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정벌레 살인사건 동서 미스터리 북스 139
S.S. 반 다인 지음, 신상웅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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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러리 퀸'의 '이전(以前)'으로 거슬러 올라
- S.S. 반 다인, [벤슨살인사건]/[카나리아살인사건]/[딱정벌레살인사건], 1926~1930.


"(파일로) 번스는 35살로 차갑고 조각적인 용모가 훌륭하고 인상적이었다. 갸름한 얼굴의 표정이 풍부했으나 어쩐지 엄격하고 냉소적인 기색이 깃들어 있어 친구들 사이에 울타리를 치는 근원이 되었다. 그는 감정의 지배를 받지 않는 사람이라 할 수는 없었지만, 그 감정은 주로 지적인 것이었다. 금욕적이라고 곧잘 비난받곤 했으나 나는 미학이나 심리학 문제에 이따금 그가 정열을 쏟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그는 세상사와는 일체 멀리 떠나온 듯한 인상을 풍겼는데, 사실 정열도 없는 비인격적인 연극을 바라보는 관객처럼 차가운 눈빛으로 인생을 내려다 보면서 모든 일들이 부질없음을 소리없이 비웃고 있었다. 한편 지식에 대해서는 욕심이 많아 그의 시야에 들어오는 인간 희극의 아무리 하찮은 점이라도 그의 눈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번스가 비공식적으로 매컴의 범죄수사에 적극 관여하게 된 것은 결국 이 지적 탐구심 때문이었다."
- [카나리아살인사건], <카나리아>, 반 다인, 1927.


결국,
'반 다인'에게까지 오고 말았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내가 단편소설의 강물에 떠 있을 수 있게 된 건 친구 집에 있던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추리소설 단편집이었고,
중학교 2학년 때까지 오락실만 전전하다가 우연히 동네 형의 방에서 발견한 영국의 애거서 크리스티와 미국의 엘러리 퀸의 추리소설 몇 권을 통해 장편소설의 바다에서 헤엄을 칠 수 있게 된 내게,
독서의 근원은 역시 '추리소설'인가 보았다.

지난달 말부터 아들의 군입대를 앞두고 허전함에 그랬는지 그렇게 좋아라 하는 독서가 잘 되지 않았다. 그러니 서평도 쓸 게 없었고 오로지 종이접기나 하며 쉬는 시간을 보냈는데, 매주 토요일 초안산 산책 후 찾아가는 마을 도서관에서 <동서문화사>의 '동서 미스터리 북스' 시리즈 전집이 새로 들어온 것을 보게 되었다.

내 독서의 근원이 '추리소설'인지라 코넌 도일과 애거서 크리스티 같은 19세기 영국 소설가들의 작품들이 먼저 떠오르지만, 한때 잠시 20세기 초 미국 추리소설의 대가 엘러리 퀸을 잠시 몇 권 읽고 재미있어 했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 떠올라 몇 년 전 '엘러리 퀸'을 필명으로 데뷔한 그들 사촌형제들의 '미스터리(비밀)' 시리즈를 대거 구입하여 출퇴근길에 읽고는 둘째딸에게 물려주기도 했다.

법률적인 물적 증거가 아닌, 거대한 가설 아래 순전한 지적 논리전개를 통해 연역적으로 그 가설을 증명함으로써 용의자들을 하나씩 제외해 가는 이른바 '연역소거법'으로 유명한 엘러리 퀸 작품의 젊은 백수이자 아마추어 탐정 '엘러리 퀸'과 같은 작가 다른 필명의 바너비 로스 작품에 나오는 은퇴한 연극배우인 늙은 귀머거리 탐정 '드루리 레인'이 매우 인상 깊었는데, 1929년 미국 대공황기에 유행한 '엘러리 퀸 이전'의 모태가 바로 1926년부터 활동한 S.S. 반 다인(Van Dine:1888~1939)이었다.

그렇게 나는 의도적으로 가고자 했던 목표는 아니었지만, 여차저차 미국 미스터리 추리소설의 원조 대가인 '반 다인'에게까지 오게 된 거다. 
순전히 아들 덕분에 말이다.


"그것이 자네의 근본적인 잘못일세. 범죄는 모든 예술작품과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에 의해 목격되고 있네. 범죄자나 예술가가 실제로 작업하는 광경을 아무도 보지 못했다는 것은 전혀 문제되지 않네. 예를 들어 루벤스가 안트워프의 대성당에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를 그렸을 때 그가 어떤 외교적 용무로 다른 데 갔었음을 나타내 보여주는 유력한 상황증거가 있다면 현대의 범죄수사가들은 그것을 루벤스의 작품으로 믿지 않았겠지. 그런데도 여보게. 그런 결론이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네.
비록 부정적인 추론이 법률적으로는 논란의 여지가 없을 만큼 유력하다 해도 그림 자체는 어디까지나 루벤스가 그렸음을 증명하겠지. 그 이유는 간단하네. 루벤스를 빼놓고는 누구도 그런 그림을 그릴 수 없기 때문일세.  거기에는 루벤스의 개성과 천재가, 루벤스만이 지닌 뭔가가 지워버릴 수 없는 흔적을 남기고 있기 때문이네...
... 이 특수한 범죄를 해치운 사람은 자네나 경찰이 찾아낸 증거 쯤으로는 자기 신변이 위태로워질 염려가 전혀 없다고 꿰뚫어볼 만큼 간교한 지혜와 통찰력을 가진 인물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자네 눈이 범인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걸세."
- [벤슨살인사건], 반 다인, 1926.


'반 다인'은 미국의 문예비평가 윌러드 헌팅턴 라이트(Willard Huntingron Wright)가 어떤 계기를 통해 미스터리 추리소설을 써서 발표하면서 지은 필명이다. 당시 추리소설은 미국의 에드거 앨런 포부터 등장하여  영국에서 코넌 도일과 애거서 크리스티 등의 작가를 거치면서 유명세를 탔지만, 타고난 천재 지식인이었던 라이트는 '추리소설'을 문예비평문보다 낮은 급으로 생각했는지 필명 뒤에 숨어 익명으로 1년 넘게 활동하다가 정체가 드러났다고 한다. 이는 몇 년 후 반 다인의 후예였던 엘러리 퀸이 바너비 로스라는 다른 필명으로 드루리 레인이라는 같은 캐릭터의 다른 탐정을 앞세워 독자대중을 혼란케 한 것과 비슷하기도 하지만, 문예비평이 별로 인기가 없었던 것에 비해 발표하자마자 공전의 베스트셀러가 된 추리소설 작품을 쓴 작가로서 더 이상 존재를 숨길 수 없기 때문이었을 게다.

반 다인의 첫 작품은 [벤슨살인사건](1926)이다. 살인사건을 다룬 미스터리 추리소설은 그 구성의 중복성으로 세 편 이상 나올 수 없다고 반 다인은 선언했다는데, 과연 처녀작 [벤슨살인사건](1926)과 두번째 작품 [카나리아살인사건](1927)을 연달아 발표하여 흥행시켰고, '미국 최고의 베스트셀러'였다는 세번째 작품 [그린살인사건](1928)을 발표한 후 반년간 벌어들인 수익은 그의 전체 15년 작품생활 중 나머지 기간에 번 돈보다 많았다고 한다. 그러니 이 상업적 계기는 반 다인으로 하여금 총 12편의 'ㅇㅇ살인사건' 시리즈물을 계속 쓰게 만든 것이다. 

엘러리 퀸도 다작으로 유명했는데,
그의 기원과도 같은 반 다인 또한 거의 매년 한 작품씩 발표한 다작의 미스터리 추리소설 작가였다.

반 다인의 'ㅇㅇ살인사건' 시리즈 제목은 역시 그의 후예 엘러리 퀸으로 내려가면 '국적+사물+미스터리'('이집트 십자가 미스터리, 그리스 관 미스터리, 로마 모자 미스터리 등) 형식의 제목으로 변형되어 추리소설의 유행을 이어간다.

반 다인이 창조한 비공식 탐정 '파일로 번스'는 작가 본인처럼 문예와 미술에 조예가 깊은 귀족풍의 35세 젊은이로서, 오로지 지적 호기심으로 친구인 뉴욕시의 4년 임기 선출직 지방검사 매컴이 지휘하는 살인사건 해결에 개입한다. 사실 정식 탐정도 경찰도 아닌 그냥 천재 백수건달 귀족이지만 지방검사 친구 빽으로 용의자들을 심문하고 사건현장을 어슬렁거리며 범인을 마음껏 추리한다. 이는 또한 아버지 퀸 경감 빽으로 설치는 엘러리 퀸의 원조 모델임을 보여준다.

