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제국 연대기
라시드 앗 딘 지음, 김호동 옮김 / 사계절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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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기의 집성, '최초의 세계사'
- [집사(集史)], 라시드 앗딘, 1317.


"1226년 초봄이 되었을 때 칭기스 칸은 옹군 달란 쿠둑이라는 곳에서 자신의 상황에 대해 생각했다. 왜냐하면 죽음이 가까워졌음을 보여주는 꿈을 꾸었기 때문이다...
... 사람들이 물러나자 칭기스 칸은 아들들에게 조용히 훈계를 내렸다. 그는 우구데이를 후계자로 지명하고 유촉을 모두 마친 뒤 이렇게 충고했다... 
'... 나는 집안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싶지 않다. 나의 명성과 영예를 지키며 저승으로 가겠노라...' 
... 그는 말을 모두 마친 뒤 두 아들(우구데이, 톨루이)에게 작별을 고했다. 두 아들을 각자의 울루스로 돌려보내고, 자신은 군대를 이끌고 낭기야스(북중국과의 변경) 방면으로 향했다."
- [몽골제국 연대기], <1-3. 대외원정과 제국의 팽창>, 라시드 앗딘, 김호동 편역, 2024.


칭기스 칸(1162~1227)이 동북의 만주와 남방의 북인도, 서남의 이집트와 서북의 러시아 지방까지 원정했을 때, 몽골 군대의 목표는 '세계정복'까지는 아니었다. 
북방 유목민족들이 으레 그러했듯 부족한 물자와 식량을 얻기 위한 전방위적인 약탈이 주된 목적이었을 것이다. 그것을 위해 칭기스 칸의 장수 수부데이는 네비게이션이나 항법장치 없이, 심지어 증원부대도 없이 장장 8천 킬로미터를 달렸다. 오래전 알렉산더도 4천 8백 킬로미터 밖에 다니지 못했다고 한다. 
참고로 지구의 반지름은 6천 4백 킬로미터(지름 1만 3천 / 적도 평균 둘레 4만 킬로미터) 정도 된단다.

1206년 호랑이해, 40대 중반에 몽골 일대 부족들을 통일하고 '가장 강력한 군주'를 뜻하는 '칭기스 칸'으로 즉위한 후 20년 간 쉼 없이 아시아 일대를 제패한 '칭기스 칸(본명 '테무진')'은 죽음을 앞두고서도 아들들에게 유언만 남긴 채 군대를 이끌고 전장으로 나섰다. 그의 마지막 전장은 '카라 키타이(거란)'와 '키타이(북중국)', '탕구트(서하)'와 '쥬르첸(여진)' 등 북중국 일대의 변경이었던 낭기야스 전선이었다. 아마도 모든 전사들이 그랬던 듯, 칭기스 칸 또한 우리의 불멸의 이순신 장군처럼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는 진짜 최후의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사기가 떨어질까 염려했기 때문이었을 텐데, 칭기스 칸은 수하들에게 슬퍼하거나 회군하지 말고 탕구트인들이 나오는 족족 모두 죽이라고 했고 남은 수하들은 그의 명령대로 실제로 보이는 탕구트 족을 모두 살육했다고 한다. 칭기스 칸의 몽골 군대는 사전에 항복한 자들과 이미 점령당한 자들에게는 다소 '관대'하기도 했고 정복한 지방에는 종교와 행정, 문화 등에서 어느 정도 '자율성'을 인정했다고는 하나 기본적으로 적을 무자비하게 살육하고 파괴하는 데 능했다. 2백년 후 칭기스 칸의 '후예'를 자처한 중앙아시아의 티무르가 36년 간의 원정 과정에서 1천 7백만 명을 죽였다는데, 칭기스 칸과 그 일족들이 벌인 2백년 간의 원정에서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도륙되었을지 상상도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세들의 '세계사'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칭기스 칸의 대제국 '예케 몽골 울루스(대몽골국)'는 그의 정복 의도가 무엇이었든, 아시아 대륙을 무대로 동서양이 교류하고 문명을 교환하면서 새로운 문화가 용광로처럼 샘솟는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냥을 좋아하는 사람은 주치와 함께 하도록 하라.
법령과 규범과 관례와 성훈들에 대해서 잘 알기를 원하는 사람은 차가다이에게 가라.
관용과 은사와 재화를 원하는 사람은 우구데이를 가까이 하라.
용맹과 명성과 승리, 그리고 세계정복을 희망하는 사람은 톨루이를 모시도록 하라."
- [몽골제국 연대기], <2-1. 우구데이 칸의 세계정복전>, 라시드 앗딘, 김호동 편역, 2024.


