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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제이의 만화 한국현대사 1 - 깡패의 탄생, 이승만부터 김대중까지 대선 전쟁
굽시니스트 글.그림, 이이제이 원작 / 왕의서재 / 2014년 8월
평점 :
절판

#1. 정사와 야사, 명분과 진실의 사이...
정사(正史)란 각 나라의 왕조가 정통성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역사서를 말합니다. 이에 반해 야사(野史)는 개인이 기록한 비공식적인 역사서를 가리킵니다. 이런 관점에서 [이이제이의 만화 한국 현대사]는 전형적인 야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팟캐스트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며 대한민국 현대사는 물론 정치적 이슈를 집중적으로 다뤄 왔던 '이이제이'의 방송을 토대로 하고, 풍자와 해학이 넘치는 '굽본좌 - 굽시니스트'의 해석과 그림으로 탄생한 [이이제이의 만화 한국현대사]는 그야말로 생생히 살아있는 역사 이야기입니다. 물론 기본적인 서술 형식은 물론 서술의 주체도 국가가 공인하는 것도 아니고, 굉장히 객관적이고 중립적이지도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대놓고 '야사'입니다.
그런데 정사라는 것, 즉 국가가 공인하는 역사라는 것은 있었던 일을 주관적 견해없이 사실만을 있는 그대로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정권의 정당성과 명분, 정통성을 최대한 확보하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역사를 저술할 때, 권력을 가지고 있는 정권에 불리한 부분에 대해서는 최대한 감출 수 밖에 없는 것 또한 그 권력층의 당면 과제이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전두환 대통령 각하 시절 뉴스는 항상 첫머리를 '각하께서는 오늘 ~~에서 골프를 치시며 정국을 구상하셨습니다..' 뭐 이따위의 시덥잖은 내용으로 시작했던 것이 제 머리속에 각인이 되어 있는 것 입니다.
그러고보면 순수했던 그 때는 TV나 신문 등에 담긴 내용은 늘 진실만을 있는 그대로 전달한다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 기본적인 생각 자체도 언론매체와 교육을 통해 형성되었다는 사실이 참으로 무섭습니다. 실상 조금만 생각해보면 그 시절에는 언론이라는 것 자체가 '프로파간다'의 핵심 도구 역할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을텐데 말이죠. 한편 교육이라는 것도 말잘 듣는 시민양성과 다스리기 편한 국민 만들기의 일환으로 진행된 부분이 없지 않아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게다가 더 한심한 것은 지금도 모양새만 조금 세련되었지 본질은 조금도 변함이 없다는 점입니다. 다만 지금은 권력의 직접적인 통제가 두렵다기 보다는 언론을 좌지우지하는 자금의 영향이 더 큰 점이 차이라면 차이겠습니다.
이렇게 장황하게 정사니 야사니 언론이니 서론을 쓰는 이유는 우리가 특별히 역사 전공자가 아닌 이상 심도있게 고민해가면서 한국사를 접할 일이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정사가 정사가 아니고 야사가 야사가 아닌 우리의 상황을 분명히 인식하기가 어려운 문제가 발생하고, 그저 쉽게 접할 수 있는 언론이나 대중매체를 통해 편향된 역사 인식을 가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만큼 정상적인 루트를 통해 우리의 아픈 역사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방법이 없다는 점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만화 한국 현대사]에 녹아있는 역사의 적나라한 장면들을 대하면서 '이게 진짜인가? 이 양반이 정말 이런 사람이었단 말인가?' 하고 혼란스러워 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 참으로 답답한 현실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너무도 일상화 되어있는 SNS 등을 통해 실시간으로 전달되는 현장의 상황들을 대하는 와중에도 굳건하게 쇼를 하며, 국민들의 눈과 귀를 막고 바보취급하며 우롱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듯 능청스러운 언론의 행태를 바라보자면 그들의 '사는 것의 구차함'이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생존의 존엄'이랄까 뭐 이런 것들이 가슴을 조여오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만화에 등장하는 에피소드들이 모두 진실인지 아니면 허구인지 분별할 능력을 가지고 있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무엇이 진실인지 아닌지 따져보고 고민해보기 위해서 [이이제이의 만화 한국 현대사]는 무척이나 필요하고 유용한 책임은 분명합니다. 적어도 제가 보는 시각에서는 이 책에 담겨있는 내용이 사실에 훨씬 더 가까울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2. 파란만장했던 한국 현대사, 그놈 참 웃프다...
