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게 너무 많아도 좋아 - 성덕의 자족충만 생활기
조영주 지음 / Lik-it(라이킷)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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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쓸데없이 집착하는 것의 미학...


   시대가 참 많이 변했습니다. 획일화, 산업화의 시대를 저만치 떠나보내고 나니 더 이상 규격에 맞추는 일은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그래서인지 과거에는 손가락질 받고 터부시되던 쓸데없는 짓에 대한 인식이 많이 변했습니다. 사실 인류 역사를 돌아보면 모든 문화와 예술은 쓸데없는 짓에서 출발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인가, "참 쓸데없다", "쓰잘데기 없는 짓이나 하고 있네"라는 한숨 섞인 욕을 먹던 일들이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진 것이지요.


   이런 변화의 시대를 맞아 사람들은 더 독특하고 특별하고 유니크한 것에 대해 사랑과 인정을 보내는 것에 익숙해졌습니다. 이 사랑과 관심과 인정에는 나름의 정밀하고도 까다로운 조건이 있는데, 너무 불편할 정도로 생소하면 안 되고, 모두에게 나름 익숙한데도 불구하고 한두 걸음쯤 더 나아가 있는 디테일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그 모든 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워야 합니다. 억지로 연출한 것에는 불편함이 느껴지기 마련입니다.


   익숙하지만 한두 걸음 더 나아가는 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남들보다 조금 더 "집착"해야 합니다. 특별한 재능이나 조건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는 집착을 메이저리그라고 한다면, 별것 아닌 쓸데없는 것에 남들보다 조금 더 "집착"해서 유니크하고 특별한 무언가를 창조해내는 집착을 마이너리그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쓸데없는 것에 집착하며 보이는 마이너 뽕필의 행위에 반응합니다. 부담 없고 재미있고 무겁지 않게 즐길 수 있는 문화가 창조되는 것입니다. 바로, 일상 덕후의 탄생입니다.


   언젠가부터 독점보다는 공유가 화두가 되면서 출판계에도 새 바람이 불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분야가 바로 일반인들이 1인 미디어나 SNS를 기반으로 선보인 일상 글을 책으로 출간하는 "에세이" 분야가 아닐까 합니다. 누구나 나름의 독특함이 있고, 센스와 글솜씨만 있다면 자신의 일상 철학을 표현하고 공감 받아 책 출간으로까지 이어지는 것입니다. 대형서점 에세이 매대에는 누군지 모를 일반인들의 "에세이"가 넘쳐납니다. 세상에 이렇게 책을 내는 사람이 많은가 놀라울 지경입니다. 좋은 에세이를 골라 읽는다는 것이 또 하나의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쯤 되면 에세이의 대홍수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조영주 작가의 에세이를 읽는다는 것...


   일상 에세이의 전성시대가 되고 보니 나에게 맞는 좋은 책을 선택하기가 오히려 어려워졌습니다. 그래서인지 마음속에 반대급부가 생깁니다. 정말 좋은 작가가 쓴 훌륭한 에세이를 읽고 싶다는 욕구 같은 것이지요. 그러던 차에 조영주 작가의 에세이 출간 소식을 접했습니다. 이 양반 평소에 정말 덕후스럽기도 하고 뭔가 예사롭지 않음이 늘 탑재되어 있어서 재미있습니다. 필력이야 이미 잘 알고 있으니 이야기만 재미있다면 정말 좋은 에세이가 탄생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진지한 작법이나 소설가의 삶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한다면 내용은 좋으나 대중성은 떨어질 텐데, 다행히 처음부터 끝까지 덕후 덕후한 내용이었습니다. 일상 덕후는 늘 우리를 즐겁게 합니다. 그런데 그 주인공이 소설가야. 글도 잘 써. 그러면 금상첨화가 아니겠습니까? 평소 유난히 독특한 덕력을 자랑하던 그이기에 너무 잘 어울리는 에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책은 비단에 꽃을 더하는 느낌보다는... (이하 생략, 비단결 같은 생머리에 꽃을 꽂은 단아한 미친년 같은...)


