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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우연한 고양이 ㅣ 문지 에크리
이광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7월
평점 :
너’라고 불리는 고양이들을 상상한다. ‘기형의 심장을 가진 늙은 고양이’인 보리와 ‘죽을 운명을 간신히 피한 어린 고양이’일다는 작가에게 ‘너’라는 관찰과 사유의 대상이 된다. 그들은 길고양이였으며 그들의 삶은 도시의 덧없는 리듬을 닮아있다고 한다. 작가의 동거인이 된 ‘보리’와 ‘일다’. 그에 따르면 ‘고양이에게 진짜 이름을 붙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하지만 동거의 첫 번째 조건이 이름인 것처럼 ‘보리’ 그리고 ‘일다’라고 붙여진다.
‘너의 이름은 보리이다. 그 이름을 붙여준 것은 어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보리라는 소리가 가진 친근함과 사소한 따뜻함.’ (p.16)
‘간호사가 수속을 위해 “고양이 이름이 뭐죠?”라고 물었을 때, 이 고양이가 생년월일도 이름도 없다는 사실이 오래전 비극처럼 느껴진다. 순간적으로 일다라는 이름을 떠올린다. 일다, 일다, 일다, 일다…… 이름은 주술이다.’ (p.55)
고양이와의 관계는 구축이지 종속이 아니다. 애완과 반려의 다른 차원이라고 말할 수 있다. 고양의 눈동자, 시선, 걸음걸이, 실루엣, 잠 등 고양이에 대한 섬세한 관찰은 대상에 대한 사유의 깊이 뿐만 아니라 삶의 낯선 감각들을 조명한다. 고양이라는 프리즘으로 사유에 접근하고 빛의 영역들이 선명하게 확장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 책에 등장하는 고양이 보리와 일다는 ‘너’라는 이인칭으로 불린다. 이인칭은 고양이라는 것을 의식하면서도 순간 읽고 있는 나, 즉 독자를 부르는 것처럼 낯선 경험이다. ‘너’에 이입하여 필자가 시도한 고양이 되기를 시도하는 것이다. 고양이의 눈으로 나에서 ‘너’가 되는 역전이 이어지기도 한다. 따라서 ‘너’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은 고양이들과 필자 그리고 읽고 있는 독자에게까지 해당된다.
그렇다면 왜 이인칭이어야 했을까. ‘나(고양이)’라는 설정은 명백한 허구로서 진정성의 순도가 떨어진다. 의인화된 고양이는 동거와 관찰의 대상을 벗어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그’라는 삼인칭은 대상화되어 자의적인 해석이 가능하다. 주체와 객체의 시선은 동등하지 못하다. 고양이를 내려다보는 수직적 시선은 적절한 관찰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너’로 불리는 대상은 관계로 구축되지만 자유로움을 짐작하게 한다. 종속이나 포섭이 아닌 언제든지 멀어지거나 거리를 좁힐 수 있는 날렵한 운동성은 고양이에 대한 해석으로 가장 설득력이 있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이 책은 ‘고양이 하기’ ‘고양이 되기’로서의 글쓰기가 가능한가에 대한 결과라고 한다.
‘고양이의 삶은 불가능하지만, 고양이로서의 삶이 시작되는 시간은 아무 데서나 찾아온다.(p.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