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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 먹은 대로 살아요 - 아버지가 쓰고 딸이 그린 애틋한 父情의 풍경화
박범신 지음, 박아름 그림 / 생각의나무 / 2007년 11월
평점 :
품절
오타가 몇 군데 있어 별 하나 제하고, 오류까지 있어 결국 별 두개를 제한다.
때론 책의 내용이 오타와 오류를 기꺼이 무마시켜 주어 별 다섯을 거뜬히
클릭하게도 하지만 오늘은 심보가 고약해지는대로 둔다.
P225 소제목, 스승의 날, 선물 편에서,
오류: 책의 내용을 따라가자면 작가는 그해 오십대 초반인데, 그의 제자가 그해 52살
이랜다. 뭐 어쩌라구?
난 유독 오타가 눈에 잘 들어오고 이런 앞뒤 안맞는 경우가 잘 보인다.
이 책을 두 친구가 읽고 나에게 건네 주었지만 그녀들은 이에 대해 전혀 언급이
없는 걸로 봐서도 알 수 있다.
오타는 독자의 독서 흐름을 얼마나 방해하는지 모른다. 맥이 그야말로 뚝뚝
끊기게 하는데는 독서 중 받는 전화보다 더 지독하다. 이런 오타보다 더 괘씸한
것이 앞뒤 맞아떨어지지않는 오류더라!
P214 안개비 때문에 에서,
" 그러나 이 사각의 방은 자궁처럼 깊고 고요한 섬이 된다."
나도 이유를 모른다.
"자궁"이란 단어는 시에서 가장 많이 접했고, 매번 그 단어를 포함한 시들은
쉽게 느껴지는 것들이 없었다. '무슨 말 하는거야, 젠장!, 이란 투덜거림으로
그런 시들을 마무리 했던 탓일까? 나는 드러내놓고 "자궁"이란 단어를 쓰는,
특히 "엄마의 자궁"이란 말을 사용하는 것에선 왜 그렇게 발끈하는 거부가 치미는지
나도 실은 모르겠다. 나는 말의 꼬투리를 잡는 것으로 더 발끈해 한다.
자궁도 없는 사람이 그 자궁이 깊은지, 고요한지 어찌 단언한단 말이냐!
그 속에 있었던 걸 기억이나 한단 말이냐?
이 책에서도 이 단어는 두어 군데 나온다. 두어 번 발끈했네.
P174 또 에서,
"책을 안 내고 사는 고요한 나로 돌아갈 날이 그립다. 책을 더 이상 내지 않을 때, 비로소
나는 내가 그리워했던 '작가'가 될지도 모른다."
책을 내고 싶지 않으면 안내면 되는 것이고, 그러면 본인의 뜻대로 작가가 될터이구만,
허나, 책을 안내는데 작가라 말 할 수 있는가? 책은 안내고, 그냥 글만 쓰고 싶다는건가?
생계를 위해서 책을 내야 하는 현실이 원망스러운가? 모두 다인가?
반어인지, 역설인지... 뭔 말을 하고 싶은건지 도무지...
"자궁"이란 단어가 속한 문장을 읽을 때와 비슷한 거부감?ㅎㅎ 또 한번 발끈!
P240 너희 옷고름을 풀 날 에서,
텃밭에 배추와 무를 심고, 속이 꽉 차기를 바라는 마음, 딱 거기까지만 할 것이지,
어느정도 자란 배추를 하나하나 묶어주고, 그것들이 속이 차서 그 끈을 풀 날을,
"첫날 밤, 새색시 치마를 휘리릭, 욕망을 좇아 거칠게 벗길 수는 없는 노릇이지.
저것들 하나하나, 떨리는 손으로 옷고름을 풀고, 그 속살을 대면할 날 생각하면
언제나 가슴이 짜릿하다."
이렇게 표현한다. 순한 배추와 무에겐 너무 야하다. "은교"가 달리 나왔겠는가 싶으네!ㅎㅎ
몇 번 투덜거리긴 했으나ㅎㅎ 박범신의 환한 웃음이 좋다. "좌질투 우변덕"으로 그를
대신하는 말이 곧 내 것인 듯 싶어 맘에 쏙 들었고, 타샤튜더를 언급해 주어 그녀의
책을 다시 꺼내 단숨에 읽게 해 주니 얼마나 감사하던지! 아~ 이래서 책을 사는 거구나
라는 걸 새삼 실감했구만!
그런데 제목이 타샤튜더의 책과 같은데 상관없나 보다. 상호는 같으면 안되던데...
제목이 같은 책은 처음 본다.
*미운 사람이 갑자기 늘어났고 그리운 이는 언제나 너무 멀리 있었다.
*"참으로 사랑하는 남자와의 연애는 상상하는 것을 '향락'하고 그것에 의해 '전율'한다."
'청년작가'라 불리는 내가 세상과 다른 것은 세상의 내 또래 남자들은 이미 오래전 '향락'
하고 '전율'하는 걸 잊었으나 나는 아직도 수시로 '향락'하고 '전율' 한다는 것.
-스탕달의 <연애론>에서
*내 몸 안에 늙지 않는 예민하고 포악한 어떤 짐승이 살고 있다.
*봄빛 때문에 자꾸 술을 마신다. 봄빛은 천지에 가득한데 나는 그 빛으로부터 소외되어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내가 바로 봄빛이고 싶다. 평생의 소망 중 한가지다.
*꿈을 앞세운다는 것은 이렇게 생생한, 좋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