   사실 작가의 에세이는 통상 차분하고 정제된 이야기가 많습니다. 에세이를 써도 작가스러움을 유지해줘야 하는 무거운 짐이 있는 것은 아닐까 싶었는데, 조영주 작가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그냥 원래 자신의 이야기를 하도 쏟아내었다가 지웠다가 하는 특이한 행위예술을 자주 하기는 합니다. 네네. 온라인상에서 일상 글을 쓰는 것을 보면 평범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주류 무대에 입성한 작가라던가, 주요 문학상을 수상한 정통 작가 등으로 내세우지 않는다는 점에서 여타 작가들의 에세이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저자가 책이나 여러 인터뷰에서 밝힌 것처럼 일부러 에세이집을 기획하고 쓴 글들이 아닙니다. 그저 일상 속에서 워낙 덕후스러움을 뽐내면서 자연스럽게 쓴 글들인데, 그 이야기들이 차가운 이성을 장착한 출판사 편집자와 만나 분류되고 정리되어 책으로 출간되었을 뿐입니다. 그래서 독자들이 즐겁고 유쾌하게 읽을 수 있는 일상적이면서도 오지는 덕력을 뿜어내는 에세이로 탄생한 것입니다.


   사실 평소에 이 양반의 글을 자주 접하던 저로서는 정신없이 쏟아지는 내용들이 될까 걱정이 좀 되었는데 주제별로 정리 정돈되어 책으로 나온 글들을 보니 특유의 필력이 돋보이는 신선한 에세이가 되어 놀랐습니다. 예상보다 에세이가 더 잘 어울리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막연히 생각이 담긴 내용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어린 시절 에피소드와 성장기에 겪은 경험들, 작가 스스로의 정체성을 만들어나가는 이야기들, 자연스럽게 소설가로 이어지는 삶의 궤적들이 솔직하게 잘 드러나있어 좋았습니다. 나름 인간 조영주에 대해 안다라고 생각했던 것이 얼마나 큰 착각인가 새삼 생각하게 해주는 이야기들이 많았습니다.


   작가의 문화생활 파트에 들어서는 솔로로 살아가며 온전히 자신을 위해 시간을 쓰는 작가가 무척 부러웠습니다. 세상 모든 일에는 명암이 있기 마련이고 그래서 바꿀 거냐고 한다면 선 듯 오케이 하기 힘들겠지만, 뭐 하나 마음대로 즐길 여유가 없는 저로서는 부럽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소설 쓰는 일에 관련된 이야기들로 채워진 창작 생활 파트에서는 역시 소설은 아무나 쓰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 분야에 일정한 수준 이상 올라간 분들 중에 대충 얼렁뚱땅했는데 되는 경우는 없는 것 같습니다. 소설가의 고충도 여러모로 느낄 수 있고, 그리하여 언제부터인가 소설가이기 이전에 블로거로 만나 헛소리 댓글 배틀을 일삼던 그때 그 조영주로 대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 책을 통해 더욱 소설가로 리스펙트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사진 출처 : 채널 예스




3. 우리는 모두 덕질을 해야 한다. "덕업 권장","불로 성덕"


    인생은 비가역적인 것이라 한 번 흘러가면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누구나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라고들 말하지 않습니까? 그걸 누가 몰라?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라는 것이 생계에 찌들고 가족과 일가친척, 관계로 얽힌 여러 가지 제약들이 나를 일하는 기계로 만드는 것이 아닙니까? 4차 산업혁명이라는 것이 그런 것 같은 느낌입니다. 야야, 기계들이 몰려온다 더 열심히 공부하고 자기계발하고 미래를 준비해라. 놀 시간이 어디 있냐?라고 등을 팍팍 떠미는 것 같은 필링? 아따 가슴 답답하다.


   그러거나 말거나 형편과 환경을 핑계로 하기 싶은 일을 미루기 시작하면 남는 건 후회와 아쉬움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덕질을 해야 합니다. 무엇에 덕질을 할지 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겠지요. 이게 참 웃긴 게 일부러 덕질을 하려고 정한다는 것 자체가 덕스럽지 않습니다. 우선 내가 좋아하는 것, 남들보다 조금 더 깊이 알아보고 좋아할 것을 찾아야겠지요. 그리고는 들입다 덕질을 합시다. 드럽게 덕질을 하면 좋습니다. 몰입의 힘이란 게 그런 것이니까요.


