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드롭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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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 처음 만난 데니스 루헤인의 작품, 묘한 매력이 있다.

 

   데니스 루헤인이라는 이름(스펠링을 봐선 르헤인이어야 할 것 같지만)은 참으로 지겹도록 들었고 그의 작품도 많이 봐왔1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 읽어 볼 생각이 안들더군요. 저같은 경우는 크게 두가지 이유로 유명작가의 책을 읽는 것을 망설이게 되는데, 첫번째는 사놓은 책도 많고 읽어야 할 책도 많지만 읽을 수 있는 시간은 한정되다 보니 마음에 드는 작가를 자꾸 늘이는 것이 부담이 되는 것 때문입니다. 두번째 이유는 약간의 강박처럼 한 작가의 작품이 여러개 출간된 상황이면 되도록 첫 작품 또는 국내 첫 출간 작품부터 순서대로 읽어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있다보니 이미 많은 책이 소개된 작가의 경우는 시작이 망설여지게 됩니다. 손대면 일단 다 사야하니깐^^

 

   잡설이 길었는데 여튼 중요한 건 그래서 데니스 루헤인을 살짝 살짝 피해 왔다는 겁니다. 그러다가 이 작품으로 처음 만나네요. 상당히 신기한 매력이 있는 작가인 듯 합니다. 뭔가 남성적이랄까? 거침이 없다고 해야하나? 그러면서도 세심한 심리묘사도 있고 말이죠. 하지만 결론적으로, 이 작품만 놓고 볼때는 확 빠져드는 느낌은 없었습니다. 중 후반에 가서야 어느정도 흡입력이 있다고 느꼈으니까요. 제게 있어 최고의 작가 중 하나에 이름을 올리기는 아직 성급하고 좀 더 읽어봐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2. 더 드롭,  "개를 데리고 다니는 남자"의 확장판

 

   이 작품의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단편 "개를 데리고 다니는 남자"와의 상관관계입니다. 무척 재미 있었습니다. 이 작품이 작가의 단편 "개를 데리고 다니는 남자"를 토대로 쓰여졌다는 이야기를 줏어들었습니다.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할 수만 있다면 순서대로 읽는 걸 선호하는데다가 "개를 데리고 다니는 남자"는 단편이다 보니 짧은 시간에 읽을 수 있어서 이 작품을 먼저 읽어봐야겠다 했습니다. 종이책으로는 출간이 안되었고, 전자책으로만 출간되었는데 기억엔 없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제가 이 전자책을 소장하고 있어서 바로 읽어볼 수 있었습니다.

 

   "개를 데리고 다니는 남자"를 읽고 보니 '응? 이거 뭐지? 끝난건가?' 싶을 정도로 짧고 딱히 내용이 없었습니다. 뭔가 문학적인 기교나 가치가 있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제가 보기엔 그냥 그런 단편이었어요. 언급할 내용이 정말 없습니다. 주인공이 우연히 개를 주으면서 그 집앞 여자를 만나고 뜻밖에 개를 키우게 되었는데 정이 들무렵 주인이 개를 내놓으라고 하더니 돈을 요구해요. 그래서... 킁. 이런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개를 데리고 다니는 남자"를 읽은 상태로 [더 드롬]을 읽으니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더 드롭] 안에 "개를 데리고 다니는 남자"있다. 뭐 이런거 거든요. 단편의 내용, 심지어 단락을 통으로 똑같이 잘 살리면서도 풍성하게 이야기를 확장시킨 확장판 같습니다. 하도 신기해서 도표로 만들어 봤어요.   

 

 

    이런 식이예요. "개를 데리고 다니는 남자"의 일부분이 중간에 통으로 똑같이 나오기도 하고, 약간의 변형만 준 상태로 들어가기도 합니다. [더 드롭]을 읽으면서 "개를 데리고 다니는 남자"의 일부분이 어디에 집어 넣었는지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하더군요. 중반 이후로 언급이 안되길래 '뒷 부분은 내용이 완전 바뀌나보다'했는데 말미에 가면 다시 "개를~~"의 후반부 내용중 일부를 단락 채로 가져다 썼더라구요. 그냥 [더 드롭]만 놓고 보면 눈물나게 재미난 작품이 아니었는데 비교해서 읽으니 제법 재미졌습니다.

 

 

#3. 솔직하고 적나라한 표현이 주는 편안함과 현실감

 

   이 작품을 읽으면서 눈에 띄게 특징적인건 서술이 구어체 같은 느낌이 많았습니다. 편안하게 욕지거리 같은 것도 포함되고 말이죠. 아주 솔직한 표현, 적나라한 표현이 자주 등장했습니다. 그래서 거리낌없이 읽을 수 있었죠. 우리와 문화가 많이 다르지만 어두운 세계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가 살아있죠. 이런 부분들이 높게 평가되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바른생활 사나이인 저는 별로 흥미가 없는 내용이었어요. 술도 안마시는데 까짓거 뭔 상관인가 싶은 내용들, 어두운 뒷세계를 사실적으로 그렸다지만 그저 인생 찌질하게 주변사람 피해주면서 살아가는 인물들의 이야기 같은... 그런 느낌이 공감되 안되고 하다보니 그냥 이야기였습니다. 감정이입이 크게 안되는 이야기 같은 이야기말이죠.

