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운수 좋은날
이림니키 지음 / 김영사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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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금발머리 소녀 "골디락스"


   이 책의 서문에 등장하는 골디락스는 영국 전래동화에 나오는 금발머리 소녀입니다. 이 소녀는 특이하게도 너무 차거나 뜨거운 수프는 먹지않고 딱 적당한 온도의 수프만을 끝까지 맛있게 다 먹는다고 하네요. (한마디로 배가 "쳐"부른 소녀라고 할 수 있겠죠..) 이 책의 저자 "이림니키"씨는 딱 자신에게 알맞은 온도의 수프를 끝까지 맛있게 먹으면서 살아가고 싶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책 [오늘은 운수 좋은 날]은 그런 그녀의 소망이 담담하게 담긴 책입니다.




#2. 묘하게 인상적이지만 이름조차 어렵고 생소한 "이림니키"


   "이림니키"는 엄마, 아빠의 성 "이"와 "임"을 합쳐 "이림", 그리고 본인이 제일 좋아하는 "니키 드 생팔"에서 따온 가명이라고 합니다. 이런걸로 딴지를 걸고 싶지는 않지만 "이림니키"는 어감도 안좋고 외우기 그리 좋은 이름은 아닙니다. 저같으면 "이림생팔"로 했겠습니다. 어감이 강하고 한번 들으면 잊혀지지 않잖아요. "생팔~~~" 이렇게 부르면 얼마나 확 귀에 때려박힙니까?


   여튼 "이림생팔"이라고 부르고 싶은 저자 "이림니키"님은 유명 일러스트 작가라고 합니다. 저는 이쪽 분야를 잘 모르니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갑니다. 이책에 소개되고 있는 각종 삽화와 일러스트들을 보면 상당히 매력적이고 독특하기도 합니다. 개성있는 그림을 볼 때 경쟁력이 있다 싶은 생각이 듭니다. 제가 불러서 써드릴 일은 없지만 말입니다.


   그림 뿐 아니라 글도 나쁘지 않습니다. 저는 그럴 재주가 없어서 그런지 현학적이거나 지나치게 꾸며쓴 글을 극도로 싫어하는 편인데 이분은 굉장히 담백하고 정직해 보임직한 글을 구사합니다. 그래서 읽으면 부담이 없고, 거부감도 들지 않는 쪽입니다. 개인적으로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어딘지 모르게 제 아내의 정서나 분위기와 취향에 묘하게 맞닿아 있는 부분을 발견할 수 있어서 입니다. 정확하게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그런데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아내도 이 책을 읽고 무척 좋아했습니다. (저는 그저 쏘오쏘오입니다만... )



#3. 60, 30, 10의 황금비율...


   다 읽고보니 저의 취향기준으로 "아아~~ 그러셨시군요" 60% + "그렇게 하란 말씀이시군요" 30% + "아, 공감되는군요" 10% 정도로 이루어진 황금비율의 책이었습니다. 제 아내 기준이면 아마 거꾸로 10% + 30% + 60%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지만 저에게는 그랬습니다. 모두가 공감하고 좋아할 내용이었다면 이미 베스트셀러에 올라있었겠지요... (아.. 이쯤되면 베스트셀러는 어떻게 만드느냐를 가지고 따지고 싶은 마음이 들...)


   개인적인 경험에 비춘 고백적인 내용이 상당히 많습니다. 프랑스에서 유학하던 시절 이야기, 한국에 돌아와서 있었던 소소한 감정들에 대한 소회가 꽤나 많은 편이고, 특별한 테마없이 이런저런 내용들이 막 들어가 있어서 조금만 더 이야기의 줄기를 잡고 책이 완성되었더라면 완성도 있는 좋은 책이 되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척 공감되는 내용들도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이런 문구들이죠.


"길을 같이 가는 사람들 중에는 '과정'이 같은 사람들이 있고 '목적'이 같은 사람들이 있다. 과정이 같은 사람들은 그 존재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 (중략) 목적이 같은 사람들은 처음에는 쉽게 마음을 나누지 못한다. (중략) 목표를 향해 저마다 다른 방법으로 길을 걸으며 도전하지만, 정상까지 함께 갈 것이고 그때까지 함께할 것이라는 믿음이 관계를 지속시켜준다. 그런데 사실, 과정이 같든 목적이 같든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라면 아무런 상관이 없다." p27


   상당히 공감할 수 밖에 없었던 이야기였습니다. 저는 '과정'이 같은 사람, '목적'이 같은 사람들을 모두 좋아하지만 역시나 그것보다는 좋아하는 사람이 '과정'이 같으면 X2배, '목적'이 같으면 X2배가 되는 것 같습니다. 역시 좋아하는 사람이냐가 더 먼저인 것이죠.


