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부타이 - 칭기즈칸의 위대한 장군
리처드 A. 가브리엘 지음, 박리라 옮김 / 글항아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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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기스 칸의 위대한 장수, '수부타이'
- [수부타이], 리처드 가브리엘, 2004.


"이슬람 연대기 작가들은 '수부타이(Subotai)'가 7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32개 민족을 정복했고 65차례 대격전에서 승리했다고 말한다."
- [수부타이], <머리말>, 리처드 가브리엘, 2004.


다수 민중들이 만들어 간 시간의 기록이 역사라 생각하는 나는,
'1등', 즉 '1인자'만 기억하는 역사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역사적 사건을 극적으로 서술하기 위해서는 '주인공'이 필요하긴 한데,
12~14세기 아시아를 지배했던 '몽골 대제국'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칭기스 칸(테무진 : 1162~1227)'과 그 일족이라는 '주인공'을 빼놓을 수는 없다. 

그러나 '황금 씨족'인 칭기스 칸 일족의 세습 '울루스(칸국)'의 '세계정복'을 가능하게 했던 '2인자'는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는 바로 '칭기스 칸의 용장(勇將)',
'수부타이(수부데이/Subotai : 1175~1248)'다.


"... 확실한 것은 다만 1187년 이른 봄 '테무진(칭기스 칸)'과 대장장이 자르치우다이의 두 아들(젤메/수부타이)과의 만남이 세상을 바꿔놓았다는 점이다... 1206년에는 몽골 부족 대표가 다 모인 대회의('쿠릴타이')에서 지도자로 뽑힌 테무진이 새 칭호('칭기스 칸')를 얻어 세계를 두려움으로 몰아넣게 된다. 오래전 그 5월의 들판에서 한때 도망자였던 테무진은 '칭기스 칸'이 된 것이다. 그리고 자르치우다이의 둘째 아들('수부타이')도 훗날 세계를 뒤흔들게 된다. 자르치우다이의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리고  몽골 소년이 무사가 되는 열네 살이 되자, 우랑카이족의 보금자리를 떠나 테무진의 군대로 들어간 뒤 군인이 되었다. 그 소년의 이름은 '수부타이(Subotai)'로 훗날 역사에 길이 남는 위대한 장군으로 명성을 떨쳤다."
- [수부타이], <1장. 용장 수부타이>, 리처드 가브리엘, 2004.


초원 유목민들에게 시베리아 지역의 순록과 산속 동물의 모피를 공급하던 산림 부족인 '우랑카이족'에 속한 대장장이었던 자르치우다이는 갓 태어난 자신의 첫째 아들 젤메를 위탁하기 위해 '몽골족'의 족장이자 훗날 '칭기스 칸'이 된 테무진의 아버지인 예수게이를 찾아갔으나, 마침 테무진이 태어나는 바람에 다음을 기약하고 돌아간다. 

그로부터 20년 후인 1187년 5월, 늙은 대장장이 자르치우다이는 어느덧 스무살이 넘은 큰아들 젤메와 그의 동생 수부타이를 데리고 예수게이를 다시금 찾았다. 그러나 이미 예수게이는 죽었고 이십대인 그의 아들 테무진이 곤경에 처한 채 몽골족을 이끌고 있었다. 오랜 약조라도 반드시 지키는 유목민답게 자르치우다이는 우랑카이족인 큰아들 젤메를 몽골족에 맡긴다. 둘째아들 수부타이는 자르치우다이 본인의 가업인 대장장이를 잇기 위해 다시 데리고 오지만 수부타이는 몽골족이 군인이 되는 열네살이 되자 가업을 버리고는 테무진의 군영으로 들어가게 된다. 

몽골족은 초원 유목민으로서 12세기 당시 북아시아를 누비던 타타르, 케레이트, 나이만, 메르키트족 등을 차례로 정복하고 초원 부족 일체를 통일한다. 1206년 초원 유목민족의 대회의인 '쿠릴타이'를 통해 '칭기스 칸'(위대한 칸 중의 대칸)으로 등극한 테무진의 몽골부족을 따라 이 대통합 유목민족은 '몽골족'으로 칭해졌다. 
몽골족은 세살부터 말을 타고 다섯살이면 활을 쏘기 시작했다는데, 수부타이가 속한 우랑카이족은 광범위하게는 '몽골족'에 부속되기는 했다지만 초원 유목민이 아닌 산림 부족이었기에 어쩌면 수부타이는 테무진의 군영에 들어갔을 때까지 말도 못타고 활도 제대로 쏘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고 한다.

아마도 12~13살에 거대한 풍체의 당당한 스무살 테무진을 만나 감명을 받았을 수부타이가 곧 몽골의 군영에 합류했을 초기에는 군사적으로는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어 테무진의 천막지기 또는 문지기 등의 심부름꾼에 불과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수부타이는 전형적인 몽골인이었다. 전쟁과 모험으로 삶을 채워 온 그는 지도자가 바뀌어도 변함없이 같은 삶을 살았다. 그것이 진정한 몽골인의 삶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관심사는 제국을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제국(들)을 '정복'하는 것 뿐이었다."
- [수부타이], <3장. 금(金)과의 전쟁>, 리처드 가브리엘, 2004.

그러던 수부타이가 어떻게 '몽골 대제국'의 '2인자'인 '오를로크(원수)'가 되었을까.

미 육군대학원 교수였던 리처드 가브리엘(Richard A. Gabriel)은 서양인 최초로 수부타이의 전기를 썼다. 
1240~1260년 사이에 집필된 몽골 대제국 역사를 노래한 대서사시 [몽골비사(Secret History of the Mongols)]를 토대로 한 이 책의 제목은 [칭기즈 칸의 위대한 장군, 수부타이(Genghis Khan's Greatest General, Subotai the Valiant)](2004)다.

몽골족장 테무진이 고난을 딛고 자신의 부족을 핍박하던 타타르족-케레이트족-나이만족-메르키트족을 파죽지세로 섬멸하는 과정에서 테무진의 '4대(네 마리) 충견' 중 하나였던 수부타이는 탁월한 정보력과 기만전술, 기습전과 심리전의 대가로서 용장(勇將/The Valiant) '바투르'가 된다. 칭기스 칸 등극 전 마지막으로 메르키트족을 말살할 때 수부타이는 적진에서 주군 칭기스 칸을 배반하는 척 하는 기만전술로 활약했다는데, '4대 충견' 중 나머지 장수들인 쿠빌라이와 제베, 젤메(수부타이의 형)와 같은 전사들에는 용맹함에서 다소 미치지 못했을지는 몰라도 정보전과 심리전, 기습전과 기만전술의 능력을 크게 인정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칭기스 칸의 후대 쿠빌라이 칸과 다른 인물인 쿠빌라이는 다른 민족의 왕자였고 후에 수부타이와 함께 오를로크(원수)로 진급한 맹장 제베는 타이치우트족의 전사로서 후에 카라 키타이(거란족 서요)를 멸망시켜 몽골과 흐와리즘(중앙아시아) 사이의 완충지대를 없앴으며, 젤메는 동갑내기 테무진과 이십대 시절부터 함께 동고동락한 우랑카이족, 수부타이는 그런 젤메의 동생이었다. 이들 칭기스 칸의 '4대 충견'은 같은 몽골족이 아닌 오로지 실력과 능력으로만 발탁된 위인들이었다. 
기라성 같은 이 맹장과 용장 중 수부타이의 특기는 바로 '정보전/심리전/기습전/기만전/외교전' 등 근현대 군사전략에서도 선구적인 전술들이었다.

