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를 떠나는 마지막 보트
헬렌 지아 지음, 박민정 옮김 / 마르코폴로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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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국공내전이 발발한 지 4년 차인 1949년 초, 전황은 완전히 공산주의자들에게 기울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전쟁의 결과가 이렇게 되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지난 3개월 동안 동북과 화북, 화중에서 벌어진 이른바 3대 전역은 장제스가 이끄는 국민정부군 정예부대를 일거에 결딴내고 전쟁의 승패에 사실상 종지부를 찍었다. 미국과 반대파들의 압박으로 사면초가에 몰린 장제스는 베이징이 공산군의 손에 넘어가는 그 날 하야를 선언했다. 하지만 그를 끌어내린 자들조차 이 공전의 위기를 헤쳐나갈 방안은 없었다. 국민당은 그때까지도 여전히 중국의 2/3와 가장 인구가 많고 부유한 지역을 지배하고 있었지만 지도자들의 좌중지란과 패배주의로 스스로 무너지는 판국이었다. 권력투쟁의 달인이었던 장제스는 궁지에 내몰릴 때마다 하야와 정치적 거래를 통해서 불사조처럼 부활하는데 성공했지만 이번에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이른바 남북평화협상이 결렬되고 1949년 4월 21일 마오쩌둥과 공산군 총사령관 주더는 전군에 총진군령을 하달했다. 국공내전에 마지막 쐐기를 박는 순간이었다. 창장(양쯔강)에는 그동안 국민정부군이 심혈을 기울여 건설한 대규모 방어선이 있었고 해공군력에서도 월등히 우세했지만 급조한 뗏목을 타고 벌떼처럼 내려오는 기세등등한 100만명의 공산군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창장 방어선은 단숨에 돌파되고 24일 새벽공산군 제3야전군 제8병단 제35군 제104사단 선봉 부대가 난징에 입성하여 총통부에 홍기를 내걸었다.

총통부 옥상에 홍기를 내거는 공산군 병사들과 그 아래에 찢겨진 청천백일기. 1937년 12월 일본군에게 점령당한 이후로 또 한번 적군에게 짓밟히는 순간이었지만 마지막까지 처절한 싸움이 벌어졌던 12년 전과 달리 싸움다운 싸움조차 없이 무혈함락되었다.


그러나 12년 전 일본군에 의해 잔혹하게 짓밟혔을 때나 26년 뒤 사이공이 함락되었을 때와는 달랐다. 지난 20년 동안 중국의 수도였으며 인구 260만명의 대도시 난징은 순순히 새로운 지배자를 받아들였다. 1937년처럼 무자비한 대량 학살도 없었고 대혼란 속에서의 탈출극도 없었다. 선전 효과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는 마오쩌둥은 전 세계의 시선에 몰려있는 도시에서 홍군의 질서 있는 모습을 보여주라고 강조했다. 관용을 베풀어 의구심 가득한 적들에게 제발로 투항하도록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아직은 본색을 드러낼 필요가 없었다. 봉건 지주와 자본가, 반혁명분자들을 숙청하는 일은 나중에 때가 되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마오쩌둥의 최대 무기는 기만과 선동, 자신의 속내를 숨길 줄 아는 인내였다. 속았음을 깨달았을 때는 늦었다.


중국판 사이공의 최후가 벌어진 쪽은 난징이 아니라 국제 도시 상하이였다. 5월 12일 상하이 전역이 시작되었다. 중일전쟁 초반 일본군을 상대로 3개월에 걸쳐 베르뎅 전투 이후 최대의 격전이 벌어진 것으로 유명해진 이 도시는 적어도 난징보다는 오래 버텼다. 하지만 5월 23일 공산군이 총공세에 나서고 지하에 암약하던 '제5열'이 일부 부대를 선동하여 반란이 일어나면서 27일 함락되었다. 20만 명의 수비대 중 타이완으로 철수한 부대는 5만명에 불과했다. 그보다 훨씬 많은 민간인들의 엑소더스가 벌어졌다. 아편전쟁으로 동아시아에서 제일 먼저 개항된 도시 중 하나인 상하이는 지난 100년 동안 '동양의 파리'로서 중국의 모든 부가 모이는 사치와 환락, 암흑가의 장소였다. 600만명의 인구 중 상당수는 공산당의 지배를 두려워 할 명확한 이유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정확히 얼마나 많은 사람이 떠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100만 명 이상으로 추산되었다. 일부는 자신들이 형편없는 어촌마을이라고 멸시했던 타이완으로, 일부는 홍콩과 동남아로 향했다.

