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시간 잭 리처 컬렉션
리 차일드 지음, 박슬라 옮김 / 오픈하우스 / 2012년 5월
평점 :
품절


 

 

 

 

#1. 익숙해져 가는 중입니다.


   처음 읽은 잭 리처 시리즈가 "잭 리처의 하드웨이"였던 것 같은데, 표지도 구리고 막 엄청 재미지지는 않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는 첫 작품인 추적자를 읽었고, 다음이 네버 고 백이었는데 네버 고 백을 읽으면서 왜 잭 리처같이 정처 없이 다니는 사람이 특정인인 수잔 터너에게 이다지도 관심을 보이는지에 대해서 무척 궁금해져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 이전 스토리가 담겨 있다는 이 작품을 선택하게 되었는데, 읽어보니 제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달달한 관계였었군요. 이 이야기를 읽고 나니 "네버 고 백"에서 리처가 그렇게까지 수잔 터너를 도우려고 했던 행동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역시 시리즈는 순서대로 읽어야 합니다.


   주인공이 동일한 시리즈의 가장 큰 장점은 읽으면 읽을수록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익숙하고, 세계관이 충분히 이해가 되니 읽기가 편해지는 면입니다. 어느 정도 예상되는 부분도 있어서 읽고 나서 전혀 엉뚱한 내용이었다며 실망할 일도 없고 말입니다. 시리즈의 첫 작품과 근간 사이에 주인공의 스타일이 약간 변한 부분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점 익숙해지는 부분이 있군요. 그래서 책이 잘 안 읽히거나 지금처럼 무척 더운 날씨에 힘들 때 그나마 가장 편안하고 쉽게 훌훌 읽을 수 있는 믿고 보는 시리즈가 되었습니다.



#2. 슈퍼맨 리처, 의외로 안전빵인 차분한 매력


   잭 리처가 신기한 게 느낌은 떡대 좋고 힘으로 막 다 두들겨 패주는 하드보일드 주인공인데, 가만 읽다 보면 의외로 무척 조심스럽기도 하고 차분하기도 합니다. 몸보단 머리를 더 많이 쓰는 스탈이예요. 물론 명탐정들처럼 몇 개 안되는 단서로 순식간에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부채도사 같은 모습은 없지만 보통은 살짝 한 타임 느려서 조금 꼬이기는 하지만 뒤늦게라도 상황을 깨닫고 너무 늦기 전에 제자리로 돌려놓는 정도의 지성은 보유하고 있습니다.


   헌병 출신이라는 배경에 맞다고나 할까, 웬만하면 법의 테두리에서 해결하려는 모습도 있고, 법정인 문제, 군이나 경찰 조직에서 생길 수 있는 여러 가지 비합리적 문제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는 캐릭터다 보니 의외로 동해 번쩍 서해 번쩍 막 돌진하는 스타일은 아닙니다. 흥분하지도 않고 상황을 최대한 이용하죠. 한마디로 슈퍼맨입니다. 거칠 것이 없고 안 해본 것도 없고 거의 각하 수준이에요.



#3. 모든 사람은 약점이 있다.  


   그러고 보니 이런 리처에게도 심각한 약점이 하나 있는데, 첨단 기술이나 문물에 약합니다. 거처도 없고, 소지품도 없으니 그럴 수밖에 없죠. 최신 기술은 항상 배터리, 전력 문제에 부딪히는데 리처는 그런 것과는 거리가 머니까요.


   이런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이번 작품에서는 자신이 창설한 특수부대의 현재 대장인 "수잔 터너"의 도움을 받습니다. 이 과정에서 의외의 재미진 캐미도 보이고 말이죠. 슬쩍 로맨스의 느낌을 뿌리면서 잭 리처에서는 보기 드문 러브라인을 형성하기도 합니다. 물론 이 설레발은 한참 후인 "네버 고 백" 편에서 활짝 꽃을 피우지요. 역순으로 보니 오히려 더 재미있는 부분도 있군요.


