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의 킬링필드 - “나”와 “우리”와 “세계”를 관통하는 불평등의 모든 것
예란 테르보른 지음, 이경남 옮김 / 문예춘추사 / 2014년 7월
평점 :
품절


 

 

 

 

#1. 불평등, 그 무섭고도 불편한 단어는 킬링필드를 넘어선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킬링필드"는 캄보디아에서 벌어진 양민(지식인층 중심의) 학살 사건을 뜻합니다. 이 때 학살된 인원만 200만명 정도로 추산하며 이는 "킬링필드"라는 제목의 영화로도 제작되었습니다. 이런 희대의 무시무시한 사건을 뜻하는 단어를 "불평등"이라는 추상적이고도 모호한 단어에 떡하니 붙여놓으니 이거 뭘 의미하는지 궁금해질만 합니다.
 
   예란 테르보른의 [불평등의 킬링필드]는 제목에 붙은 단어의 강력함과 함께 표지 디자인의 꿀벌 색감이 저를 확 끌어당겨 선택한 책입니다. 제가 가장 사랑하는 온리, 올 옐로우에 심플하면서도 뜻이 명확한 기호와 제목 카피가 조화롭게 배열된 디자인이 너무 마음에 듭니다.
 
   사실 기본적으로 이런 류의 책은 사실 대중적이라고 할 수 없는 책입니다. 이 책을 읽은 저는 대중적이지 않은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기는 합니다만 제목부터 주제며 내용이 모두 대중들의 흥미를 끌기 보다는 불편함을 불러일으키는 것입니다. 누가봐도 "불평등"에 대한 담론이 담겨 있을 것이 뻔하고, 이 역사적, 사회적 불평등의 의미를 따져가다 보면 필연적으로 내가 처한 현실의 상황적 불평등을 생각하게 되고 그렇다고 당장 뭔가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극히 제한적이다보니 답답함만 가중시킬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에 이런 류의 담론은 쉽사리 결론도 없고 속만 터지게 될 거란걸 독자들이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에 만연해 있는 불평등에 대해 살펴보고 고민해 보는 것은 매우 유익하고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펼쳐든 이 책은 대학자 예란 테르보른의 폭넓고 깊이있는 통찰을 통해 세상속에 우리를 인식하는 이해의 폭을 넓혀주기에 충분하고도 넘쳤습니다.
 
   이 책의 제목이 [불평등의 킬링필드]가 된 데는 초반 첫 챕터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만연한 불평등은 실제로 "생명의 불평등"을 초래한다는 것입니다. 평등하지 못한 상황에 놓인 인간들은 흔히 말하는 "제 명"에 죽지 못하고 단명하게 되며 기본적인 생명력에 방해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를 개념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전 세계 곳곳의 사례와 실제 수치를 보여주는데 이 수치가 어마어마 하다보니 사실상 "킬링필드" 사건에서 생명력을 강탈 당한 피해자보다 더하면 더했지 모자람이 없다는 것이죠. 그리하여 [불평등의 킬링필드]라는 용어는 꽤나 적확하다는 것을 단박에 수긍하게 되는 것입니다.
 
 
#2. 인간 존엄의 모독, 불평등
 
   "불평등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모독이다. (중략) 불평등은 사회적 문화적 서열과 직결되어, 대부분의 경우 사회 활동에 참여하는 데 필요한 자원뿐 아니라 인간으로서 우리의 역량, 우리의 건강, 우리의 자존감, 우리의 자아의식을 손상시킨다."p9
  
   불평등은 극단적으로 단순화 시켜보면 인간들 사이의 일종의 "제로섬 게임"의 과정에서 파생되는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먹을 것은 정해져 있고 나는 많이 먹어야겠고, 오늘 뿐 아니라 내일도 먹어야 하니 비축을 해야하므로 모두가 먹을 양의 절반, 아니 전부라도 내가 차지해야겠다는 생각들의 결과물인 것입니다. 이 과정에 많이 가지는 사람과 못가지는 사람은 반드시 나타납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수많은 사람들 중 이 먹을꺼리의 대부분은 소수가 가져가게 됩니다. 이 비율이 심하면 심할수록 불평등이 높은 것입니다.
 
   많이 못 가진자의 입장에 주목해보면 여러가지 문제점이 발생합니다. 우선 생존자체에 위협을 받습니다. 생명을 정상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기회의 불평등이 발생하는데 이는 "생명력 불평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 제로섬 게임의 패자 입장에 놓인 못 가진자는 존엄성, 존중받을 권리, 자아를 개발할 권리 등 인격과 관련해 중요한 불평등 상황에 놓입니다. '먹을 것도 없는데 자아개발은 개뿔...' 뭐 이렇게 되는 것이죠. 이를 "실존적 불평등"이라고 부릅니다. 세번째로 기본적으로 먹을 것을 놓고 경쟁하는 그 자체가 행위자로서의 인간이 활동하는데 필요한 자원을 공평하게 제공받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를 "자원 불평등"이라고 합니다. 이 3가지가 인간의 근본적인 불평등의 종류라 할 수 있습니다.
 
