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면의 역사 - 지금 내 앞에 놓인 한 그릇
강명관 지음 / 푸른역사 / 2025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새삼 '냉면주의자'로의 귀환
- [냉면의 역사], 강명관, 2025.


"어떤 국수를 가리켜 '냉면'이라 하는가?"
- [냉면의 역사], <1장>, 강명관, 2025.


누군가 내게 저녁에 술 한 잔 하자며 뭘 먹고 싶은지 묻는다면, 나는 망설임없이 1초만에 '횟집'을 가자고 말할 것이다. 사시사철 언제 물어도 똑같다.

또한 점심에 뭘 먹겠느냐 묻는다면, 내 머릿속에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음식은 단연 '냉면'이다. 역시 언제든 그렇다.

모두, 나의 취향이자 나의 '이념'과도 같은,
'차가운 음식'이다.

한반도 북쪽에서 오래전부터 먹어왔을 '냉면(冷麵)'은 말 그대로 차가운 국수인데, 우리의 문헌에 등장하는 최초의 '냉면'은 고려말의 성리학자 목은 이색의 시에 나오는 '괴엽냉도(槐葉冷淘)'가 최초일 것으로 추정된단다. 실제로는 더 오래 되었겠으나, 적어도 기록상으로는 고려말에도 이미 '냉면'을 먹었다는 거다.


"... 국수와 동치밋국... 이것이 '냉면'의 핵심요소다... '냉면'은 국수틀을 눌러 뽑아만든 메밀국수를 동치밋국에 말고 김치(무와 배추)를 얹고, 거기에 돼지고기 편육을 올려서 만든 차가운 국수다."
- [냉면의 역사], <1장. 냉면이란 무엇인가>, 강명관, 2025.


부산대 한문학과 강명관 명예교수는 냉면을 좋아하여 스스로를 '냉면주의자'로 자칭하다가 2025년 [냉면의 역사]로 책을 엮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냥 '냉면'에 대한 '썰'을 풀어내는 게 아니다. 15세기 세종 연간의 [산가요록]과 16세기 이문건의 [묵재일기], 17~18세기 [음식디미방]이나 [산림경제], [임원경제지] 등의 고문헌을 근거로 설명하는 '냉면'에 관한 '역사책'이다. 현대에 이르러 이용기의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1924) 같은 식민지 시대의 근대적 기술서와 신문, 잡지 등의 언론기사 역시 주요 근거자료가 된다. 
역사학의 1차 사료는 역시 '문헌' 자료다.

중종과 인종 대 중앙 관료를 역임하다가 을사사화를 겪으며 귀양살던 이문건의 [묵재일기]에서 '냉면'이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다고 한다. 1558년 4월 20일의 일기에서 이문건이 쓴 "낮잠을 자다 깨어 곧 '냉면'을 먹었더니 발바닥이 차가워졌다"는 문장이 그 출처다.

신라 진흥왕 대에 '차가운 국수'를 먹었다는 이야기는 출처 불문의 전설에 불과하고 고려시대 이색이 먹은 '괴엽냉도'와 조선 중기 이문건이 자다 일어나 먹었다는 '냉면' 또한 차가운 국수에 대한 기록은 분명하나 과연 어떤 형태의 국수였는지 알 수 없다. 이후 [음식디미방] 등의 한글 조리서는 '세면'과 '창면'의 이름으로 신맛을 내는 오미자 국물에 말아먹는 '냉면'을 추정케 하는데, 이후 18세기 중반 이후가 되면 '냉면'이란 국수틀로 뽑은 '메밀국수(세면)'를 차가운 '동치밋국'에 만 형태로 확인된다.
걸레 빤 물 같고 심심한 물냉면이 평양냉면이고 '비빔국수'의 시조새인 골동면이 조상일 듯한 비빔국수는 함흥냉면이라는 구분은 현대 이후 정착한 형태에 불과하다. 

즉, 원래부터 평안도 중심으로 확산된 '냉면' 또는 '평양냉면'은 '메밀국수를 동치밋국에 말고 배추/무김치와 돼지고기 편육을 고명으로 올린 차가운 국수'를 이르는 말이었고, 당시 보통 '국수'라 하면 이러한 '냉면'을 이르는 보통명사였다.


"국수틀을 눌러 뽑은 메밀국수는 처음에는 간장으로 만든 국물에 말아 먹었던 것으로 보인다. 서유구가 말했듯 그것은 장물에 끓여서 내는 온면의 형태였을 것이다. '메밀국수+동치밋국=냉면'은 18세기 후반이 되어서야 문헌에 출현한다."
- [냉면의 역사], <끝맺음>, 강명관, 2025.


부산경남의 밀면이나 해산물육수의 진주냉면, 강원도의 막국수, 대중적인 콩국수도 넓게 보면 모두 '냉면'이지만, 문헌상으로 추적되는 엄밀한 '냉면'의 정의와 분류에 의하면, 오로지 국수틀로 뽑아낸 '메밀국수'와 겨울의 '동치밋국', 동치미가 바닥난 여름에 끓여낸 소와 돼지 또는 닭과 꿩고기(생치) 육수인 '장국'이 결합해야 비로소 '냉면'이 된다.

학자인 강명관 교수의 책 [냉면의 역사]에서는 1차 사료인 문헌적 출처를 찾을 수 없는 밀면이나 진주냉면, 막국수까지 '냉면'의 엄밀한 정의 밖의 영역이다.


"... 18세기 후반 국수가 팔리고 있었고 서울 시정에 국수를 파는 가게가 등장... 서울만이 아니다. 평안도의 경우 유득공의 <서경잡설>에 '냉면'이 팔리는 정황이 담겨 있어, 이 작품이 지어진 1773년에 이미 '냉면'이 상업화되어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 [냉면의 역사], <6장. 냉면의 확산 - 냉면의 상업화>, 강명관, 2025.


10~12세기 북송 시대 인구 100만 명의 '메트로시티' 개봉(카이펑) 중심가를 그린 <청명상하도>를 보면 당시 이미 시장에서 사먹던 외식의 주류는 '국수'였다. 물론 '냉면'도 있었는지는 알 수 없고 주로 뜨거운 '탕면'이었을 것이지만.

그러다가 중국을 다녀가는 조선 사신단이 한양에서 평양과 의주를 지나 만주를 통과하면서 지역 음식인 국수, 그 중에도 차가운 국수인 '냉면'을 접했을 테고, 사신단에 합류한 상인과 기술자들이 북방에서 본 국수틀을 한양까지 모방하여 들여왔을 게다. 조선 철종이 시켜먹은 '냉면'도 칼국수 같은 '절면'이 아닌 북방의 기술을 모방한 '메밀세면'을 겨울에는 '동치밋국'에, 여름에는 고기장국인 '육수'에, 또는 동치밋국과 고기장국을 섞은 육수 말아먹던 국수였을 것이다.


"냉면값은 1925년 15전 내외에서 1943년 22전까지 올랐으니 그리 빠르게 인상된 것은 아니었다. 일제강점기 소설에 등장한 식민지시대의 급여를 정리한 논문에 의하면, 보통학교 교사가 40~60원, 중학교와 고등보통학교 교사가 60~70원, 기자가 60~80원, 은행원이 60~80원, 기수가 30~40원 정도였다고 한다. 1원은 100전이므로 15~20전 정도의 냉면가격은 그리 비싼 것이 아니었다."
- [냉면의 역사], <7장. 근대 이후,냉면의 시대 - 총독부, 가격과 양을 정하다>, 강명관, 2025.


나는 '라면'을 비롯한 모든 국수를 매우 좋아하지만 그 중에서 제일은 역시 '냉면'이다. 회와 냉면 모두 차가운 음식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이상하게도 회냉면 보다는 물냉면을 더 좋아하기도 한다. 

[냉면의 역사] <후기>에서 저자 강명관 교수는 20대에 물냉면 한 그릇을 '35초'만에 먹었단다. 
나 또한 즐기면서 먹고 싶어서 그런 거지 50대인 지금도 마음만 먹으면 물냉면 한 그릇 쯤이야 1분 내로 다 먹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매주 토요일 처와 함께 걷는 서울과 경기 인근 나들이길에도 나는 늘 처에게 '냉면'을 먹자고 조른다. 그리고 차가운 음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처는 싫다면서도 같이 냉면을 먹어준다. 나는 항상 물냉면 곱배기, 처는 비빔냉면 보통을 먹는데 처가 남기는 반 그릇도 전부 내 차지니 한 번 나가면 나는 물과 비빔 섞어 2인분을 먹게 된다. 한편, 맛은 어떨지 모르지만 라면과 김치볶음밥 외에 내가 집에서 해 먹는 음식 또한 역시 인스턴트이긴 해도 '냉면'이다. 