   완벽한 것 같은 이 남자도 약점을 보이게 되고, 이런 약점을 다른 이의 도움을 통해서 채우는 상황을 설정한 것은 리처의 매력을 상승시키는 역할을 해서 좋았습니다. 완벽하면 재수 없으니까요.


   예전 편보다는 의아한 설정이나 어색한 부분 없이 쉽게 쉽게 잘 읽었습니다. 물론 제가 익숙해진 탓도 있겠지요. 앞으로 책이 잘 안 읽힐 때, 하나씩 하나씩 읽어나가려고 합니다. 아주 편하고 흥미롭고 좋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조선왕조실톡 3 - 조선백성실톡 조선왕조실톡 3
무적핑크 지음, 와이랩(YLAB) 기획, 이한 해설 / 위즈덤하우스 / 201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폭넓어지는 소재, 풍성한 이야기들


   무적핑크짱이 자신감이 붙었군요. 처음부터 자신만만한 애드립이 넘치긴 했지만 한층 자신감 넘치는 폭풍 드립이 돋보이는 시즌 3편이었습니다. 3권째는 어떤 이야기로 채울지 궁금했는데, 왕조의 히스토리를 따라가는 방식에서 벗어나 시대를 오가며 테마에 맞는 소재를 배치한 것이 상당히 흥미로웠습니다.  


   첫 꼭지에서 궁에서 일하는 신하들을 직장인에 비유해서 재미있게 풀어낸 것을 읽고 감탄했습니다. 당시의 풍습과 왕들의 특징, 궁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형편과 애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실감 나고 재미진 드립으로 엮어내다 보니 누구라도 공감하고 흥미로워할만한 내용 들이었습니다. 당시도 지금처럼 야근도 하고 아예 임금이 혹사시키도 하는 이야기를 읽다 보면 그 옛날 조선 시대도 지금 우리의 삶과 동떨어져 있는 것은 아니구나 하는 친근함을 갖게 합니다. 이런 부분이 바로 역사를 쉽게 재미있게 접근하게 만드는 대중화의 접점을 놓는 역할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그런 관점에서 무적핑크짱은 참으로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고 봅니다.



#2. 가볍게, 한없이 가볍게 다루는 태도에 관하여..


   혹자는 진지하게 접근해야 할 역사를 너무 가볍게 대하고 표면적으로만 아는데 그치게 만드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합니다. 가벼운 인문학 입문서의 범람에 대해서도 걱정하곤 하지요. 저도 일면 동의하고는있습니다만 저 역시 새처럼 가벼운 수준의 지식만을 가지고 있는 쪽이라 같이 고개를 끄덕이기엔 무리가 있겠습니다.


   문제는 책을 읽지 않는, 무겁고 딱딱하고 진지한 것에 접근하지 않는 다수의 사람들일 텐데 과연 이 상황을 비판하는 것이 무슨 실용적인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문단에서는 순문학을 잘 읽지 않는다며, 출판계의 구조적인 문제를 탓하기도 하고, 독자들의 새털같이 가벼운 독서 수준을 원망하기도 하는데 사실 웃긴 이야기입니다. 공짜로 제공할 것이 아니라면 공급되는 제화는 무형이든 무형의 것이든 수요를 자극할 의무가 있는 것이죠. 그 어떤 부채감이나 자극해서 수요를 이끌어 보려고 하는 태도는 잘못된 것입니다.


   이를테면 이런 거죠. '월드컵에서 온 국민이 즐겁도록 좋은 성적을 올려줬으니 우리 K-리그를 의무적으로 봐주시라' 라고 호소하는 태도 같은 것 말입니다. 그 따구 말도 안 되는 죄책감이나 부채감에 호소할 것이 아니라 K-리그를 재미있어서 웃돈을 주고라도 와서 보게 만들면 될 일입니다. 그리고 대중이 재미없어 외면하는 상황이 되면 그 상황 자체를 받아들여야죠. 왜 대중이 재미없는 일에 자기 돈과 시간을 들여야 합니까?


