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놈들 - 상 세이초 월드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경남 옮김 / 모비딕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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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항상 저에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는 세이초옹의 장편 [나쁜놈들]입니다. 세이초의 장점은 단편에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지만 응원하는 작가의 작품을 읽지 않고 떠든다는 건 착한놈인 저에게는 마음의 짐이라 그중 근작인 이 작품을 읽어봤습니다. "D의 복합" 같은 작품을 통해 세이초옹 장편은 큰 기대를 하지 않아야 한다고 마음 먹은바 있습니다만 이번 작품은 또 결이 좀 다른 작품이라 괜찮았습니다.

 

 

#1. 나쁜짓도 왠만한 노력으로는 되지않아... 그거슨 타고난 재능...

 

세이초옹의 [나쁜놈들]에는 거의 나쁜놈들만 나옵니다. 제목대로입니다. 보통은 나쁜놈이 있고 나쁜짓을 당하는 선량, 혹은 순수한 사람이 존재하기 나름인데 이 소설에는 닥치고 나쁜놈들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나이에 이 소설을 읽으면서 ', 이거 너무 나쁜데?'라는 생각이 그다지 들지 않았던 것은 살면서 만나는 많은 사람들 중에 소설 [나쁜놈들]에 등장하는 나쁜놈들보다 더 나쁜 경우가 꽤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현실에서 이미 꽤나 충격을 받아서인지 그저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읽어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돌아보면 직장생활 하면서 겪은 사람중에도 종종 있었던거 같네요. "나쁜놈들"에서는 남녀관계에서 악행을 저지르는 상황이 대부분이라 행태는 다릅니다만 본인의 욕망과 이익을 최우선에 두고 행동하는 사람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태도 때문에 나쁜놈들이 속출합니다. 직장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경쟁이 많기 때문에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관찰하면 쉽게 파악할 수 있지요. 제 스스로 잔머리쓰는걸 경멸하기 때문에 더 그런 사람들이 잘 보이기도 합니다.(그렇다고 저는 아니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만..)

 

몇몇 인물들을 관찰하면서 느낀 것은 "나쁜 것"은 그냥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타고난 재능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잘 생각해보면 내가 원하는 것이 있지만 이미 우정관계가 있고, 상대의 필요를 알고, 조직에서 속한 내 위치와 역할을 정상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조직과 주변 동료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을 의도적으로 결정하고 행동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있습니다.

 

7,8년 전에 바로 옆에서 겪은 경험이 있습니다만 놀랍게도 정작 당사자는 그것을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당연하게 생각하거든요. 이를테면 이런거죠. '내 돈은 당연히 내 돈인데, 다른 사람의 돈은 빌려쓰면 내 돈이다. 빌리는 순간부터 내 돈이니 갚아야할 의무는 없다. 안값으면 내껀대 내가 왜 갚아야 하나?', 당연히 애가타는 빌려준 사람은 독촉을 할 수 밖에 없겠죠. 그러면 이제는 '돈 몇푼으로 상대방을 힘들게 하는 저런 놈은 천하의 나쁜놈이다. 그러므로 더욱 갚아줄 필요가 없다.' 라는 정말 개떡같은 논리를 폅니다.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는 전형적인 수법입니다만, 가까이서 보고 있으면 정말 혀를 내두르게 됩니다. 본인은 결코 그것이 거짓이고 정신승리라고 생각하지 않고 진짜로 그렇다고 믿어버리거든요. 이런게 타고난 재능이 아니고 뭐겠습니까? 이 작품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캐릭터들이 이런 재능을 타고난 인물들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다지 놀랍지않은 인물들이기도 하지요

 

 

 

#2. 나쁜놈들은 어느시대나 넘쳐난다.

 

나쁜짓도 재능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어느 시대나 나쁜놈들은 넘쳐납니다. 그들 중의 일부를 소설 [나쁜놈들]에서는 집약적으로 잘 묘사해주고 있습니다. 또한 세이초옹 답지않게 심리묘사를 무척이나 세심하게 해주고 있습니다. 특히 주인공인 "도야"가 스스로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정신상태와 마음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서 압박받아 나쁜 결정을 하게 되는 과정을 무척 자연스럽게 그리고 있습니다.

 

한편 나쁜짓을 하는 동기에 대해서도 상당히 치밀하게 묘사하고 있는데, 작품속에서는 시대를 넘어서는 나쁜짓의 동기를 크게 두가지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첫번째는 당연히 돈입니다. 돈이 필요한데 돈이 없으니 돈이 있는 사람에게 빼앗아야 하는데, 주인공 도야는 스스로 자기가 이성을 잘 "후린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걸 이용해 돈을 뜯어냅니다. 그 당시에도 멀티테스킹이 유행이었는지 동시에 여러여성에게 작업을 합니다.