냉면을 서울과 평양 등지의 시장에서 팔던 시기는 18세기 중후반 부터라지만, 1895년 갑오개혁 이후의 근대화 과정에서는 수도 서울과 개항지였던 인천 등지에서 냉면을 비롯한 음식점이 성행했다. 이유는 관공서와 현대적 기업의 등장, 전화와 자전거의 발전으로 사작된 배달문화를 통해 직장인과 상류층 가정집의 점심식사 해결의 수요 때문이기도 했다. 
차가운 육수 또는 돼지고기 고명의 부패로 인한 냉면 식중독의 위험은 식초를 쳐서 먹는 관행의 이유였지만, 식중독의 확률이 적어진 지금은 식초와 겨자가 오로지 풍미를 위한 향료가 되었다.
메밀을 반죽하고('반죽꾼'), 국수틀로 뽑아내고('발대꾼'), 찬물로 씻어 그릇에 담고('앞자리'), 육수와 고명으로 포장하고('고명꾼'), 자전거로 하루 19시간 동안 배달을 했던('배달인')-어느 진정한 배달의 달인은 믿거나 말거나 한 번에 80그릇을 나르기도 했다던- 냉면집(면옥) 노동자들이 있었다. 이들 스스로의 처우개선를 위한 1920년대 면옥노동조합의 결성과 사용자측인 면옥조합과의 산별교섭 및 파업 등의 역사 또한 [냉면의 역사]에서 뺄 수 없는 이야기다. 
과연 '냉면'의 역사는 우리의 중요한 미시사 중 하나가 된다.


"1925년 1월 25일 냉면의 성지인 평양에서 최초의 노조가 만들어졌다... 면옥노동조합이 먼저 해야 할 일은 당연히 임금인상이었다... 12개의 요구조건... 1) 임금인상(50전 이하는 10전, 50전 이상은 5전을 인상할 것-하후상박), 2) 노동시간은 어후 11시까지로 할 것, 3) 노동조합 회원 이외의 사람은 고용하지 말 것, 4) 해고하고자 할 때는 반드시 노동조합의 승낙을 받을 것 등..."
- [냉면의 역사], <7장. 근대 이후 냉면의 시대 - 면옥노동조합의 활동>, 강명관, 2025.


실제로는 점심메뉴에 대한 동료들과의 의견이 '냉면'으로 일치된 경우가 없어 나의 직장생활 중 점심에 '냉면'을 먹은 적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점심식사 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냉면'은 내게 음식이란 이래야('차가워야') 한다는 모종의 '이념' 또는 '강령'과도 같다.

이 정도면 나도 '냉면주의자'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강명관 교수의 [냉면의 역사](2025) 덕분에 나는 새삼 '냉면주의자'로 귀환한다.


"1945~1950년 서울의 냉면점들이 이렇게 평양냉면을 내세운 것은, 일제강점기 서울의 냉면이 이미 평양냉면화되어 있었음을 의미할 터이다. 이 냉면점들은 또 다동, 충무로, 광화문, 명동, 남대문, 관철동, 예지동, 낙원동, 을지로, 시청 앞, 종로 등의 지명에서 알 수 있듯, 주로 서울의 좁은 중심지대 안에 있었다."
- [냉면의 역사], <8장. 8.15 해방 이후의 냉면 - 각지의 냉면점>, 강명관, 2025.

***

1. [냉면(冷麵)의 역사 - 지금 내 앞에 놓인 한 그릇], 강명관, <푸른역사>, 2025.
2. [라면의 재발견], 김정현/한종수, <따비>, 202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통섭 - 지식의 대통합 사이언스 클래식 5
에드워드 윌슨 지음, 최재천.장대익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미래를 위한 '실존적 보수(보존)주의' 혹은 '보수(보존)적 실존주의'
- [통섭(統攝/Consilience)], 에드워드 윌슨, 1998.


'통섭(統攝/consilience)' : "서로 다른 현상들로부터 도출되는 '귀납'들이 서로 일치하거나 정연한 '일관성'을 보이는 상태"
- [통섭](1998), <옮긴이 서문>, 에드워드 윌슨, 최재천 옮김, 2005.


유발 하라리로 촉발된 '빅 히스토리'는 인류의 역사를 '역사학' 자체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진화생물학과 기후생태학, 그리고 특히 하라리에게는 '신'의 창조적 영역에 도전하는 미래적 인류의 과학기술과 접목해야 이해할 수 있는 역사적 관점이었다.
언어와 신화에 의한 1차 '인지혁명'과 밀의 기생유전자에 속은 인류가 정착을 하게 된 2차 '농업혁명', 그리고 현대의 3차 '과학혁명'을 통해 진화해 온 '(호모) 사피엔스'는 '인공지능(AI)'으로 대표되는 미래 과학기술을 발전시키면서 고대로부터 '신(神)'만이 기획하던 '영생'의 길을 인간 스스로 열어갈 수 있게 될 것이라는 게 유발 하라리의 '빅 히스토리'적 전망이다.

우리의 지리학자 박정재 교수 또한 인류의 기원으로부터 진행되어 온 진화사 일체를 기후생태적 지리학의 관점에서 돌아보며, [총,균,쇠](1997)의 제러드 다이아몬드와 [사피엔스](2011)의 유발 하라리가 이끄는 '빅 히스토리'가 '인문학'이라기보다는 "인문학의 한 분과로서의 역사학 외에도 천문학, 지질학, 기상학, 해상학, 생물학, 인류학, 고고학, 지리학 등 다양한 학문이 서로 얽혀 진행되는 학제 간 연구로 거시적인 관점에서 인류가 나아갈 방향을 알려준다"는 매혹적인 이야기를 전한다.
인류의 역사는 '역사학'만으로는 더 이상 설명이 안 된다.

21세기 초 과학과 인문학을 아우르는 '빅 히스토리'의 열풍은 일정 정도는 20세기 말인 1997년 미국의 역사학자이자 생리학자 제러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 : 1937~)의 [총,균,쇠]로부터 기인한다. 그는 인류의 역사를 사회과학적 '사회문화사' 또는 인문학적 '역사학'의 관점을 넘어 생태학과 기후학, 지리학 등의 관점에서 방대하게 서술하기 시작했다.

생물학, 기후학, 지리학 등의 '자연과학'이 사회학, 정치경제학 등의 '사회과학'과 교차하고, 철학, 문학, 역사학 등의 '인문학'의 차원에서 융합되는 이 과정이 바로 '통섭(統攝/Consilience)'이다. 


우리의 생물학자 최재천 교수의 스승인 미국의 에드워드 오스본 윌슨(Edward O. Wilson : 1929~2021)은 1998년의 저서 [통섭]을 통해 이 과정을 '지식의 대통합(The Unity of Knowledge)'이라 규정했다.

[통섭]에서 에드워드 윌슨이 정의하는 '통섭' 관련 대표적 문장들을 몇 가지 인용해 본다.


"'통섭(統攝/consilience)'은 '통일(統一/unification)'의 열쇠이다. 나는 이 용어를 '정합(整合/coherence)'보다 더 좋아하는데 왜냐하면 '통섭'은 '정합'의 다양한 의미들 가운데 하나만을 뜻할 뿐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통섭'이라는 용어는 그 '희귀성' 때문에 그 의미가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 이 용어는 (19세기 자연철학자) 윌리엄 휴얼이 1840년에 [귀납적 과학의 철학]이라는 책에서 처음으로 사용했는데, '설명의 공통 기반을 만들기 위해 분야를 가로지르는 사실들과 사실에 기반한 이론을 연결함으로써 지식을 통합하는 것'을 뜻한다."
- [통섭], <2장. 학문의 거대한 가지들>, 에드워드 윌슨, 1998.

"... '통섭(統攝/consilience)'... 다른 분야에서 탄탄하게 검증된 지식에 순응하는 어떤 분야의 단위와 과정은 이론과 실천에 있어서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일관성'의 측면에서 더 우월하다고 입증되었다."
- [통섭], <9장. 사회과학>, 에드워드 윌슨, 1998.

"... 한 가지 부류의 설명... 그 설명을 통해 우리는 다양한 수준의 시공간과 복잡성을 넘나들어 결국에 '통섭'이라는 방법으로 여러 분과들의 흩어진 사실들을 통일한다. '통섭'은 '봉합선이 없는 인과관계의 망'이다."
- [통섭], <12장.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에드워드 윌슨, 1998.

"'통섭(統攝/Consilience)' 세계관의 요점은 인간 종의 고유한 특성인 문화가 자연과학과 인과적인 설명으로 연결될 때에만 온전한 의미를 갖는다는 점이다. 여러 과학 분과들 중에서 특히 '생물학'은 이런 연결의 최전선에 있다."
- [통섭], <12장>, 에드워드 윌슨, 2005.


지금의 과학자들에게 '과학자(Scientist)'라는 말을 안겨주었다던 19세기 자연철학자 윌리엄 휴얼(William Whewell : 1794~1866)이 처음 사용했다는 '통섭'은 원어로 'consilience'인데, [통섭]의 저자 에드워드 윌슨은 '과학'과 '인문학'을 아우르는 '지식의 대통합'을 'unification(통일)'이나 'coherence(정합)'보다 'consilience(통섭)'으로 선택했다. 이유는 우리말로 잘 이해가 어렵기는 하나, "다양한 의미들 가운데 하나만을 뜻하기 때문"이며 '희귀성'으로 "그 의미가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기 때문"이라 쓰고 있다([통섭], <2장>).

