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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들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117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석영중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5월
평점 :
23세에 이 책을 집필하기 시작해 25세에 발표한 도스또예프스끼!
그의 이 나이 때 나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돌이켜보니 참 부끄럽다.
심리적인 표현이나 흐름을 그 어린 나이에 어쩌면 이렇게 잘 해낼 수 있는 것인지
참 대단하다.
1800년대에는 각설탕이 친절의 선물이 될 수 있었으며,
정서(正書)가 직업의 하나였다는 것은 흥미로웠다.
가난이라는 것은 자신을 얼마나 위축시키고 주눅들게 하는 것인지 모른다.
나의 한 친구는 가난이 죄라 했고, 다른 한 친구는 가난이 뭔 죄냐 그랬다.
희한하게도,
죄라 한 친구는 전문직 여성으로 자신의 중심이 꼿꼿하며 경제적인 어려움이 없고,
죄 아니라 한 친구는 고된 삶의 시간들을 보냈다.
가난은 주변의 사람들로부터 서서히 분리시켜 버린다.
"저는 높으신 분들에게 발이나 문지르는 걸레보다도 못한 존재입니다.
바렌까, 제 목을 조이는 것은 사람들이에요, 그렇죠? 제 목을 조이는 것은 돈이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 느껴지는 불안감, 사람들의 수군거림, 야릇한 미소, 비웃음입니다."(p153)
내 눈엔 오직 가난이라는 것에 마음이 쏠렸고, 그 미묘한 감정의 흐름에 매료되어서
읽었는데, 옮긴이의 글에서 역시 내가 볼 수 없었던 부분을 알게 된다.
바르바라가 제부쉬낀을 배우자로 선택하지 않는 것은 나이나 물리적인 빈곤 못잖게
제부쉬낀을 비참하게 만들어 주는 문학적 빈곤 때문인 것이다.
이렇게 도스또예프스끼는 외관상 물리적 빈곤을 테마로 하는 <가난한 사람들>을 통해
문학에 관한 문제를 진지하게 제시하면서 미학과 존재론의 상관성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한 인간의 존재를 결정짓는 것은 그가 읽는 책, 그가 쓰는 글이라는 도스또예프스끼의
미학 공식은 이미 첫번째 소설에서부터 드러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 옮긴이 석영중의 글 中
*노동의 가치에 비해 돈은 조금밖에 못 벌지만, 아무에게도 굽실거리지 않고 먹을 것을
구걸하지도 않으며 정직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꽤 많습니다. (...) 저도
최선을 다해 일하고 있잖습니까. 그 외에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도 없고요.
하지만 가난한 것이 죄는 아니잖습니까.
*착한 사람은 황무지에서 살아야 하고 어떤 사람은 저절로 굴러 온 행복을 누리는
이따위 일들은 도대체 왜 생기는 것이랍니까! (...) 어째서 어떤 사람은 어머니 뱃속에서
부터 운명의 새가 행운을 점지해주고, 왜 어떤 사람은 양육원에서 태어난단 말입니까!
*추억은 기쁜 것이든 슬픈 것이든 항상 괴로운 것이다. 최소한 나한테는 그렇다.
그러나 그 괴로움은 또 달착지근한 것이다. 마치 타는 듯한 하루가 자나고 밤이 되면
이슬이 폭염에 바싹 마른 꽃에 신선함을 주어 소생시키듯이, 추억은 괴롭고 아프고
지치고 슬픈 내 가슴에 새로운 힘을 주어 소생시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