 

다른 한가지는 사회적 지위유지입니다. 주인공은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병원의 원장입니다. 그러다보니 어느정도 사회적 지위와 체면이 있는데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서 나쁜짓을 반복할 수 밖에 없는 것이죠. 한편으로는 이 사회적 지위와 체면이라는 것은 죄를 돌이키고 바로잡기보다는 더 많은 죄로 기존의 잘못을 덮을 수 밖에 없는 명분으로 작용합니다. 들키면 사회에서 매장당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숨겨야 하고, 숨기기 위해서는 또 다른 어떤 짓을 해서라도 기존의 문제들을 덮어두어야 하는 것이니까 말입니다. 그러다보니 한번 시작하면 끝없이 꼬이고 꼬이는 것이죠. 이런 문제는 현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문제입니다. 의외로 인간이란건 사회적 동물이라 그런지 체면과 보여지는 것을 중시하니까 말입니다. 비교도 드럽게 많이 하지 않습니까? 한국사회에 유행이 많은 이유도 체면을 차리는 문화가 크게 작용하는데 일본도 만만치 않았던 모양입니다.

 

배경차이를 빼면 이야기가 '옛날에 그랬었나보다.' 라고 할 수 없을 만큼 지금 시대와도 정확히 들어 맞습니다. 시대적 상황에 따른 특정한 이야기 전개가 아니라 그저 사람사는 이야기, 인간과 인간사이에 흔히 일어나는 문제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참 못된 놈들이 많은 세상입니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악하기 때문이겠죠. 아우 나뻐..

 

 

 

 

 

#3. 국내독자들이 세이초의 소설에 열광하지 못하는 이유...

 

최근에는 세이초옹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았다는 미야베미유키 같은 작가의 작품이 국내에서도 무척이나 각광을 받고 있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작품 출간을 놓고 이런저런 잡음이 나기도 하고 출판사의 명운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기도 하는 상황입니다. 그런데도 일본에서는 세이초옹을 빼놓고는 미스터리를 논할 수가 없다고 할만큼 미스터리류의 거성님이신데 소개된지가 몇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도 세이초옹의 작품들은 그닥 반응이 미적지근합니다.

 

저는 이유막론하고 세이초옹을 애정합니다만, 번역되어 출간되는 작품들을 읽다보면 완전 감탄하고 깜놀할 만한 재미를 주지는 못하는게 사실입니다. 사회파 미스터리 자체가 국내에 그다지 인기가 없는 것도 한 이유일테고, 미미여사가 상대적으로 시대를 초월한 사회적 문제를 다루고 있다면 세이초옹은 철지난 일본 사회의 문제를 다루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원폭 상황을 놓고 피해자 모드로 묘사하거나 전쟁을 일으킨 당사자인 본국의 국민들을 피해자로 설정하는 등, 국내에서 그냥 받아들이기는 무리가 있는 설정들이 꽤나 등장합니다. 한편으로는 건조한 문체와 서사도 한몫하는 듯 합니다.

 

이 작품의 경우는 크게 표가 나는 것이 아니기는 하지만 정기간행물에 연재한 작품이라는 것이 눈에 띄기도 합니다. 뻔히 인물에 대한 배경이나 설명을 충분히 한 상황에서 챕터가 바뀌자 똑같은 내용을 다시 설명하기도 하고 중복되는 내용을 정리하기도 합니다. 마치 드라마에서 이전 이야기를 요약해서 보여주는 것처럼 말이죠. 아니나 다를까 후기를 보니 1960년도부터 주간지에 연재되었던 작품이더군요.

 

정교한 현대 미스터리들을 충분히 섭렵한 독자들이 보기에 세이초옹의 미스터리는 상당히 단순한 부분도 있습니다. ~~ 하고 감탄할 만한 내용이 사실 별로 없어요. 이 작품의 경우도 상편을 읽을 때는 주인공이 나쁜짓을 하는 이야기가 흥미롭게 펼쳐집니다. 그러나 하권으로 넘어가면서 지루해지기도 하고, 지나치게 반복되는 스토리이기도 한데다가 앞으로 드러나게 될 반전에 대해서 대충 느낌이 옵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마지막 반전이 좋았습니다만...

 

독자가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객관적인 거리두기가 어려운 것도 이 작품에 대한 반응이 애매한 이유가 됩니다. 주인공을 비롯한 어느 누구도 매력적이지 못한데다가 어디서 많이 본듯한 나쁜놈들이다보니 보면서 욕하기는 많이 할지언정 '나는 그러지는 않지만 그럴수도 있겠다.'라고 등장인물들의 태도에 공감하고 동정하고 두둔해야 몰입이 되는데 마냥 나쁘게만 보이면 이게 참 애매한 것입니다.