[벤슨살인사건]은 첫 작품이라 주인공 파일로 본스와 화자인 번스의 고문변호사 '반 다인' 및 매컴 검사와 히스 형사 같은 주요 등장인물들에 관한 세밀한 묘사가 나오는데, 사실 번스는 오로지 '지적 호기심'으로 천재적 논리전개와 추적을 통해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게 목적이지 친구인 지방검사 매컴처럼 범죄자를 전기의자 사형대로 보내는 사회적 정의 구현 따위는 관심이 없다. 번스는 법률가들이 법정에서 중시하는 물적 증거는 무시하며 오로지 용의자들의 심리분석과 살인동기 추적, 가설적 범죄자를 설정하고 나서 상황 증명을 통해 논리를 구성함으로써 용의자들을 차례로 소거해 나가는 방식을 중시한다. 그러면서 용의자들의 심리를 확인하기 위해 카드놀이와 골상학 등의 기술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기제들은 소설을 읽는 과정에서는 머리를 끄덕이며 재미있게 구경할 수 있는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아무리 봐도 현실의 사건에서는 적용되기 어려운 추리이기도 하다. 

현실적이지 않은 '연역소거' 추리를 혼자 머릿속으로 계속 그리면서 파일로 번스는 검사 매컴과 형사과 살인부 히스 부장을 놀리며 다음과 같은 현학적인 말로 계속 약올려 대는데, 거의 동일한 캐릭터인 엘러리 퀸도 그렇지만 모든 지능이 높아 모르는 게 없고 세상 못하는 것도 없는 천재들이 그렇듯 때로는 얄밉기도 하다.


"Cogito, ergo sum(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여보게. 나는 늘 데카르트의 자연주의적 철학에 마음이 끌린다네. 그것은 보편적인 회의에서 출발하여 자의식 속에서 실증적 지식을 추구하고 있지. 스피노자는 범신론에서, 버클리는 유심론에서 모두 그 선구자가 자신있어 하던 생략론법(연역소거법)의 의의를 크게 오해하고 있네. 데카르트는 그런 오류에서도 광채를 내뿜고 있지. 그의 추리법은 과학적으로는 아주 부정확하지만 분석학자의 신조에 새로운 의의를 주었다네. 정신이 효과적으로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자연과학의 수학적 정확성과 천문학적인 순수 사색을 함께 갖추어야 하네. 예를 들어 데카르트의 소용돌이설은..."
- [벤슨살인사건], 반 다인, 1926.

"자네는 언제나 성급하군. 어째서 한꺼번에 뛰고 달리려는 거지? 온 세계의 훌륭한 철인들이 그러면 안된다고 타이르고 있잖은가? 세자르는 Festina Iente(급하면 돌아가라)라고 했지. 아니, 루프스(신성로마제국 오토2세)가 말했듯이 Festinatio tarda est(서두르면 늦어진다)가 더 좋을지 모르겠군. 그리고 코란은 아주 간단한 말로 서두르는 것은 악마가 하는 짓이라고 했으며, 셰익스피어는 늘 스피드를 경멸했었지. '늦지 않으려고 너무 서두르면 막상 유사시에는 맥을 못 추고 만다'(리처드3세)라고 했네. '명심하고 천천히 가라. 빨리 가는 사람은 걸려 넘어진다'(로미오와 줄리엣)고도 말했지."
- [카나리아살인사건], <네 가지 가능성>, 반 다인, 1927.


'사회정의 구현'에 관심 없으니, 번스는 첫 사건인 월스트리트의 사기꾼 주식중개인 벤슨이 살해된 [벤슨살인사건]에서는 매컴 검사와 히스 부장이 범인을 법정에 세울 수 있도록 돕지만, 유명 여배우가 살해당한 [카나리아살인사건]과 온갖 이집트 역사와 유물 이야기로 도배하는 [딱정벌레살인사건] 같은 케이스(Muder case)에서는 교활하고 용의주도한 범죄자가 법정 외에서 스스로 또는 타인에 의해 단죄당하도록 둔다.
이 방식은 또한 엘러리 퀸이 바너비 로스 필명으로 내세운 탐정 드루리 레인이 [Y의 비극] 같은 사건에서 채용되기도 한다.

아마도 이것이 세속의 '법적 정의'를 경시하는 작가 반 다인과 탐정 파일로 번스가 판단하는 진정한 '정의의 복수'인 듯이 말이다.


"매컴, 나는 고대 이집트 신들이 솔론이나 유스티니아누스나 다른 모든 법률 편찬자를 한데 묶은 것보다 더 현명했다고 생각하네. 하니는 사크메트의 복수에 대해 사뭇 능청을 떨었지만, 요컨대 저 태양의 테를 머리에 두른 여신은 자네들의 어리석은 '법률' 못지않은 효력을 가지고 있지. 신화에 담긴 사상은 난센스지만, 현대 '법률'의 어리석음 이상으로 난센스인지 어떤지...
... 음모가 실패로 돌아가 발굴작업을 계속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 박사는 모든 사실을 자백할지도 모르네. 그는 약삭빠른 이기주의자일세. 빠져나갈 가망이 없다고 판단되면 진상을 털어놓고 자신의 우수한 두뇌를 과시할지도 모르네. 그리고 매컴, 저 늙은 여우를 사형집행인 앞으로 끌고 갈 단 한 가지 방법은 자살하게 하는 길 밖에 없다는 것을 자네는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되네."
- [딱정벌레 살인사건], <아누비스의 심판>, 반 다인, 1930.


아들을 국가에 바친 허전함에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던 요즘,
출퇴근 시간 전철 안에서 천천히 읽느라 더디고 재미는 좀 덜하긴 하지만, 

그래도 아직 좀 아쉽다.
내친 김에 다시금 책과 가까워지기 위해서라도 마을 도서관을 뒤져서 반 다인을 좀더 만나봐야겠다.

[그린살인사건](1928)과,
[비숍살인사건](1929)으로.

일련의 '살인사건'을 둘러싼 주변 용의자들의 베일에 싸인 복잡한 알리바이들의 고요한 신비의 안개 속에서 나는,
번뜩이는 반 다인과 번스의 심리분석 위주의 '연역소거법' 추리를 조금 더 쫓아가 보기로 한다.

반 다인 최고의 베스트셀러 [그린살인사건]은 도서관에도 없고 알라딘 서점에서도 품절이니 중고서적을 주문하여 반 다인의 대표작으로 한 권 소장하기로 하고,
그의 네번째 작품 [비숍살인사건]은 마을 도서관에서 찾아 바로 대출하여 다음 책으로 우선 읽는 것으로.

내가 그토록 좋아해 마지 않는,
'엘러리 퀸'의 '이전(以前)'으로 거슬러 올라서 말이다.


"기억하게나, 매컴. 자네는 이 '가정'을 바탕으로 이번 범죄에 대한 구상을 세우고 거기에 따라 진행시켜야 하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네가 힘차게 쌓아올리는 고층 누각은 모두 자네 머리 위로 무너지고 말걸세."
- [카나리아 살인사건], <번스, 이론을 펴다>, 반 다인, 1927.

***

1. [벤슨살인사건(The Benson Murder Case)](1926), S.S. Van Dine, 정광섭 옮김, <동서문화사>, 1977~2003.
2. [카나리아살인사건(The Canary Murder Case)](1927), S.S. Van Dine, 안동민 옮김, <동서문화사>, 1977~2003.
3. [딱정벌레살인사건(The Scarab Murder Case)](1930), S.S. Van Dine, 신상웅 옮김, <동서문화사>, 1977~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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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나리아 살인사건 동서 미스터리 북스 62
S.S. 반 다인 지음, 안동민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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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러리 퀸'의 '이전(以前)'으로 거슬러 올라
- S.S. 반 다인, [벤슨살인사건]/[카나리아살인사건]/[딱정벌레살인사건], 1926~1930.


"(파일로) 번스는 35살로 차갑고 조각적인 용모가 훌륭하고 인상적이었다. 갸름한 얼굴의 표정이 풍부했으나 어쩐지 엄격하고 냉소적인 기색이 깃들어 있어 친구들 사이에 울타리를 치는 근원이 되었다. 그는 감정의 지배를 받지 않는 사람이라 할 수는 없었지만, 그 감정은 주로 지적인 것이었다. 금욕적이라고 곧잘 비난받곤 했으나 나는 미학이나 심리학 문제에 이따금 그가 정열을 쏟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그는 세상사와는 일체 멀리 떠나온 듯한 인상을 풍겼는데, 사실 정열도 없는 비인격적인 연극을 바라보는 관객처럼 차가운 눈빛으로 인생을 내려다 보면서 모든 일들이 부질없음을 소리없이 비웃고 있었다. 한편 지식에 대해서는 욕심이 많아 그의 시야에 들어오는 인간 희극의 아무리 하찮은 점이라도 그의 눈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번스가 비공식적으로 매컴의 범죄수사에 적극 관여하게 된 것은 결국 이 지적 탐구심 때문이었다."
- [카나리아살인사건], <카나리아>, 반 다인, 1927.


결국,
'반 다인'에게까지 오고 말았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내가 단편소설의 강물에 떠 있을 수 있게 된 건 친구 집에 있던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추리소설 단편집이었고,
중학교 2학년 때까지 오락실만 전전하다가 우연히 동네 형의 방에서 발견한 영국의 애거서 크리스티와 미국의 엘러리 퀸의 추리소설 몇 권을 통해 장편소설의 바다에서 헤엄을 칠 수 있게 된 내게,
독서의 근원은 역시 '추리소설'인가 보았다.

