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스님 열반 18주기 회향일과 대영암보살님의 12년 삼천배 기도 회향일이 겹쳤다. 

토요일 오후, 백련암으로 가는 발길이 즐거웠다. 

백련암엔 법당마다 사람들로 넘쳐나고, 새벽 두 시쯤 칼잠을 자는 보살들 틈에 끼어들어 나도 잠을 청했다. 

고심원에서 들리는 지심귀명례 소리를 자장가 삼아 세시간 정도 잤다. 좌복을 덮고 모로 누워자는 불편함 속에서도 깊은 잠은 삼천배의 고단함을 모두 녹여주었다. 

 

1박 2일의 철야 기도를 마치고 집으로 오는 일요일, 하늘이 맑고 아름다웠다. 

혼자  푹 쉬라고 남편은 텃밭에 나가고, 낮잠을 자고 일어나 혼자 차를 마셨다. 

열어둔 창으로 맑은 가을 바람이 들어오고, 난초 잎이 흔들렸다. 

난초 잎을 흔드는 바람, 투명한 햇살, 작고 아담한 화분. 

내 삶을 품위있게 해 주는 것은 가족과 아이들, 도반과 동료와 친구들이고 저 난초 잎처럼 나를 가볍게 흔들어주는  바람과 햇살인 것이다. 

 

꽃 피우고 잎을 흔들며 살 수 있게 해주는 바람과 햇살과 물로 인해 난초는 난초이다. 

이 세상에 오롯이 난초일 뿐인 난초는 없는 것이다. 

이 세상에 오롯이 나일 뿐인 나는 없듯이, 나를 둘러싸고 무한히 무제한적으로 아낌없이 베풀어주는 모든 인연이 있어, 오늘의 내가 차를 마시고 있는 것이다. 

감사의 눈물이 볼을 타고 내렸다. 

대영암보살님의 기도 회향이 세상의 어둠을 조금이라고 거둘 수 있는 싹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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