리처드 가브리엘은 '칭기즈 칸의 위대한 장수' 수부타이의 전기를 통해 현대전에서도 참고할 만한 수부타이의 군사적 전략전술을 8개의 장에 걸쳐 상세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수부타이는 그의 군사적 능력을 변함없이 발휘하면서 칭기스 칸과 함께 동쪽의 금나라(알탄 칸)를 정벌했고(1211~1216), 중아아시아 흐와리즘 이슬람제국(무함마드 샤)을 멸망시켰으며(1219~1224),  칭기스 칸의 사후에도 그의 후계자 오고타이(우구데이) 칸의 치세 하에 서방의 헝가리(벨라4세)와 북방의 러시아 지역을 공략(1237~1242)했다. 
수부타이는 칭기스 칸 사후 그 일족들의 세습 과정에서도 꾸준히 칭기스 칸의 창업정신을 지키며 제국의 '통치'보다 제국들의 '정복'에 일생을 바쳤다.

그리고는 73세인 말년에 중앙의 권력투쟁으로부터 등을 돌리고는, 본인이 한때 누비던 서아시아의 다뉴브 강가(주치 울루스/킵차크 칸국 지배영역)에서 생을 마감했다.


"수부타이는 러시아와 유럽의 모든 형세를 꾸준히 파악하고자 첩자들과 비밀전령사들을 다수 남겨 두었다. 이들을 통해 얻는 정보는 몽골 정보부에 전달되었고 정보부는 유럽 여러 나라의 정치적, 종교적 대립관계 등을 문서로 기록해 두기 시작했다. 수부타이의 러시아 정찰은 3년여 동안 거의 1만 킬로미터(약 8천 km)를 이동한 역사상 가장 긴 기병 원정이 되었다."
- [수부타이], <5장. 위대한 기마공격>, 리처드 가브리엘, 2004.


타고난 '몽골전사'는 아니었던 수부타이가 전장에 나갔을 초기에 칭기스 칸은 겨울에 쉬느라 말을 야위게 하지 말고 원거리 행군에서 사냥은 먹을 만큼만 적당히 하라는 등 초원 유목민 전투전술의 가장 기본적인 당부를 편지로 써주었단다. 같은 '오를리크(원수)'였던 제베 같은 군사 지휘력은 없었던 모양이나 '정보전'의 대가로서 그만큼 칭기스 칸으로부터 신임을 두텁게 얻었다는 징표이기도 하다.

수보타이는 수만 명의 군대인 '만호'의 지휘관이었지만, 그의 군대는 정벌전 위주의 본대라기 보다는 '선발대' 또는 '정찰대'에 가까웠다. 

'공성전'을 체득하게 된 금나라와의 전쟁에서도 그랬을 테고, 흐와리즘 이슬람 제국 정복전 때도 마찬가지였을 게다. 서북방의 러시아와 동유럽 정벌전쟁에서도 수부타이의 부대는 정복보다는 정찰과 정보전, 심리전과 외교전략으로 적국을 파악하고 분열시키는 역할을 했다. 그리고는 바투 같은 칭기스 칸 일족이 이끄는 본대가 분열되고 소요하는 적을 정벌하는 식이었다.

그렇게 수부타이 정찰부대는 서방공략 3년 간 항법장치나 길잡이, 그리고 증원부대도 없이 8천 ~ 1만 킬로미터를 내달렸다.
참고로 알랙산더 대왕의 기록은 4,800km였단다.


"몽골군이 군사적으로 성공한 이유는 군 고유의 구조가 아닌 작전술이 우수했기 때문이었다. 군 역사를 통틀어 보아도 승리를 결정짓는 요인은 군대의 특성 그 자체보다는 '능력있는 지휘관'이 군대를 어떻게 이끌어 가느냐에 있었다. 결국 앞선 두 세기 동안 전장을 누볐던 그 어떤 유럽 지휘관 보다도 훨씬 더 우수한 지휘관이 '수부타이(Subotai)'라는 이름으로 몽골군에 몸담고 유럽 침공을 주도했던 것이다."
- [수부타이], <6장. 서양 공격>, 리처드 가브리엘, 2004.


몽골 대제국의 서방 공략은 2대 대칸 오고타이의 죽음이 아니었다면 더 진행되어 오스트리아 빈을 넘어 서유럽 일대까지 뻗어나갔을 수도 있었다는 후세의 평가를 받는다. 

과연 '세계정복'으로 일컬어지는 몽골군대의 전방위적 기병 행군은 '칭기스 칸의 위대한 장수'이자 몽골제국의 실질적 '2인자'였던 '용장(勇將)' 수부타이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수도 있다.

정보전과 심리전으로 적국의 내부 정치를 파악하고 소요시키며, 외교전으로 적국들의 연합을 사전에 방해하거나 와해시킨다.
적의 허를 찌르는 기습전과 기동전의 결합으로 1,2,3차 중층 방어진지인 적의 '종심(縱深) 방어선'을 붕괴시키는 '종심전투술'은 현대전에서도 유효한 전술로서 20세기 소비에트연방(소련)의 군대에 의해 계승된다.

끊임없이 분열하던 유럽 열국의 쟁투에 밀려 동방의 아시아 유목민들을 주로 상대하게 된 러시아는 정치로서나 전쟁으로서나 몽골제국의 영향을 깊이 받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억압적 통치로 유명한 러시아 차르체제의 기원은 다름아닌 몽골제국이었다.


"근대 이후 군사작전 이론과 훈련법의 대다수는 '수부타이'와 그가 이끈 몽골군이 처음 사용한 것이다. 오늘날 강조하는 '속도', '기동력', '기습', '포위공격', '후방전투', '종심(縱深)전투', '섬멸전' 등은 모두 수부타이가 지휘했던 군사작전에서 처음 등장한 수부타이 특유의 전술들이다."
- [수부타이], <머리말>, 리처드 가브리엘, 2004.


'흩어져 행군하고 뭉쳐서 싸운다'(같은책,<8>)는 몽골군대, 
전략적 목표가 세워지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달성하는 절대적 재량권을 지닌 유능한 군사 지휘관(장수)이 이끄는 무적의 이 '악마의 기수들(Devil's Horsemen)'(같은책,<2>)을 더욱 강하게 만든 것은,
'언제나 상대가 예상치 못한 곳으로 가는'(같은책,<8>) 수부타이의 대규모 정찰부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칭기스 칸에게 있어서 수보타이는,
한고조 유방의 대장군 한신과 같다.

수보타이와 한신의 최후가 비록 다르긴 하나,
역사에서 '2인자'가 기억되어야 하는 이유는 충분하다.

***

1. [칭기즈 칸의 위대한 장군, 수부타이(Genghis Khan's Greatest General, Subotai the Valiant)](2004), Richard A. Gabriel, 박리라 옮김, <글항아리>, 2014.
2. [몽골제국 연대기(집사/集史)](1317), 라시드 앗딘 하마다니(Rashid al-Din Hamadani), 김호동 편역, <사계절>, 2024.
3. [사기(史記)](기원전 1~2세기), <회음후열전>, 사마천(司馬遷), 김원중 옮김, <민음사>, 2007~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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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랑 2026-01-23 12: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쟁의 신, 수부타이!!!
 
설국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23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장경룡 옮김 / 문예출판사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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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을 놓치지 않으려면
- [설국(雪國)], 가와바타 야스나리, 1947.


1.

오랜만에 담배를 산 건, 
오로지 '계절'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2018년에 26년간 피워 온 담배를 '끊었다'고 생각했지만, 정확하게 말하자면 '참았다'. 
끊었다 착각할 정도로 잘 참았지만 회사의 인사이동으로 2021년 겨울부터 시작된 나의 첫 자취생활 동안 수시로 깨어나는 매일의 새벽 한밤을 맞이하기엔 그래도 담배가 적격이었다. 그래서 하루에 새벽 그 시간에 한 까치만 태우기로 하고, 
4년 만에 담배를 샀더랬다. 

때는, 
2021년에서 2022년으로 넘어가는,
'겨울'이었다.

스무살이던 1993년 초에 내게 담배를 가르쳐 준 이는 드라마 [걸어서 하늘까지]의 '물새' 최민수였다. 극을 시작하는 오프닝의 푸른 배경에서 내뿜어지는 흰 연기가 아니었다면, 
아마도 나는 담배를 필 생각을 하지 않았을 거다. 