 

   편안하고 실감나게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실감이 나는 것이지 현실 같지는 않더라는 말입니다. 현실보다 더 현실에 가까운 것이 소설이 아닌가 하는데 말이죠. 반면 현실은 상당히 소설같은 경우가 많죠. 이 뒤죽박죽이 사람들이 소설을 읽게하는 원동력 중에 하나라고 보는데 적어도 저에게 이 작품이 이런 뒤죽박죽을 동반한 몰입감을 주지는 못했습니다. 혹시 기회가 된다면 다른 작품을 접해봐야겠습니다.

 

   이 책을 읽으실 분은 반드시 "개를 데리고 다니는 남자"를 먼저 읽어보고 읽으시길 권해드립니다. 비교해보는 맛이라도 있어야 더 흥미롭게 읽으실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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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좌의 게임 1 얼음과 불의 노래 1
조지 R. R. 마틴 지음, 서계인 외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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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1. 성인(Rated R) 판타지의 대작을 만나다.

   미드로 먼저 만난 조지 R.R 마틴의 얼음과 불의 노래 1부 [왕좌의 게임]을 드디어 읽었습니다. 아직 왕좌의 게임 중에서도 1권을 읽었을 뿐이지만 딱 한권만 읽어봐도 견적이 딱 나옵니다. 제대로 된 성인 판타지입니다. 판타지가 사랑받기 힘든 척박한 문화인 국내에서 그나마 유명한 판타지는 대부분 영화화 되어 소개된 작품들입니다. 이들 중에 성인 판타지 왕좌의 게임과 정면으로 대비되는 시리즈는 해리포터 시리즈일 것입니다. 상대적으로 해리포터 시리즈는 완전 유아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솔직히 저는 좀 너무 애들 이야기 같아서 한 두편 보다가 접었습니다. 수많은 해리포터 팬들이 화를 내실지도 모르겠지만 그만큼 왕좌의 게임은 성인물이라고 해야할 만큼 강력합니다. 그리고, 대작이 그러하듯 훌륭합니다. 쉽게 "재미있다"라는 표현으로는 성에 차지 않습니다.

   왕좌의 게임이 성인 판타지인 이유는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엄청 폭력적이다.
   2) 성인들의 권력과 권모술수의 세계가 이야기의 주를 이룬다.
   3) 애정하는 주인공이 처절하게 순식간에 죽어나간다.
      : 이 충격은 내용의 폭력성보다 훨씬 큽니다. 주인공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인물이 급사할 때의 놀라움이란.. 물론 1편에선 거의 등장하지 않으니 이번 책의 리뷰 내용으로는 적합하지 않는 특징일 수도 있겠습니다.
   4) 절대선도 절대악도 등장하지 않으며 교훈적이지도 개몽적이지도 않다.


#2. 조지 R.R 마틴

   처음 이 작품을 접했을 때 엄청난 대작일 거라 예상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반지의 제왕, 호빗, 실마릴리온 등의 저자 J.R.R 톨킨, 나니어 연대기의 C.S 루이스, 해리포터 시리즈의 로앤 K. 롤링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판타지 작가들처럼 기본적으로 이름에 영어 약자가 한개 이상은 들어가 주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름이 길어서 그냥 줄인 표기이기는 하겠지만 말이죠. 일단 이름에서 벌써 와우, 판타지 좀 쓰겠구나 하는 느낌이 팍팍 들게 했다는 것입니다. 언듯 보면 톨킨이나 마틴이나 비슷하달까? ㅋㅋ심지어 R이 두개 더블 R이지 않습니까?

   이 양반 궁금해서 찾아보니 SF, 호러, 판타지를 두루두루 막 쓰신 분이십니다. 재미있었던 것이 어린시절 지루한 동네에서 제대로된 문학작품은 접하지 못하고 허접한 책들을 읽다가 답답해서 자기자신의 이야기를 쓰게 된 케이스라는 점이었습니다. 내 아이가 훌륭한 판타지 작가가 되길 원한다면 엄청 지루한 동네에서 키우면서 다른 유명한 작가의 작품을 읽지 못하게 하란 충고까지 하고 있으니 웃기는 분이십니다.

   대충 나이가 60대 중반 정도 된 것으로 보이는데 제발 벽에 똥칠할 때까지 건강히 살다가 이 시리즈는 종결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거나 배우자, 아이가 죽는 일이 아닌 다음에야 재미진 이야기가 중간에 끊기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일도 없으니 말입니다.



