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모르는 이야기 오늘의 젊은 문학 2
서장원 지음 / 다산책방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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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모르는 이야기

자신의 세계에 균열의 징조를 발견한 사람들은 “당신은 모른다”고 안도하며 폐허의 기미를 알아차린다. 그들은 예정된 몰락으로부터 자각하거나 인정하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하지만 서사는 그들을 예상치 못한 국면으로 끌고 간다. 이야기의 무게중심은 화자로 옮겨지고 어느덧 독자는 강렬하게 이입하며 서사의 어느 지점에서 머무르게 된다. 소설의 인물과 화자와 독자가 『당신이 모르는 이야기』의 ‘당신’이 될 수 있고 또한 모를 수 있다.
그들의 서사로부터 자신의 삶을 돌이키는 것은 소설을 비롯한 문학의 핵심적인 성격일 것이다. 이야기에서 독자 자신에게로 떠나는 심리적 여정의 결과물은 재미일 수도 있고 감동이나 교훈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서장원의 『당신이 모르는 이야기』를 읽고 느낀 감상은 재미, 감동처럼 카테고리화된 감정의 영역처럼 단순하지 않았다. 화자는 인물의 이야기를 전하고 화자는 전달의 과정에서 돌이킬 수 없는 정서의 균열을 느끼고 소설을 읽는 독자는 몰입하며 서사에 감정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여과되지 않은 지난날의 불안 혹은 두려움을 돌이켜보게 된다.
이 소설집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불가해한 상황을 외롭게 대면한다. 작가는 섬세하고 강렬하게 그 장면을 포착한다. 돌이킬 수 없이 무너지기 직전 같기도 하고, 지금껏 그래왔듯이 간신히 넘어갈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소설에서 문제 상황을 대면하는 인물들은 범주화가 가능하다. 상실의 불안을 느끼는 중년 혹은 노년의 인물, 거리감을 느끼는 연인들, 그리고 배제에 익숙한 소수자로 나눌 수 있다. 가장 인상적인 소설은 중년 혹은 노년의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해변의 밤> <주례> <해가 지기 전에>였다. 젊은 소설가가 그려내는 중년 혹은 노년의 복잡한 감정의 결은 매우 선명하게 느껴졌다. 세월에 의연하지만 불안과 좌절을 끌어안으며 시간의 모욕을 느끼는 존재들은 소설을 통해서 섬세하게 그려지고 있다.
9편의 단편소설들이 모여있기에 소설의 인물과 설정이 모두 다르지만 하나의 이야기로 인상을 남기는 이유는 모든 이야기에서 균열의 기미들이 서사를 장악하고 또한 파국의 증조를 선명하게 포착하는 작가의 역량 때문일 것이다. 『당신이 모르는 이야기』는 호기심을 자아내는 제목이다. 하지만 모르는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고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여전히 모르고 있는, 즉 감지하지 못하는 이야기들을 작가는 소설을 통해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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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편이 되어 줄게 - 할아버지가 엄마에게는 해 주지 못했던 말
한기호 지음 / 창비교육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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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편이되어줄게
한기호
창비 창비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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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태어날 때, 주변의 사람들은 축복과 희망을 전함과 동시에 각자 이름을 하나씩 갖게 된다. 아이에게는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가 생기는데 동시에 이들에게도 새로운 이름과 역할이 주어지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인 한기호 작가님도 2019년 7월 19일 할아버지가 되었다. 그렇게 불러줄 사랑스러운 손자에게 응원의 마음을 담아 당부하는 글들이 한권의 책으로 나왔다. 기쁨과 행복으로 가득찬 새내기(?)할아버지이기도 하지만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으로 출판평론가로 알려진 작가님의 글은 출판에 대한 애정어린 조언과 분석으로 큰 신뢰를 주었다. 독서와 출판에 대한 그의 칼럼들을 읽으면 통찰과 혜안에 감탄한 적도 많았다. 그렇기에 손자를 향한 편지에서도 그 편지들의 수신자는 정해져 있다지만 지혜와 안목을 독자로서 나눌 수 있어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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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에게 하는 말로 편지를 시작하지만 쓰다가 보면 세상에 대한 이해와 삶에 대한 철학이 이어지기도 한다. 일상의 실수담이 나오기도 하고, 앞으로의 삶에 대한 전망을 전하기도 한다. 어떤 이야기가 나오든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이에게 전하는 진심이 느껴져 페이지마다 감동하게 되었다. 출판인으로서 출판저널인 <기획회의>와 <학교도서관저널>을 만들 때의 포부와 열정 동시에 그만두려다가 다시 일어선 이야기들 마저도 진정성이 느껴졌다. 어쩌면 이런 이야기들은 손자에게 하고 있다고 하지만 자신에게 울림을 남기는 고백처럼 들린다. 