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남들의 세계사 - 2014년 제47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죄 3부작
이기호 지음 / 민음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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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차남들의 세계사, 피해자도 가해자도 구분하기 힘든 우리 모두의 이야기

 

   이기호작가님의 [차남들의 세계사]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군사정권 시절에 살아남기 위한 가해자와 그 과정에서 피눈물나게 억울한 말도 안되는 상황을 겪었던 피해자들 모두의 이야기 입니다. 있지도 않은 허구를 사실로 만드는 작업(?)을 거쳐 개인의 인생을 송두리채 뒤흔들어 망가뜨려 놓는 인생파괴를 자행했던 차남들은 사실 모두 평범한 사람들이자 조직의 일원일 뿐입니다. 그저 무서운 형님에게 '알아서 기는' 과정에서 도구와 소재가 필요했고 이 소재로 활용된 타인은 자동으로 피해자가 되었을 뿐입니다.

 

   작품의 도입부부터 약간의 충격을 받았는데, 아무리 지나간 시절의 이야기라 하더라도 전두환이니 안기부니 미문화원 방화사건이니 모두 실제했던 인물과 지명과 사건들을 대놓고 써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이 소설은 마치 세이초옹의 논픽션 시리즈나 누쿠이 도쿠로의 르포르타주를 연상시키는 사건의 정리집이나 사실보도와 같은 현실성을 띄는 것입니다. 소설이 실제 현실세계의 처절함을 뛰어넘지 못하는 시대는 오래전부터 계속되어왔고 이미 너무 익숙해진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에서 묘사하고 있는 서사를 따라가다 보면 현실의 처절함이 어느 수준이상 적나라하게 구현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소설 속에서 우리의 배고프고 서글프고 서슬퍼랬던 지난날을 보는 듯해 가슴이 아팠고, 한 편으로는 군인이 정권을 잡고 맹위를 떨치며 인간이 인간을 파괴하는 시대를 빗겨나 태어나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게 만들었습니다. 아무리 그 아픔이 내 아픔이라고 떠들어봤자 '나만 아니면 된다'라는 마음 속 깊은 곳의 조용한 속삭임을 숨길 수는 없었습니다. 오히려 감사한 마음을 가질 지경이었으니 말입니다.

 

   형님에게 충성하는 자였거나 그 가족, 친인척이었거나 아니면 그 과정에 필연적으로 발생한 수많은 피해자들 당사자거나 그 가족이거나 일가친척이거나 친구, 지인이거나 본적도 들은적도 없는 이야기라 대답할 젊은이거나 너나 할 것 없이 우리가 겪어오고 살아내어 왔던 우리의 역사인 것입니다. 그 속에서 주연이었을수도혹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가해자였을 수도 있으며 그저 방관자거나 적당히 눈치껏 피해를 줄여가며 웅크리고 순응해온 엑스트라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 웅크려 살아남았다면 진정학 역사의 주인공일지도 모르겠군요. 그만큼 험한 시절을 지내왔으니까 말입니다.

 

   차남들이 세계사에서 우리의 위치와 스탠스가 어디에 가 있던 간에 큰 그림의 한 축이자 담당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하여 작가의 끊임없는 요청과도 같이 '귀 귀울여' '들어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2. 비극을 비극스럽지 않게 표현해내는 이기호 작가의 특별한 배려

 

   저자도 인터뷰 등을 통해 밝히고 있지만 우리나라 순문학(?)의 가장 큰 맹점은 너무나 처절하고 무겁고 한맺힌 이야기로 풀어놓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한 그런 작품을 높이 평가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다보니 무슨 문학상이나 하는 수상집을 읽다보면 다들 '한국적 한의 정서'를 필요 이상으로 표현하며 무겁고 먹먹한 결말로 치닫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는 문단내에서 그들끼리 "잘했군 잘했어. 어화둥둥 내새끼"하며 한껏 치켜세우는 듯한 삐딱한 생각이 들게 만듭니다. 이런 그들만의 리그는 필연적으로 시대적 트렌드와 간극을 만들어 책을 좋아하는, 아니 책을 사는데 기꺼이 지갑(아니 전자지갑이라고 해야하나?)을 여는 독자들의 수를 한없이 줄여놓는데 일조를 한 것입니다.

 

   이 와중에 충성 독자들을 때려잡고 쥐어짜내 출판계를 살리겠다며 할인을 금지하는 도서정가제를 전면시행한다고 하니 소비자 입장에서는 기가 찰 노릇입니다. 예를 들자면, 스마트폰의 눈부신 발전으로 어중간한 디지털카메라나 MP3 플레이어를 아무도 찾지 않자 디카나 MP3플레이어를 유독 사랑하는 일부 유저에게 비싼 돈에 팔아서 명맥을 유지해보자는 가전업체의 심산과 일맥상통하는 것이 아닌가 말입니다. 도서정가제는 할말이 많지만 논지에서 완전 벗어나니 이쯤해야 겠습니다.

 

   이런식으로 지나치게 무겁게 다루는 과거사의 문제는 그 시절을 온 몸으로 겪지 않은 독자에게는 상당한 부담으로 다가옵니다. 빠르고 가볍고 쿨함을 지향하는 세대적 특성에 잘 들러붙지 않는 지나친 무게입니다. 저자는 이런 트렌드에 뒤처진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지 않으려 노력을 많이 한 것이 느껴집니다.

 

   정말 찬찬히 따지고 보면 심각한 이 문제를 풀어놓으면서 쿨함을 유지하려는 노력은 눈물겨울 지경입니다. 우선 화자가 이 이야기들로부터 거리를 두고 객관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한 것이 눈에 띕니다. 등장인물을 모두 성까지 붙여 쓴 것이 그 일환입니다. 통상 이름만 쓰는 작품들보다 성까지 모두 붙여 표현함으로써 화자와 등장인물의 간격을 일정하게 유지하려 합니다. 그리고 꽤나 효과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또한 마치 그 옛날 '변사'가 이야기를 설명도 하고 더빙도 하듯 서사를 풀어나갑니다. 당연히 이런 방식은 진행되는 이야기와 화자의 입장을 명확하게 분리해줍니다. 그냥 내 얘기가 아니라 전해듣고 전달하는 차원으로 설정이 되기 때문에 말입니다. 이런 구술방식으로 진행되면 한 단계를 더 거치면서 이야기의 부담이 희석되는 효과가 나타납니다.