그렇다.
내게 담배는,
곧 '겨울'이었다.


2.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国境の長いトンネルを抜けると雪國であった)."
- [설국], '첫 문장', 가와바타 야스나리, 1947.


'첫 문장'으로 유명한 책들이 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1848),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1859),
허먼 멜빌의 [모비 딕](1851) 등.

그리고 오로지 '첫 문장' 하나로 유명한 소설이 있다. 바로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1899~1972)의 [설국(雪國)](1935~1947)이다. 

소설은 우리로 치면 일제강점기 말기에 작가 나이 36세부터 48세(1935~1947)까지 12년 동안 씌어지고 다듬어졌단다.

내용은 당시의 제국주의적 국제 정치경제 및 사회 배경과 전혀 상관 없다. 그저 '눈의 고장'인 일본의 간토(관동) 지방 니가타 현의 '유자와' 온천 일대를 '설국(雪國)'으로 규정하고는 눈의 배경과 그 속에 녹아드는 인물들의 심리를 묘사한다.

1935년에 창작되었지만 1948년에 소설집 [설국]으로 출간되고, 1968년에 인도 시인 타고르에 이어 아시아 지역의 동양인으로서 두 번째로 [설국]이 노벨 문학상을 받은 것은, 일본의 '상징주의' 또는 '신(新)상징파'나 '심리소설' 등의 거창한 이유보다는, 
오직 소설의 모든 걸 담아낸 예의 '첫 문장'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남자 주인공 시마무라가 사는 도쿄는 도시, 
도쿄 도를 떠나 군마현을 지나며 니가타 현의 '눈의 고장'으로 들어가는 현의 '접경'은 도시적 '일상'과 몽환적 '설국(雪國)'을 가르는 '국경(國境)'으로 표현된다.


"눈 속에서 실을 뽑고, 눈 속에서 짜며, 눈으로 씻고, 눈 위에서 바랜다. 실을 뽑기 시작하여 천을 다 짜기까지 모든 일이 눈 속에서 이루어졌다."
- [설국], 가와바타 야스나리, 1947.


부모 유산으로 놀고 먹는 남자인 시마무라와 '설국'의 게이샤인 고마코, 정체불명의 여인 요코.
이렇게 3인이 등장하되, 150페이지 분량의 소설 내내 별다른 사건이나 전통적 구성(플롯)도 없이 눈의 고장인 '설국' 니가타 현의 온천장 일대를 무심하게 그려낸다.
고마코와의 남녀 애정행각에 대한 구체적 묘사 따윈 없다. 그냥 소설 초반 '설국'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요코를 처음 보게 되면서 갑자기 '설국'의 게이샤 고마코 생각을 하며 그녀 몸 속 체취의 기억이 남은 자신의 왼손 검지 손가락을 코에 대고 냄새 맡는다. '설국'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우연히 만난 요코의 정체는 끝까지 언급되지 않는다. '설국'의 온천장에서도 게이샤 고마코와의 관계는 겉돌기만 할 뿐이다. 나는 시마무라의 검지 손가락의 활약을 내심 기대했지만, 그저 우리 황순원 선생의 소설 [소나기](1953)를 읽었을 때 정도의 정서만 남고 만다.
소설 마지막 장면의 영화관으로 쓰이던 고치 창고의 화재 현장에서 요코가 왜 이층 객석에서 떨어졌는지 앞뒤 맥락 같은 것도 없다. 그저 화재 현장과 대비되는 '설국'의 밤하늘에 펼쳐지던 은하수에 대한 상징적 묘사로 소설은 마무리된다.


"... 고마코에게 시마무라가 가까이 다가가려고 하다가 요코를 고마코에게서 빼앗아 안으려고 하는 사나이들에게 밀려서 비틀거렸다. 발에다 힘을 주며, 버티고 선 채 눈을 쳐든 순간, 쏴아하는 소리를 내면서 은하수가 시마무라의 속으로 훌러내리는 것 같았다."
- [설국], '마지막 문단', 가와바타 야스나리, 1947.


특별한 플롯도 없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 전개 또한 없지만, 겨울이면 으레 떠오를 만한 소설로서의 [설국]의 고전적 힘은 역시,
도쿄의 도시적 '현실'과 니가타 현의 몽환적 '설국'을 가르는 위대한 '첫 문장'에서 기인한다.

계절로서의 '겨울'은 여전히 소설 [설국]을 부르고,
소설 [설국]은 '겨울'이라는 계절을 내내 놓치지 않는다.


3.

늦가을에서 초겨울로 넘어가는 계절을 좋아하는 나는, 
이 계절을 여태 글로 써보지 못했다.

항상 끊기보다 참았던 담배연기 생각이나 아니면 짧은 생애 특정한 추억 따위로 그 계절의 정취를 대신하게 되어, 내가 좋아하는 그 계절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할까봐 이러는 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렇게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을 여전히 놓치고 산다.

겨울.
계절의 입김을 담아 내뿜는 담배 말고 이 계절을 기억하기 위해 마을 도서관에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고전소설 [설국]을 빌려서 나온 그날, 
몽환적 책의 나라와 현실 세계를 나누는 '국경'을 넘자마자 얼마 지나지 않아 우연하게도 눈이 내렸다. 
그리고 소설을 읽는 3일 내내 줄곧 눈이 내리고 또 쌓였다.

의도했건 아니었건,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雪國)](1935~1947)은 '겨울'이라는 이 '계절'을 놓치지 않게 해주었다.

때는,
추억이나 사건, 또는 풀롯 따위는 없는,
2026년 초의 '겨울'이었다.

***

1. [설국(雪國)](1935~1947),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 장경룡 옮김, <문예출판사>, 1977.
2. [소설가의 첫 문장], 김대웅 엮음, <북플라자>,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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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인생의 이야기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엘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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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있어서 '구원(救援)'이란
- [당신 인생의 이야기] / [우리에게 있어서 구원] / [기린의 심장] / [구름해석전문가]


1.

취학 전 인천 동구 송림동의 나는 대부분 혼자였다. 

나보다 두 살 많은 누나가 당시의 국민학교에 들어가기 전에는 적어도 혼자는 아니었을는지 모르지만, 내게 예닐곱 살 이전의 기억은 거의 없다. 
누군가는 태어나면서 내뱉었을 '응애'도 기억난다 할지 모르겠으나, 내 인생 첫 기억은 잠시 할머니와 함께 인천 십정동에 살던 집 툇마루에서 누나가 하교하기를 기다리던 그 시간과 공간부터다.

당시 할머니의 안방 흑백 텔레비전을 통해 처음 보았던 마징가 제트와 저 멀리 대문 밖으로 국민학교 1학년이었을 재순이 누나가 들어오길 하염없이 기다리던 그 시간과 그 풍경, 그 햇살의 기억이 아련하다.
십정동 시절 나에게는 그게 전부였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 부모님은 송림동으로 누나와 나를 데려왔다.
중동으로 일하러 간 아빠는 원래부터 집에 없었고, 매일 일터로 나간 엄마와 학교에 간 누나가 없던 오전의 송림동 2층 방바닥에 나는 배를 깔고 엎드려 그림을 그렸다.
밖에 나가 놀 친구가 없던 나는 하루종일 혼자였는데 그런 나를 위해 엄마는 16절 갱지 한 다발과 모나미 볼펜 한 다스를 남겨줬다.
송림동에서 학교에 들어간 후로도 난 오후반에는 여전히 그러고 놀았다. 그리고 나는 지금껏 모나미 볼펜만 쓰고 있다.

16절 갱지와 모나미 볼펜이 당시의 나에게 있어서 '구원(救援)'이었다.


2.

