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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의 뱃속
미셸 옹프레 지음, 이아름 옮김 / 불란서책방 / 2020년 12월
평점 :
위장(胃腸)의 유물론(唯物論)
- [철학자의 뱃속], 미셸 옹프레, 1989.
"인간 주체는 항상 어느 정도 자기 자신에게 낯선 자, 자신이 완전히 소유할 수 없는 힘들에 의해 구성된 자다. 바로 이것이 유물론의 주장이다."
- [유물론], <유물론들>, 테리 이글턴, 2016.
영국의 문화비평가 테리 이글턴은 현재까지 "마르크스주의가 옳다"는 명확한 당파성을 고수하는 '유물론자'다.
그에 따르면 고전적 유물론의 주장, 즉 '물질'이 '정신'보다 우선한다는 것은 기본 전제이기는 하나, 기계적 유물론을 넘어서야 한다.
20세기 초 레닌은 '정신' 또한 '뇌'라는 '물질'이 만들어낸 '최고 수준의 물질적 산물'이라는 식의 극단적 주장을 했는데, 사실 엄밀히 따진다면 아직 과학적으로 입증 여부는 명확하지 않은 주장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철학적 관점으로는 다분히 이분법적이고 기계적인 유물론이다.
테리 이글턴의 '유물론'은 현대 철학에서 니체, 비트겐슈타인, 프로이트, 마르크스 등을 통해 '인간의 생체'가 중심이 되는 '신체적 유물론(Somatic Materialism)'으로 발전된다.
그의 '철학 전장'에서는 '근본적인 사안들에서조차 합의에 이를 수 없는' 근대성의 두드러진 특징으로 인해 인간의 욕망과 생체 모두를 아우르는 '신체적 유물론'만이 대안이 된다.
과장을 섞으면 '신'이 세계를 창조했다는 기독교적 관념론을 다른 편으로 하면서 한편으로는 '육체적, 성적 관계'를 가미한 그리스 신화의 '신체적 유물론' 같다.
과학의 발전을 철학적으로 반영하고자 했지만 뉴턴식의 전통적 물리역학을 초월한 현대적 양자역학에 놀란 전통적 유물론자들의 갈짓자 행보를 보면 그리스 신화의 비일관성과 일면 유사하다.
철학의 동력 또한,
모순과 비동일성 및 비일관성인 것이다.
그럼에도, 복잡한 '철학' 논쟁의 본질은 결국 '유물론'과 '관념론'의 투쟁이며, 그 극단을 이루는 질문은 세계 존재의 기원은 무엇인가'이다.
"음식학은 초월적인 세계의 문제가 아니라 몸이 살고 있는 이 내재적 세계를 설명하는 형이상학이자 실천적 '무신론이 된다. 육체는 이제 지식의 새로운 미학을 위해 나선다. 니체적 미식철학은 이 새로운 대륙(무신론)을 향한 통로가 될 것이다."
- [철학자의 뱃속], <6. 반기독교적 소시지 - 니체>, 미셸 옹프레, 1989.
프랑스 철학자 미셸 옹프레는 니체주의자다.
즉, 무신론자이자, 세계의 근원 같은 객관적 요소에 대한 근본문제 보다는 그 세계 앞에 우뚝 선 인간의 신체와 욕망 같은 주체적 요소가 그들 철학의 계보학적 테마다.
'세계의 근원은 무엇인가'라는 철학의 근본적 질문에 대한 답변을 과학이 이어받은지 오래되었으니, 철학은 더 이상 그런 문제에 골몰할 것 없이 인간 사유의 근원인 신체에 주목하자는 현대 서양철학의 흐름이다.
이러한 철학의 시작은 19세기 말에 망치를 들고 견고한 객관적 세계체제를 깨부수며 세계운동의 필연성을 어떤 식으로든 부여하고자 하는 '신' 자체를 부정한 니체의 '무신론'이었다. 세계의 보편적 '필연성' 또는 그런 거대한 법칙과 모종의 프로그램은 기독교 같은 종교는 물론 종교와 철학의 내용이 동일하다던 헤겔의 객관적 관념론 뿐만 아니라 관념론을 거꾸로 뒤집으며 현실적 유물론을 주장한 마르크스주의 또한 끝내 탈피하지 못한 궁극의 패러다임이자 최대강령이었다.
역사 속 사건들의 우연성은 객관적 세계의 물질적 운동의 필연성을 드러내는 변증법적 관계의 실현이라는 것이 마르크스주의 '역사유물론'의 근간이다.
19세기 말 기독교적 사고방식이 지금보다 더욱 강고했을 유럽에서 무신론은 미친놈의 다른 말이었을 텐데, 마르크스주의 유물론보다 한 발 더 나간 니체의 무신론은 당대에는 어떠했을지 몰라도 이후 미셸 푸코나 미셸 옹프레를 비롯한 프랑스 현대철학자들의 화두가 된다.
주체적 욕망의 무신론이다.
그 중 한 명의 니체 추종자 미셸 옹프레가 1989년에 출간한 [철학자의 뱃속]은 형이상학으로서의 철학을 거부한다.
세계를 탐구하는 최고의 학문이라 자처하는 철학의 비현실적인 초월성을 탈피하고 현실에 천착하기 위한 또 하나의 시도다.
신이라는 보편적 거대 정신이나 개인이라는 개별적 주체가 우선이 아니라 주체 외부의 객관적 물질세계의 일차성을 주장하는 유물론과 다른 방향이기는 하지만 음식과 신체라는 감각적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점에서 보면 현대적인 '신체적 유물론'의 일종이기도 하다.