   그리 어렵지 않고, 특히 여성들이 공감할 만한 취향의 좋은 이야기도 많으며, 중간중간 작가의 일러스트를 감상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이림생팔"님의 [오늘은 운수 좋은날]입니다. 작가님이 지금 이순간도 딱 적당한 온도의 수프를 드시고 계실지 궁금해지네요. 제 수프는 꽤나 식어버렸습니다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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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컷 : 북디자이너의 세번째 서랍
김태형 외 지음 / 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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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궁금증을 자극하는 북디자이너들의 숨겨진 B컷, 그리고 취향확인!


   아, 이책 정말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국내 최고 북디자이너들의 유명 표지디자인을 살펴볼 수 있는 이 책은 책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누구나 감탄하며 읽을 수 있는 재미진 책입니다. 각 디자이너들의 작품들이 등장하고, 출판과정에서 선택받지 못했던 후보작인 B컷들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출판사에서 보의 일환으로 책 표지 선택하기, 투표하기 같은 이벤트를 진행하지 않는 이상, 출간되는 작품의 표지디자인 후보작을 감상할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보니 이 책은 그 희소성 면에서 무척 좋은 기회를 제공합니다. 그래서 책 기획이 무척 참신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북디자인을 보는 재미가 몇가지 있는데, 우선 디자이너들 간의 스타일 차이를 확연히 느껴면서 비교감상해 볼 수 있는 재미가 한가지 있습니다. '아, 이 디자이너는 이런거 좋아하네.. 출판사 스타일이 있어서 요런 쪽으로 주로 작품을 했구만..'이런걸 느껴보실 수 있죠. 그리고 제목처럼 최종 선택받지 못한 B컷을 A컷보다 더 큰 그림으로 감상하실 수 있어요. 저는 '오히려 B컷이 훨씬 좋은데? 왜 이게 A컷이 됐지?' 하는 작품들이 의외로 많더라구요. 그러니까 제 취향이 마이너인 것입니다.ㅋㅋ 독자들이 자기 취향과 출판사의 선택, 그리고 그 책의 표지가 대중들에게 얼마나 좋은 평가를 받았는지 따져보고 읽어가는 재미가 확실한 것입니다.




#2. 의외의 빅재미, 북디자이너들의 삶을 듣는다는 것...


   살다보면 경험하지 못했던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할 기회가 흔치 않습니다. 보통은 자기가 속한 분야나 하는 일에 집중하고 그것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죠. 그래서 일반인들은 쓰지 않는 용어를 구사한다거나 하면 직업병이라고 핀잔을 듣기도 하고 그러잖아요. 저같은 경우도 출퇴근 시간에 전동차를 타고 다니면 방송은 잘 되는지, 가고 설때 이음이 나지는 않는지, 정확한 정차위치에 잘 세우는지 이런걸 저도 모르게 체크하는 걸 깨닫게 됩니다. 출입문이 열릴때 에어가 빠지는 소리도 정상적인지 따지게 되고, 어떨 때는 코레일에다 전화라도 해야하나 싶을 때도 많지만 애써 참곤 합니다. 이런게 직업병이죠.


   북디자이너도 무척 특별한 그들만의 세계에 사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보니 이들 북디자이너의 라이프 스타일이나, 그들이 속한 조직의 생리, 삶의 목표나 가치관, 직업관 등을 옅보는 일이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유명한 디자이너간에도 생각이 다르고, 장단점을 서로 다르게 생각하니까 비교해보는 재미도 있고 말입니다. 북디자이너라는 막연한 직업에 대한 이해도 어느정도 생긴게 사실입니다.


   특히 기존부터 알고 있던 "공중정원" 박진범님의 익숙한 작품들을 대할 때는 무척이나 반가웠습니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전혀 친분이 없지만 말이죠. 요즈음은 출간을 안하고 있어 안타깝지만 제가 애정하는 씨엘북스 북디자인을 대부분 해주셨던 디자이너시죠.


