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운 신부의 지혜 동서 미스터리 북스 111
G. K. 체스터튼 지음, 박용숙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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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소설은 언제나, '반전' - 4 : 체스터튼의 '반전' 원리들
- [브라운 신부(Father Brown) 전집 - 1~5], 길버트 체스터튼, 1911~1935.


추리소설 또는 미스터리 소설의 백미인 '대반전'을 '본격적'으로 즐겨 보고자, 추리소설만을 위한 추리소설을 쓴 '본격파' 미스터리 소설의 대가 존 딕슨 카(John Dickson Carr : 1906~1977)를 다시 찾아 읽었으나, 실망을 남긴 채 19세기말~20세기 초 셜록 홈즈의 아서 코넌 도일(Arther Conan Doyle : 1859~1930)과 함께 영국 추리소설계의 쌍벽을 이루었다는 길버트 키스 체스터튼(Gilbert Keith Chesterton : 1874~1936)을 찾았다.

과연,
미스터리 소설 또는 추리소설의 '반전'은 어떠해야 하는가.


"지(知)적인 추리소설의 진짜 목적은 독자를 '당황'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알게(知)' 하는 것이다. 그것도 일련의 진실들이 충격적으로 독자들에게 폭로되는 방법으로 알게 만드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훨씬 더 고상한 추리물에서도 진실을 가리는 목적은 단순히 신비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설명(知)'하기 위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 목적이 애매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분명히 밝히는 데 있다. 그것도 섬광처럼 깜짝 놀랄 만한 형식으로."
- <추리소설의 오류들>, 길버트 체스터튼, 1920.8.28. 장유미 옮김, ([브라운 신부 전집 3 - 의심], <북하우스>, 2002.)


체스터튼의 단편 추리소설에 나오는 '탐정'은 '브라운 신부(Father Brown)'다. 
영국 에섹스 시골 출신인 이 가톨릭 신부는 사제이므로 정식 '탐정'은 아닌데, 추리소설이 으레 그렇듯 사건(특히 '살인사건')의 현장에 어쩐 일인지 늘 등장하여 사법적 과학수사 보다는 심리와 상황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통해 등장인물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사람을 범인으로 지목한다.

원래는 평론가이자 시인의 기질을 지닌 체스터튼은 이 브라운 신부가 등장하는 추리소설을 주로 단편 형식으로 수십 편 썼다.
1911년 [동심(결백:Innocence)]이라는 첫번째 단편집을 냈고, 1914년에는 [지혜(Wisdom)], 1926~1927년에 [의심(Incredulity)]와 [비밀(Secret)]을, 1935년 마지막으로 [스캔들(Scandal)]을 발표한다.

내가 올해 3월 아들의 입대 후 마음이 허전하여 책이 잘 읽히지 않아 지금껏 6개월 동안 '미스터리 소설'의 고전적 계보를 나름대로 추적해 보고자 마을 도서관 서가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던 <동서문화사>의 '동서미스터리북스(DMB)' 전집에는 체스터튼이 1920년 가톨릭으로 개종하기 전 발표한 [동심(결백)](1911)과 [지혜](1914)만 번역되어 나왔고, 가톨릭 개종 후 출간한 단편집 [의심](1926), [비밀](1927), [스캔들](1935)은 <북하우스> 출판사에서 앞의 두 단편집에 이어 총 다섯 권으로 완역되어 나왔다.

다시 평론가 체스터튼 이야기로 돌아오면, 그는 '추리소설'에 관한 이론적 칼럼을 1920년대 이후 많이 발표했단다. <북하우스>의 [브라운 신부 전집 1~5]의 각 권 마지막 장에는 그의 추리소설 칼럼이 한 편씩 번역되어 있어서 추리소설의 '반전'에 관한 체스터튼의 이론을 엿볼 수 있다.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원칙은 추리소설의 목적이 모든 다른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명확히 밝히는 것이라는 점이다... '비밀'을 숨기는 것만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숨길 가치가 있는) '비밀' 자체도 필요하다...
두번째 중요한 원칙은 추리소설의 정수는 '간결성'에 있다는 것이다. 비밀은 복잡하게 나타날 수도 있지만, '단순'해야 한다...
셋째로, 모든 것을 설명하고 있는 사실이나 인물들은 가능한 한 '익숙'한 사실이나 인물이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내가 제시한 제1규칙들 중 하나이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매개체는 생소한 기능을 하는 아주 익숙한 대상이어야 한다. 우리가 깨닫는 것이 우리가 인식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것은 눈에 띄는 동시에 이유가 있어야 한다..."
- <추리소설 쓰는 법>, 체스터튼, 1925.10. 'G.K.'s Weekly' 칼럼 중, 김은정 옮김, ([브라운 신부 전집 4 - 비밀], <북하우스>, 2002.)

정리하면 이렇다.

추리소설의 '반전'은,
1. 독자들을 당황하게 하지만 말고 작가의 분명한 설명을 통해 지적으로 알게 할 것 (<추리소설의 오류들>, 1920.8.)
2. 범인과 그 발각 과정은 '단순성'과 명확성', '간결성', 그리고 '익숙함'일 것 (<추리소설 쓰는 법>, 1925.10.)
3. 인간 본성의 '모순'을 이용해 아무 상관이 없을 것 같은 '현상'이 먼저 제시된 후 나중에 모순된 '본질'을 이용해 뒤엎을 것 (<이상적인 추리소설>, 1930.10.)


"범죄와 아무런 상관이 없을 듯한 인물을 먼저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나서 일어난 범죄가, 앞서 말했던 설정들을 완전히 뒤집어버리는 것이다. 이후에는 물론, 심리적으로 납득을 시키는 과정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 인간 본성의 모순이란 사실, 최후 심판의 날이나 죽음의 순간 만큼이나 끔찍하고 충격적인 것이다... 범죄와 고백은 둘 다 낙뢰와도 같은 파국을 야기할 수 있다. 사실 '이상적인 추리소설'이란 사람들에게 세상이 속임수로만 가득찬 것이 아니라 번갯불처럼 들쭉날쭉한 것도 있으면 칼처럼 곧은 것도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주는 순기능을 하는 것이다."
- <이상적인 추리소설>, 체스터튼, 1930.10. 이수현 옮김, ([브라운 신부 전집 5 - 스캔들], <북하우스>, 2002.)


이런 추리소설 '반전'의 원리들을 체스터튼은 1911년부터 1935년까지 수십편의 비슷비슷한 단편들을 통해 '브라운 신부'의 활약과 함께 실험하고 있다.


1. [동심(결백:The Innocence)] - 1911


"'범죄라는 것은 다른 모든 예술 작품과 다름이 없습니다.' 라고 (브라운) 신부는 천천히 말했다. '놀랄 것 없습니다. 결코 범죄만이 지옥의 아틀리에에서 생겨나는 유일한 예술 작품이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러나 숭엄한 작품이거나 악마적인 작품이거나 예술 작품이라고 이름이 붙은 것에는 반드시 한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아무리 완성된 모습은 복잡해 보이더라도 그 중심은 언제나 '단순'하다는 것입니다... 이번 사건 역시 '검정 옷'을 입은 사나이의 '간단 명료'한 비극입니다... 이 사건 전체가 한 벌의 검은 옷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지요...'"
- [브라운 신부의 동심], <기묘한 발걸음 소리>, 체스터튼, 1911.

단편 <기묘한 발걸음 소리>를 보면, 추리소설 '반전'의 '단순성'과 '명료성'을 중심으로 사건 해결의 단초를 보여주는데, 첫 단편 <푸른 십자가>에서 회개시키기 시작한 희대의 세계적 대도둑 플랑보의 '단순성'에 기반한 변장술을 간파하고 재차 설득하나 또다시 회개시키는 데 실패한다. 물론, 절도사건은 간단히 해결하였고 머지 않아 대도 플랑보는 신부에게 설복당해 도둑질을 그만두고는 탐정 사무소를 열고는 브라운 신부의 든든한 보디가드가 된다.


"살라딘은 프랑스의 프리 메이슨(자유주의자)에 속하는 강렬한 무신론자였으므로 (브라운) 신부가 나서면 그의 마음을 흥분하게 할 뿐이었다. 한편 상대방 젊은이는 신부이건 속인이건 그 마음을 움직이게 할 수 없었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풍모와 다갈색 눈을 가진 이 젊은이는 청교도보다도 더 단호한 '이교도'였다. 이 지구의 여명기에 그대로 남아있는 단순한 참살자, 석기시대의 사람으로 돌같이 완고한 사람이었다."
- [브라운 신부의 동심], <살라딘 공작의 죄악>, 체스터튼, 1911.

<살라딘 공작의 죄악>에서는 누구나 당연시하는 현상을 뒤엎어 버리는 체스터튼 특유의 고전적 수법이 돋보인다. 즉, 다들 살라딘 공작으로 알고 있던 인물이 사실은 공작이 이니었다는 식. 
한편 가톨릭 사제인 브라운 신부를 통해 당시 '자유주의자'는 '무신론자'로, 가톨릭과 개신교 영역 밖의 종교와 관념들은 '이단' 또는 '이교도'로 명확히 하면서 말이다. 
물론, 모든 살인사건의 범인은 처음에는 그 '무신론자'와 '이단자'들인 것처럼 몰아가지만 단 한편도 그들이 범인인 적은 없다. 
이것 또한 체스터튼의 고전적 '반전' 트릭이다.


"'그러시다면?' 의사는 음험하게 말했다.
'첫째로,' 브라운 신부는 어디까지나 침착하게 설명했다. '이 사건은 역시 당신의 관할입니다. 결코 형이상의 문제 같은 것이 아닙니다. 대장장이는 잘못 생각하고 있어요. 그리고 그 일격이 신의 짓이라는 주장보다는 오히려 그것이 기적에 의해 일어났다는 주장에서 잘못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기적 따위가 아니오... 대령의 머리를 때려부순 힘은 과학자가 벌써 알고 있는 힘입니다. 자연 법칙 가운데서도 특히 종종 논의의 대상이 되고 았는 힘....'"
- [브라운 신부의 동심], <신의 철퇴>, 체스터튼, 1911.