'구원(救援) 
: 인류를 죽음과 고통과 죄악에서 건져내는 일'


갑자기 '구원(救援)'을 떠올린 건 재작년이었다.
그 동안 소설을 좀 멀리해온 듯 하여 오랜만에 단편소설 몇 권(채기성/이상욱/부희령 작가)을 골라 읽게 되면서였는데, 그러고는 이내 다른 책들을 읽느라 잊고 있었다. 

몇 달 전 동네 형인 이진 선배가 읽어보라고 건네준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2002)라는 중단편소설집을 읽다가도 표제작인 <네 인생의 이야기(Story of Your Life)>(1998)의 내용 전개가 기이하리만치 머릿속에서 정리가 잘 되지 않았다. 그러던 한참 후 읽을 책이 마땅치 않았던 잠시 내 고집을 접고 표제작 대신 다른 작품들을 먼저 읽으면서, 다시 '구원'을 떠올렸다.

중국계 미국인 테드 창(Ted Chang : 1967~)은 과학자가 되고 싶어 물리학과 컴퓨터공학을 전공했지만 궁극에는 '소설가'가 되었다. 
1990년 단편소설 <바빌론의 탑>으로 데뷔한 이래 수 년에 한 편씩, 그것도 장편이 아닌 중단편 하나씩 발표하는 걸 보면 '전업작가'는 아닌 듯 하다. 아마도 나처럼 본업은 회사원이고 '부캐'가 '소설가'인 듯 한데, 테드 창은 '21세기 최고의 현역 단편작가'고, 나는 '나홀로 작가'라는 차이는 있다.


"물질 우주는 완벽하게 '양의적(兩義的)'인 문법을 가진 하나의 언어이다. 모든 물리적 사건은 두 가지의 완전히 상이한 방식으로 분석할 수 있는 언술에 해당된다. 한 방식은 '인과적'이고, 다른 방식은 '목적론'적이다. 두 가지 모두 타당하고, 한쪽에서 아무리 많은 문맥을 동원하더라도 다른 한쪽이 부적격 판정을 받는 일은 없다."
- [당신 인생의 이야기], <네 인생의 이야기>, 테드 창, 1998.


이진 선배가 읽고 울었다던 테드 창의 표제작 <네 인생의 이야기> 내용의 세밀한 내용들은 다 읽고 나서도 정리가 잘 되지 않는다. 다만, 지구를 방문한 외계인 '헵타포드'들이 두 가지(표음/표의) 언어를 쓰고 있다는 것을 주인공인 언어학자 루이즈와 물리학자 게리가 알아내는 과정과 아마도 25세에 죽은 듯한 루이즈의 딸과의 추억이 수시로 교차하는 플롯을 통해서, 일상적인 삶의 '인과론'과 미래가 이미 정해졌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었을 지도 모를 '목적론' 사이의 '양의적(兩義的)' 관계가 지배하는 나와 타인(당신)들, 즉 우리의 삶과 인생을 이야기하는 듯 하다. 
제목이 가리키는 '네 인생'의 'You'는 직접적으로는 요절한 딸이고, 어린 딸과의 추억이 '이야기'의 한 면을 의미하겠지만, 결국에는 '너(You)'를 포함한 '당신(You)'은 '타인'을 넘어 외계생명체 '헵타포드'까지 포함한다. 외계인의 '이중적' 언어 또한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구성되는 우리 인생의 '중층복합성'을 은유한다.

테드 창의 대부분 소설은 과학적 지식이 모티브가 되는 일종의 'SF소설'이다. 양자역학(<바빌론의 탑>)이나 언어기호학(<네 인생의 이야기>/<일흔 두 글자>), 신학과 기후학(<지옥은 신의 부재>), 수학(<0으로 나누면>) 등의 모티브가 떠오르면 '과학자'답게 오랜 기간 공부하고 검증하여 인문학적 감성과 결합시켜 몇 년에 한 편 중단편소설을 발표하고 상을 받는다.

그 중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2001년에 발표한 <지옥은 신의 부재>다.
소설의 모티브는 기후재난은 사실은 천상의 천사들이 한 번씩  강림하는 이벤트라는 초현실적이고 신학적인 설정이다. 대천사들은 이런 강림을 통해 인류 다수를 '정리'하기도 하는데, 소수는 '기적'을 찾아 대천사들의 강림을 쫓는다. 그들의 목적이 바로 '구원'이다. 누구는 앞을 보기 위해, 누구는 걷기 위해. 
사랑하는 부인 사라를 대천사 강림 사고 중에 잃은 후 '지옥'같은 삶을 살던 닐이 역설적으로 '구원'을 찾아 대천사 강림을 쫓는 '라이트시커(Light-seeker)'가 된 후, 소설의 결말에서 깨달은 사실은 '지옥'이란 바로 '신(神)'을 늘상 느끼지 못하는 우리 마음속 '부재(不在)'함에서 기인한다는 사실이다.


"닐은 자신이 신의 의식 너머에 존재함으로써 신에게 사랑받고 있지 않다는 사실조차 알고 있지만, 이것 역시 그의 감정에는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한다. 왜냐하면 무조건적인 사랑은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설령 아무런 보답을 받지 못하더라도.
그리고 신의 의식 너머에서 오랜 세월을 지옥에서 살아온 지금도 날은 여전히 신을 사랑하고 있다. 진정한 신앙이란 본디 이런 것이다."
- [당신 인생의 이야기], <지옥은 신의 부재>, 테드 창, 2001.


과학이고 신학이고 얼버무려져 있어 복잡다단하지만, 그럼에도 결론은 그닥 어렵지 않다.
테드 창의 데뷔작 <바빌론의 탑>(1990)의 매우 반전적이고 충격적인 결말처럼 '양자역학'적이기도 하다. 소설의 주인공이 바벨탑 공사를 위해 다시는 지상에 내려올 기약도 없이 올라간 꼭대기의 경계를 넘으니 다시 지상이었다는 결론처럼. 


"어떤 이유에선가 하늘의 천장은 대지 아래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 두 장소는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마치 서로 맞닿아 있는 듯 했다...
...
이제는 왜 야웨가 탑을 무너뜨리지 않고, 정해진 경계 너머로 손을 뻗치고 싶어하는 인간들에게 벌을 내리지 않았는지를 뚜렷이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인간은 아무리 오랫동안 여행을 해도 결국은 출발점으로 되돌아오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몇십 세기에 걸친 인간의 노력도 천지창조에 관해 그들이 알고 있는 지식 이상의 것을 밝혀 주지는 않았다. 그러나 인간은 그런 노력을 통해 상상을 초월한 야웨의 예술성을 흘끗 보고, 이 세계가 얼마나 정교하게 만들어졌는지를 깨달을 수가 있다. 이 세계를 통해 야웨의 창조는 밝혀지고, 그와 동시에 숨겨지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인간은 우주에서의 자기 위치를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 [당신 인생의 이야기], <바빌론의 탑>, 테드 창, 1990.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경계가 모호하다(<네 인생의 이야기>). 지옥같은 신의 부재가 결국 은총일 수 있고(<지옥은 신의 부재>), 이름과 실체의 관계가 엇갈리며(<일흔 두 글자>), 영화 [루시]처럼 초인적인 지능은 결국 인류사를 무(無)로 만든다(<이해>).

물론, 과학의 영역에서 '양자역학'은 '모든 것이 서로 통한다'는 동양적인 동일성의 '순환론'을 의미하지 않는다지만, 테드 창의 과학과 신학 또는 인문학의 융합을 통해 전개되는 이야기를 통해 나는 또 다시 '구원'이라는 오랜 단어를 떠올린다.


채기성 작가의 [우리에게 있어서 구원](2024)은 주제 자체가 '구원'이다. 소설집 내내 작가는 자신의 종교성을 숨기지 않는다. 가톨릭 사제를 준비하면서 '구원'이 무엇인지 계속 묻는 것을 보면 천주교 신자일 수도 있겠다. 그의 소설의 모티브는 앞으로도 일관되게 '구원'이 되리라. 종교적이든 아니든, 그 어떤 식으로든.

