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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자요, 라흐마니노프 ㅣ 미사키 요스케 시리즈 2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이정민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19년 6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난한 음대생 기도 아키라는 하루하루가 살아나가고 버티기에 급급한 청춘입니다. 그런 그가 오디션을 보고 콘서트마스터로서 오케스트라를 이끌어갈 수 있었던 건 음악에 대한 그의 열정 때문이었겠지요.
시가로 2억 엔이나 하는 첼로가 사라지고, 피아노가 파손되고, 학장의 목숨을 위협하고 결국에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와 라흐마니노프의 연주자도 바뀌고 맙니다. 연주회만이 마지막 남은 기회였던 아키라는 붙잡을 수 있는 건 다 붙잡아 보는데요. 그러다 보니 자신이 얼마나 음악을 사랑하는지 그리고 아끼는지 다시 한번 느끼게 됩니다.
잘 자요, 라흐마니노프는 미사키 요스케 탐정 시리즈의 두 번째 소설입니다.
첫 번째 책인 안녕 드뷔시를 읽고 읽었더니 겹치는 장치들이 이제 눈에 조금씩 보이기 시작합니다.
자연재해, 금수저 손녀, 주인공의 고군분투와 그리고 약간의 성장소설 느낌도 말이죠. 또 하나 음악을 너무 사랑한다는 사실도 있습니다.
취업을 걱정해야 하는 음악 전공자의 현실과, 있는 자와 없는 자의 차이가 너무 와닿더군요. 일본 배경 소설이지만 우리나라 현실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열악한 현실 속에서 지켜가고자 하는 젊은 음악인들의 전쟁 같은 모습이 너무 사실적이라 더 가슴 무겁게 읽은 것 같아요.
음악인의 연주회 참가 목적이 학비라니....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현실 속에서 전공자들도 그런 생각으로 콩쿠르에 나가고 할 테니 뭐라 할 말이 없어지더군요.
무서운 자연재해인 태풍을 피해 대피소로 가는 중에도 바이올린이 비에 젖지 않게 가지고 가지만 그런 줄도 몰랐다는 대목에 맘이 짜~안 합니다. 일상이라 몰랐겠지요.
이건 제 생각입니다만 저는 태풍이나 갑작스러운 미사키 선생님과의 연주 장면은 좀 붕~ 뜬다는 느낌이 있었지만 주인공의 심리적 변화에 꼭 필요한 장면이라 여기며 읽고 지나갔습니다.
잘 자요, 라흐마니노프를 읽으면서 새로운 재미가 있었습니다.
안녕 드뷔시에 나왔던 그녀를 이 작품에서도 만날 수 있었거든요. 그녀의 강렬했던 등장이 안녕 드뷔시라면 그녀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던 건 잘 자요, 라흐마니노프입니다
시모스와 미스즈... 어디서 들어봤지? 싶은데 전작 안녕, 드뷔시에 나온 그녀더라고요!
이런 게 시리즈물의 재미가 아닌가 싶습니다.
또 하나의 재미는 책 속의 음악들입니다. 라흐마니노프 말고도 파가니니의 음악을 찾아 들어보게 되더군요.
책의 맨 뒤 옮긴이의 말에서는 영화도 추천해 줍니다. 노다메 칸타빌레를 포함한 다양한 영상도 함께 보시면 재미가 두 배가 될 것 같아요
저는 이제 시리즈 세 번째 작품인 언제까지나 쇼팽으로 넘어가려고 합니다. 이 시리즈 무척 흥미진진합니다.
요즘 같은 코로나 시대에 집콕에 딱 어울리는 시리즈에요! 꼭 읽어보세요^^
"그런데 이 학교를 고른 단계에서 다들 성실한 직장인이 될 생각일랑 아예 없었잖아. 지금껏 한눈팔지 않고 오직 음악의 길만 걸어왔지. 그런데 만약 음악으로 먹고살지 못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하는 걱정도 머리를 스쳤을 거야. 제대로 된 자격증이나 기술도 없으니까 잘해 봐야 비정규직, 안 되면 백수. 예술가를 꿈꾸며 달려온 결과가 세상에서 배척당하는 거지." P.42
"너 말이야, 역시 의뭉스러워. 정작 너만 그걸 몰라. 제일 고약한 유형이지. 말짱한 얼굴로 사람 복부에 보디블로를 날리잖아, 심지어 연타로." ---- P.87
" 어떤 성격이든 매일같이 '유감스럽지만'으로 시작하는 불합격 통지를 받으면 좌절하게 돼있어. 번번이 면접관 앞에서 '이 회사의 사풍이 제게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하고 얼굴에 한껏 미소를 장착하고 나 자신한테 거짓말까지 해가면서 면접을 봤거든. 처음에는 얼마나 고역이었는지 몰라. 그런데 더 싫은 건 거짓말에 익숙해지는 나 자신이었어.." -----P.88
"그건 생물이야. 이 세상에 태어나서 3백 년 동안 자신에게 걸맞은 연주자를 찾아다닌, 의지를 가진 생물 말이야. 그날 기분에 따라 소리도 거침없이 바꾸고, 서툰 연주자에게는 냉소를 흘리며 미천한 연주자에게는 대꾸도 안 해. 그 대신 내가 진지하게 마주하면, 그리고 악기에 숨겨진 잠재력을 끌어내려 노력하면 차원이 다른 음악을 선보여 주더라. ---P.125
"뭐든지 승부를 겨룰 때가 오지. 그럴 때는 한눈팔지 말고 똑바로 달려야 해. 안 그러면 이기지도 못할뿐더러 후회가 남거든. 그때 왜 전념하지 않았나, 노력과 시간이 더 있었다면 성공했을지도 모르는데, 하는 후회가 평생 가지." ----P.215
기만을 때려 부숴라.
나태를 짓밟아라.
불안을 흩뜨려라.
나약함을 날려 버려라----p.259
"으음 .... 그럼 하나만. 너희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사람을 떠올리렴."
"지금부터 너희들 한 명 한 명은 소중한 사람을 향해 연주하는 거다. 그 사람에게 들리도록. 그 사람의 가슴에 가닿도록. 그 사람과 이야기를 하고 즐겁게 하는 것, 그리고 그 사람을 위로하는 것. 그것이 음악의 원점이거든. 그럼... 레디?" ----p.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