지난달 말부터 아들의 군입대를 앞두고 허전함에 그랬는지 그렇게 좋아라 하는 독서가 잘 되지 않았다. 그러니 서평도 쓸 게 없었고 오로지 종이접기나 하며 쉬는 시간을 보냈는데, 매주 토요일 초안산 산책 후 찾아가는 마을 도서관에서 <동서문화사>의 '동서 미스터리 북스' 시리즈 전집이 새로 들어온 것을 보게 되었다.

내 독서의 근원이 '추리소설'인지라 코넌 도일과 애거서 크리스티 같은 19세기 영국 소설가들의 작품들이 먼저 떠오르지만, 한때 잠시 20세기 초 미국 추리소설의 대가 엘러리 퀸을 잠시 몇 권 읽고 재미있어 했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 떠올라 몇 년 전 '엘러리 퀸'을 필명으로 데뷔한 그들 사촌형제들의 '미스터리(비밀)' 시리즈를 대거 구입하여 출퇴근길에 읽고는 둘째딸에게 물려주기도 했다.

법률적인 물적 증거가 아닌, 거대한 가설 아래 순전한 지적 논리전개를 통해 연역적으로 그 가설을 증명함으로써 용의자들을 하나씩 제외해 가는 이른바 '연역소거법'으로 유명한 엘러리 퀸 작품의 젊은 백수이자 아마추어 탐정 '엘러리 퀸'과 같은 작가 다른 필명의 바너비 로스 작품에 나오는 은퇴한 연극배우인 늙은 귀머거리 탐정 '드루리 레인'이 매우 인상 깊었는데, 1929년 미국 대공황기에 유행한 '엘러리 퀸 이전'의 모태가 바로 1926년부터 활동한 S.S. 반 다인(Van Dine:1888~1939)이었다.

그렇게 나는 의도적으로 가고자 했던 목표는 아니었지만, 여차저차 미국 미스터리 추리소설의 원조 대가인 '반 다인'에게까지 오게 된 거다. 
순전히 아들 덕분에 말이다.


"그것이 자네의 근본적인 잘못일세. 범죄는 모든 예술작품과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에 의해 목격되고 있네. 범죄자나 예술가가 실제로 작업하는 광경을 아무도 보지 못했다는 것은 전혀 문제되지 않네. 예를 들어 루벤스가 안트워프의 대성당에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를 그렸을 때 그가 어떤 외교적 용무로 다른 데 갔었음을 나타내 보여주는 유력한 상황증거가 있다면 현대의 범죄수사가들은 그것을 루벤스의 작품으로 믿지 않았겠지. 그런데도 여보게. 그런 결론이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네.
비록 부정적인 추론이 법률적으로는 논란의 여지가 없을 만큼 유력하다 해도 그림 자체는 어디까지나 루벤스가 그렸음을 증명하겠지. 그 이유는 간단하네. 루벤스를 빼놓고는 누구도 그런 그림을 그릴 수 없기 때문일세.  거기에는 루벤스의 개성과 천재가, 루벤스만이 지닌 뭔가가 지워버릴 수 없는 흔적을 남기고 있기 때문이네...
... 이 특수한 범죄를 해치운 사람은 자네나 경찰이 찾아낸 증거 쯤으로는 자기 신변이 위태로워질 염려가 전혀 없다고 꿰뚫어볼 만큼 간교한 지혜와 통찰력을 가진 인물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자네 눈이 범인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걸세."
- [벤슨살인사건], 반 다인, 1926.


'반 다인'은 미국의 문예비평가 윌러드 헌팅턴 라이트(Willard Huntingron Wright)가 어떤 계기를 통해 미스터리 추리소설을 써서 발표하면서 지은 필명이다. 당시 추리소설은 미국의 에드거 앨런 포부터 등장하여  영국에서 코넌 도일과 애거서 크리스티 등의 작가를 거치면서 유명세를 탔지만, 타고난 천재 지식인이었던 라이트는 '추리소설'을 문예비평문보다 낮은 급으로 생각했는지 필명 뒤에 숨어 익명으로 1년 넘게 활동하다가 정체가 드러났다고 한다. 이는 몇 년 후 반 다인의 후예였던 엘러리 퀸이 바너비 로스라는 다른 필명으로 드루리 레인이라는 같은 캐릭터의 다른 탐정을 앞세워 독자대중을 혼란케 한 것과 비슷하기도 하지만, 문예비평이 별로 인기가 없었던 것에 비해 발표하자마자 공전의 베스트셀러가 된 추리소설 작품을 쓴 작가로서 더 이상 존재를 숨길 수 없기 때문이었을 게다.

반 다인의 첫 작품은 [벤슨살인사건](1926)이다. 살인사건을 다룬 미스터리 추리소설은 그 구성의 중복성으로 세 편 이상 나올 수 없다고 반 다인은 선언했다는데, 과연 처녀작 [벤슨살인사건](1926)과 두번째 작품 [카나리아살인사건](1927)을 연달아 발표하여 흥행시켰고, '미국 최고의 베스트셀러'였다는 세번째 작품 [그린살인사건](1928)을 발표한 후 반년간 벌어들인 수익은 그의 전체 15년 작품생활 중 나머지 기간에 번 돈보다 많았다고 한다. 그러니 이 상업적 계기는 반 다인으로 하여금 총 12편의 'ㅇㅇ살인사건' 시리즈물을 계속 쓰게 만든 것이다. 

엘러리 퀸도 다작으로 유명했는데,
그의 기원과도 같은 반 다인 또한 거의 매년 한 작품씩 발표한 다작의 미스터리 추리소설 작가였다.

반 다인의 'ㅇㅇ살인사건' 시리즈 제목은 역시 그의 후예 엘러리 퀸으로 내려가면 '국적+사물+미스터리'('이집트 십자가 미스터리, 그리스 관 미스터리, 로마 모자 미스터리 등) 형식의 제목으로 변형되어 추리소설의 유행을 이어간다.

반 다인이 창조한 비공식 탐정 '파일로 번스'는 작가 본인처럼 문예와 미술에 조예가 깊은 귀족풍의 35세 젊은이로서, 오로지 지적 호기심으로 친구인 뉴욕시의 4년 임기 선출직 지방검사 매컴이 지휘하는 살인사건 해결에 개입한다. 사실 정식 탐정도 경찰도 아닌 그냥 천재 백수건달 귀족이지만 지방검사 친구 빽으로 용의자들을 심문하고 사건현장을 어슬렁거리며 범인을 마음껏 추리한다. 이는 또한 아버지 퀸 경감 빽으로 설치는 엘러리 퀸의 원조 모델임을 보여준다.

[벤슨살인사건]은 첫 작품이라 주인공 파일로 본스와 화자인 번스의 고문변호사 '반 다인' 및 매컴 검사와 히스 형사 같은 주요 등장인물들에 관한 세밀한 묘사가 나오는데, 사실 번스는 오로지 '지적 호기심'으로 천재적 논리전개와 추적을 통해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게 목적이지 친구인 지방검사 매컴처럼 범죄자를 전기의자 사형대로 보내는 사회적 정의 구현 따위는 관심이 없다. 번스는 법률가들이 법정에서 중시하는 물적 증거는 무시하며 오로지 용의자들의 심리분석과 살인동기 추적, 가설적 범죄자를 설정하고 나서 상황 증명을 통해 논리를 구성함으로써 용의자들을 차례로 소거해 나가는 방식을 중시한다. 그러면서 용의자들의 심리를 확인하기 위해 카드놀이와 골상학 등의 기술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기제들은 소설을 읽는 과정에서는 머리를 끄덕이며 재미있게 구경할 수 있는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아무리 봐도 현실의 사건에서는 적용되기 어려운 추리이기도 하다. 

현실적이지 않은 '연역소거' 추리를 혼자 머릿속으로 계속 그리면서 파일로 번스는 검사 매컴과 형사과 살인부 히스 부장을 놀리며 다음과 같은 현학적인 말로 계속 약올려 대는데, 거의 동일한 캐릭터인 엘러리 퀸도 그렇지만 모든 지능이 높아 모르는 게 없고 세상 못하는 것도 없는 천재들이 그렇듯 때로는 얄밉기도 하다.


"Cogito, ergo sum(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여보게. 나는 늘 데카르트의 자연주의적 철학에 마음이 끌린다네. 그것은 보편적인 회의에서 출발하여 자의식 속에서 실증적 지식을 추구하고 있지. 스피노자는 범신론에서, 버클리는 유심론에서 모두 그 선구자가 자신있어 하던 생략론법(연역소거법)의 의의를 크게 오해하고 있네. 데카르트는 그런 오류에서도 광채를 내뿜고 있지. 그의 추리법은 과학적으로는 아주 부정확하지만 분석학자의 신조에 새로운 의의를 주었다네. 정신이 효과적으로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자연과학의 수학적 정확성과 천문학적인 순수 사색을 함께 갖추어야 하네. 예를 들어 데카르트의 소용돌이설은..."
- [벤슨살인사건], 반 다인, 1926.

