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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생활의 즐거움
필립 길버트 해머튼 지음, 김욱 옮김 / 리수 / 201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1. 지적이라는 표현의 부담스러움..
이 책을 읽기에 가장 부담스러웠던 것은 "지적 생활"이라는 표현 그 자체였습니다. '아.. 나에게 지적이라는 표현이 어울리기나 하던가?'하는 자성이 들면서 몇 페이지가 지나지 않아 졸음과 머리 아픔이 밀려오면서 후회가 밀려오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이었지요. 여기서 "그러나 막상 읽어보니 기우였다."라고 반전을 주고 싶지만 사실 좀 지루했던 건 사실입니다. 마냥 재미지지도 않았구요. 제 기준에서는 재미없는 책 중에 한 권으로 기억에 남을 듯합니다.
이 책은 읽는 재미와 가독성은 떨어졌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교훈은 제법 있었습니다. 제목이 "지적 생활의 즐거움"인데 그 정도도 없으면 쌩욕을 하지 않았겠습니까? 성격 유형으로도 기질로도 딱히 머리를 막 쓰는 지적인 스타일은 전혀 아닌지라 뭐든 몸으로 때우면서 시행착오를 거쳐 체득하는 저는 "지적"이라는 표현 자체에 알레르기가 좀 있습니다. 이를테면 안경을 쓰고 머리에 포마드를 바르고 올백을 한 마른 스마트한 느낌의 사람에게나 어울릴 법한 표현이라는 선입관이 있는 것이지요. 그렇기에 읽기에 좀 부담스러웠습니다만, 한편으로는 이제는 나이도 제법 들었는데 이런 책을 한 권쯤은 읽어봐도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선택하게 되었던 것이었던 것이었습니다.
#2. 지적 생활에 뭐시 중한디...
음... 그러니까 책을 다 읽었는데 정확히 지적 생활의 즐거움이 뭐 어쨌다는 건지 확실하게 딱 와닿지는 않습니다. 이 책은 벌써 백 년도 더 전에 돌아가신 "필립 길버트 해머 튼"이라는 저자가 생각하기에 꼭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되는 문제들을 한 꼭지씩 만들어서 편지 형식으로 쓴 글의 모음입니다. 딱히 누군가에게 전달했던 편지는 아니고 저저가 목차를 만들 때 그런 식으로 가상의 인물에게 전달하는 형식으로 쓴 모양입니다. 상상력이 풍부하신 분입니다.
서문에서 저자는 "의미 없는 낙담으로 인해 여러분의 귀중한 삶의 순간들이 낭비되는 일이 없도록 돕는 데" 목적이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일종의 교훈을 주는 내용들인데, "지나치게 일하는 젊은 작가에게"라던가, "늘 시간이 부족하다고 한탄하는 친구에게", 지적 생활이 추구하는 삶이 무엇인지 묻는 친구에게" 등등의 테마로 대체로 "지적 생활이란 니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야. 이런 거라니깐" 하는 느낌으로다가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적 생활이 뭐가 그리 중하냐 하면,
"지적으로 생활하는 기술이란 유리한 환경을 발판 삼아 발전해나가는 과정이 아니라 매일의 생활에 필연적으로 얽혀 있는 숱한 사정과 제약 속에서 우리 자신을 극복시켜나가는 행위입니다. 이로써 지성은 풍요로워지고 강인해집니다."
이런 식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지적 생활을 위해 엄청 머리를 쓰라거나 지능 개발에 힘쓰라거나 교양을 쌓기 위해 힘쓰라고만 주장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지적 생활의 필수불가결한 요소는 두뇌의 타고난 재능이 아닙니다. 육체적 기반입니다. 건강한 몸이 받쳐줘야만 원하는 정신활동이 가능해진다는 뜻입니다."
"지적인 만족은 절대 선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경계가 필요하고, 절제가 필요하고, 계획과 연습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뇌는 상당히 많은 양의 혈액을 필요로 합니다. 지적 노동으로 대뇌질이 급속하게 파괴될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 때문에 과도한 정신노동 종사자들에게서 자주 목격되는 고통, 즉 노이로제가 야기되는 것입니다. 노이로제는 정신적 스트레스가 주요 원인이 아닙니다. 강렬하게 불타오르는 정신을 나약해진 육체가 받쳐주지 못한 데서 비롯된 병입니다. 약을 먹는다고, 휴식을 취한다고, 그 일에서 벗어난다고 해서 노이로제가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오직 강화된 육체만이 노이로제를 극복하는 힘입니다."