국공내전 말기 상하이에서 타이완으로 향하던 2천톤급 여객선의 해상침몰사고를 다룬 영화 <태평륜>. 1949년 1월 27일에 있었으니 엄밀히 말하면 상하이 엑소더스 이전에 벌어진 일이다. 실화가 모티브라지만 오우삼 감독 작품답게 영화 내내 고증 개 무시인지라.


이들의 탈출과 함께 화려했던 상하이의 황금 시대는 막을 내렸다. 모든 외국인들은 추방되었고 많은 기업가들이 박해를 당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했다. 사치는 금지되었다. 타이완으로 철수한 국민정부군은 한때 자신들의 가장 중요한 자금줄이었던 상하이를 되찾기 위해 때때로 폭격기를 보냈지만 1950년 3월 소련이 원조한 최신 제트 전투기인 미그-15와 다수의 대공포가 배치되자 더 이상 얼씬거릴 수 없었다. 기나긴 어둠은 마오쩌둥이 죽고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을 선택하면서 비로소 끝났다. 오랜 공백 덕분에 동아시아 글로벌 무역과 금융허브로서의 지위는 홍콩과 싱가포르에 빼앗겼지만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급성장과 함께 과거의 명성을 되찾아 가는 중. 공산당이 발목만 잡지 않는다면야. 시진핑 집권 이후 상하이방 힘이 다 빠졌다고.

중국 근대사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흥미롭게 읽을 만한 책이 나왔다. 마르코폴로 출판사에서 나온 <상하이로 향하는 마지막 보트>는 국공내전 말기 공산군의 함락을 눈앞에 두고 상하이를 탈출해야 했던 4명의 젊은 남녀 이야기를 다룬 논픽션 드라마이다. 저자는 중국계 미국인 여성 작가로 실제로 본인 부모님이 그렇게 탈출한 당사자였다고 한다. 자전적 소설인 셈. 덧붙여, 미국 사회는 타이완과의 동맹관계에도 불구하고 결코 이들을 환영하지 않았다. 남북전쟁 이후 해방 노예 대체품으로 중국인들을 대거 영입하여 값싸게 부려먹었던 미국은 더 이상 필요가 없어졌다는 이유로 1882년 중국인 배척법을 제정하고 이민을 금지했다. 중국인들은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이유로 걸핏하면 백인들의 공격에 시달렸고 심지어 살해되기도 했다. 1943년 장제스 정권의 외교적인 노력으로 중국인 배척법은 명목상 폐지되었지만 미국 사회의 뿌리깊은 황인종 포비아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미국 MIT 출신으로 맨해턴 프로젝트에 참여한 미사일 전문가인 첸쉐썬(钱学森)이 추방되어 마오쩌둥에게 핵과 탄도 미사일을 선물한 것도 따지고 보면 미국의 인종차별주의가 자초한 결과. 암튼 낯선 미국 땅에서 온갖 차별을 당하면서 개고생한 것은 그 시절 우리 이민 1세대들도 마찬가지.

저자인 헬렌 지아. 독특한 헤어 스타일 때문인지는 몰라도 미국 최초의 동성 커플 중 한 사람이라고. 물론 이 책 내용과는 상관없다.


이 책에서 나오는 4명의 주인공은 아무런 관계도 없고 만나는 일도 없다. 처지 또한 제각각이다. 부유한 지주의 아들, 항일군인의 딸, 외국인에게 입양한 소녀, 악명높은 한간(친일파)의 자식도 있다. 하지만 뜻하지 않은 전쟁이 이들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놓았다는 사실만은 같았다. 같은 시간대, 서로 다른 장소에서 중일전쟁부터 국공내전과 그 이후에 이르기까지 각자의 입장에서 자신이 겪어야 했던 격동의 역사를 서술한다. 여기에는 전쟁의 혼란 이외에도 전통적인 중국사회의 가부장적이고 억압적인 문화, 나라를 버리고 탈출해야 했던 중국 난민들에게 결코 친절하지 않았던 바깥 세계의 모습까지 담고 있다. 도입부에서 어린아이의 순수했던 시각은 시간이 지나고 어른이 되어갈수록 잔혹한 현실 속에서 비정해진다. 인생이란 이런 것일까.