아마도 일반 용어로 '합일(合一)'이라고 번역될 수 있을 'consilience'가 에드워드 윌슨 교수의 한국 제자인 최재천 교수에 의해 '통섭(統攝)'으로 번역되었다.
최재천 교수는 [통섭]의 <옮긴이 서문>에서 저자 윌슨의 위와 같은 용어선택 사상을 이어받아 고심 끝에 '통일'이나 '정합'이 아닌 '통섭'으로 정한 듯 한데, 과연 '통섭'이라는 단어 자체가 '희귀성'을 갖고 있기는 하다.

'통섭'에 관한 위 인용문들을 통해 내가 이해하는 '지식의 대통합'으로서 '통섭'의 특징은 세 가지다. 

첫째, '희귀성'으로 인한 의미 보존.
둘째, 자연과학적 '귀납추론'을 통한 엄밀성.
셋째, 사회과학이나 인문학 영역에서도 여전히 탄탄하게 검증되는 '일관성'.

위 세 가지 요소를 통해 에드워드 윌슨이 정의하는 '통섭'은 "설명의 공통기반을 만들기 위해 분야를 가로지르는 사실들과 사실에 기반한 이론을 연결함으로써 '지식을 (대)통합'하는 것"([통섭], <2장>)이 된다.


"과학은 비록 완벽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인류가 뽑아든 마지막 검(劍)이다."
- [통섭], <4장. 자연과학>, 에드워드 윌슨, 1998.


'통섭'을 주장하면서 생물학자로서 에드워드 윌슨은 자연과학의 한 분야인 '생물학'을 '최전선'([통섭], <12장>)에 둔다. 

그에게 '사회과학'은 그 자신의 영역에만 머무는 '환원주의(reductionism)'에 더욱 매몰된 결과 "사회에서 '마음'과 '뇌'로 이어지는 여러 수준들을 관통하는 '인과적 설명망'을 만들어내지 못했고", 이 실패로 인해 '사회과학'은 "진정한 과학이론의 본질을 결여하고 있다"([통섭], <9장. 사회과학>). 
자연과학자 윌슨에게 그나마 '과학'적으로 간주되는 사회과학 분야는 고도의 수학적 모델로 사회현상을 설명하려는 (신고전주의) '경제학'이다. 물론 이런 경제학 또한 자신의 영역에만 머무는 '환원주의'로는 안되고 인간의 '뇌'와 '유전자'를 연구하는 '생물학'과 '마음'을 연구하는 '마음의 과학'인 '심리학'과 융합되어야 진정한 과학이론이 된다. 
현재 주류 경제학에서도 요원한 길이다.

'생물학', 세부적으로 '뇌과학', '진화생물학' 등의 귀납적인 과학의 연구방법을 우선시하지만, 다소 부족한 사회과학도 위와 같은 자연과학의 방법을 통해 일관된 인과관계의 연결망을 구성하면서 과학이 이룬 이 지식의 성과들을 인류사에 적용하는 '인문학'의 지휘 하에 '일관성'의 이름으로 대통합되는 지식의 본연이 바로 에드워드 윌슨이 주장하는 '통섭'이다.


"수십만 년의 구석기 역사 속에서 인간의 특정한 '후성규칙'들을 규정하는 유전자들은 '자연선택' 과정을 통해 점점 증가해 종 내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이런 수고 덕분에 '인간 본성'이 탄생한 것이다."
- [통섭], <8장. 인간 본성의 적응도>, 에드워드 윌슨, 1998.


이로 인해 인류사의 '빅 히스토리'는 '유전자'와 '문화'의 상호작용으로 '인간 본성'을 구명할 수 있게 된다. '인간 본성'이란 선험적이거나 '초월론'적인 것이 아니라, 인류 유전자의 진화 과정에서 살아남은 '자연선택'의 유구한 시간이 각인된 특질들이 수십만 년의 유전을 통해 인간의 '마음'에 전해지고 새겨지며 일정의 '대수의 법칙'처럼 예측되는 일종의 '후성규칙'이다. 이것이 과학자로서의 윌슨이 '인간 본성'에 관해 주장하는 '귀납적'이자 '유물론'적인 규정인 것이다.

'예술'은 인류의 오래된 '본성' 중 하나인데, 예술에 대한 '해석'은 예술과 과학의 교차점이며, '유전자'와 '문화'의 '공(共)진화'는 윌슨이 보기에 '뇌과학', '심리학', '진화생물학'의 "연구결과에 가장 잘 부합하는 과정"([통섭], <10장>)이다.


"윤리적 격률은 우리가 기다려야 하는 신의 계시나 인간 세계 바깥에서 오는 천상의 메시지와는 전혀 다르다. 또 그것은 정신의 비물질적 차원에서 울려 퍼지는 독립적인 진리와도 다르다. 그것은 오히려 '뇌'와 '문화'의 '물리적 산물'에 가깝다. 자연과학들에 대한 '통섭(統攝/Consilience)'적 관점에서 보면 윤리적 격률은 사회 계약의 원리들이 규칙들과 명령들로 굳어진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한 사회의 성원들이 다른 이들도 이에 따르기를 바라면서 기꺼이 공동선을 위해 받아들이는 행동 코드들인 것이다.'
- [통섭], <11장. 윤리와 종교>, 에드워드 윌슨, 1998.


이렇게 '생물학'과 '인문학'의 '통섭'으로 보는 '윤리적 격률' 또한 '뇌'와 '문화'의 "물리적 산물"([통섭], <11장>)이 된다. 
"관념은 인간 두뇌라는 물질이 만든 최고의 '물질적 산물'이다"라고 단언한 20세기 초의 혁명가이자 변증법적 유물론자였던 레닌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그렇게 원래 '철학'의 이름으로 원시 '과학'들이 통합되어 있던 고대 그리스 사상은 현재의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의 '환원주의'를 거쳐 다시 미래의 '통섭'으로 '재통합'되는데, 윌슨은 이를 '이오니아의 마법(Ionian Enchantment)'이라고 부른다([통섭], <1장>).


"우리는 새로운 (보수적/보존적) '실존주의' 시대로 들어서고 있다... 키에르케고르나 사르트르의 (개인주의적) 낡은 부조리적 '실존주의'가 아니라, '보편적으로 공유되는 통합된 지식'(통섭/統攝/Consilience)만이 정확한 예견과 현명한 선택을 가능하게 한다는 '실존주의' 말이다... '통합된 지식 체계'(통섭)는 아직 탐구되지 못한 실제 영역을 확인하는 가장 확실한 수단이다."
- [통섭], <12장>, 에드워드 윌슨, 1998.


이제, 20세기 말의 '통섭'적 '빅 히스토리'를 주장하는 윌슨의 결론이다.

20세기 말의 그가 전망하는 인류의 미래는 기후생태 위기로 인해 다소 암울하지만, 21세기 초 신의 자리를 대체하는 '호모 데우스'를 가정하는 유발 하라리 못지 않게 낙관적이다. 
세계인구 60억 명이었던 20세기 말에 윌슨이 예상한 25년 후의 세계인구는 80억 명이었다. 지금 2025년의 세계 총인구는 결국 82억 명 이상이 되었고, 25년 전 윌슨의 결론은 인류가 '통섭'을 통해 기후위기를 제어해야 하고 또한 그럴 능력이 있다는 희망이었다.

에드워드 윌슨은 결론에서 '보수주의'를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보수주의'는 영미식 정치사상으로서의 '자유지상주의'가 아니다. 지구환경과 인류생존을 지키는 '보수주의', 즉 '보존주의'([통섭], <12장>)를 의미한다.

여기에 '개인주의적' 실존주의를 넘어 인류의 '실존'을 고민하는 인류의 철학으로서 집단적 '실존주의'가 이어서 등장한다. 

물리학과 화학이 오래전 생물학의 발전을 견인했듯,
이제는 뇌과학과 진화생물학, 유전자공학 같은 생물학이 사회과학을 견인하고,
궁극에는 인문학의 차원에서 '통섭'이라는 '지식의 대통합'을 이루는 세계관.

'통섭'의 이름으로 이렇게 결합된 '보수(보존)적 실존주의' 또는 '실존적 보수(보존)주의'가 에드워드 윌슨이 [통섭](1998)의 결론으로 말하는 인류의 미래를 보장하는 사상이다.


"정말 자유로운 최초의 종인 호모 사피엔스는 우리를 만들어 낸 자연선택을 해제하려 하고 있다. 우리의 자유의지 바깥에는 유전적 숙명도, 우리의 갈 길을 알려주는 길잡이별도 없다. 인간 본성과 인간 역량의 유전적 진보를 포함하는 진화는 이제부터 도덕적, 정치적 결정으로 조절되는 과학기술의 영역에 속할 것이다. 우리는 곧 우리 자신을 깊이 들여다 보고 어떻게 되고 싶은지를 결정해야 할 것이다. 어린 시절은 끝났다. 이제 메피스토펠레스의 진짜 음성을 듣게 되리라."
- [통섭], <12장>, 에드워드 윌슨, 1998.