 

   게다가 장면이 바뀔 때마다 '들어보아라', '~~하며 들어보아라' 등의 문구를 다양하게 삽입하여 이야기의 무게를 경감시키려 노력합니다. 사실 저는 저자의 노력과 의도와는 무관하게 책을 읽는 내내 무지하게 거슬리고 방해가 되었습니다. 의도는 이해하지만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몽땅 없애버리고 읽고 싶었습니다. 몰입에 상당한 걸림돌이더군요. 이런 방식의 희극화는 전 반대입니다. 어처구니 없는 문장도 많았습니다.

 

"자, 이것을 듣도 보도 못한 8대 2 가르마를 탄 나이팅게일을 상상하며 들어 보아라." p261

 

   이런 헉소리 나는 문구들이 종종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중간 중간에 화자가 끼어들어 남의 이야기인양 하는 경우가 있는데 해설에 가까운 서술들이 등장합니다. 이런 서술들도 기가찬 내용들이 꽤나 있습니다. 이 또한 읽는 재미라면 재미겠지만 저에게는 조금 힘들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도 안기부 입사 시험을 브로커를 통해...... 아아, 그럼 그건 또 무슨 소설이 되는 걸까? 이게 무슨 브로커를 고용해 쓴 소설도 아니고......)." p176

 

"그리고..... 그 비밀로 인해 우리의 이야기는 다시 1982년 5월 21일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중략) 그날 그때로, 뭐. 비밀이 없어도 돌아가려 했지만, 어쨌든, 어쨌든 말이다. 그것이 이 이야기의 구조니까." p171

 

   제가 마음에 들고 안들고는 차지하고 이런 저자의 여러가지 기교로 인해 오랜 시간 등장했던 유사한 이야기들이 너무 심각하고 무겁다는 단점을 보완하고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이 작품을 읽어나갈 독자들을 배려한 모습이 보인다는 점이 독특한 이기호작가만의 분위기이자 특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미 일어난 지난 일을 너무 심각하게 그려서 외면받느니 좀 가볍게 가고, 함께 생각해보자는 것이겠지요. 그렇다고 일어난 사실 자체를 흐리는 것은 전혀 아니니 적절한 판단이라고 생각됩니다.

 

 

 #3.  예나 지금이나 조금도 변치 않은 우리들의 문제를 가감없이 묘사하고 있는, 그러나 문학적 관점을 놓치 않는...

 

   비록 지난시절의 이야기지만 차남들의 세계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그들의 리그와 무대와 스타일이 조금 바뀌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지금 이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가해자이거나, 방관자이거나, 피해자이거나 그도 아니면 잠정 가해자나 피해자입니다. 전혀 의식하지 않고 평온하게 일상을 살아가고 있을 뿐이지만 엄연한 사실입니다. 이는 지나온 역사가 견고하게 증명한 진실인 것입니다.

 

"때때로 평온하게만 보이던 우리의 일상이 부욱, 소리를 내며 찟어진 후, 그 틈에서 낮선 손 하나가 불쑥 튀어나올 때가 있다. 어쩌면 그 순간이야말로 의식 중이든 무의식중이든 우리가 감추고자 애를 쓰던 유일한 진실이 눈앞에 나타나는, 아프지만 흔치 않은 기회이기도 한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외면하기에 급급해한다. 그만큰 우리의 진실이 더럽고, 하찮고, 추악하고, 섬뜩한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그것을 외면하는 방식이다. 그 손이 마치 다른 사람의 것인 양, 자신의 손이 아닌 것처럼, 다시 틈 안으로 억지로 욱여넣고 겹겹이 시멘트를 발라 버린다. 그리고 시멘트를 바르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 안의 또 다른 괴물을 눈앞에 호명해낸다." p232

 

   인간이 무언가를 획득하기 가장 손쉬운 방법은 또 다른 인간에게 직, 간접적으로 착취하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은 꽤나 버젓이 당연하게 벌어지곤 합니다. 가장 최악인 것은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가해자의 위치에서 오는 부담감 혹은 죄책감을 피하기 위해 명분을 세우고 떠드는 행위입니다. '원래 인간사는 경쟁의 논리다.' '그 과정중에 승리를 위해 착취는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지극히 유치하고 이기적인 발상이 꽤나 먹히는 것을 보면 너나 나나 가해자 입장이 되면 실로 비슷한 명분을 슬쩍 갖다쓰게 된다는 걸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 공고한 시스템을 생각하면 오래전부터 인간사는 이 저질스런 법칙에서 한치도 나아가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고보면 또 역사적으로 증명된 변명 아닌 슬픈 진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인간사에 벌어지는 모든 상황을 경쟁으로, 만인대 만인의  전쟁논리로 치환해버리는 편의주의는 언뜻 인간적 죄책감을 뒤로하고 쉽게 앞으로 나아가는 기분을 느끼게 할지도 모르지만  잠시 멈춰서서 뒤돌아보면 서로가 서로의 말목을 움켜쥐고 서서히 퇴보를 거듭하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깨닫게 될 것입니다.

 

   [차남들의 세계사] 는 이런 경쟁의 논리와 가학적 착취의 논리에서 벌어진 슬픈 현실을 담고 있습니다. 아직도 '삼성이 성장해야 내가 잘 산다'거나 부자들이 잘 살아야 그 이름도 유치찬란한 낙수효과로 뭐라도 떨어져서 줏어먹는다는 생각을 가지고 언제든 가해자가 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이 있다면 제 사비와 시간을 털어서라도 안기부 원주지부 지하 3호실에 "쳐"넣어드리고 각종 구타와 물고문, 전기고문을 친히 체험하게 해드릴 용의가 있습니다. 겪어봐야 피해자도 가해자도 한치도 다르지 않은 똑같은 무게를 지닌 인생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지 않을까요? 나에게 능력이 있건 없건, 타인이 가진게 있건 없건 그를 착취할 어떤 권리도 없다는 사실을 느끼게 되지 않겠습니까?