   잘 모르겠으면 조영주 작가의 글들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작가는 덕질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고 온몸과 마음과 생활로 보여줍니다. 나름의 패턴도 있고, 덕질에는 한계가 없다는 것도 다양한 예시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각자 자기 환경에 맞는 덕질을 실천하면 인생이 풍요로워질 것입니다. 장강명 작가의 "열정 금지 에바 로드"에 잘 

나와있는 내용이기도 하지만 덕질은 이유가 없습니다. 그냥 좋은 게 좋은 거지요.


   덕질이 발전하여 직업이 되면 가장 이상적입니다. 덕질을 하면서 돈도 버니까요. 이게 성공한 덕후의 일반 사례입니다. 그리하여 덕질이 직업이 되는 덕업이 최고입니다. 바로 "덕업 권장"이지요. 덕업 권장은 길게 오래 편안히 생계 걱정 없이 덕후로 남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지속 가능한 덕질의 방법입니다. 이 환경을 유지할 수 있다면 길게 오래 덕력을 쌓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덕력이 농후하게 쌓이다 보면 죽을 때까지 덕후로 남는 것입니다. 죽고 나서도 덕후의 발자취를 후손들에게까지 남길 수 있게 되겠지요. 조영주 작가처럼 말입니다. 바로 이런 상태를 우리는 늙지도 않고 성공한 덕후가 되는 "불노 성덕"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모두가 덕후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저부터 더 덕질을 하기에 노력해야겠습니다. 아름다운 덕후 생활을 위한 힌트를 얻고 싶다면 우리의 모범 조교 조영주 작가의 "좋아하는 게 너무 많아도 좋아"를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성덕하시길 기원합니다.


*사진 출처 : 채널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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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의 재구성 매드 픽션 클럽
리즈 뉴전트 지음, 김혜림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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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양한 등장인물의 시각으로 풀어가는 숨겨진 이야기의 진실

   구성이나 형식만으로 보면 누쿠이 도쿠로의 "미소 짓는 사람"이 절로 떠오르는 책입니다. 물론 "미소 짓는 사람"처럼 르포르타주를 표방하는 형식은 아니지만, 의외의 사건이 발생하고 주인공 본인과 주변 인물들 각자의 시각에서 진술한 내용들을 토대로 사건의 전말을 서서히 파헤치는 형식이거든요.

   이런 방식의 전개는 항상 위험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야기의 집중력이 흐트러지고 무척 지루하거나 산만해서 독자가 짜증 나기 십상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저자는 상당히 좋은 능력을 갖췄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저자가 드라마, TV, 라디오 등의 작가를 했던 모양인데 그래서 그런지 구성력이 상당히 좋다는 느낌입니다. 전체적인 골격에 비해서 스토리가 긴 편인데도 전혀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기본적으로 주인공의 이야기가 뼈대처럼 이어지지만, 화자를 계속 바꿔가면서 주인공의 감춰진 모습을 입체적으로 조명해주면서 마치 독자와 조각 맞추기를 해나가는 듯한 이야기 구조가 매우 마음에 들었습니다. 게다가 각자 화자들 역시 그들만의 스토리가 있고, 문제와 갈등을 통해 인간의 다양성과 사회 구조적 문제들을 다양하게 다루고 있어 기본 스토리의 단조로움을 크게 보완하고 있습니다.


#2. 이미지 만으로는 잘 모르는 "타인"

   기본적으로 저자가 가장 크게 부각하려고 했던 주제는 아무래도 "사람은 겉만 봐서는 모른다."입니다. 이런 주제를 잘 살리기 위해 주인공 "올리버"를 잘 생기고 매너 좋은 훈남으로 묘사합니다. 자기 분야에서 성공한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고, 겉보기에 문제없이 결혼생활도 잘 이어갑니다. 그러다 어떤 계기로 아내를 심각하게 폭행하고 식물인간으로 만들어버립니다. 단순히 아내를 때린 수준이 아니라는 말이에요. 유명 작가니 매스컴도 주목하고 언론의 매장시키기도 진행됩니다.