   문학이든 역사든 마찬가지입니다. 언제까지 대한민국 국민이니 대한민국 문학을 지켜달라는 둥, 역사를 공부하라는 둥 씨알도 안 먹힐 소리를 하겠습니까? 군사정권에서나 먹힐 일입니다. 그렇게 시키는 데로 살아봤는데 재미없었습니다. 그런다고 딱히 좋아지지도 않는 게 세상입니다. 대중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는 것입니다. 하고 싶게 만드는 게 공급자들이 할 일입니다.


 

#3. 문화적 완충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는 의미있는 책

  그런 관점에서 무적핑크님은 딱딱하고 드럽게 재미없는 한국사(사실 알고 보면 볼수록 재미가 넘치는 것이지만)와 대중들을 엮어주는 접점을 제공하는 역사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봐야겠습니다. 요즘 같은 미디어 시대에 볼 것이 넘쳐나는데 누가 구닥다리 과거 역사 이야기를 심각하게 읽고 공부하겠습니다. 온고이지신은 옛말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우리의 역사를 알고 확인하고 역사를 통해 우리 민족의 기본적인 특성을 알고 여러 가지 사건에 담긴 의미를 반추함으로써 보다 나은 미래를 준비하는 것은 무척이나 바람직한 태도입니다. 마땅히 그리해야 발전이라는 것이 있는 것이겠죠. 개인적으로도 인생의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됩니다. 그리하여 무겁다고 역사를 외면하는 태도는 비판받아 마땅하기는 합니다.

   그렇기에 역사를 배우는 시작점이 되고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이런 책의 존재는 무척이나 귀합니다. 가볍다고 걱정할 필요는 1g도 없습니다. 가볍고 재미있는 역사 만화로 시작해서 그중 세종대왕에 매력을 느끼면 더 전문적이고 깊이 있는 책을 찾아 읽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고, 애초에 어려운 책으로 역사와 담을 쌓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역사를 더 알고 싶고,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쉽고 편안하게 SSG 알고 싶은 분들에게는 딱입니다. 심지어 내용도 좋으니 금상첨화가 아닙니까? 아닙니까??? 아닐라나??? 응???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읽는 일본사 - 덴노.무사.상인의 삼중주, 일본 처음 읽는 세계사
전국역사교사모임 지음 / 휴머니스트 / 2013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1. 역시 공부는 자기가 하고 싶을 때 해야...


   일본사에 대해서는 학창 시절에 무작정 외웠던 것들이 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아니나 다를까 '아~~ 그 말이 그 말이었구나..'하는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죠. 관심도 없고, 시험을 위해 억지로 그냥 외웠던 단편적인 지식들이 지금에 와서야 하나둘 떠오르면서 반갑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습니다.


   출판사 이름만으로도 믿고 보는 Humanist에서 출간된 이 책은 너무 깊지 않으면서도 필요한 내용이 적당히 다 들어가 있는 일본사 입문서입니다. 정말 관심이 많은 분이 아닌 이상에야 일본사를 샅샅이 공부하는 사람을 없을 것이니만큼 이 정도의 수준이 딱 좋지 않나 싶을 정도의 내용이었습니다.


   일본 소설을 읽다 보니 시대 상황을 반영한 내용들이 꽤나 많았는데 그때마다 좀 답답한 부분이 있었어요. 어떤 흐름과 맥락 속에서 그 시대, 혹은 당시 사건이 발생한 것인지 잘 모르다 보니 충분히 즐길 수 있는 내용의 재미가 반감되는 게 하닌가 하는 생각을 하곤 했었거든요. 그런 관점에서 이 책은 저의 필요를 잘 채워준 책이라고 할 수 있죠. 역시 공부는 지가 필요를 느끼고 하고 싶을 때 해야 되는 모양입니다. 그렇게 따지고 보면 진작에 책을 좀 읽었으면 공부도 더 잘 했겠네? 싶지만 그까이꺼 공부 잘한다고 다 잘 사는 것도 아니고 돈 많이 버는 것도 아니고 행복한 것도 아니니 뭐, 나름 즐겁게 잘 살아왔는데 뭘..ㅋㅋ



#2. 일본 이란 나라의 역사는...