#3. 하나하나가 다 주인공인 입체적인 구성

   아무래도 환타지 하면 특정한 영웅이 주인공이 되어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가는 경우나 한 주인공이 여러가지 사건을 겪으며 중요한 인물로 성장해가는 성장형 영웅소설이거나 그것도 아니면 특정한 세력이나 나라가 악의 세력을 어려운 여건에서도 이겨내는 이야기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왕좌의 게임에는 딱히 주인공이라고 할만한 인물이 없습니다. 다수의 주인공 체제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것이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여러 가문이나 세력이 각자 형편에 따라 제 각기 노력하고 투쟁하고 사랑하고 처신하기 때문입니다. 일방적으로 응원하기도 애매하고 미워하기도 애매한 그런 상황을 연출합니다. 그나마 1권에서는 스타크 가문이 가장 중심이 됩니다. 아직까지는 스타크가가 주인공이 되어 이야기 전체를 이끌어 갈 듯도 한 느낌입니다.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방식이 여러 캐릭터를 순차적으로 돌아가며 설명도 하고 입장도 밝히면서 전체의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그러므로 한명 한명의 캐릭터가 다 중요하고 독특합니다. 게다가 특정 캐릭터가 더 선하거나 악하지만도 않습니다. 각자의 개성과 입장을 가진 특별한 존재들입니다.


#4. 환타지이기 보다는 중세 역사물과 같은 현실성 강한 서사

   왕좌의 게임에는 엘프니 오크니 마법사니 하는 환타지의 중요 요소들이 전혀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저 이 이야기가 펼쳐지는 배경이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세계일 뿐입니다. 그 부분을 제외하면 그냥 역사물 같은 느낌입니다. 반지의 제왕처럼 약해 보이는 선이 절대악을 결국에는 물리친다는 선악구조도 아니고, 등장인물들이 힘을 모아 공통의 목적을 이루는 목적지향적인 이야기도 아닙니다. 그냥 철저히 리얼리티가 넘치는 약육강식, 다면적 인물들의 투쟁의 기록일뿐입니다. 제가 정말 대단하다라고 감탄하는 지점이 바로 이 지점인데, 이렇게 다채로운 관점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도 되는 것인가 싶을 정도입니다. 그러다보니 사실 드라마를 접하지 않고 바로 이 책을 읽기 시작했으면 대혼란에 빠졌을 듯 합니다. 그나마 드라마를 보았던 기억이 있고 전체 스토리를 이미 이해하고 있는 상황에서 읽었기에 혼란없이 좀더 세세한 부분까지 빠뜨리지 않고 읽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 The winter is comming, 겨울이 오고 있다...

   이 한 문장으로 이 시리즈의 기대감을 고조시킵니다.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이 문장은 앞으로 이 작품이 점점 혼란속으로 빠져들거라는 예언과도 같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독자를 몰아붙일 대 서사를 준비하고 있으니 각오하라는 듯한 이야기로 들리면서 드라마에서도 그랬지만 책 속에서 이 문장을 만날 때마다 가슴이 설레였습니다. 겨울이 오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현실에서는 봄이 왔으면 좋겠는데 우리가 사는 세상은 갈수록 추운 겨울로 가고 있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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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드 인 공장 - 소설가 김중혁의 입체적인 공장 산책기
김중혁 글.그림 / 한겨레출판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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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역시 '김중혁' 님이시다.

 

   저는 김중혁 작가님의 글을 무척 좋아합니다. 소설은 또 다른 이야기이긴 하지만 에세이류는 작가의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어가게 되기 때문에 에세이를 읽다보면 저자가 저랑 궁합이 맞는지 안맞는지 어느정도 느낌이 오게 마련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김중혁 작가님은 저의 Favorite 작가일 수 밖에 없습니다. 너무 진중하고 심각한 글은 무척 부담스럽고 힘들거든요. 저는 인생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유머"와 "위트"라고 생각하니까요.

 

   이 양반 언제봐도 유머가 있습니다. 피식피식 웃게 만드는데 그저 어이없게 웃겨서가 아니라 내용있는 웃음을 주는 편입니다. 스스로 가볍게 만들어서 독자와의 간극을 줄일 줄 아는 작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글도 잘쓰는데다 그림까지 훌륭하니 역시 김중혁이라는 표현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랑해요 김중혁!!!

 

 

#2. 세상에 공장이 참 많다.

 

   이 '공장'이란 어감이 참 중공업스럽습니다. 뭔가 무겁고 거리감이 느껴지는 단어입니다. 공대출신인 저도 그러니 아마도 대부분은 뭔가 친근하지 않고 딱딱하고 삭막하고 시끄러운 이미지를 떠올리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공장하면 '라인'이라고 부르는 컨베이어 밸트에 사람들이 서서 각자 공정을 맡아서 제품을 차츰 차츰 조립해서 완성해 나가는 장면이 떠오르니까요. 실제로 공장은 무척 다양할텐데 일반적으로는 상상력의 한계인지 경험의 한계인지 떠올리는 장면은 늘 스테레오타입인 것 같습니다.