이상욱 작가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퇴근 후 저녁 아홉시부터 자정인 열두시까지 소설을 쓴다고 하는데, 직장인으로 추정되는 이 작가에게 아마도 유일한 '구원'의 시간은 이 '글쓰기' 시간이 아닐까 싶다.

미국 역사학자 카일 하퍼가 로마의 쇠망사와 지구의 기후변화를 엮어서 쓴 [로마의 운명](2017)이라는 책의 번역자로 알고 있던 부희령 작가는 사실 2001년에 등단한 소설가였다. 번역도 하고 애인과 이별도 하고 히말라야도 등반했을 작가는 15년 만에 소설집을 냈다. 그녀에게 '구원'은 떠남과 비움, 그리고 여행이었나 보다.

누구나 자기만의 '구원'이 있거나, 찾고 있다.


3.

한 때의 내게 있어서 '구원(救援)'이란,
'혁명'이었다.
이 불평등한 체제의 변혁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혁명'을 할 힘은 없었으니, 그에 대한 '믿음'이었다.

레닌은 어디에선가,
변증법적 유물론 철학이 '종교'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단다.
철학과 종교가 형식만 다를 뿐 내용은 같다고 했던 헤겔의 후예가 맞는가 보았다.
제1차 세계대전이 임박한 시점에서 각국의 사회민주당 조차도 애국주의 전쟁 지지로 돌아서던 세계 변혁운동의 망조를 보며 도서관에 틀어박혀 헤겔 철학을 다시 파헤치던 레닌에게, 1914년 [철학노트]를 끄적이며 마르크스 [자본론]과 당시 자본주의를 근본부터 다시 연구하던 그에게 있어서 '구원'은 '철학'이었던 거다.

이십대의 나는 '변혁'을 외치는 사람들의 주변에서 선봉이었던 그들을 따라 새세상을 꿈꾸었다. 그리고 '함께 꾸던' 이 꿈을 소설로 쓰고 싶었다.
이십대의 내게 있어서 '구원'은 '소설'이었다.

삼십대의 나는 여전히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을 빼고는 추억할 수 없다. '일하는 사람들의 희망'으로 '혁명'이라기 보다는 유럽의 사민주의처럼 보편복지 실현을 강령으로 하는 정파연합정당이었지만 내게는 이십대에 그토록 바라 마지않던 '노동자정당'이었다.
퇴근 후 만난 사람들과 함께 우리에게 있어서 '구원'은 '진보정당'이었다.

진보정당 분열 후 직장의 노동조합을 찾았다. 정치적 민주화는 '87년 운동세대가 가져갔고, 경제민주화를 기획하던 진보정당은 뿔뿔이 정파 따라 흩어졌다. 사십대 노동자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산업민주주의, 직장민주화였다. 결국 노동조합을 통해서도 '혁명'이라는 화두를 풀 능력이 없었지만, 한때 내가 이 세상의 변화에 그나마 기여를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당시의 내 정체성을 규정했던 시간이었다. 
조합원들을 만나던 그 시절, 내게 있어서 '구원'은 '노동조합'이었다.

최근 몇 년 동안은 어떤 식으로든 글을 쓰지 않고는 나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일종의 강박 같은 걸 붙잡고 산다. 좀더 많은 사람들이 읽는 글을 쓰고 싶어 본격적으로 '주간 문사철'을 쓰기 시작한 것이었지만, 사실은 나만을 위해 쓴 거였다. 본업은 있으되 '서평' 하나를 쓸 생각으로 책을 골라 읽고 한 주를 버텼으며, 주말에 쓴 '서평' 하나로 모종의 '강박'을 잠시 플고는 본업으로 돌아가 또 한 주를 살았다.
최근 나의 '구원'은, 날 위한 '글쓰기'였다.

오십대도 중반으로 치닫는 이제,
일상의 삶에서 '구원'을 찾을 때.

그러나, 나이 들수록 더더욱 모르겠다.
바빌론의 탑 꼭대기가 닿는 천상의 경계를 열고 넘어서면 다시 지상의 제자리일까.
신의 부재가 결국 신의 은총이 되는 모순의 동일성이라는 '허무주의'로 인도되는 것인가.

과연 무엇일까.
누구에게나 바라 마지않는 '구원'이란.
나에게 있어서 '구원'이란.

***

1. [당신 인생의 이야기(Stories of Your Life and Others)](2002), 테드 창(Ted Chang), 김상훈 옮김, <행복한책읽기>, 2004.
2. [우리에게 있어서 구원], 채기성, <교유서가>, 2024.
3. [기린의 심장], 이상욱, <교유서가>, 2021.
4. [구름해석전문가], 부희령, <교유서가>, 2023.
5. [로마의 운명](2017), 카일 하퍼, 부희령 옮김, <더봄>,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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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제국 연대기
라시드 앗 딘 지음, 김호동 옮김 / 사계절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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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기의 집성, '최초의 세계사'
- [집사(集史)], 라시드 앗딘, 1317.


"1226년 초봄이 되었을 때 칭기스 칸은 옹군 달란 쿠둑이라는 곳에서 자신의 상황에 대해 생각했다. 왜냐하면 죽음이 가까워졌음을 보여주는 꿈을 꾸었기 때문이다...
... 사람들이 물러나자 칭기스 칸은 아들들에게 조용히 훈계를 내렸다. 그는 우구데이를 후계자로 지명하고 유촉을 모두 마친 뒤 이렇게 충고했다... 
'... 나는 집안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싶지 않다. 나의 명성과 영예를 지키며 저승으로 가겠노라...' 
... 그는 말을 모두 마친 뒤 두 아들(우구데이, 톨루이)에게 작별을 고했다. 두 아들을 각자의 울루스로 돌려보내고, 자신은 군대를 이끌고 낭기야스(북중국과의 변경) 방면으로 향했다."
- [몽골제국 연대기], <1-3. 대외원정과 제국의 팽창>, 라시드 앗딘, 김호동 편역, 2024.


칭기스 칸(1162~1227)이 동북의 만주와 남방의 북인도, 서남의 이집트와 서북의 러시아 지방까지 원정했을 때, 몽골 군대의 목표는 '세계정복'까지는 아니었다. 
북방 유목민족들이 으레 그러했듯 부족한 물자와 식량을 얻기 위한 전방위적인 약탈이 주된 목적이었을 것이다. 그것을 위해 칭기스 칸의 장수 수부데이는 네비게이션이나 항법장치 없이, 심지어 증원부대도 없이 장장 8천 킬로미터를 달렸다. 오래전 알렉산더도 4천 8백 킬로미터 밖에 다니지 못했다고 한다. 
참고로 지구의 반지름은 6천 4백 킬로미터(지름 1만 3천 / 적도 평균 둘레 4만 킬로미터) 정도 된단다.