   각자 북디자이너들의 북디자인 철학을 읽거나 작업할 때의 애로사항 등을 읽고 있노라면 '아.. 내가 미술에 재능이 있어서 북디자이너를 했었더라면 내 인생이 어땠을까?'하는 생각을 나도 모르게 하고 있는 걸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무척이나 빠져들어 읽었더랬습니다. 이런 책을 만나기가 흔치 않거든요. 무척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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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적 사랑과 사회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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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실험적인 느낌이 강하게 풍기는 초기 단편집

   정이현 작가는 딱 봐도 제 취향은 아닐 듯한 작품들을 써왔기 때문에 아내가 여러권 사둔 것을 보고도 한번도 읽은 적이 없었습니다. "The Closet Novel"에서 단편을 만난 기억은 있군요. 그러다 정이현 작가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교보문고 팟캐스트 낭만서점을 들으면서 부터였습니다. 작가의 목소리로 소개하는 책들을 통해 뭍어나는 작가의 생각과 가치관 같은 것에서 호기심을 느끼기도 했고, 작품은 어떨지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저의 성향상 순서를 지키는 걸 좋아하다보니 일단 젤 먼저 발표된 작품이 뭔가 찾아보았습니다. 등단작이 포함된 단편 소설집 [낭만적 사랑과 사회]가 다행이 집에 있었습니다. 제목이 뭔가 거창한데 싶어서 확인해보니 1985년 제크린 살느맨이라는 이름도 생소한 사람이 쓴 동명의 책 제목에서 따온 것이더군요. 영국식 사랑과 성, 결혼 등에 대해 쓴 작품인 듯 한데, 역시나 오마주 아니면 패러디가 아닐까 싶은 마음에 읽어보았습니다.

   단편집에 여러작품들이 수록되어 있었는데 각 작품마다 실험적인 포맷이나 서술방식이 다양하게 담겨있어 인상적이었습니다. 사실 첫 표제작 [낭만적 사랑과 사회]를 읽으면서는 뭔가 약간은 어설프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당선을 위한 작위적 설정과 전형적인 캐릭터의 조합이 문제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러나 작품이 이어질수록 일단 다른걸 다 떠나서 재미있더군요. 읽는 재미가 있고, 읽고 나서도 이런저런 생각을 해볼 만한 작품이어서 문장력이 대단하거나 주제의식이 어마어마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작품성과 대중성의 그 중간 어디즈음을 잘 포지셔닝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기에 이후 작품들도 대중적으로 사랑을 받고 한국소설작가로써 한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2. 정이현 소설의 여자, 여자...

   특히 작가의 소설에 특징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여성" 등장인물 들의 여성성입니다. 이미 십수년이 지나버린 작품이라 지금에 와서야 너무 당연한 상황이 그 당시 여성들에게는 금기시되거나 터부시되는 부분이 많았을테니 그런 전 근대적인 여성들의 불합리한 삶의 여러부분에 대해서 전방위적으로 간섭하고 나선다고나 할까? 그런 느낌입니다. 대놓고는 조금 그렇고  살짝 삐딱하게 꼬아서 한마디 해보자꾸나 하는 느낌입니다.

   그리하여 등장하는 여성들마다 시대에 부합하는 전형적인 여성상에서 조금씩 서로다른 모습으로 비껴나 있습니다. 그런데 가만 따지고 보면 오늘날의 여성들이 가지고 있는 라이프스타일이나 가치관보다는 오히려 덜 진보적이긴 하지만 굳이 당시의 통념에 비추어보면 사회가 부여해놓은 바람직한 여성상을 살짝 비꼬며 오히려 실리를 챙기는 매우 전략적인 여성들이 등장하는 것입니다. 제가 꽉막힌 꼰대라 그런지 몰라도 매우 통쾌하거나 시원하게 사회를 풍자하는 정도의 인물들이 등장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대단히 극적인 사건이 발생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 사회속에서 여성들이 취할 수 있는 비교적 효과적이고 그럼직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을 만날 수 있습니다. 소설속의 인물이 그럴법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상당히 좋은 싸인입니다.


#3. 작위성과 문학성의 사이...

   일단은 무척 재미있게 읽힌다는 장점은 이 작가의 단편에서 놓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는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캐릭터의 작위성, 사건 전개의 작위성은 조금씩 느껴져서 작가가 전반적으로 작품에 조금은 지나치다 싶을 만큼 주제의식을 가지고 다양한 장치를 구성해서 펼펴놓았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이 아직 여물지 않은 초기작이라 그런 느낌을 주는 것인지, 작가의 작풍인지 어떤지는 좀더 읽어봐야 알일이지만 그것으로 문학작품의 문학적 역할을 잘 한다고 보아야할지 어떨지는 정확히 감이 안옵니다. 저야뭐 재미만 있으면 그만이니까 더 그렇죠. 꼼꼼히 따져서 '작위적이다' 혹은 '문학적 장치니 좋다'라고 딱잘라 말할 필요까지는 없는 거니까 말입니다.

