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 작가는 이 책을 통해서 소설을 읽는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저자에 따르면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정보수집도 아니고, 지적인 향상도 아니며 즉시 효과가 드러나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경험해보지 못한 이상한 세계로의 헤매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소설을 읽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헤매기 위해서일 겁니다. 분명한 목표라는 게 싫은 아무 의미도 없는 이상한 세계에서 어슬렁거리기 위해서입니다. (중략) 때로 이성에 이끌렸다가 때로 감성에 이끌렸다가 하면서 우리의 정신은 책 속에 구현된 그 이상한 세계를 점차 이해해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세계의 일원이 됩니다." p102
이렇게 좋은 독서란 소설을 읽으면서 그 내용을 알아내려는 행위가 아니라 작가가 만들어놓은 정신의 미로를 기분좋게 헤매는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저자는 이런 설명을 통해 소설을 읽는 목적을 어느정도 형상화해서 이해시키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만 저는 오히려 복잡한 내용의 소설을 읽을때 도데체 뭔 소리인지 잘 몰랐던 경험들에 대한 "정신승리"로 승화하는데 매우 적극적으로 이 설명을 활용하게 되었던 것이었던 것입니다. '아, 그래 내가 잘 이해하기 힘들었던 이유는 작가가 정신의 미로를 복잡하게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야. 이해하려고 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었어. 그냥 그런가보다 하는게 맞는 것이여..' 라고 말입니다. 매우 편리한 사고방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정신승리의 명분을 제공해준 작가는 참으로 훌륭하기 짝이 없습니다.
한편 소설을 한권, 한권 읽어나가면서 한 권의 소설을 읽기 전과 읽은 후의 내가 뭔가 설명할 수 없는 부분에서 분명히 달라져 있음을 느끼는 경우가 있는데 저자는 이부분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어떤 책들은 독자와 힘겨루기를 합니다. 그 책들을 읽고 나면 독자의 자아는 읽기 전의 상태로 돌아가기 어렵습니다. 이전에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인물과 생각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동의하지는 않지만 이런 인물과 사상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다는(아니 이미 존재하고 있다는)것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p138
예전에 에쿠니 가오리의 "잡동사니"를 읽으면서 '나는 이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처럼 살 수는 없겠지만 저렇게도 부부사이를 유지하면서도 각자 다른 사람과 섹스도 하고 그것을 또 인정하고 사는 삶의 방식도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이웃에게 추천해주었더니 읽고나서는 "어디 이런 개쓰레기같은 변태책이 있느냐!"는 다소 격한 반응을 보였던 것이 나름 충격이었습니다. ㅋㅋ 이야기일 뿐인데 이 소설의 주인공들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탓이겠습니다.
저는 남부럽지 않게 꽉 막히게 재미없게 살아왔던 사람인데, 나름 소설을 접하면서부터 제 자신이 그 이전과, 또 그 이전과 상당히 달라져 있음을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생각이 무척 유연해졌다는 것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소설에서 접했던 간접 경험들이 제 시야를 조금은 넓혀준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상당히 유익하고 사실상 돈도 드럽게 적게 드는 취미입니다. 뭐 하나 경험하려고 어디가봅시다. 그냥 움직이면 돈입니다. 이동하는데 드는 비용과 먹는데 드는 비용만 생각해도 세상에 할 게 없을 지경인데 소설읽기야 뭐 딱 책갚만 있으면 가능하죠. 도서관에서 빌리면 그냥 시간과 발품만 팔면됩니다.
세상이 타이트해지고 움짝달싹 할 수 없을만큼 구조적으로 짜여지면서 한 사람이 세상의 많은 것을 경험하는 모험을 허용하지는 않지만 우리는 소설을 읽음으로 해서 '이야기의 바다'에 뛰어들어 '책의 우주'와 접속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뭐.. 제 입장에서는 이 역시도 정신승리의 일환이 아닌가 생각되지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