 

   "쉽게 읽히지만 빨리 덮기 어려운, 깊이 상처입은 사람의 쓸쓸한 농담같은 소설이다 "라는 신형철 교수님의 추천사마자도 이 소설의 일부분으로 느껴지게 만드는 대단히 실험적이고도 독특한 소설, [차남들의 세계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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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을 뒤바꾼 아이디어 100 100 IDEAS 시리즈 4
마이클 버드 지음, 김호경 옮김 / 시드포스트(SEEDPOST)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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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무엇이 예술을 뒤바꾸는가?

 

   에..또.. 제가 어쩌다가 이런 책을 읽게 되었는지 신기합니다. 예술이니 미술이니 하는 것들은 저와는 솔직히 좀 딴나라 이야기 같아서 가까운 블로그 이웃들의 미술작품 소개나 전시회 소식 등을 접할 때마다 생소하고 신기한 마음이 여전한 상황인데 말입니다. 어쩌다가 미술과 일반 프로젝트 절차에 관한 반쯤 걸친 책 [프로세스를 디자인하라]를 읽으면서 미술 분야에도 흥미를 느끼고 '마냥 어려워만 할 것은 아닌가보다' 하는 생각을 하면서 다양한 체계와 사조와 관점들이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이 책 [예술을 뒤바꾼 아이디어 100]을 얼레벌레 읽게 되었는데 사실 이 책의 전체 내용을 하나 빠짐없이 소화하기는 상당히 힘들었습니다. 글씨체도 작고 양도 많을 뿐더라 곳곳에 산재해있는 생소한 용어와 표현들이 이 책을 읽는 저에게 과부하가 걸리는 현상을 겪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하루에 10개의 아이디어만 읽고 좀 있다가 다시 10개를 읽고, 이런식으로 읽어야겠다는 생각에 미치게 되었고, 그리하야 이 책을 다 읽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고, 마지막까지 읽을 때 즈음엔 책의 앞부분에서 무엇을 소개했는지 조차 가물거리는 상황에 닥쳤지요.

 

   여튼 예술을 뒤바꾸는 아이디어란 도데체 어떤 것인가? 를 생각해보는 것이 이 책을 읽으면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수확이 아닐까 합니다. 예술사조를 바꿀만 한 아이디어는 기본적으로 신선해야하고 기존의 굳건한 사조를 깨서 변화시킬 만큼 임팩트가 있어야 합니다. 임팩트라는 것이 예술작품을 창조해내는 과정의 변화를 가져오는 것일 수도 있고, 그 변화를 가져올 도구적인 것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변화를 느끼지도 못할 만큼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경우도 많이 있겠지만 말입니다. 저자는 이런 변화를 가져온 아이디어는 또 다른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생산해내는 촉매제 역할을 해서 체인 리액션으로 아이디어를 재생해 내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아이디어가 예술사조를 바꾸면 그 예술사조가 또 다른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며 그것 자체로 인식할 수 있는 새로운 사조를 만들어내곤 한다. (중략) 결국 예술사에 있어서 변천이란 공학에서의 신소재 개발이나 정치적 프로세스라기보다는 화학반응에 비유되는게 더 적합할 것이다."  - 서문 중에서 -

 

   결국 새로운 아이디어는 예술의 양상에 변화를 가져오고 그 변화의 아이디어가 또 다른 변화를 양산해 내어 발전되기도 하고 변종되기도 함으로써 더욱 세련되고 진일보한 예술사조를 형성한다는 말이되겠습니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예술에 더 낫고 더 좋은 것과 모자란 것으로 위계를 나눌 수 있는 것인지가 의문스럽기는 합니다.

 

 

 

#2. 이 책의 독특한 구성 "나열식"

 

   저자 마이클 버드는 철학적 분석과 분류보다는 주요한 키워드를 제시하고 설명해주는 것이 더욱 적절할 뿐만 아니라 특히 미술사적 시각이 부족한 사람들에게는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말도 안되게 광범위한 미술사와 그 속에서 수없이 생기고 변하고 없어진 사건과 사조, 아이디어와 인물들을 모두 다루기에는 적절치 않다는 고민을 한 듯 합니다. 오히려 다양한 아이디어들을 지나치게 정제하고 분류하기보다는 케이스 별로 나열하고, 각 아이디어를 잘 설명해주는 것이 미술사 입문에 더욱 효과적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이 책의 아이디어는 미술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판단되는 것으로 간추렸다. 따라서 각각의 아이디어는 그 자체로 한 권의 책이 될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하며 되도록 흥미로운 소재들만 골라서 담으려고 했다. (중략) 나의 의도는 미술사 입문자들에게 문을 열어주는 것이지 방 안에 가구를 빼곡하게 들여놓는 게 아니다." - 서문 중에서 -

 

   정말 아이디어 하나 하나를 만나다보면 엄청 광범위한 아이디어도 있고 친숙한 아이디어도 있었습니다. 좀 난해한 아이디어도 등장하고 말입니다. 완전히 시대순으로 나열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100개의 아이디어를 잘 분류해서 비슷한 것끼리 묶어서 배열한 것도 아닙니다. 처음에는 '이거 도데체 무슨 기준으로 막 쏟아지는 거지?'하는 생각이 들만큼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튀어나왔습니다. 그리고 왜 종류별로 묶어서 소개하지 않았을까 의문이었습니다. 이를테면, 1부는 각 화풍의 종류 정밀화, 산수화, 누드화 등등 회화 종류를 설명하고, 2부는 종이, 튜브 물감, 플라스틱 등등 재료에 대해 설명하고 하는 형식이 일반적인 책의 구성이겠지요. 그런데 전혀 그렇지가 않습니다. 암각화가 나왔다가 동상이 등장했다가 프로파간다가 나오는가 하면 원근법을 설명하기도 하고 엉뚱해 보이는 예술인의 마을도 나옵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헤깔리는걸? 그랬는데 점점 다음 아이디어는 어떤 게 나올까? 하는 기대감을 갖게 하더군요. 이런 나열식 구성의 묘한 장점이 느껴졌습니다.