 

   이 책이 처음 봤을 때 별 희한한 기획이라는 다 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잠시 생각해보니 김중혁 작가라면 뭐, 잘 어울린다 싶었습니다. 그리고는 이 책은 꼭 읽을 수 밖에 없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작가님이 얼마나 흥미롭고 독특한 곳을 다니며 특유의 위트와 유머를 섞은 좋은 이야기들을 들려줄까 무척 기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공장이 참 많습니다. 공장이란 무언가를 생산해 내는 곳이니까요. 정의하기 나름이지만 블로그에 글을 쓰는 블로거 각각이 생각공장 공장장이 아닐 수 없습니다. 생산되는 제품의 품질은 차이가 날지 모르겠지만 어차피 무료인데다 원래 불량식품이 더 땡기기 마련이니 다들 의미는 있는 공장이 아닌가 싶습니다.

 

"일을 하고,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으로 위로를 받는다. 인간들은 대체로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는 비슷하게 살아가고 있으며 또, 모두 연결되어 있다고, 서로가 서로를 돕고 있으며 서로가 서로의 부분을, 부품을, 생산하고 있다고, 나라는 존재는 수많은 사람들의 생산으로 만들어진 조립품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지구라는 거대한 공장에서 서로를 조립하고 있는 셈이다." p009

 

 

#3. 재미난 공장들, 더 재미난 생각들.

 

   작가가 재미난 공장들을 많이도 탐방했습니다. 소설가이자 글쓰는 직업이 직업인 만큼 제일먼저 종이만드는 제지공장에 다녀왔더군요. 글을 쓰는 일은 종이를 사용하는 일이고 이를 위해서는 수많은 나무들을 희생하는 일이니 글을 써서 책을 만들어낸다는 일이 자연보호와 배치되는 부분이 있다는 생각은 참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책은 만들되 최대한 재생을 하는 방법을 고민하는게 좋을 듯 합니다.

 

   근데 두번재로 들른 공장이 "콘돔"공장이라니 작가의 관심은 역시나 글 다음은 콘돔 거시기 인건가요? 심지어 다음 순서는 브래지어 공장입니다. 이게 한계레에 연재된 글이니 아마도 초반에 관심을 끌기 위해 의도적으로 기획한 순서가 아닐까 라며 작가님을 보호해드려야겠습니다.

 

   지구본 공장도 있고 초코릿 공장, 엘피판 공장, 피아노 공장도 흥미로웠고 맥주 공장, 라면 공장 다 좋았지만 사실 저는 중간즈음에 끼어있는 '김중혁 글 공장 산책기'가 가장 관심이 가고 좋았습니다. 설렁설렁해보이고 늘 쉰소리를 많이 하는 편인 김중혁 작가는 대충대충 이미지로 비쳐질 수 있고 저도 사실 좀 그런 식으로 생각을 했는데, 이 글 공장 꼭지를 통해 밝혀주고 있는 글쓰는 과정을 살펴보다보면 상당히 꼼꼼하고 체계적이며 효율적인 글쓰기 시스템을 스스로 보유한 작가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좋은 작품을 많이 쓴 유명 작가들 중에 하루키처럼 상당히 금욕적이고 규칙적으로 생활하는 작가가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김중혁 작가도 이 범주에 넣어드려야 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4.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경계에서 조화를 생각하다. 

 

   아무래도 작가가 년식이 있다보니 공장에 들를 때마다 각 공장의 과거와 현재의 위상차이에 대한 단상이 많이 나옵니다. 저는 작가보단 다행히 어리지만 안타깝게도 작가의 회상이나 옛 기억들을 대부분 공감할 수 있었... 흠... 좋아해야하는건지... 여튼 작가와 어느정도 연배가 맞아야 좀더 공감하며 즐겁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과거에 호황을 누렸으나 최근에는 운영이 어렵고 다른 활로를 모색하는 공장들도 꽤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엘피제작 회사 같은 경우, 요즘에 매니아들이 아닌 이상 엘피판을 사서 턴테이블에 올려서 듣는 사람들은 거의 없고 대부분 스마트폰으로 다운받아 듣는 디지털 세대에 살아남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그럼에도 엘피가 사라지지 않고 생산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공장분들의 모습이 아름답고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피아노의 경우도 아날로그 피아노가 사라져가긴 마찬가지 입니다. 도자기 공장 역시 예전만 못한 것은 물론 기술을 이어갈 후학을 찾기도 힘든 실정입니다. 시대의 흐름을 무시할 수도 없을 뿐더러 누가 억지로 흐름을 만들수도 없는 것이기는 하지만 시대의 변화에 무관하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지혜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종이책과 전자책, 엘피와 시디, 비디오테이프와 디브이디, 아날로그는 부피가 크고 불편하지만 소수의 지지자가 있고, 디지털은 작고 간편하며 많은 사람들이 손쉽게 사용한다. 어쩌면 그건 고속버스와 시외버스의 차이인지도 모르겠다고, 잠이 덜 깬 상태에서 생각했다. 고속버스는 최대한 빨리 목적지로 데려다 주지만, 많은 정류장을 생략할 수밖에 없다. (중략) 빠른 건 빠른 대로 중요하고, 느릿느릿 돌아가는 건 또 그것대로 필요하다. 어떤 게 더 낫다는 주장이 아니라 둘 다 필요하고, 둘 사이의 균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p.182

