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다 (2015년판) - 김영하와 함께하는 여섯 날의 문학 탐사 김영하 산문 삼부작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1월
평점 :
절판


 

 

 

#1. 김영하.. 참을 수 없는 차분함...

   김영하 작가의 산문집 3부작은 당연히 다 구매를 해왔지만 이상하게도 끌리지 않았습니다. 얼마전에도 김영하 작가의 여행산문집을 들고 조금 읽다가 왠지 모를 따분함에 그만 둔 기억이 있어서 그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읽다"는 아무래도 책을 좋아한다라는 컨셉을 가지고 살아가는 입장에서 그냥 넘기기가 좀 어려웠습니다. 아마도 '거 뭐 두껍지도 않은데 이 정도는 읽어줘 볼까?'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엉뚱한 얘기지만 조직에서 한 사람의 반응양식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DiSC 검사를 해보면 저같은 사람은 i 성향이 아주 높게 나옵니다. 거의 최고치입니다. 쉽게 말하면 농담따먹기 좋아하고 재미를 추구하는 스타일입니다. 뭔가 일을 하는데 있어 사람들이 모여서 심각하게 회의하고 진지하게 고민하고 이런 상황을 무척 싫어합니다. 기왕 하는거 즐겁게 웃으면서 농담해가면서 하면 훨씬 능률도 좋고 덜 힘들지 않느냐? 뭐 이런 성향이죠. 저같은 사람을 딱 싫어하는 성향이 있어서 사실 좀 조심해야하기는 하지만 저는 그런 사람입니다.  

   반면, 김영하 작가는 강의도 몇개 보았고, 글도 조금은 접해 보았는데, 이 양반 상당히 차분합니다. 저같은 사람은 약간 숨막힐 정도의 차분함입니다. 그렇다고 유머가 전혀 없는 것이 아니지만 유머조차도 차분합니다. 그래서 그의 산문을 읽고 있으면 뭔가 차악 가라앉는 느낌입니다. 발목에 1톤짜리 돌을 매달고 바다에 빠져드는 느낌이랄까. 뭐 그런 차분함을 맛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차분함속에 단단한 알맹이가 있는 듯한 느낌이라 무척 매력이 있었습니다.


#2. 소설을 읽는다는 것...

   김영하 작가는 이 책을 통해서 소설을 읽는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저자에 따르면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정보수집도 아니고, 지적인 향상도 아니며 즉시 효과가 드러나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경험해보지 못한 이상한 세계로의 헤매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소설을 읽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헤매기 위해서일 겁니다. 분명한 목표라는 게 싫은 아무 의미도 없는 이상한 세계에서 어슬렁거리기 위해서입니다. (중략) 때로 이성에 이끌렸다가 때로 감성에 이끌렸다가 하면서 우리의 정신은 책 속에 구현된 그 이상한 세계를 점차 이해해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세계의 일원이 됩니다." p102

   이렇게 좋은 독서란 소설을 읽으면서 그 내용을 알아내려는 행위가 아니라 작가가 만들어놓은 정신의 미로를 기분좋게 헤매는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저자는 이런 설명을 통해 소설을 읽는 목적을 어느정도 형상화해서 이해시키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만 저는 오히려 복잡한 내용의 소설을 읽을때 도데체 뭔 소리인지 잘 몰랐던 경험들에 대한 "정신승리"로 승화하는데 매우 적극적으로 이 설명을 활용하게 되었던 것이었던 것입니다. '아, 그래 내가 잘 이해하기 힘들었던 이유는 작가가 정신의 미로를 복잡하게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야. 이해하려고 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었어. 그냥 그런가보다 하는게 맞는 것이여..' 라고 말입니다. 매우 편리한 사고방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정신승리의 명분을 제공해준 작가는 참으로 훌륭하기 짝이 없습니다.