 

   단순히 늘어놓기만한 나열식이라면 좀 실망했을 수도 있는데 그 하나 하나의 요소들에 대한 설명이 아주 적확하고 충실해서 무척 좋았습니다. 두 페이지에 걸쳐 하나의 아이디어를 소개하는데 간단한 압축적인 설명문장 혹은 문구하나에 한 두문장의 정의와 핵심설명, 다음 페이지에 상세한 설명과 역사적 의의와 변천, 주요 작가와 작품소개, 현대에 와서의 의미 등으로 설명이 이어져서 하나의 아이템에 대한 이해를 개략적으로 할 수 있도록 충실히 도와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이 미술사 입문책으로 매우 유익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저같은 경우는 들어만 보았던 여러가지 용어들에 대해서 새롭게 알게 된 것들이 너무 많아서 무척 좋았습니다.

 

 

#3. 나무보다 숲을 보게 하는 개괄서의 유익

 

   이 책을 통해서 미술사의 주요한 테마들이 어떤 것들이 있는지 큰 틀에서 훑어 볼 수 있어서 무척 좋았습니다. 아는 척하기에 특별히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상식 차원에서 알아야할 기본적 소양을 쌓기에 좋습니다. 워낙 모르는게 많은데도 그 와중에 좀 알고 있던 것들이나 어디서든 본 적이 있는 작품이 등장할 때는 얼마나 반갑던지요.

 

   제일 반가왔던 게 Idea NO.29 "Window of the world(세상으로 향한 창)" 설명이었습니다. 창문을 사용하여 회하에서 '그림 너머 다른 세계를 응시하고 있는 듯한 환상을 준다'는 내용인데 여기에 등장하는 예시 그림으로 일본의 "안도 히로시게"의 <아사쿠사 논밭>이 소개 되었습니다. 근데 이 "아도 히로시게"는 북스피어의 미야베미유키 에도시리즈 표지로 늘 사용되는 작품이거든요. 이 책에 소개된 <아사쿠사 논밭>은 바로 미미여사의 "그림자밟기" 표지로 사용되었던 그림입니다.

  

 

 

 

   색감차이는 크게 나지만 같은 그림이 틀림이 없군요. 찾아서 꺼내놓고 비교해보니 무척 즐거웠습니다. 뭔가 신기하고 친숙한 걸 찾아내었을 때의 기쁨이 있더군요. 그 밖에도 흥미로운 아이디어들이 정말 많았는데 '프로파간다'나  '팝아트' 등 나름 친숙한 내용에 대한 정확한 정의와 소개는 아주 좋았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아이디어는 58번 "Dealing(딜러)" 였습니다. 예술 시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딜러에 대해서는 사실 그리 생각해봤던 개념은 아닌데 얼마전 '피카소'에 대한 책에서 딜러의 역할이 크다는 걸 어렴풋이 느끼기는 했습니다. 그러고보니 음악시장에서도 마찬가지지만 미술계에서도 미술품을 사고 팔고, 전시회에 관여하고 특정 작가의 명성이나 지명도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을 딜러의 역할을 중요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고 실제 작가의 실력외에 작가의 명성에 크게 관여를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단순한 미술적 기교에서 전반적인 흐름, 사조의 변화와 미술소재는 물론 기술의 변화까지 폭넓게 미술계 전체를 조망한 이 책은 그냥 편안하게 읽어 넘기기만 해도 시각을 넓혀주는 무척 효용이 큰 책입니다. 집에 두고 관심이 갈 때마다 꺼내 찾아 읽어도 좋을 법한 책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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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이야기꾼들
전건우 지음 / 네오픽션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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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대를 초월하는 기묘한 이야기의 힘

 

   지금처럼 IPTV나 PC로 영화나 드라마를 즐기고, 스마트폰으로 언제든 유튜브, SNS 등으로 갖가지 정보와 이야기를 주고 받는 환경이 일반화된 것은 생각보다 그리 오래지 않습니다. 불과 20년 전만해도 컴퓨터도 제대로 보급되지 않아서 애플이니, 286, 386이니 하는 컴퓨터를 접하고는 깜딱놀라고  PC통신 하는 사람들을 '뭔가 불온한 나쁜짓을 하는거 아닌가?' 하고 쳐다보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나마 그 이전에는 티비나 라디오가 일방적으로 매스미디어의 역할을 할 뿐, 대부분의 "이야기"는 서로 마주하고 입에서 입으로나 전해지던 시절이었습니다. 

 

   제가 좀더 어릴때는 방학때 시골 할머니네에 가면 사촌 형, 누나, 동생들이 사랑방에 모여앉아 돌아가며 무서운 이야기를 들려주고 전해듣는 것이 큰 행사였습니다. 먹을 것도 제대로 없는데 한밤중에 불도 꺼놓고 이불가에 둘러앉아 으스스한 이야기를 듣노라면 그 특유의 묘한 분위기가 얼마나 무섭던지요. 그래도 그 자리를 떠날 수 없는 매력에 끌렸었죠. 사실 따지고 보면 별것도 아닌 이야기인데 말입니다.

 

   누구와 함께 했느냐, 어떤 상황에서 나눈 이야기인가에 따라 같은 이야기라도 그 느낌은 천차만별일 수 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전달 매체가 바뀌면 이야기의 뉘앙스와 느낌도 전혀 달라집니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한가지 속성은 역시나 이야기 자체가 가진 힘입니다. 이야기는 형태와 환경이 바뀌어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고 듣고 싶어하고 공유하고 싶어합니다. 이 기본적인 욕구는 변함이 없는 것입니다.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진 이야기를 토해내고 표현하고 나누는 과정 중에 정리가 되고, 정화가 일어나고 마음의 치유가 되는 것이죠. 타인과의 깊은 교감도 가능해집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야기의 힘은 점점 떨어졌습니다. 아시겠지만, 사람들은 이제 가만히 앉아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머리속에 그려볼 여유가 없어졌죠. 이야기는, 싸구려 오락거리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인간이라면 누구나 이야기를 하고 싶은 욕망이 있습니다. 인간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 토해진 진실하면서도 추악하고 섬뜩하면서도 아름다운 이야기는 그 어떤 것보다도 강력합니다. " -눈의 여왕 중-

 

 

 

#2. 구성과 전개의 절묘함, 완성도 높은 이야기들

 

