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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얽힘 - 맞선 둘은 하나다
이철 지음 / 움직이는책 / 2021년 11월
평점 :
새로운 변증법, '맞얽힘'
- [맞얽힘 : 맞선 둘은 하나다], 이철, <움직이는책>, 2021.
"... '입자(粒子)'라는 이름은 정확한 이름이라 할 수 없다. '입(粒)'은 낟알, 알갱이를 뜻하는데, 전자나 쿼크와 같은 물질들은 알갱이 성질만 지니지 않아서이다. 모든 입자는 때로는 '입자'로 존재하지만 때로는 '파동(波動)'으로 존재한다. '양자역학'에서는 이를 '파동-입자 이중성'이라 부른다... 하나의 물질이 서로 대립하는 '입자'와 '파동'이라는 두 가지 성질을 지닌 것은 물질이 '입자'와 '파동'의 '맞얽힘'으로 이루어졌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입자'는 물질의 한 측면만을 일컫는다. 정확하게 이름을 짓자면 물질은 '파립자(波粒子)' 또는 '입파자(粒波子)'이다."
- [맞얽힘], <서론. '맞얽힘', 새로운 세계관의 출현>, 이철, 2021.
서양의 세계관은 조로아스터교의 '선악' 구분의 종교에 뿌리를 둔 '이분법'에 기초한다. 한편으로 동양의 세계관은 '천인합일(天人合一)'의 '대일통'으로 여겨진다. 물론 서양 문명의 시작인 그리스 신화는 선악이 혼재했고 유라시아 유목민들의 사상은 '하늘(자연)'을 섬기면서 다분히 범신론적이었으나, 서양의 '이분법'과 동양의 '합일론'은 서양의 기독교와 동양의 유교/불교가 오랜 기간 지배이데올로기로 기능하며 고착된 세계관일 것이다.
동이족의 조상이라는 복희씨는 세상만물의 이치를 이해하는 '8괘'를 지었는데 그 머리는 사람이되 하반신은 뱀 또는 용으로써 아마도 뱀을 토템으로 삼은 종족의 상징이었을 지도 모른다. 복희씨는 여와씨와 함께 서로 맞서면서도 하반신의 뱀은 교차하는 모양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남녀를 포함한 세상만물의 '맞섬'과 '얽힘'은 한나라 시기 무덤에서 출토된 문양으로 대표된다.
19세기 서양철학사에 헤겔이 등장했을 때, '철학은 종교의 다른 표현'이라고 했으나 인류는 태초의 '빛'은 '어둠'이 있었기에 존재 가능하다는 것을 철학적으로 깨달았다. 헤겔은 선학자 셸링처럼 "총구에서 갑자기 발사된" 것이 아닌 의식과 개념의 긴 여정 현상을 기록했다. 이 과정은 '변증법(辨證法)'이 되었고 마르크스와 같은 후학 유물론자들은 '정신'을 앞세운 헤겔의 변증법을 거꾸로 세워 '유물변증법(변증법적 유물론)'의 사상적 체계를 구축했다.
12세기에 유학이 주희의 '성리학(性理學)'으로 집대성되었을 때 '유일신'을 믿는 것이 아니라 온 자연에 존재하는 '혼백귀신'과 함께 살던 동양인들은 [주역(周易/易經)]의 원리를 통해 자연철학의 체계를 세웠다. '역(易)'의 원리는 결국 사물의 '연결'과 '하나됨'을 의미하지만 노장사상의 '무위자연' 조차도 그 과정에는 사물의 '대립'과 '맞섬'을 품고 있다.
나는 인간을 포함한 자연 전체 물질의 이 '대립'과 '통일'을 '(유물)변증법'으로 여지껏 이해하고 있다.
동양고전과 과학을 공부하는 독립연구자 이철 선생은 내 페친이기도 하다. 아직 확인은 못해봤지만 예전 내 살던 지역의 진보정당 당협위원장이 아니었나 싶다. 2008년 이후였을텐데, 당시 <마티> 출판사에서 낸 슬라보예 지젝의 [시차적 관점(The Parallax view)](2009)의 편집자였던 것으로 나는 기억한다. 그 책을 통해 내가 처음 읽게 된 슬라보예 지젝은 이 난해한 저작을 통해 결국 '변증법'적 '통일'은 더 이상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대립'된 물질은 '시차적'으로 존재하며 서로 연결되지만 하나로 '통일'될 수 없다는 서양 현대철학사의 전형이었다. 한편으로는 '모든 것이 다 같은 것'으로 치부된다는 '동양사상'과 대립되는 듯 하나, 나는 동양의 고전인 사마천 [사기]의 '기전체' 서술방식에서 드러나는 이 '시차성'의 모순과 연결을 주제로 서평을 써보기도 했다.