"자네는 언제나 성급하군. 어째서 한꺼번에 뛰고 달리려는 거지? 온 세계의 훌륭한 철인들이 그러면 안된다고 타이르고 있잖은가? 세자르는 Festina Iente(급하면 돌아가라)라고 했지. 아니, 루프스(신성로마제국 오토2세)가 말했듯이 Festinatio tarda est(서두르면 늦어진다)가 더 좋을지 모르겠군. 그리고 코란은 아주 간단한 말로 서두르는 것은 악마가 하는 짓이라고 했으며, 셰익스피어는 늘 스피드를 경멸했었지. '늦지 않으려고 너무 서두르면 막상 유사시에는 맥을 못 추고 만다'(리처드3세)라고 했네. '명심하고 천천히 가라. 빨리 가는 사람은 걸려 넘어진다'(로미오와 줄리엣)고도 말했지."
- [카나리아살인사건], <네 가지 가능성>, 반 다인, 1927.


'사회정의 구현'에 관심 없으니, 번스는 첫 사건인 월스트리트의 사기꾼 주식중개인 벤슨이 살해된 [벤슨살인사건]에서는 매컴 검사와 히스 부장이 범인을 법정에 세울 수 있도록 돕지만, 유명 여배우가 살해당한 [카나리아살인사건]과 온갖 이집트 역사와 유물 이야기로 도배하는 [딱정벌레살인사건] 같은 케이스(Muder case)에서는 교활하고 용의주도한 범죄자가 법정 외에서 스스로 또는 타인에 의해 단죄당하도록 둔다.
이 방식은 또한 엘러리 퀸이 바너비 로스 필명으로 내세운 탐정 드루리 레인이 [Y의 비극] 같은 사건에서 채용되기도 한다.

아마도 이것이 세속의 '법적 정의'를 경시하는 작가 반 다인과 탐정 파일로 번스가 판단하는 진정한 '정의의 복수'인 듯이 말이다.


"매컴, 나는 고대 이집트 신들이 솔론이나 유스티니아누스나 다른 모든 법률 편찬자를 한데 묶은 것보다 더 현명했다고 생각하네. 하니는 사크메트의 복수에 대해 사뭇 능청을 떨었지만, 요컨대 저 태양의 테를 머리에 두른 여신은 자네들의 어리석은 '법률' 못지않은 효력을 가지고 있지. 신화에 담긴 사상은 난센스지만, 현대 '법률'의 어리석음 이상으로 난센스인지 어떤지...
... 음모가 실패로 돌아가 발굴작업을 계속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 박사는 모든 사실을 자백할지도 모르네. 그는 약삭빠른 이기주의자일세. 빠져나갈 가망이 없다고 판단되면 진상을 털어놓고 자신의 우수한 두뇌를 과시할지도 모르네. 그리고 매컴, 저 늙은 여우를 사형집행인 앞으로 끌고 갈 단 한 가지 방법은 자살하게 하는 길 밖에 없다는 것을 자네는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되네."
- [딱정벌레 살인사건], <아누비스의 심판>, 반 다인, 1930.


아들을 국가에 바친 허전함에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던 요즘,
출퇴근 시간 전철 안에서 천천히 읽느라 더디고 재미는 좀 덜하긴 하지만, 

그래도 아직 좀 아쉽다.
내친 김에 다시금 책과 가까워지기 위해서라도 마을 도서관을 뒤져서 반 다인을 좀더 만나봐야겠다.

[그린살인사건](1928)과,
[비숍살인사건](1929)으로.

일련의 '살인사건'을 둘러싼 주변 용의자들의 베일에 싸인 복잡한 알리바이들의 고요한 신비의 안개 속에서 나는,
번뜩이는 반 다인과 번스의 심리분석 위주의 '연역소거법' 추리를 조금 더 쫓아가 보기로 한다.

반 다인 최고의 베스트셀러 [그린살인사건]은 도서관에도 없고 알라딘 서점에서도 품절이니 중고서적을 주문하여 반 다인의 대표작으로 한 권 소장하기로 하고,
그의 네번째 작품 [비숍살인사건]은 마을 도서관에서 찾아 바로 대출하여 다음 책으로 우선 읽는 것으로.

내가 그토록 좋아해 마지 않는,
'엘러리 퀸'의 '이전(以前)'으로 거슬러 올라서 말이다.


"기억하게나, 매컴. 자네는 이 '가정'을 바탕으로 이번 범죄에 대한 구상을 세우고 거기에 따라 진행시켜야 하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네가 힘차게 쌓아올리는 고층 누각은 모두 자네 머리 위로 무너지고 말걸세."
- [카나리아 살인사건], <번스, 이론을 펴다>, 반 다인, 1927.

***

1. [벤슨살인사건(The Benson Murder Case)](1926), S.S. Van Dine, 정광섭 옮김, <동서문화사>, 1977~2003.
2. [카나리아살인사건(The Canary Murder Case)](1927), S.S. Van Dine, 안동민 옮김, <동서문화사>, 1977~2003.
3. [딱정벌레살인사건(The Scarab Murder Case)](1930), S.S. Van Dine, 신상웅 옮김, <동서문화사>, 1977~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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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슨살인사건 동서 미스터리 북스 67
S.S. 반 다인 지음, 정광섭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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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러리 퀸'의 '이전(以前)'으로 거슬러 올라
- S.S. 반 다인, [벤슨살인사건]/[카나리아살인사건]/[딱정벌레살인사건], 1926~1930.


"(파일로) 번스는 35살로 차갑고 조각적인 용모가 훌륭하고 인상적이었다. 갸름한 얼굴의 표정이 풍부했으나 어쩐지 엄격하고 냉소적인 기색이 깃들어 있어 친구들 사이에 울타리를 치는 근원이 되었다. 그는 감정의 지배를 받지 않는 사람이라 할 수는 없었지만, 그 감정은 주로 지적인 것이었다. 금욕적이라고 곧잘 비난받곤 했으나 나는 미학이나 심리학 문제에 이따금 그가 정열을 쏟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그는 세상사와는 일체 멀리 떠나온 듯한 인상을 풍겼는데, 사실 정열도 없는 비인격적인 연극을 바라보는 관객처럼 차가운 눈빛으로 인생을 내려다 보면서 모든 일들이 부질없음을 소리없이 비웃고 있었다. 한편 지식에 대해서는 욕심이 많아 그의 시야에 들어오는 인간 희극의 아무리 하찮은 점이라도 그의 눈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번스가 비공식적으로 매컴의 범죄수사에 적극 관여하게 된 것은 결국 이 지적 탐구심 때문이었다."
- [카나리아살인사건], <카나리아>, 반 다인, 1927.


결국,
'반 다인'에게까지 오고 말았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내가 단편소설의 강물에 떠 있을 수 있게 된 건 친구 집에 있던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추리소설 단편집이었고,
중학교 2학년 때까지 오락실만 전전하다가 우연히 동네 형의 방에서 발견한 영국의 애거서 크리스티와 미국의 엘러리 퀸의 추리소설 몇 권을 통해 장편소설의 바다에서 헤엄을 칠 수 있게 된 내게,
독서의 근원은 역시 '추리소설'인가 보았다.

지난달 말부터 아들의 군입대를 앞두고 허전함에 그랬는지 그렇게 좋아라 하는 독서가 잘 되지 않았다. 그러니 서평도 쓸 게 없었고 오로지 종이접기나 하며 쉬는 시간을 보냈는데, 매주 토요일 초안산 산책 후 찾아가는 마을 도서관에서 <동서문화사>의 '동서 미스터리 북스' 시리즈 전집이 새로 들어온 것을 보게 되었다.

내 독서의 근원이 '추리소설'인지라 코넌 도일과 애거서 크리스티 같은 19세기 영국 소설가들의 작품들이 먼저 떠오르지만, 한때 잠시 20세기 초 미국 추리소설의 대가 엘러리 퀸을 잠시 몇 권 읽고 재미있어 했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 떠올라 몇 년 전 '엘러리 퀸'을 필명으로 데뷔한 그들 사촌형제들의 '미스터리(비밀)' 시리즈를 대거 구입하여 출퇴근길에 읽고는 둘째딸에게 물려주기도 했다.

법률적인 물적 증거가 아닌, 거대한 가설 아래 순전한 지적 논리전개를 통해 연역적으로 그 가설을 증명함으로써 용의자들을 하나씩 제외해 가는 이른바 '연역소거법'으로 유명한 엘러리 퀸 작품의 젊은 백수이자 아마추어 탐정 '엘러리 퀸'과 같은 작가 다른 필명의 바너비 로스 작품에 나오는 은퇴한 연극배우인 늙은 귀머거리 탐정 '드루리 레인'이 매우 인상 깊었는데, 1929년 미국 대공황기에 유행한 '엘러리 퀸 이전'의 모태가 바로 1926년부터 활동한 S.S. 반 다인(Van Dine:1888~1939)이었다.

그렇게 나는 의도적으로 가고자 했던 목표는 아니었지만, 여차저차 미국 미스터리 추리소설의 원조 대가인 '반 다인'에게까지 오게 된 거다. 
순전히 아들 덕분에 말이다.