마지막에 가는 길도 달랐다. 누군가는 홍콩으로, 누군가는 미국으로, 타이완으로, 상하이를 빠져나오지 못한 채 남아야 했던 사람도 있었다. 아마도 십수년 뒤 문화대혁명에서 또 한번 혹독한 경험을 겪지 않았을까.

중국 조종사들은 일본 제국 해군의 주력 함선인 이즈모 호를 폭격하여 번드를 끼고 황푸강에 정박해 있는 일본 함대를 놀라게 할 작정이었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중국 조종사들은 계산을 심각하게 잘못하는 바람에 일본 함대를 빗맞히고 대신 국제 정착지에 폭탄을 떨어뜨렸다. "정말 상상도 못할 일이야" 어머니가 큰 소리로 말했다. 거리에는 전날 전투로 안전한 곳을 찾아 조계지로 들어온 수천명의 피난민들이 떼 지어 모여 있었다. - p.43

시작부터 여행은 악몽 같았다. 바로 전날, 호는 창수에서 어머니와 열다섯 살인 형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한번도 어머니와 떨어져 지내본 적이 없었던 그는 어머니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것을 보자 자신도 엉엉 울고 싶어졌다. 몇몇 마을 사람들이 누구라도 살아남을 수 있게 가족이 흩어져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어머니와 형은 서쪽으로 더 먼 내륙, 쑤저우 시 근처 외딴 마을로 향했고 그와 누나 완위는 할머니와 함께 상하이로 가는 배를 탔다. 그러나 선착장으로 가는 시골길은 믿기 힘들 정도로 막혔다. - p.63

이제 두 살이 된 안누오는 또다시 달아나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이번에는 구이저우의 국민당 소속 아버지와 합류하기 위해 일본군에 점령된 상하이에서 도망쳐야 했다. 아버지는 안누오가 태어난 직후에 떠난 터라 아이에게는 낯선 사람과 다름없었다. 인도차이나와 중국 최남단의 구경을 드나들며 가는 곳마다 노래하고 춤을 추던 안누오는 마침내 아버지를 대면하게 됐다. 아이는 당당한 체격에 카키색 국민당 군복을 입은 키가 크고 잘 생긴 남자를 응시했다. - p.118

베니에게 76번지는 개인 공원과 같았다. 판 서장은 아들이 건물 주변의 넓은 도로에서 자전거를 타도록 허락해주었다. 경비가 삼엄한 장소로 들어가는 일 자체가 소련에게는 짜릿하게 느껴졌다. 아이는 안뜰로 들어가기 전 삼중으로 된 문을 지키는 무뚝뚝한 경비들을 지나칠 때마다 소리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같은 반 친구 중 누구도 거기에서 함께 자전거를 탈 수 없었다. 베니는 아버지 덕분에 자신이 상하이에서 가장 운 좋은 아이처럼 느껴졌다. 또 다른 소련 한명이 이 비밀스러운 장소에서 자전거를 탈 수 있었는데 일본 지휘부의 뜻에 따라 괴뢰첩보부를 운영했고 76번지 주요 고문기술자로 알려진 리스취안의 아들이었다. 베니는 소년의 아버지를 전혀 몰랐지만 이곳에 드나드는 영광을 나누는데 이의가 없었다. - p.143

1943년 빙의 삶에 또다시 예상 밖의 일이 일어났다. 언니가 다른 여자아이를 입양해서 그러지 않아도 식구로 북적이는 집으로 데려왔다. 아메이는 열세살로, 빙처럼 버려진 아이였다. 버려진 소녀들이 중국 전역에 넘쳤지만 빙은 전에는 한번도 자신과 같은 아이를 알고 지낸 적이 없었다. 아메이는 기억하기 힘들 정도로 어렸을 때 부모가 자신을 버렸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면서도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소녀가 아는 것이라고는 자신이 상하이에서 태어났다는 것 뿐이었다. - p.205

8월 15일 그들은 일본 천황으로부터 직접 질문의 답을 얻었다. 적이 항복하고 있었다! 호는 다른 학생들과 함께 거리로 뛰쳐나왔다. "끝났어요. 끝났어요! 일본이 패하고 중국이 승리했어요!" 기쁨에 찬 호는 전혀 낯선 사람들과 어울려 춤을 췄다. 그러나 호의 캠퍼스에서는 항복 선언 후에도 8년 동안 잔혹하게 도시를 점령했던 일본 군인들이 계속해서 거리를 순찰하자 곧 사람들의 분노가 뒤따랐다. 분노에 찬 학생들이 모여 전쟁이 끝난 후에도 일본군이 중국인들과 북동부에서 충돌하면서 여전히 싸우고 있다는 게시판의 뉴스를 읽었다. 이는 국민당과 미국의 명령에 따른 것이었다. - p.254