   저자는 이야기의 끝자락에 주인공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명확한 이유를 알려줍니다. 아내 폭행과 그 일을 촉발시킨 원인에 얽힌 이야기 자체가 일종의 미스터리 소설 같은 요소가 있습니다. 이 책이 마지막 즈음에 '아~~ 그랬었군~~'하는 재미를 주는 주요한 요소이기도 합니다. 그런 면에서도 잘 쓰인 소설이에요.

   이런 스토리를 생각하면 '나도 나를 잘 모르겠다' 등의 명제는 이 책과 어울리지 않습니다. 주인공은 어린 시절의 불우하고 힘들었던 환경 탓에 비틀어진 인식을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고, 인격 형성에도 장애가 많았음을 세세히 알려주거든요. 그래서 왜 그렇게 되었는지, 왜 아내를 폭행했는지가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어요. 그래서 오히려 주변인들이 생각한 올리버와 작가로써 알려진 이미지와 올리버의 실체 사이에 간극에 더욱 시선을 빼앗기게 되는 것입니다.

   사회화가 잘 된 인간이라면 철저히 스스로를 숨기고 시대가 원하는 인간상으로 잘 포장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주인공 올리버는 성장환경부터 적절한 보호와 보상과 사랑을 받지 못하는 과정에서 기본적으로 매력적인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드러날 만큼 왜곡된 모습과 인격적 결함을 부분적으로 내보이게 됩니다. 그 조각조각들을 찾아가는 여정이 이 소설이에요. 저도 그렇게 사회화가 잘 된 인간은 아니기 때문에 일부분 공감이 되고, 이해가 되는 부분은 있었습니다.

#3. 환경과 문화의 지배를 강하게 받는 인간의 속성

   이 소설의 주제라고 할 수 있는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닌 인간"에 대한 묘사는 흥미는 있었지만 사실 저의 관심을 크게 끌지는 못 했습니다. 오히려 제가 계속 주목한 부분은 주인공의 모습을 조각조각 입체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동원된 주변 인물들의 진술이었어요. 총 7명인가 등장하는데, 하나같이 개인사가 있고, 어려움과 결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시 사회가 싫어하고 터부시할만한 단점들이 하나씩은 있는 그런 인물들입니다. 그들의 진술을 통해 7, 80년대 아일랜드가 가지고 있었던 사회적 문제가 보입니다.

   예를 들자면, 우리나라는 익숙하지 않을 만한 문제지만, 가톨릭 사제들의 부패 문제와 그들의 죄를 조직적으로 덮어주고 옹호하는 심각한 문제라든가, 동성애자 문제, 인종차별과 계급 차별 등의 문제가 생생하게 드러납니다. 이런 이야기들을 통해 당시 아일랜드 사회가 상당히 보수적이었다는 생각을 해 볼 수 있습니다. 가보지 않은 나라의 환경과 문화적 배경을 상상해 볼 수 있고, 우리와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알아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어느 나라,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당시의 사회 환경과 문화에 강하게 지배를 받는 것이 인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지금 생각하면 이상하고 고리타분하면서 비 인격적인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이 그들에게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 되는 것이죠.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이라는 것을 해봅니다. 2017년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꼰대인 저는 어떤 환경과 문화 속에서 도대체 얼마나 비합리적이고도 해괴망측한 판단 근거와 행동양식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요? 저는 얼마나 그것이 진리이고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살아가고 있을까요? 누군가 먼 훗날 나의 일생을 보면서 '기이하고 우매하며 비합리적인 괴물 같은 삶이다'라고 평가하는 것은 아닐까요? 생각을 좀 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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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의 생각수업 - 세계 최고의 대학에서는 무엇을 가르치는가? 세계 최고 인재들의 생각법 1
후쿠하라 마사히로 지음, 김정환 옮김 / 엔트리(메가스터디북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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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생각"이라는 것

   기본적으로 저는 '자기 계발서 비슷한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만, 이 책을 집어 든 이유는 "생각수업"이라는 단어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람다운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이 여럿 있지만, 현 시국에 가장 필요한 것이야말로 개인 각자 각자가 "생각"이라는 것을 장착하는 일이 아닐까 합니다. 이에 대한 도움, 혹은 조금은 바람직한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해서 이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일본인들이 정리 하나는 기가 막히게 하니까 말입니다.