2010년의 이야기다.
내 추측이 맞다면 동일인일 가능성이 높은 그 이철 선생은 동양 고전과 서양 물리학을 깊이 연구하여 2021년, '맞얽힘'의 세계관을 내놓았다. "맞선 둘은 하나다"라는 표제로 내보인 '맞얽힘'은 저자가 <덧붙임 글>에서 말하듯, 작명에 실패한 용어이기는 하나 현재로서는 이 것 말고는 더 적절하게 표현할 말을 찾기 힘든 용어다.
"'맞선 둘의 하나됨'이라는 원리를 정확하게 표현하기 위해서는 첫째로 '맞섬', '대립'이라는 뜻이 들어가야 한다. 두 번째로는 '하나'라는 뜻이 들어가야 한다. '맞선 하나'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으면서도 누구나 읽었을 때 직관적으로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 [맞얽힘], <덧붙임 글. '맞얽힘'이라는 용어에 대하여>, 이철, 2021.
'맞얽힘', 발음도 뜻도 생소하나 사물의 '맞섬'과 '얽힘'이라는 현상을 하나로 표현하는 다분히 "직관적"인 단어다.
2009년의 [시차적 관점]도, 기원전 사마천의 [사기]도, 대립된 '맞섬'이 결코 교차되지 않아도 서로 '연결'되는 '얽힘'의 관계였다.
서로 다른 '맞섬'이 함께 나타나는 것은 '맞얽힘'의 '동시태'이고, 그 양적인 운동으로 극에 달해('물극필반') 질적인 '맞섬'으로 전환되는 것이 '맞얽힘'의 '통시태'이다. '맞얽힘'에서 맞선 물질은 '동시태'와 '통시태'의 현상으로 얽힌다. 이 과정에서 길함을 유지하고 흉함을 피하는 방법은 치우치지 않게 '중용'을 지키는 절제다. 그러나 이런 개인적 '절제'만으로는 천하를 평화롭고 조화롭게 만들기 어려우니 '대학'의 '3강령(명명덕-친민-지어지선:明明德-親民-止於至善) 8조목(격물-치지-성의-정심-수신-제가-치국-평천하:格物致知誠意正心修身齊家治國平天下)'이라는 '큰 배움(대학)'의 도가 필요하다.
'맞섬'과 '얽힘'이라는 현상을 관통하는 본질은 '변화'다. 그리고 '변화'의 본질은 바로 '운동'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동양 고전 중 [주역(周易)]을 중심으로 본 내용인 '1부'에서 '노자(1장)', '공자(2장)', '손자(3장)', '장자(4장)'를 이야기한다. 나아가 유학의 중요한 고전인 '물극필반(物極必反)'의 경전 [중용(中庸)]과 그 속에서 강조하는 '중화(中和 : '中'은 천하의 근본이며 '和'는 천하사람들이 달성해야 하는 道)'의 개인적 수양을 넘어, '평천하/천하평(平天下/天下平)'의 대동세상을 기획하는 '큰 배움'으로서 [대학(大學)]까지 요약한다. <부록>과 같은 '2부'에서는 은나라의 점술 방식이었던 '갑골복'에서 세상의 운영원리를 이해하려는 '주역점'으로 넘어오는 역사를 서술하며 '점술책'을 넘어서는 '철학서'로서의 [주역]을 설명하고 있다. 거북등짝이나 짐승뼈 굽기가 아니라 대나무 또는 산가지로 치는 '주역점 치는 방법'은 덤이다.
[주역]의 가르침은 '점술'에 운명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 중 하늘과 땅의 자연을 잇는 인간의 주체적인 '덕(德)'으로 자연 속 '변화'의 이치를 파악하고 이에 적절히 대처하는 것이다.