***

1. [통섭(統攝/Consilience) - 지식의 대통합](1998), Edward Osborne Wilson, 최재천/장대익 옮김, <사이언스북스>, 2005.
2. [사피엔스](2011), 유발 하라리, 조현욱 옮김, <김영사>, 2011.
3. [호모 데우스(Homo Deus)](2015), 유발 하라리, 김명주 옮김, <문학과 사상사>, 2017.
4. [총,균,쇠](1997), 제러드 다이아몬드, 김진준 역, <문학과 사상사>, 1998.
5. [기후의 힘], 박정재, <바다출판사>, 202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초현실주의 Taschen 베이직 아트 (마로니에북스)
카트린 클링죄어 르루아 지음, 김영선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미셸 푸코의 '르네 마그리트論'
-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미셸 푸코, 1973.


"차라리 그것은 일종의 공간 '부재', 글씨의 기호들과 이미지의 선들 사이의 '공통의 자리(진부한 상투어)'의 말소이리라. 파이프에 이름을 붙여주는 언표와 그것을 형상화해야 하는 데생의 공동 소유물이었던 '파이프', 형태의 윤곽과 말들의 섬유물을 교차시켜 놓고 있던 그 유령 파이프는 결정적으로 달아나 버렸다."
-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2. 흐트러진 칼리그람>, 미셸 푸코, 1973.


1990년에 작고한 문학평론가 김현(1942~1990) 선생이 독학을 위해 번역해 둔 원고를 문학평론가 정과리 선생이 발문을 붙이고 다듬어서 낸 책이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Michel Foucalt : 1926~1984)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1973)라는 짧은 미술 비평문이다.

고전 철학이 지향해 온 '본질'을 해부하고 분열시킨 현대철학의 거장 중 한 사람으로서, 미셸 푸코는 '본질'을 향한 '일자'와 '동일성'의 고전 철학을 해체하면서 그 '불연속성'의 무질서에 정합성을 부여하기 위해 [지식의 고고학](1969)을 선언했다. 근대 독일관념철학을 집대성한 철학자 헤겔의 말마따나 형식은 다를지라도 내용에서는 종교와도 같은 근대의 고전 철학에서 '말'과 '사물', '현상' 등은 궁극의 '본질'에 종속되고 근원으로서의 '본질'로부터 위계화되면서 하나(일자)로서 동일화되었다. 그러나 푸코 같은 20세기 프랑스 현대철학자에게 사물은 그 자체의 실체적인 '본질'은 알 수 없고 '말(언어)'이든 표면적 '현상'이든 이미지든 사물을 지시하는 모든 양태들은 그 자체로 독립된 위치에 있다. 푸코가 연구한 '지식의 고고학'은 바로 이 '동일성'의 고전 철학과 결별하는 해체철학의 시작을 알리는 초기적 연구였고, 그의 또 다른 대표작 [말과 사물](1966)은 그 형이상학적 연구의 준비 작업적인 사전 궤적이었다.

김현 선생이 홀로 번역한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1973)라는 푸코의 '미술 비평'은 이런 초기 푸코 사상을 담은 책으로서, 이른바 미셸 푸코의 '르네 마그리트論'이다. 

20세기 초중반 유럽의 '초현실주의' 화가인 르네 마그리트(Rene' Magritte :1898~1967)는 미셸 푸코와 편지도 주고받던 사이로 현실의 '재현' 속에서 '초현실주의'적 상상력을 신비스럽고 기묘한 그림으로 표현한 작가다. 그는 초현실주의 1차 선언 시절의 대표화가 조르조 데 키리코(Giorgio de Chirico : 1888~1978)의 영향을 받았으나 자신만의 독특하고 지적인 화풍을 오래도록 내내 이어갔다. 

1924년 앙드레 브르통의 [초현실주의 제1선언]에서 규정한 '초현실주의'는 "순수한 심령의 '자동주의'를 통한... 사고활동에 의한 표현"으로서 "아무런 이성의 통제가 없는" 사고활동이었으나, 후반기 초현실주의 화가에 속하는 르네 마그리트의 화풍은 다분히 지적이고 이성적 분석이 수반되는 일종의 '철학적 회화'였다.

그렇게 마그리트는 푸코와 철학의 지면에서 만난다.


"어디에도 파이프는 없다."
-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2>, 미셸 푸코, 1973.


푸코의 미술 비평 '마그리트론(論)'의 중심 소재는 마그리트의 대표작 <이미지의 배반>이다. 1929년인가부터 반복적으로 수차례 그려진 이 그림에는 일반적 파이프 그림과 함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Ceci n'est pas une pipe)"라는 문장이 일종의 '칼리그람(문자로 된 그림)'처럼 박혀있다. 그래서 원제목 <이미지의 배반>보다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제목으로 종종 불리는데, 화가가 그린 파이프는 진정한 파이프가 아니라 그 이미지에 불과하며, 그 이미지는 해당 사물과 동일하지도 않고, 인간의 말 또는 글로 표현된 파이프 또한 그러하다는 '포스트-모던'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즉, 미셸 푸코가 [말과 사물](1966)이나 [지식의 고고학](1969)을 통해 전하고자 했던 철학적 메시지를 미술로서 표현한 것이었다. 


"내가 보기엔, 마그리트는 '유사(類似:ressemblance)'에서 '상사(相似:similitude)'를 분리해 내고, 후자(상사)를 전자(유사)와 반대로 작용하게 하는 것 같다. 유사에는 '주인'이 있다. 근원이 되는 요소가 그것으로서, 그로부터 출발하여 연속적으로 복제가 가능하게 되는데, 그 사본들은 근원으로부터 멀어질수록 점점 약화됨으로써, 그 근원 요소를 중심으로 질서가 세워지고 위계화된다. '유사'하다는 것은 지시하고 분류하는 제1의 참조물을 전제로 한다. 반면 '비슷'하다('상사')는 것은 시작도 끝도 없고, 어느 방향으로도 나아갈 수 있으며, 어떤 서열에도 복종하지 않으면서, 조금씩 조금씩 달라지면서 퍼져 나가는 계열선을 따라 전개된다. '유사'는 '재현'에 쓰이며, '재현'은 '유사'를 지배한다. '상사'는 '되풀이'에 쓰이며, '되풀이'는 '상사'의 길을 따라 달린다. '유사'는 모델에 따라 정돈되면서, 또한 그 모델을 다시 이끌고 가 인정시켜야 하는 책임을 떠맡는다. '상사'는 비슷한 것으로부터 비슷한 것으로의 한없고 가역적인 관계로서의 '모의(模擬:simulacre:시뮬라크르)'를 순환시킨다."
-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5. 확언의 일곱 봉인>, 미셸 푸코, 1973.


그렇게 사물로서의 '파이프'도 아니고, 이미지(그림)로서 '파이프'에 불과하나, 이를 언어로 표현한 '파이프' 또한 그것들과 동일하지 않으니, 결론은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본질'로서의 '파이프'를 그림이나 언어로 표현할 수 없으니 원래 '파이프'라는 사물의 '본질'은 알 수 없는 '불가지론'의 영역이고, 우리가 보거나 그리거나 표현한 현상과 행위들만 남게 된다. 

이것이 바로 김현 선생이 '모의'라고 번역한 '시뮬라크르(표면적 현상)'를 강조하는 20세기말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이다.


"동일성을 뒤섞는 대신에 '상사'가 그것들을 깨뜨리는 힘을 갖게 되는 일이 일어난다."
-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5>, 미셸 푸코, 1973.


'말'이든 '이미지'든 파이프는 '본질'로 동일화될 수 없다.

그러므로, 
"파이프는 어디에도 없다".

'포스트-모더니즘'의 현대철학을 미술에서 아주 잘 표현해내고 있는 마그리트에 대한 헌사인 듯, 미셸 푸코는 르네 마그리트의 몇 가지 대표작을 이 책에서 함께 평론하고 있다.

<대화의 기술> - 1950.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는 사물의 형태 속에 담론이 새겨진 경우였다. 그것은 부정하고 분할하는 모호한 힘이었다. 반면, <대화의 기술>, 그것은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서 자신들 고유의 말을 이루어 내고, 사람들이 알아차리지 못한다 하더라도 대화를 그들의 일상적 수다 속에 심어 넣는 사물들의 자체 중력이다."
-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4. 말들의 은밀한 작업>, 미셸 푸코, 1973.

<이미지의 배반>처럼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대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꿈(reve)'이라는 언어적 상징물 앞에서 '대화'하는 두 사람의 목소리는 설령 우리 귀에 들리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침묵 속에서 몽환적 상상력을 확산시킨다.
과연 무슨 대화를 하고 있을까?

<떨어지는 저녁> - 1964.

"... 이미지와 말들의 풀릴 길 없이 얽힌 그물망, 그리고, 그것들을 받쳐줄 수 있을 공통 영역의 '부재'에 근거하고 있다. (마그리트에 의하면)... '그림에서 말들은 이미지와 마찬가지의 실체들이다. 그림에서의 이미지와 말들은 보통 때와는 다르게 나타난다'..."
-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4>, 미셸 푸코, 1973.