몽골제국이 본격적으로 '세계정복'을 표방한 것은, 칭기스 칸의 셋째 아들 '우구데이'가 '카안(대칸)'이 된 후부터였다. 

칭기스 칸의 첫째 아들 주치는 어쩌면 친자가 아닐 수도 있었고 오래전부터 북방 러시아와 서북의 킵착 지방 등으로 원정을 보낸 후 멀어졌으며, 둘째 차가다이는 첫째 주치와 반목과 갈등도 있었다. 주치와 차가다이 두 아들 모두 용맹했으되, 칭기스 칸에게는 인자하고 관대한-어쩌면 사치스러운- 셋째 우구데이가 대외원정을 관장할 '칸'으로 적합하다 생각했을지 모르겠다. 몽골의 관습에 의하면 아버지의 목지와 재산은 막내 아들이 책임진다고 했다는데, 칭기스 칸의 후계는 셋째 우구데이가 이었지만, 과연 칭기스 칸의 막내 아들 톨루이의 아들들은 후에 4대 대칸 뭉케와 5대 대칸 쿠빌라이가 된다.

칭기스 칸의 사후 그의 아들들은 아버지의 유지를 잘 받들었다. 둘째 차가다이와 막내 톨루이는 셋째 우구데이의 대칸(카안) 즉위에 반대하지 않았고 오히려 자진하여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우구데이 카안의 아들 구육이 즉위 3년만에 급사한 후 칭기스 칸의 막내 톨루이 집안은 톨루이의 아들 뭉케를 중심으로 쿠데타를 획책한다. 칭기스 칸의 장자 주치 가문과 둘째 차가다이 가문과의 연합을 통해 셋째 우구데이 가문 계승의 맥을 끊고는 뭉케가 4대 카안이 된다. 이후 뭉케의 동생 쿠빌라이가 즉위할 때는 역시 같은 항렬의 동생 아릭 부케와 카안(대칸)의 경쟁자로서 권력투쟁의 내전을 치른다.

결국 뭉케와 쿠빌라이 권력교체는 칭기스 칸의 막내아들 톨루이의 직계에서만 이루어지게 되는데, 심각한 내전을 치른 쿠빌라이와 아릭 부케 사이에 있던 형제가 바로 서방의 '훌레구 울루스(일-칸국)'를 열었던 '훌레구 칸'이었다.


"(칸의) 이같은 명령들에 따라 나는 상술한 종족들에 속한 덕망있고 탁월한 사람들에게 탐문하고 과거의 서적들에 기록된 내용을 수집하여 지상의 여러 지역의 보편적인 역사를 서술한 <세계 민족지>를 집필했다. 또한 그것의 보충으로 여러 경역의 지도와 도로에 관한 <세게 경역지>를 편찬하여 이 <가잔 축복사>의 속편으로 삼았다. 이렇게 세 부분으로 이루어진 책 전체를 [집사(集史)]라고 이름했다."
- [집사], <서언>, 라시드 앗딘, 1317. ([몽골제국 연대기], <에필로그>, 김호동 편역, 2024.)


'최초의 세계사'라는 명성을 얻은 역사책이 있다. 
바로 라시드 앗딘 하마다니(Rashid al-Din Hamadani : ?~1319)가 지은 [집사(集史)](1317)다. 
이 책은 위에서 말한 '훌레구 울루스(훌레구 칸국)'의 4대 칸 가잔의 명으로 페르시아 출신의 지식인이자 재상인 라시드 앗딘의 주관 하에 편찬한 '칭기스 칸 일족의 연대사'였다. 가잔 칸이 죽고 그의 형제 울제이투 칸이 새로 명령을 내려 칭기스 일족이 정복한 민족들과 영토들의 역사를 두루 수집하여 증보/편찬한 저작을 일컬어 [집사]라 했기에 '세계사'라 일컬어졌다.

