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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드 인 공장 - 소설가 김중혁의 입체적인 공장 산책기
김중혁 글.그림 / 한겨레출판 / 2014년 9월
평점 :

#1. 역시 '김중혁' 님이시다.
저는 김중혁 작가님의 글을 무척 좋아합니다. 소설은 또 다른 이야기이긴 하지만 에세이류는 작가의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어가게 되기 때문에 에세이를 읽다보면 저자가 저랑 궁합이 맞는지 안맞는지 어느정도 느낌이 오게 마련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김중혁 작가님은 저의 Favorite 작가일 수 밖에 없습니다. 너무 진중하고 심각한 글은 무척 부담스럽고 힘들거든요. 저는 인생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유머"와 "위트"라고 생각하니까요.
이 양반 언제봐도 유머가 있습니다. 피식피식 웃게 만드는데 그저 어이없게 웃겨서가 아니라 내용있는 웃음을 주는 편입니다. 스스로 가볍게 만들어서 독자와의 간극을 줄일 줄 아는 작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글도 잘쓰는데다 그림까지 훌륭하니 역시 김중혁이라는 표현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랑해요 김중혁!!!
#2. 세상에 공장이 참 많다.
이 '공장'이란 어감이 참 중공업스럽습니다. 뭔가 무겁고 거리감이 느껴지는 단어입니다. 공대출신인 저도 그러니 아마도 대부분은 뭔가 친근하지 않고 딱딱하고 삭막하고 시끄러운 이미지를 떠올리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공장하면 '라인'이라고 부르는 컨베이어 밸트에 사람들이 서서 각자 공정을 맡아서 제품을 차츰 차츰 조립해서 완성해 나가는 장면이 떠오르니까요. 실제로 공장은 무척 다양할텐데 일반적으로는 상상력의 한계인지 경험의 한계인지 떠올리는 장면은 늘 스테레오타입인 것 같습니다.
이 책이 처음 봤을 때 별 희한한 기획이라는 다 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잠시 생각해보니 김중혁 작가라면 뭐, 잘 어울린다 싶었습니다. 그리고는 이 책은 꼭 읽을 수 밖에 없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작가님이 얼마나 흥미롭고 독특한 곳을 다니며 특유의 위트와 유머를 섞은 좋은 이야기들을 들려줄까 무척 기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공장이 참 많습니다. 공장이란 무언가를 생산해 내는 곳이니까요. 정의하기 나름이지만 블로그에 글을 쓰는 블로거 각각이 생각공장 공장장이 아닐 수 없습니다. 생산되는 제품의 품질은 차이가 날지 모르겠지만 어차피 무료인데다 원래 불량식품이 더 땡기기 마련이니 다들 의미는 있는 공장이 아닌가 싶습니다.
"일을 하고,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으로 위로를 받는다. 인간들은 대체로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는 비슷하게 살아가고 있으며 또, 모두 연결되어 있다고, 서로가 서로를 돕고 있으며 서로가 서로의 부분을, 부품을, 생산하고 있다고, 나라는 존재는 수많은 사람들의 생산으로 만들어진 조립품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지구라는 거대한 공장에서 서로를 조립하고 있는 셈이다." p009
#3. 재미난 공장들, 더 재미난 생각들.
작가가 재미난 공장들을 많이도 탐방했습니다. 소설가이자 글쓰는 직업이 직업인 만큼 제일먼저 종이만드는 제지공장에 다녀왔더군요. 글을 쓰는 일은 종이를 사용하는 일이고 이를 위해서는 수많은 나무들을 희생하는 일이니 글을 써서 책을 만들어낸다는 일이 자연보호와 배치되는 부분이 있다는 생각은 참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책은 만들되 최대한 재생을 하는 방법을 고민하는게 좋을 듯 합니다.
근데 두번재로 들른 공장이 "콘돔"공장이라니 작가의 관심은 역시나 글 다음은 콘돔 거시기 인건가요? 심지어 다음 순서는 브래지어 공장입니다. 이게 한계레에 연재된 글이니 아마도 초반에 관심을 끌기 위해 의도적으로 기획한 순서가 아닐까 라며 작가님을 보호해드려야겠습니다.
지구본 공장도 있고 초코릿 공장, 엘피판 공장, 피아노 공장도 흥미로웠고 맥주 공장, 라면 공장 다 좋았지만 사실 저는 중간즈음에 끼어있는 '김중혁 글 공장 산책기'가 가장 관심이 가고 좋았습니다. 설렁설렁해보이고 늘 쉰소리를 많이 하는 편인 김중혁 작가는 대충대충 이미지로 비쳐질 수 있고 저도 사실 좀 그런 식으로 생각을 했는데, 이 글 공장 꼭지를 통해 밝혀주고 있는 글쓰는 과정을 살펴보다보면 상당히 꼼꼼하고 체계적이며 효율적인 글쓰기 시스템을 스스로 보유한 작가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좋은 작품을 많이 쓴 유명 작가들 중에 하루키처럼 상당히 금욕적이고 규칙적으로 생활하는 작가가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김중혁 작가도 이 범주에 넣어드려야 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4.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경계에서 조화를 생각하다.
아무래도 작가가 년식이 있다보니 공장에 들를 때마다 각 공장의 과거와 현재의 위상차이에 대한 단상이 많이 나옵니다. 저는 작가보단 다행히 어리지만 안타깝게도 작가의 회상이나 옛 기억들을 대부분 공감할 수 있었... 흠... 좋아해야하는건지... 여튼 작가와 어느정도 연배가 맞아야 좀더 공감하며 즐겁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과거에 호황을 누렸으나 최근에는 운영이 어렵고 다른 활로를 모색하는 공장들도 꽤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엘피제작 회사 같은 경우, 요즘에 매니아들이 아닌 이상 엘피판을 사서 턴테이블에 올려서 듣는 사람들은 거의 없고 대부분 스마트폰으로 다운받아 듣는 디지털 세대에 살아남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그럼에도 엘피가 사라지지 않고 생산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공장분들의 모습이 아름답고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피아노의 경우도 아날로그 피아노가 사라져가긴 마찬가지 입니다. 도자기 공장 역시 예전만 못한 것은 물론 기술을 이어갈 후학을 찾기도 힘든 실정입니다. 시대의 흐름을 무시할 수도 없을 뿐더러 누가 억지로 흐름을 만들수도 없는 것이기는 하지만 시대의 변화에 무관하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지혜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종이책과 전자책, 엘피와 시디, 비디오테이프와 디브이디, 아날로그는 부피가 크고 불편하지만 소수의 지지자가 있고, 디지털은 작고 간편하며 많은 사람들이 손쉽게 사용한다. 어쩌면 그건 고속버스와 시외버스의 차이인지도 모르겠다고, 잠이 덜 깬 상태에서 생각했다. 고속버스는 최대한 빨리 목적지로 데려다 주지만, 많은 정류장을 생략할 수밖에 없다. (중략) 빠른 건 빠른 대로 중요하고, 느릿느릿 돌아가는 건 또 그것대로 필요하다. 어떤 게 더 낫다는 주장이 아니라 둘 다 필요하고, 둘 사이의 균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p.182
#덧, 한 꼭지가 끝날때마다 끼어있는 "사물의 뒷면"이라는 쉬어가기 페이지도 무척 김중혁스럽게 좋았습니다. 내용 다채롭고 부담없고 재미있고 공감갈만큼 작가의 이야기가 좋은데다가 심지어 길지도 않으니 어찌 읽지 않을 수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