   주로 주입식 교육을 받아온 우리들이 갑자기 생각이라는 것을 잘하게 되기는 힘듭니다. 미디어의 공세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니 생각인지 내 생각인지 피아식별조차 안되는 상태에서는 기본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제 기대보다는 훨씬 의미 있는 책이었습니다. 좋았어요.

   저자가 '생각하는 법'을 테마로 뭔가 일을 해보면 통하겠다고 생각한 것도, 저자가 "생각의 힘"을 잘 활용한 실례입니다. 저자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주입식 교육에 찌든 일본에서 공부하고 은행일을 했습니다. 그러다 기업 유학생으로 유럽에서 경영학을 공부하게 되고, "유럽 경영 대학원"의 공부 방식에 충격을 받습니다. '답 고르기'가 아니라 '니 생각을 말해봐' 식의 공부방식에 대해 말이죠. 그리고는 '아, 미국이나 유럽 쪽 대학이나 대학원으로 진학하고자 하는 일본 학생을 대상으로 이런 걸 가르치면 먹히겠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일본인 특유의 정리정돈하기 실력이 결합하면서 이 책을 비롯한 "세계 최고 인재들의 생각법" 시리즈를 기획하게 된 것입니다. 자기 생각을 정리하고 표현하는 방식의 공부법을 배우면서 그걸로 "돈이 되는 일 +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하게 된 것이죠. 똑똑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저자고 문제는 우리입니다. 세계 유수의 대학에서 공부하기는 쉽지 않더라도 적어도 이 책을 통해 그들이 어떤 주제로 각자의 생각이라는 것을 묻고, 생각을 하고 표현하는 수준을 확인하는지를 알아볼 수는 있습니다.

  
#2. "확고한 가치관과 진정한 교양"을 갖는다는 것

   저자는 이 책을 통해 "확고한 가치관과 진정한 교양을 갖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주장합니다. 그러나 어떤 논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야 맞다라는 식으로 무언가를 알려주는 방식은 아닙니다. 오히려 세계관과 가치관에 있어 매우 기초적인 문제 몇 가지를 제시한 다음, 철학적으로 어떤 고전적인 주장들이 있는지 개괄적으로 나열하고,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습니다. 기본적인 정보는 제공할 테니 '니가 생각하고 니 생각을 니가 정립하라'는 말입니다. 구체적인 것은 각자 고민해보더라도 최소한 이 정도는 생각을 정리해야 하는 거 아닐까? 정도의 논제를 던져주고 있어요.

   간단히 정리하자면, 나의 생각이란 무엇인지? 국가란 무엇인지? 진정한 자유는 무엇인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비롯한 경제는 무엇인지? 그리고 과학과 예술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무엇인지? 등입니다. 이런 주제들을 통해 최소한의 가이드를 해주고 있습니다. 

    저자가 말하는 우리가 진정 익혀야 할 힘은 "사물의 본질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고 궁리해 자기 나름의 생각을 갖는 힘"입니다. 거기에 "그 흔들리지 않는 가치관을 조리 있게 주장하며 커뮤니케이션을 꾀하는 힘"입니다.  저도 물론 전적으로 동의하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3. 내 생각이 과연 내 생각이 맞는가?

   이 책에서 설명하고 있는 내용 중 흥미로운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스스로 결정한다 = 자유롭다'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외부 혹은 타인에게 끊임없이 영향을 받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그러므로 "진정 스스로 결정한 내 생각이 맞는가?"라고 묻습니다.

"텔레비전이나 신문, 인터넷에서 발신된 정보를 보고 마치 그것이 자신의 생각인 양 착각해 폭주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누군가가 정보를 조작해 여론을 유도하는 경우에도 이를 깨닫지 못하고 이것은 나의 의사라고 믿는다. 그 결과 사람들의 사고가 점점 획일화되어 간다."