1206년 호랑이해, 40대 중반에 몽골 일대 부족들을 통일하고 '가장 강력한 군주'를 뜻하는 '칭기스 칸'으로 즉위한 후 20년 간 쉼 없이 아시아 일대를 제패한 '칭기스 칸(본명 '테무진')'은 죽음을 앞두고서도 아들들에게 유언만 남긴 채 군대를 이끌고 전장으로 나섰다. 그의 마지막 전장은 '카라 키타이(거란)'와 '키타이(북중국)', '탕구트(서하)'와 '쥬르첸(여진)' 등 북중국 일대의 변경이었던 낭기야스 전선이었다. 아마도 모든 전사들이 그랬던 듯, 칭기스 칸 또한 우리의 불멸의 이순신 장군처럼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는 진짜 최후의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사기가 떨어질까 염려했기 때문이었을 텐데, 칭기스 칸은 수하들에게 슬퍼하거나 회군하지 말고 탕구트인들이 나오는 족족 모두 죽이라고 했고 남은 수하들은 그의 명령대로 실제로 보이는 탕구트 족을 모두 살육했다고 한다. 칭기스 칸의 몽골 군대는 사전에 항복한 자들과 이미 점령당한 자들에게는 다소 '관대'하기도 했고 정복한 지방에는 종교와 행정, 문화 등에서 어느 정도 '자율성'을 인정했다고는 하나 기본적으로 적을 무자비하게 살육하고 파괴하는 데 능했다. 2백년 후 칭기스 칸의 '후예'를 자처한 중앙아시아의 티무르가 36년 간의 원정 과정에서 1천 7백만 명을 죽였다는데, 칭기스 칸과 그 일족들이 벌인 2백년 간의 원정에서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도륙되었을지 상상도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세들의 '세계사'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칭기스 칸의 대제국 '예케 몽골 울루스(대몽골국)'는 그의 정복 의도가 무엇이었든, 아시아 대륙을 무대로 동서양이 교류하고 문명을 교환하면서 새로운 문화가 용광로처럼 샘솟는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냥을 좋아하는 사람은 주치와 함께 하도록 하라.
법령과 규범과 관례와 성훈들에 대해서 잘 알기를 원하는 사람은 차가다이에게 가라.
관용과 은사와 재화를 원하는 사람은 우구데이를 가까이 하라.
용맹과 명성과 승리, 그리고 세계정복을 희망하는 사람은 톨루이를 모시도록 하라."
- [몽골제국 연대기], <2-1. 우구데이 칸의 세계정복전>, 라시드 앗딘, 김호동 편역, 2024.


몽골제국이 본격적으로 '세계정복'을 표방한 것은, 칭기스 칸의 셋째 아들 '우구데이'가 '카안(대칸)'이 된 후부터였다. 

칭기스 칸의 첫째 아들 주치는 어쩌면 친자가 아닐 수도 있었고 오래전부터 북방 러시아와 서북의 킵착 지방 등으로 원정을 보낸 후 멀어졌으며, 둘째 차가다이는 첫째 주치와 반목과 갈등도 있었다. 주치와 차가다이 두 아들 모두 용맹했으되, 칭기스 칸에게는 인자하고 관대한-어쩌면 사치스러운- 셋째 우구데이가 대외원정을 관장할 '칸'으로 적합하다 생각했을지 모르겠다. 몽골의 관습에 의하면 아버지의 목지와 재산은 막내 아들이 책임진다고 했다는데, 칭기스 칸의 후계는 셋째 우구데이가 이었지만, 과연 칭기스 칸의 막내 아들 톨루이의 아들들은 후에 4대 대칸 뭉케와 5대 대칸 쿠빌라이가 된다.

칭기스 칸의 사후 그의 아들들은 아버지의 유지를 잘 받들었다. 둘째 차가다이와 막내 톨루이는 셋째 우구데이의 대칸(카안) 즉위에 반대하지 않았고 오히려 자진하여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우구데이 카안의 아들 구육이 즉위 3년만에 급사한 후 칭기스 칸의 막내 톨루이 집안은 톨루이의 아들 뭉케를 중심으로 쿠데타를 획책한다. 칭기스 칸의 장자 주치 가문과 둘째 차가다이 가문과의 연합을 통해 셋째 우구데이 가문 계승의 맥을 끊고는 뭉케가 4대 카안이 된다. 이후 뭉케의 동생 쿠빌라이가 즉위할 때는 역시 같은 항렬의 동생 아릭 부케와 카안(대칸)의 경쟁자로서 권력투쟁의 내전을 치른다.

결국 뭉케와 쿠빌라이 권력교체는 칭기스 칸의 막내아들 톨루이의 직계에서만 이루어지게 되는데, 심각한 내전을 치른 쿠빌라이와 아릭 부케 사이에 있던 형제가 바로 서방의 '훌레구 울루스(일-칸국)'를 열었던 '훌레구 칸'이었다.


"(칸의) 이같은 명령들에 따라 나는 상술한 종족들에 속한 덕망있고 탁월한 사람들에게 탐문하고 과거의 서적들에 기록된 내용을 수집하여 지상의 여러 지역의 보편적인 역사를 서술한 <세계 민족지>를 집필했다. 또한 그것의 보충으로 여러 경역의 지도와 도로에 관한 <세게 경역지>를 편찬하여 이 <가잔 축복사>의 속편으로 삼았다. 이렇게 세 부분으로 이루어진 책 전체를 [집사(集史)]라고 이름했다."
- [집사], <서언>, 라시드 앗딘, 1317. ([몽골제국 연대기], <에필로그>, 김호동 편역, 2024.)


'최초의 세계사'라는 명성을 얻은 역사책이 있다. 
바로 라시드 앗딘 하마다니(Rashid al-Din Hamadani : ?~1319)가 지은 [집사(集史)](1317)다. 
이 책은 위에서 말한 '훌레구 울루스(훌레구 칸국)'의 4대 칸 가잔의 명으로 페르시아 출신의 지식인이자 재상인 라시드 앗딘의 주관 하에 편찬한 '칭기스 칸 일족의 연대사'였다. 가잔 칸이 죽고 그의 형제 울제이투 칸이 새로 명령을 내려 칭기스 일족이 정복한 민족들과 영토들의 역사를 두루 수집하여 증보/편찬한 저작을 일컬어 [집사]라 했기에 '세계사'라 일컬어졌다.

즉, 칭기스 일족의 '세계정복'-북방의 주치  울루스(칸국), 중앙의 차가다이 울루스(칸국), 서남쪽의 훌레구 울루스(일-칸국)과 동방의 카안 울루스(원나라)- 자체가 대양을 건너기 전이었던 당시의 '세계사'에 걸맞는 영역이었기에 '가잔 칸이 축복을 내린 역사', 즉 <가잔 축복사>로 불린 1권 '몽골제국 연대기'가 '세계사'의 토대를 깔아주었고, 울제이투의 명에 따라 2권과 3권으로 엮인 <세계 민족지>와 <세계 경역지>가 '세계사'로서의 구색을 더 맞춰주게 된 것이다.


"역사가의 임무는 여러 종족들 사이에 전해지는 일화와 사실들을, 그들이 갖고 있는 서책 속에 기록된 것이나 혹은 구전을 통해 전해지는 방식대로, 즉 그들 사이에 통용되는 유명한 책자나 덕망있는 명사들의 입을 통해서 얻은 내용을 진술하고 집필하는 것이다."
- [집사], <서언>, 라시드 앗딘, 1317. ([몽골제국 연대기], <에필로그>, 김호동 편역, 2024.)


라시드 앗딘은 가잔 칸의 뒤를 이은 울제이투의 명에 따라 <가잔 축복사>, <세계 민족지>와 <세계 경역지>를 엮은 [집사]를 완성한 후 '에필로그'와 같은 <서언>을 마지막으로 집필하는데, 역사 서술은 '확실한' 것 같은 '사실'만을 서술하는 것을 넘어 각 지방의 민족들이 그들의 말과 글로 전하는 내용을 수집하고 엮어서 집필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의 '중심'을 자처하는 자들의 언어로만 역사적 사실을 말하고 적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란 드물게 일어나는 기이한 정황과 놀라운 사건들을 입수하고 정리하여 그것을 글로 적고 책에 기록한 것임은 지혜로운 분들이 모두 인정하는 바이다. 각 시대의 좋고 나쁘고 중요한 사건들을 모사하여 후손들에게 귀감이 되게 하고, 지나간 시대의 정황을 다가올 시대에 알리며, 그렇게 함으로써 유명한 군주나 강력한 국왕들에 관한 설명이 시대의 페이지 위에 영원히 남도록 하는 것이 바로 학자의 임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건과 사실들은 시간의 경과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사라져 버리고 말 것이다."
- [집사], <서언>, 라시드 앗딘, 1317. ([몽골제국 연대기], <프롤로그>, 김호동 편역, 2024.)