   일본이 어떻게 형성되었고, 어떤 세력들이 흥하고 망했는지, 지금의 일본이라는 나라와 문화를 만든 이력은 무엇인지 알 수 있어서 무척 좋았습니다. 특히 궁금했던 무사들의 세력 다툼이라든가, 우리나라에는 없는 덴도 제도 같은 것에 관심이 많이 갔습니다. 그리고 소설에 종종 등장하는 에도 시대는 도대체 어떤 시대이고 어떻게 생성되었고, 어떤 특징이 있었는지를 읽고 보니 미미여사의 에도 소설에 등장했던 인물들의 묘사나 장소 묘사 등이 더 생생하게 다가오는 느낌입니다.


   일본은 우리와 정말 다른 나라군요. 특히 제국주의적 성격을 띠기 시작한 이후부터는 너무나 다른 길을 걸어왔습니다. 덴노를 앞세워 침략적인 결정을 서슴지 않고 했던 이력, 섬나라이기에 내부적인 불만과 동요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항상 외부를 공격하는 것으로 결정했던 거친 스타일도 신기합니다. 그러면서 개개인을 보면 또 엄청 과하게 친절해. 속으로 뭔 생각을 할지언정 말이죠. 이런 일본의 특성이 이 책을 처음부터 쭉 읽는 와중에 그전보다 훨씬 잘 이해가 되었네요.


   일본 이란 나라는 롤러코스터처럼 흥하고 망하고를 반복해 왔던 기복 넘치는 나라였습니다. 우리나라가 흥망을 하는데 있어 어떤 저점을 기준으로 오르내렸다면 일본의 파고는 훨씬 높았다는 느낌이랄까? 그러네요. 한편으로는 또 상당히 잔인한 면모를 가지고 있는 부분에서 새삼 놀라기도 했습니다.



#3. 어느 나라나 별다를 것 없는 정치..


   일본사 특히 근대사 쪽으로 올수록 대한민국이나 일본이나 정치세력이 특정한 이해득실에 맞춰 나라를 좌지우지한 부분과 그 와중에 일반 국민들의 안녕이나 삶의 질 따위는 관심이 없었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딱히 우리나라 청치인 만 욕할 것도 아니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 리암 니슨 때문에 유명세를 치르는 맥아더 장군 같은 인물도 처음 패전국 일본의 재건을 맡아 미국인들의 자유민주주의 명분을 내세워 상당히 현대적인 국가의 모습을 갖추기 위해 노력했지만 주변 나라들의 정세가 공산화 될 듯한 모습으로 미국 입장에서 어려워지자 자국의 지위와 이익을 위해 일본을 다시금 전쟁 준비를 위한 병참 국가로 만들어 버리는 퇴보를 보여주는데, 그럴 듯하게 시작했지만 역시나 똑같은 놈들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 당시의 어설픈 선택으로 인해 역사적으로 수많은 피해를 끼친 일본이라는 나라가 오히려 면죄부를 얻은 게 아니겠습니까? 게다가 당시 국내의 정치적 안정을 위해 돈 받고 적당히 타협을 해버렸으니 이제 와서 위안부 사과를 하라고 떠들어봐야 씨알이 먹히겠습니까? 개인과 개인에 있어서도 돈 한 푼 받아먹으면 나쁜 짓을 해도 제제를 못하는 것이 현실인데, 국가대 국가에서 무상, 유상으로 지원도 받아놓고서 이제 와 과거사를 들춰봐야 될 일도 아니지요.