<신의 철퇴>에서는 모두가 믿는 신의 종교적 징벌인 듯한 살인사건을, 그런 '초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지극히 '자연과학적' 요인('중력')에 의한 사건임을 브라운 신부가 밝혀낸다. 
신의 종복인 사제이지만 사건을 종교적 관점이 아닌 과학적이고 상식적인 관점에서 플어나가는 또 다른 '반전' 포인트 되시겠다.


2. [지혜(The Wisdom)] - 1914


"브라운 신부는 두 사람을 한 몸에 합쳐놓은 듯한 사람이었다. 말하자면, 그는 앵초처럼 겸허하며 괘종시계처럼 꼼꼼한 면이 있어 아무리 하찮은 의무사항들이라도 성실하게 이행하고,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변화를 줄 생각 같은 것은 결코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반면에, 사색가로서의 그는 단순하면서도 강인하여 일단 생각에 빠져들면 그것을 멈추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물론 지적인 범위 안에서 그 생각은 늘 자유로운 방향으로 흘렀다. 그는 심지어 무의식 속에서조차 스스로에게 물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물어본 후에 가능한 많은 대답들을 생각해보려고 했으며, 그에게 있어 그러한 사고의 과정은 숨쉬기나 혈액순환과 마찬가지로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렇게 다른 두 개의 면이 지금 그 안에서 투쟁을 벌이고 있었다."
- [브라운 신부 전집 2 - 지혜], <크레이 중령의 샐러드>, 체스터튼, 1914.

여러 단편에서 항상 동그랗고 큰 머리, 작고 꾸부정한 자세, 머저리 같은 커다란 검은 박쥐우산 등으로 묘사되며 우수꽝스러운 외모로 그려지는 브라운 신부는 외형과 내실이 상반된 '모순'을 통해 또 하나의 일관되게 전개되는 '반전'적 요소가 된다.


3. [의심(The Incredulity)] - 1926


"... 두 분은 자신이 범인으로 지목될 거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기 때문에 범행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가 되는 이야기를 해주신 겁니다... 죄가 없는 사람만이 그럴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성급하고 수상한 태도를 보일 수 있는 거지요... 하지만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을 만들어놓고 나중에 펄쩍 뛰면서 자기 스스로가 제시한 생각을 격렬하게 부인한 겁니다. 그런 행동은 자신이 제시한 내용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는 증거가 됩니다. 살인자의 자의식은 항상 과민하게 바짝 서 있어서 처음부터 사건과의 연관성을 잊는 법이 없고, 급기야는 부인하기 위해 모든 일을 기억하게 되죠. 그래서 저는 이 두 분을 제외했습니다..."
- [브라운 신부 전집 3 - 의심], <하늘에서 날아온 화살>, 체스터튼, 1926.

<하늘에서 날아온 화살> 같은 단편에서는 처음에 범인으로 지목되기애 너무도 당연해 보이는 인물들이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점을 '반전'적으로 보여준다.

추리소설의 중요한 '반전' 포인트.
처음에 누가 봐도 살인자 같은 인물들을 반드시 등장시키고, 심지어 누명까지 씌우라. 
그리고는 그 '무신론자'와 '이교도', '흑인'과 '인도인' 등의 피식민지인들이 범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대반전'을 통해 폭로하라.


4. [비밀(The Secret)] - 1927


"강한 햇빛이 작은 초록 불꽃처럼 작고 흔들리는 잎사귀들의 얇은 베일에 비춰들고 있었다. 나무에 수백 개의 입이 달린 듯 나무 주변에 온갖 새들이 지저귀고 있었다."
- [브라운 신부 전집 4 - 비밀], <보드리 경 실종사건>, 체스터튼, 1927.

원래 평론가였고 시인적 기질이 강했던 체스터튼은 대부분의 작품에서 풍경과 배경, 인물들에 대한 묘사가 매우 '시(詩)'적이다.
거의 모든 단편들의 처음은 지역 풍경과 주요 등장인물에 대한 세밀하고 '시(詩)'적인 묘사로 시작된다.


5. [스캔들(The Scandal)] - 1935.


"브라운 신부는 계속 그 (시체가 바닥에 묻힌) 방 안에서만 반복해서 맴돌던 것에 주목했었다. 헨리는 건설 작업을 중단시켜 놓고서, 그곳에서 허버트를 목졸라 죽이고 뚫을 수 없는 바닥 밑에 그 시체를 숨긴 것이었다. '핀'에 찔린 일이 그의 의심의 출발점이었지만, 그것은 결과적으로 그가 긴 거짓말의 고리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핀 끝이 가리킨 것'은 그것이 아무 것도 가리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 [브라운 신부 전집 5 - 스캔들], <핀 끝이 가리킨 것>, 체스터튼, 1935.

이제 주인공 '브라운 신부', 아니 작가 길버트 키스 체스터튼의 '사상'에 대해 얘기할 시간이다. 

1935년에 발표한 '브라운 신부 전집' 마지막 5권은 [스캔들]이다. 
이미, 전집의 1~2권인 [동심(결백)](1911)과 [지혜](1914) 이후 [의심](1926)에 이르면 브라운 신부는 더 이상 영국만이 아니라 대서양 건너 미국에서도 유명인사가 되어 있다. 신부는 더 이상 '회개'하고 사설 탐정을 하며 완력으로 그를 돕는 '플랑보'라는 든든한 보디가드 없이도 수많은 살인사건을 해결한 해외 '셀럽'이 되어 있다.

1920년 가톨릭으로 개종한 영향인지는 모르겠으나, 단편집 [의심](1926) 이후로는 가톨릭의 색채가 더욱 강해진 느낌이다. 
'무신론자'(자유주의자)들은 물론 '흑인' 또는 식민자 인도로 대표되는 아시아적 '이교도'들의 등장은 강화된다. 물론, 체스터튼의 '반전' 원리에 따라 이 '무신론자'와 '이단자'는 결코 살인자가 아니다. 
체스터튼의 당시 제국주의적 한계를 지닌 가톨릭에 따라 어쩔 수 없이 그들 '이교도' 또는 '이단자'들은 편견의 대상일지언정, 어쨌든 그의 추리소설 '반전'의 원리에 따라 결코 살인자가 될 수 없다.

1935년의 전집 5권 [스캔들]에서는 소련 스탈린주의 영향이었는지, '노동조합' 운동과 '볼셰비키' 이야기도 등장한다.

단편 <핀 끝이 가리킨 것>에서는 건설산업 노동조합 운동의 부상과 이에 직장폐쇄로 맞대응하던 자본가 계급의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다. 물론, 예외없이 체스터튼의 '반전' 원리에 따라 자본가를 죽인 범인은 그를 단체행동으로 압박한 노동계급이 아니라, 믿었던 자본가 동업자(조카)였다.


"물론 공산주의는 '이단'적인 사상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이단'적인 사상은 아닙니다.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건 자본주의지요. 혹은 사멸한 다윈주의로 가장한 '자본주의 악덕'이라고나 할까요... 자연에서는 약육강식, 적자생존이 법칙이라는 말, 가난한 사람들이 정당하게 봉급을 받든 말든 상관없다는 얘기들 말입니다. 아, 그거야말로 사람들이 익숙해져버린 '이단'적인 사상입니다. 그거야말로 공산주의만큼이나 사악한 소리지요. 너무나 당연스럽게 받아들여진 '반기독교적인 도덕', 아니면 '부도덕'이라고 해야 할까요. 오늘 한 사내를 살인자로 만든 것도 그 '부도덕'입니다."
- [브라운 신부 전집 5 - 스캔들], <공산주의자>, 체스터튼, 1935.

역시 [스캔들](1935)의 마지막 단편 <공산주의자>에서 또한 귀족, 자본가 같은 지배계급의 일원들을 독살한 범인은 누구나 의심할 만한 '공산주의자'(볼셰비키)가 아닌, 지배계급의 하수인인 회계사로 '반전'된다.

물론, 가톨릭 사상에 따라 당시 불평등의 주요 원인이었던 '악덕 자본주의'의 '부도덕'이 살인사건의 주요 원인이자 전말이었다.

가톨릭 사상답게 방점은,
'자본주의'가 아닌,
'불평등'의 '부도덕'이었고,
더욱 중요한 것은 체스터튼 식의 추리소설 '반전'의 이론적 원리였다.

이제,
6개월 간의 내 나름대로 추리소설 또는 미스터리 소설 '계보 추적'도 끝나간다.

그리고, 
<동서미스터리북스> 전집들과도 진정 이별할 시간이 온 듯 하다.

그리하여 그 마지막은,
미스터리와 SF의 가교 같은,
아이작 아시모프(Isacc Asimov : 1920~1992)로 잡고 그의 단편집 [흑거미 클럽](1970년대)를 마지막 벗으로 삼아 마을 도서관을 나선다.

***

1. [브라운 신부의 동심](1911), 체스터튼, 박용숙 옮김, <동서문화사>, 1977~2003.
2. [브라운 신부의 지혜](1914), 체스터튼, 박용숙 옮김, <동서문화사>, 1977~2003.
3. [브라운 신부 전집 1 - 결백(The Innocence of Father Brown)](1911), G.K.Chesterton, 홍희정 옮김, <북하우스>, 2002~2016.
4. [브라운 신부 전집 2 - 지혜(The Wisdom of Father Brown)](1914), 체스터튼, 봉명화 옮김, <북하우스>, 2002~2017.
5. [브라운 신부 전집 3 - 의심(The Incredulity of Father Brown)](1926), 체스터튼, 장유미 옮김, <북하우스>, 2002~2012.
6. [브라운 신부 전집 4 - 비밀(The Secret of Father Brown)](1927), 체스터튼, 김은정 옮김, <북하우스>, 2002~2013.
7. [브라운 신부 전집 5 - 스캔들(The Scandal of Father Brown)](1935), 체스터튼, 이수현 옮김, <북하우스>, 2002~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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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소설은 언제나, '반전' - 4 : 체스터튼의 '반전' 원리들
- [브라운 신부(Father Brown) 전집 - 1~5], 길버트 체스터튼, 1911~1935.