니체식의 극렬과격 무신론의 입장에서 본다면 물질운동과 세계역사의 필연성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마르크스주의 무신론은 무신론도 아닐테고,
마르크스주의 역사유물론적 변증법의 입장에서는 세계운동의 경향성과 법칙성을 부정하는 니체의 무신론은 유물론이 아니기에,
마르크스주의와 니체주의는 섞일 수가 없다.
그럼에도 영국의 테리 이글턴이나 프랑스의 미셸 옹프레는 '신체적 유물론'이라는 신유물론의 범주 속에서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 유물론과 현대적 니체주의 욕망철학을 화해시키고 있다.
물론 프로이트-마르크스주의자이기도 하다는 미셸 옹프레와 달리 테리 이글턴은 니체주의자는 아니지만.
"인간은 곧 그가 먹는 것이다.
감각기관을 따르라!
감각이 시작하는 곳에서 종교와 철학은 멈춘다."
- 루드비히 포이어바흐, [철학적 선언].
[철학자의 뱃속] 서문격인 <1. 철학의 식생활>에서 저자 미셸 옹프레는 헤겔의 관념론적 절대정신을 뒤집어 인간적 유물론을 처음으로 개시한 근대철학자 루드비히 포이어바흐의 저서 [철학적 선언]의 문구를 인용한다. 인간의 감각을 우선으로 따르면 기존의 사상이 뒤집어지며, 식생활이라는 감각적 행위가 인간을 규정한다는 유물론적 '선언'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음식'은 신체적 유물론에서 피해갈 수 없는 주제가 된다. 아마도 식욕은 물론 성욕 같은 인간 주체의 일차적 욕망이 현대적 유물론의 주요한 테마가 되는 것일텐데, 옹프레는 음식을 선택했다. 그러면서 철학자들의 뱃속과 위장을 들여다 본다.
고대 그리스 견유학파 디오게네스나 근대 유물론의 시조격인 루소, 이탈리아 미래주의자 마리네티 등은 지향하는 바는 각자 다를지언정 당대 문명을 거부하고 자연으로 돌아가려는 경향이 있다. 디오게네스의 날고기 및 채소 그대로의 생식과 루소의 우유예찬 및 채식주의, 마리네티가 주창한 이탈리안 파스타 전통 식문화 폐지 운동이 그것이다.
견유학파는 당시 그리스 문명을 부정하는 행위에 집착했기에 길거리에서 성교하고 인간의 내장을 썰어먹는 개같은 철학자가 되었다.
자연으로 돌아가고자 한 소박한 루소는 평화적인 채식주의를 강조했지만 그의 자연주의와 사회계약설은 수백년 후 히틀러식 채식주의를 예견하지 못했다. 육류를 안 먹는 인간도 충분히 폭력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마리네티는 이탈리아의 '미래'를 위해 수입밀로 만든 파스타는 이제 그만 좀 먹고 내수품목인 쌀을 장려하자고 주장했지만 운동의 성과는 무솔리니 파시즘의 몫이 되었다.
그 외 간소한 음식을 선호했으나 술을 항상 입에 달고 살았다는 칸트, 현재의 문명국과 미래의 조화국 간 음식전쟁 따위를 쓸데없이 연구하고 장황하게 서술한 공상적 사회주의자 샤를 푸리에 이야기는 그냥 그 철학자들의 경건했던 주요 사상 외에 이런 개인사도 있다는 식의, 저자 미셸 옹프레의 잡글에 불과하다. 더 나아가 그의 잡글은 신체적 욕망을 부정하고 고귀한 사변을 즐긴 실존주의자 사르트르의 플라톤적 철학 전통을 설명해주는데, 가재와 조개, 굴 같은 갑각류를 혐오했던 사르트르가 결국 스스로 소설 속에서 갑각류가 되어 죽어갔다는 식의 이야기를 통해 사르트르의 일상과 사상 사이의 모순적 실존주의를 꼬집고자 한 듯 하지만, 글쎄 별 감흥은 없다.
미셀 옹프레에게 중요한 철학자인 니체의 식생활을 보더라도, 니체가 게르만식의 기름진 식사를 증오하고 가벼운 소시지와 햄을 어머니한테 항상 주문했지만 그래도 실제로는 기름진 고기를 마다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통해 철학자들의 사상적 관념론과 위장적 유물론 사이에는 모순과 비일관성이 가득하더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건 아닌가 싶다.
이쯤 되면 이제 알 것 같다.
니체주의자 미셸 옹프레가 철학자들의 뱃속을 들여다 보면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음식이라는 일차적이고 물질적인 매개를 통해,
신체적 유물론과 인간 주체의 욕망을 혼합하려는 시도.
철학자라는 인간의 뱃속 위장을 열어보며,
초월적 형이상학을 탈피하고자 노력하지만 결국 이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 철학의 모순과 한계를 드러내고자 하는 의도.
이른바,
위장(胃腸)의 유물론(唯物論).
그럼에도,
인류의 철학은 시지프스의 숙명처럼,
다시 굴러내려올 것을 알면서도 계속 운명의 바위를 굴리며 언덕을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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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철학자의 뱃속(Le Ventre des Philosophes)](1989), 미셸 옹프레(Michel Onpray), 이아름 옮김, <불란서책방>, 2020.
2. [유물론(Materialism)](2016), 테리 이글턴(Terry Eagleton), 전대호 옮김, <갈마바람>,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