[주역]의 길한 괘사나 효사가 나온들 흉한 조짐이 있고, 흉한 괘효사에도 불구하고 궁극에 달하면 길한 운명을 개척할 수 있는 것이다.
[주역]은 '변화'에 기반한 '유물론'과 '변증법', 그리고 '맞얽힘'의 경전이다. 이와 같은 동양 고전 사상은 서양의 뉴턴식 물리학적 세계관과 '맞섬'의 관계였을 수 있으나 아인슈타인을 너머 현대의 '양자역학'의 세계관과 교차됨이 없었음에도 동양과 서양이 '양자역학'적으로 감응한다. '상대성 이론'으로 뉴턴의 '절대적' 물리학 패러다임을 극복한 아인슈타인은 마지막까지 '양자역학'이 틀렸음을 증명하려 했으나 결국 그의 논증은 '양자역학'을 더욱 공고히 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한다. 그만큼 '양자역학'의 세계는 무궁무진한 영역이다.
현대 물리학자들은 물론 [코스모스] 시리즈를 이어가는 칼 세이건의 동료이자 배우자인 천체물리학자 앤 드루얀 조차도 확실히 모르겠다고 토로하는 '양자역학'에 따르면 '입자'는 '파동'이며 '물질'은 '에너지'다.
고전의학 또한 '에테르체'라는 '파동' 에너지와 화학적 호르몬체의 대균형을 통해 예방의학으로 이행을 준비하고 있다. 미국의 내과 의사 리처드 거버가 1980년대에 발표한 '양자역학'적 [파동의학]은 2001년에 개정판이 나왔고 2021년에 국내 진보적 동서의학자에 의해 재번역되어 다시 나왔다.
[맞얽힘]에서 '맞선 둘'인 동양의 [주역]과 서양의 '양자역학'은 '얽히고' 연결되는 '하나'다.
따라서 나는, '모든 물질의 본질은 운동'이고 '운동은 변화를 수반'하며 '양질 전환'을 그 내용으로 하는 '변증법'으로 '맞얽힘'을 다시 이해하고자 하는데, 아마도 새로운 세계관으로서 '맞얽힘'을 선언한 저자 이철 선생의 의도를 거스르며 다시 고전적으로 곡해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만약 그렇다면 내가 잠시 알았을 수도 있었을 저자 이철 선배님께 송구한 일이겠다.
그러나 '맞얽힘' 또한 완성된 용어가 아니기에 나는 다시 새로운 '유물변증법' 또는 '변증법적 유물론'을 소환한다.
새롭게 복원되는 우리의 '맞얽힘'의 변증법은 역시 완성되지 않은 '양자역학'과 함께 갱신되고 '현대화'되어야 한다.
'맞얽힘'은 새로운 '변증법'이다.
"... 서양의 세계관인 '분리'와 '맞섬'의 세계관과 동양의 세계관인 '얽힘'과 '연결'의 세계관을 통합해야 한다. 그 통합한 세계관이 바로 '맞얽힘'의 세계관이다. '맞얽힘'의 세계관은 나와 남을 별도의 존재로 간주하면서도 서로가 존재근거임을 인식하는 세계관이다. 인간과 자연을 분리하여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하나로 연결되었음을 분명히 인지하는 세계관이다... '양자역학'... '[주역]'... '물극필반(物極必反)'의 법칙... '맞얽힘'으로 이루어진 사물은 모두 그 변화가 궁극에 도달한다. 이 법칙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중(中)'이다... '[중용]'... '평천하' 사상이 등장한 것은 개인에게 '중용(中庸)'을 맡겨둘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 [맞얽힘], <결론. '맞얽힘'으로 세계관을 바꾸자>, 이철,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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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맞얽힘 : 맞선 둘은 하나다], 이철, <움직이는책>, 2021.
2. [주역 - 왕필 주](3세기), 왕필, 임채우 옮김, <길>, 1998~2013.
3. [운명 앞에서 주역을 읽다], 이상수, <웅진지식하우스>, 2014.
4. [파동의학](2001), 리처드 거버, 최종구/양주원 옮김, <에디터>, 2021.
5. [시차적 관점(The Parallax View)], 슬라보예 지젝 지음, 김서영 옮김, <마티>,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