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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의 괴로움
오카자키 다케시 지음, 정수윤 옮김 / 정은문고 / 2014년 8월
평점 :
절판

#1. 장서는 독서와 전혀 다른 일이다.
[장서의 괴로움]이라는 책 제목을 접했을 때, '아, 이 책은 읽지 않을 수 없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과한 책수집가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다분히 이 '장서의 괴로움'을 곧 겪게 될 것이 예견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직까지는 끄덕없지만 이제 슬슬 대비를 해두자' 하는 마음이라고나 할까요? (책 때문에 아이 학교 핑계대고 무리해서 큰집으로 이사하고, 이사할 때 큰방을 서재로 꾸미려고 갖은 애를 다 쓴 우리 부부가 과연 아직까지는 안전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을지 없을지 저도 모르겠습니다만...)
장서(藏書)는 말 그대로 "책을 모아두는 행위"입니다. 사전적으로는 "서적을 간직하여 둠, 또는 그 서적"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장서는 책을 읽는 행위와 엄연히 구분되는 말입니다. 장서가는 책을 구해서 간직해 두는 것에 초점을 맞춥니다. 한마디로 책 욕심이 넘치는 사람, 수집욕이 가득한데 그 대상이 책인 사람을 말합니다. 대체로 책을 좋아하면 당연히 책을 많이 읽게 되겠지만,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는 것과 책 자체를 좋아하는 것은 또 다른 일이다보니 의외로 책을 많이 사고 모아두는 사람중에 독서를 많이 하지 않는 경우가 왕왕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비교적 악착같이 사놓은 책을 읽으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나 이상한 사람 아니라고 계속 어필하고 있음...)
#2. 장서의 괴로움에 공감하다.
세상에 무시무시한 장서가가 무척 많은가 봅니다. 이 책에서도 장서가들의 예가 많이 나오는데 거의 일본인들입니다. 일본사회는 기본적으로 대부분 좁은 집에서 사는 경우가 많은 듯 합니다. 다다미 넉장크기니 다다미 여섯장 크기니 이런 표현들이 많이 나오던데 그저 몇평이냐가 편하지 크기가 잘 감이 안오긴 하지만 책장이 몇개 들어가니 하는 표현을 보면 그리 큰 집들은 아닌 듯 한데 이 좁은 곳에 그야말로 누울곳을 제외하고는 엄청나게 쌓아올립니다. 심지어 책 때문에 가구를 다 빼버린 사람들도 종종 있는 모양입니다.
이 책에서도 설명하는 바에 따르면 적당한 장서의 범위는 책을 진열했을 때 책등이 다 보이도록 진열하고 어떤 책이 어디쯤에 있는지 찾을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이미 적당한 장서의 수준을 조금 넘기는 했습니다. 서재 책장엔 거의 뒷쪽 책이 안보일 정도의 이중주차..아니 이중주서가 상당히 진행되었습니다. 뭐 표지에서도 예상이 가능하지겠지만 주인공은 물론 대부분 언급되는 인물들은 발디딜 틈 없을 정도로 책을 사 모읍니다. 몰랐는데 일본에는 우리와 다르게 목재로 된 집이 무척 많은 모양입니다. 이런 집들은 모이면 무척 무거운 중량물이 되는 책을 많이 보관하기에 적절한 구조는 아닙니다. 중량에 약하다고 하네요. 실제로 집이 기울거나 내려앉은 사례도 있으니 말입니다.
여튼 장서가는 결국 책을 모으고 보관하는 것이 주 목적이다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책이 점점 많아집니다. 그렇다고 책 사모으기를 중단할 수 없습니다. 그게 가능했다면 장서의 괴로움 따위를 애초에 생각할 필요도 없는거죠. 결국 계속 불어나는 책에 대한 괴로움을 토로하는 부분에서는 개인적으로도 상당히 공감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제 상황은 훨씬 증세가 덜하고 양호하다보니 오히려 안심도 되고, 위안도 되더군요.
"집에 같은 책이 있다는 사실도 잊어버리고 또 사는 지경이면 이상적인 독서공간이 슬슬 위험해진다는 신호다. 좁은 방에서 궁색하게 살 때는 누구나 좀 더 넓은 방에 살고 싶고, 책을 더 소장하기를 꿈꾼다. 하지만 욕망이란 끝없이 증식하므로 '이걸로 충분히 만족해'라는 선은 어디에도 없다. 넓은 방에 살면서 책이 늘어나기 시작하면 그땐 그 나름대로의 고뇌가 싹튼다."p53
최근에도 같은 책을 중복으로 산 경험이 있는 저는 상당히 찔렸습니다. 그리고 욕망에 적정한 선이 없다는 것에도 깊이 공감하고 인정하게 되더군요. 저도 사실은 고뇌가 싹튼지 좀 되었습니다. 그러니 이 책을 집어 들었죠.
#3. 적당한 장서는 어느 수준인가?