"그것이 자네의 근본적인 잘못일세. 범죄는 모든 예술작품과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에 의해 목격되고 있네. 범죄자나 예술가가 실제로 작업하는 광경을 아무도 보지 못했다는 것은 전혀 문제되지 않네. 예를 들어 루벤스가 안트워프의 대성당에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를 그렸을 때 그가 어떤 외교적 용무로 다른 데 갔었음을 나타내 보여주는 유력한 상황증거가 있다면 현대의 범죄수사가들은 그것을 루벤스의 작품으로 믿지 않았겠지. 그런데도 여보게. 그런 결론이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네.
비록 부정적인 추론이 법률적으로는 논란의 여지가 없을 만큼 유력하다 해도 그림 자체는 어디까지나 루벤스가 그렸음을 증명하겠지. 그 이유는 간단하네. 루벤스를 빼놓고는 누구도 그런 그림을 그릴 수 없기 때문일세.  거기에는 루벤스의 개성과 천재가, 루벤스만이 지닌 뭔가가 지워버릴 수 없는 흔적을 남기고 있기 때문이네...
... 이 특수한 범죄를 해치운 사람은 자네나 경찰이 찾아낸 증거 쯤으로는 자기 신변이 위태로워질 염려가 전혀 없다고 꿰뚫어볼 만큼 간교한 지혜와 통찰력을 가진 인물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자네 눈이 범인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걸세."
- [벤슨살인사건], 반 다인, 1926.


'반 다인'은 미국의 문예비평가 윌러드 헌팅턴 라이트(Willard Huntingron Wright)가 어떤 계기를 통해 미스터리 추리소설을 써서 발표하면서 지은 필명이다. 당시 추리소설은 미국의 에드거 앨런 포부터 등장하여  영국에서 코넌 도일과 애거서 크리스티 등의 작가를 거치면서 유명세를 탔지만, 타고난 천재 지식인이었던 라이트는 '추리소설'을 문예비평문보다 낮은 급으로 생각했는지 필명 뒤에 숨어 익명으로 1년 넘게 활동하다가 정체가 드러났다고 한다. 이는 몇 년 후 반 다인의 후예였던 엘러리 퀸이 바너비 로스라는 다른 필명으로 드루리 레인이라는 같은 캐릭터의 다른 탐정을 앞세워 독자대중을 혼란케 한 것과 비슷하기도 하지만, 문예비평이 별로 인기가 없었던 것에 비해 발표하자마자 공전의 베스트셀러가 된 추리소설 작품을 쓴 작가로서 더 이상 존재를 숨길 수 없기 때문이었을 게다.

반 다인의 첫 작품은 [벤슨살인사건](1926)이다. 살인사건을 다룬 미스터리 추리소설은 그 구성의 중복성으로 세 편 이상 나올 수 없다고 반 다인은 선언했다는데, 과연 처녀작 [벤슨살인사건](1926)과 두번째 작품 [카나리아살인사건](1927)을 연달아 발표하여 흥행시켰고, '미국 최고의 베스트셀러'였다는 세번째 작품 [그린살인사건](1928)을 발표한 후 반년간 벌어들인 수익은 그의 전체 15년 작품생활 중 나머지 기간에 번 돈보다 많았다고 한다. 그러니 이 상업적 계기는 반 다인으로 하여금 총 12편의 'ㅇㅇ살인사건' 시리즈물을 계속 쓰게 만든 것이다. 

엘러리 퀸도 다작으로 유명했는데,
그의 기원과도 같은 반 다인 또한 거의 매년 한 작품씩 발표한 다작의 미스터리 추리소설 작가였다.

반 다인의 'ㅇㅇ살인사건' 시리즈 제목은 역시 그의 후예 엘러리 퀸으로 내려가면 '국적+사물+미스터리'('이집트 십자가 미스터리, 그리스 관 미스터리, 로마 모자 미스터리 등) 형식의 제목으로 변형되어 추리소설의 유행을 이어간다.

반 다인이 창조한 비공식 탐정 '파일로 번스'는 작가 본인처럼 문예와 미술에 조예가 깊은 귀족풍의 35세 젊은이로서, 오로지 지적 호기심으로 친구인 뉴욕시의 4년 임기 선출직 지방검사 매컴이 지휘하는 살인사건 해결에 개입한다. 사실 정식 탐정도 경찰도 아닌 그냥 천재 백수건달 귀족이지만 지방검사 친구 빽으로 용의자들을 심문하고 사건현장을 어슬렁거리며 범인을 마음껏 추리한다. 이는 또한 아버지 퀸 경감 빽으로 설치는 엘러리 퀸의 원조 모델임을 보여준다.

[벤슨살인사건]은 첫 작품이라 주인공 파일로 본스와 화자인 번스의 고문변호사 '반 다인' 및 매컴 검사와 히스 형사 같은 주요 등장인물들에 관한 세밀한 묘사가 나오는데, 사실 번스는 오로지 '지적 호기심'으로 천재적 논리전개와 추적을 통해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게 목적이지 친구인 지방검사 매컴처럼 범죄자를 전기의자 사형대로 보내는 사회적 정의 구현 따위는 관심이 없다. 번스는 법률가들이 법정에서 중시하는 물적 증거는 무시하며 오로지 용의자들의 심리분석과 살인동기 추적, 가설적 범죄자를 설정하고 나서 상황 증명을 통해 논리를 구성함으로써 용의자들을 차례로 소거해 나가는 방식을 중시한다. 그러면서 용의자들의 심리를 확인하기 위해 카드놀이와 골상학 등의 기술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기제들은 소설을 읽는 과정에서는 머리를 끄덕이며 재미있게 구경할 수 있는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아무리 봐도 현실의 사건에서는 적용되기 어려운 추리이기도 하다. 

현실적이지 않은 '연역소거' 추리를 혼자 머릿속으로 계속 그리면서 파일로 번스는 검사 매컴과 형사과 살인부 히스 부장을 놀리며 다음과 같은 현학적인 말로 계속 약올려 대는데, 거의 동일한 캐릭터인 엘러리 퀸도 그렇지만 모든 지능이 높아 모르는 게 없고 세상 못하는 것도 없는 천재들이 그렇듯 때로는 얄밉기도 하다.


"Cogito, ergo sum(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여보게. 나는 늘 데카르트의 자연주의적 철학에 마음이 끌린다네. 그것은 보편적인 회의에서 출발하여 자의식 속에서 실증적 지식을 추구하고 있지. 스피노자는 범신론에서, 버클리는 유심론에서 모두 그 선구자가 자신있어 하던 생략론법(연역소거법)의 의의를 크게 오해하고 있네. 데카르트는 그런 오류에서도 광채를 내뿜고 있지. 그의 추리법은 과학적으로는 아주 부정확하지만 분석학자의 신조에 새로운 의의를 주었다네. 정신이 효과적으로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자연과학의 수학적 정확성과 천문학적인 순수 사색을 함께 갖추어야 하네. 예를 들어 데카르트의 소용돌이설은..."
- [벤슨살인사건], 반 다인, 1926.

"자네는 언제나 성급하군. 어째서 한꺼번에 뛰고 달리려는 거지? 온 세계의 훌륭한 철인들이 그러면 안된다고 타이르고 있잖은가? 세자르는 Festina Iente(급하면 돌아가라)라고 했지. 아니, 루프스(신성로마제국 오토2세)가 말했듯이 Festinatio tarda est(서두르면 늦어진다)가 더 좋을지 모르겠군. 그리고 코란은 아주 간단한 말로 서두르는 것은 악마가 하는 짓이라고 했으며, 셰익스피어는 늘 스피드를 경멸했었지. '늦지 않으려고 너무 서두르면 막상 유사시에는 맥을 못 추고 만다'(리처드3세)라고 했네. '명심하고 천천히 가라. 빨리 가는 사람은 걸려 넘어진다'(로미오와 줄리엣)고도 말했지."
- [카나리아살인사건], <네 가지 가능성>, 반 다인, 1927.


'사회정의 구현'에 관심 없으니, 번스는 첫 사건인 월스트리트의 사기꾼 주식중개인 벤슨이 살해된 [벤슨살인사건]에서는 매컴 검사와 히스 부장이 범인을 법정에 세울 수 있도록 돕지만, 유명 여배우가 살해당한 [카나리아살인사건]과 온갖 이집트 역사와 유물 이야기로 도배하는 [딱정벌레살인사건] 같은 케이스(Muder case)에서는 교활하고 용의주도한 범죄자가 법정 외에서 스스로 또는 타인에 의해 단죄당하도록 둔다.
이 방식은 또한 엘러리 퀸이 바너비 로스 필명으로 내세운 탐정 드루리 레인이 [Y의 비극] 같은 사건에서 채용되기도 한다.

아마도 이것이 세속의 '법적 정의'를 경시하는 작가 반 다인과 탐정 파일로 번스가 판단하는 진정한 '정의의 복수'인 듯이 말이다.