   "처음 읽는 일본사"는 앞으로 일본 소설을 읽은 때 전반적인 흐름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역사 자체를 알게 된 재미도 있지만, 책을 읽을 때 이해의 깊이를 더하는데 더 큰 효용이 있는 것 같아 저에게는 무척 유익한 책이었습니다. 이 책에 등장한 유명한 지역이나 건물 같은 곳은 언제고 꼭 들러봤으면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훗.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 - 상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 1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미야베 미유키 엮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0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마쓰모토 세이초옹의 단편을 만나는 첫걸음

 

   그 옛날 해적판에 가까운 세이초옹의 몇몇 장편소설을 제외한다면, 북스피어에서 2009년도에 출간된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이야말로 마쓰모토 세이초옹을 알고 싶다면 가장 먼저 읽어야 할 책이 아닐까 합니다. 입문서 중에 입문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름 세이초옹의 빠라고 자처하는 제가 이 책을 이제사 읽은 가장 큰 이유는 애초에 제가 처음 만난 세이초옹의 단편집 "잠복"의 영향입니다. 이 컬렉션에 소개된 단편들이 미야베 미유키가 엄선한 작품인 만큼 마쓰모토 세이초를 입체적으로 이해하기 좋은 작품들로 이루어져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한편 모비딕에서 북스피어와 컨소시엄으로 시작한 세이초 월드 초반작인 "잠복"은 의욕적으로 국내에 선보이는 단편집이기에 역시나 세이초옹의 유명 걸작 단편이 실려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작품이 중복되는 경우가 많아 굳이 이 시리즈를 또 읽을 필요가 있을까 생각해서 미루고 미루게 된 것입니다.

 

   실제로 모비딕에서 2012년 출간한 단편집 "잠복"에 실린 단편들이 구성도 좋고, 작품의 수준도 무척 높습니다. 만약 저에게 세이초를 처음 만나는 독자가 뭘 먼저 읽을지 묻는다면 "잠복"을 추천해드릴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이 단편 컬렉션을 디스하는 것은 아니고 약간은 다른 의미로 무척 재미난 책이었습니다.

 

   아마도 제대로 세이초옹을 소개하는 첫 작품이라 그런지 이 단편집에는 작품 외에 책임 편집자 "미야베 미유키"의 해제가 실려있어 각각 작품의 의미를 좀 더 음미해 볼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작품 말미에 세이초를 담당했던 편집자들의 글을 통해 세이초옹의 작품 외에도 작가 자체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제공해주고 있어 세이초옹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그러므로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 상"권은 웰컴 투 세이초 월드의 정문을 통과한 후 바로 맛보는 로비이자 만남의 광장 같은 느낌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2. 걸작 단편 컬렉션 "상"권에는 어떤 작품들이 실려있나?

 

   그렇다면 정작 어떤 작품들을 읽을 수 있는가가 궁금해집니다. 우선 상권은 세이초옹이 작가로 시작하는 첫걸음이 되는 의미 있는 작품들을 소개합니다. 세이초옹이 추리소설 작가에 국한되지 않음을 애초부터 증명한 "어느 '고쿠라 일기' 전"을 읽을 수 있습니다. 세이초옹은 이 작품으로 떡하니 순문학 최고 권위를 가진 상인 "아쿠타가와 상"을 받아버립니다. 일본 거장 세이초의 출발점이 어떠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만, 솔직히 읽는 입장에서 아주 재미진 작품은 아니었습니다. 괜히 순문학상을 받은 게 아니어요. 좀 지루했습니다. 의미는 좋으나 읽는 재미는 덜한 그런 작품이었어요.