1947년 9월 8일 이른 아침, 호는 샌프란시스코에 들어왔다. 그의 마음속에는 열정이 넘치고 있었다. "오늘부터는 모든 것이 새로울테지. 나는 이제껏 보지 못했던 것을 보고 전에는 듣지 못했던 것을 듣게 될 것이다." 고향에서는 국민당과 공산당 사이의 내전이 점점 더 격렬해졌다. 호와 동료 학생들은 멀리 떨어져 있었기에 그들이 곧 뒤따를 집단 탈출의 최선봉에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 p.288

화물 수송기는 동중국해를 끼고 본토 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400마일을 비행한 후 대만 섬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다. 안누오는 비행기가 하강하는 동안 프로펠러가 회전하며 날카로운 소리를 내자 마음을 가다듬었다. 안누오처럼 세상 물정 모르는 학생들도 공산주의자들을 피해 다급하게 도망치다가 충돌후 추락한 과적 비행기의 끔찍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었다. - p.328

가족들은 가방을 내려놓고 씻고서 옷매무새를 가다듬은 후 저녁을 먹으러 밖으로 나갔다. 신문 가판대를 지나던 그들은 이틀 전에 공산당이 귿르이 살던 도시를 점령했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상하이가 함락된 것이다! 언니는 계속해서 "세상에 맙소사!"라는 말을 되풀이했고 크리스티안은 기사를 자세히 읽으면서 덴마크어로 계속 중얼거렸다. 그들은 점령 당시 상황이 대체로 평화로웠다는 것을 알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빙은 도시가 일본과의 전쟁 때 당한 것같은 대량 살상을 면했다는 것에 고마웠다. - p.350

상하이 해방 후 중국 내에서 국민당의 시대가 끝나고 공산당이 곧 나라를 장악할 거라는데 의심의 여지가 없어지자 미국 내부에서는 중국 공산당 잠입자들에 대한 공포가 빠르게 커졌다. FBI는 중국인 학생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고 정보원 역할을 해줄 "호의적인" 학생들을 찾아냈다. 연방 요원들이 중국 학생단체와 그 지도자들을 조사하기 위해 전국으로 흩어지면서 호가 가입한 <중국학생기독교총연합회>는 FBI의 집중적인 조사를 받게 되었다. 폴린에게는 "광적인 친공주의자'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 P.402

영국인들은 원래 그 지역 출신인 사람들만 입국을 허가하고 상하이처럼 먼 지역에서 오는 난민들은 더 이상 들어오지 못하게 막으려고 했다. 안타깝게도 광둥어로 대답하지 못한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즉시 돌려보내졌다. 이러한 새로운 요구 조건이 생기기 전까지는 중국인들이 식민지를 출입하는데 아무런 제한이 없었다. 이제 난민과 공산주의자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변화가 생긴 것이었다. 로우에 들어서면서 도린은 상하이에서도 고향 말투를 잃지 않았던 광둥성 출신 조상들에게 감사의 말을 속삭였다. - P.476

미국과 대만에서 그랬던 것처럼 중국 본토의 정부도 국가 안보의 명목으로 통제를 한층 강화했다. 마오쩌둥 주석은 "누가 우리의 적인가? 누가 우리의 친구인가? 이 질문은 혁명의 첫번째 질문이다"라고 쓴 바 있었다. 공산당 지도부는 내부의 적을 상대로 '반혁명 진압'운동이라고 불리는 새로운 대중 운동에 착수했다. 그 대상에는 반혁명적이고 우익으로 여겨지는 더 전통적이고 봉건적인 중국 사회에서 존경받았던 지도자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전의 토지개혁운동은 상하이나 난징같은 도시 자본가와 중산층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미 제국주의자들과의 전쟁이 진행되면서 이번 운동은 상하이의 도시 엘리트들에 대한 고삐를 더욱 바투 쥐게 했다. - p.540