   이러한 상황하에 점점 "나는 자유롭게 생각하고 있지 않다!"라고 설명합니다.

"어떤 한 가지 사고방식이나 관점이 맹렬한 기세로 사람들에게 전달되고 침투되어 여론을 형성해 나갈 위험성을 지닌 시대라고도 할 수 있다. (중략) 그러므로 우리는 그런 시대의 리스크를 인식해야 한다."

   그리하여 진정한 자유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자유의사를 다시 한 번 의심하고 검증하는 것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다.라고 권해주고 있습니다. 자신만의 가치관과 교양은 주체적인 삶을 살기 위한 기본 전제조건입니다. 이는 "생각"이라는 것을 통해 얻을 수 있고, 이 책을 통해 "생각"이라는 것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어 유익합니다.

   참, 덧붙이자면 이 책에서 앞세우고 있는 "하버드"라는 단어는 아무 의미 없습니다. 세계의 유수 대학 입학 논술 시험에 나올 법한 문제들에 대해서 정리해 놓은 기본 틀을 가지고 있어서 "하버드"를 차용했을 뿐, 사실상 이 책의 내용과는 크게 관련 없어요. 굳이 지적하자면 상술의 일환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용 자체는 쉽고 유익하기 때문에 욕하기가 어렵네요. 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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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기담집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사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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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읽은 이유는 이 책이 책상에 올려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도쿄 기담집을 그런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읽고 나서 생각해보니 그것 또한 이 책의 네 번째 단편 내용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책을 읽고 깊은 감상을 쓸 마음은 없습니다.

   첫 번째, 가독성은 참 좋습니다. 무척 흥미롭게 잘 읽었으니까요.

   두 번째, 기담이라는 것에 대해 오해를 했던 것인지 모르겠지만 분명 기이한 이야기여야 하는데 그다지 기이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루키의 다양한 소설에 비하면 무척 평범했습니다. TV피플 같은 게 훨씬 기이한 게 아닌가 싶네요. 왠지 무서운 이야기일까 봐 여태껏 읽기를 꺼렸다는 것을 생각하니 괜히 속은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세 번째, 짧은 단편들이고 특유의 쿨한 서사가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와 닿는 것이 있네요. 이런 식으로 하는 듯 마는 듯 힘을 주지 않고 메시지를 전달하는 능력은 역시나 대단합니다.

   네 번째, 책의 두 번째 단편 "하나레이 만"은 분위기가 무척 좋은 소설이었고, 제가 무지하게 좋아하는 느낌의 소설이었는데 역시나 이 작품만은 에쿠니 가오리 작품의 느낌이 많이 났습니다. 가오리가 여자 하루키라고 불린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정말 비슷한 느낌이 있었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상관할 바는 아니지만요.

   다섯 번째, 하루키는 정말 글을 잘 쓰는군요... 국내 독자들에게 호불호가 생기는 이유는 아마도... 무심한 듯 던지는 대화나 서사에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뭔가 우리랑 좀 동떨어진 느낌이 분명 있는 캐릭터들이 등장하기도 하고, 뭔가 선명하지 않은 메시지랄까, 이런저런 흐지부지 함이 좋게 말하면 쿨한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아 이게 뭐란 말이야?'라는 반응을 보이게 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여튼 저는 좋은 쪽으로 무게추가 기울어 있는 편입니다.

   참, 저는 기존에 가지고 있던 문학사상사 버전으로 읽었고, 역자는 임홍빈씨인데 개인적으론 좋았습니다. 그렇다고 비채에서 나온 신간을 읽어보고 비교해 볼 정도의 애정은 없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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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서점의 크리스마스 이야기
에드 맥베인.로런스 블록 외 지음, 오토 펜즐러 엮음, 이리나 옮김 / 북스피어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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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이 책에 관심을 가진 이유가  서너 가지 정도 됩니다. 일단 기본적으로 단편집을 다른 분들보다 좋아하고 선호하는 편이고, 저자에 제가 애정 하는 87분서 시리즈의 에반 헌터, 매튜 스커드 시리즈의 로렌스 블록이 이름을 올리고 있어서입니다. 또한 서점에 대한 이야기는 항상 관심이 가기 마련이고요. 마지막으로 이 책의 역자가 이리나 씨라는 점을 들 수가 있겠습니다.