추리소설 또는 미스터리 소설의 백미인 '대반전'을 '본격적'으로 즐겨 보고자, 추리소설만을 위한 추리소설을 쓴 '본격파' 미스터리 소설의 대가 존 딕슨 카(John Dickson Carr : 1906~1977)를 다시 찾아 읽었으나, 실망을 남긴 채 19세기말~20세기 초 셜록 홈즈의 아서 코넌 도일(Arther Conan Doyle : 1859~1930)과 함께 영국 추리소설계의 쌍벽을 이루었다는 길버트 키스 체스터튼(Gilbert Keith Chesterton : 1874~1936)을 찾았다.

과연,
미스터리 소설 또는 추리소설의 '반전'은 어떠해야 하는가.


"지(知)적인 추리소설의 진짜 목적은 독자를 '당황'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알게(知)' 하는 것이다. 그것도 일련의 진실들이 충격적으로 독자들에게 폭로되는 방법으로 알게 만드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훨씬 더 고상한 추리물에서도 진실을 가리는 목적은 단순히 신비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설명(知)'하기 위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 목적이 애매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분명히 밝히는 데 있다. 그것도 섬광처럼 깜짝 놀랄 만한 형식으로."
- <추리소설의 오류들>, 길버트 체스터튼, 1920.8.28. 장유미 옮김, ([브라운 신부 전집 3 - 의심], <북하우스>, 2002.)


체스터튼의 단편 추리소설에 나오는 '탐정'은 '브라운 신부(Father Brown)'다. 
영국 에섹스 시골 출신인 이 가톨릭 신부는 사제이므로 정식 '탐정'은 아닌데, 추리소설이 으레 그렇듯 사건(특히 '살인사건')의 현장에 어쩐 일인지 늘 등장하여 사법적 과학수사 보다는 심리와 상황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통해 등장인물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사람을 범인으로 지목한다.

원래는 평론가이자 시인의 기질을 지닌 체스터튼은 이 브라운 신부가 등장하는 추리소설을 주로 단편 형식으로 수십 편 썼다.
1911년 [동심(결백:Innocence)]이라는 첫번째 단편집을 냈고, 1914년에는 [지혜(Wisdom)], 1926~1927년에 [의심(Incredulity)]와 [비밀(Secret)]을, 1935년 마지막으로 [스캔들(Scandal)]을 발표한다.

내가 올해 3월 아들의 입대 후 마음이 허전하여 책이 잘 읽히지 않아 지금껏 6개월 동안 '미스터리 소설'의 고전적 계보를 나름대로 추적해 보고자 마을 도서관 서가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던 <동서문화사>의 '동서미스터리북스(DMB)' 전집에는 체스터튼이 1920년 가톨릭으로 개종하기 전 발표한 [동심(결백)](1911)과 [지혜](1914)만 번역되어 나왔고, 가톨릭 개종 후 출간한 단편집 [의심](1926), [비밀](1927), [스캔들](1935)은 <북하우스> 출판사에서 앞의 두 단편집에 이어 총 다섯 권으로 완역되어 나왔다.

다시 평론가 체스터튼 이야기로 돌아오면, 그는 '추리소설'에 관한 이론적 칼럼을 1920년대 이후 많이 발표했단다. <북하우스>의 [브라운 신부 전집 1~5]의 각 권 마지막 장에는 그의 추리소설 칼럼이 한 편씩 번역되어 있어서 추리소설의 '반전'에 관한 체스터튼의 이론을 엿볼 수 있다.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원칙은 추리소설의 목적이 모든 다른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명확히 밝히는 것이라는 점이다... '비밀'을 숨기는 것만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숨길 가치가 있는) '비밀' 자체도 필요하다...
두번째 중요한 원칙은 추리소설의 정수는 '간결성'에 있다는 것이다. 비밀은 복잡하게 나타날 수도 있지만, '단순'해야 한다...
셋째로, 모든 것을 설명하고 있는 사실이나 인물들은 가능한 한 '익숙'한 사실이나 인물이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내가 제시한 제1규칙들 중 하나이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매개체는 생소한 기능을 하는 아주 익숙한 대상이어야 한다. 우리가 깨닫는 것이 우리가 인식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것은 눈에 띄는 동시에 이유가 있어야 한다..."
- <추리소설 쓰는 법>, 체스터튼, 1925.10. 'G.K.'s Weekly' 칼럼 중, 김은정 옮김, ([브라운 신부 전집 4 - 비밀], <북하우스>, 2002.)

정리하면 이렇다.

추리소설의 '반전'은,
1. 독자들을 당황하게 하지만 말고 작가의 분명한 설명을 통해 지적으로 알게 할 것 (<추리소설의 오류들>, 1920.8.)
2. 범인과 그 발각 과정은 '단순성'과 명확성', '간결성', 그리고 '익숙함'일 것 (<추리소설 쓰는 법>, 1925.10.)
3. 인간 본성의 '모순'을 이용해 아무 상관이 없을 것 같은 '현상'이 먼저 제시된 후 나중에 모순된 '본질'을 이용해 뒤엎을 것 (<이상적인 추리소설>, 1930.10.)


"범죄와 아무런 상관이 없을 듯한 인물을 먼저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나서 일어난 범죄가, 앞서 말했던 설정들을 완전히 뒤집어버리는 것이다. 이후에는 물론, 심리적으로 납득을 시키는 과정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 인간 본성의 모순이란 사실, 최후 심판의 날이나 죽음의 순간 만큼이나 끔찍하고 충격적인 것이다... 범죄와 고백은 둘 다 낙뢰와도 같은 파국을 야기할 수 있다. 사실 '이상적인 추리소설'이란 사람들에게 세상이 속임수로만 가득찬 것이 아니라 번갯불처럼 들쭉날쭉한 것도 있으면 칼처럼 곧은 것도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주는 순기능을 하는 것이다."
- <이상적인 추리소설>, 체스터튼, 1930.10. 이수현 옮김, ([브라운 신부 전집 5 - 스캔들], <북하우스>, 2002.)


이런 추리소설 '반전'의 원리들을 체스터튼은 1911년부터 1935년까지 수십편의 비슷비슷한 단편들을 통해 '브라운 신부'의 활약과 함께 실험하고 있다.


1. [동심(결백:The Innocence)] - 1911


"'범죄라는 것은 다른 모든 예술 작품과 다름이 없습니다.' 라고 (브라운) 신부는 천천히 말했다. '놀랄 것 없습니다. 결코 범죄만이 지옥의 아틀리에에서 생겨나는 유일한 예술 작품이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러나 숭엄한 작품이거나 악마적인 작품이거나 예술 작품이라고 이름이 붙은 것에는 반드시 한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아무리 완성된 모습은 복잡해 보이더라도 그 중심은 언제나 '단순'하다는 것입니다... 이번 사건 역시 '검정 옷'을 입은 사나이의 '간단 명료'한 비극입니다... 이 사건 전체가 한 벌의 검은 옷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지요...'"
- [브라운 신부의 동심], <기묘한 발걸음 소리>, 체스터튼, 1911.

단편 <기묘한 발걸음 소리>를 보면, 추리소설 '반전'의 '단순성'과 '명료성'을 중심으로 사건 해결의 단초를 보여주는데, 첫 단편 <푸른 십자가>에서 회개시키기 시작한 희대의 세계적 대도둑 플랑보의 '단순성'에 기반한 변장술을 간파하고 재차 설득하나 또다시 회개시키는 데 실패한다. 물론, 절도사건은 간단히 해결하였고 머지 않아 대도 플랑보는 신부에게 설복당해 도둑질을 그만두고는 탐정 사무소를 열고는 브라운 신부의 든든한 보디가드가 된다.


"살라딘은 프랑스의 프리 메이슨(자유주의자)에 속하는 강렬한 무신론자였으므로 (브라운) 신부가 나서면 그의 마음을 흥분하게 할 뿐이었다. 한편 상대방 젊은이는 신부이건 속인이건 그 마음을 움직이게 할 수 없었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풍모와 다갈색 눈을 가진 이 젊은이는 청교도보다도 더 단호한 '이교도'였다. 이 지구의 여명기에 그대로 남아있는 단순한 참살자, 석기시대의 사람으로 돌같이 완고한 사람이었다."
- [브라운 신부의 동심], <살라딘 공작의 죄악>, 체스터튼, 1911.

<살라딘 공작의 죄악>에서는 누구나 당연시하는 현상을 뒤엎어 버리는 체스터튼 특유의 고전적 수법이 돋보인다. 즉, 다들 살라딘 공작으로 알고 있던 인물이 사실은 공작이 이니었다는 식. 
한편 가톨릭 사제인 브라운 신부를 통해 당시 '자유주의자'는 '무신론자'로, 가톨릭과 개신교 영역 밖의 종교와 관념들은 '이단' 또는 '이교도'로 명확히 하면서 말이다. 
물론, 모든 살인사건의 범인은 처음에는 그 '무신론자'와 '이단자'들인 것처럼 몰아가지만 단 한편도 그들이 범인인 적은 없다. 
이것 또한 체스터튼의 고전적 '반전' 트릭이다.


"'그러시다면?' 의사는 음험하게 말했다.
'첫째로,' 브라운 신부는 어디까지나 침착하게 설명했다. '이 사건은 역시 당신의 관할입니다. 결코 형이상의 문제 같은 것이 아닙니다. 대장장이는 잘못 생각하고 있어요. 그리고 그 일격이 신의 짓이라는 주장보다는 오히려 그것이 기적에 의해 일어났다는 주장에서 잘못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기적 따위가 아니오... 대령의 머리를 때려부순 힘은 과학자가 벌써 알고 있는 힘입니다. 자연 법칙 가운데서도 특히 종종 논의의 대상이 되고 았는 힘....'"
- [브라운 신부의 동심], <신의 철퇴>, 체스터튼, 1911.

<신의 철퇴>에서는 모두가 믿는 신의 종교적 징벌인 듯한 살인사건을, 그런 '초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지극히 '자연과학적' 요인('중력')에 의한 사건임을 브라운 신부가 밝혀낸다. 
신의 종복인 사제이지만 사건을 종교적 관점이 아닌 과학적이고 상식적인 관점에서 플어나가는 또 다른 '반전' 포인트 되시겠다.