   저는 전건우 작가님의 작품을 [밤의 이야기꾼들]로 처음 만났습니다. 프롤로그를 읽고나니 '어, 이거 뭐지? 뭔가 무서운 이야기가 나오려다가 만 이 느낌은...' 꼭 화장실에 들어가서 방귀만 뀌고 나온 이 느낌은 참으로 거시기했습니다. 그런가 싶더니 다른 이야기가 또 진행되다가 뭔가 시원치 않게 끊기는 것 같고 이게 뭔가 싶은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전반부가 진행되면서 슬슬 이 책 전체의 얼개가 조금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아, 액자식 같기도 하고 옴니버스식 같기도 한 구성의 책이구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가 하나하나 진행되어 감에 따라 점점 강도가 더해가는 것이 이야기에 빠져들게 만드는 놀라운 매력이 있었습니다. 하나하나의 이야기 자체도 완성도가 높고 읽는 재미도 뛰어났고, 전체적인 메시지와 구성도 무척 짜임새가 좋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사실 저는 기담류를 기본적으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뭔가 무섭거나 기묘한 이야기는 읽고 나면 찝찝함이 한동안 남고 저의 유리멘탈에 상당한 타격을 주기 때문입니다. [밤의 이야기꾼들]에 등장하는 이야기들도 유리멘틀에 금을 가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다행히 나이를 좀 먹어 그런지 그럭저럭 견딜 만한 이야기들이었기에 망정이지 꿈에 나올까 힘들뻔 했습니다.

 

   난쟁이들이 사람을 잡아가질 않나, 도플갱어도 나타나고, 주인공이 미쳐가지고 가족을 막 죽이기도 하고 동물을 죽이면서 놀다가 아이들에게 칼질하러 다니는 여자 이야기가 등장하는가 하면 지독한 눈귀신 저주가 나오기도 합니다. 그냥 들으면 콧방귀나 뀌고 말만한 이야기들인데 읽다보니 쫙쫙 빠져드는 이유는 그만큼 저자의 이야기꾼으로써의 역량을 방증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어, 이거 황당한 소리같은데 왜 자꾸 궁금하지?' 이런 식이죠.

 

   점점 더 빠져들게 만드는 이야기의 배치도 훌륭하고, 읽는 동안 김빠지거나 그만 읽을까 하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을 만큼 가독성도 뛰어나고 집중하게 만드는 타이트한 짜임새가 좋았습니다. 이야기 하나하나에 녹아있는 인간의 깊은 내면에 대한 고찰도 무척 마음에 들었습니다. 너무 무겁지 않게 적당히 발란스를 조절하는 기교도 눈에 띄었습니다. 전체적으로 완성도가 무척 높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흔히 이야기하는 순문학적 완성도가 아니라 대중이 얼마나 만족할까에 대한 완성도 말입니다.

 

 

#3. 이야기에 생명력을 부여하는 이야기꾼

 

   사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대체로 어딘가에서 들어봤을 법한 이야기들이고 이야기의 전개나 결말을 전혀 예측 못할 만한 기상천외한 이야기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바로 여기에 포인트가 있는 듯 보이는데, 독자들에게 '와, 이런 이야기가 다 있나!' 이런 반응을 기대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 보다는 오히려 저자의 주변에 사람들을 모아 앉혀두고 정겹게 놀려가며 무서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동네 형, 친척 오빠 같은 느낌을 내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런 의도였다면 적어도 제가 느낀 감정으로는 무척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정겨운 그 옛날 어린시절 이야기를 들으며 무서워하던 그 느낌이 고스란히 났습니다.

 

   저자가 훌륭한 이야기꾼이라는 것은 이 작품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었습니다. 이 기묘한 이야기들이 왠지 동떨어진 기담 만으로 들리지 않는 것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럴만하다', '그럴수도 있겠다'라고 생각하도록 설득력 있게 잘 전달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좋은 이야기를 적절한 방법과 순서로 전해 줄 줄 아는 이야기꾼을 만나면 참으로 반갑습니다. 국내 작가인 경우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앞으로 작가님의 신간이 나오면 무조건 믿고 사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일단은 사겠다라는 것이지요. 물론 읽기도 해야겠지만서도... 어쨌거나 몇 안되는 애정하고 소장하는 국내 작가 목록에 한명이 추가되는 상황을 만나니 무척 흡족합니다. 앞으로 더욱 좋은 작품을 기대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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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제이의 만화 한국현대사 1 - 깡패의 탄생, 이승만부터 김대중까지 대선 전쟁
굽시니스트 글.그림, 이이제이 원작 / 왕의서재 / 2014년 8월
평점 :
절판


 

 

 

 

#1. 정사와 야사, 명분과 진실의 사이...

   정사(正史)란 각 나라의 왕조가 정통성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역사서를 말합니다. 이에 반해 야사(野史)는 개인이 기록한 비공식적인 역사서를 가리킵니다. 이런 관점에서 [이이제이의 만화 한국 현대사]는 전형적인 야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팟캐스트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며 대한민국 현대사는 물론 정치적 이슈를 집중적으로 다뤄 왔던 '이이제이'의 방송을 토대로 하고, 풍자와 해학이 넘치는 '굽본좌 - 굽시니스트'의 해석과 그림으로 탄생한 [이이제이의 만화 한국현대사]는 그야말로 생생히 살아있는 역사 이야기입니다. 물론 기본적인 서술 형식은 물론 서술의 주체도 국가가 공인하는 것도 아니고, 굉장히 객관적이고 중립적이지도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대놓고 '야사'입니다.

   그런데 정사라는 것, 즉 국가가 공인하는 역사라는 것은 있었던 일을 주관적 견해없이 사실만을 있는 그대로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정권의 정당성과 명분, 정통성을 최대한 확보하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역사를 저술할 때, 권력을 가지고 있는 정권에 불리한 부분에 대해서는 최대한 감출 수 밖에 없는 것 또한 그 권력층의 당면 과제이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전두환 대통령 각하 시절 뉴스는 항상 첫머리를 '각하께서는 오늘 ~~에서 골프를 치시며 정국을 구상하셨습니다..' 뭐 이따위의 시덥잖은 내용으로 시작했던 것이 제 머리속에 각인이 되어 있는 것 입니다.

