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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별들이 너의 슬픔을 가져갈지도 몰라 - 김용택의 꼭 한번 필사하고 싶은 시 ㅣ 감성치유 라이팅북
김용택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김용택의 <그 여자네 집>을 처음 읽었을 때의 감동을 잊지 못한다.
시가 아니라 하나의 영상물이었다.
한 줄 한 줄마다 선명하게 그려지는 그림은 그야말로 영화, 그 자체였다.
살구꽃이 환하게 핀 그 여자의 집이
어느새 노란 은행잎으로 뒤덮이는가 싶더니,
하얀 눈이 장독대로, 열린 김칫독 안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그 여자"는 나였다, 내가 "그 여자"가 되었다.
참 아름다웠다. 글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구나 싶어 좋아라했다.
그런 김용택의 꼭 한 번 필사하고 싶은 시,
어쩌면 별들이 너의 슬픔을 가져갈지도 몰라!
별들이 나의 슬픔을 가져가줄 수 있다면 어찌 슬픔 뿐이겠는가,
해답을 모른다는 것이 유일한 해답인 이 인생도 던져주고 싶다.
-해답
거트루드 스타인
해답은 없다
앞으로도 해답이 없을 것이고
지금까지도 해답이 없었다
이것이 인생의 유일한 해답이다
빈 여백 많은 책을 좋아하지 않는 나로선,
이 책에서 친절하게도 필사해보라고 남겨 둔 여백들이 썩 반갑지 않다.
아름다운 시들로 그 여백을 모두 채웠더라면,
수록된 시의 두 배가 되는 시들을 접할 수 있었을텐데.
안도현의 <그 풍경을 나는 이제 사랑하려 하네>에서 였던가?
누군가 백석 시집을 빌리기 위해 고개를 넘었고,
필사한 후 다시 고개를 넘어 책을 돌려주러 갔다는 이야기가.
필사의 마음을 내는 것은 책 속에 있는 여백이 주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흔들어대는 감동이지 싶다.
더 많은 시들로 독자의 마음을 흔들어 보는 것이,
필사의 여백을 주는 출판사보다 더 친절한 것 아닐까 생각해 본다.
잎이 필 때 사랑했네
바람 불 때 사랑했네
물들 때 사랑했네
바람의 노래를 들을 것이다
올고 왔다 울고 갔을 인생과
웃고 왔다 울고 갔을 인생들을
바람이 나를 가져가리라
햇살이 나를 나누어 가리라
봄비가 나를 데리고 가리라
발걸음을 멈추고
숨을 멈추고
눈을 감고
이 책의 백미는 각 장을 1장, 2장 3장, 4장으로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각 장의 머리맡에는 위의 글들이 대신한다.
무척 근사하다.
역시 내가 좋아하게 되는 시는 쉬운 말로 된 것들이다.
이 책에 실린 시들은 대부분 쉬운 말로 된 것들이라 음미하기 어렵지 않아 좋다.
아쉽게도 <고은>의 시가 한 편도 없네. 뜻밖이다.
김용텍시인은 <고은>의 그 수 수 수많은 시들 중에서 본인의 가슴을 떨리게
한 것은 없었던 걸까?
-용기
요한 괴테
신선한 공기, 빛나는 태양
맑은 물, 그리고
친구들의 사랑
이것만 있다면 낙심하지 마라.
-거울
이상
거울속에는소리가없소
저렇게까지조용한세상은참없을것이오
거울속에도내게귀가있소
내말을못알아듣는딱한귀가두개나있소
거울속의나는왼손잡이오
내악수를받을줄모르는-악수를모르는왼손잡이오
거울때문에나는거울속의나를만져보지를못하는구료마는
거울이아니었든들내가어찌거울속의나를만나보기만이라도했겠소
나는지금거울을안가졌소마는거울속에는늘거울속의내가있소
잘은모르지만외로된사업에골몰할께요
거울속의나는참나와는반대요마는
또꽤닮았소
나는거울속의나를근심하고진찰할수없으니퍽섭섭하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