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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아이들 - 고침판
이오덕 엮음, 오윤 그림 / 보리 / 2002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무너미마을 느티나무 아래서(이오덕)>를 보면, 나무하다 개구리를 놀라게 해서 벌벌 떠는
개구리를 보고 죄 지은 것 같아 하늘보고 절했다는 시를 쓴 아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 시를 쓴 당시는 초등학생이고, 이후 삼십여년 지나 이오덕 선생님은 훌륭한 시인이 될 줄
알았던 이 아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듣고 애통해 하는 마음을 그 책에 적어
두셨다.
=청개구리 안동 대곡분교 3년 백석현
청개구리가 나무에 앉아서 운다
내가 큰 돌로 나무를 때리니
뒷다리 두 개를 펴고 발발 떨었다
얼마나 아파서 저럴까?
나는 죄 될까 봐 하늘 보고 절을 하였다 (1969년 5월 3일)
이 책에서 이 시를 읽는 순간 아! <무너미마을 느티나무 아래서>에서 말씀하시던 그 아이구나!
하는 생각이 떠오르자 마자 눈물이 솟구쳐서 어쩌지를 못하였다. 돌아가신 분을 위한 진언, '광명
진언'이라고 외워둔 게 있어서 진심을 다해 3번 광명진언을 외웠다. 이런 진언이라도 외워두었
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아니면 내가 이 아이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는가.
"짓궂은 장난을 쳐 놓고, 저 때문에 아파서 떨고 있는 청개구리를 보자 잘못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하늘보고 절을 하였다니 참으로 순진하고 아름다운 어린이 마음이다. 사람이 자연과 어울
려 살면 그 마음이 저절로 이와 같이 착하게 되는 것 아닐까."
이오덕선생님의 이 시에 대한 평이다. 더 가슴 아린다.
=눈 안동 대곡분교 3년 이숙자
눈이 어얘서 내리노?
하늘이 퍼져서 내려오지.
하늘이 파랗게 내려오면 눈이지.
땅 위에는 눈이 하얗지.
하늘이 다 내려오면
우리는 하늘에 살지. (1968년 12월 24일)
너무 아름답지 않나! 파란 하늘이 내려오면 눈이란다. 그 하늘이 하얗게 땅에 쌓이면 하늘이 다
내려온 것이고 그럼 우린 땅이 아닌 하늘에 사는 거라니! 전율이 인다.
이 책에는 이러한 전율이 일게 하는 아이들의 시가 272편이나 있다. 크레파스 살 돈이 없어
연필로 그렸다는 아이들의 그림까지 있으니 감동이 하나 둘이 아니다.
나는 초등 6년 내내 방학만 되면 시골 할머니 댁에서 꼬박 방학을 보냈다. 나의 전원적인,
목가적인 정서의 밑바탕은 모두 이 때에 형성된 것이다. 도시의 아이가 시골로 나들이를 간
것이고, 이 책의 아이들처럼 일이 삶은 아니었기에, 나의 이 정서는 대단히 탱자탱자한 것을,
송구스럽기 짝이 없음을, 그때의 그 시골 아이들에게 거듭 미안함을 생각하며 책 읽는 내내
사과의 마음을 가졌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예전의 나는 왜그리 부끄러운 것들이 많은건지! 어쩜 그렇게 나만 생각하고
살았는지 말이다. 어리석은지고!! 쯔쯔..
맨드라미의 다른 이름은 계관으로 알고 있는데 달구베실꽃이란 것도 있었네. 이 책에서 처음
본다.
=달구베실꽃 안동 대곡분교 3년 김대현
달구베실꽃이
불을 켰다.
낮이나 밤이나
안 꺼진다. (1969년 10월 10일)
맨드라미 꽃? 핀 것을 보고 불을 켰다고 생각하니 너무 귀엽다. 그럼그럼! 안 꺼질거야!
암, 안 꺼지고 말고지! ㅎㅎ 귀여운 녀석.
3학년인 아이가 25kg의 비료포대를 지고 가야 하니 너무 무거워서 눈물이 난다거나, 일이 하기
싫어 도망가고 싶다는, 배가 고파 먹거리 앞에서 침을 꼴깍 삼키며 그걸 먹을 수 있는 아이를
한없이 부러워하는 시들은 눈물없이 보기 어렵다. 이런 글들을 모아 책으로 만들어 내신 선생님
이라니, 정말 존경의 마음이, 우르러는 마음이 부풀고 부풀어진다.
몇몇 시에는 이오덕 선생님의 평도 있는데, 아이들 시를 바라보는 선생님의 시선이 여간 다정
하지 않다. 16년의 학교생활을 보냈는데 내겐 이런 우러르는 선생님이 단 한 분도 안 계신다.
슬픈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