몽골제국 칭기스 일족의 '단대사'가 감히 '최초의 세계사'가 된 라시드 앗딘의 역사서 [집사]의 원제는 [연대기의 집성(Jami al-Tawarikh)]인데, 위와 같은 몽골제국 연대기로서의 1권 <가잔 축복사>에 2권 <세계 민족지>와 3권 <세계 경역지>가 합체하면서(집성/集成), '세계사(집사/集史)'가 된 것이다.

라시드 앗딘은 무슬림 지식인으로서 쇠퇴해가는 몽골 제국의 변방 '훌레구 울루스(일-칸국)'가 칭기스 일족 정통성을 위해 추진한 관변 역사서 편찬을 총괄했고, 세계 여러 민족들과 강역들의 이야기를 그들의 글과 말을 통해 수집하는 임무를 맡았을 게다. 

그러나 칭기스 일족의 강역이 너무도 넓었기에 각 민족과 지역의 자율성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겸손한 역사가'로서의 면모를 보이게 되었을 수도 있겠다.

내가 읽기에,
라시드 앗딘의 [집사]가 '최초의 세계사'인 이유는 다름아닌 역사가의 이러한 '겸손'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몽골 제국 역사의 '대칸'이라 불리는 서울대 동양사학과 김호동 교수께서 요약해 주신 덕분에,
말로만 듣던 라시드 앗딘의 [집사]를 한 권으로 읽게 되어 감사한 마음이다.


***

1. [몽골제국 연대기(집사/集史)](1317), 라시드 앗딘 하마다니(Rashid al-Din Hamadani), 김호동 편역, <사계절>, 2024.
2. [칭기스의 교환](2012), 티모시 메이(Timothy May), 권용철 옮김, <사계절>, 2020.
3. [티무르 승전기(자파르나마/Zafar-nama)](1424), 샤라프 앗딘 알리 야즈디(Sharaf al-Din Ali Yazdi), 이주연 편역, <사계절>,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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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무르 승전기
샤라프 앗딘 알리 야즈디 지음, 이주연 옮김 / 사계절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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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힙키란'의 전설이 된 '티무르'
- [티무르 승전기], 샤라프 야즈디, 1424.


"'사힙키란(티무르)'은 그간 여러 왕과 하킴의 갈등과 반목, 노상 강도와 악당들의 선동으로 인해 혼돈에 빠진 이 세계를 바꾸고 치료하기 위해 여러 왕국을 정복했다. 이에 세계가 평안과 안정의 상태에 접어들어 동서간의 왕래가 편안하고 안전해졌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여러 사람이 해를 입고 흩어졌다. 이에 그는 이교도의 땅인 중국으로 가서 불교 사찰과 조로아스터교 성전을 모스크로 대체하면 죄악을 용서받을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
- [티무르 승전기], <에필로그: 중국 정벌의 꿈과 사후의 혼란>, 샤라프 야즈디, 1424.


1404년 '라마단월 14일 수요일(3월 26일), '세계정복자'인 '사힙키란(Sahib-Qiran)' 티무르(Timur:1336~1405)가 동방의 중국 명(明)나라를 정벌하기 위해 서방의 이란 '7년 원정'을 마무리하고는 티무르 제국의 수도 사마르칸트로 출발했을 때, 그의 나이는 67세였다.

칭기스 칸 사후 12~14세기 아시아 전역을 지배했던 몽골 제국은 북쪽의 '주치울루스(킵차크-칸국)', 남서쪽의 '훌레구울루스(일-칸국)', 동쪽의 '원나라(오고타이-칸국)', 그리고 중앙의 '차카타이울루스(차카타이-칸국)'로 크게 분열되었다. 
중앙아시아의 차카타이울루스 키시에서 1336년에 태어난 티무르는 당시의 수많은 이슬람 장군 '아미르' 중 하나였지만, 1370년 34세에 차카타이울루스 일대를 장악하고 통일했다. 사마르칸트를 수도로 정한 티무르 왕은 주변 영토를 공략하는 단기 정복 전쟁(1370~1386) 이후 서방의 이라크 바그다드와 이란(페르시아) 지역으로 '3년 원정(1386~1388)'과 '5년 원정(1392~1396)'을 수행하고, 칭기스 칸도 건너지 못했던 북인도 인더스 강을 건너 델리를 장악했으며, 그의 마지막 장기 원정인 이란 '7년 원정(1399~1405)' 이후 동쪽의 중국 명나라 영락제와 일전을 치르기 직전 사망한다.

'7년 원정' 기간에 '앙카라 전투'에서 '유럽의 적'이었던 오스만 제국의 술탄 바야지드 1세를 포로로 잡은 티무르는 유럽인(프랑크)들에게 칭기스 칸의 뒤를 잇는 동방에서 온 공포의 대상으로 부각된다. 페르시아어 기록에는 없어 실제로 절름발이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전투 중 숱하게 부상을 입었던 듯한 티무르는 유럽인에게 '절름발이 티무르(Tamerlane)'로 더욱 기이한 공포심을 불러일으켰단다. 

오랜 시간이 지난 20세기, '강철(Steel)'을 뜻하는 가명의 소련의 공산당 서기장 '스탈린(Stalin)'이, 역시 '세계정복자'를 꿈꾸었는지, 5백년 전에 죽은 '티무르'의 무덤을 백방으로 찾아다녔다고 전해진다. 결국 스탈린이 티무르의 무덤을 파내어 그의 시신을 보고 말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칭기스 칸은 물론 알렉산더와 예수 못지 않게 강력한 '세계정복자' 중 하나로 꼽히는 '티무르'라는 이름 역시 '강철'을 의미한다.

실제로 티무르 제국은 몽골 제국의 뒤를 잇는 아시아의 거대 제국을 표방하며 14~15세기 동서양의 문명을 잇는 역할을 했고, 척박한 중앙아시아에서 티무르 제국의 사신들은 실제로는 교역을 하는 상인들이었는데, 티무르의 정복 후 각국에 보낸 편지들은 '교역의 자유'를 강요하는 내용 일색이었다고 한다. '키타이(거란)'로 부르던 중국 명나라 정벌도 사실은 '이교도 정벌'이 아니라 명나라 태조 홍무제 주원장(1328~1398)이 중국 서쪽에서 교역하던 '회회족(무슬림)'을 박해했기 때문에 결의한 것이었다.

역시, 
역사에서 모든 정치 행위의 토대는 경제 관계다.


"당시 티무르가 정복한 최대 영역은, 동쪽으로는 현 중국 신장 카리호자와 이르티시강 유역, 서쪽으로는 아나톨리아 서단의 이즈미르, 북쪽으로는 모스크바와 키예프, 남쪽으로는 북인도 델리에 이른다. 놀라운 것은 이 광대한 영역이 티무르 생전에 전부 정복되었다는 점이다. 이렇게 광대한 영역을 차지한 후, 티무르는 여러 지식인에게 명을 내려 자신의 공적을 담은 사서(史書)를 저술하게 했다. 그의 후손들도 국가의 시조인 티무르의 '승전(勝戰)'을 담은 사서 저술을 후원했은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이 책, 샤라프 앗딘 알리 야즈디의 [승전기(勝戰記/Zafar-nama)]이다."
- [티무르 승전기], <해제: 쿠레겐과 사힙키란, 티무르의 두 칭호>, 이주연, 2025.


서아시아(페르시아) 이슬람사를 전공한 학자 이주연 선생의 박사학위 논문이 티무르의 일생을 담은 [승전기]에 관한 연구였다는데, 이 책은 티무르의 손자 이브라힘 술탄의 명을 받아 티무르 왕조의 정당성을 기록한 어용 역사서로서, 15세기 이란 중서부 '야즈드' 출신의 학자 샤라프 앗딘 알리 야즈디(Sharaf al-Din Ali Yazdi)가 저술한 [티무르 승전기](1424)였다.

이주연 선생은 야즈디의 [승전기]를 대중적으로 편역한 [티무르 승전기](<사계절>, 2025)의 <해제>를 통해, 14세기 '세계정복자'로서의 '사힙키란' 티무르와 그의 일생에 걸친 '정복기'로서 15세기 샤라프 야즈디의 [승전기]의 사료적 가치를 설명해 준다.

