 한 번도, 단 한 번도 뒷걸음질을 친 적은 없었다." p292
 
 
*PS : 이 작품의 대미를 장식하는 저 문장에서 왜 자꾸 상속자들의 마지막 문장이 생각나는 걸까요? 너무 흡사한데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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