 

세이초옹이 남녀의 애정문제도 잘 다루기는 합니다만 아무래도 이 작가는 등장인물과 약간의 거리를 둔 상태로 담담하게 묘사하는것에 강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작품은 캐릭터의 내면묘사에 꽤나 집중되어있어요. 그것도 대부분 남녀관계가 얽힌문제로 말이죠. 읽는 재미자체는 나쁘지 않았지만 전체 스토리를 놓고보면 작가가 자신의 가장 큰 장점을 발휘하기에는 조금은 나쁘지 않았나싶습니다.

 

세이초옹은 남성적이고 선굵은 이야기와 묘사에 더욱 최적화된 작품을 쓰는 작가가 아닌가 생각해보게 된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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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 (2015년판) - 김영하와 함께하는 여섯 날의 문학 탐사 김영하 산문 삼부작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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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 김영하.. 참을 수 없는 차분함...

   김영하 작가의 산문집 3부작은 당연히 다 구매를 해왔지만 이상하게도 끌리지 않았습니다. 얼마전에도 김영하 작가의 여행산문집을 들고 조금 읽다가 왠지 모를 따분함에 그만 둔 기억이 있어서 그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읽다"는 아무래도 책을 좋아한다라는 컨셉을 가지고 살아가는 입장에서 그냥 넘기기가 좀 어려웠습니다. 아마도 '거 뭐 두껍지도 않은데 이 정도는 읽어줘 볼까?'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엉뚱한 얘기지만 조직에서 한 사람의 반응양식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DiSC 검사를 해보면 저같은 사람은 i 성향이 아주 높게 나옵니다. 거의 최고치입니다. 쉽게 말하면 농담따먹기 좋아하고 재미를 추구하는 스타일입니다. 뭔가 일을 하는데 있어 사람들이 모여서 심각하게 회의하고 진지하게 고민하고 이런 상황을 무척 싫어합니다. 기왕 하는거 즐겁게 웃으면서 농담해가면서 하면 훨씬 능률도 좋고 덜 힘들지 않느냐? 뭐 이런 성향이죠. 저같은 사람을 딱 싫어하는 성향이 있어서 사실 좀 조심해야하기는 하지만 저는 그런 사람입니다.  

   반면, 김영하 작가는 강의도 몇개 보았고, 글도 조금은 접해 보았는데, 이 양반 상당히 차분합니다. 저같은 사람은 약간 숨막힐 정도의 차분함입니다. 그렇다고 유머가 전혀 없는 것이 아니지만 유머조차도 차분합니다. 그래서 그의 산문을 읽고 있으면 뭔가 차악 가라앉는 느낌입니다. 발목에 1톤짜리 돌을 매달고 바다에 빠져드는 느낌이랄까. 뭐 그런 차분함을 맛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차분함속에 단단한 알맹이가 있는 듯한 느낌이라 무척 매력이 있었습니다.


#2. 소설을 읽는다는 것...

   김영하 작가는 이 책을 통해서 소설을 읽는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저자에 따르면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정보수집도 아니고, 지적인 향상도 아니며 즉시 효과가 드러나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경험해보지 못한 이상한 세계로의 헤매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소설을 읽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헤매기 위해서일 겁니다. 분명한 목표라는 게 싫은 아무 의미도 없는 이상한 세계에서 어슬렁거리기 위해서입니다. (중략) 때로 이성에 이끌렸다가 때로 감성에 이끌렸다가 하면서 우리의 정신은 책 속에 구현된 그 이상한 세계를 점차 이해해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세계의 일원이 됩니다." p102

   이렇게 좋은 독서란 소설을 읽으면서 그 내용을 알아내려는 행위가 아니라 작가가 만들어놓은 정신의 미로를 기분좋게 헤매는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저자는 이런 설명을 통해 소설을 읽는 목적을 어느정도 형상화해서 이해시키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만 저는 오히려 복잡한 내용의 소설을 읽을때 도데체 뭔 소리인지 잘 몰랐던 경험들에 대한 "정신승리"로 승화하는데 매우 적극적으로 이 설명을 활용하게 되었던 것이었던 것입니다. '아, 그래 내가 잘 이해하기 힘들었던 이유는 작가가 정신의 미로를 복잡하게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야. 이해하려고 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었어. 그냥 그런가보다 하는게 맞는 것이여..' 라고 말입니다. 매우 편리한 사고방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정신승리의 명분을 제공해준 작가는 참으로 훌륭하기 짝이 없습니다.