"매컴, 나는 고대 이집트 신들이 솔론이나 유스티니아누스나 다른 모든 법률 편찬자를 한데 묶은 것보다 더 현명했다고 생각하네. 하니는 사크메트의 복수에 대해 사뭇 능청을 떨었지만, 요컨대 저 태양의 테를 머리에 두른 여신은 자네들의 어리석은 '법률' 못지않은 효력을 가지고 있지. 신화에 담긴 사상은 난센스지만, 현대 '법률'의 어리석음 이상으로 난센스인지 어떤지...
... 음모가 실패로 돌아가 발굴작업을 계속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 박사는 모든 사실을 자백할지도 모르네. 그는 약삭빠른 이기주의자일세. 빠져나갈 가망이 없다고 판단되면 진상을 털어놓고 자신의 우수한 두뇌를 과시할지도 모르네. 그리고 매컴, 저 늙은 여우를 사형집행인 앞으로 끌고 갈 단 한 가지 방법은 자살하게 하는 길 밖에 없다는 것을 자네는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되네."
- [딱정벌레 살인사건], <아누비스의 심판>, 반 다인, 1930.


아들을 국가에 바친 허전함에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던 요즘,
출퇴근 시간 전철 안에서 천천히 읽느라 더디고 재미는 좀 덜하긴 하지만, 

그래도 아직 좀 아쉽다.
내친 김에 다시금 책과 가까워지기 위해서라도 마을 도서관을 뒤져서 반 다인을 좀더 만나봐야겠다.

[그린살인사건](1928)과,
[비숍살인사건](1929)으로.

일련의 '살인사건'을 둘러싼 주변 용의자들의 베일에 싸인 복잡한 알리바이들의 고요한 신비의 안개 속에서 나는,
번뜩이는 반 다인과 번스의 심리분석 위주의 '연역소거법' 추리를 조금 더 쫓아가 보기로 한다.

반 다인 최고의 베스트셀러 [그린살인사건]은 도서관에도 없고 알라딘 서점에서도 품절이니 중고서적을 주문하여 반 다인의 대표작으로 한 권 소장하기로 하고,
그의 네번째 작품 [비숍살인사건]은 마을 도서관에서 찾아 바로 대출하여 다음 책으로 우선 읽는 것으로.

내가 그토록 좋아해 마지 않는,
'엘러리 퀸'의 '이전(以前)'으로 거슬러 올라서 말이다.


"기억하게나, 매컴. 자네는 이 '가정'을 바탕으로 이번 범죄에 대한 구상을 세우고 거기에 따라 진행시켜야 하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네가 힘차게 쌓아올리는 고층 누각은 모두 자네 머리 위로 무너지고 말걸세."
- [카나리아 살인사건], <번스, 이론을 펴다>, 반 다인, 1927.

***

1. [벤슨살인사건(The Benson Murder Case)](1926), S.S. Van Dine, 정광섭 옮김, <동서문화사>, 1977~2003.
2. [카나리아살인사건(The Canary Murder Case)](1927), S.S. Van Dine, 안동민 옮김, <동서문화사>, 1977~2003.
3. [딱정벌레살인사건(The Scarab Murder Case)](1930), S.S. Van Dine, 신상웅 옮김, <동서문화사>, 1977~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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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키가하라전투 3 - 미쓰나리, 일어서다
시바 료타로 지음, 서은혜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2년 7월
평점 :
절판


이에야스의 '모략'? 히데요시의 '유산'!
- [세키가하라 전투], 시바 료타로, 1966.


"이해관계만이 인간의 행동을 결정하는 것이다."
- [세키가하라 전투], <2권. 이에야스의 모략>, 시바 료타로, 1966.


[초한지] 이야기를 좋아하는 내가 일본 역사소설작가 시바 료타로의 [항우와 유방](1977)을 읽고 난 후, 시바 료타로의 '역사 심리소설'의 면모를 좀더 보고자 집어든 책이 [세키가하라 전투](1966)다.

내 비록 야마오카 소하치의 [대망(도쿠가와 이에야스](1950~) 12권은 읽을 생각을 안했지만, '일본인의 근원'을 탐색하기 위해 '역사 심리소설'을 쓴 시바 료타로의 작품을 통해 일본 전국시대 이야기를 이 참에 조금 읽게 된 것이다.

시바 료타로가 15~16세기에 걸친 일본 전국시대를 통해 묘사한 일본인의 '심리'는 '이익'이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라는 사내는 워낙 기분의 변화가 별로 없는 성격이었다... (오다) 노부나가... 성격이 까다로운 사람...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막힌 데 없이 쾌활한 사람... 쾌활함을 더욱 연출하여 인심을 수렴하는 데 쓰기도 했다. 이에야스의 성격에는 노부나가라든가 히데요시와 같은 선명한 색채감이 없었다... 어둡고 가라앉은 중간색... 워낙 기분의 변화가 별로 없는 성격이었지만 그 스스로가 그렇게 되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노부나가와 히데요시에게는 평생토록 어린애 같은 데가 있어서 기쁠 때는 몹시 들뜨기도 했지만, 이에야스는 나면서부터 애늙은이 같은 데가 좀 있었다. 점잖은 미소를 띠고 있는 정도의 상태이면 이 남자의 마음 속에 즐거움이 파도치고 있을 때였다."
- [세키가하라 전투], <3권. 미쓰나리, 일어서다>, 시바 료타로, 1966.


100년에 걸친 일본 전국시대를 최초로 통일한 인물은 오다 노부나가였다. 1582년 '혼노지의 변'으로 아케치 미쓰히데로부터 기습을 받고 자결한 노부나가를 대신하여 노부나가의 부장이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국을 제패하는데,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고마키/나가쿠테 전투'(1584년)에서 실질적으로 히데요시 군대를 무력에서 이겼다지만, 결국 오다 노부나가를 잇는 전국시대 천하통일은 외교전략의 대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몫이 된다.

두견새가 울지 않을 때,
오다 노부나가는 새를 죽이고,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새를 울게 만들며,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새가 을 때까지 기다린다는 세 인물의 '심리' 대비는 유명하다.

이처럼,
노부나가는 까다롭고 무서웠고,
히데요시는 쾌활하고 자유자재였으며,
이에야스는 신중하고 너그러운 한편, '음흉'했다.

조선과의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무리한 7년 전쟁으로 일본 내 민심을 잃은 도요토미 가문은 히데요시의 죽음 이후, 6살 짜리 어린 후계자 히데요리를 제치고 다이코(대정대신) 쇼군이 되려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모략'이 판치게 된다. 
노부나가와 동급의 다이묘였음에도 무력에서 실력이 모자랐고, '고마키/나가쿠테 전투'에서 실질적으로 이겼음에도 외교와 모략의 실력에서 히데요시에게 밀렸던 이에야스에게는 하데요시의 죽음이 바로 그가 천하를 차지할 마지막 기회였던 것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나이,
이미 오십대 중반을 넘어섰을 때였다.


"(이시다) 미쓰나리의 관측은 변함 없었다. 관측이라기 보다는 '신념'이었다. 아니, '신념'이라기 보다는 자신의 지혜에 대한 흔들림 없는 믿음, 이것이 그의 성격이었다. 미쓰나리가 경모하는 히데요시나 노부나가의 경우에는 모든 정세와 조건들을 유연하게 계산하고 난 후에 얻어진 마지막 결론을 신념에 찬 행동으로 옮기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미쓰나리는 항상 '고정관념'이 먼저였다. 그 '관념'은 모든 정세와 조건을 끼워 맞춰서 전략을 세우는 것이다."
- [세키가하라 전투], <4권. 결전 전야>, 시바 료타로, 1966.


야마오카 소하치의 대하소설 [대망]의 주인공이 소설의 원제처럼 '도쿠가와 이에야스'(1542~1616)였다면, 
시바 료타로의 [세키가하라 전투]의 주인공은 히데요시의 비서관(지부쇼유) '이시다 미쓰나리'(1560~1600)다.

도요토미 히데요시(1537~1598)가 오다 노부나가의 부하 시절 시동으로 들인 이시다 미쓰나리는 가토 기요마사 같이 전쟁터에서 용맹을 떨친 '무장'이라기 보다는 국가를 운영하는 '행정관료'에 가까웠다. 히데요시의 천하쟁패 과정에서는 가토 기요마사 같은 맹장과 구로다 조스이 같은 책사가 필요했지만, 천하통일 이후에는 이시다 미쓰나리 같은 '경리/재정/인사' 부문에서 두각을 드러낸 관료가 더 필요했던 것이다. 그로 인해 책사 구로다 조스이는 히데요시가 자신을 두려워하고 견제한다는 것을 알고는 일본 본토에서 먼 남쪽의 규수 지방으로 지혜롭게 은거했고 역시 규수 지역 20만석의 다이묘 가토 기요마사는 히데요시 최측근 비서관이자 오사카 인근의 고슈(사와 산성) 19만석의 미쓰나리와 대립한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 선봉대에서 서로 대립한 가토 기요마사(무장)와 고니시 유키나카(관료) 간 갈등관계의 근원이 바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마지막 비서관' 이시다 미쓰나리였다. 미쓰나리 편이었던 고니시 유키나카는 세키가하라 전투 패전 후 미쓰나리와 함께 참수당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후 천하를 노리던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파고든 지점이 바로 여기였다.