이 문제는 참 누가 나서서 딱 정해줄 만한 문제는 아닌 듯 합니다. 사람마다 환경이 다르고 사정이 다르니 말입니다. 그러나 몇만권씩 있는 사람들은 언제부터인가 책이 나를 잠식하기 시작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을 듯 합니다. 그리고 상당한 압박감을 받게 됩니다. 마치 처음엔 사람이 술을 마시지만 취하기 시작하면서 술이 사람을 마시는... (아니 술이 술을 마시는 건가?) 상황이랑 비슷하죠. 여튼 언제부터인가 탄력이 붙어서 스스로 제어가 안되는 지경에 이르고 맙니다. 이 책에서는 적당한 수준을 꼭 필요한 책 5백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책 5백권이란 칠칠치 못하다거나 공부가 부족하다는 것과는 다르다. 어지간한 금욕과 단념이 없으면 실현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를 실행하려면 보통 정신력으로는 안된다."p150
결국 몇권을 소장하느냐의 문제는 욕망의 문제와 직결됩니다. 어떻게 보면 홈쇼핑 중독이나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사고 사고 또 사는 건 똑같은 거니까요. 다만 책을 산다는 이유로 조금 덜 나빠보이고 덜 세속적으로 보인다고 해야할까나. 어쨌거나 5백권은 대단한 금욕과 절제가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저같은 범인에게는 불가능한 조건인 듯 합니다. 게다가 우리는 부부가 모두 장서가 기질이 있으니 말입니다.
한편으로는 수집 자체를 나쁘게만 볼 것은 아니라는 주장도 합니다.
"수집을 통해 수집된 물건으로부터 자신이 지금 무엇을 원하는지 깨닫고 생각의 방향성을 얻는 일이 종종 있다. 사람은 스스로 목적을 알 수 없는 단순한 호기심에서 물건을 수집하기 시작하지만, 수집한 물건은 언젠가 언어가 되고 문맥이 되어 사람을 지혜로운 길로 이끈다. 자신도 분명히 알 수 없는 어떤 호기심이 지혜의 결정체가 되어 간다."p170
약간 궤변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일정부분 공감이 가는 표현입니다. 책을 모으는 행위 자체는 맹목적일수도 있지만 이 책을 잘 활용한다면 장서가를 지혜로운 길로 이끌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나치게 많은 책을 과감히 정리하는 지혜로운 길로 이끄는 것도 포함해서 말입니다.
#4. 이 책의 한계들..
이 책의 가장 큰 한계는 저자가 일본인이라는 점입니다. 저는 한국인인데 말이죠. 이 사실에서 파생되는 이 책의 문제는 첫째, 주요 예시로 등장하는 인물과 작품이 모조리 시대를 넘나드는 일본인들이라는 것입니다. 당췌 그 많은 인물들 중에 제가 알아들은 인물은 하루키, 가쿠다 미쓰요, 마츠모토 세이초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언급되는 작품들은 하나하나 생판 첨 들어보는 작품들이고 유명인들인 듯 한데 전혀 모르니 흥미가 떨어지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두번째로는 모아두었던 장서가 소실되는 아픔에 대한 챕터에서 지속적으로 언급되는 전쟁당시의 공습에 대한 묘사는 약간의 불편함을 동반했습니다. 물론 이 책에서 공습을 받는 부분에 대한 역사적 가치판단은 전혀 없지만 어쨌거나 결과적으로 공습으로 피해자가 되는 상황을 지속적으로 묘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자취'라는 묘한 표현인데 이게 참 언제적 이야기인가 싶을 만큼 기묘했습니다. 한마디로 '자취'란 책을 제본부분을 절단해서 낱장으로 만든다음 그 한페이지 한페이지를 스캐너로 스캔해서 디지털 파일화 하고 전자문서로 변환하는 작업을 말합니다. 장서의 괴로움을 해결하는 주요한 수단으로 책을 팔아서 처분하는 것 외에 이렇게 전자문서로 소장하는 것을 대안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가만 생각하면 정말 할일 없는 사람들이나 할만한 방법이 아닐 수 없습니다. 300페이지 쯤 되는 책을 절단해서 페이지마다 스캔을 뜬다면 그 한권을 스캔하는데만도 엄청난 시간이 소요됩니다. 실제로 이 책에서 언급된 예시를 보면 4200권의 책을 '자취'하는데 1년 반이 걸렸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일본은 전자책 시장이 활성화가 안된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해결책입니다.
그리고 장서정리의 최후 수단으로 '1인 헌책시장'을 열 것을 제안하고 있는데 이것도 저같은 개인이 책을 깔아놓는다고 얼마나 사 갈 것인가를 생각해보면 따라하기 어려운 해결책이기는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는 뭐, 그냥 알라딘 중고매장에 가져가서 매도하는 방법이 가장 현실적이지 않나 싶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책은 사고 싶고 사놓은 책은 읽었거나 안 읽었거나 한권도 내놓기 아까운 그 마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책에서의 조언처럼 책을 줄일때는 하나하나 골라서는 불가능하고 과감하게 불타버렸다고 생각하고 막 뭉터기로 버리거나 팔아야하는게 맞나봅니다. 여튼 저는 오십보 백보이기는 하지만 장서가 보다는 애서가이자 독서가가 되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