   첫 소설집인 이 작품을 읽고나서 보니 여튼 두어권은 더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으로봐서 소설을 재미있게 쓰는 기본적인 미덕은 가지고 있는 셈이 아닌가 싶습니다.  나름 베스터셀러를 쓰는 국내 작가들틈에 늘 이름을 올리는 것을 보면 제 취향과 무관하게 대중적인 사랑을 받을줄 아는 작풍을 가지고 있는 것은 이미 증명을 한 것이기도 하겠습니다. 이 작품집에서 마음에 들었던 작품이 여럿 있었지만 참고인 진술서 형식으로 쓰여진 [순수]같은 작품이나 저로써는 조금 생소했던 이인칭 시점을 사용한 [무궁화] 같은 작품이 특히 흥미로웠습니다. [순수]는 남편이 사고인지 고의인지 알 수없는 애매한 사고로 죽고 경제적 이득을 챙긴 여주인공이 재혼하고 또 남편이 죽고, 재재혼하고는 또 남편이 죽어나가는데 정작 본인은 순수해서 벌레한마리도 못 죽인다고 담담하게 진술하는 내용인데, 꼭 비슷한 내용도 아닌데 이상하게도 세이초옹의 "지방지를 구독하는 여자"에서 느꼈던 느낌이 들어서 신선했습니다.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동성애를 다룬 [무궁화]에서도 주인공의 절절한 감정을 세밀하게 잘 표현해주고 있어 작가의 능력을 어느정도 옅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다른 작품들에서도 여전히 자본주의 사회에 직면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풀어나갈지 전혀 다른 주제의식과 소재로 신선한 이야기를 썼을지 궁금합니다. 다음 작품도 읽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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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 로숨의 유니버설 로봇
카렐 차페크 지음, 김희숙 옮김 / 모비딕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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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조인간 로봇의 기원


   카렐 차페크의 [로봇(R.U.R) : 로숨의 유니버설 로봇]은 굉장히 흥미로운 작품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편안하게 부르고 받아들이는 로봇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하고 전세계에 널리 알린 바로 그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우리나라에 많이 소개되지 않는 체코 출신입니다. 대표적인 체코작가는 밀란 쿤데라, 프란츠 카프카 같은 작가지만 저는 그다지 좋아라 읽은 적은 없으므로 그냥 스리슬적 넘어갑니다.


   저는 인조인간 로봇하면 "마징가~~아~~젯!!!"이 먼저 떠오르고 인조인간이라는 수식어를 빼고 "로봇"이라고 하면 금속과 전기부속품에 저닉배선으로 이루어진 딱딱한 산업용 로봇 같은게 떠오릅니다. 근데 이 작품속에 등장하는 로봇은 그런 존재가 아닙니다. 인간하고 똑같은 생화학, 유기질로 이루어진 복잡한 개체예요. 딱 터미테이터에 등장하는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연기한 T-800 같은 수준입니다. 그러니까 안드로이드의 초기모델 정도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피부조직까지 다 있지만 딱히 노화는 되지 않아요. 피부조직과 유사한 물질을 만들어 발랐다고 봐야겠군요. 터미네이터2에서 흐물거리면서 변신을 자유자재로 하던 T-1000 같은 개념까지는 작가의 상상력 속에 포함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아무래도 "인간이랑 가장 유사하게", "인간의 존재와 역할을 대신하는" 철학적 부분을 중시한 결과일 갭니다.  

 

   여튼 인간을 대신한 유사인간이 존재한다는 설정은 차페크 이전에도 존재했지만 상당히 구체화 시켰다는 것과 정확히 로봇이라는 단어로 정착을 시켰다는 데에 의의를 두는 것 같습니다. 다양한 기술이 나와도 결국 표준화되어 전세계에 널리 쓰여지는 기술이 살아남는거니까요.