   한편 소설을 한권, 한권 읽어나가면서 한 권의 소설을 읽기 전과 읽은 후의 내가 뭔가 설명할 수 없는 부분에서 분명히 달라져 있음을 느끼는 경우가 있는데 저자는 이부분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어떤 책들은 독자와 힘겨루기를 합니다. 그 책들을 읽고 나면 독자의 자아는 읽기 전의 상태로 돌아가기 어렵습니다. 이전에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인물과 생각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동의하지는 않지만 이런 인물과 사상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다는(아니 이미 존재하고 있다는)것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p138

   예전에 에쿠니 가오리의 "잡동사니"를 읽으면서 '나는 이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처럼 살 수는 없겠지만 저렇게도 부부사이를 유지하면서도 각자 다른 사람과 섹스도 하고 그것을 또 인정하고 사는 삶의 방식도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이웃에게 추천해주었더니 읽고나서는 "어디 이런 개쓰레기같은 변태책이 있느냐!"는 다소 격한 반응을 보였던 것이 나름 충격이었습니다. ㅋㅋ 이야기일 뿐인데 이 소설의 주인공들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탓이겠습니다.

   저는 남부럽지 않게 꽉 막히게 재미없게 살아왔던 사람인데, 나름 소설을 접하면서부터 제 자신이 그 이전과, 또 그 이전과 상당히 달라져 있음을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생각이 무척 유연해졌다는 것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소설에서 접했던 간접 경험들이 제 시야를 조금은 넓혀준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상당히 유익하고 사실상 돈도 드럽게 적게 드는 취미입니다. 뭐 하나 경험하려고 어디가봅시다. 그냥 움직이면 돈입니다. 이동하는데 드는 비용과 먹는데 드는 비용만 생각해도 세상에 할 게 없을 지경인데 소설읽기야 뭐 딱 책갚만 있으면 가능하죠. 도서관에서 빌리면 그냥 시간과 발품만 팔면됩니다.

   세상이 타이트해지고 움짝달싹 할 수 없을만큼 구조적으로 짜여지면서 한 사람이 세상의 많은 것을 경험하는 모험을 허용하지는 않지만 우리는 소설을 읽음으로 해서 '이야기의 바다'에 뛰어들어 '책의 우주'와 접속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뭐.. 제 입장에서는 이 역시도 정신승리의 일환이 아닌가 생각되지만 말입니다.


#3. 강의록을 책으로 출간한다는 것에 대하여...

   이거참.. 써 놓고도 애매합니다. 제가 이걸 까려고 쓴것인지 지지하려고 쓴 것인지도 헤깔립니다. 사실은 장서가라고 생각할 때 책은 이쁘기만 해도 소장가치가 있다고 볼 수도 있는데, 그마저도 시간이 지나면서 역시나 책은 반드시 소장해야하는 내용의 양서와 재미있게 읽고 처분할 흥미로운 책들과 절대 사지 말아야할 책들로 나눌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르게 됩니다. 얼마전에 많은 책들을 정리하고 내다 버린데도 그런 생각들이 반영된 것이지요.

   특정한 강의를 발췌하거나 강의록을 그대로 책으로 출간 하는 행위는 솔직히 그다지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편은 아닙니다. 차라리 강의 영상이나 강의 음성파일을 유료로 공개하는 것이 시대에 더 어울린다는 생각입니다. 돈벌이를 위한 편법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말입니다. 이를테면, '기왕 강의를 맡겼으니 강의록을 책으로 출간해서 원 소스로 두탕을 땡기자.'라는 발상이 아닌가 말입니다.

   에..또.. 그래서 이런 책은 독자를 모독하는 행위다... 라고 주장하고 싶었으나... 문제는 책을 읽다보니 내용이 또 상당히 좋더란 말입니다. 그리하여 책값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가량 독서를 찐하게 많이 해서 이 산문에 나와 있는 이야기들이 '이미 다 알고 있는 가치없는 주장'이라고 판단하는 사람이 있다면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겠죠. 하지만 저의 경우는 무척이나 의미있고, 새겨들을만한 좋은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저자가 오랜시간 독서해온 것들에 대해 참으로 솔직하고 진중하게 전해주고 있더란 말입니다. 그러니 왜 강의록을 책으로 냈느냐! 라며 따지기가 머슥해지는 것입니다.

   결론은 이렇습니다. 강의를 책으로 내는 것은 뭔가 반칙에 가깝다. 하지만 내용이 좋다면 언제나 환영이다. 이런거죠. 김영하씨의 강의록이라면 앞으로도 즐거운 마음으로 구매해서 읽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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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톡 1 - 조선 패밀리의 탄생 조선왕조실톡 1
무적핑크 지음, 와이랩(YLAB) 기획, 이한 해설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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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역사바보 꼰대가 이 책을 읽기까지...

 

   조선왕조실톡 출간소식은 오래전에 들어서 알고 있었습니다. 여러이웃들이 재미있다고 리뷰했던 것도 기억이 나고요. 하지만 이제 대한민국 꼰대의 길로 접어들고 있는 저로써는 역사를 지나치게 장난스럽게 다룬다는 선입관을 버릴 수가 없어서 "흥!" 하고 외면했었습니다. 꼰대의 길을 아무렇게나 가서는 안되니까요. 신선하고 새로운 형식에는 일단 거부감을 표현해주는 것이 꼰대의 바른 길이 아니겠습니까?