2. [지혜(The Wisdom)] - 1914


"브라운 신부는 두 사람을 한 몸에 합쳐놓은 듯한 사람이었다. 말하자면, 그는 앵초처럼 겸허하며 괘종시계처럼 꼼꼼한 면이 있어 아무리 하찮은 의무사항들이라도 성실하게 이행하고,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변화를 줄 생각 같은 것은 결코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반면에, 사색가로서의 그는 단순하면서도 강인하여 일단 생각에 빠져들면 그것을 멈추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물론 지적인 범위 안에서 그 생각은 늘 자유로운 방향으로 흘렀다. 그는 심지어 무의식 속에서조차 스스로에게 물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물어본 후에 가능한 많은 대답들을 생각해보려고 했으며, 그에게 있어 그러한 사고의 과정은 숨쉬기나 혈액순환과 마찬가지로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렇게 다른 두 개의 면이 지금 그 안에서 투쟁을 벌이고 있었다."
- [브라운 신부 전집 2 - 지혜], <크레이 중령의 샐러드>, 체스터튼, 1914.

여러 단편에서 항상 동그랗고 큰 머리, 작고 꾸부정한 자세, 머저리 같은 커다란 검은 박쥐우산 등으로 묘사되며 우수꽝스러운 외모로 그려지는 브라운 신부는 외형과 내실이 상반된 '모순'을 통해 또 하나의 일관되게 전개되는 '반전'적 요소가 된다.


3. [의심(The Incredulity)] - 1926


"... 두 분은 자신이 범인으로 지목될 거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기 때문에 범행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가 되는 이야기를 해주신 겁니다... 죄가 없는 사람만이 그럴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성급하고 수상한 태도를 보일 수 있는 거지요... 하지만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을 만들어놓고 나중에 펄쩍 뛰면서 자기 스스로가 제시한 생각을 격렬하게 부인한 겁니다. 그런 행동은 자신이 제시한 내용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는 증거가 됩니다. 살인자의 자의식은 항상 과민하게 바짝 서 있어서 처음부터 사건과의 연관성을 잊는 법이 없고, 급기야는 부인하기 위해 모든 일을 기억하게 되죠. 그래서 저는 이 두 분을 제외했습니다..."
- [브라운 신부 전집 3 - 의심], <하늘에서 날아온 화살>, 체스터튼, 1926.

<하늘에서 날아온 화살> 같은 단편에서는 처음에 범인으로 지목되기애 너무도 당연해 보이는 인물들이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점을 '반전'적으로 보여준다.

추리소설의 중요한 '반전' 포인트.
처음에 누가 봐도 살인자 같은 인물들을 반드시 등장시키고, 심지어 누명까지 씌우라. 
그리고는 그 '무신론자'와 '이교도', '흑인'과 '인도인' 등의 피식민지인들이 범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대반전'을 통해 폭로하라.


4. [비밀(The Secret)] - 1927


"강한 햇빛이 작은 초록 불꽃처럼 작고 흔들리는 잎사귀들의 얇은 베일에 비춰들고 있었다. 나무에 수백 개의 입이 달린 듯 나무 주변에 온갖 새들이 지저귀고 있었다."
- [브라운 신부 전집 4 - 비밀], <보드리 경 실종사건>, 체스터튼, 1927.

원래 평론가였고 시인적 기질이 강했던 체스터튼은 대부분의 작품에서 풍경과 배경, 인물들에 대한 묘사가 매우 '시(詩)'적이다.
거의 모든 단편들의 처음은 지역 풍경과 주요 등장인물에 대한 세밀하고 '시(詩)'적인 묘사로 시작된다.


5. [스캔들(The Scandal)] - 1935.


"브라운 신부는 계속 그 (시체가 바닥에 묻힌) 방 안에서만 반복해서 맴돌던 것에 주목했었다. 헨리는 건설 작업을 중단시켜 놓고서, 그곳에서 허버트를 목졸라 죽이고 뚫을 수 없는 바닥 밑에 그 시체를 숨긴 것이었다. '핀'에 찔린 일이 그의 의심의 출발점이었지만, 그것은 결과적으로 그가 긴 거짓말의 고리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핀 끝이 가리킨 것'은 그것이 아무 것도 가리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 [브라운 신부 전집 5 - 스캔들], <핀 끝이 가리킨 것>, 체스터튼, 1935.

이제 주인공 '브라운 신부', 아니 작가 길버트 키스 체스터튼의 '사상'에 대해 얘기할 시간이다. 

1935년에 발표한 '브라운 신부 전집' 마지막 5권은 [스캔들]이다. 
이미, 전집의 1~2권인 [동심(결백)](1911)과 [지혜](1914) 이후 [의심](1926)에 이르면 브라운 신부는 더 이상 영국만이 아니라 대서양 건너 미국에서도 유명인사가 되어 있다. 신부는 더 이상 '회개'하고 사설 탐정을 하며 완력으로 그를 돕는 '플랑보'라는 든든한 보디가드 없이도 수많은 살인사건을 해결한 해외 '셀럽'이 되어 있다.

1920년 가톨릭으로 개종한 영향인지는 모르겠으나, 단편집 [의심](1926) 이후로는 가톨릭의 색채가 더욱 강해진 느낌이다. 
'무신론자'(자유주의자)들은 물론 '흑인' 또는 식민자 인도로 대표되는 아시아적 '이교도'들의 등장은 강화된다. 물론, 체스터튼의 '반전' 원리에 따라 이 '무신론자'와 '이단자'는 결코 살인자가 아니다. 
체스터튼의 당시 제국주의적 한계를 지닌 가톨릭에 따라 어쩔 수 없이 그들 '이교도' 또는 '이단자'들은 편견의 대상일지언정, 어쨌든 그의 추리소설 '반전'의 원리에 따라 결코 살인자가 될 수 없다.

1935년의 전집 5권 [스캔들]에서는 소련 스탈린주의 영향이었는지, '노동조합' 운동과 '볼셰비키' 이야기도 등장한다.

단편 <핀 끝이 가리킨 것>에서는 건설산업 노동조합 운동의 부상과 이에 직장폐쇄로 맞대응하던 자본가 계급의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다. 물론, 예외없이 체스터튼의 '반전' 원리에 따라 자본가를 죽인 범인은 그를 단체행동으로 압박한 노동계급이 아니라, 믿었던 자본가 동업자(조카)였다.


"물론 공산주의는 '이단'적인 사상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이단'적인 사상은 아닙니다.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건 자본주의지요. 혹은 사멸한 다윈주의로 가장한 '자본주의 악덕'이라고나 할까요... 자연에서는 약육강식, 적자생존이 법칙이라는 말, 가난한 사람들이 정당하게 봉급을 받든 말든 상관없다는 얘기들 말입니다. 아, 그거야말로 사람들이 익숙해져버린 '이단'적인 사상입니다. 그거야말로 공산주의만큼이나 사악한 소리지요. 너무나 당연스럽게 받아들여진 '반기독교적인 도덕', 아니면 '부도덕'이라고 해야 할까요. 오늘 한 사내를 살인자로 만든 것도 그 '부도덕'입니다."
- [브라운 신부 전집 5 - 스캔들], <공산주의자>, 체스터튼, 1935.

역시 [스캔들](1935)의 마지막 단편 <공산주의자>에서 또한 귀족, 자본가 같은 지배계급의 일원들을 독살한 범인은 누구나 의심할 만한 '공산주의자'(볼셰비키)가 아닌, 지배계급의 하수인인 회계사로 '반전'된다.

물론, 가톨릭 사상에 따라 당시 불평등의 주요 원인이었던 '악덕 자본주의'의 '부도덕'이 살인사건의 주요 원인이자 전말이었다.

가톨릭 사상답게 방점은,
'자본주의'가 아닌,
'불평등'의 '부도덕'이었고,
더욱 중요한 것은 체스터튼 식의 추리소설 '반전'의 이론적 원리였다.

이제,
6개월 간의 내 나름대로 추리소설 또는 미스터리 소설 '계보 추적'도 끝나간다.

그리고, 
<동서미스터리북스> 전집들과도 진정 이별할 시간이 온 듯 하다.

그리하여 그 마지막은,
미스터리와 SF의 가교 같은,
아이작 아시모프(Isacc Asimov : 1920~1992)로 잡고 그의 단편집 [흑거미 클럽](1970년대)를 마지막 벗으로 삼아 마을 도서관을 나선다.

***

1. [브라운 신부의 동심](1911), 체스터튼, 박용숙 옮김, <동서문화사>, 1977~2003.
2. [브라운 신부의 지혜](1914), 체스터튼, 박용숙 옮김, <동서문화사>, 1977~2003.
3. [브라운 신부 전집 1 - 결백(The Innocence of Father Brown)](1911), G.K.Chesterton, 홍희정 옮김, <북하우스>, 2002~2016.
4. [브라운 신부 전집 2 - 지혜(The Wisdom of Father Brown)](1914), 체스터튼, 봉명화 옮김, <북하우스>, 2002~2017.
5. [브라운 신부 전집 3 - 의심(The Incredulity of Father Brown)](1926), 체스터튼, 장유미 옮김, <북하우스>, 2002~2012.
6. [브라운 신부 전집 4 - 비밀(The Secret of Father Brown)](1927), 체스터튼, 김은정 옮김, <북하우스>, 2002~2013.
7. [브라운 신부 전집 5 - 스캔들(The Scandal of Father Brown)](1935), 체스터튼, 이수현 옮김, <북하우스>, 2002~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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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세트] 세계 3대 탐정, 브라운 신부 전집 (전5권)
G.K.체스터튼 / 북하우스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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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소설은 언제나, '반전' - 4 : 체스터튼의 '반전' 원리들
- [브라운 신부(Father Brown) 전집 - 1~5], 길버트 체스터튼, 1911~1935.


추리소설 또는 미스터리 소설의 백미인 '대반전'을 '본격적'으로 즐겨 보고자, 추리소설만을 위한 추리소설을 쓴 '본격파' 미스터리 소설의 대가 존 딕슨 카(John Dickson Carr : 1906~1977)를 다시 찾아 읽었으나, 실망을 남긴 채 19세기말~20세기 초 셜록 홈즈의 아서 코넌 도일(Arther Conan Doyle : 1859~1930)과 함께 영국 추리소설계의 쌍벽을 이루었다는 길버트 키스 체스터튼(Gilbert Keith Chesterton : 1874~1936)을 찾았다.