   그러고보면 순수했던 그 때는 TV나 신문 등에 담긴 내용은 늘 진실만을 있는 그대로 전달한다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 기본적인 생각 자체도 언론매체와 교육을 통해 형성되었다는 사실이 참으로 무섭습니다. 실상 조금만 생각해보면 그 시절에는 언론이라는 것 자체가 '프로파간다'의 핵심 도구 역할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을텐데 말이죠. 한편 교육이라는 것도 말잘 듣는 시민양성과 다스리기 편한 국민 만들기의 일환으로 진행된 부분이 없지 않아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게다가 더 한심한 것은 지금도 모양새만 조금 세련되었지 본질은 조금도 변함이 없다는 점입니다. 다만 지금은 권력의 직접적인 통제가 두렵다기 보다는 언론을 좌지우지하는 자금의 영향이 더 큰 점이 차이라면 차이겠습니다.

   이렇게 장황하게 정사니 야사니 언론이니 서론을 쓰는 이유는 우리가 특별히 역사 전공자가 아닌 이상 심도있게 고민해가면서 한국사를 접할 일이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정사가 정사가 아니고 야사가 야사가 아닌 우리의 상황을 분명히 인식하기가 어려운 문제가 발생하고, 그저 쉽게 접할 수 있는 언론이나 대중매체를 통해 편향된 역사 인식을 가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만큼 정상적인 루트를 통해 우리의 아픈 역사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방법이 없다는 점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만화 한국 현대사]에 녹아있는 역사의 적나라한 장면들을 대하면서 '이게 진짜인가? 이 양반이 정말 이런 사람이었단 말인가?' 하고 혼란스러워 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 참으로 답답한 현실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너무도 일상화 되어있는 SNS 등을 통해 실시간으로 전달되는 현장의 상황들을 대하는 와중에도 굳건하게 쇼를 하며, 국민들의 눈과 귀를 막고 바보취급하며 우롱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듯 능청스러운 언론의 행태를 바라보자면 그들의 '사는 것의 구차함'이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생존의 존엄'이랄까 뭐 이런 것들이 가슴을 조여오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만화에 등장하는 에피소드들이 모두 진실인지 아니면 허구인지 분별할 능력을 가지고 있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무엇이 진실인지 아닌지 따져보고 고민해보기 위해서 [이이제이의 만화 한국 현대사]는 무척이나 필요하고 유용한 책임은 분명합니다. 적어도 제가 보는 시각에서는 이 책에 담겨있는 내용이 사실에 훨씬 더 가까울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2. 파란만장했던 한국 현대사, 그놈 참 웃프다...

   저는 다행인지 불행인지(당연히 다행이겠지..) 정말 불행했던 6.25전쟁시절이라든가 이승만 정권이라든가, 박정희 정권을 온몸으로 겪어보지는 못했습니다. 사람들이 삼청교육대에 끌려가고 어느날 갑자기 간첩이라며 잡혀들어가던 그 시대에 이 땅에 없었거나 좌우분간 못하는 아이였을 뿐이니까요. 더군다나 뭔가 따지는 것 자체를 싫어하고 그저 되는대로 흘러가는 것을 좋아하는 저의 성향은 역사를 공부하고 배우는 일 따위와는 상관없는 삶을 살게 했습니다. 마지못해 국사책을 외우는 것 외에 그다지 역사와는 친하지 않았지요.

   저 같은 사람에게 딱 좋은 책이 바로 이런 만화 역사책이 아닐까 합니다. 제 아이와 같이 읽어야할 만한 만화책이지만 이 책에 담긴 내용을 보자면 내 아이가 감당한 내용은 아닌 듯 합니다. 역사와 역사속 주요 인물들의 어두운 이면을 많이 주목하고 있으니까요. 사실 어떤 모임이나 조직 등에서 특정한 사안에 대해 정책적인 결정을 내릴 때, 무척이나 신중하고 복잡한 의사결정 과정을 거치지만 결국에 가서는 최고 권력자의 의중대로 결정되는 것이 '거의 다'라해도 무방할 정도로 만연해 입는 것이 현실입니다. 우리나라라는 큰 조직의 역사 역시 이런 한계에서 한치도 어긋나지 않습니다. 조금도 예외없이 최고권력자의 의중대로 움직여 왔습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이승만 전 대통령 같은 케이스가 그 대표적인 케이스가 되겠습니다. 다른 사례도 사실상 정도의 차이만 있을 따름입니다.

   이 책에서는 정치권력자들의 뜻대로 모든 상황을 통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힘을 키워왔던 정치깡패의 탄생과 속성과 역사는 물론 이승만 정권의 명암과 김대중 대통령에 이르는 시기까지의 대통령 선거 정국의 여러가지 상황과 일화를 흥미롭게 그려주고 있습니다. 가독성도 좋고 내용도 워낙 재미있다보니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후루룩, 호로록 읽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그 와중에서도 대한민국 현대사가 흘러흘러온 2014년이 딱하기도 하고, 어쩔 수 없었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고 심경이 복잡했습니다. 권력의 특징이겠지만 권력자의 내배 채우고 나라망치기 대작전은 참으로 성실히 진행되어 온 것만 같습니다. 지금 이시간에도 쉬지 않고 성실하게 진행하고 있는 듯한 상상이 듭니다. 국민들의 좋은나라 만들기 대작전도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지만 그 방법론과 청사진이 전혀 다른 두 집단이 동시에 진행하려고 하니 죽도 밥도 안되는 그런 상황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러다보면 핵심은 어디론가 도망가고 없고 집단간의 대립을 위한 대립만 남게 됩니다. 둘로 나누면 싸우는 신기한 습성, 같은 집단을 또 둘로 나누면  그 둘간에 또 싸우고 다툽니다. 한국인들의 재미있는 속성, 아니 인간의 변치않는 속성이 아닐까 싶습니다. 과거로 부터 한치도 제대로 나아가지 못한 것만 같은 대한민국의 현대사... 참으로 웃픈 현실입니다.  



#3. 진보적 색채의 서적이 갖는 한계에 대해서...

   거시적으로 길게 떠들만큼 고민을 한 적은 없지만 이 책을 대하면서 심경이 복잡했습니다. 과연 정치성향, 아니 투표성향이 양념반 후라이드반 처럼 깨끗하게 갈라져 있는 우리나라에서 이 만화의 위상 혹은 역할은 얼마나 될까? 좀더 실제적으로 이 만화를 통해 역사에 대한 다른 인식을 가지게 되는 기회를 얻을 사람은 몇이나 될까 하는 생각 말입니다.