<떨어지는 저녁>(1964)과 <자유로 가는 문>(1933)에서는 깨져서 파편화된 유리창의 조각을 통해 새겨진 원래의 풍경이 엿보이는데, 유리창에 투영된 해와 나무의 사물과 풍경이 원래의 그 사물풍경인지 이미지인지, 그리고 나의 눈에 비친 그 영상과의 관계는 무엇인지 모호하다.
'본질'은 무엇인가? 
'현상'과 '이미지'는 또 무엇인가?

<레카미에 부인>, <발코니> - 1950~1951.

"... 그는 전통회화의 인물들을 관(棺)으로 바꿔 놓는다. 밀랍 먹인 떡갈나무 널빤지들 사이에 보이지 않게 담겨진 공허가 산 육체들의 부피, 드레스의 펼쳐짐, 시선의 방향, 막 말을 하려던 참의 그 모든 표정들이 이루고 있는 공간을 해체하면서, 그 '비-장소'가 '사람이나 되는 듯 제 스스로' 출현한다 - 인물들 대신에, 그리고 더 이상 인물이 존재하지 않는 그 장소에서."
-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4>, 미셸 푸코, 1973.

자크 루이 다비드의 <레카미에 부인>에서 부인의 초상과 에두아르 마네의 <발코니> 속 세 인물들은 마그리트에 와서 '관'으로 대체된다. 유한한 인물은 현재의 형상 뿐만 아니라 그의 미래가 투영된 삶의 궤적으로서 결국에는 죽어서 들어가게 되는 '관'을 통해 설명된다. 인물은 '부재'하지만, '관'은 그 인물의 모든 것을 최대한으로 보여준다.

<재현> - 1962.

"... 똑같은 화폭 위에, 이와 같이 '상사' 관계에 의해 옆으로 연결된 두 개의 이미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하나의 모델을 바깥의 준거틀로 설정하는 것(유사성의 길을 통하는)은 곧장 불안해지고, 불확실하고 유동적인 것이 되고 만다. 무엇이 무엇을 '재현'한단 말인가? 이미지의 정확성이 한 모델, 즉 외부에 위치하고 있는 지고한 '주인'을 가리키는 손가락의 역할을 하는 반면, 상사체들의 (두 개 이상의) 계열은 이상적이면서도 동시에 현실적인 (유사 재현의) 군주제를 폐지한다. 이때부터 '모의(시뮬라크르)'는 언제나 방향을 자유자재로 바꾸면서, 표면 위를 달린다."
-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5>, 미셸 푸코, 1973.

같은 시공간에서 하나의 화면이 작은 화면으로 무한히 복제되고 '재현'된다. '유사'적 '재현'이 아닌 이 '상사'적 '되풀이'는 두 번이면 충분하다. 우리는 이 '상사'적 되풀이를 통해 무한히 증식되고 확장되는 '재현'의 가능성을 본다.

<데칼코마니> - 1966.

"... 유사성의 재생산은 아닌 것... '유사'에 대한 '상사'의 우월성... '유사'는 눈에 보이는 것을 인지하게 하지만, '상사'는 알아볼 수 있는 대상, 친숙한 실루엣이 감추는, 못 보게 하는,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을 보게 한다. '유사'는 단일한, 언제나 똑같은 단언을 내포한다... '상사'는 상이한 확언들을 배가시킨다. 그 확언들은 함께 춤춘다. 서로 기대면서, 서로의 위에 넘어지면서."
-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5>, 미셸 푸코, 1973.

그리하여, '상사'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려는 '트롱프뢰유' 같은 붉은 커튼 배경과 대비하여, 사물과 비슷한 현상들을 표현하면서 사물의 이면에 숨겨진 수많은 이야기들을 보여주고 들려준다. 
확장되는 '상사'적 재현은 무한하다.

결국, 마그리트의 <재현(복제) 금지>(1937)라는 작품은 거울을 보고 있음에도 사물이 '있는 그대로' 재현되는 것이 절대 불가함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마그리트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자화상'과 같은 중절모를 쓴 정장의 신사는 아마도 그의 '본질'을 담고 있을 듯한 얼굴을 가린 채 등장한다. 
<사람의 아들>(1964)로 지칭된 그 신사는 인류를 구원한 예수와도 같다고 해석되기도 하는데, 근대의 '신'이 부재한 현대의 자리에서 '사람의 아들'은 바로 '신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마그리트는 언어 기호와 조형 요소들을 연결시키는데, 그러나, 어떠한 선행 동위소(동일성의 요소)도 설정하지 않는다. 그는 '유사'가 태연하게 근거하고 있는 (고전 회화의) 확언적 담론의 바탕을 회피한다. 그리고 그는 지표 없는 용적과 구도 없는 공간의 불안정 속에서 비확언적인 순수 '상사체'들과 '말의 언표'들을 놀이하게 한다.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는, 말하자면, 바로 그 작동 절차의 기본 형식을 제공한다."
-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6. 그림은 확언이 아니다>, 미셸 푸코, 1973.


르네 마그리트는 고전 회화의 전통인 '본질'에 위계적인 '유사'적 '재현'을 초월하여 '본질'과 '현상'이 위계화되지 않고 각 층위에서 동등하게 존재하는 '상사'의 상상력을 통해 무한한 '재현'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는데, 푸코가 '마그리트론'의 <6장>에서 결론으로 내세운 5단계는 다음과 같다.

1. 누구나 아는 '공통의 자리'에 칼리그람 실천
2. '유사'가 아닌 '상사'로서 칼리그람이 해체되어 빈 공간을 열기
3. 담론이 떨어져 나가고 가시적인 문자 형태를 얻어 그 자체로 불확실하고 무한하게 얽키고 설키며 '상식적'으로 보이던 공통의 공간 '부재'를 드러내기
4. 근원적 '본질'로 회귀되지 않는 '상사체'들이 자신으로부터 무한하게 증식
5. 유사의 재현 속에 감추어진 메시지가 순환하는 '상사체'로 되었는지 검증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와 함께 위와 같이 '재현'되는 현실은 다음과 같은 푸코의 철학적 선언으로 마무리된다.


"언젠가 이미지 그 자체와 그것이 달고 있는 이름이 함께, 길다란 계열선을 따라 '무한히 이동하는 상사'에 의해, '탈동일화'되는 날이 올 것이다..."
-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6>, 미셸 푸코, 1973.


현대철학과 함께 하는 초현실주의 회화의 '재현'은 그래서 더욱 무한하다.

***

1.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Ceci n'est pas une pipe)](1973), Michel Foucault, 김현 옮김, 정과리 발문, <고려대학교출판부>, 2010.
2. [지식의 고고학](1969), 미셸 푸코, 이정우 옮김, <민음사>, 2000.
3. [말과 사물 - 인문과학의 고고학](1966), 미셸 푸코, 이규현 옮김, <민음사>, 2012.
4. [초현실주의(Surrealism)](2008), 카트린 클링죄어 르루아, 김영선 옮김, <마로니에북스>, 200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 개정판
미셸 푸코 지음, 김현 옮김 / 고려대학교출판부 / 201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미셸 푸코의 '르네 마그리트論'
-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미셸 푸코, 1973.


"차라리 그것은 일종의 공간 '부재', 글씨의 기호들과 이미지의 선들 사이의 '공통의 자리(진부한 상투어)'의 말소이리라. 파이프에 이름을 붙여주는 언표와 그것을 형상화해야 하는 데생의 공동 소유물이었던 '파이프', 형태의 윤곽과 말들의 섬유물을 교차시켜 놓고 있던 그 유령 파이프는 결정적으로 달아나 버렸다."
-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2. 흐트러진 칼리그람>, 미셸 푸코, 1973.


1990년에 작고한 문학평론가 김현(1942~1990) 선생이 독학을 위해 번역해 둔 원고를 문학평론가 정과리 선생이 발문을 붙이고 다듬어서 낸 책이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Michel Foucalt : 1926~1984)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1973)라는 짧은 미술 비평문이다.

고전 철학이 지향해 온 '본질'을 해부하고 분열시킨 현대철학의 거장 중 한 사람으로서, 미셸 푸코는 '본질'을 향한 '일자'와 '동일성'의 고전 철학을 해체하면서 그 '불연속성'의 무질서에 정합성을 부여하기 위해 [지식의 고고학](1969)을 선언했다. 근대 독일관념철학을 집대성한 철학자 헤겔의 말마따나 형식은 다를지라도 내용에서는 종교와도 같은 근대의 고전 철학에서 '말'과 '사물', '현상' 등은 궁극의 '본질'에 종속되고 근원으로서의 '본질'로부터 위계화되면서 하나(일자)로서 동일화되었다. 그러나 푸코 같은 20세기 프랑스 현대철학자에게 사물은 그 자체의 실체적인 '본질'은 알 수 없고 '말(언어)'이든 표면적 '현상'이든 이미지든 사물을 지시하는 모든 양태들은 그 자체로 독립된 위치에 있다. 푸코가 연구한 '지식의 고고학'은 바로 이 '동일성'의 고전 철학과 결별하는 해체철학의 시작을 알리는 초기적 연구였고, 그의 또 다른 대표작 [말과 사물](1966)은 그 형이상학적 연구의 준비 작업적인 사전 궤적이었다.

김현 선생이 홀로 번역한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1973)라는 푸코의 '미술 비평'은 이런 초기 푸코 사상을 담은 책으로서, 이른바 미셸 푸코의 '르네 마그리트論'이다. 