과연,
미스터리 소설 또는 추리소설의 '반전'은 어떠해야 하는가.


"지(知)적인 추리소설의 진짜 목적은 독자를 '당황'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알게(知)' 하는 것이다. 그것도 일련의 진실들이 충격적으로 독자들에게 폭로되는 방법으로 알게 만드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훨씬 더 고상한 추리물에서도 진실을 가리는 목적은 단순히 신비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설명(知)'하기 위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 목적이 애매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분명히 밝히는 데 있다. 그것도 섬광처럼 깜짝 놀랄 만한 형식으로."
- <추리소설의 오류들>, 길버트 체스터튼, 1920.8.28. 장유미 옮김, ([브라운 신부 전집 3 - 의심], <북하우스>, 2002.)


체스터튼의 단편 추리소설에 나오는 '탐정'은 '브라운 신부(Father Brown)'다. 
영국 에섹스 시골 출신인 이 가톨릭 신부는 사제이므로 정식 '탐정'은 아닌데, 추리소설이 으레 그렇듯 사건(특히 '살인사건')의 현장에 어쩐 일인지 늘 등장하여 사법적 과학수사 보다는 심리와 상황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통해 등장인물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사람을 범인으로 지목한다.

원래는 평론가이자 시인의 기질을 지닌 체스터튼은 이 브라운 신부가 등장하는 추리소설을 주로 단편 형식으로 수십 편 썼다.
1911년 [동심(결백:Innocence)]이라는 첫번째 단편집을 냈고, 1914년에는 [지혜(Wisdom)], 1926~1927년에 [의심(Incredulity)]와 [비밀(Secret)]을, 1935년 마지막으로 [스캔들(Scandal)]을 발표한다.

내가 올해 3월 아들의 입대 후 마음이 허전하여 책이 잘 읽히지 않아 지금껏 6개월 동안 '미스터리 소설'의 고전적 계보를 나름대로 추적해 보고자 마을 도서관 서가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던 <동서문화사>의 '동서미스터리북스(DMB)' 전집에는 체스터튼이 1920년 가톨릭으로 개종하기 전 발표한 [동심(결백)](1911)과 [지혜](1914)만 번역되어 나왔고, 가톨릭 개종 후 출간한 단편집 [의심](1926), [비밀](1927), [스캔들](1935)은 <북하우스> 출판사에서 앞의 두 단편집에 이어 총 다섯 권으로 완역되어 나왔다.

다시 평론가 체스터튼 이야기로 돌아오면, 그는 '추리소설'에 관한 이론적 칼럼을 1920년대 이후 많이 발표했단다. <북하우스>의 [브라운 신부 전집 1~5]의 각 권 마지막 장에는 그의 추리소설 칼럼이 한 편씩 번역되어 있어서 추리소설의 '반전'에 관한 체스터튼의 이론을 엿볼 수 있다.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원칙은 추리소설의 목적이 모든 다른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명확히 밝히는 것이라는 점이다... '비밀'을 숨기는 것만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숨길 가치가 있는) '비밀' 자체도 필요하다...
두번째 중요한 원칙은 추리소설의 정수는 '간결성'에 있다는 것이다. 비밀은 복잡하게 나타날 수도 있지만, '단순'해야 한다...
셋째로, 모든 것을 설명하고 있는 사실이나 인물들은 가능한 한 '익숙'한 사실이나 인물이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내가 제시한 제1규칙들 중 하나이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매개체는 생소한 기능을 하는 아주 익숙한 대상이어야 한다. 우리가 깨닫는 것이 우리가 인식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것은 눈에 띄는 동시에 이유가 있어야 한다..."
- <추리소설 쓰는 법>, 체스터튼, 1925.10. 'G.K.'s Weekly' 칼럼 중, 김은정 옮김, ([브라운 신부 전집 4 - 비밀], <북하우스>, 2002.)

정리하면 이렇다.

추리소설의 '반전'은,
1. 독자들을 당황하게 하지만 말고 작가의 분명한 설명을 통해 지적으로 알게 할 것 (<추리소설의 오류들>, 1920.8.)
2. 범인과 그 발각 과정은 '단순성'과 명확성', '간결성', 그리고 '익숙함'일 것 (<추리소설 쓰는 법>, 1925.10.)
3. 인간 본성의 '모순'을 이용해 아무 상관이 없을 것 같은 '현상'이 먼저 제시된 후 나중에 모순된 '본질'을 이용해 뒤엎을 것 (<이상적인 추리소설>, 1930.10.)


"범죄와 아무런 상관이 없을 듯한 인물을 먼저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나서 일어난 범죄가, 앞서 말했던 설정들을 완전히 뒤집어버리는 것이다. 이후에는 물론, 심리적으로 납득을 시키는 과정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 인간 본성의 모순이란 사실, 최후 심판의 날이나 죽음의 순간 만큼이나 끔찍하고 충격적인 것이다... 범죄와 고백은 둘 다 낙뢰와도 같은 파국을 야기할 수 있다. 사실 '이상적인 추리소설'이란 사람들에게 세상이 속임수로만 가득찬 것이 아니라 번갯불처럼 들쭉날쭉한 것도 있으면 칼처럼 곧은 것도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주는 순기능을 하는 것이다."
- <이상적인 추리소설>, 체스터튼, 1930.10. 이수현 옮김, ([브라운 신부 전집 5 - 스캔들], <북하우스>, 2002.)


이런 추리소설 '반전'의 원리들을 체스터튼은 1911년부터 1935년까지 수십편의 비슷비슷한 단편들을 통해 '브라운 신부'의 활약과 함께 실험하고 있다.


1. [동심(결백:The Innocence)] - 1911


"'범죄라는 것은 다른 모든 예술 작품과 다름이 없습니다.' 라고 (브라운) 신부는 천천히 말했다. '놀랄 것 없습니다. 결코 범죄만이 지옥의 아틀리에에서 생겨나는 유일한 예술 작품이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러나 숭엄한 작품이거나 악마적인 작품이거나 예술 작품이라고 이름이 붙은 것에는 반드시 한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아무리 완성된 모습은 복잡해 보이더라도 그 중심은 언제나 '단순'하다는 것입니다... 이번 사건 역시 '검정 옷'을 입은 사나이의 '간단 명료'한 비극입니다... 이 사건 전체가 한 벌의 검은 옷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지요...'"
- [브라운 신부의 동심], <기묘한 발걸음 소리>, 체스터튼, 1911.

단편 <기묘한 발걸음 소리>를 보면, 추리소설 '반전'의 '단순성'과 '명료성'을 중심으로 사건 해결의 단초를 보여주는데, 첫 단편 <푸른 십자가>에서 회개시키기 시작한 희대의 세계적 대도둑 플랑보의 '단순성'에 기반한 변장술을 간파하고 재차 설득하나 또다시 회개시키는 데 실패한다. 물론, 절도사건은 간단히 해결하였고 머지 않아 대도 플랑보는 신부에게 설복당해 도둑질을 그만두고는 탐정 사무소를 열고는 브라운 신부의 든든한 보디가드가 된다.


"살라딘은 프랑스의 프리 메이슨(자유주의자)에 속하는 강렬한 무신론자였으므로 (브라운) 신부가 나서면 그의 마음을 흥분하게 할 뿐이었다. 한편 상대방 젊은이는 신부이건 속인이건 그 마음을 움직이게 할 수 없었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풍모와 다갈색 눈을 가진 이 젊은이는 청교도보다도 더 단호한 '이교도'였다. 이 지구의 여명기에 그대로 남아있는 단순한 참살자, 석기시대의 사람으로 돌같이 완고한 사람이었다."
- [브라운 신부의 동심], <살라딘 공작의 죄악>, 체스터튼, 1911.

<살라딘 공작의 죄악>에서는 누구나 당연시하는 현상을 뒤엎어 버리는 체스터튼 특유의 고전적 수법이 돋보인다. 즉, 다들 살라딘 공작으로 알고 있던 인물이 사실은 공작이 이니었다는 식. 
한편 가톨릭 사제인 브라운 신부를 통해 당시 '자유주의자'는 '무신론자'로, 가톨릭과 개신교 영역 밖의 종교와 관념들은 '이단' 또는 '이교도'로 명확히 하면서 말이다. 
물론, 모든 살인사건의 범인은 처음에는 그 '무신론자'와 '이단자'들인 것처럼 몰아가지만 단 한편도 그들이 범인인 적은 없다. 
이것 또한 체스터튼의 고전적 '반전' 트릭이다.


"'그러시다면?' 의사는 음험하게 말했다.
'첫째로,' 브라운 신부는 어디까지나 침착하게 설명했다. '이 사건은 역시 당신의 관할입니다. 결코 형이상의 문제 같은 것이 아닙니다. 대장장이는 잘못 생각하고 있어요. 그리고 그 일격이 신의 짓이라는 주장보다는 오히려 그것이 기적에 의해 일어났다는 주장에서 잘못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기적 따위가 아니오... 대령의 머리를 때려부순 힘은 과학자가 벌써 알고 있는 힘입니다. 자연 법칙 가운데서도 특히 종종 논의의 대상이 되고 았는 힘....'"
- [브라운 신부의 동심], <신의 철퇴>, 체스터튼, 1911.

<신의 철퇴>에서는 모두가 믿는 신의 종교적 징벌인 듯한 살인사건을, 그런 '초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지극히 '자연과학적' 요인('중력')에 의한 사건임을 브라운 신부가 밝혀낸다. 
신의 종복인 사제이지만 사건을 종교적 관점이 아닌 과학적이고 상식적인 관점에서 플어나가는 또 다른 '반전' 포인트 되시겠다.


2. [지혜(The Wisdom)] - 1914


"브라운 신부는 두 사람을 한 몸에 합쳐놓은 듯한 사람이었다. 말하자면, 그는 앵초처럼 겸허하며 괘종시계처럼 꼼꼼한 면이 있어 아무리 하찮은 의무사항들이라도 성실하게 이행하고,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변화를 줄 생각 같은 것은 결코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반면에, 사색가로서의 그는 단순하면서도 강인하여 일단 생각에 빠져들면 그것을 멈추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물론 지적인 범위 안에서 그 생각은 늘 자유로운 방향으로 흘렀다. 그는 심지어 무의식 속에서조차 스스로에게 물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물어본 후에 가능한 많은 대답들을 생각해보려고 했으며, 그에게 있어 그러한 사고의 과정은 숨쉬기나 혈액순환과 마찬가지로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렇게 다른 두 개의 면이 지금 그 안에서 투쟁을 벌이고 있었다."
- [브라운 신부 전집 2 - 지혜], <크레이 중령의 샐러드>, 체스터튼, 1914.