 

   제2장에는 미야베 미유키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으로 꼽은 4작품이 실려있는데 이중 "일 년 반만 기다려"와 "지방지를 구독하는 여자"는 단편집 "잠복"에서 이미 읽어봤던 작품이었는데, 다시 읽으니 역시나 꿀잼입니다. 개인적으론 이 책에 실린 작품 중 최고의 작품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제3장에서는 세이초옹이 예술 쪽에도 조예가 깊었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는 느낌으로다가 노래와 미술에 얽힌 이야기들이 실려 있습니다. "수사권 외의 조건"은 역시나 이미 읽어봤던 작품인데 다시 읽어도 재미지더군요. "진위의 숲"은 미술계의 모작과 연줄에 얽힌 문제들을 소재로 쓴 흥미로운 단편입니다. 한편으로는 좀 지루한 부분도 있었는데다가 마무리의 임팩트가 부족한 부분도 아쉬웠습니다.

 

   제4장에서는 세이초옹이 유독 강했던 논픽션 부분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는데 쇼와사 발굴과 일본의 검은안개의 일부분을 소개합니다. 개인적으로 그닥 재미지지는 않아서 안습입니다.

 

 

#3. 일본의 거장 세이초...

 

   세이초의 후계자라고 자처하는 히가시노 게이고나 미야베 미유키의 경우는 아직까지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하고 있고, 현대적인 감각으로 훌륭한 작품을 지속적으로 쓰고 있지만 정작 거장으로 추앙받는 세이초의 경우는 국내에서 여전히 별다른 반응이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양반 작풍이 좀 건조해요. 개인의 문제보다는 사회 전반적인 문제를 바라보고 다루는 것을 스스로 좋아했다고 합니다. 그렇다 보니 본인이 딱히 원한 것도 아니었는데 "사회파 미스터리"의 선구자라는 평도 받고 말이죠. 정작 본인은 순문학, 미스터리, 예술, 인문, 역사, 수필 등등 정말 다양한 분야에 엄청난 양의 작품을 써냈는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저에게 세이초라는 작가는 병아리나 오리가 처음 태어나서 접한 생물을 엄마로 생각하듯이 처음 만난 미스터리 작가이기 때문에 각인 효과가 특별합니다. 세이초와 "잠복"은 저의 장르소설 독서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거든요. 그러다 보니 정작 이 양반 작품을 많이 읽지도 않았으면서 잘 아는 척하는 스탠스도 있고, 가장 좋아하는 작가로 뽑기도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작품에 따라 생각보다 편차가 심한 면이 있어요. 2016년을 지나고 있는 현시점에서 대한민국의 독자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가 그다지 없는 면도 크게 작용하고요. 그래서 아직까지 세이초옹은 국내에 크게 반응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엔 앞으로도 큰 호응을 끌어낼 만한 작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인들과 한국인들이 받아들이는 입장과 상황은 크게 다르니까 말입니다. 그래서 여전히, 앞으로도 "일본"의 거장으로 남을 듯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에게는 페이보릿 작가임이 틀림없습니다. 저의 나름 독특한 취향에도 무척 잘 맞는 작가이기도 합니다.

 

   심지어 세이초옹 때문에 일본사도 별도로 책을 읽기에 이르렀습니다. 나름 일본의 역사적인 이야기도 다루고 있다 보니 간략하게나마 일본사를 알 고 있어야 내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다만 남의 나라의 논픽션 스토리는 재미보다는 지루한 면이 더 많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하는 마음이랄까? 게다가 일본 입장에서 전쟁 피해자 코스프레 같은 것이 묘하게 섞여 있기도 해서 여러모로 국내 독자에게 한계가 많은 작가이기도 합니다. 여튼 이 컬렉션은 읽은 김에 찬찬히 읽어보려고 합니다.

 "글쓰기 훈련을 받아 본 적이 없는 나는, 앞으로 어떤 소설을 쓸 것인지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다만, 남들이 가는 길은 걷고 싶지 않았다." 