 

 

#덧,   한 꼭지가 끝날때마다 끼어있는 "사물의 뒷면"이라는 쉬어가기 페이지도 무척 김중혁스럽게 좋았습니다. 내용 다채롭고 부담없고 재미있고 공감갈만큼 작가의 이야기가 좋은데다가 심지어 길지도 않으니 어찌 읽지 않을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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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림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27
안치우 지음 / 황금가지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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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대로된 한국형 탐정소설을 만나다.

 

   안치우 작가의 작품은 처음입니다. 이 작가의 근작 [재림]의 초반부를 읽으면서 첫인상처럼 느낀것은 글이 섬세하고 탄탄하다는 점이었습니다. 표현도 깔끔하고 한편으로는 기교가 있지만 억지스럽지 않아 상당한 베테랑의 글처럼 여겨집니다. 가독성도 좋고 부자연스러움 없이 편안하게 읽히는 점도 장점입니다. 물론 지나치게 문학적인 용어나 단어를 사용하려 애를 쓴 듯한 모습이 조금은 거슬리기도 했지만(저 같은 사람은 평생 듣도보도 못한 단어들을 꽤나 사용하고 계십니다. '워낙에 일반인이 안쓰는 단어들'을 일부러 연구하시기라도 한 듯 특히 초반에 많은 단어들을 쏟아붓고 있었습니다.) 전반적으로는 상당히 훌륭합니다.

 

   주요 등장인물들도 굉장히 인상적입니다. 사실상 원 톱 주인공이라고도 볼 수 있는 '권민'이라는 인물은 왠지 '셜록홈즈'스러운 지나친 능력자입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력이 넘칩니다. 남성적인 여성 '권민'과 대조적으로 여성적인 남성인 '승주'의 등장도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게다가 변호사의 신분으로 탐정까지 하는 독고잉걸의 존재는 절로 웃음을 자아냅니다.

 

   이 들이 펼치는 한국형 탐정 보고서와 같은 이 작품들은 한국의 특수한 상황에 맞춰 한국인의 일반적인 정서에 최적화된 스토리 전개로 편안하게 공감을 이끌어 냅니다. 이 작품을 대하면서 문학적으로 훌륭하니, 완성도가 어떠니 하는 문제를 떠나서 해외에 나가서 뭔가 속이 느글거리고 있을 때, 김치에 라면을 끓여서 밥을 말아먹고 있는 듯한 느낌이 무척 좋았습니다. 역시, 우리것이 좋은 것인가 봅니다.

 

 

 #2. 민감한 문제를 직설적으로 다룬 용기있는 태도

 

   [재림]이라는 제목을 접했을 때 심상치 않았습니다. 매우 기독교적인 용어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사회에서 가장 민감한 문제가 종교, 교육, 정치적 견해 등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중 종교문제는 입장차이가 있을 때는 심각하게 대립하기 십상인 주제입니다. 그런면에서 저자가 종교 중 특히 한국 기독교의 폐단과 잘못된 종교적 신념을 매우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태도는 훌륭하다고 할 만 합니다.

 

   이 책에는 [재림]과 [만남, 그리고 시작]이라는 두개의 작품을 실려 있는데, 표제작인 [재림]에서 종교의 맹목성과 일방적 폭력성을 적나라하게 비판하고 있다면 재림의 프리퀄 겪인 [만남, 그리고 시작]에서는 해외 실종 유학생 문제와 더불어 이민사회의 문제, 대사관의 사대적 태도 등에 대해 거침없이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런 날선 비판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아서 잘못하면 균형을 잃기 십상입니다. 이 작품은 아예 대놓고 까고 있는 실정이라 균형이 어떠니 할 것도 없이 속 시원하기는 합니다. 다만 표현방식에 문제라고 한다면, 비판이 지나치게 직설적이란 점입니다. 그리고 이 직설적 비판이 또 너무 길어서 작품에 잘 녹아들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마치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탐정소설의 중간중간에 '한국 기독교의 폐단'이라는 논문이나 기고문을 여기저기 끼워넣어놓은 듯한 느낌입니다. 마치 '한번 잘 들어봐라'하고 '내 생각엔 한국 기독교는 말이야~~~'하고 몇 페이지에 걸쳐 계속 잘못된 점을 늘어놓는 택시기사 아저씨 같았습니다. 이런 상황이 되면 중간에 내리지도 못하고 무척 난감해지는 것입니다.