어쩌면 수신인이 손자로 정해진 사적인 편지를 넘어서 출판인의 깊은 지혜를 만날 수 있는 기회로서 감사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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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깊이, 소중한 사람과 보낸 시간의 깊이, 사유의 깊이를 느끼며 살았으면 한다. 네가 발을 딛고 있는 곳에서 조금씩 깊이를 더해 간다면 자연스럽게 높은 곳에서 더 많은 곳을 내려다보고 큰 그림을 그릴 줄 아는 어른이 될 수 있을 거야. 할아버지는 살아 있는 동안 너에게 꾸준히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한다."(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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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태어나고 아이를 위해 마음쓰는 일들은 어느 집들이나 닮아 있어 예전 생각이 나기도 했다. 애정과 걱정이 하루에도 수없이 오고가며 오직 아이만을 생각했던 시간들을 떠올리게 했다. 이 책은 한이의 외할아버지가 쓴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한이의 엄마 마음이 너무나 소중하게 담겨있다. 이를 지켜보는 작가님의 시선이 따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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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이를 낳고나니 지금까지 한번도 느끼지 못했던 감정을 느껴요. 지난 시간 참 힘들었던 기억을 단 한번에 녹여 주는 위로, 아이의 들숨과 날숨이 나르는 삶의 온도, 엄마가 되었다는 책임감 덕분이 그간 방황하던 삶의 방향성은 명쾌해졌어요."(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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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이엄마의 목소리는 부드럽고도 힘이 느껴진다. 이 책에 등장하는 부분마다 눈가가 촉촉해졌다. 이 책은 "할아버지가 엄마에게는 해 주지 못했던 말"이라고 하지만 , 그 아쉬움이 느껴지지만 나는 함께 아버지와 딸로 살아가며 말들이 해주기전에 이미 전해졌다고 느낀다. 한없이 너그러우며 동시에 지혜로운 말, 아니 그 이전에 눈빛 혹은 마음. 이 책을 통해 가족의 사랑의 깊이를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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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인이며 출판평론가로서 일반 독자에게 전하는 지혜는 한이라는 수신인을 만나 한결 부드럽게 다가온다. 하지만 결이 부드러워졌다고 예리한 통찰을 놓치지 않는다. 인공지능이나 고령사회에 대한 전망 뿐만 아니라 출판에 헌신한 삶으로부터 읽고 쓰는 삶에 대한 조언까지, 이 책이 전하는 지혜는 매우 깊고 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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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노래 가사를 흥얼거리며 이 책을 폈다. (커피소년) 네 편이 되어준다는 따스한 마음이 무한히 이어진다. 내가 듣는 말이 되어 마음이 든든해지고 동시에 나도 누군가에게 같은 마음으로 네편이 되어주겠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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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라이호라이 사계절 그림책
서현 지음 / 사계절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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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라이호라이
서현
사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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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라이는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호라이호라이" 마치 어딘가로 떠나는 흥겨운 외침같고, 또 두손을 모으고 즐거운 상상을 하며 외우는 주문같기도 하다. 호라이호라이. 큰소리로 외쳐도 보고 작은 목소리로 소근소근 말해보기도 한다. 어쨌든 얼굴에 미소가 번져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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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있었던 말처럼 입에 착착 붙고 아이들도 표지부터 신나게 따라한다. 어디서부터 시작했더라? 아, 밥위에 계란후라이. 호라이라고 불러보고 호라이호라이 두번 외치니 상상의 공간으로 모험을 떠난다. 밥위의 후라이는 <호라이>에서 장소를 이동하며 유머를 변주하더니 <호라이호라이>에서는 아예 우주로 솟구친다. 장르를 규정할 수 없는 신나는 호라이의 모험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 상상을 함께하는 것은 정말 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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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현작가의 그림답게 보기만해도 신이 나고 흥겹다. 정말 누구나 좋아할 수 밖에 없는 그림책다.