20세기 초중반 유럽의 '초현실주의' 화가인 르네 마그리트(Rene' Magritte :1898~1967)는 미셸 푸코와 편지도 주고받던 사이로 현실의 '재현' 속에서 '초현실주의'적 상상력을 신비스럽고 기묘한 그림으로 표현한 작가다. 그는 초현실주의 1차 선언 시절의 대표화가 조르조 데 키리코(Giorgio de Chirico : 1888~1978)의 영향을 받았으나 자신만의 독특하고 지적인 화풍을 오래도록 내내 이어갔다. 

1924년 앙드레 브르통의 [초현실주의 제1선언]에서 규정한 '초현실주의'는 "순수한 심령의 '자동주의'를 통한... 사고활동에 의한 표현"으로서 "아무런 이성의 통제가 없는" 사고활동이었으나, 후반기 초현실주의 화가에 속하는 르네 마그리트의 화풍은 다분히 지적이고 이성적 분석이 수반되는 일종의 '철학적 회화'였다.

그렇게 마그리트는 푸코와 철학의 지면에서 만난다.


"어디에도 파이프는 없다."
-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2>, 미셸 푸코, 1973.


푸코의 미술 비평 '마그리트론(論)'의 중심 소재는 마그리트의 대표작 <이미지의 배반>이다. 1929년인가부터 반복적으로 수차례 그려진 이 그림에는 일반적 파이프 그림과 함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Ceci n'est pas une pipe)"라는 문장이 일종의 '칼리그람(문자로 된 그림)'처럼 박혀있다. 그래서 원제목 <이미지의 배반>보다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제목으로 종종 불리는데, 화가가 그린 파이프는 진정한 파이프가 아니라 그 이미지에 불과하며, 그 이미지는 해당 사물과 동일하지도 않고, 인간의 말 또는 글로 표현된 파이프 또한 그러하다는 '포스트-모던'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즉, 미셸 푸코가 [말과 사물](1966)이나 [지식의 고고학](1969)을 통해 전하고자 했던 철학적 메시지를 미술로서 표현한 것이었다. 


"내가 보기엔, 마그리트는 '유사(類似:ressemblance)'에서 '상사(相似:similitude)'를 분리해 내고, 후자(상사)를 전자(유사)와 반대로 작용하게 하는 것 같다. 유사에는 '주인'이 있다. 근원이 되는 요소가 그것으로서, 그로부터 출발하여 연속적으로 복제가 가능하게 되는데, 그 사본들은 근원으로부터 멀어질수록 점점 약화됨으로써, 그 근원 요소를 중심으로 질서가 세워지고 위계화된다. '유사'하다는 것은 지시하고 분류하는 제1의 참조물을 전제로 한다. 반면 '비슷'하다('상사')는 것은 시작도 끝도 없고, 어느 방향으로도 나아갈 수 있으며, 어떤 서열에도 복종하지 않으면서, 조금씩 조금씩 달라지면서 퍼져 나가는 계열선을 따라 전개된다. '유사'는 '재현'에 쓰이며, '재현'은 '유사'를 지배한다. '상사'는 '되풀이'에 쓰이며, '되풀이'는 '상사'의 길을 따라 달린다. '유사'는 모델에 따라 정돈되면서, 또한 그 모델을 다시 이끌고 가 인정시켜야 하는 책임을 떠맡는다. '상사'는 비슷한 것으로부터 비슷한 것으로의 한없고 가역적인 관계로서의 '모의(模擬:simulacre:시뮬라크르)'를 순환시킨다."
-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5. 확언의 일곱 봉인>, 미셸 푸코, 1973.


그렇게 사물로서의 '파이프'도 아니고, 이미지(그림)로서 '파이프'에 불과하나, 이를 언어로 표현한 '파이프' 또한 그것들과 동일하지 않으니, 결론은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본질'로서의 '파이프'를 그림이나 언어로 표현할 수 없으니 원래 '파이프'라는 사물의 '본질'은 알 수 없는 '불가지론'의 영역이고, 우리가 보거나 그리거나 표현한 현상과 행위들만 남게 된다. 

이것이 바로 김현 선생이 '모의'라고 번역한 '시뮬라크르(표면적 현상)'를 강조하는 20세기말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이다.


"동일성을 뒤섞는 대신에 '상사'가 그것들을 깨뜨리는 힘을 갖게 되는 일이 일어난다."
-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5>, 미셸 푸코, 1973.


'말'이든 '이미지'든 파이프는 '본질'로 동일화될 수 없다.

그러므로, 
"파이프는 어디에도 없다".

'포스트-모더니즘'의 현대철학을 미술에서 아주 잘 표현해내고 있는 마그리트에 대한 헌사인 듯, 미셸 푸코는 르네 마그리트의 몇 가지 대표작을 이 책에서 함께 평론하고 있다.

<대화의 기술> - 1950.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는 사물의 형태 속에 담론이 새겨진 경우였다. 그것은 부정하고 분할하는 모호한 힘이었다. 반면, <대화의 기술>, 그것은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서 자신들 고유의 말을 이루어 내고, 사람들이 알아차리지 못한다 하더라도 대화를 그들의 일상적 수다 속에 심어 넣는 사물들의 자체 중력이다."
-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4. 말들의 은밀한 작업>, 미셸 푸코, 1973.

<이미지의 배반>처럼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대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꿈(reve)'이라는 언어적 상징물 앞에서 '대화'하는 두 사람의 목소리는 설령 우리 귀에 들리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침묵 속에서 몽환적 상상력을 확산시킨다.
과연 무슨 대화를 하고 있을까?

<떨어지는 저녁> - 1964.

"... 이미지와 말들의 풀릴 길 없이 얽힌 그물망, 그리고, 그것들을 받쳐줄 수 있을 공통 영역의 '부재'에 근거하고 있다. (마그리트에 의하면)... '그림에서 말들은 이미지와 마찬가지의 실체들이다. 그림에서의 이미지와 말들은 보통 때와는 다르게 나타난다'..."
-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4>, 미셸 푸코, 1973.

<떨어지는 저녁>(1964)과 <자유로 가는 문>(1933)에서는 깨져서 파편화된 유리창의 조각을 통해 새겨진 원래의 풍경이 엿보이는데, 유리창에 투영된 해와 나무의 사물과 풍경이 원래의 그 사물풍경인지 이미지인지, 그리고 나의 눈에 비친 그 영상과의 관계는 무엇인지 모호하다.
'본질'은 무엇인가? 
'현상'과 '이미지'는 또 무엇인가?

<레카미에 부인>, <발코니> - 1950~1951.

"... 그는 전통회화의 인물들을 관(棺)으로 바꿔 놓는다. 밀랍 먹인 떡갈나무 널빤지들 사이에 보이지 않게 담겨진 공허가 산 육체들의 부피, 드레스의 펼쳐짐, 시선의 방향, 막 말을 하려던 참의 그 모든 표정들이 이루고 있는 공간을 해체하면서, 그 '비-장소'가 '사람이나 되는 듯 제 스스로' 출현한다 - 인물들 대신에, 그리고 더 이상 인물이 존재하지 않는 그 장소에서."
-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4>, 미셸 푸코, 1973.

자크 루이 다비드의 <레카미에 부인>에서 부인의 초상과 에두아르 마네의 <발코니> 속 세 인물들은 마그리트에 와서 '관'으로 대체된다. 유한한 인물은 현재의 형상 뿐만 아니라 그의 미래가 투영된 삶의 궤적으로서 결국에는 죽어서 들어가게 되는 '관'을 통해 설명된다. 인물은 '부재'하지만, '관'은 그 인물의 모든 것을 최대한으로 보여준다.

<재현> - 1962.

"... 똑같은 화폭 위에, 이와 같이 '상사' 관계에 의해 옆으로 연결된 두 개의 이미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하나의 모델을 바깥의 준거틀로 설정하는 것(유사성의 길을 통하는)은 곧장 불안해지고, 불확실하고 유동적인 것이 되고 만다. 무엇이 무엇을 '재현'한단 말인가? 이미지의 정확성이 한 모델, 즉 외부에 위치하고 있는 지고한 '주인'을 가리키는 손가락의 역할을 하는 반면, 상사체들의 (두 개 이상의) 계열은 이상적이면서도 동시에 현실적인 (유사 재현의) 군주제를 폐지한다. 이때부터 '모의(시뮬라크르)'는 언제나 방향을 자유자재로 바꾸면서, 표면 위를 달린다."
-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5>, 미셸 푸코, 1973.

같은 시공간에서 하나의 화면이 작은 화면으로 무한히 복제되고 '재현'된다. '유사'적 '재현'이 아닌 이 '상사'적 '되풀이'는 두 번이면 충분하다. 우리는 이 '상사'적 되풀이를 통해 무한히 증식되고 확장되는 '재현'의 가능성을 본다.

<데칼코마니> - 1966.