 

   며칠전 동네서점 나들이 갔을 때 이 책이 매대에 보이더군요. 아 이거? 하면서 몇장 넘겨봤습니다. 때마침 제가 "육룡이 나르샤"와 "정도전을 위한 변명" 콤보로 국사에 한창 관심이 많은 시기가 아니겠습니까? 그래서인지 무척 웃기고 관심이 가더군요. 그리하야 참으로 애매한 시점에 봉착했습니다. 이거 웹툰이라 이런 책을 돈을 주고 서점에서 구매하는 것은 꼰대가 갈 길은 아니지 않는가? 하는 마음과 "태조, 태종, 정도전"도 나오는데... 엄청 재밌겠는데... 하는 마음이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라고 썼지만 사실은 약 3초만에 집어들었음...

 

   그리고는 그날과 다음날 다 읽었던거 같습니다. 이 책에 대한 리뷰가 엄청 많은 듯하여 책리뷰에서 책내용 이야기는 자세히 하지 않습니다. 해봐야 누가 좋아하지도 않으니까는.. 어쨌거나 이 책은 역사바보도 재미지게 읽을 수 있는 책, 꼰대가 읽어도 유쾌하게 읽어 넘길 책입니다.

 

 

#2. 트렌드에 발맞춘 흥미로운 형식이라는건...

 

   바야흐로 톡의 시대가 아니겠습니까? 통화보다 톡이 편하고 단톡도 성행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사실 업무에도 많이 쓰고 있잖아요? 이런 시대의 획기적인 의사소통 수단을 그 옛날 과거에 사용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설정에서 시작한 웹툰은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얻을 수 밖에 없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리 형식이 좋아도 내용이 쉬레기면 오히려 욕을 먹기 딱 좋은 시도였는데 작가님이 상당히 위트가 있고 센스도 좋습니다. 저는 이런 위트를 무척 좋아합니다. 인생을 재미지게 살아야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이런 재미를 제공하면서 심지어 유익하기까지 하니 이 얼마나 역사바보를 위한 탁월한 안배란 말입니까?

   

 

#3. 웃기기만 하면 누가 읽냐?

 

   라고 썼지만 사실 웃기기만 해도 읽어주는 시대기는 한 것 같습니다. 살면서 웃을 일이 별로 없는 세상 아닙니까? 몇백년 전에도 똑같은 한탄을 하고 살아왔겠지만... 여튼 웃기기만 한 것이 아니라 더 좋았습니다. 이 책을 기획하면서 추가되었겠지만, 이한님이 해설이라는 형식으로 해당 에피소드와 부합하는 역사적 내용을 딱딱하지 않고 편안한 문장으로 들려주고 있어 책의 위트가 더욱 빛납니다. 균형을 잘 맞추었다는 생각입니다. 저는 이 책에 실린 내용이 역사적 사실과 부합하냐 아니냐를 판단할 능력이 다행히 없어서 그저 재미지고 유익하게 보았습니다. 세상에 알면 알수록 잘보인다지만 역사는 바보일수록 그냥 재미지게 읽어지기도 하는 모양입니다. 앞으로 역사바보로써 유익한 역사책들을 관심있게 더 읽어보고 싶습니다. 시리즈 다음책도 너무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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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맨 그레이맨 시리즈
마크 그리니 지음, 최필원 옮김 / 펄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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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액션은 막 달리는것.. 그 단순함의 미덕...


    제가 처음 접한 미스터리가 사회파 미스터리였고, 그것 때문인지 저는 사회파 미스터리를 가장 좋아한다고 자신있게 말해왔습니다. 실제로 사회파 미스터리에 애정도 많고 말입니다. 그런데 [브릴리언스] 같은 작품을 읽을 때도 살짝 들었던 생각이지만 사실은 단순하게 막 부수고 쏘고 때리고 두드려맞는 하드코어 액션이 가장 재미지기는 하더군요.  하드보일드한 남성적 소설이 먹고살기의 버거움에 억눌린 남성성, 야성에 대한 대리만족 역할을 해서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레이맨]은 그런 장르소설의 최고미덕을 십분 발휘하는 소설입니다. 무조껀 재밌습니다. 가독성이 최고입니다. 몰입도도 무척 높습니다. 가끔 책을 읽다보면 잘시간이 지났는데도 자기 싫고, 지하철에서는 내릴 곳을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가 가끔 있는데 바로 [그레이맨]이 그런 책이었습니다.  그야말로 달리는 폭주기관차에 얼렁뚱땅 몸을 실었다가 막 끌려가는 상황 같은 것이 상상이 되는 것입니다. 멈출때까지는 내릴 수가 없어요. 중간에 어디 간이역이라도 서야하는데 멈추지를 않아요. 그냥 서울에서 타서 부산까지 논스톱으로 달립니다. 그것도 음청 빨리 막달린단 말이야~~~~



 


#2. 액션은 액션으로 충분하다...


