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놈들 - 상 세이초 월드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경남 옮김 / 모비딕 / 2015년 9월
평점 :
품절


 

 

 

 

 

항상 저에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는 세이초옹의 장편 [나쁜놈들]입니다. 세이초의 장점은 단편에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지만 응원하는 작가의 작품을 읽지 않고 떠든다는 건 착한놈인 저에게는 마음의 짐이라 그중 근작인 이 작품을 읽어봤습니다. "D의 복합" 같은 작품을 통해 세이초옹 장편은 큰 기대를 하지 않아야 한다고 마음 먹은바 있습니다만 이번 작품은 또 결이 좀 다른 작품이라 괜찮았습니다.

 

 

#1. 나쁜짓도 왠만한 노력으로는 되지않아... 그거슨 타고난 재능...

 

세이초옹의 [나쁜놈들]에는 거의 나쁜놈들만 나옵니다. 제목대로입니다. 보통은 나쁜놈이 있고 나쁜짓을 당하는 선량, 혹은 순수한 사람이 존재하기 나름인데 이 소설에는 닥치고 나쁜놈들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나이에 이 소설을 읽으면서 ', 이거 너무 나쁜데?'라는 생각이 그다지 들지 않았던 것은 살면서 만나는 많은 사람들 중에 소설 [나쁜놈들]에 등장하는 나쁜놈들보다 더 나쁜 경우가 꽤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현실에서 이미 꽤나 충격을 받아서인지 그저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읽어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돌아보면 직장생활 하면서 겪은 사람중에도 종종 있었던거 같네요. "나쁜놈들"에서는 남녀관계에서 악행을 저지르는 상황이 대부분이라 행태는 다릅니다만 본인의 욕망과 이익을 최우선에 두고 행동하는 사람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태도 때문에 나쁜놈들이 속출합니다. 직장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경쟁이 많기 때문에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관찰하면 쉽게 파악할 수 있지요. 제 스스로 잔머리쓰는걸 경멸하기 때문에 더 그런 사람들이 잘 보이기도 합니다.(그렇다고 저는 아니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만..)

 

몇몇 인물들을 관찰하면서 느낀 것은 "나쁜 것"은 그냥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타고난 재능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잘 생각해보면 내가 원하는 것이 있지만 이미 우정관계가 있고, 상대의 필요를 알고, 조직에서 속한 내 위치와 역할을 정상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조직과 주변 동료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을 의도적으로 결정하고 행동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있습니다.

 

7,8년 전에 바로 옆에서 겪은 경험이 있습니다만 놀랍게도 정작 당사자는 그것을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당연하게 생각하거든요. 이를테면 이런거죠. '내 돈은 당연히 내 돈인데, 다른 사람의 돈은 빌려쓰면 내 돈이다. 빌리는 순간부터 내 돈이니 갚아야할 의무는 없다. 안값으면 내껀대 내가 왜 갚아야 하나?', 당연히 애가타는 빌려준 사람은 독촉을 할 수 밖에 없겠죠. 그러면 이제는 '돈 몇푼으로 상대방을 힘들게 하는 저런 놈은 천하의 나쁜놈이다. 그러므로 더욱 갚아줄 필요가 없다.' 라는 정말 개떡같은 논리를 폅니다.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는 전형적인 수법입니다만, 가까이서 보고 있으면 정말 혀를 내두르게 됩니다. 본인은 결코 그것이 거짓이고 정신승리라고 생각하지 않고 진짜로 그렇다고 믿어버리거든요. 이런게 타고난 재능이 아니고 뭐겠습니까? 이 작품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캐릭터들이 이런 재능을 타고난 인물들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다지 놀랍지않은 인물들이기도 하지요

 

 

 

#2. 나쁜놈들은 어느시대나 넘쳐난다.

 

나쁜짓도 재능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어느 시대나 나쁜놈들은 넘쳐납니다. 그들 중의 일부를 소설 [나쁜놈들]에서는 집약적으로 잘 묘사해주고 있습니다. 또한 세이초옹 답지않게 심리묘사를 무척이나 세심하게 해주고 있습니다. 특히 주인공인 "도야"가 스스로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정신상태와 마음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서 압박받아 나쁜 결정을 하게 되는 과정을 무척 자연스럽게 그리고 있습니다.

 

한편 나쁜짓을 하는 동기에 대해서도 상당히 치밀하게 묘사하고 있는데, 작품속에서는 시대를 넘어서는 나쁜짓의 동기를 크게 두가지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첫번째는 당연히 돈입니다. 돈이 필요한데 돈이 없으니 돈이 있는 사람에게 빼앗아야 하는데, 주인공 도야는 스스로 자기가 이성을 잘 "후린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걸 이용해 돈을 뜯어냅니다. 그 당시에도 멀티테스킹이 유행이었는지 동시에 여러여성에게 작업을 합니다.