이에 의하면, 티무르는 수십년 간의 정복 과정에서 약 1,700만 명을 살육함으로써 칭기스 칸 못지 않게 잔혹한 정벌을 했지만, 칭기스 칸처럼 미리 알아서 항복한 자들에게는 관용을 베풀기도 했으며, 무엇보다 학문과 예술 등 문화 발전을 지지했다. 

'역사학'을 사회과학적으로서 처음으로 다루었다는 [무깟디마(역사서설)]의 저자인 저명한 이슬람 역사학자 이븐 할둔을 한 번 불러 독대하기도 했다는 티무르는 예언가 학자 '사이드(sayyid)'인 베케르를 평생 존경했고 '키탑하나'라는 '도서관'에 지식인들을 모아 역사 저술을 장려했단다. 
그의 원정을 따라다닌 지식인들은 끊임없이 '실록'을 기록한 '1차 사료'를 남겼고, 티무르 당대의 '2차 사료'로서 집단적 편집발췌를 거친 니잠 앗딘 샤미의 [승전기](1402)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티무르 왕조의 역사서라고 한다.

샤라프 야즈디의 [승전기](1424)는 티무르 사후 그의 손자인 이브라힘 술탄의 지시로, 전술한 샤미의 [승전기](1402)를 저본으로 삼아 더욱 구체적으로 보완한 '3차 사료'에 해당한다. 

야즈디는 본인이 저술한 이 [티무르 승전기]를 선대 역사가 이븐 할둔을 따라 '무깟디마(서론)'로 일컫는데, 티무르의 후계자인 넷째 아들 샤루흐의 '승전기'와 그의 아들 이브라힘 술탄의 '승전기'를 각 '2권'과 '3권'으로 이어서 저술했다고 한다. 
'2권'은 사본 하나가 남았고, '3권'은 야즈디 [승전기]의 러시아 연구자 바실리 바르톨트가 읽었다는 기록만이 남았다.


"행정체계를 갖지 못한 아랍계 무슬림 지배자 정권에서 페르시아의 체계적 행정 시스템을 무기로 독보적 지위를 유지한 페르시아의 서기 계층과, 독자적 기록체계가 없던 몽골인들을 대상으로 위구르 문자 및 행정능력을 이용하여 각종 실무를 담당했던 위구르 서기 계층, 아시아의 동과 서에서 '식자(識者:Men of Letter/Ahl-i Kalam)'이자 문인(文人)이던 이들이 티무르 제국이라는 국가 안에 공존하며 역사기록을 담당한 것이다."
- [티무르 승전기], <해제: 야즈디 [승전기]의 사료적 가치 재고>, 이주연, 2025.


칭기스 칸의 몽골 제국은 독자적 기록체계가 없었는데 중국 서부의 신장 지역 위구르인들이 몽골 제국의 지식인 역할을 했다. 한편, 이슬람 '성전(聖戰)'을 앞세운 무슬림 군벌(아미르)들 또한 독립적 행정체계가 부족하여 오랜 문명 전통을 가진 페르시아인들이 무슬림 정권의 지식인 역할을 했다. 
이란 중서부 '야즈드(Yazd)' 출신의 샤라프 앗딘 알리 '야즈디(Yazdi)' 또한 페르시아 출신 지식인이었다. 그는 이슬람 스승들로부터 천문학과 수비술(숫자신비술), 문자학(기호신비학), 메시아니즘(구세주주의) 등의 당대 신비주의 '과학' 지식을 동원하여 이슬람 신의 가호를 입은 티무르의 '세계정복'을 정당화하고자 했다.
과연 [승전기] 속 티무르는 신의 힘으로 연전연승을 거듭하는 천하무적의 신장(神將)이다.


"티무르가 스스로를 '몽골제국의 부마'를 의미하는 '쿠레겐'이라 칭한 것도, 유럽인의 기억에 강하게 남아있는 몽골 제국에 대한 인상을 이용한 전략이라 볼 수 있다...
티무르가 군주적 정통성(사서)을 선전하기 위해 노력한 모습은, 반대로 이전 군주들이 내세운 정통성의 근거를 통해서는 적법한 군주로 인정받기 어려운 상황이었음을 반증한다. 티무르조가 성립된 14세기 후반은 '칼리프가 임명한 군주'라는 이슬람적 정통성이나, '황금씨족의 후손'이라는 몽골 제국의 정통성이 모두 쇠퇴하는 시점이다. 바로 이때 칭기스 일족도 아니고, 칼리프에게 승인받을 수도 없던 티무르가 내세운 새로운 유형의 정통성이 곧 '사힙키란(Sahib-Qiran:세계정복자)'이다."
- [티무르 승전기], <해제: 쿠레겐과 사힙키란, 티무르의 두 칭호>, 이주연, 2025.


그렇게 티무르는 야즈디의 [승전기] 내내 '사힙키란(Sahib-Qiran)'으로 불린다.

본래 고대로부터 이슬람 군주들이 표방해 왔다는 '사힙키란'은 신비주의 천문학인 점성술에 따라 목성과 토성이 합쳐지는 날에 태어난 최적 '합(合:Qiran)'의 군주를 의미하는데, '사힙키란'은 '세계정복자'의 이슬람적 보통명사였지만 야즈디의 [승전기]에 의해 '세계정복자' 티무르 왕을 지칭하는 고유명사가 되었다.

차카타이울루스의 사마르칸트를 중심으로 영역을 급속도로 넓힌 티무르 초기에는 예전 몽골 제국의 후광이 필요했기에, 초기의 티무르는 칭기스 칸의 후예를 앞에 내세우고 본인은 이 '황금씨족'의 '부마(쿠레겐:외척)'가 되어 정권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그러나 몽골 세계제국의 전 영역을 장악한 후 티무르는 더 이상 '쿠레겐(부마)'이 아닌 '세계정복자'로서 '사힙키란'이 되어 티무르 왕조의 정통성을 증명하고자 했다. 
'사힙키란'으로 본인을 저술하게 하는 역사서술을 통해 비로소 티무르 왕은 칭기스 칸의 현신이 되는 '사힙키란(세계정복자)'의 전설을 시작한다.

샤라프 야즈디의 [티무르 전승기](1424)가 그린 새계정복자 '사힙키란'으로서의 티무르의 특성을 이주연 선생은 <해제>의 두번째 장 '야즈디가 그린 사힙키란 티무르'를 통해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1) [승전기]의 주내용인 티무르의 광대한 영토 정복 사실
2) 천문학과 점성술, 수비학과 문자학, 메시아니즘 등의 당대 신비주의 '과학'적 증거
3) '정의로운 군주상'에 부합하는 이슬람 율법에 의한 징세와 공정한 판결의 정치

150여 년 티무르 왕조의 정통성을 증명하고자 했던 야즈디 [승전기]의 궁극적인 저술 목적이기도 했다.

샤라프 야즈디의 [티무르 승전기](무깟디마)를 읽고난 지금,
이븐 할둔의 '무깟디마'적 역사서술 방법 이전의 몽골 제국의 연대기적 역사서술을 읽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2025년도의 아마도 마지막 책인 [티무르 승전기]는 '수비학'에 따라 티무르의 재위기간이자 자손의 숫자인 '36'처럼 올해 '36'번째 책으로서 마무리하고,
2026년의 새해 벽두는 13~14세기 몽골 제국의 역사가 라시드 앗딘(Rashid al-Din:?~1319)의 [집사(集史)]로 시작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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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티무르 승전기(자파르나마/Zafar-nama)](1424), 샤라프 앗딘 알리 야즈디(Sharaf al-Din Ali Yazdi), 이주연 편역, <사계절>, 2025.
2. [몽골제국 연대기(집사/集史)](1317), 라시드 앗딘(Rashid al-Din), 김호동 편역, <사계절>,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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