 

   정작 중요한건 작가가 로봇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어떤 기술로 만들었는지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겁니다. 분명 SF인데 기술적인 가능성에 대한 고려가 없어요. 이 양반 그냥 상상력만 풍부해서는 전형적인 "그렇다 치고 넘어가기, 만들수 있다고 보고 얼렁뚱땅 마무리하기" 신공을 시전합니다. 굉장히 뻔뻔해요. 본인은 SF라고 생각한 것 같지도 않아요. 사이언스 픽션인데 사이언스가 없어... 읽어보면 그냥 철학적인 픽션이예요. PF라고 해야할까 봅니다. 로봇을 미친듯이 만들어내고 사람처럼 고민도 하고 스스로 생각도 하는 지경에 이르는데 어떻게 만들었는지 설명을 못해요. 그냥 로슘이라는 과학자 부자가 발명했어. 우린 그냥 누런 똥종이 몇장에 적어놓은 제조법을 읽고 대량생산해서 팔아먹자. 돈도벌고 울랄라~~~ 이런 이야기라니까요...


 


#2. 희곡.. 재미지다..


   책을 받고 순간 당황했습니다. 희곡이더라구요. 등장인물 소개에 배경무대 설명, 지문과 대사로 이루어져있어요. 서막, 1막, 2막 이렇게 구분되어 있습니다. 아.. 이런거 취급안하는데... 라고 생각하고 일단은 뭔 이야기일지 궁금해서 읽어봤습니다. 아주 재미있고 가독성이 무척 높습니다. 심지어 줄을 자주 바꿔서 그런지 금방 넘어가요. 지문이 가끔 나오고 해서 그런지 등장인물들의 움직임과 표정이 보이는거 같아 더욱 집중하기 좋습니다. 조금 시간이 지난 작품이다보니 현대인들이 사용하는 표현법과 많이 달라서 어색한 느낌도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연극을 보고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장점도 있습니다.

 

   소설과는 다른 매력이 있네요. 저처럼 문장구조나 문학적 으로 어떠니 이런거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희곡이 오히려 더 적합한 거 같습니다. 훨씬 극적이고 읽는 재미가 있어서 희곡의 매력을 다시한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비슷한 이유로 드라마 대본집 같은 것도 읽어보면 아주 흥미로울 것 같네요.

 


 

#3. 100년의 간극, 아직도 멀고먼 로봇왕국


   이 작품이 1920년도에 발표되었으니 벌써 근 100년이 흘렀습니다. 현대에 와서도 인간에 근접한 안드로이드 로봇은 여전히 어렵긴 하겠지만 기술의 진보는 그래도 상당한 수준에 이르른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희곡속에서 벌어지는 것처럼 수많은 로봇이 생산되어서 인간의 모든 일을 대신해주는 일은 앞으로도 일어날 가능성은 없어보입니다. 기술도 기술이지만 이를테면 경제논리가 걸림돌인 것이죠.

 

   앞서 설명드린바와 같이 이 작품에서 저자는 난 모르겠고, 그렇다치기 신공으로 모든 기술적, 현실적 문제를 극복하고 있습니다. 완전 눈뜬 장님입니다. 경제학적 개념은 아예 없거나 무시하고 있고, 기술적인 문제도 전혀 다루어지지 않고 있죠. 우선 발명만 하면 로봇이 몇십만대가 뚝딱 만들어지는 것으로 설정이 되어있는데 이거 미칠 노릇입니다. 사람의 피부와 조직을 생산하기 위한 원재료는 누가 갖다줍니까? 수많은 로봇 바디를 위한 금속 원재료는 또 어떻구요. 잘 묘사는 안되어 있지만 섬에 있는 발전소의 생산동력은 뭘로 충당합니까? 사람에 근접한 로봇을 만들기 위한 소프트웨어는 누가짜서 넣어주는지 알길이 없습니다. 남아 있는 사람들은 기술적인 부분을 하나도 모르고 오로지 죽은 로슘의 낡은 종이 몇장에 의존해서 안드로이드를 만든다고 설명되어 있는데 이게 말이되어야 말이지 완전 빵구같습니다. 만약 종이에다 프로그램 코딩소스를 적어놓은다고 하면 도데체 몇장이 필요할까요? 상상이 안될 지경입니다...

 

   정작 이 작품의 의의와 관심은 인간의 인간됨에 대한 철학적 고민을 풀어내고 있는 부분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인간을 닮은 존재, 인간의 역할을 대신해줄 존재가 만들어졌을 때의 인간과 로봇의 관계의 역학적 문제, 진보적인 로봇의 출현에서 파생될 인류의 문제 등에 대한 문제의식이 녹아있어 깊이가 있는 것이죠. 흥미롭게 읽으면서도 가볍게 넘길 수 없는 것이 바로 이런 문제들에 대한 작가의 철학적 접근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난 과거 시점에서의 고민이라 지금에 와서는 너무 초보적인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저자가 그런 것처럼 우리도 이제 와서는 100년 전에 이정도 상상력과 디테일이면 매우 훌륭하다... 치고 읽어주면 여러가지 한계에도 불구하고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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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 제20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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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계에서 개인으로 변화의 시도..

