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면 공부방에서 영어 니까야를 함께 읽는다.

쉬는 시간에 어느 노처사님이 말씀하셨다.

나이가 들어가니, 우리도 어떻게 죽을 건지 연습을 좀 해야겠다고 하셨다.

그래서 옆에 계시던 처사님이 "죽어야 죽는거지 죽는 연습을 어떻게 하노?"해서 웃고 넘어간 적이 있다.

 

불교대학에서 청화스님의 마지막을 들었다.

자기 몸을 혼자 건사 못하게 되자 서서히 드시는 것을 반으로 줄이고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또 반으로 줄이고, 또 줄이고 하셨다고.

그 마지막 모습을 뵈러 갔는데, 너무 슬펐다고.

 

그 말을 들으니 문득, 동물도 죽을 때나 아플 때가 되면 음식을 끊고 혼자 동굴 속에 있다고 들었는데 사람이 코로 튜브를 연결해서 단지 숨만 쉬게 해서 5년 10년 더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헬렌 니어링과 스콧니어링의 책을 읽으며 이렇게 죽어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있지만, 요즘 주변에 보면 요양 병원에서 의식도 없이 5년, 10년 계시다는 얘기를 심심찮게 듣고 보면, 정신이 좋을 때 연명치료에 대한 의견을 자식에게 분명히 하는 것, 배우자에게도 분명하게 인식시키는 것도 본인의 죽음에 대한 준비가 아닌가 싶다.

우리 부부는 서로 연명치료를 하지 않기를 아이들 앞에서도 이야기하고 우리도 그러자고 약속했지만, 과연 청화스님처럼 스스로 음식을 줄이고 줄여서 죽음을 고요히 맞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고보면 평소에 연명치료 하지 마라. 죽을 때 되면 그냥 갈란다 하시던 친정아버지가 생각난다. 말씀처럼 가셨지만 가끔은 너무 그립고 보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