"... 유사성의 재생산은 아닌 것... '유사'에 대한 '상사'의 우월성... '유사'는 눈에 보이는 것을 인지하게 하지만, '상사'는 알아볼 수 있는 대상, 친숙한 실루엣이 감추는, 못 보게 하는,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을 보게 한다. '유사'는 단일한, 언제나 똑같은 단언을 내포한다... '상사'는 상이한 확언들을 배가시킨다. 그 확언들은 함께 춤춘다. 서로 기대면서, 서로의 위에 넘어지면서."
-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5>, 미셸 푸코, 1973.

그리하여, '상사'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려는 '트롱프뢰유' 같은 붉은 커튼 배경과 대비하여, 사물과 비슷한 현상들을 표현하면서 사물의 이면에 숨겨진 수많은 이야기들을 보여주고 들려준다. 
확장되는 '상사'적 재현은 무한하다.

결국, 마그리트의 <재현(복제) 금지>(1937)라는 작품은 거울을 보고 있음에도 사물이 '있는 그대로' 재현되는 것이 절대 불가함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마그리트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자화상'과 같은 중절모를 쓴 정장의 신사는 아마도 그의 '본질'을 담고 있을 듯한 얼굴을 가린 채 등장한다. 
<사람의 아들>(1964)로 지칭된 그 신사는 인류를 구원한 예수와도 같다고 해석되기도 하는데, 근대의 '신'이 부재한 현대의 자리에서 '사람의 아들'은 바로 '신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마그리트는 언어 기호와 조형 요소들을 연결시키는데, 그러나, 어떠한 선행 동위소(동일성의 요소)도 설정하지 않는다. 그는 '유사'가 태연하게 근거하고 있는 (고전 회화의) 확언적 담론의 바탕을 회피한다. 그리고 그는 지표 없는 용적과 구도 없는 공간의 불안정 속에서 비확언적인 순수 '상사체'들과 '말의 언표'들을 놀이하게 한다.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는, 말하자면, 바로 그 작동 절차의 기본 형식을 제공한다."
-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6. 그림은 확언이 아니다>, 미셸 푸코, 1973.


르네 마그리트는 고전 회화의 전통인 '본질'에 위계적인 '유사'적 '재현'을 초월하여 '본질'과 '현상'이 위계화되지 않고 각 층위에서 동등하게 존재하는 '상사'의 상상력을 통해 무한한 '재현'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는데, 푸코가 '마그리트론'의 <6장>에서 결론으로 내세운 5단계는 다음과 같다.

1. 누구나 아는 '공통의 자리'에 칼리그람 실천
2. '유사'가 아닌 '상사'로서 칼리그람이 해체되어 빈 공간을 열기
3. 담론이 떨어져 나가고 가시적인 문자 형태를 얻어 그 자체로 불확실하고 무한하게 얽키고 설키며 '상식적'으로 보이던 공통의 공간 '부재'를 드러내기
4. 근원적 '본질'로 회귀되지 않는 '상사체'들이 자신으로부터 무한하게 증식
5. 유사의 재현 속에 감추어진 메시지가 순환하는 '상사체'로 되었는지 검증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와 함께 위와 같이 '재현'되는 현실은 다음과 같은 푸코의 철학적 선언으로 마무리된다.


"언젠가 이미지 그 자체와 그것이 달고 있는 이름이 함께, 길다란 계열선을 따라 '무한히 이동하는 상사'에 의해, '탈동일화'되는 날이 올 것이다..."
-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6>, 미셸 푸코, 1973.


현대철학과 함께 하는 초현실주의 회화의 '재현'은 그래서 더욱 무한하다.

***

1.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Ceci n'est pas une pipe)](1973), Michel Foucault, 김현 옮김, 정과리 발문, <고려대학교출판부>, 2010.
2. [지식의 고고학](1969), 미셸 푸코, 이정우 옮김, <민음사>, 2000.
3. [말과 사물 - 인문과학의 고고학](1966), 미셸 푸코, 이규현 옮김, <민음사>, 2012.
4. [초현실주의(Surrealism)](2008), 카트린 클링죄어 르루아, 김영선 옮김, <마로니에북스>, 200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명화의 비밀 - 호크니가 파헤친 거장들의 비법
데이비드 호크니 지음, 남경태 옮김 / 한길사 / 201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재현'의 '민주주의'적 역사와 '비밀'
- [명화의 비밀], 데이비드 호크니, 2001~2006.


"나는 (장 오귀스트) 앵그르가 모종의 광학장치를 작품에 이용했다고 확신한다. 드로잉의 경우에는 카메라 루시다였겠지만, 회화의 섬세한 세부를 그릴 때는 카메라 오브스쿠라(옵스큐라)로 사용했을 것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것만이 유일한 설명이다. 그러나 앵그르가 처음으로 광학을 이용한 화가는 아니다. 베르메르(페르메이르)도 카메라 오브스쿠라를 사용했다고 생각되는데, 이 점은 회화에 나타난 광학적 효과로 추측할 수 있다. 그가 처음이었을까? 나는 많은 책과 목록을 뒤져 찾을 수 있는 모든 증거를 찾기 시작했다. 그 결과 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을 보기에 이르렀다. 내 호기심은 점점 커졌다."
- [명화의 비밀], <시각적 증거>, 데이비드 호크니, 2001.


다시, '재현'의 문제다.

14~16세기 르네상스 미술가들의 '열전'을 남긴 조르조 바사리(Giorgio Vasari : 1511~74)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라파엘로 산치오 등의 거장들로 완성되는, 특히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의 '기법'을 확정된 '마니에라(manner)'라 규정하며 이후 예술가들이 이 '기법(방식/매너)'을 따라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바사리의 미술가 열전에 따르면, 14세기(트레첸토:300년대) 조토 디 본도네의 사실성의 '혁신'으로부터 미술사의 르네상스가  본격적으로 열렸고, 15세기(콰트로첸토:400년대)에 회화의 마사초 디 산 조반니와 건축의 필리포 브루넬리스키의 '선형 원근법', 도나텔로(혹은 도나토)의 일방향 부조를 넘어선 입체적 사방 조각을 거쳐, 16세기(친퀘첸토:500년대) 회화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 조각의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색채의 라파엘로 산치오 등의 거장들에 이르러 르네상스 미술의 '기법(방식/매너/마니에라)'이 완성되었다는 것이다. 이후 화가들이 바사리가 규정한 이 '방식'을 '답습'하는 행태가 지금 우리가 아는 '매너리즘'이다. 

일제강점기에 의학을 전공한 이근배(1914~2007) 조선대 의대 교수는 자신의 전공도 아닌 르네상스 미술에 대한 취미적 관심 하나로 자그만치 18년간 조르조 바사리의 '열전' 영문판을 우리말로 옮기셨단다. 그가 번역하면서 본 16세기 바사리의 예술관은 '자연의 철저한 모방'이었다. 즉, 신이 창조한 자연은 그 자체가 완벽 그 자체이므로 인간이 자연을 있는 그대로 모방하는 것이 '예술의 지상명령'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수많은 열전의 첫문장은 위대한 미술가들의 뛰어난 디세뇨(기교)가 '신의 의지'라는 바사리의 찬사로 시작한다.

2018년에 <한길사>에서 2007년 작고하신 이근배 선생님의 번역본([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가전], <탐구당>, 1986)을 [르네상스 미술가 평전]이라는 제목으로 다시 내면서 고종희 미술학박사의 해설을 함께 엮었는데, 그는 <해설>에서 "바사리는 자연의 충실한 '모방'과 그것의 '초월'이라는 두 딜레마의 관계를 처음으로 지적하면서 '주관성'이 '객관성'에 우선한다는 이론을 남겼다. 이것이 바로 '매너리즘' 이론의 핵심이자 미켈란젤로 미학의 핵심이기도 하다"([르네상스 미술가평전], <한길사>, 2018)라고 쓰며, '마니에라'의 이 모순된 중층적 의미를 이해하면서 바사리의 미술가 열전을 읽을 것을 권한다. 

즉, 예술 또는 미술은 '자연의 충실한 모방'을 임무로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자연의 '객관성' 보다는 예술가 또는 미술가의 '주관성'의 우위를 통한 자연의 '초월'을 목표로 한다는 이야기로 해석된다. 

그렇게 미술사에서는,
에른스트 곰브리치의 말처럼 "미술은 없고 혁신적 미술가만 존재"([서양미술사], <서론>, 1950)하는 것이며,
게오르그 루카치의 사실주의 예술관처럼 '예술은 현실의 단순한 모방이 아닌 현실의 특수한 반영'이 된다.

영미권의 현대 사실주의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 : 1937~)는 18~19세기 프랑스 신고전주의 화가 장 오귀스트 앵그르(1780~1867)의 명화들을 보면서 그 '사실주의'적 기법에 의문을 품는다. 그리하여 2001년부터는 화가로서 작품활동을 잠시 멈추고 16세기 화가들의 '사실주의'적 작풍을 연구하고 실험하면서 그 명화들의 '비밀'을 파헤친다.

우선, 그는 앵그르는 물론 그 이전 화가인 남유럽 이탈리아의 카라바조와 북유럽 플랑드르의 페르메이르(베르메르) 등의 '사실주의' 그림이 카메라 기술의 전신인 '광학' 기법을 사용한 것이라는 전제로 '광학' 이전과 이후의 초상화들을 하나의 '장벽'으로 담았다. 그의 실험적 연구서와 같은 [명화의 비밀]은 그가 만든 초상화의 [대장벽](2000)으로부터 시작한다. 