 

   좋은 작품이란 순문학이던 장르문학이던 상관없이 그 목적에 맞는 중심의 이야기가 물흐르듯 흘러가고 우리 사회가 가진 문제를 자연스럽게 풀어내 주는 작품입니다. 그 은유가 가지는 힘으로 인해 독자는 작품을 읽고나면 자연스레 문제의식을 가지고 비판정신을 장착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 작품 [재림]은 마치 이야기를 들려주던 저자가 갑자기 작품속에 개입해서 작가의 생각을 쏟아내는 느낌입니다. 적어도 비판을 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세련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작품 자체로 보았을 때 상당히 아쉬운 문제점이 있었는데, 작품속의 연쇄살인범의 진정한 범행동기가 사실은 종교적 맹신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저자가 계속 밝히고 있듯이 애초에 종교적 보복이나 응징이 아닌 묻지마 살인을 저지른 전력이 있고, 종교적 응징은 이 범인의 살인마적 충동을 더욱 부채질한 정도의 역할만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작품속에 노골적으로 묘사된 기독교적 혹은 종교적 맹신의 문제점을 극대화하고 싶다면 그런 잘못된 종교적 신념 때문에 연쇄살인사건이 일어났어야 합니다. 그래야, 종교의 탈을 쓴 살인마는 역시나 종교적으로 왜곡된 맹목적인 신앙으로 인해 이성적인 판단은 애초에 잃었고 인간의 목숨마져 경시하게 되었다는 결론이 나는 것입니다. 독자들은 이를 통해 저자가 비판하는 지점을 정확하게 이해하게 되는 것이고 말입니다.

 

    종교가 문제라고 엄청 강하게 비판했는데 막상 결말을 보니 역시나 예상했던 방법으로 종교적 응징을 한 것으로 보여지기는 하지만 모양새야 어찌되었건 꼭 기독교적 응징이 아니더라도 어차피 살인은 계속했을 사이코패스 같은 범인이었단 말입니다. 이게 비판하는 지점과 결론이 서로 사맛디 아니한 듯한 어색함이 남았다는 것입니다.

 

 

 #3. 프리퀄이 더 작가의 역량을 잘 드러내주는 작품?

 

   [재림]은 좋은 작품이고 재미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저자가 너무 힘을 준 소설입니다. 초반에 불필요하게 과한 문학적 단어의 남발(물론 그렇다고 문장이 이상하거나 하지는 않았음. 무척 좋았으나 나는 거슬렸다는 점!!)이 보였습니다. 공모전 당선 이후에 나온 작품이라 그런지 의욕이 넘쳐서 인지 작가의 목소리가 스토리를 뚫고 나와버려서 조금은 어색하고 불편한 작품이 되어버렸습니다.

 

   반면 프리퀄격인 [만남, 그리고 시작]에서는 지극히 적절한 용어와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문장표현이 빛나고, 이 소설의 주인공 들의 배경과 사연, 캐릭터를 잘 잡아주는 스토리가 인상깊었습니다. 이 작품을 통해 세명의 주인공에게 집중하게 되고 흥미를 충분히 느끼게 되었습니다. 조금 밋밋하다는 생각이 든다면 [재림]이 너무 과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아마도 [재림]을 전진배치해서 자극적이고 이슈가 될만한 이야기임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다시 과거로 돌아가 주인공들의 사연과 인연을 자연스레 설명하는 방식을 노린 것 같습니다. 좀 전형적일 수도 있지만 차라리 순서를 바꾸는 것이 맞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랬다면 재림을 좀더 편안하게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어쨌거나 두번째 작품이 훨씬 더 좋았습니다. 약간 힘을 뺀 느낌이 너무 자연스럽고 편안하고 좋았습니다. 저는 [재림]에서는 사실 갸우뚱? 했다가 [만남, 그리고 시작]에서 작가의 작가적 역량이 충분히 뛰어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마 다음 작품부터는 이 사랑스런 세 탐정들의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풀어놓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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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의 괴로움
오카자키 다케시 지음, 정수윤 옮김 / 정은문고 / 2014년 8월
평점 :
절판


 

 

 

#1. 장서는 독서와 전혀 다른 일이다.

 

   [장서의 괴로움]이라는 책 제목을 접했을 때, '아, 이 책은 읽지 않을 수 없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과한 책수집가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다분히 이 '장서의 괴로움'을 곧 겪게 될 것이 예견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직까지는 끄덕없지만 이제 슬슬 대비를 해두자' 하는 마음이라고나 할까요? (책 때문에 아이 학교 핑계대고 무리해서 큰집으로 이사하고, 이사할 때 큰방을 서재로 꾸미려고 갖은 애를 다 쓴 우리 부부가 과연 아직까지는 안전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을지 없을지 저도 모르겠습니다만...)