   이 책을 읽은 대부분의 독자들은 아마도 "본 시리즈"를 떠올릴 듯 합니다. 그만큼 기본적으로 유사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아, 이거 그렇게 재밌다고 소문났더니 아무래도 본 시리즈의 아류 정도라고 해야하는거 아닌가?'하는 생각을 하면서 읽었습니다. 그런데 어느정도 진행되면서 생각이 좀 바뀌더군요. 본 시리즈와 확연한 차이를 위해 다른 장치를 해 두었다면 과연 이 작품을 이렇게 재미지게 읽을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역시나 생각하면 할수록 액션은 액션으로 충분한 것 같습니다. 오히려 본 시리즈의 제이슨 본은 자신의 정체성 때문에 고뇌하는 부분이 꽤나 크게 부각된다는 점에서 이 작품보다는 정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좋게 말하면 본 시리즈는 리듬감있게 갈 때와 설 때를 잘 구분했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그레이맨]은 그냥 치달린다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죠. 어느 작품이 더 낫다라고 말할 수는 없네요.

   이 작품의 주인공 '코틀랜드 젠트리'는 냉정한 킬러지만 오히려 도덕적이고 나름 정의롭다는 설정이 독자를 편안하게 해주는 장치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사람을 죽이지만 죽일만한 놈만 죽이니 봐줄 만 하다... 뭐 이런거죠. 게다가 죽음을 불사하고 약자를 보호하려는 태도로 일관하니 더욱 그렇죠. 얼마나 질긴지 시작부터 총 맞고 유리에 찔리고 쓸리고 부서지고 나중에는 칼도 찐하게 쑤욱 맞는데도 거의 불사신급 생명력을 자랑합니다. 마지막에 설정상 스팀팩을 맞고 버티기는 하지만 아따 그거참 환타지 스러운 체력과 정신력을 가진 주인공되시겠습니다. 부럽다 그런 몸뚱아리... 아이고 허리야... 

   [그레이맨]은 단순한 구조에 직선적인 흐름인데다가 심지어 단편적이고 투명한 캐릭터들이 등장해서 생긴 그대로 행동하는 이야기입니다. 아따 스토리니 플롯이니 설명하기도 거시커니 합니다. 너나 나나 예상가능한 수준에서 이야기가 시작되서 끝납니다. 그냥... 100m 달리기 처럼 직선라인을 따라 오로지 앞만 보고 막 쳐달립니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는 꼼꼼히 발췌를 한다거나 뭔가 노트를 한다거나 포스트잇을 부치는 행위를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냥 주루루루룩 읽으면 어느새 이야기가 끝나있습니다. 그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바로 그 결말로 말입니다. 허를 찌르는 반전도 사회를 고찰하는 시선도 없습니다. 사실은 그래서 너무 마음에 든 작품입니다. 그냥 재미있게 읽고 뒤끝없는 깔끔한 작품이다라는게 의외의 청량감이 있었습니다.



 

#3. 별반개의 아쉬움...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지적을 하지 않고 넘어갈 수는 없습니다. 번역과 편집상의 아쉬움이 살짝 있습니다. 대단한 건 아니지만 가독성이 좋은 다른 책들에 비해서는 여전히 글씨가 좀 작은 감이 있습니다. 글씨가 크면 두께가 두꺼워지는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조금 더 큰 폰트에 널찍한 줄간격과 여백은 아무래도 읽는 독자를 편안하게 하는 면이 있습니다. 사실은 얼마 안되는 내용으로 책 만드느라 고무줄 처럼 늘린 책들이 은근 많아서 익숙해진 탓도 있기는 하겠습니다.

 

   도데체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아니 동일인물을 지칭하는 호칭이 계속 바뀌는 건 참으로 불편했습니다. 나중에는 그런가보다 하게 되는데다가 워낙 구조가 단순하니 어차피 그놈이 그놈이라 크게 헤갈릴 건떡지가 없기는 하지만 그래도 계속 거슬리기는 했습니다. 심지어 한페이지에서도 주인공이 "코트" 였다가 "젠트리" 였다가 하니 이건 뭐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도 아니고 왜 이러는거야? 하는 생각이 자꾸 들더란 말입니다. 거뭐 주인공은 그렇다고 쳐. 주변 인물도 다 그런식이더란 말입니다. 아무래도 원작에서 그렇게 써놔서 그대로 충실하게 번역한 것일테지만 한국적 정서에 맞지 않아... 라고 말하기는 좀 무리고 여튼 저에게는 불편했어요. 그러지 마세요... 라고 말해봤자 벌써 다 읽어버렸지...