   발생학적인 차원보다 불평등이 만들어지는 매커니즘에 초점을 맞추면 또 눈물이 앞을 가리는 슬픈 유형들을 만납니다. 첫번째 유형은 "거리두기"입니다. 달리기를 할 때 특정 계층은 저만큼 앞에서 출발하도록 해서 아무리 빨리 뛰어도 따라잡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죠. 인도의 카스트 제도가 가장 대표적인 거리두기의 예라 할 수 있겠습니다. 두번째 유형은 "배제"입니다. 이는 폐쇄적으로 차별과 독점화를 자행하는 상황을 말합니다. 우리 나라에서 최근에 경제적으로 어려워지자 기득권 세력이 청년계층의 사회진출을 방해하는 구조를 만들고 진입 문턱을 높이는 것으로 쉽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미 사회생활을 하는 계층이 자리 내주기가 두려워 새로운 계층의 진입을 배제하는 것이죠. 이는 진입계층에게는 심각한 불평등으로 작용합니다. 세번째는 "위계화"입니다.  작게는 조직 내에서 수직적 위계를 설정하고 위치상승이 어렵도록 조직화하는 것에서 부터 민족적/인종적/성별의 차이로 위계화하는 것 등을 모두 포함합니다. 마지막으로 "착취"가 있는데 이 착취라는 개념은 모든 불평등에서도 상당히 악질적인 불평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착취는 실존적 불평등을 확실하게 한쪽 끝으로 몰아붙인다. 다른 사람의 사랑과 존경과 감탄을 착취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누구나 알 고 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용할 뿐 그에 대한 답례로 주는 것은 거의 없는 것이 바로 착취다. (중략) 일반적으로 착취는 불평등 가운데에서도 최악의 형태로 간주된다."p80
 
   무엇보다도 불평등이 가장 나쁜점은 그 매커니즘 자체에 인간의 존엄을 훼손하게 되는 필연적 한계를 지닌다는 점이고, 그렇기에 그냥 사람 사는 곳에 당연히 따라오는 그 어떤 필요악 정도로 받아들이기에는 문제의 정도가 심각하다는 점입니다.
 
 
#3. 불평등, 극복은 가능한 것인가?
 
   그렇다면 이 더럽게도 열받는 불평등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가 결국은 중요한 문제로 다가옵니다. 불평등은 극복할 수 있는 문제일까요? 그래 쉬우면 왜 여지껏 해결이 안되었고, 갈수록 더 심해지는 것만 같이 여겨질까요? 저자는 불평등을 단번에 없앨 묘책을 말하지는 않지만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기본적으로 불평등은 사회적 구조물이기 때문에 해체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프랑스 혁명으로 대표되는 세계역사의 주요한 사건을 계기로 불평등이 크게 개선되고 여러관점에서의 평등화가 이루어졌다고 지적해 줍니다.
 
   불평등이 사라지는 중요한 전제조건은 불평등을 타파하고자하는 평등 세력이 존재하고 그 세력이 힘과 기술이 있을 때라고 합니다. 평등 세력이라하면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것이 과거 근로계층과 노조운동 등이겠지만 소수집단이나 최근의 동성연애자 모임 등도 이에 해당합니다. 이런 계층의 지속적인 운동이야말로 평등으로 가는 높고 긴 계단의 한계단 한계단 오름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이런 더딘 발걸음은 불평등 상태를 유지하기를 원하는 강력한 세력들에 의해 퇴보를 거듭하기 좋습니다. 계단을 오르는 속도보다 더 위쪽으로 계단을 만들어내는 속도가 훨씬 빠르다면 불평등을 극복하기는 커녕 점점 그 차이만 심해지는 상황이 발생하고 말 것입니다. 불평등의 종류와 지역간의 차이는 있지만 결국 불평등은 심화되어 가는 추세로 보여집니다. 근래에 보여지는 특징은 저자의 지적처럼 국가간의 불평등은 좁혀지고 있으나 국가내 계층간의 불평등은 심화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자는 평등을 향한 투쟁은 중산층이 평등을 위한 투쟁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다양한 불평등의 원인과 역사, 세계 여러나라의 생생한 사례와 객관적 정량화된 데이터로 설명하던 전개에 비해 해결책은 상당히 궁색한 느낌입니다. 대학자의 비교적 뜬구름 잡는 듯한 이상적인 해결책 제시는 아쉽기만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시도한 전세계적, 역사적,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폭넓은 리서치와 통계적 접근, 의미부여는 비교하기 힘든 가치를 가지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데이터가 많아 읽는 도중 약간 지루함도 있었고 특히 우리나라와 상관없는 세계 여러나라의 수치들은 그다지 와닿지 않는 한계도 있었습니다. 단기간에 쉬원하게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은 이미 읽기 시작할 때부터 인지하고 있던 바라 크게 아쉬워 할 일도 아니었지만 좀더 명확하게 방향이 제시되었다면 얼마나 통쾌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을 보면 저는 불평등의 계단에 그다지 높이 올라있는 입장은 아니라는 증거인 모양입니다.    
 
 
 
"민주주의는 완벽한 평등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시민들이 공동의 생활을 공유할 것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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