여러 단편에서 항상 동그랗고 큰 머리, 작고 꾸부정한 자세, 머저리 같은 커다란 검은 박쥐우산 등으로 묘사되며 우수꽝스러운 외모로 그려지는 브라운 신부는 외형과 내실이 상반된 '모순'을 통해 또 하나의 일관되게 전개되는 '반전'적 요소가 된다.


3. [의심(The Incredulity)] - 1926


"... 두 분은 자신이 범인으로 지목될 거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기 때문에 범행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가 되는 이야기를 해주신 겁니다... 죄가 없는 사람만이 그럴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성급하고 수상한 태도를 보일 수 있는 거지요... 하지만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을 만들어놓고 나중에 펄쩍 뛰면서 자기 스스로가 제시한 생각을 격렬하게 부인한 겁니다. 그런 행동은 자신이 제시한 내용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는 증거가 됩니다. 살인자의 자의식은 항상 과민하게 바짝 서 있어서 처음부터 사건과의 연관성을 잊는 법이 없고, 급기야는 부인하기 위해 모든 일을 기억하게 되죠. 그래서 저는 이 두 분을 제외했습니다..."
- [브라운 신부 전집 3 - 의심], <하늘에서 날아온 화살>, 체스터튼, 1926.

<하늘에서 날아온 화살> 같은 단편에서는 처음에 범인으로 지목되기애 너무도 당연해 보이는 인물들이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점을 '반전'적으로 보여준다.

추리소설의 중요한 '반전' 포인트.
처음에 누가 봐도 살인자 같은 인물들을 반드시 등장시키고, 심지어 누명까지 씌우라. 
그리고는 그 '무신론자'와 '이교도', '흑인'과 '인도인' 등의 피식민지인들이 범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대반전'을 통해 폭로하라.


4. [비밀(The Secret)] - 1927


"강한 햇빛이 작은 초록 불꽃처럼 작고 흔들리는 잎사귀들의 얇은 베일에 비춰들고 있었다. 나무에 수백 개의 입이 달린 듯 나무 주변에 온갖 새들이 지저귀고 있었다."
- [브라운 신부 전집 4 - 비밀], <보드리 경 실종사건>, 체스터튼, 1927.

원래 평론가였고 시인적 기질이 강했던 체스터튼은 대부분의 작품에서 풍경과 배경, 인물들에 대한 묘사가 매우 '시(詩)'적이다.
거의 모든 단편들의 처음은 지역 풍경과 주요 등장인물에 대한 세밀하고 '시(詩)'적인 묘사로 시작된다.


5. [스캔들(The Scandal)] - 1935.


"브라운 신부는 계속 그 (시체가 바닥에 묻힌) 방 안에서만 반복해서 맴돌던 것에 주목했었다. 헨리는 건설 작업을 중단시켜 놓고서, 그곳에서 허버트를 목졸라 죽이고 뚫을 수 없는 바닥 밑에 그 시체를 숨긴 것이었다. '핀'에 찔린 일이 그의 의심의 출발점이었지만, 그것은 결과적으로 그가 긴 거짓말의 고리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핀 끝이 가리킨 것'은 그것이 아무 것도 가리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 [브라운 신부 전집 5 - 스캔들], <핀 끝이 가리킨 것>, 체스터튼, 1935.

이제 주인공 '브라운 신부', 아니 작가 길버트 키스 체스터튼의 '사상'에 대해 얘기할 시간이다. 

1935년에 발표한 '브라운 신부 전집' 마지막 5권은 [스캔들]이다. 
이미, 전집의 1~2권인 [동심(결백)](1911)과 [지혜](1914) 이후 [의심](1926)에 이르면 브라운 신부는 더 이상 영국만이 아니라 대서양 건너 미국에서도 유명인사가 되어 있다. 신부는 더 이상 '회개'하고 사설 탐정을 하며 완력으로 그를 돕는 '플랑보'라는 든든한 보디가드 없이도 수많은 살인사건을 해결한 해외 '셀럽'이 되어 있다.

1920년 가톨릭으로 개종한 영향인지는 모르겠으나, 단편집 [의심](1926) 이후로는 가톨릭의 색채가 더욱 강해진 느낌이다. 
'무신론자'(자유주의자)들은 물론 '흑인' 또는 식민자 인도로 대표되는 아시아적 '이교도'들의 등장은 강화된다. 물론, 체스터튼의 '반전' 원리에 따라 이 '무신론자'와 '이단자'는 결코 살인자가 아니다. 
체스터튼의 당시 제국주의적 한계를 지닌 가톨릭에 따라 어쩔 수 없이 그들 '이교도' 또는 '이단자'들은 편견의 대상일지언정, 어쨌든 그의 추리소설 '반전'의 원리에 따라 결코 살인자가 될 수 없다.

1935년의 전집 5권 [스캔들]에서는 소련 스탈린주의 영향이었는지, '노동조합' 운동과 '볼셰비키' 이야기도 등장한다.

단편 <핀 끝이 가리킨 것>에서는 건설산업 노동조합 운동의 부상과 이에 직장폐쇄로 맞대응하던 자본가 계급의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다. 물론, 예외없이 체스터튼의 '반전' 원리에 따라 자본가를 죽인 범인은 그를 단체행동으로 압박한 노동계급이 아니라, 믿었던 자본가 동업자(조카)였다.


"물론 공산주의는 '이단'적인 사상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이단'적인 사상은 아닙니다.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건 자본주의지요. 혹은 사멸한 다윈주의로 가장한 '자본주의 악덕'이라고나 할까요... 자연에서는 약육강식, 적자생존이 법칙이라는 말, 가난한 사람들이 정당하게 봉급을 받든 말든 상관없다는 얘기들 말입니다. 아, 그거야말로 사람들이 익숙해져버린 '이단'적인 사상입니다. 그거야말로 공산주의만큼이나 사악한 소리지요. 너무나 당연스럽게 받아들여진 '반기독교적인 도덕', 아니면 '부도덕'이라고 해야 할까요. 오늘 한 사내를 살인자로 만든 것도 그 '부도덕'입니다."
- [브라운 신부 전집 5 - 스캔들], <공산주의자>, 체스터튼, 1935.

역시 [스캔들](1935)의 마지막 단편 <공산주의자>에서 또한 귀족, 자본가 같은 지배계급의 일원들을 독살한 범인은 누구나 의심할 만한 '공산주의자'(볼셰비키)가 아닌, 지배계급의 하수인인 회계사로 '반전'된다.

물론, 가톨릭 사상에 따라 당시 불평등의 주요 원인이었던 '악덕 자본주의'의 '부도덕'이 살인사건의 주요 원인이자 전말이었다.

가톨릭 사상답게 방점은,
'자본주의'가 아닌,
'불평등'의 '부도덕'이었고,
더욱 중요한 것은 체스터튼 식의 추리소설 '반전'의 이론적 원리였다.

이제,
6개월 간의 내 나름대로 추리소설 또는 미스터리 소설 '계보 추적'도 끝나간다.

그리고, 
<동서미스터리북스> 전집들과도 진정 이별할 시간이 온 듯 하다.

그리하여 그 마지막은,
미스터리와 SF의 가교 같은,
아이작 아시모프(Isacc Asimov : 1920~1992)로 잡고 그의 단편집 [흑거미 클럽](1970년대)를 마지막 벗으로 삼아 마을 도서관을 나선다.

***

1. [브라운 신부의 동심](1911), 체스터튼, 박용숙 옮김, <동서문화사>, 1977~2003.
2. [브라운 신부의 지혜](1914), 체스터튼, 박용숙 옮김, <동서문화사>, 1977~2003.
3. [브라운 신부 전집 1 - 결백(The Innocence of Father Brown)](1911), G.K.Chesterton, 홍희정 옮김, <북하우스>, 2002~2016.
4. [브라운 신부 전집 2 - 지혜(The Wisdom of Father Brown)](1914), 체스터튼, 봉명화 옮김, <북하우스>, 2002~2017.
5. [브라운 신부 전집 3 - 의심(The Incredulity of Father Brown)](1926), 체스터튼, 장유미 옮김, <북하우스>, 2002~2012.
6. [브라운 신부 전집 4 - 비밀(The Secret of Father Brown)](1927), 체스터튼, 김은정 옮김, <북하우스>, 2002~2013.
7. [브라운 신부 전집 5 - 스캔들(The Scandal of Father Brown)](1935), 체스터튼, 이수현 옮김, <북하우스>, 2002~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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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수집광사건 동서 미스터리 북스 60
존 딕슨 카 지음, 김우종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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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소설은 언제나, '반전' - 3
- [모자수집광사건], 존 딕슨 카, 1933.


'본격파' 추리소설의 대가, 존 딕슨 카의 [화형법정](1937)을 읽고 다소 실망했으나, 이대로 그를 보낼 수가 없어 마을도서관의 <동서미스터리북스(DMB)> 서가를 뒤져서 딕슨 카의 소설 한 권을 더 찾아 대출했다.

미스터리 소설의 백미가 바로 '대반전'이라, 추리소설을 위한 가상의 설정에 기반한 '본격파'의 거장 존 딕슨 카의 신비주의적 '반전'에 다시 한 번 기대를 걸면서 말이다.