저는 다행인지 불행인지(당연히 다행이겠지..) 정말 불행했던 6.25전쟁시절이라든가 이승만 정권이라든가, 박정희 정권을 온몸으로 겪어보지는 못했습니다. 사람들이 삼청교육대에 끌려가고 어느날 갑자기 간첩이라며 잡혀들어가던 그 시대에 이 땅에 없었거나 좌우분간 못하는 아이였을 뿐이니까요. 더군다나 뭔가 따지는 것 자체를 싫어하고 그저 되는대로 흘러가는 것을 좋아하는 저의 성향은 역사를 공부하고 배우는 일 따위와는 상관없는 삶을 살게 했습니다. 마지못해 국사책을 외우는 것 외에 그다지 역사와는 친하지 않았지요.
저 같은 사람에게 딱 좋은 책이 바로 이런 만화 역사책이 아닐까 합니다. 제 아이와 같이 읽어야할 만한 만화책이지만 이 책에 담긴 내용을 보자면 내 아이가 감당한 내용은 아닌 듯 합니다. 역사와 역사속 주요 인물들의 어두운 이면을 많이 주목하고 있으니까요. 사실 어떤 모임이나 조직 등에서 특정한 사안에 대해 정책적인 결정을 내릴 때, 무척이나 신중하고 복잡한 의사결정 과정을 거치지만 결국에 가서는 최고 권력자의 의중대로 결정되는 것이 '거의 다'라해도 무방할 정도로 만연해 입는 것이 현실입니다. 우리나라라는 큰 조직의 역사 역시 이런 한계에서 한치도 어긋나지 않습니다. 조금도 예외없이 최고권력자의 의중대로 움직여 왔습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이승만 전 대통령 같은 케이스가 그 대표적인 케이스가 되겠습니다. 다른 사례도 사실상 정도의 차이만 있을 따름입니다.
이 책에서는 정치권력자들의 뜻대로 모든 상황을 통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힘을 키워왔던 정치깡패의 탄생과 속성과 역사는 물론 이승만 정권의 명암과 김대중 대통령에 이르는 시기까지의 대통령 선거 정국의 여러가지 상황과 일화를 흥미롭게 그려주고 있습니다. 가독성도 좋고 내용도 워낙 재미있다보니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후루룩, 호로록 읽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그 와중에서도 대한민국 현대사가 흘러흘러온 2014년이 딱하기도 하고, 어쩔 수 없었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고 심경이 복잡했습니다. 권력의 특징이겠지만 권력자의 내배 채우고 나라망치기 대작전은 참으로 성실히 진행되어 온 것만 같습니다. 지금 이시간에도 쉬지 않고 성실하게 진행하고 있는 듯한 상상이 듭니다. 국민들의 좋은나라 만들기 대작전도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지만 그 방법론과 청사진이 전혀 다른 두 집단이 동시에 진행하려고 하니 죽도 밥도 안되는 그런 상황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러다보면 핵심은 어디론가 도망가고 없고 집단간의 대립을 위한 대립만 남게 됩니다. 둘로 나누면 싸우는 신기한 습성, 같은 집단을 또 둘로 나누면 그 둘간에 또 싸우고 다툽니다. 한국인들의 재미있는 속성, 아니 인간의 변치않는 속성이 아닐까 싶습니다. 과거로 부터 한치도 제대로 나아가지 못한 것만 같은 대한민국의 현대사... 참으로 웃픈 현실입니다.
#3. 진보적 색채의 서적이 갖는 한계에 대해서...
거시적으로 길게 떠들만큼 고민을 한 적은 없지만 이 책을 대하면서 심경이 복잡했습니다. 과연 정치성향, 아니 투표성향이 양념반 후라이드반 처럼 깨끗하게 갈라져 있는 우리나라에서 이 만화의 위상 혹은 역할은 얼마나 될까? 좀더 실제적으로 이 만화를 통해 역사에 대한 다른 인식을 가지게 되는 기회를 얻을 사람은 몇이나 될까 하는 생각 말입니다.
