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설헌 - 제1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최문희 지음 / 다산책방 / 2021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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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희라는 이름이 왠지 낯설다. 늘 문학 시간에 허난설헌이란 이름으로 배워서인가?



'나에게는 세 가지 한이 있다. 여자로 태어난 것, 조선에서 태어난 것, 그리고 남편의 아내가 된 것...'


뒤표지에 적힌 이 문장이 가슴을 때린다


시대를 잘못 타고 태어난 여인 초희. 초희의 함이 들어오는 날로 책은 시작된다


난설헌의 삶은 결혼 전과 후로 나눌 수 있는데 사대부 집안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그녀의 집안은 여자라는 이유로 그녀를 옭아매는 분위기는 아니었던 것 같다.


아버지의 열린 교육관이 딸에게 초희라는 어엿한 이름도 주었고 교육 기회를 주고 스승과 오빠들의 따뜻한 격려가 그녀를 문인으로 자라나게 해주었다.



"공자님 말씀에, 여자는 사람들 앞에 구부리는 것이니, 삼종의 도가 있을 뿐이라고 하셨다. 집에서는 부모를 따르고, 시집가면 남편을, 지아비 죽으면 자식을 좇아 잠시 잠깐이라도 스스로 이루는 바가 없어야 한다고 했느니, 아예 서책 보기를 버러지 보듯 하는 게 좋을 게야...."


시집가기 이틀 전 어머니가 초희를 앉혀놓고 하는 말이다. 아.. 조선시대.. 삼종의 도라니..


어머니 말씀에서 답답함이 화악~ 몰려오는데 글을 읽고 쓰는 걸 즐겨 하는 그녀에게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것과 같은 말이니 결국 초희는 눈물을 흘리고 만다.


첫날밤 새신랑인 성립은 그녀를 짓밟듯이 일을 치르는데, 왠지 새 신부가 성립은 어렵고 대하기가 거북하다


도도한 한 마리 학 같았을까? 자신보다 학문의 깊이가 다른 처가의 그림자가 신부한테까지 영향을 끼친듯하다.


결혼생활은 초희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고되었다.


시어머니 송 씨는 자신보다 하얀 피부와 고운 미모를 가진 며느리가, 글 꾀나 읽어 아들의 기를 죽이는 것 같은 며느리가 밉기만 한데...


결혼 후 단 하루도 예쁨을 받은 적이 없는 초희가 너무 가여워 애가 탄다.



왜 아버지인 허엽과 오라비인 허봉은 최순치를 못마땅하게 여겼던 것일까?


김성립이 명문가의 자제라 그냥 딸을 시집보낸 것이었을까?


최순치가 명문가의 자제였다면 눈에 차지도 않는 김성립과는 불행하지 않았을까?


모자란 마음의 김성립에게 초희는 얼마나 부담스러운 아내였을지도 이해가 되지만 그래도 조금만 더 마음을 넓게 쓸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좋았겠다 싶어 안타까움이 배가 되네요.



열다섯에 시집가 아이를 돌림병으로 둘 모두 잃은 초희는 결국 마음의 병을 이기지 못하고 맙니다.


아버지와 가장 따르던 오라비인 허봉까지 모두 객사하자 초희도 자식과 형제를 따라가리라 마음먹게 되는데요.


그녀의 나이 겨우 27살입니다.


지금이야 한창 꽃을 피울 나이일 텐데 조선 땅에서 여자로 태어나 뜻한 번 피지 못하고 져버린 꽃이 돼버린 허난설헌.


책을 읽는 내내 그녀의 재능이 그리고 마음 씀씀이가 안타까웠습니다.


조선 땅에선 여자에게 불필요하다며 지필묵 쓰는 것도 눈치를 보았던 그녀였는데....


그녀가 다른 나라에서 태어났다면, 김성립과 중매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차라리 먼 나라로 유학이라도 갔다면...


계속 상상해봅니다.


시숙모 영암댁, 허봉 오라비를 흠모한 기생 수연도 모두 그 시대의 희생자들이겠지요.



백일홍은 맨살이다 그래서 꽃 색깔이 저다지 진분홍인가. 있는 그대로 발가벗고 서 있는 나무....


그미의 눈가에 눈물이 핑그르르 어린다.


겹겹이 감추고, 숨기고, 억압하고, 그것만으로도 부족해서 순수한 본성까지도


작은 틀 속에 가두려는 제도와 인습이 문득 진저리 쳐진다.


내 어찌 이 땅에 아녀자로 태어나 이 작은 틀 속에 갇힌 신세가 되었던고.


죽어 다시 태어나면 저 너른 중원 천지를 말 타고 달리는 남정네로 태어나리라. p.242 [백일홍을 바라보는 초희]


"누님, 너무 많이 생각하면 세상의 모든 이치가 곤두박질친답니다.


주어진 대로 받아들이고, 시키는 대로 따르는 것이 지혜로운 생이 아닐까 싶어요.


물처럼 거스르지 않고 흘러가면, 바다에 이른다지 않아요." p.254 [동생 허균과의 대화 중]



그녀가 원하는 것은 그리 큰 것이 아니었습니다.


대화가 통하는 지아비와 하루 일과를 이야기 나누고 글도 읽고 시도 지으며 생각을 나눌 수 있는 그런 삶이었을 뿐입니다.


뭐 대단한 소원이라고 하늘도 무심하게 단 하루도 그리 살지 못하게 하고 데려간 것인지.


책을 읽는 동안 내내 허난설헌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하얀 얼굴과 큰 키에 가녀린 몸매 시를 읊조리는 붉은 입술...


제1회 혼불문학상 수상작인 최문희 작가님의 난설헌 이 책은 10년이 지난 지금 리커버 되어 다시 발간되었다


10년이 지나도 세련된 문장과 난설헌의 생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한 생생한 글들이 이 책을 읽는 독자를 더욱 즐겁게 한다.


여자여서, 여자라서, 여자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그 시대의 삶을 살아낸 여성들과 그리고 앞으로 더 나은 삶을 살아가려는 모든 여성들에게 이 책을 추천드리고 싶다.


*해당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직접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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