 

   그리고 내가 잘 몰라서 그런건지 띄어쓰기가 어색한 부분이 왜 그리도 많은 거지 말입니다... 왜 때문에 띄어쓰기 오류가 고래 많았답니까? 오타도 가끔 있는데다가 제가 보기에는 띄어쓰기 하다가 단어의 첫글자를 삭제한 부분도 있던데 이거슨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이런 문제는 직원이 적은 출판사라면 누구도 피해가기 어려운 부분일 수 밖에 없는데 이런 오탈자 문제는 독자교정으로 거의 완벽하게 카바할 수 있는데 앞으로 잘 활용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오랜만에 하드보일드 슈퍼액션 한편을 읽어서 속 시원하고 쿨한 작품이었습니다. 무척 만족스럽게 즐긴 작품으로 기억되게 될 듯 합니다. 책읽기 싫을 때 이런류의 작품을 골라 읽어야겠다 하는 생각을 하게 해준 작품입니다. 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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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을 위한 변명 - 혁명가 정도전, 새로운 나라 조선을 설계하다
조유식 지음 / 휴머니스트 / 2014년 2월
평점 :
품절


 

 

 

#1. 정도전을 중심으로, 그러나 정도전만의 이야기는 아닌... 그리고 교과서라...


   최근 육룡이 나르샤를 재미있게 보면서 관심이 생겨서 읽게 된 [정도전을 위한 변명]입니다. 이방원이 상당히 매력적으로 등장하고 가상의 인물인 땅새가 너무 좋아서 심쿵하고 있지만 그래도 여말선초의 핵심은 누가뭐래도 이성계와 정도전 콤비가 아닐까 합니다. 또한 무력을 상징하는 이성계측 보다는 철학과 방향성을 상징하는 정도전에 대한 관심이 더 많이 생기게 되었던 것이죠. 사실 정도전에 대한 이야기는 작년초였던가? 드라마가 성공하면서 이미 대중적으로 크게 관심을 받은 바 있는데, 괜히 남들 좋다좋다하면 외면하게 되는 태도때문에 그러려니 하고 찾아읽지 않았던 것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썩은 현실을 타파할 대안으로 새로운 나라를 구상하고 그 구상을 현실화하기 위해 치밀한 계획까지 세웠던 정도전의 삶을 대하면서 일단은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상상의 부분인지 좀 더 알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선택했는데 굳초이스였던 것 같습니다. 제가 기대하던 내용이 상당히 충실하게 담겨 있었습니다. 덤으로 정도전 뿐만 아니라 당시의 국제정세를 포함한 다양한 상황들과 그 시대를 살아갔던 인물들에 대해 알게 되어 좋았습니다. 아무래도 역사에 취약한 저로써는 뭐랄까? 거의 입을 슬쩍 벌리고 '아.. 그렇구나.. 그런거구나..'하며 그냥 흡수할 수 밖에 없었던 내용들이었죠.


   가만 생각해보면 국사 교과서에서 무작정 외웠던 내용을 어렴풋이 떠올려보면 뭔가... 이 책에 쓰여진 내용들과 잘 매치가 안된다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습니다. 이를테면  '정몽주는 고려를 끝까지 버리지 않고 죽음을 택했으니 충신이다.' 뭐 이런 식의 내용들이 있었던 것이 기억이 나는데 너무 단편적인 해석이 아닐 수 없습니다. 보다 균형잡힌 이 책에서는 "정몽주는 개혁적이었으나 적어도 나라를 바꾸면서까지 개혁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정도전을 당시의 판을 갈아엎지 않고서는 개혁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정도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누가 좋은편 나쁜편이 아닌데 저의 기억속에 교과서는 편가르기식 교육을 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딱히 누군가 제 기억을 조작하지 않은 이상 당시는 그랬던 거 같은데 그리고 그것을 기계적으로 외우고 말이죠.


   한 나라의 역사는 이런식으로 주입되어서는 안됩니다. 기본적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역사적 사료 자체가 집권층의 시각이 넘치도록 반영된 기록일진데 그것을 해석해서 가르치는 것조차 특정 가치관이 반영된다면 계속 편향되어질 수밖에 없죠. 거뭐. 그러거나 말거나 중요한 것은 이런 균형잡힌 시각이 담긴 책을 많이 읽어보는 것이겠죠. 제 나이가 이제 마흔이 되어가니 아직 늦지 않았네요. ㅋㅋ

 