   사실 지난 대선을 전후로 특히 진보적 색채가 강한 대안 미디어, 대안언론이라 불리는 많은 개인 미디어의 숨은 능력자들이 정치적인 견해는 물론이고 인문, 과학, 예술, 대중문화 분야 등으로 쏟아져 나와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을 공유하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기폭제가 된 것은 물론 '나는 꼼수다' 였을 것이고 일단이 대안 미디어는 대선 멘붕 직전까지는 상당한 위세를 떨친 것 같습니다. 대선을 겪으면서 저 개인적으로는 굉장한 충격을 받았는데, 그것은 단순히 어느 진형이 이기고 졌다는 것 보다는 이나라에 형성되어 있는 진형논리가 굉장히 견고하고 그것이 생각보다는 굳건히 지켜지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결국은 좀더 수면위로 드러나는 진보측만 기세를 올린 상황이었지요. 수면아래 굳건한 보수 지지세력이 결집하고 있었고 말입니다. 여튼 그 와중에 시작하고 아직까지도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대안미디어가 '이이제이'인 듯 합니다. 굳이 덧칠을 하자면 [이이제이의 만화 한국현대사]는 흔히 말하는 진보적 색채가 강한 역사 해설서 정도가 되겠습니다. 진보적이다는 표현이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모르겠지만 저는 좀더 실체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내용자체가 그러합니다. 숨김없고 가감이 별로 없습니다. 인물평가가 너무 부정적인 면은 그럴만 하다 싶기도 하고 말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도 한계라고 생각되는 것은, 결국은 제가 마음대로 '정사'라고 표현한 기존의 강고한 현대사를 비판하는 기본적인 관점은 피할 수가 없다는 점입니다.

   신선하고 새롭다는 것은 오랜동안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여져 온 이야기와 설정과 이미지가 형성된 인물에 대해 전혀 다른 모습을 파헤치고 새롭게 평가하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것입니다. 결국은 약간은 비꼬는 태도, 기존 질서를 부정하는 태도일 수 밖에 없는 것이죠. 저의 안타까움은 이 지점에서 발생합니다. 정치적 입장이나 견해라는 것은 생각보다 정말 강한 것이어서 왠만한 종교적 신념보다 더 맹목적입니다. 그리하여 한번 보수건 진보건 무관심이건 형성이 되면 좀처럼 바뀌지 않습니다. 더우기 자신이 지지하는 신념이 공격당하는 상황에 닥치면 본능적으로 적대적 태도를 취하게 됩니다. 그러니 기존 역사적 사실로 여겨지던 것들을 부정하고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이 책은 절반 이상의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불편하고 거북한 책이 될 가능성이 높은 것입니다. 반면 원래 진보적이던 사람들이 무릎을 치며 옳구나 옳아! 감탄하며 읽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결국은 이런 류의 서적이 갖는 역할은 각자의 진형 논리를 강화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니까 종교로 따지면 전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종교인의 교리 강화의 역할만 담당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지요. 물론 이도 저도 아닌 중립지대에 있던 독자에게 뭔가 큰 깨우침과 같은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습니다.

   초반에 불편한 설정, 비속어나 은어의 등장에 벌써 마음이 쌔하면서 불안했습니다. 이런 식의 좋게 말하면 풍자요 나쁘게 말하면 비꼬는 식의 표현으로는 결국 성향이 다른 독자를 설득시키기는 커녕 역작용만 일어날 것이라는 불안이 깊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이 책은 결국 반쪽짜리 훌륭한 역사책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참으로 정말로 다행스럽게 '이이제이'팀이 밝히고 있는 것처럼 초반에는 관심과 이목을 끌기 위한 자극적인 배치가 있었던 모양이었습니다. 갈수록 흡입력도 좋고 거부감도 없는 건전한 쪽으로 진행되어 다행스러웠습니다.

   그 유명한 다이야몬드 옹이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에서 소리높여 외친 바와 같이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우선 상대방의 입장과 마음을 존중해야 합니다." 굳이 비판을 넘은 조롱보다는 존중의 태도를 유지하는 가운데 할수만 있으면 고상하게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이 결국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 아닐까 합니다. 정말 훌륭한 디테일과 방향성에 비해 정말 전 국민의 대중성을 얻고 현대사 서적의 한 획을 긋기에 부족함이 없는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읽은 이후에도 제 마음에 약간의 불안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아쉬움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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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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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노장의 귀환이 반가운 이유

   일전에 조용필씨의 "Hello" 앨범이 무척이나 센세이션을 일으킨 기억이 납니다. 조용필이라는 레전드 스타의 신규 앨범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올드 중에 올드라 할 수 있는 그가 오히려 더 세련된 음악을 들고 나왔기 때문에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저도 한참 흥얼거렸으니까요.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보면 본 조비의 경우도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원래 대중성을 강하게 가지고 있기는 했지만 여튼 락 스피릿을 뽐내던 본 조비가 뭔가 달달하고도 고음조차 없는 "Make a Memory"를 들고 나와 아메리칸 아이돌 같은 무대를 통해 단박에 차트 정상에 오르는 모습은 반가움을 자아내었었죠.


   곡 자체는 무척이나 스윗하면서도 뭔가 올드스쿨 정서를 자극하는 웰 메이드 곡입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예전 본 조비의 거친 느낌은 완전히 사라져서 과연 이 본조비가 그 본조비냐? 하는 고민을 하게 만들기도 하죠.
 



   하루키 센세의 단편집을 읽고서 뜬금없는 본 조비 드립을 하고 있는 이유는 그 때 느꼈던 감정과 지금 [여자 없는 남자들]을 대하는 저의 기분이 묘하게 일치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여자 없는 남자들]에 수록된 작품들을 하나 하나 읽어가다 보니 90년대 중반 대학시절 멋모르고 읽던 하루키의 초기작의 원형이 분명히 살아있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나이 든 노장의 연륜이 함께 뭍어 나면서 그 사이의 묘한 긴장감이 기분좋게 느껴졌던 것이죠. 이것은 화려했던 노장들이 또 다른 매력으로 대중곁에 돌아올 때 느끼는 신선함과 안도감? 뭐 그런 느낌이 아닐까 합니다.