도린 역시 상하이로, 그녀의 가족이 4대에 걸쳐서 살았던 항구 도시로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녀는 결코 홍콩에 머물 생각이 없었지만 어쩌면 이곳에 어떤 마법이 깃들어 있는지도 몰랐다. 앤드루 덕분에 홍콩은 그녀에게 더 고향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도린은 그에게서 결혼 상대를, 어쩌면 미래를, 발견했다. 그곳에서 삶을 꾸려갈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녀에게는 상투적인 문구만 적힌 오빠의 짤막한 편지밖에 없었다. 적어도 베니가 살아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해가 지나면서 편지는 점점 뜸해졌다. 도린은 오빠가 자신이 보낸 돈이나 꾸러미를 받았는지 확인할 길이 없었다. 그리고 편지도 오지 않게 되었다. - p.561

베니는 더 많은 심문을 겪어야 했다. 그가 흑색 제국주의자들을 훈련하는 학교에 다닐 때 알던 외국인들의 이름은 무엇인가? 그들은 스파이였나? 그들과 계속 연락을 주고받았나? 수업에서 왜 그는 영어로 "태양이 구름에 의해 가려진다. 태양은 구름에 의해 가려졌다. 태양이 구름에 의해 가려질 것이다."라는 문장을 가르쳤나? 태양인 마오 주석이 가려질 것이라는 얘기인가? 그렇다면 구름은 누구인가? 그들이 태양을 어떻게 가린다는 말인가? - p.576

혁명의 물결이 온 나라를 휩쓸었을 때 얼마나 많은 수의 사람들이 도망쳤는지 아는 이는 없지만 중국 전역에서 수백만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넓게 펼쳐진 허술한 국경을 넘은 것은 확실하다. 오늘날까지도 중국 공산당은 두 가지 진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첫째 이 대규모 탈출이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라는 것, 둘째 상하이로부터 경제적, 사회적, 지적 자본이 유출되면서 중국에 막대한 손실을 입혔다는 점이다. - p.589

예전에 읽은 <상하이의 유대인 제국>이 아편전쟁 이후 서양세력을 등에 업고 상하이에 눌러앉아 엄청난 부를 누렸던 유대인들을 다룬다면 이 책은 격동의 시대를 자신의 힘으로 힘겹게 헤쳐나가야 했던 지극히 평범한 중국인들의 얘기이다. 영화 <국제시장>이 우리 아버지 세대가 경험했던 대한민국 현대사의 한켠을 담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주인공들은 모두 실존 인물이며 그 중 한 사람인 빙이라는 소녀는 저자의 어머니라고.

1949년 5월 상하이 엑소더스 한 장면. 저자의 어머니 또한 공산군을 피하여 상하이를 필사적으로 탈출했던 사람 중 하나였다. 하지만 고향을 잃은 이들이 겨우 만난 바깥 세상 또한 구원의 땅은 아니었다. 온갖 박해와 차별을 당해야 했다. 집나가면 개고생인 법이라.


이 책을 읽으면서 새삼 이런 생각이 든다. 20세기 어느 시대를 고르라고 해도 중국인으로는 태어나고 싶지 않다고 말이다. 청나라가 망한 뒤 군벌들이 난립하는 혼란이 벌어지고 그보다 훨씬 참혹했던 중일전쟁을 겪어야 했으며 그 뒤에는 마오 치하에서 한국전쟁과 3천만명이 굶어죽은 3년 대기근, 문화대혁명의 동란이 이어졌다. 그렇다고 양안 너머 소위 '자유 중국'이라는 가식적인 타이틀이 붙은 타이완에서의 삶이 더 나을 것도 없었다. 대륙에서 적색 테러가 벌어지는 동안 타이완에서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서슬퍼런 세상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21세기인 오늘날에도 우리보다 한술 더 뜨는 저임금, 고물가에서 청년들이 고달프게 살기는 양쪽이 판박이이다. 게다가 요즘 시진핑핑이 때문에 말로만 듣던 전쟁 위기까지 고조되는 판국이라.

이 책은 역사책이 아니다. 그 시절에 살았던 사람들이 겪었던 단편적인 에피소드일 뿐이다. 저자는 전문적인 역사 학자가 아니라 작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역사적인 사실에서는 걸려 읽어야 할 부분이 적지 않다. 하지만 저자 특유의 드라마틱하고 사실적인 묘사는 읽는 내내 마치 내가 그 때 그 장소에 있는 느낌마저 준다. 저자의 필력이 놀랍다. 중국 근대사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필히 읽어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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