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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 - 상 ㅣ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 1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미야베 미유키 엮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09년 3월
평점 :

#1. 마쓰모토 세이초옹의 단편을 만나는 첫걸음
그 옛날 해적판에 가까운 세이초옹의 몇몇 장편소설을 제외한다면, 북스피어에서 2009년도에 출간된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이야말로 마쓰모토 세이초옹을 알고 싶다면 가장 먼저 읽어야 할 책이 아닐까 합니다. 입문서 중에 입문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름 세이초옹의 빠라고 자처하는 제가 이 책을 이제사 읽은 가장 큰 이유는 애초에 제가 처음 만난 세이초옹의 단편집 "잠복"의 영향입니다. 이 컬렉션에 소개된 단편들이 미야베 미유키가 엄선한 작품인 만큼 마쓰모토 세이초를 입체적으로 이해하기 좋은 작품들로 이루어져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한편 모비딕에서 북스피어와 컨소시엄으로 시작한 세이초 월드 초반작인 "잠복"은 의욕적으로 국내에 선보이는 단편집이기에 역시나 세이초옹의 유명 걸작 단편이 실려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작품이 중복되는 경우가 많아 굳이 이 시리즈를 또 읽을 필요가 있을까 생각해서 미루고 미루게 된 것입니다.
실제로 모비딕에서 2012년 출간한 단편집 "잠복"에 실린 단편들이 구성도 좋고, 작품의 수준도 무척 높습니다. 만약 저에게 세이초를 처음 만나는 독자가 뭘 먼저 읽을지 묻는다면 "잠복"을 추천해드릴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이 단편 컬렉션을 디스하는 것은 아니고 약간은 다른 의미로 무척 재미난 책이었습니다.
아마도 제대로 세이초옹을 소개하는 첫 작품이라 그런지 이 단편집에는 작품 외에 책임 편집자 "미야베 미유키"의 해제가 실려있어 각각 작품의 의미를 좀 더 음미해 볼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작품 말미에 세이초를 담당했던 편집자들의 글을 통해 세이초옹의 작품 외에도 작가 자체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제공해주고 있어 세이초옹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그러므로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 상"권은 웰컴 투 세이초 월드의 정문을 통과한 후 바로 맛보는 로비이자 만남의 광장 같은 느낌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2. 걸작 단편 컬렉션 "상"권에는 어떤 작품들이 실려있나?
그렇다면 정작 어떤 작품들을 읽을 수 있는가가 궁금해집니다. 우선 상권은 세이초옹이 작가로 시작하는 첫걸음이 되는 의미 있는 작품들을 소개합니다. 세이초옹이 추리소설 작가에 국한되지 않음을 애초부터 증명한 "어느 '고쿠라 일기' 전"을 읽을 수 있습니다. 세이초옹은 이 작품으로 떡하니 순문학 최고 권위를 가진 상인 "아쿠타가와 상"을 받아버립니다. 일본 거장 세이초의 출발점이 어떠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만, 솔직히 읽는 입장에서 아주 재미진 작품은 아니었습니다. 괜히 순문학상을 받은 게 아니어요. 좀 지루했습니다. 의미는 좋으나 읽는 재미는 덜한 그런 작품이었어요.
제2장에는 미야베 미유키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으로 꼽은 4작품이 실려있는데 이중 "일 년 반만 기다려"와 "지방지를 구독하는 여자"는 단편집 "잠복"에서 이미 읽어봤던 작품이었는데, 다시 읽으니 역시나 꿀잼입니다. 개인적으론 이 책에 실린 작품 중 최고의 작품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제3장에서는 세이초옹이 예술 쪽에도 조예가 깊었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는 느낌으로다가 노래와 미술에 얽힌 이야기들이 실려 있습니다. "수사권 외의 조건"은 역시나 이미 읽어봤던 작품인데 다시 읽어도 재미지더군요. "진위의 숲"은 미술계의 모작과 연줄에 얽힌 문제들을 소재로 쓴 흥미로운 단편입니다. 한편으로는 좀 지루한 부분도 있었는데다가 마무리의 임팩트가 부족한 부분도 아쉬웠습니다.
제4장에서는 세이초옹이 유독 강했던 논픽션 부분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는데 쇼와사 발굴과 일본의 검은안개의 일부분을 소개합니다. 개인적으로 그닥 재미지지는 않아서 안습입니다.
#3. 일본의 거장 세이초...
세이초의 후계자라고 자처하는 히가시노 게이고나 미야베 미유키의 경우는 아직까지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하고 있고, 현대적인 감각으로 훌륭한 작품을 지속적으로 쓰고 있지만 정작 거장으로 추앙받는 세이초의 경우는 국내에서 여전히 별다른 반응이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양반 작풍이 좀 건조해요. 개인의 문제보다는 사회 전반적인 문제를 바라보고 다루는 것을 스스로 좋아했다고 합니다. 그렇다 보니 본인이 딱히 원한 것도 아니었는데 "사회파 미스터리"의 선구자라는 평도 받고 말이죠. 정작 본인은 순문학, 미스터리, 예술, 인문, 역사, 수필 등등 정말 다양한 분야에 엄청난 양의 작품을 써냈는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저에게 세이초라는 작가는 병아리나 오리가 처음 태어나서 접한 생물을 엄마로 생각하듯이 처음 만난 미스터리 작가이기 때문에 각인 효과가 특별합니다. 세이초와 "잠복"은 저의 장르소설 독서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거든요. 그러다 보니 정작 이 양반 작품을 많이 읽지도 않았으면서 잘 아는 척하는 스탠스도 있고, 가장 좋아하는 작가로 뽑기도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작품에 따라 생각보다 편차가 심한 면이 있어요. 2016년을 지나고 있는 현시점에서 대한민국의 독자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가 그다지 없는 면도 크게 작용하고요. 그래서 아직까지 세이초옹은 국내에 크게 반응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엔 앞으로도 큰 호응을 끌어낼 만한 작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인들과 한국인들이 받아들이는 입장과 상황은 크게 다르니까 말입니다. 그래서 여전히, 앞으로도 "일본"의 거장으로 남을 듯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에게는 페이보릿 작가임이 틀림없습니다. 저의 나름 독특한 취향에도 무척 잘 맞는 작가이기도 합니다.
심지어 세이초옹 때문에 일본사도 별도로 책을 읽기에 이르렀습니다. 나름 일본의 역사적인 이야기도 다루고 있다 보니 간략하게나마 일본사를 알 고 있어야 내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다만 남의 나라의 논픽션 스토리는 재미보다는 지루한 면이 더 많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하는 마음이랄까? 게다가 일본 입장에서 전쟁 피해자 코스프레 같은 것이 묘하게 섞여 있기도 해서 여러모로 국내 독자에게 한계가 많은 작가이기도 합니다. 여튼 이 컬렉션은 읽은 김에 찬찬히 읽어보려고 합니다.
"글쓰기 훈련을 받아 본 적이 없는 나는, 앞으로 어떤 소설을 쓸 것인지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다만, 남들이 가는 길은 걷고 싶지 않았다."
- 1963년 11월 마쓰모토 세이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