"나의 [대장벽]은 예술가들이 말하는 것처럼 15세기부터 19세기까지 점점 사실성이 향상되어온 변천과정을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해주었다. 하지만 많은 그림들을 놓고 볼 때 분명한 것은 그 과정이 점진적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즉 '광학'은 갑자기 도입되어 금세 정착되고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내가 경험을 통해 확인한 바로는 화가들이 사용하는 방법(재료, 도구, 기법, 통찰력)은 그들이 제작하는 작품의 성격에 중대하고 직접적이며 즉각적인 영향을 미친다. 내가 보기에 그 급작스런 변화는 새로운 관찰방식이라기보다 '기술적 혁신'이며, 그것이 점진적인 그림 기술의 발달로 이어졌다고 생각된다. 15세기 초에 이루어진 그러한 혁신 중의 하나가 바로 분석적 '선형 원근법'의 발명이다... '광학'의 기술과 지식은 그보다 훨씬 이후에 탄생한 것으로 추측된다."
- [명화의 비밀], <시각적 증거>, 데이비드 호크니, 2001.


조토는 그림에 '원근법'적 요소를 도입하여 중세 미술의 평면성을 혁신했다. 젊은 나이에 요절한 마사초는 브루넬리스키의 분석적이고 과학적인 '선형 원근법'을 그림에 적용하였고, 브루넬리스키는 '선형 원근법'의 혁신을 주도한 르네상스 예술가(건축가)가 되었다. 르네상스 미술 혁신의 핵심은 '원근법'이었다. 중세 미술의 평면성은 근대 르네상스 '선형 원근법'을 통해 입체적 사실성을 획득했다.

그런데 16세기 카라바조 풍의 그림은 그 이전 그림에 비해 확연한 '사실주의'적 재현을 보여주고 있는데, 데이비드 호크니가 발견한 [명화의 비밀]이란 바로, '광학(光學)'이었다.


"... 카라바조가 1596년에 그린 과일(앞쪽)의 사실성과 세잔이 1877~78년에 그린 사과(아래)의 '새로운 어색함'을 비교해 보라. 이 부분을 좀 멀리 떼어놓고 보라. 책에서 멀어질수록 카라바조의 사과는 점점 알아보기 어려워진다. 반면에 묘하게도 세잔의 사과는 점점 더 확고해지고 선명해진다. 카라바조의 이미지는 그림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고, 세잔의 이미지는 감상자에게서 나오는 것, 즉 감상자의 공간을 점유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떻다는 말인가? 한 눈의 렌즈로 보는 시야와 두 눈을 가진 인간의 시야의 차이다."
- [명화의 비밀], <시각적 증거>, 데이비드 호크니, 2001.


카메라 루시다는 막대기에 프리즘을 얹어 앞의 상을 아래 종이에 투영하는 방식의 광학 기술이라고 하는데 미술가의 눈으로만 묘사하는 이른바 '눈 굴리기' 방식과 달리 움직이지 않는 상을 그대로 모사할 수 있도록 해준다고 한다. 

호크니는 [명화의 비밀]에서 '광학' 이전의 조토, 치마부에, 프라 안젤리코 등의 15~16세기 이전 르네상스 화가들의 그림 그리기 방식을 전통적 '눈 굴리기'라고 명명한다. 즉, 모델을 보고 지면을 보는 화가의 '눈 굴리기'로는 사실을 그대로 '재현'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말이다. 카메라 루시다는 18세기 이전에도 존재했었을 수도 있고 16세기 북유럽 플랑드르 화가인 얀 반 에이크나 17세기 요하네스 얀 페르메이르(베르메르) 등은 이미 이 카메라 루시다 또는 카메라 옵스큐라 같은 '광학' 기술을 이용하여 사실을 사진처럼 '재현'할 수 있었다는 주장이다. 페르메이르가 카메라 옵스큐라로 추정되는 모종의 카메라 기술을 이용하여 그림을 그렸다는 기존 의심을 호크니는 19세기 앵그르와 그 이전 16세기 카라바조, 17세기 페르메이르 등의 그림 등으로 미술가 영역을 확장하면서 화가 본인의 실험을 통해 파헤치고 있다.

카메라가 대중화된 19세기 초중반 이전부터 카메라 옵스큐라(오브스쿠라)라는 암실 상자 속 렌즈를 통해 상을 거꾸로 맺히게 하는 또 다른 '광학' 기술은 미술의 '사실주의'적 '재현'을 한층 더 가능토록 했다. 카메라처럼 맺혀지는 상 위에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다.

그러나 카메라가 대중화된 1839년 이후 그림은 더 이상 사진을 따라갈 수 없었다. 미술은 시간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사진만큼 현실을 '재현'할 수 없었다. 2차원적 평면 그림에서 튀어나오는 듯한 '트롱프뢰유'의 신기함도 있지만 그림이 사진과 경쟁하는 것은 예술적으로 별 의미는 없어보이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한 눈의 렌즈를 통해 보는 것과 같은 카라바조 풍의 그림은 언뜻 사진과도 같이 '사실주의'적이지만, 멀리서 보면 세잔의 입체적 묘사가 더욱 '사실주의'적일 수 있다. 

미술의 역사에서 '재현'의 '사실성'은 현실과 그림의 '객관성'에서 나오는 것 보다는, 두 눈을 통해 입체적으로 현실을 보는 감상자의 '주관성'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인간의 '주관성'이 자연의 '객관성'에 우선한다는 조르조 바사리의 예술관을 다시금 상기하게 된다.

그래서 다시 문제는,
사실의 '재현'이 된다.


"... 렌즈는 권력과 관계가 있을까? 1839년까지 카메라를 비밀로 숨겨왔고 교회가 사회적 힘(그림을 통제하는)을 갖고 있었다면, 그 힘은 '카메라의 대중화'와 함께 쇠퇴했고, 렌즈 이후의 사회적 힘은 미디어로 흘러가고 있다. 우리는 지금 새로운 '혁명'을 경험하고 있다. 수백만 개의 카메라가 추가로 만들어졌으며(심지어 휴대전화에도), 이미지의 유통방법이 변하고 있다. 거울과 렌즈는 연속체다. 흥미로운 시간은 과거에도 역시 존재했다."
- [명화의 비밀], <시각적 증거>, 데이비드 호크니, 2001.


그림과 조각 같은 미술과 이들이 장식하는 건축을 포괄하는 예술 전체를 '신의 의지' 실현에 이용하려는 교회의 힘이 쇠퇴하기 시작한 근대 르네상스 말기에는 '광학'을 비롯한 과학 기술의 힘으로 더 많은 미술가가 등장할 수 있었고, 그보다 더 많은 감상자도 양산되었을 것이다. 칼로 무장한 기사들이 총으로 무장한 일반 민중들에게 패배한 전쟁의 역사와도 같다. 과학기술 발전은 모든 역사에서 다수의 '평등'한 점유를 향한 '민주주의'적 요소를 동반한다. 

데이비드 호크니의 [명화의 비밀]의 원제는 [Secret Knowledge : Rediscovering the lost techniques of the Old Masters]다. 
직역하면, [숨겨진 진실 : 거장들의 잊혀진 기법을 다시 찾아서] 정도 되겠다. 즉, 카라바조를 추종한 '카라바지스티'들의 기법은 '광학'의 증거로서 빛과 어둠의 극단적 대조인 '키아로스쿠로(명암대비법)'를 그 특징으로 하는데 이는 당시 '광학' 기술을 사용하기 위해 켜두었던 강한 조명의 증거라고 한다. 

루벤스 조차도 배우고자 이탈리아를 찾았다던 그 '기술'은 아직까지도 전하는 기록도 없이 비밀에 싸여 있다고 한다. 호크니가 화가로서 카메라 루시다, 카메라 옵스큐라 등의 '광학' 기술을 통해 실험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하지 않는 기술을 화가 본인의 실험을 통해 증명하는 데이비드 호크니의 책 [명화의 비밀](2001~2006)은 이렇게 <시각적 증거>와 <문헌적 증거>의 방식으로 잊혀진 명화의 '사실주의'적 '재현'의 기법 속 '비밀'을 추적하는 생생한 연구서다.

'광학' 기술과의 결합으로 혁신을 이끌었던 미술가들의 '재현'은 지금도 여전히 새로운 기술의 대중화와 '민주주의'적 미술관을 통해 다시금 혁신된다.

그래서 예술의 문제는 여전하다.

'비가시적인 것의 가시화'를 지향한다는 예술에서 '재현'이란 과연 무엇인가.

***

1. [명화의 비밀(Secret Knowledge : Rediscovering the lost techniques of the Old Masters)](2091~2006), David Hockney, 남경태 옮김, <한길사>, 2019.
2. [르네상스 미술가 평전](1550~1568), Giorgio Vasari, 이근배 옮김, 고종희 해설, <한길사>, 2018.
3. [오직, 그림 - 세계 미술사의 획기적인 그림 51], 박영택, <마음산책>, 202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