이런 식으로 육체적인 단련과 건강을 무척 중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절제하고 훈련할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지적으로 만드는 힘은 배운 지식과 익힌 교양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생의 아름다운 단면들을 스스로 발견해내려는 노력과 인간답게 살아가는 기쁨을 만끽하려는 타고난 본상일 뿐입니다. 지적 생활이란 무엇인가를 이룩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순수하게 삶의 진리를 찾아 나서는 아름다운 여정입니다. 그것은 가장 위대한 진리와 작은 진리 사이에서, 반드시 따라야 하는 정의와 개인의 생활 사이에서 늘 꿋꿋하고 당당하게 고귀한 쪽을 선택해나가는 것입니다."
어쩌면 너무 당연하고 이론적인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지만 들어 하등 손해날 것 없는 좋은 이야기를 계속해주십니다. 머리를 진공상태로 만든 상태로 그냥 주욱 읽다 보면 '아따 참으로 그럴 듯하고 좋구먼' 하고 생각할 만한 이야기들입니다.
#3. 현대에서도 되새겨 봐야 할 성찰들..
오래전에 돌아가신 해머튼옹의 이야기를 가만히 읽다 보면 후반부로 갈수록 현대사회에서도 통용이 될만한 생각들이 다수 나옵니다.
"현대사회의 노동이 점차 가축화의 과정으로 변질되고 있습니다. 인간의 순수한 본성이어야 할 노동이 경제적 계산과 사업주의 실익에 의해 강요와 억압과 강탈의 수단으로 전락한 것입니다. 아무리 대우가 좋더라도 인간을 가축으로 취급하는 사회정의란 있을 수 없습니다. 국가의 장래가 그야말로 중요할지라도 한 인간을 가축으로 구속하는 국가에 정당한 미래는 찾아오지 않습니다. 국가는 짐승들의 슬픈 눈망울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국민들의 눈망울이 어느새 짐승들을 닮아가고 있습니다. 국가가 국민에게 가축으로서의 삶을 강요한다면, 머잖아 국가는 인간의 나라가 아닌 가축을 길러내는 목장이 되고야 말 것입니다."
벌써 약 150여 년 전에 했던 이 표현을 빌자면 노동의 가축화로 인해 적어도 지금쯤이면 국가가 가축을 길러내는 목장이 되었어야 하는데, 이 문구를 대하는 독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합니다. 제가 느끼기에는 그의 예측이 거의 맞아들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예술이 다른 어떤 활동보다 위대한 것은 인간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향유한 모든 이성적인 활동은 인간을 실망시켰습니다. 국가는 국민을 억압했고, 경제는 빈곤을 낳았고, 종교는 헛된 망상을 심었고, 법은 죄인을 만들었고, 철학은 진리에 더욱 목마르게 했습니다. 하지만 예술은 그 어떤 암흑의 시대에도 인간의 영혼을 위로했습니다. 예술은 인간이 기대한 것 이상으로 인간의 가치를 설명했습니다."
국가, 경제, 종교, 법, 철학 등에 대한 저자의 평가는 상당히 날카롭고 냉담하기만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박하기 힘든 부분이 있었습니다. 다소 극단적인 표현이기는 하지만 상당히 공감이 가는 지적입니다.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지혜가 무엇이냐고 한다면, 어떻게 늙어야 하는지를 아는 것이라고 대답하겠습니다. (중략) 노인답게 자연스럽고 현명해진다는 것은 어렵기만 합니다. 아름다운 노년은 서쪽 하늘을 물들이는 노을입니다. 노을이 아름답기 위해서는 새벽부터 대지를 달궈야 합니다. 아름다운 노년은 결국 아름다운 청춘을 살았다는 증거입니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주어진 인생에 최선을 다했다는 뜻입니다. 인간이 아름답게 늙지 못하는 것은, 늙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지나간 시간에 최선을 다하지 못했음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한스럽고 부끄럽기 때문입니다. 나이 드는 것을 무서워하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최근에는 정말 거리에 노인들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나라가 노령화되어 감을 실감합니다. 그 와중에 뭐가 되었건 열심히 살았던 젊은 시절에 대한 보상심리로 버럭버럭 화를 내는 노인들을 많이 접하게 됩니다. 어차피 나라가 발전하는 것이, 혹은 회사가 발전하는 것을 내 인생 성공과 동일시하는 시각은 비록 국가가 심어줬건, 교육을 받았건 본인의 선택에 의한 것이므로 어디다 화를 내는지 부적절하기는 이를 데 없지만, 일견 이해가 되기는 합니다.
지금 시점에서 늙음에 대한 저자의 지적은 상당히 가슴에 새길만한 것입니다. 저 역시 추하게 늙어서 꼬장 부리는 모습을 상상하면 간담이 서늘합니다. 저의 노년은 서쪽 하늘을 물들이는 노을 같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드럽게 지적이지 못한 스스로가 두려워서 이런 책도 찾아 읽고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지독하게도 재미는 없었지만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