#2. 정도전이 꿈꿨던 나라, 이방원이 꿈꿨던 나라


   이 책속에 등장하는 가장 인상깊고 흥미로운 부분은 정도전과 이방원의 통치관 차이였습니다. 정도전의 철인통치는 기본적으로 민주적 재상정치에 가깝습니다. 왕이 존재하는 체제를 없애자는 것은 아니지만 왕이 자기 마음대로 왕놀이 못하도록 재상과 지식인들이 조언을 아끼지 말고 더 나아가 왕을 지도해야 한다는 것이죠. 한편으로는 민본주의적 성향이 강했습니다. 이성계와 함께 정권을 차지하기 전에 이미 수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 서민들의 어려움과 고초를 몸으로 체험한 그 경험이 서민을 기본토대로 생각하는 그의 가치관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평가하고 있습니다. 서민을 위한 정치를 한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개혁적일 수 밖에 없고, 많은 저항에 부딪힐 수 밖에 없습니다. 정치를 두고 목소리를 내고 결정하는 추체가 서민은 아니던 시대였으니까 말입니다. 지금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이방원의 경우는 왕중심의 정치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본인이 왕자니 뭐 당연하겠죠. 왕권이 전제적으로 강화되어 절대적인 권력을 누려야만 나라가 안정된다는 그의 시각은 당시 상황만 놓고보면 지극히 자연스럽습니다. 이 전제왕권적 성격은 왕이 무능하면 나라를 통으로 완존히 조진다는 최대의 단점을 가지고 있죠. 리더가 멍청하면 나라가 뒤흔들린다는 사실이야 체험적으로 많이들 느끼고 있을 터이니 두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이 책이 좋은 점은 이런 이방원을 나쁜 사람으로 제단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정적이던 정도전 세력을 쿠데타로 해치우고 왕위를 차지한 이방원이지만 권력을 차지한 이후로는 나라를 튼튼히하고 세종대왕이 마음껏 꿈을 펼칠 수 있는 초석을 놓았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누가 맞는지는 동일한 시대를 두사람이 따로따로 집권해보지 못했으니 비교불가입니다만 장단이 있다는게 정답인거 같습니다. 인간이란 참으로 복잡한 존재라 단순하게 상황에 미루어 예단하는게 의미가 없으니까요. 남들보면 참으로 한심하지만 내가 거기가면 그보다 더 할 수도 있는게 인간 아니겠습니까? 그런 관점에선 그때나 지금이나 지금 이후나 한치의 변화도 없이 참으로 성실하게 일관된 것이 인간사가 아닐까 싶습니다.




#3. 마치 현실세계를 대하는 듯한 느낌의 이야기들..


   아마도 다들 비슷하지 않을까 싶은데, 이 책에 나타난 여러 인물과 세력들간의 이해득실관계와 대립, 투쟁 그리고 집권과 패망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제가 살면서 겪어온 우리나라의 여러가지 파란만장했던 난장판과도 유사한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특히 이성계, 정몽주, 정도전, 이방원 등과 같이 역사를 이끌어가는 주요인물들 보다는 권력의 언저리에서 상황에 따라 갈대처럼 오락가락 목숨을 유지하면서 재물모으기와 욕망채우기에 여념이 없던 많은 인물들을 보면 옳고 그름은 난 모르겠고 내 배나 채우자고 다른 사람들을 서슴치 않고 괴롭히고 죽음으로 내모는 수많은 인간군상들이 자연히 떠오르게 됩니다. 제가 똑같은 입장이 되면 얼마나 낫겠냐는 생각도 동시에 하게 되지요.


   세상이 올바르지 않다는 비판적 시각은 어느시대나 존재합니다. 세상을 잘 이용해서 이득을 취하겠다는 사람들도 어느 시대나 넘쳐납니다. 이런 사람들은 사실상 매우 현실적인 시각을 지닌 사람들이고, 적어도 자기자신과 가족들은 부족함없이 잘 살아갑니다. 그러나 세상을 한 발자국씩이라도 변화시키는 사람은 남다른 꿈과 비전을 지닌 소수의 인물들입니다. 이런 인물들의 가족들은 대체로 수난을 겪게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것은 이런 이상적인 사람들입니다.


   예로부터 수신제가 치국 평천하라고 하지만 수신하고 제가한 다음 치국해서 평천하하는 사람은 역사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거 같습니다. 수신하고 제가하는 사람은 치국과 평천하를 할 여력이 없습니다. 치국과 평천하를 원하는 사람이 수신은 몰라도 제가까지 할 시간적, 정신적 여유는 있을리 만무합니다. 크게 수신제가와 치국평천하를 나눈다고 하면 이 두가지가 병립하기는 참으로 불가능에 가깝다는게 제 생각입니다. 정도전도 역시나 큰 꿈을 품고 있다보니 가족은 가난에 찌들렸던 기록들이 나옵니다. 집권해서 한동안은 부귀영화를 누렸으니 다행지만, 이방원 세력에게 죽임을 당하기 직전까지 평천하를 위해 요동지방 정벌을 꿈꾸고 있었던 그는 결과적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였고, 가족들까지 화를 당했습니다. 심지어 오늘날까지 묘자리도 제대로 찾지 못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정도전에 대한 평가가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저처럼 역사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이 책을 많이들 읽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적어도 살아가는데 있어 균형잡힌 시각을 가지는데 도움이 될 수 있고, 그냥 읽는 것 자체가 재미있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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