"런던 탑.
...
런던 탑은 궁전이며, 성채며, 그리고 감옥이었다. 찰스 스튜어트가 그 긴 망명 생활에서 왕좌에 복귀할 때까지 이곳은 국왕의 궁전이었으며, 오늘날도 왕실의 소유임에는 변함이 없다. 옛날 마상 시합이 열렸던 워털루 병영에서는 밤낮으로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지고, 근위 기병의 구두 소리가 높이 울려 온다. 푸른 잔디밭 나무 그늘에는 분수가 반짝이는 물을 뿜어 올리고 까마귀 떼들이 날아든다. 그러나 이 광장이야말로 그 옛날 눈을 가린 남녀들이 몇 단의 계단을 조용히 올라가서 단두대에 목을 바친 장소이다. 흐려서 추운 날에는 템스 강에서 연기 같은 안개가 피어오른다. 그 안개에 싸이게 되면 자동차 소리며 마차 소리도 멀리서 들리는 것같이 되고, 둥근 탑의 흉벽도 희미하게 꺼져 버린다. 강변을 오르내리는 배들의 기적 소리가 비명에 가까운 메아리를 남길 뿐이다."
- [모자수집광사건], <역적문의 시체>, 존 딕슨 카, 1933.


미국 출생이지만 유럽에서 주로 작품활동을 했던 존 딕슨 카(John Dickson Carr : 1906~1977)의 작품 배경은 주로 영국과 프랑스를 오고가는 유럽이다. [화형법정](1937)은 미국이 배경이긴 하나 [모자수집광사건](1934)의 배경은 딕슨 카 배우자의 고국인 영국이다.

대영제국 절대왕권에 의해 참수형을 당한 원혼들이 떠돌고 있을 것만 같은 '런던 탑'에서 시체가 발견된 '모자수집광' 살인사건은 영국 특유의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짙은 안개에 둘러싸인 채 신사 계층의 '모자(hat)를 훔친 미치광이(The Mad Hatter)'에 의해 저질러진 것으로 의심된다. 
런던 경시청 주임경감 해드리는 애초에 이 기이한 모자 절도사건이 심상치 않다고 여겨 명탐정 기디언 펠 박사에게 도움을 요청하는데, 영국의 은퇴한 보수정치인 윌리엄 비튼 경의 모자들이 도난당하고 런던 탑에서 발견된 시체가 비튼 경의 조카이자 '모자수집광사건'을 대서특필한 신입 신문기자 필립 드리스콜로 밝혀지면서 용의자들은 역시 윌리엄 비튼 집안을 둘러싼 '밀실'과도 같은 '한정형' 살인사건으로 압축된다.

여기에 역시 존 딕슨 카답게 사건의 주요 매개로서 '신비주의'적 요소가 개입된다.


"'내가 발견한 그 원고(고본;稿本)는' 하고 윌리엄 경은 되풀이했다. '에드거 앨런 포의 원고요. 아직 한 번도 발표하지 않은 소설이지요. 나 자신과 감정한 사람, 그리고 포 외에는 아무도 듣지도 보지도 못한 작품이오. 어떻소, 믿을 수 없을 정도지요?'
그의 얼굴에는 광기에 가까운 기쁨이 넘쳐 흐르고 있었다. 그는 입을 다문 채 소리를 죽여 웃으며 뒷말을 이었다.
'자, 잘 들어 보시오. 그 고본은 포의 작품 가운데 세상에 알려진 어떤 작품보다도 초기에 쓴 것이라오. 이것도 유명한 이야기지만, [모르그 거리의 살인]의 원고만 해도 쓰레기통 속에서 발견되었다고 하지 않소. 더구나 이것은 그것보다도 훨씬 높은 수준에 속하는 작품이오. 아주 멋진 걸작 바로 그것이지요. 나는 그것을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 [모자수집광사건], <고본(稿本)과 살인>, 존 딕슨 카, 1933.


바로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 : 1809~1849)의 미공개 작품으로 [모르그가(街)의 살인](1841)보다 먼저 씌어진 최초의 탐정소설의 초고본이 도난당한 것이다. 

이 '고본(稿本)'은 윌리엄 비튼 경이 미국에 갔을 때 포가 집필하던 옛집에서 우연히 발견한 원고본으로 포의 천재탐정 오거스트 뒤팽이 처음 등장한 작품으로 소설 속에서 소개되고 있지만, 실제 이야기가 아닌 허구에 불과하다. 
내가 읽기로는 그런 작품은 있을 법 하지 않은데, 뒤팽이 처음 등장하는 것으로 알려진 [모르그가의 살인]의 서두에는 뒤팽의 등장을 알리는 사전 설명의 포석이 매우 지루할 정도로 길고 치밀하게 깔리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제 정말 존 딕슨 카에게 이별을 고할 때가 왔다는 생각이 든 건, [모자수집광사건](1933)의 '반전'이 매우 석연치 않기 때문이었다.

포의 미공개 초고본을 도난당한 윌리엄 비튼 경의 동생 레스터 비튼의 부인 로라와 피살자 드리스콜의 부적절한 관계, 안개낀 런던의 도처에서 이들을 미행하는 여탐정 래킨 부인, 한편으로 고서적 수집가인 미국인 줄리어스 아버 등과의 얽힌 관계 속에서 '한정형' 또는 '폐쇄형' 설정으로 전형적인 '본격파' 추리소설의 전개는 익숙하고도 정겹다. 사실 내가 추리소설의 매력으로 꼽는 점이 바로 이 폐쇄적이고 고즈넉한 '한정형' 인물들간의 관계설정이다. 

또한 그닥 친절하지 않은 서술로 결말을 공개하는 딕슨 카답게 '반전'은 어느 정도 예상되기도 한다. 
포의 귀한 미공개 초고본의 도난이 살인사건과 연관되므로 당연히 살인자는 대놓고 고서적 수집가인 아버는 아닐테고, 살인자로 예상되던 레스터 비튼이 소설 후반부에 자살하게 되면서 소설의 '반전'은 정말 예상하지 못했던 인물이 살인자로 드러나는 결말로 치닫게 된다. 그러다 보니, 살인자의 자백으로 역추적되는 살인사건의 전모를 보면 억지스럽기까지 하다.

모든 걸 이미 다 알게 된 명탐정 정신과의사 기디언 펠 박시는 물론 해드리 경감까지 합세하여 살인자의 범죄행위를 눈감아 주고 '모자수집광 살인사건' 일체를 '미해결'로 결론짓는 과정과 이유 모두 매우 석연치 않다.

존 딕슨 카의 다른 작품들의 복잡한 '트릭'들과 '반전'들은 다소 억지스럽기는 해도, '본격파' 추리소설의 '고전'다운 면이 있었다. 
그러나 [해골성](1931)과 [세 개의 관](1935) 사이에 발표된 [모자수집광사건](1933)의 마지막 '미해결 반전'을 온전히 이해하기는 나로서는 쉽지 않다.

내가 읽기엔,
[모자수집광사건]의 '반전'은,
'반전'이 아니다.

일찍이 존 딕슨 카의 데뷔(1930)로부터 약 10년 전인 1920년대에 영국의 추리소설가 길버트 체스터튼은 '추리소설'에 관한 어느 칼럼(<추리소설의 오류들>, 1920.8.28.)에서 말했다. 
추리소설은 독자를 당황케 하는 것만을 목적으로 해서는 안되며, 그 결론은 단순하고 명료하게 설명될 수 있어야 한다고 말이다.

그리하여 이제 나는,
고전 추리소설의 나름대로 역사추적을 마무리하기 위해,
길버트 키스 체스터튼(Gilbert Keith Chesterton : 1874~1936)의 '브라운 신부(Father Brown) 시리즈'로 간다.

아서 코넌 도일(1859~1930)과 함께 영국 추리소설의 쌍두마차로 평가되는 길버트 체스터튼(1874~1936)의 '브라운 신부' 단편집에서 펼쳐지는 추리소설식 '반전'의 고전적 전형은 과연 어떤 형태일까.

궁금해 하면서.

***

- [모자수집광사건(The Mad Hatter Case)](1933), John Dickson Carr, 김우종 옮김, <동서문화사>, 1977~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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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형법정 동서 미스터리 북스 19
존 딕슨 카 지음, 오정환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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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소설은 언제나, '반전' - 2
- [화형법정], 존 딕슨 카, 1937.


거의 모든 소설이 지니는 '반전',
그 중 '미스터리' 소설의 주요 특성으로서의 극적 '대반전'을 찾아 '존 딕슨 카'를 다시금 읽어본다.

존 딕슨 카(John Dickson Carr : 1906~1977)는 미국 출신으로 스물한살 프랑스 파리에 체류할 당시부터 작가의 꿈을 안고 보헤미안적 삶을 살다가 1930년에 미국 뉴욕으로 돌아와 미스터리 작가로 데뷔했다. 다시 유럽으로 건너간 그는 영국에서 활동하며 주로 유럽 무대를 배경으로 한 미스터리 소설을 쓴 작가다.

추리소설의 계보에서 보면 존 딕슨 카는 '밀실트릭'(밀실살인)을 주로 다룬 '본격파' 추리소설의 대가로서, '마법'과 '오컬트' 등의 '신비주의'를 주제로 한 기묘한 미스터리 소설로 유명하다. 1930년부터 1972년까지 그는 약 60~70여 편의 장편을 썼다는데, 정작 '본격파' 추리소설은 10편 정도에 불과하다지만 대중에게는 마술적 '밀실트릭'으로 대표되는 '본격파' 추리소설 작가로 자리매김되었다([화형법정], 해설 <초자연적 퍼즐 게임의 매력> 참고).

'마술'적 요소와 '이단', '심령현상' 또는 '초자연적' 소재 등을 통해 현실에 있을 법 하지 않은 불가능한 '밀실트릭'을 실험한 딕슨 카의 여러 작품들이 있다. 
그는 [해골성](1931), [세 개의 관](1935) 등을 거쳐 1937년에는 [화형법정(The Burning Court)]으로 '밀실'과 '마술', 그리고 시공간을 넘어서는 '초자연적 현상'의 끝까지 밀고 간다.

그렇게, 나는 '본격파' 추리소설의 대가인 존 딕슨 카의 소설 [화형법정](1937)을 통해 미스터리 소설의 '대반전'을 기대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실망이었다.