 

   장서(藏書)는 말 그대로 "책을 모아두는 행위"입니다. 사전적으로는 "서적을 간직하여 둠, 또는 그 서적"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장서는 책을 읽는 행위와 엄연히 구분되는 말입니다. 장서가는 책을 구해서 간직해 두는 것에 초점을 맞춥니다. 한마디로 책 욕심이 넘치는 사람, 수집욕이 가득한데 그 대상이 책인 사람을 말합니다. 대체로 책을 좋아하면 당연히 책을 많이 읽게 되겠지만,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는 것과 책 자체를 좋아하는 것은 또 다른 일이다보니 의외로 책을 많이 사고 모아두는 사람중에 독서를 많이 하지 않는 경우가 왕왕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비교적 악착같이 사놓은 책을 읽으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나 이상한 사람 아니라고 계속 어필하고 있음...)

 

 

 

#2. 장서의 괴로움에 공감하다.

 

   세상에 무시무시한 장서가가 무척 많은가 봅니다. 이 책에서도 장서가들의 예가 많이 나오는데 거의 일본인들입니다. 일본사회는 기본적으로 대부분 좁은 집에서 사는 경우가 많은 듯 합니다. 다다미 넉장크기니 다다미 여섯장 크기니 이런 표현들이 많이 나오던데 그저 몇평이냐가 편하지 크기가 잘 감이 안오긴 하지만 책장이 몇개 들어가니 하는 표현을 보면 그리 큰 집들은 아닌 듯 한데 이 좁은 곳에 그야말로 누울곳을 제외하고는 엄청나게 쌓아올립니다. 심지어 책 때문에 가구를 다 빼버린 사람들도 종종 있는 모양입니다.

 

   이 책에서도 설명하는 바에 따르면 적당한 장서의 범위는 책을 진열했을 때 책등이 다 보이도록 진열하고 어떤 책이 어디쯤에 있는지 찾을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이미 적당한 장서의 수준을 조금 넘기는 했습니다. 서재 책장엔 거의 뒷쪽 책이 안보일 정도의 이중주차..아니 이중주서가 상당히 진행되었습니다. 뭐 표지에서도 예상이 가능하지겠지만 주인공은 물론 대부분 언급되는 인물들은 발디딜 틈 없을 정도로 책을 사 모읍니다. 몰랐는데 일본에는 우리와 다르게 목재로 된 집이 무척 많은 모양입니다. 이런 집들은 모이면 무척 무거운 중량물이 되는 책을 많이 보관하기에 적절한 구조는 아닙니다. 중량에 약하다고 하네요. 실제로 집이 기울거나 내려앉은 사례도 있으니 말입니다.

 

   여튼 장서가는 결국 책을 모으고 보관하는 것이 주 목적이다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책이 점점 많아집니다. 그렇다고 책 사모으기를 중단할 수 없습니다. 그게 가능했다면 장서의 괴로움 따위를 애초에 생각할 필요도 없는거죠. 결국 계속 불어나는 책에 대한 괴로움을 토로하는 부분에서는 개인적으로도 상당히 공감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제 상황은 훨씬 증세가 덜하고 양호하다보니 오히려 안심도 되고, 위안도 되더군요.

 

"집에 같은 책이 있다는 사실도 잊어버리고 또 사는 지경이면 이상적인 독서공간이 슬슬 위험해진다는 신호다. 좁은 방에서 궁색하게 살 때는 누구나 좀 더 넓은 방에 살고 싶고, 책을 더 소장하기를 꿈꾼다. 하지만 욕망이란 끝없이 증식하므로 '이걸로 충분히 만족해'라는 선은 어디에도 없다. 넓은 방에 살면서 책이 늘어나기 시작하면 그땐 그 나름대로의 고뇌가 싹튼다."p53

 

   최근에도 같은 책을  중복으로 산 경험이 있는 저는 상당히 찔렸습니다. 그리고 욕망에 적정한 선이 없다는 것에도 깊이 공감하고 인정하게 되더군요. 저도 사실은 고뇌가 싹튼지 좀 되었습니다. 그러니 이 책을 집어 들었죠.

 

 

 

#3. 적당한 장서는 어느 수준인가?