 

다른 한가지는 사회적 지위유지입니다. 주인공은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병원의 원장입니다. 그러다보니 어느정도 사회적 지위와 체면이 있는데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서 나쁜짓을 반복할 수 밖에 없는 것이죠. 한편으로는 이 사회적 지위와 체면이라는 것은 죄를 돌이키고 바로잡기보다는 더 많은 죄로 기존의 잘못을 덮을 수 밖에 없는 명분으로 작용합니다. 들키면 사회에서 매장당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숨겨야 하고, 숨기기 위해서는 또 다른 어떤 짓을 해서라도 기존의 문제들을 덮어두어야 하는 것이니까 말입니다. 그러다보니 한번 시작하면 끝없이 꼬이고 꼬이는 것이죠. 이런 문제는 현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문제입니다. 의외로 인간이란건 사회적 동물이라 그런지 체면과 보여지는 것을 중시하니까 말입니다. 비교도 드럽게 많이 하지 않습니까? 한국사회에 유행이 많은 이유도 체면을 차리는 문화가 크게 작용하는데 일본도 만만치 않았던 모양입니다.

 

배경차이를 빼면 이야기가 '옛날에 그랬었나보다.' 라고 할 수 없을 만큼 지금 시대와도 정확히 들어 맞습니다. 시대적 상황에 따른 특정한 이야기 전개가 아니라 그저 사람사는 이야기, 인간과 인간사이에 흔히 일어나는 문제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참 못된 놈들이 많은 세상입니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악하기 때문이겠죠. 아우 나뻐..

 

 

 

 

 

#3. 국내독자들이 세이초의 소설에 열광하지 못하는 이유...

 

최근에는 세이초옹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았다는 미야베미유키 같은 작가의 작품이 국내에서도 무척이나 각광을 받고 있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작품 출간을 놓고 이런저런 잡음이 나기도 하고 출판사의 명운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기도 하는 상황입니다. 그런데도 일본에서는 세이초옹을 빼놓고는 미스터리를 논할 수가 없다고 할만큼 미스터리류의 거성님이신데 소개된지가 몇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도 세이초옹의 작품들은 그닥 반응이 미적지근합니다.

 

저는 이유막론하고 세이초옹을 애정합니다만, 번역되어 출간되는 작품들을 읽다보면 완전 감탄하고 깜놀할 만한 재미를 주지는 못하는게 사실입니다. 사회파 미스터리 자체가 국내에 그다지 인기가 없는 것도 한 이유일테고, 미미여사가 상대적으로 시대를 초월한 사회적 문제를 다루고 있다면 세이초옹은 철지난 일본 사회의 문제를 다루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원폭 상황을 놓고 피해자 모드로 묘사하거나 전쟁을 일으킨 당사자인 본국의 국민들을 피해자로 설정하는 등, 국내에서 그냥 받아들이기는 무리가 있는 설정들이 꽤나 등장합니다. 한편으로는 건조한 문체와 서사도 한몫하는 듯 합니다.

 

이 작품의 경우는 크게 표가 나는 것이 아니기는 하지만 정기간행물에 연재한 작품이라는 것이 눈에 띄기도 합니다. 뻔히 인물에 대한 배경이나 설명을 충분히 한 상황에서 챕터가 바뀌자 똑같은 내용을 다시 설명하기도 하고 중복되는 내용을 정리하기도 합니다. 마치 드라마에서 이전 이야기를 요약해서 보여주는 것처럼 말이죠. 아니나 다를까 후기를 보니 1960년도부터 주간지에 연재되었던 작품이더군요.

 

정교한 현대 미스터리들을 충분히 섭렵한 독자들이 보기에 세이초옹의 미스터리는 상당히 단순한 부분도 있습니다. ~~ 하고 감탄할 만한 내용이 사실 별로 없어요. 이 작품의 경우도 상편을 읽을 때는 주인공이 나쁜짓을 하는 이야기가 흥미롭게 펼쳐집니다. 그러나 하권으로 넘어가면서 지루해지기도 하고, 지나치게 반복되는 스토리이기도 한데다가 앞으로 드러나게 될 반전에 대해서 대충 느낌이 옵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마지막 반전이 좋았습니다만...

 

독자가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객관적인 거리두기가 어려운 것도 이 작품에 대한 반응이 애매한 이유가 됩니다. 주인공을 비롯한 어느 누구도 매력적이지 못한데다가 어디서 많이 본듯한 나쁜놈들이다보니 보면서 욕하기는 많이 할지언정 '나는 그러지는 않지만 그럴수도 있겠다.'라고 등장인물들의 태도에 공감하고 동정하고 두둔해야 몰입이 되는데 마냥 나쁘게만 보이면 이게 참 애매한 것입니다.

 

세이초옹이 남녀의 애정문제도 잘 다루기는 합니다만 아무래도 이 작가는 등장인물과 약간의 거리를 둔 상태로 담담하게 묘사하는것에 강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작품은 캐릭터의 내면묘사에 꽤나 집중되어있어요. 그것도 대부분 남녀관계가 얽힌문제로 말이죠. 읽는 재미자체는 나쁘지 않았지만 전체 스토리를 놓고보면 작가가 자신의 가장 큰 장점을 발휘하기에는 조금은 나쁘지 않았나싶습니다.

 

세이초옹은 남성적이고 선굵은 이야기와 묘사에 더욱 최적화된 작품을 쓰는 작가가 아닌가 생각해보게 된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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