전국시대를 해쳐온 백전노장 이에야스가 '이익'을 앞세워 도요토미 가신들의 갈등을 조장하고 이간질시키며 가토 기요마사 등의 무장들을 자신의 편으로 사전포섭하는 '모략'의 대가였다면, 그의 적인 이시다 미쓰나리는 주군인 도요토미 가문에 대한 '의(義)'를 앞세워 간토(관동) 지역 250만석의 당시 최대 실력자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간적(奸賊)'으로 규정한다.

그리고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그의 책사 혼다 마사노부의 간책에 따라 미쓰나리의 '심리'를 역이용하여 미쓰나리로 하여금 천하를 건 일대 대전투를 일으키도록 유도한다.

그렇게 이에야스(에도-동군:7만5천명)와 미쓰나리(오사카-서군:10만명)의 양군이 건곤일척으로 벌인 대전투가 바로 1600년 9월의 '세키가하라(関ヶ原) 전투'였다.


"히데요시는 남들에게 '이익'을 주는 걸로 천하의 영웅호걸을 타락시켰어. 그러다 보니 천하의 인심이 오직 '이익'에만 급급하여 큰 '도리'를 생각하지 않지. '이익'으로 얻은 천하는 그것이 흩어지면 망할 수밖에. 지금 (세키가하라) 미노 평야에서 나이후(이에야스)를 위해 몰이꾼처럼 뛰어다니고 있는 것은 모조리 히데요시가 세운 다이묘들 아닌가? 그들의 정신은 히데요시의 '유산'일 뿐이야."
- [세키가하라 전투], <5권. 시대의 패자, 역사의 승자>, 시바 료타로, 1966.


'세키기하라 전투'의 결론은 전투에서의 '전술'보다 모략에 의한 '전략'에서 이미 이긴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동군의 승리였다. 

아직 유학의 '인의(仁義)' 개념이 확립되기 전의 당시 일본 전국시대에서는 미쓰나리 식의 '의(義)' 관념보다는 원초적인 가문의 생존본능과 '이익'이 우선이었다. '이익'으로 모인 동군은 무공의 경쟁으로 혼란스럽지만 강력하게 뭉쳤고, '이익'보다 '관념'으로 미쓰나리에 의해 강요받아 모인 서군은 군사의 수가 많았음에도 '세키가하라 대전투' 이전에 이미 사전와해된 상태였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전략은,
'먼저 이겨놓고 싸움을 거는(先勝而後求戰)' 손자의 병법이기도 했다.

미쓰나리의 참모 시마 사콘의 패배를 알면서도 목숨걸고 싸우는 사무라이다운 죽음 이후 미쓰나리의 서군은 이에야스의 동군에게 결정적으로 패배했고, 서군의 실질적 주장 미쓰나리가 체포되어 참수당하면서 오랜 기간 '준비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세상이 시작된다.

시바 료타로는 [세키가하라 전투] 다섯권의 소설 내내 그 특유의 '역사 심리소설'답게 각 인물들의 심리를 흥미롭게 묘사하고 있다.

배신자와 양다리 걸친 자, 남의 공적을 가로채는 자와 관망하는 자 등.

사무라이 무사도에 따라 사나이다운 약조와 의리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리는 자들도 있었던 반면, 결국에는 가문 또는 개인의 '이익'에 따라 자신의 편을 선택하는 인간 '심리'의 적나라한 본성의 대부분을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세키가하라 전투]를 통해 드러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훗날 2백년 이상 지속된 에도 막부의 포용력을 연 이면에 천하 최대권력을 훔치기 위한 음흉한 '모략'의 대가로 그려진다. 열도의 다이묘들을 '이익'으로 꼬셔서 이용해 먹는 한편 겉으로 드러나는 관대함과 온화함은 권력 앞에 선 인간의 무서움을 날 것 그대로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세키가하라 전투 당시 유일한 유학자로 불린 후지와라 세이카의 세평에 의하면, 인간군상의 '이익' 우선주의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모략'이 만들어낸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이익'으로 다이묘들의 충성을 모집한 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였던 것이다.

시바 료타로의 분석에 의하면, 
귀족 '적통'이 없던 히데요시는 '상인'의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이익'을 앞세웠고, 
타고난 귀족이었던 이에야스는 '농민'의 방식으로 사람들을 대했으나 희대의 경쟁자들이 사라진 후 일생일대 마지막으로 눈앞에 보이는 천하의 권력 앞에서 '이익'을 매개로 한 '모략'의 대가가 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시바 료타로는 소설 [세키가하라 전투]의 마지막 5권의 소제목을 <시대의 패자, 역사의 승자>로 지었다.
'실리'보다 '관념'만을 중시하면서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은 한계는 있었으나 '의'를 지키고자 했던 이시다 미쓰나리가 비록 도쿠가와 이에야스와의 전쟁에서는 '패자'였지만, 역사에서는 '승자'라는 듯이 말이다.

그리하여 소설의 결론은 현실로부터 도피했다가 다시금 미쓰나리-이에야스와 함께 '천하삼분지계'를 도모하다가 여의치 않자 다시 은둔하려는 히데요시의 예전 책사 구로다 조스이의 다음과 같은 세평으로 마무리된다.


"(구로다) 조스이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가 살아온 경험에 의하면 '의/불의'라는 것은 일을 만드는 명분은 될지언정 세상을 움직이는 원리는 되지 못한다.
...
이번 (세키가하라 전투) 거사는 고 다이코(히데요시)에 대한 더없는 대접이 되었다. 도요토미 정권의 멸망에 즈음하여 미쓰나리 같은 총신들 마저 이에야스에게 달려가 아양을 떤다면 세상은 망가지고 인간은 정절을 잃는다. 더구나 남겨두고 간 총신들에게 그렇게까지 배신을 당한다면 히데요시는 어찌해 볼 도리없이 비참해질 것이다.
그런 점에서 말한다면 그 사람(히데요시)은 충분히 성공한 것이라고 조스이는 말하고 있었다."
- [세키가하라 전투], <5권. 시대의 패자, 역사의 승자>, 시바 료타로, 1966.

***

- [세키가하라(関ヶ原) 전투](1966), 시바 료타로, 서은혜 옮김, <청어람미디어>,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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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키가하라전투 2 - 이에야스의 모략
시바 료타로 지음, 서은혜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2년 7월
평점 :
절판


이에야스의 '모략'? 히데요시의 '유산'!
- [세키가하라 전투], 시바 료타로, 1966.


"이해관계만이 인간의 행동을 결정하는 것이다."
- [세키가하라 전투], <2권. 이에야스의 모략>, 시바 료타로, 1966.


[초한지] 이야기를 좋아하는 내가 일본 역사소설작가 시바 료타로의 [항우와 유방](1977)을 읽고 난 후, 시바 료타로의 '역사 심리소설'의 면모를 좀더 보고자 집어든 책이 [세키가하라 전투](1966)다.

내 비록 야마오카 소하치의 [대망(도쿠가와 이에야스](1950~) 12권은 읽을 생각을 안했지만, '일본인의 근원'을 탐색하기 위해 '역사 심리소설'을 쓴 시바 료타로의 작품을 통해 일본 전국시대 이야기를 이 참에 조금 읽게 된 것이다.

시바 료타로가 15~16세기에 걸친 일본 전국시대를 통해 묘사한 일본인의 '심리'는 '이익'이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라는 사내는 워낙 기분의 변화가 별로 없는 성격이었다... (오다) 노부나가... 성격이 까다로운 사람...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막힌 데 없이 쾌활한 사람... 쾌활함을 더욱 연출하여 인심을 수렴하는 데 쓰기도 했다. 이에야스의 성격에는 노부나가라든가 히데요시와 같은 선명한 색채감이 없었다... 어둡고 가라앉은 중간색... 워낙 기분의 변화가 별로 없는 성격이었지만 그 스스로가 그렇게 되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노부나가와 히데요시에게는 평생토록 어린애 같은 데가 있어서 기쁠 때는 몹시 들뜨기도 했지만, 이에야스는 나면서부터 애늙은이 같은 데가 좀 있었다. 점잖은 미소를 띠고 있는 정도의 상태이면 이 남자의 마음 속에 즐거움이 파도치고 있을 때였다."
- [세키가하라 전투], <3권. 미쓰나리, 일어서다>, 시바 료타로, 1966.


100년에 걸친 일본 전국시대를 최초로 통일한 인물은 오다 노부나가였다. 1582년 '혼노지의 변'으로 아케치 미쓰히데로부터 기습을 받고 자결한 노부나가를 대신하여 노부나가의 부장이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국을 제패하는데,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고마키/나가쿠테 전투'(1584년)에서 실질적으로 히데요시 군대를 무력에서 이겼다지만, 결국 오다 노부나가를 잇는 전국시대 천하통일은 외교전략의 대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몫이 된다.

두견새가 울지 않을 때,
오다 노부나가는 새를 죽이고,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새를 울게 만들며,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새가 을 때까지 기다린다는 세 인물의 '심리' 대비는 유명하다.

이처럼,
노부나가는 까다롭고 무서웠고,
히데요시는 쾌활하고 자유자재였으며,
이에야스는 신중하고 너그러운 한편, '음흉'했다.

