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화 - 꽃을 사르는 불
이경민 지음 / 노블마인 / 2014년 3월
평점 :
품절


 

 

 

 

#1. Five tool player

 

   야구에 Five tool player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야수의 능력을 평가하는 다섯 항목에서 골고루 좋은 자질을 갖춘 선수를 묘사하거나 평가할때 쓰는 표현인데, 타격능력(정확성), 파워(장타력), 수비, 송구(어깨힘), 주루 능력(스피드) 등의 5가지 항목입니다. 이 5툴 플레이어라는 평가가 중요한 것은  희귀성 때문입니다. 한 두가지 능력만 특출해도 야구선수로 대성할 수 있는데, 다섯가지를 두루 갖춘 선수는 정말 손에 뽑을 만큼 드물기 때문입니다. 예를들면 과거에는 시대를 풍미했던 이종범 선수가, 근래에는 5툴 플레이어하면 추신수 선수를 뽑곤 합니다. 중요한건 한정된 선수로 운영하는 야구에서 5툴 플레이어의 가치는 표현하기 힘들만큼 크다는 점입니다.

 

   장황하게 5툴 플레이어 이야기를 늘어놓은 이유는  [멸화 - 꽃을 사르는 불]의 이경민 작가가 바로 이런 5툴 플레이어 같은 자질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소설가에게 있어 5툴이 무엇이라고 딱잘라 말하기는 힘들겠지만 일반적으로 좋은 작품을 쓰는 작가들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랄까 자질이라면 아마도 플롯, 문장력, 서사, 소재, 캐릭터 등(아님 말고ㅋ)을 들 수 있을듯 합니다. 이 작가님은 첫작품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다방면에서 탄탄하고 안정감있는 작품을 탄생시켰습니다. 그렇기에 국내작가를 응원하는 입장인 저로써는 이 작품을 아주 즐겁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2. 생생하게 살아있는 캐릭터들과 그들간의 얽히고 설힌 관계

 

   [멸화]는 눈에 띄게 캐릭터 묘사가 잘 되었고, 그들 각각의 사연이 적절하게 잘 설명이 되어 왜 각각의 캐릭터가 서로 다른 이해관계와 동기속에 이야기를 움직여 나가는지가 설득력 있고 자연스럽게 이어진다는 점이 큰 특징입니다. 이를테면 박하와 우주라는 신인부부 작가의 데뷰작이었던 "나는 어제 나를 죽였다" 같은 작품에서는 같은 상황에 놓인 여러 캐릭터가 등장하고 이야기를 진행하면서 캐릭터별 과거를 천편일률적으로 몇단락에 걸쳐 기술하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는데, 독자로 하여금 이야기 전개와 캐릭터 설정이 무척 '서툴다'라는 인상을 남기게 됩니다. 이에 반해 [멸화]에서는 메인 캐릭터 들의 사연과 관계가 촘촘하고 쫀쫀한데다가 의외의 반전도 잘 숨겨져 있어 말그대로 "읽는 재미"를 잘 살려줍니다. 주연들의 말과 행동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는 건 결국 그만큼 캐릭터 설정이 잘 되었고 설정에 따른 묘사가 훌륭했다는 의미로 볼 수 있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호림'이나 '의준'같은 캐릭터가 무척 매력적이었습니다. 각각의 성격이나 행동들의 묘사가 무척 좋았고, 이 둘간의 미묘한 관계로 인한 긴장감도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또한 "기-승-전-멸화"까지 살얼음처럼 이어지는 그들의 관계와 결착이 작품전체의 생동감을 잘 살려주는 것으로 느껴졌습니다. 그외 각각의 인물도 개성이 뚜렷해서 '이 이야기를 영상으로 만나게 된다면 어떤 배우들이 맡게 될까?' 하는 생각까지 자연스럽게 들 정도로 캐릭터는 물론 그 관계를 무척 성공적으로 잘 살렸습니다. 