   하루키 센세가 이 시점에 단편집을 출간할 거라고는 솔직히 기대를 못했었습니다. 의외 중의 의뢰랄까요. 사실 최근엔 뭔가 시원하게 마무리되지 않는 장편들 때문에 작가도 지치고 독자도 지치는 시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지난번 '색채가 없는 다자키~~'의 국내 반응이 신통치 않았던 탓도 있고 1Q84가 마무리 되지 않은 탓도 있어 한편으로는 장편소설에 집중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가벼운 에세이집 정도가 교차 출간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던 상황이었는데 묘한 시기에 단편집이 나왔습니다. 이 작품집을 읽고 나서 생각해도 생뚱맞습니다. 어쨌거나 결과적으로 무척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번 단편집이 그동안의 하루키 피로감이 있으시던 분들께 조금 해소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2. 여자 없는 남자들...

   하루키 센세를 이야기할 때 여자를 빼고 이야기가 될까 싶을 정도로 쿨하고 마이너한(대체로 삼각관계가 많은) 사랑이야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 갑자기 "여자 없는 남자들"이 핵심 설정이라니 의아 합니다. 어떤 계기로 이런 설정에 꽂혔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뭔가 구체적인 설정을 잡고 연작을 이어가는 방식은 독자 입장에서는 읽는 재미가 있어 좋습니다.


   하기야 예전 단편도 달랑 제목만 정해놓고 내용을 만들어 채우거나 특정 단어 하나에서 출발해 이야기를 만드는 방식을 많이 사용했었다고 볼 수 있어 '왜 때문에?'라고 묻는 것도 의미가 없기는 하겠습니다. (왠지 물어도 제대로 답을 못할 것만 같으다.)


   여튼 [여자 없는 남자들]에는 총 7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한결 같이 사랑하는 여자를 잃은 남자들이 주인공인 작품들입니다. 대체로 각 각의 작품들이 독특한 특색이 있으면서도 크게는 단편집에 자연스레 녹아드는데 반해 여섯번째에 실린 "사랑하는 잠자"라는 작품은 아무리 생각해도 묻어나지 않고 뭔가 조화가 안되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이 단편집에서는 뺐어야 맞지 않은가 싶습니다. 제가 보기엔 전체의 통일성을 상당한 해치는 작품입니다. 차라리 표제작까지 6편을 모두 수록하고 부록으로 "사랑하는 잠자"를 넣었다면 훨씬 좋을 뻔 했습니다.


   이미 작년에 출간된 민음사 "세계의 문학 150호"에서 만났던 '드라이브 마이 카'를 비롯 유일하게 20대 젊은 청춘이 주인공인 '예스터데이'도 좋았고 '독립기관'도 상당히 강렬했습니다. '셰에라자드'는 읽을 때는 흥미로웠는데 제목부터 뭔가 마음에 안드는..., 전체 단편집에서 저의 베스트는 사실 '기노'였습니다. 작품 분위기도 그렇고 남자 주인공에게 어느정도 감정이입도 되고 아주 좋았습니다. 주인공의 태도, 주인공이 파고드는 공간인 카페, 그리고 그 주변 환경과 신비한 존재들, 이 모든 설정이 가장 하루키 스러운 작품이었습니다. 대체로 이번 연작에 실린 작품들은 사실주의에 가깝다보니 '기노'가 더 눈에 띈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따로 노는 '사랑하는 잠자'는 그 자체로는 재미있기는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표제작인 "여자 없는 남자들"은 솔직히 독립된 단편이라는 느낌 보다는 그저 전체를 아우르며 작가가 어떤 의도와 시각으로 바라보는가를 설명해 주는 자료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엉뚱한 하루키씨 답게 단편 그의 작품 안에서도 상당히 독특한 시각이 돋보이는 표현들이 많았습니다.


"우린 스무 살이야. 그런 게 부끄럽다느니 뭐라느니 할 나이는 아니잖아. 시간이 속도는 사람에 따라 조금씩 어긋날 수도 있어." - 예스터데이 중


"모든 여자는 거짓말을 하기 위한 특별한 독립기관을 태생적으로 갖추고 있다." - 독립기관 중


"인생이란 묘한 거야. 한 때는 엄청나게 찬란하고 절대적으로 여겨지던 것이, 그걸 얻기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내버려도 좋다고까지 생각했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 , 혹은 바라보는 각도를 약간 달리하면 놀랄 만큼 빛이 바래 보이는 거야." - 셰에라자드 중

"어느 날 갑자기, 당신은 여자 없는 남자들이 된다. 그날은 아주 작은 예고나 힌트도 주지 않은 책, 예감도 징조도 없이, 노크도 헛기침도 생략하고 느닷없이 당신을 찾아온다." - 여자 없는 남자들 




#3. 표지에 대해서...

   국내판 단편집 표지는 수록작 중 '예스터데이'의 주인공의 꿈 속에서 나타나는 이미지를 실체화한 표지인 것 같습니다. 신비롭고 몽환적인 것이 하루키 센세와 잘 어울리기는 합니다. 그런데 일본에서 발간된 표지는 사뭇 느낌이 다릅니다. 전형적인 하루키 센세의 작품들에서 많이 느낄 수 있는 특징들을 잘 잡아낸 그림이기도 하고 상대적으로는 상당히 가볍습니다. 개인적으로 일본판 표지가 더 낫다는 생각은 별로 안들지만 이 단편집의 표지 느낌은 조금은 더 가볍게 갔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음.. 일본판 표지도 아쉽고, 국내판 문동 표지지도 멋지기는 한데 너무 무거워서 아쉽습니다. 단편집이니 만큼 조금은 더 부담없는 표지였으면 어땠을까 생각해봅니다. 어차피 개인의 취향이니 뭐가 좋다 나쁘다 할 사항은 아닌데 국내로 넘어오면 뭐든 무겁고 진지해지는 부분이 조금 마음에 걸립니다. 얼마전에 문학동네에서 표지 투표를 했었는데 정작 결정된 표지는 그 당시 투표한 후보들 중엔 없군요. 저는 두 가지 정도가 마음에 들었었습니다.

 

 

       

 

 

   왼쪽 표지 정도의 느낌이 가볍고 좋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말입니다.

 

여튼 굉장히 재미있게 반갑게 읽은 하루키 센세의 단편집 [여자 없는 남자들]이었습니다. 읽는 관점에 따라서는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그저 '명불허전'이라는 표현이 딱 맞는 작가라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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