 - 1963년 11월 마쓰모토 세이초​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습지생태보고서 - 2판
최규석 글 그림 / 거북이북스 / 201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한결같은 최규석 작가의 만화

 

   최규석 작가는 제 기준으로 만화 쪽에서 마이너 스타작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이너와 메이저의 경계 정도의 느낌도 있습니다. 최근에 드라마로 제작되어 화제가 된 "송곳"같은 작품 때문에 마이너에서 메이저의 언저리까지 가 있는 작가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사실 세일즈 파워로 따지면 메이저 작가라고 해야겠지만 그가 다루는 이야기들이 한결같기 때문에 마이너뽕필의 대표적인 작가라고 봅니다.

 

   그런데, 이분을 마이너라고 분류해버리면 우리나라의 수많은 만화가들이 분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정도로 책을 팔아먹는데 마이너라고?하며 반박할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래봐야 마이너는 마이너입니다. 가뜩이나 이런 사회비판 내지는 풍자적인 내용을 그리는 만화가인데, 주류의 근처도 못 갈 형편입니다. 

 

   그러고보면 최규석 작가는 시작부터 잘 풀린 케이스임에도 불구하고 한결같이 궁상스럽고, 무언가 소외되고 억울한 인생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대변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고 지지도 받는 작가가 된 배경이 아닐까 싶어요. "최규석"이라는 이름만으로도 작품의 품질이랄까? 진정성이랄까? 그냥 믿게 되는 힘이 있는 것입니다.

 

 

#2. 어려운 시기를 지나는 청춘들의 보고서

 

   "습지생태보고서"는 쥐뿔도 없이 평범한 부모 밑에서 자라 반지하 단칸방을 전전하는 가난한 대학생들의 이야기입니다. 벌써 느낌이 짠하게 오지 않습니까? 그리하여 지지리 궁상스러운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마냥 슬프지만은 않습니다. 제가 이미 그 시절을 너무 예전에 지나버려서 아련한 느낌만 있어서 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로서는 사실 상당히 그립기도 한 느낌이어서 가난하고 힘든 생활을 묘사한 부분에 공감하기보다는 '그래도 그때가 좋았지...'라는 감상이 오히려 앞섰거든요.

 

   실질적으로 오히려 지금 이 땅에 평범하게 살아가는 청춘들에 비해 행복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반지하 단칸방에 우르르 몰려서 지지고 볶고 살아가던 그때가 말입니다. 대학을 입학하면서부터 등록금 대출로 사회에 약자 수준을 넘어 거의 노예 수준으로 시작하는 작금의 청춘들을 보노라면 애잔하기까지 하니까요. 공부를 위해 입학한 대학이지만 사실 많은 시간을 아르바이트로 보내는 것이 현실이 아닙니까?

 

   제가 대학을 다닐 때도 부모님 잘 만나서 편안하게 학교 다니는 부류도 있었고, 고시원을 전전하는 부류도 있었지만 나름의 소소한 즐거움과 행복이 분명 있었던 거 같습니다. 그런 면을 잘 표현하고 있어요. 젊은 시절의 궁상스럽지만 아름다웠던 기억 말입니다. 읽는 이가 누구냐에 따라서 전혀 다르게 다가올 수 있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어서 좋았습니다.

 

 

#3. 만화로 표현하는 현실과 판타지

 

   이 만화는 무척 현실적인 사회 풍자와 개인의 감성이 잘 담겨 있는데도 불구하고 만화적인 판타지성을 놓치지 않고 있습니다. 사슴의 의인화로 대표되기는 하지만 비현실적인 캐릭터를 통해서도 그 어떤 판타지가 느껴지죠. 그리고 많은 에피소드들이 하나하나 마무리될 때마다 반전의 묘미를 통한 위트를 놓치지 않고 있어요. 그래서 만화인 것이고, 그렇기에 의외로 부담 없이 가볍게도 읽을 수 있는 것이죠.

 

   만화이기에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장점을 놓치지 않고 있고, 그것이 이 작품의 강점이기도 합니다. 오랜 시간 동안 스테디셀러로 남을 수 있는 저력이기도 하구요. 10년 후에 읽어도 거부감 없이 공감하며 읽을 수 있을만한 작품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