   장강명 작가하면 기본적으로 개인이 모여 살아가는 공동체와 그 공동체를 이루는 사회적 패턴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구조적 모순, 그리고 그 모순에 의해 고통받는 개인의 다양한 반응에 관심을 기울이는 작가라고 생각해왔습니다. 물론 독자가 한 작가의 특징을 규정하는 것 자체가 독자에게도 도움이 안되는 행위지만 아무래도 작가의 독특한 이력이나 작풍을 염두에 두고 읽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닐까 합니다.

   장강명 작가의 신작 그믐,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선입관에서 상당히 벗어나 있는 소설입니다. 일단 작가의 관심이 개인으로 이동된 듯한 느낌을 받는데, 큰 틀에서보면 어떤 프레임을 통하더라도 결국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임은 변함이 없지만 말하고자 하는 바가 어디에 있는가에서 확연한 차이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소설의 주인공이 학창시절 우발적으로 살인을 벌이는 발단 자체가 집단 따돌림이라는 사회문제와 맞닿아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이 소설은 그것 자체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습니다. 그보다는 이 사건으로 인해 당사자와 피해자의 모친 사이에서 일어나는 사건이 핵심이 됩니다. 장강명 작가의 작품 스펙트럼이 넓어지는 느낌은 애정하는 작가의 롱런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어 기쁜 지점이 아닐 수 없습니다.

#2. 사람이 받는 상처와 그 치유의 방식에 대해..

   이 소설에 등장하는 남자는 과거 집단 따돌림으로 상처를 받았습니다. 고의였던 우발적이었던 상처에 대한 리액션이 살인으로 이어지고 맙니다. 그리고 교도소에서 대가를 치룹니다. 하지만 필연적으로 이 일로 인해 또 다른 상처를 받은 사람이 생겼습니다. 피해자의 어머니입니다. 이 여자는 아들이 남자에게 줬던 상처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회피하면서 자신이 받은 상처에 대해서만 주목합니다. 그리고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고 계속 남자의 주변을 멤돌게 됩니다. 상처가 회복되지 않고 남아 비정상적 행동을 오랫동안 지속하는데, 남자의 일을 성실하게 방해한다거나 남자에게 아들같은 애정이 있다는 비정상적 표현을 계속하는 식입니다. 정신병리적인 이상행동을 계속하는 이 여자의 태도는 이 책을 읽는 내내 마음에 걸렸습니다스스로 억울한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 갖는 어쩌면 일반적인 태도가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가만보면 정상적인 삶은 살아내지 못하고 가해자에게 집착하느라 인생을 소비하는데, 이 또한 삶의 한 방법고 자신의 선택이 아니겠습니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라고 마냥 욕하고 손가락질만 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결국 여자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방법으로 상처를 터트리고 마는데 독자입장에서 참으로 열받는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남자의 경우는 이런 여자의 입장까지 배려해서 이후에 여자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앞일까지 안배하는 대인배의 모습을 보입니다. 이 작품에서 남자는 자신의 과오를 속죄하는 유일한 방법으로 결국 죽음을 선택하는데, 이게 상당히 비인간적인 것으로 보이는 것이 이런 상황에서 심지어 앞날을 예견하는 남자가 내내 차분하고 평온해 보이는 태도로 일관한다는 점입니다. 이 지점이 무척 환타지 같은 느낌을 주는데, 적어도 제가 아는 상식에서 인간이 남자와 같은 상황에 놓인다면 어떻게든 자신을 변호하고 보호하는 쪽으로 행동하겠지요. 설령 여자를 배려하는 방향으로 결정한다 하더라도 엄청난 갈등과 고뇌를 겪을 것입니다. 나이에 비해 너무나 성숙하고 심지어 성인의 반열에 오른 듯한 숙연함은 이 소설 최대의 환타지적 요소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작가가 보여주고자 하는 의도는 물론 모두가 이런식으로 속죄해야한다는 것은 결코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속세에 찌든 독자인 저는 아련하면서도 굉장히 화가나는 결론으로 마무리 된 작품으로 기억하게 될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장강명 작가님의 다음 이야기가 더 기대가 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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