"프랑스에서는 같은 17세기 후반에 이르러 '마법'에 의한 살인이 극에 달했다... 루이 14세의 궁정 귀부인들은 '악마주의'를 예찬하여 특히 흑미사 때 태아를 희생으로 바치는 일이 성행했다. 이들의 비밀의식은 비밀방에서 거행되었다... 이 '악마주의' 예찬자들은... (추한) 노파들이 아니라, 침모에서 궁정의 귀부인에 이르기까지 뛰어난 미모의 여성들이었다. 그리고 그녀들의 남편과 아버지들이 살해되어 갔다.
이 '비밀결사'의 존재는 한 참회자의 말에 의해 파리 대사제의 귀에까지 전해졌다. 바스티유에서 가까운 병기고에 유명한 '화형법정'이 설치되었고, 피고들은 사지가 4대의 마차에 묶여 찢어지는 형벌이나 불에 타죽는 형벌을 받았다... '비밀결사'의 전모가 세계적으로 드러나게 된 것은 1676년 브랑빌리에 후작부인의 재판에서였고..."
- [화형법정], <제3부 제16장>, '그리모의 [마술의 역사] 인용문', 존 딕슨 카, 1937.


존 딕슨 카의 [화형법정](1937)은 마일즈 데스파드 노인의 독살 의혹을 중심으로 처음 시작부터 17세기 유럽의 독살범 여인들의 이야기와 20세기 초반 현재를 사는 출판사 편집인 에드워드 스티븐스의 아내 '마리'의 외모적 흡사성 및 의문의 교차점을 상정하면서 수백년을 넘나드는 환상적이고 역사적인 배경을 이중적으로 배치한다.

'마녀'들로 유추되던 '독살자' 여인들은 사실 추한 외모와 천한 신분의 할머니가 아닌 고귀하고 아름다운 귀부인들이었고, 이들은 일종의 '비밀결사' 조직의 형태로 영원히 죽지 않는 '불사의 인간'이 되어 과거부터 현재까지 살아남거나 혹은 후계자를 통해 '독살'(주로 '비소'를 사용한)의 '전통'을 이어간다는 내용이 이야기 내내 배경음악처럼 깔린다.

결혼전 이름이 '마리 도브리'였던 브랑빌리에 후작부인의 연쇄 독살사건과 그녀와 똑같이 닮은 외모와 이름을 가진, 에드워드의 스티븐스의 아내 '마리 스티븐스'를 교차시키며, 데스파드 노인이 결정적으로 독살당하던 날 그의 방에서 유령처럼 나타났다가 마술처럼 사라진 의문의 여인에 대한 증언을 통해 모든 정황이 '마리'를 범인으로 지목한다.


"'... 그 17세기 살인마와 20세기의 데스파드(데프레) 집안에 도대체 어떤 관계가 있는가? 옛날의 '데프레 집안'에 그녀에게 희생된 자가 있기라도 한 건가?'
'아니야, 아닐세, 그런 게 아니라, 더 훌륭한, 법적으로 당당한 관계라고 할 수 있네. 데프레 집안 사람이 그녀를 체포했으니까.'
'그녀를 붙잡았다고?'
'그렇네. 브랑빌리에 후작부인은, 경찰이 혈안이 되어 자기를 추적하고 있는 파리에서 달아나 리에주의 수도원에 숨었네... 그런데 프랑스 정부가 파견한 두뇌가 명석한 데프레는... 신부로 변장하여 조용히 수도원에 잠입한 뒤, 그녀를 만나 그 마음을 흔들고... 데프레가 휘파람을 불자 경찰관이 왔고... 그녀는 마차에 감금되어 기마경관들에게 호위를 받으며 파리로 압송되었네. 그녀는 1676년에 목이 잘린 뒤 시체는 화형되었네.'"
- [화형법정], <제2부 제8장>, 존 딕슨 카, 1937.


여기에 '데스파드' 가문과 17세기 '회형법정'으로 사라진 대표적 독살자 브랑빌리에 후작부인(결혼전 본명 '마리 도브리')의 오래된 원한관계를 밝히며, 소설은 마일즈 데스파드 독살사건에서 마리 스티븐스(결혼전 이름이 역시 '마리 고브리'로 추정)가 살인자임을 독자로 하여금 더욱 짐작케 하고 있다.

단, 추리는 불가하다.
'본격파' 추리소설의 대가이긴 하나,
존 딕슨 카는 엘러리 퀸처럼 독자들에게 친절하게 단서들을 알려주지 않는데,
다른 작품들보다 [화형법정]은 더더욱 독자에게 불친절한 편이다.

아내 루시가 독살범으로 몰릴 위기를 모면하겠다는 이유를 대며 몰래 납골당에 잠입해 부검을 하려던 피살자 마일즈 데스파드의 조카이자 상속자 중 하나인 마크 데스파드가 에드워드 스티븐스를 비롯한 친구들과 하인의 도움을 받아 함께 관을 열었을 때 사라진 시체는 '밀실트릭'의 요소가 적용된 사례다.
필라델피아 경찰청의 블레넌 경위가 등장하면서 '독살자 마리'에 대한 의혹은 헷갈리기도 하면서 짙어지기도 하는 혼란의 상황으로 전개되는데 마치 '본격파'와 대비되는 '현실파' 추리소설의 형사들처럼 전개되는 듯 하다가도, 의혹의 와중에 갑자기 사라졌던 '마리'(스티븐스)가 찾아가서 불러온 범죄연구가 고던 클로스가 등장하면서 소설 [화형법정]의 '반전'은 시작된다.

고던 클로스가 등장하는 <제4부 요약>의 '제18장'.
이때부터 마일즈 데스파드의 독살사건은 극적으로 빠르게 전개된다. 
출판사 편집인 에드워드 스티븐스가 교정을 보기위해 소설 시작부터 가지고 다니던 '마리 고브리' 사진이 담긴 독살사건 원고의 저자 고던 클로스는 마치 이 소설의 탐정과도 같이 데스파드 집안 독살사건의 경위와 마술적 현상의 진상을 밝히면서 일사천리로 사건을 해결하는데, 고던 클로스는 마일즈 데스파드의 조카 마크와 피살자인 마일즈의 살아생전 간호사로 위장한 마크의 전 애인 코베트를 범인으로 시원하게 지목한 것이다.


"... 하지만 역시 그녀(코베트)가 사형을 당하지 않게 된 건 유감이야. 내(마리 스티븐스) 험담을 그렇게 해댄 것만으로도 죽어 마땅한데, 그날 내가 (피살자) 마일즈에게 먹이고 있는 약에 대해 물은 건 실수였어. 오랫동안 그런 걸 사용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어. 그녀가 진짜 범인이 아니었던 것도 가엾지만, 우리(독살자 '비밀결사?')의 동료가 되려면 유죄가 아니면 안 되니까 하는 수 없는 일이야. 우린 지금 동료를 좀더 많이 늘려야 하거든."
- [화형법정], <제5부 '에필로그'>, 존 딕슨 카, 1937.


[화형법정]은 이렇게 마치 탐정 역할을 하는 듯 하던 범죄연구가 고던 클로스를 통해 '반전'을 한 번 시전하더니,
바로 마지막 <제5부 평결>의 '에필로그'에서 다시금 결말을 뒤엎는 '대반전'을 한 번 더 보여준다.

결론적으로, 독살자 범인은 '마리'가 맞았으며, 도망친 마크는 몰라도 코베트는 누명을 쓴 것이라는 결말이다. 아마도 마크는 마리에게 홀려 공범 역할을 했을지도 모르지만 그에 대한 명확한 언급은 없다. 소설 전반 내내 주요한 역할을 하던 마크 데스파드(피살자 마일즈 데스파드의 조카)는 피살자의 방에서 사라진 검은 옷을 입은 의문의 여인처럼 어디론가 사라진 '신비주의' 요소 중 하나가 된다.

여기에 소설 후반부에 '갑툭튀' 하면서 그 동안 독자들이 몰랐던 사실들을 마구 공개하고 거들먹거리며 탐정 역할을 하던 범죄연구가이자 미스터리 작가인 고던  클로스는 사건을 해결하던 현장인 <제4부 요약>의 '제21장'에서 사건을 완전히 '해결'했다며 누군가로부터 받은 술잔으로 건배를 했다가 독살을 강하고 마는데, 고던 클로스는 17세기 브랑빌리에 후작부인(마리 고브리)에게 '독살법'을 알려준 애인 고던 생 클루아에였다는 암시가 깔린다. 그렇다면 그 독잔은 누명을 쓴 간호사 코베트가 아니라 진범인 '마리'가 준 것일까.

역시, 추리의 단서는 없다.

'초자연'적이고 '마술'적인 온갖 신비주의적인 요소들을 총망라하여 얽혀진 시공간의 교차 속에 엮으려다 보니, 다소 복잡한 플롯이다.

[화형법정]의 마지막장인 <에필로그>에서는 시종일관 독살범으로 의심받던 마리 스티븐스(에드워드 스티븐스의 부인)의 독백으로 자신이 진범임을 밝히며 수백년 간 이어져온 독살범 여인들의 '비밀결사'가 실재함을 암시한다.
어쩌면 오래 전 브랑빌리에 후작부인(마리 고브리 또는 스티븐스)의 애인이었던 고던 생 클루아에(고던 클로스)를 소환하여 진범인 마리가 아니라 다른 인물에게 누명을 씌우도록 한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녀들은 중근세 유럽의 '화형법정'에서 고문을 당하고 목이나 사지가 잘린 후 화형을 당했지만 여전히 죽지 않았다. 
그녀들은 지금도 어딘가애서 남편들과 애인들을 끊임없이 독살하고 있는 것이다.

'마술'과 '초자연'적 요소, 비현실적인 '밀실트릭'의 끝을 보여주려는 듯 야심차게 밀어붙인 존 딕슨 카의 기묘한 미스터리 소설의 '대반전'은 그럼에도 내 기대에 미치지 못한 채 다소 실망을 남겼다.
복잡하지만 늘어놓은 요소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지 못한 독후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이번주 토요일에도 마을도서관 책장의 '미스터리' 숲을 서성인다.

이대로 '존 딕슨 카'를 아쉽게 기억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나는 깔끔한 '반전'을 다시금 기대하며,
이 '미스터리'의 오솔길을 떠나지 못하고 그의 [모자수집광사건(The Mad Hatter Mystery)](1933)을 대출대 위에 올려놓고 만다.

비현실적이기는 해도,
'밀실살인'의 대가 '존 딕슨 카'를,
이대로 보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

- [화형법정(The Burning Court)](1937), John Dickson Carr, 오정환 옮김, <동서문화사>, 1977~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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