조선과의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무리한 7년 전쟁으로 일본 내 민심을 잃은 도요토미 가문은 히데요시의 죽음 이후, 6살 짜리 어린 후계자 히데요리를 제치고 다이코(대정대신) 쇼군이 되려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모략'이 판치게 된다. 
노부나가와 동급의 다이묘였음에도 무력에서 실력이 모자랐고, '고마키/나가쿠테 전투'에서 실질적으로 이겼음에도 외교와 모략의 실력에서 히데요시에게 밀렸던 이에야스에게는 하데요시의 죽음이 바로 그가 천하를 차지할 마지막 기회였던 것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나이,
이미 오십대 중반을 넘어섰을 때였다.


"(이시다) 미쓰나리의 관측은 변함 없었다. 관측이라기 보다는 '신념'이었다. 아니, '신념'이라기 보다는 자신의 지혜에 대한 흔들림 없는 믿음, 이것이 그의 성격이었다. 미쓰나리가 경모하는 히데요시나 노부나가의 경우에는 모든 정세와 조건들을 유연하게 계산하고 난 후에 얻어진 마지막 결론을 신념에 찬 행동으로 옮기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미쓰나리는 항상 '고정관념'이 먼저였다. 그 '관념'은 모든 정세와 조건을 끼워 맞춰서 전략을 세우는 것이다."
- [세키가하라 전투], <4권. 결전 전야>, 시바 료타로, 1966.


야마오카 소하치의 대하소설 [대망]의 주인공이 소설의 원제처럼 '도쿠가와 이에야스'(1542~1616)였다면, 
시바 료타로의 [세키가하라 전투]의 주인공은 히데요시의 비서관(지부쇼유) '이시다 미쓰나리'(1560~1600)다.

도요토미 히데요시(1537~1598)가 오다 노부나가의 부하 시절 시동으로 들인 이시다 미쓰나리는 가토 기요마사 같이 전쟁터에서 용맹을 떨친 '무장'이라기 보다는 국가를 운영하는 '행정관료'에 가까웠다. 히데요시의 천하쟁패 과정에서는 가토 기요마사 같은 맹장과 구로다 조스이 같은 책사가 필요했지만, 천하통일 이후에는 이시다 미쓰나리 같은 '경리/재정/인사' 부문에서 두각을 드러낸 관료가 더 필요했던 것이다. 그로 인해 책사 구로다 조스이는 히데요시가 자신을 두려워하고 견제한다는 것을 알고는 일본 본토에서 먼 남쪽의 규수 지방으로 지혜롭게 은거했고 역시 규수 지역 20만석의 다이묘 가토 기요마사는 히데요시 최측근 비서관이자 오사카 인근의 고슈(사와 산성) 19만석의 미쓰나리와 대립한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 선봉대에서 서로 대립한 가토 기요마사(무장)와 고니시 유키나카(관료) 간 갈등관계의 근원이 바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마지막 비서관' 이시다 미쓰나리였다. 미쓰나리 편이었던 고니시 유키나카는 세키가하라 전투 패전 후 미쓰나리와 함께 참수당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후 천하를 노리던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파고든 지점이 바로 여기였다.

전국시대를 해쳐온 백전노장 이에야스가 '이익'을 앞세워 도요토미 가신들의 갈등을 조장하고 이간질시키며 가토 기요마사 등의 무장들을 자신의 편으로 사전포섭하는 '모략'의 대가였다면, 그의 적인 이시다 미쓰나리는 주군인 도요토미 가문에 대한 '의(義)'를 앞세워 간토(관동) 지역 250만석의 당시 최대 실력자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간적(奸賊)'으로 규정한다.

그리고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그의 책사 혼다 마사노부의 간책에 따라 미쓰나리의 '심리'를 역이용하여 미쓰나리로 하여금 천하를 건 일대 대전투를 일으키도록 유도한다.

그렇게 이에야스(에도-동군:7만5천명)와 미쓰나리(오사카-서군:10만명)의 양군이 건곤일척으로 벌인 대전투가 바로 1600년 9월의 '세키가하라(関ヶ原) 전투'였다.


"히데요시는 남들에게 '이익'을 주는 걸로 천하의 영웅호걸을 타락시켰어. 그러다 보니 천하의 인심이 오직 '이익'에만 급급하여 큰 '도리'를 생각하지 않지. '이익'으로 얻은 천하는 그것이 흩어지면 망할 수밖에. 지금 (세키가하라) 미노 평야에서 나이후(이에야스)를 위해 몰이꾼처럼 뛰어다니고 있는 것은 모조리 히데요시가 세운 다이묘들 아닌가? 그들의 정신은 히데요시의 '유산'일 뿐이야."
- [세키가하라 전투], <5권. 시대의 패자, 역사의 승자>, 시바 료타로, 1966.


'세키기하라 전투'의 결론은 전투에서의 '전술'보다 모략에 의한 '전략'에서 이미 이긴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동군의 승리였다. 

아직 유학의 '인의(仁義)' 개념이 확립되기 전의 당시 일본 전국시대에서는 미쓰나리 식의 '의(義)' 관념보다는 원초적인 가문의 생존본능과 '이익'이 우선이었다. '이익'으로 모인 동군은 무공의 경쟁으로 혼란스럽지만 강력하게 뭉쳤고, '이익'보다 '관념'으로 미쓰나리에 의해 강요받아 모인 서군은 군사의 수가 많았음에도 '세키가하라 대전투' 이전에 이미 사전와해된 상태였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전략은,
'먼저 이겨놓고 싸움을 거는(先勝而後求戰)' 손자의 병법이기도 했다.

미쓰나리의 참모 시마 사콘의 패배를 알면서도 목숨걸고 싸우는 사무라이다운 죽음 이후 미쓰나리의 서군은 이에야스의 동군에게 결정적으로 패배했고, 서군의 실질적 주장 미쓰나리가 체포되어 참수당하면서 오랜 기간 '준비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세상이 시작된다.

시바 료타로는 [세키가하라 전투] 다섯권의 소설 내내 그 특유의 '역사 심리소설'답게 각 인물들의 심리를 흥미롭게 묘사하고 있다.

배신자와 양다리 걸친 자, 남의 공적을 가로채는 자와 관망하는 자 등.

사무라이 무사도에 따라 사나이다운 약조와 의리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리는 자들도 있었던 반면, 결국에는 가문 또는 개인의 '이익'에 따라 자신의 편을 선택하는 인간 '심리'의 적나라한 본성의 대부분을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세키가하라 전투]를 통해 드러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훗날 2백년 이상 지속된 에도 막부의 포용력을 연 이면에 천하 최대권력을 훔치기 위한 음흉한 '모략'의 대가로 그려진다. 열도의 다이묘들을 '이익'으로 꼬셔서 이용해 먹는 한편 겉으로 드러나는 관대함과 온화함은 권력 앞에 선 인간의 무서움을 날 것 그대로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세키가하라 전투 당시 유일한 유학자로 불린 후지와라 세이카의 세평에 의하면, 인간군상의 '이익' 우선주의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모략'이 만들어낸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이익'으로 다이묘들의 충성을 모집한 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였던 것이다.

시바 료타로의 분석에 의하면, 
귀족 '적통'이 없던 히데요시는 '상인'의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이익'을 앞세웠고, 
타고난 귀족이었던 이에야스는 '농민'의 방식으로 사람들을 대했으나 희대의 경쟁자들이 사라진 후 일생일대 마지막으로 눈앞에 보이는 천하의 권력 앞에서 '이익'을 매개로 한 '모략'의 대가가 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시바 료타로는 소설 [세키가하라 전투]의 마지막 5권의 소제목을 <시대의 패자, 역사의 승자>로 지었다.
'실리'보다 '관념'만을 중시하면서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은 한계는 있었으나 '의'를 지키고자 했던 이시다 미쓰나리가 비록 도쿠가와 이에야스와의 전쟁에서는 '패자'였지만, 역사에서는 '승자'라는 듯이 말이다.

그리하여 소설의 결론은 현실로부터 도피했다가 다시금 미쓰나리-이에야스와 함께 '천하삼분지계'를 도모하다가 여의치 않자 다시 은둔하려는 히데요시의 예전 책사 구로다 조스이의 다음과 같은 세평으로 마무리된다.


"(구로다) 조스이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가 살아온 경험에 의하면 '의/불의'라는 것은 일을 만드는 명분은 될지언정 세상을 움직이는 원리는 되지 못한다.
...
이번 (세키가하라 전투) 거사는 고 다이코(히데요시)에 대한 더없는 대접이 되었다. 도요토미 정권의 멸망에 즈음하여 미쓰나리 같은 총신들 마저 이에야스에게 달려가 아양을 떤다면 세상은 망가지고 인간은 정절을 잃는다. 더구나 남겨두고 간 총신들에게 그렇게까지 배신을 당한다면 히데요시는 어찌해 볼 도리없이 비참해질 것이다.
그런 점에서 말한다면 그 사람(히데요시)은 충분히 성공한 것이라고 조스이는 말하고 있었다."
- [세키가하라 전투], <5권. 시대의 패자, 역사의 승자>, 시바 료타로, 1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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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키가하라(関ヶ原) 전투](1966), 시바 료타로, 서은혜 옮김, <청어람미디어>,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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