즉, 칭기스 일족의 '세계정복'-북방의 주치  울루스(칸국), 중앙의 차가다이 울루스(칸국), 서남쪽의 훌레구 울루스(일-칸국)과 동방의 카안 울루스(원나라)- 자체가 대양을 건너기 전이었던 당시의 '세계사'에 걸맞는 영역이었기에 '가잔 칸이 축복을 내린 역사', 즉 <가잔 축복사>로 불린 1권 '몽골제국 연대기'가 '세계사'의 토대를 깔아주었고, 울제이투의 명에 따라 2권과 3권으로 엮인 <세계 민족지>와 <세계 경역지>가 '세계사'로서의 구색을 더 맞춰주게 된 것이다.


"역사가의 임무는 여러 종족들 사이에 전해지는 일화와 사실들을, 그들이 갖고 있는 서책 속에 기록된 것이나 혹은 구전을 통해 전해지는 방식대로, 즉 그들 사이에 통용되는 유명한 책자나 덕망있는 명사들의 입을 통해서 얻은 내용을 진술하고 집필하는 것이다."
- [집사], <서언>, 라시드 앗딘, 1317. ([몽골제국 연대기], <에필로그>, 김호동 편역, 2024.)


라시드 앗딘은 가잔 칸의 뒤를 이은 울제이투의 명에 따라 <가잔 축복사>, <세계 민족지>와 <세계 경역지>를 엮은 [집사]를 완성한 후 '에필로그'와 같은 <서언>을 마지막으로 집필하는데, 역사 서술은 '확실한' 것 같은 '사실'만을 서술하는 것을 넘어 각 지방의 민족들이 그들의 말과 글로 전하는 내용을 수집하고 엮어서 집필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의 '중심'을 자처하는 자들의 언어로만 역사적 사실을 말하고 적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란 드물게 일어나는 기이한 정황과 놀라운 사건들을 입수하고 정리하여 그것을 글로 적고 책에 기록한 것임은 지혜로운 분들이 모두 인정하는 바이다. 각 시대의 좋고 나쁘고 중요한 사건들을 모사하여 후손들에게 귀감이 되게 하고, 지나간 시대의 정황을 다가올 시대에 알리며, 그렇게 함으로써 유명한 군주나 강력한 국왕들에 관한 설명이 시대의 페이지 위에 영원히 남도록 하는 것이 바로 학자의 임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건과 사실들은 시간의 경과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사라져 버리고 말 것이다."
- [집사], <서언>, 라시드 앗딘, 1317. ([몽골제국 연대기], <프롤로그>, 김호동 편역, 2024.)


몽골제국 칭기스 일족의 '단대사'가 감히 '최초의 세계사'가 된 라시드 앗딘의 역사서 [집사]의 원제는 [연대기의 집성(Jami al-Tawarikh)]인데, 위와 같은 몽골제국 연대기로서의 1권 <가잔 축복사>에 2권 <세계 민족지>와 3권 <세계 경역지>가 합체하면서(집성/集成), '세계사(집사/集史)'가 된 것이다.

라시드 앗딘은 무슬림 지식인으로서 쇠퇴해가는 몽골 제국의 변방 '훌레구 울루스(일-칸국)'가 칭기스 일족 정통성을 위해 추진한 관변 역사서 편찬을 총괄했고, 세계 여러 민족들과 강역들의 이야기를 그들의 글과 말을 통해 수집하는 임무를 맡았을 게다. 

그러나 칭기스 일족의 강역이 너무도 넓었기에 각 민족과 지역의 자율성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겸손한 역사가'로서의 면모를 보이게 되었을 수도 있겠다.

내가 읽기에,
라시드 앗딘의 [집사]가 '최초의 세계사'인 이유는 다름아닌 역사가의 이러한 '겸손'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몽골 제국 역사의 '대칸'이라 불리는 서울대 동양사학과 김호동 교수께서 요약해 주신 덕분에,
말로만 듣던 라시드 앗딘의 [집사]를 한 권으로 읽게 되어 감사한 마음이다.


***

1. [몽골제국 연대기(집사/集史)](1317), 라시드 앗딘 하마다니(Rashid al-Din Hamadani), 김호동 편역, <사계절>, 2024.
2. [칭기스의 교환](2012), 티모시 메이(Timothy May), 권용철 옮김, <사계절>, 2020.
3. [티무르 승전기(자파르나마/Zafar-nama)](1424), 샤라프 앗딘 알리 야즈디(Sharaf al-Din Ali Yazdi), 이주연 편역, <사계절>,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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