 

 

#3. 좋은 소재를 잘 살리는 구성의 탄탄함

 

   '한양 대화재'라는 사건은 독자들의 흥미를 끌기에 아주 좋은 소재라고 생각합니다. 조선이니 역사니 하면 벌써 손사레가 쳐지는 저같은 사람도 결국 읽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재난은 늘 그 소용돌이 속에 있는 인간에게는 극한의 상황과 긴장을 주기 때문에 스토리를 이어나가기 좋은 소재임이 틀림없습니다. 끊임없이 재난 영화가 제작되고 흥행에 성공하는 것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실 화재는 물난리 같은 재난에 비해 무척이나 잔혹하고 긴 상처를 남기는 재난입니다. 사람들의 무의식속에 굉장히 터부시하고 꺼리는 것이기도 합니다. 물에 빠지는 상황은 대부분의 독자가 마치 본인이 물에 빠진 것처럼 숨을 참으며 공감하기가 좋은 소재입니다. 평소에 물에 들어갈 일이 종종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화재같은 경우는 '아, 난 평소에 신체의 일부분이 타본 경험이 있지?'라며 생생하게 떠올릴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불에 데이면 화상을 남기고 조금만 심해도 목숨이 위태롭고 전혀 컨트롤이 안되는 강력한 그 특성 탓에 화재에 얽힌 이야기는 읽기가 참 불편한 것이 사실입니다. "리베라메"나 "타워" 등 화재를 소재로한 영화가 사실상 그리 크게 흥행하지 못한 탓도 저는 "불"에 관한 이야기 자체가 가지고 있는 한계와 기술적으로 유연하게 묘사해내기 어려운 점 등이 작용했다고 봅니다. 그런 관점에서는 이 작품은 심지어 조선시대 이야기 이므로 그 당시의 진화도구라던가 "멸화군"의 존재 등등 흥미로운 설정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영화화되면 얼마나 흥행이 될까 하는 의구심을 가지게 됩니다.

 

   이 좋은 소재속에 사건과 사건을 일으키는 모종의 배후세력에 대한 설정, 그들의 움직임과 그들을 파헤치는 소수이자 약자인 세력간의 충돌, 권력의 악행 등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벼슬아치란 것들은 어딜 가나 똑같았다. 잘한 것은 내 덕이고 못한 것은 남 탓이었다. 불을 끄기 위해 얼굴에 검댕이 내려앉도록 동분서주한 이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 듯 싶었다. 마음 같아서는 수총기를 저 잘난 입에 대고 한바탕 쏴주고 싶을 지경이었다. "보고는 수시로 받겠네. 참, 멸화군의 기강을 다시 잡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야."" p82 

 

   이런 식의 표현들 속에 나타나는 인간사를 관통하는 부조리가 전반적으로 권력 계층의 음모와 의도 때문에 고통받고 상처받는 서민들의 모습을 통해 잘 표현되었습니다. 참으로 인간사는 세상은 몇백년 전이던 지금이 시대건 별반 차이가 없나 봅니다. 끝까지 씁쓸한 마음으로 이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4. 기-승-전-멸화

 

   이 표현이 정확히 뭘 의미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무척 인상깊은 표현입니다. 이 작품을 생각하면 계속 이 표현이 머리에 맴돕니다. 아마도 결말의 강력함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소재도 훌륭하고 기본 스토리도 좋은데다가 그 스토리에 설득력을 부여하는 플롯도 잘 짜였습니다. 이야기 속에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각각의 캐릭터들이 생동감 넘치게 잘 살아있습니다. 신인이라는 생각이 전혀 안들만큼 문장 또한 유려하고 조선시대 이야기인 만큼 참신한 표현이 돋보이는 문장도 많았습니다. 다양한 관점에 완성도 높에 마무리된 [멸화 - 꽃을 사르는 불]을 통해 앞으로 이 작가의 새로운 이야기를 무척이나 기대하며 기다리게 해줍니다. "기-승-전-멸화"에서 또다른 "기-승-전-OO"이 빠른 시기에 출간되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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