도서협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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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라이 사계절 그림책
서현 지음 / 사계절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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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호라이
호라이
서현
사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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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라이가 무엇일까. 표지의 계란후라이가 능청스러운 자세로 앉아있다. 그 이름을 이제 "호라이"라고 하자. 호라이는 당연히 밥위에 있다. 그런데 머리위에 올라간 호라이가 고양이 꼬리 위에 있다. 이제 호라이는 어디에 있을 것인가? 먹음직스럽게 밥 위에 있던 제자리를 벗어난 호라이는 짐작을 벗어나 그야말로 어디에든 위치한다. 그 상상만으로도 호라이는 정말 재미있는 그림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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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현작가의 전작들을 보면 단순한 상상이 일상에서 상상을 만나 유쾌하게 변주되는 장면들을 만난다. <눈물바다>에서는 눈물이 바다를 이루며 시원함을 느끼고 <간질간질>에서는 머리카락이 나로 변신하여 무수한 나를 만난다. 단순하면서도 유쾌한 그림과 선명한 색감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나 최고의 즐거움을 준다. 서현의 그림책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아이들에게는 말할 것도 없고 어른들에게도 사소한 공상에 빠져들게 할만큼 재미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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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라이의 서사는 유쾌한 반란이다. '밥 위에'라는 정해진 자리를 마음껏 탈주하는 이 장난꾸러기 호라이에게는 갈 수 없는 곳이 없기 때문다. 달걀프라이에 대한 상상이 더이상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신난다. 더없이 엉뚱한 공간에서 발견되는 호라이의 이야기는 아이든 어른이든 유쾌한 해방감을 느끼게 한다. 어쩌면 고작 호라이가? 라는 의문은 접어두고 호라이의 신나는 여정를 맥락없이 응원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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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욱 교수의 소소한 세계사 - 겹겹의 인물을 통해 본 역사의 이면
조한욱 지음 / 교유서가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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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욱교수의소소한세계사
조한욱
교유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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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에서 역사칼럼을 보면 흥미롭게 읽으며 칼럼들을 모으면 어떤 역사책이 될까 생각해본다. 오늘이라는 시의성과 동시에 시간의 맥락에서 가장 재미있을 이야기 혹은 알아야할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대부분의 역사책이 선사시대나 고대에서 시작해 현대로 내려오는 구조라면 이 책은 문화사학자인 저자의 역사칼럼들이 그가 쓴 시기별로 모여있기에 시의적이며 다양한 주제들을 만날 수 있다. 신문의 짧은 역사칼럼을 더 읽어보고 싶다면 이 책의 구성이 인상적일 수밖에 없다. 즉 오늘의 칼럼 또한 역사 공부(의 시험범위)에서 벗어난 새로운 이야기들이라 인상적이다. 그리고 키워드가 제시되어 있어서 뒤의 '찾아보기'를 통해 관심가는 주제별로도 읽어볼 수 있다. 읽이 책이 소소한 세계사라는 제목인 이유는 '소소한 역사 인물들의 소소하지 않은 역사'이다. 어쩌면 나로서는 처음 듣는 인물들이기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으나 그들의 영향이 현재에 남긴 파장은 매우 크다. 그래서 소소한,이라는 수식어가 본래의 의미와 역설적 의미를 동시에 담고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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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에 낯선 인물들이 많이 등장했다. 풀먼 파업을 이끈 '유진데브스', 평민들을 사랑한 로마 장군 ‘만리우스 카피톨리누스’, 출판업을 선도한 ‘알도 마누치오’, 학교폭력에 맞서는 움직임을 보여준 분홍셔츠를 입은 '제이드리언 코타' 근대의 성공한 여성 음악인‘카치니 자매’ 등등 많은 주제로 낯선 인물들을 만나는 것이 마치 누군가 만들어낸 서사가 아닌가 싶을만큼 다채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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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알고 있는 인물이 나오더라도 모르는 일화나 미처 생각하지 못한 해설이 이어져 반갑고도 훙미로웠다. 카이사르, 헤르만헤세, 오선웰즈, 나이팅게일, 이사벨라 버드 비숍, 살리에리, 볼테르, 피델카스트로. 책을 읽고 기억나는대로 적었는데 이토록 분야를 막론한 종횡무진의 역사책은 처음이었다. 이러한 광폭의 시도(?)가 가능한 것은 역사라는 범주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 돌이켜 생각해보면 역사공부를 하면 그 흐름의 중요성을 알면서도 뇌리에 남는 것은 역사적 인물이 주는 호기심 혹은 감동이었다. 이 책이 있어서 굉장히 든든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하는 것도 좋지만 마치 신문을 읽듯이 가볍게 눈길이 닿는 인물이나 사건부터 읽어도 좋을 듯 하다. 역사를 교양으로 공부하는 이유, 역사책을 읽는 이유는 나의 경우에는 박식함이다. 더 풍요롭게 알고 싶은 마음인 것이다. 그러나 단지 그 이상임을 느낀다. 세상을 보는 눈을 키워주고 분야를 막론하여 강렬한 호기심의 단초를 제공하는 것이 바로 역사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러한 나의 마음을 충실히 만족시켜주는 책이다.


도서협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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