사실 지난 대선을 전후로 특히 진보적 색채가 강한 대안 미디어, 대안언론이라 불리는 많은 개인 미디어의 숨은 능력자들이 정치적인 견해는 물론이고 인문, 과학, 예술, 대중문화 분야 등으로 쏟아져 나와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을 공유하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기폭제가 된 것은 물론 '나는 꼼수다' 였을 것이고 일단이 대안 미디어는 대선 멘붕 직전까지는 상당한 위세를 떨친 것 같습니다. 대선을 겪으면서 저 개인적으로는 굉장한 충격을 받았는데, 그것은 단순히 어느 진형이 이기고 졌다는 것 보다는 이나라에 형성되어 있는 진형논리가 굉장히 견고하고 그것이 생각보다는 굳건히 지켜지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결국은 좀더 수면위로 드러나는 진보측만 기세를 올린 상황이었지요. 수면아래 굳건한 보수 지지세력이 결집하고 있었고 말입니다. 여튼 그 와중에 시작하고 아직까지도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대안미디어가 '이이제이'인 듯 합니다. 굳이 덧칠을 하자면 [이이제이의 만화 한국현대사]는 흔히 말하는 진보적 색채가 강한 역사 해설서 정도가 되겠습니다. 진보적이다는 표현이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모르겠지만 저는 좀더 실체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내용자체가 그러합니다. 숨김없고 가감이 별로 없습니다. 인물평가가 너무 부정적인 면은 그럴만 하다 싶기도 하고 말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도 한계라고 생각되는 것은, 결국은 제가 마음대로 '정사'라고 표현한 기존의 강고한 현대사를 비판하는 기본적인 관점은 피할 수가 없다는 점입니다.
신선하고 새롭다는 것은 오랜동안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여져 온 이야기와 설정과 이미지가 형성된 인물에 대해 전혀 다른 모습을 파헤치고 새롭게 평가하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것입니다. 결국은 약간은 비꼬는 태도, 기존 질서를 부정하는 태도일 수 밖에 없는 것이죠. 저의 안타까움은 이 지점에서 발생합니다. 정치적 입장이나 견해라는 것은 생각보다 정말 강한 것이어서 왠만한 종교적 신념보다 더 맹목적입니다. 그리하여 한번 보수건 진보건 무관심이건 형성이 되면 좀처럼 바뀌지 않습니다. 더우기 자신이 지지하는 신념이 공격당하는 상황에 닥치면 본능적으로 적대적 태도를 취하게 됩니다. 그러니 기존 역사적 사실로 여겨지던 것들을 부정하고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이 책은 절반 이상의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불편하고 거북한 책이 될 가능성이 높은 것입니다. 반면 원래 진보적이던 사람들이 무릎을 치며 옳구나 옳아! 감탄하며 읽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결국은 이런 류의 서적이 갖는 역할은 각자의 진형 논리를 강화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니까 종교로 따지면 전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종교인의 교리 강화의 역할만 담당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지요. 물론 이도 저도 아닌 중립지대에 있던 독자에게 뭔가 큰 깨우침과 같은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습니다.
초반에 불편한 설정, 비속어나 은어의 등장에 벌써 마음이 쌔하면서 불안했습니다. 이런 식의 좋게 말하면 풍자요 나쁘게 말하면 비꼬는 식의 표현으로는 결국 성향이 다른 독자를 설득시키기는 커녕 역작용만 일어날 것이라는 불안이 깊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이 책은 결국 반쪽짜리 훌륭한 역사책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참으로 정말로 다행스럽게 '이이제이'팀이 밝히고 있는 것처럼 초반에는 관심과 이목을 끌기 위한 자극적인 배치가 있었던 모양이었습니다. 갈수록 흡입력도 좋고 거부감도 없는 건전한 쪽으로 진행되어 다행스러웠습니다.
그 유명한 다이야몬드 옹이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에서 소리높여 외친 바와 같이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우선 상대방의 입장과 마음을 존중해야 합니다." 굳이 비판을 넘은 조롱보다는 존중의 태도를 유지하는 가운데 할수만 있으면 고상하게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이 결국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 아닐까 합니다. 정말 훌륭한 디테일과 방향성에 비해 정말 전 국민의 대중성을 얻고 현대사 서적의 한 획을 긋기에 부족함이 없는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읽은 이후에도 제 마음에 약간의 불안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아쉬움인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