   한편 소설을 한권, 한권 읽어나가면서 한 권의 소설을 읽기 전과 읽은 후의 내가 뭔가 설명할 수 없는 부분에서 분명히 달라져 있음을 느끼는 경우가 있는데 저자는 이부분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어떤 책들은 독자와 힘겨루기를 합니다. 그 책들을 읽고 나면 독자의 자아는 읽기 전의 상태로 돌아가기 어렵습니다. 이전에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인물과 생각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동의하지는 않지만 이런 인물과 사상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다는(아니 이미 존재하고 있다는)것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p138

   예전에 에쿠니 가오리의 "잡동사니"를 읽으면서 '나는 이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처럼 살 수는 없겠지만 저렇게도 부부사이를 유지하면서도 각자 다른 사람과 섹스도 하고 그것을 또 인정하고 사는 삶의 방식도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이웃에게 추천해주었더니 읽고나서는 "어디 이런 개쓰레기같은 변태책이 있느냐!"는 다소 격한 반응을 보였던 것이 나름 충격이었습니다. ㅋㅋ 이야기일 뿐인데 이 소설의 주인공들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탓이겠습니다.

   저는 남부럽지 않게 꽉 막히게 재미없게 살아왔던 사람인데, 나름 소설을 접하면서부터 제 자신이 그 이전과, 또 그 이전과 상당히 달라져 있음을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생각이 무척 유연해졌다는 것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소설에서 접했던 간접 경험들이 제 시야를 조금은 넓혀준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상당히 유익하고 사실상 돈도 드럽게 적게 드는 취미입니다. 뭐 하나 경험하려고 어디가봅시다. 그냥 움직이면 돈입니다. 이동하는데 드는 비용과 먹는데 드는 비용만 생각해도 세상에 할 게 없을 지경인데 소설읽기야 뭐 딱 책갚만 있으면 가능하죠. 도서관에서 빌리면 그냥 시간과 발품만 팔면됩니다.

   세상이 타이트해지고 움짝달싹 할 수 없을만큼 구조적으로 짜여지면서 한 사람이 세상의 많은 것을 경험하는 모험을 허용하지는 않지만 우리는 소설을 읽음으로 해서 '이야기의 바다'에 뛰어들어 '책의 우주'와 접속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뭐.. 제 입장에서는 이 역시도 정신승리의 일환이 아닌가 생각되지만 말입니다.


#3. 강의록을 책으로 출간한다는 것에 대하여...

   이거참.. 써 놓고도 애매합니다. 제가 이걸 까려고 쓴것인지 지지하려고 쓴 것인지도 헤깔립니다. 사실은 장서가라고 생각할 때 책은 이쁘기만 해도 소장가치가 있다고 볼 수도 있는데, 그마저도 시간이 지나면서 역시나 책은 반드시 소장해야하는 내용의 양서와 재미있게 읽고 처분할 흥미로운 책들과 절대 사지 말아야할 책들로 나눌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르게 됩니다. 얼마전에 많은 책들을 정리하고 내다 버린데도 그런 생각들이 반영된 것이지요.

   특정한 강의를 발췌하거나 강의록을 그대로 책으로 출간 하는 행위는 솔직히 그다지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편은 아닙니다. 차라리 강의 영상이나 강의 음성파일을 유료로 공개하는 것이 시대에 더 어울린다는 생각입니다. 돈벌이를 위한 편법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말입니다. 이를테면, '기왕 강의를 맡겼으니 강의록을 책으로 출간해서 원 소스로 두탕을 땡기자.'라는 발상이 아닌가 말입니다.

   에..또.. 그래서 이런 책은 독자를 모독하는 행위다... 라고 주장하고 싶었으나... 문제는 책을 읽다보니 내용이 또 상당히 좋더란 말입니다. 그리하여 책값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가량 독서를 찐하게 많이 해서 이 산문에 나와 있는 이야기들이 '이미 다 알고 있는 가치없는 주장'이라고 판단하는 사람이 있다면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겠죠. 하지만 저의 경우는 무척이나 의미있고, 새겨들을만한 좋은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저자가 오랜시간 독서해온 것들에 대해 참으로 솔직하고 진중하게 전해주고 있더란 말입니다. 그러니 왜 강의록을 책으로 냈느냐! 라며 따지기가 머슥해지는 것입니다.

   결론은 이렇습니다. 강의를 책으로 내는 것은 뭔가 반칙에 가깝다. 하지만 내용이 좋다면 언제나 환영이다. 이런거죠. 김영하씨의 강의록이라면 앞으로도 즐거운 마음으로 구매해서 읽을 것 같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