 

   이 문제는 참 누가 나서서 딱 정해줄 만한 문제는 아닌 듯 합니다. 사람마다 환경이 다르고 사정이 다르니 말입니다. 그러나 몇만권씩 있는 사람들은 언제부터인가 책이 나를 잠식하기 시작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을 듯 합니다. 그리고 상당한 압박감을 받게 됩니다. 마치 처음엔 사람이 술을 마시지만 취하기 시작하면서 술이 사람을 마시는... (아니 술이 술을 마시는 건가?) 상황이랑 비슷하죠. 여튼 언제부터인가 탄력이 붙어서 스스로 제어가 안되는 지경에 이르고 맙니다.  이 책에서는 적당한 수준을 꼭 필요한 책 5백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책 5백권이란 칠칠치 못하다거나 공부가 부족하다는 것과는 다르다. 어지간한 금욕과 단념이 없으면 실현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를 실행하려면 보통 정신력으로는 안된다."p150

 

   결국 몇권을 소장하느냐의 문제는 욕망의 문제와 직결됩니다. 어떻게 보면 홈쇼핑 중독이나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사고 사고 또 사는 건 똑같은 거니까요. 다만 책을 산다는 이유로 조금 덜 나빠보이고 덜 세속적으로 보인다고 해야할까나. 어쨌거나 5백권은 대단한 금욕과 절제가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저같은 범인에게는 불가능한 조건인 듯 합니다. 게다가 우리는 부부가 모두 장서가 기질이 있으니 말입니다.

 

   한편으로는 수집 자체를 나쁘게만 볼 것은 아니라는 주장도 합니다.

 

"수집을 통해 수집된 물건으로부터 자신이 지금 무엇을 원하는지 깨닫고 생각의 방향성을 얻는 일이 종종 있다. 사람은 스스로 목적을 알 수 없는 단순한 호기심에서 물건을 수집하기 시작하지만, 수집한 물건은 언젠가 언어가 되고 문맥이 되어 사람을 지혜로운 길로 이끈다. 자신도 분명히 알 수 없는 어떤 호기심이 지혜의 결정체가 되어 간다."p170

 

   약간 궤변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일정부분 공감이 가는 표현입니다.  책을 모으는 행위 자체는 맹목적일수도 있지만 이 책을 잘 활용한다면 장서가를 지혜로운 길로 이끌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나치게 많은 책을 과감히 정리하는 지혜로운 길로 이끄는 것도 포함해서 말입니다.

 

 

 

#4. 이 책의 한계들..

 

   이 책의 가장 큰 한계는 저자가 일본인이라는 점입니다. 저는 한국인인데 말이죠. 이 사실에서 파생되는 이 책의 문제는 첫째, 주요 예시로 등장하는 인물과 작품이 모조리 시대를 넘나드는 일본인들이라는 것입니다. 당췌 그 많은 인물들 중에 제가 알아들은 인물은  하루키, 가쿠다 미쓰요, 마츠모토 세이초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언급되는 작품들은 하나하나 생판 첨 들어보는 작품들이고 유명인들인 듯 한데 전혀 모르니 흥미가 떨어지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두번째로는 모아두었던 장서가 소실되는 아픔에 대한 챕터에서 지속적으로 언급되는 전쟁당시의 공습에 대한 묘사는 약간의 불편함을 동반했습니다. 물론 이 책에서 공습을 받는 부분에 대한 역사적 가치판단은 전혀 없지만 어쨌거나 결과적으로 공습으로 피해자가 되는 상황을 지속적으로 묘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자취'라는 묘한 표현인데 이게 참 언제적 이야기인가 싶을 만큼 기묘했습니다. 한마디로 '자취'란 책을 제본부분을 절단해서 낱장으로 만든다음 그 한페이지 한페이지를 스캐너로 스캔해서 디지털 파일화 하고 전자문서로 변환하는 작업을 말합니다. 장서의 괴로움을 해결하는 주요한 수단으로 책을 팔아서 처분하는 것 외에 이렇게 전자문서로 소장하는 것을 대안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가만 생각하면 정말 할일 없는 사람들이나 할만한 방법이 아닐 수 없습니다. 300페이지 쯤 되는 책을 절단해서 페이지마다 스캔을 뜬다면 그 한권을 스캔하는데만도 엄청난 시간이 소요됩니다. 실제로 이 책에서 언급된 예시를 보면 4200권의 책을 '자취'하는데 1년 반이 걸렸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일본은 전자책 시장이 활성화가 안된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해결책입니다.

 

   그리고 장서정리의 최후 수단으로 '1인 헌책시장'을 열 것을 제안하고 있는데 이것도 저같은 개인이 책을 깔아놓는다고 얼마나 사 갈 것인가를 생각해보면 따라하기 어려운 해결책이기는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는 뭐, 그냥 알라딘 중고매장에 가져가서 매도하는 방법이 가장 현실적이지 않나 싶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책은 사고 싶고 사놓은 책은 읽었거나 안 읽었거나 한권도 내놓기 아까운 그 마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책에서의 조언처럼 책을 줄일때는 하나하나 골라서는 불가능하고 과감하게 불타버렸다고 생각하고 막 뭉터기로 버리거나 팔아야하는게 맞나봅니다. 여튼 저는 오십보 백보이기는 하지만 장서가 보다는 애서가이자 독서가가 되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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