   그리하여 이 책을 읽게 되기는 했지만, 사실은 읽기 전에 걱정이 좀 앞섰습니다. 이런 형태의 미스터리 작가들이 뭔가 의기투합해서 단편집을 낸 책들을 읽고 크게 좋은 기억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책도 역시나 좋은 취지와 아름다운 제작 스토리에 비해 정작 담겨 있는 이야기들이 재미가 없으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을 할 수밖에 없었죠. 객관적으로 재미가 없다고 평가될 작품들이냐를 떠나 제가 취향에 좀 안 맞거나 재미있게 읽기 어려울 수가 있거든요. 왜냐하면, 이런 식의 기획인 경우 유명 작가들이 나름 다른 작품을 패러디하거나 자기 작품의 유명 등장인물을 살짝 비틀어서 독자에게 재미를 더하는 방식이 많고, 이 책의 경우는 현존하는 서점과 서점 주인이 등장하다 보니 서점도 모르고, 서점 주인도 전혀 모르는 독자가 이 책의 원래 의도만큼 재미를 느끼기는 사실 어려움이 많기 때문이죠.

   그러거나 말거나 이 책을 읽어보니 기우였습니다. 읽으면서 허리를 접을 만큼 재미가 있거나, 눈물이 앞을 가려 효..라고 할 만큼 너무나 슬프거나, 감동적이지는 않았지만, 단편집답게 소소하면서도 이외로 허를 찌르는 미스터리 특유의 재미만큼은 잘 살아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몇 개 안 읽었지만 유사한 기획 단편집 중에서는 가장 재미있게 읽은 책이 되었습니다.

   사실 위에 설명한 걱정 외에도 위험부담이 한가지 더 있었는데, 제 기억으로는 북스피어 마포 김 사장님의 취향은 저와 상당히 안 맞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이었습니다. 여기에 한가지 변수가 있다면 개인적으로 역자인 이리나 씨에 대한 믿음이랄까? 안목에 대한 신뢰랄까? 그런 것이 있어 위험부담을 상쇄시킬 수 있었더랬지요. 책 한 권 읽으면서 뭐 이런 소리를 늘어놓는지 스스로도 웃기기는 하지만 책 한 권 완독하기가 더럽게 어려운 현실 속에 살아가는 중년탐정.. 아니 중년 독자는 책장에 쌓인 수많은 책들, 그리고 소리 소문 없이 사들이 근래의 신간들, 게다가 이 또한 지나치다 싶을 만큼 구매한 이북들 중에서 독서의 우선순위를 정하기가 쉽지가 않기 때문에 한 권 한 권 읽기가 끝나면 다음 책을 고르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모든 작품들이 한결같이 좋고 마음에 든 것은 아니었지만, 대체로 상당히 좋았습니다. 그중에서도 유독 제 마음을 끈 작품을 꼽아 보자면 토마스 H. 쿡의 "크리스마스가 남긴 교훈"이었는데, 이 짧은 단편에 감동도 있고 실제로 교훈도 있고 등장인물의 사연도 살아있어서 무척 좋았습니다. 토마스 쿡이 상당히 훌륭한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고, 마지막 역자 후기에 역자도 저와 같은 작품이 좋았다고 적어두셔서 역시 취향은 소중하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나랑 비슷하면 훌륭하다는 생각이 참 훌륭해...

   크리스마스가 한참 지나 읽기를 끝내다 보니 이건 내년 크리스마스 즈음에 리뷰를 쓸까 하는 생각도 했으나 며칠 이상 지속되지 않는 휘발성 기억 시스템을 가진 저로서는 무리무리무리 데쓰!! 우리나라도 점점 특징적인 전문, 소규모 서점이 엄청 늘어나는 추세에 있는데, 책방 주인은 물론이고 출판사와 작가, 역자들까지 다 함께 힘을 모아 서로서로 지켜주는 "느슨한 연대(계속 써먹을 예정임)"를 해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 드는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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