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 1 - 아모르 마네트
김진명 지음 / 쌤앤파커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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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

직지라는 제목은 직지심체요절을 연상하기 때문에 역사소설이기도 하지만 미스테리 기법으로 강렬한 흡입력을 선사한다. 또한 이야기는 시공간의 벽을 허물고상상 이상으로 확장해나간다. 현재에서 과거로 동양에서 서양으로 그리고 구텐베르크 금속활자가 직지와 연관되어 종횡무진하는 것이다.

니 소설은 주인공인 기자 기연이 기이한 살인사건-상징살인을 발견하면서 시작된다. 서울대 라틴어 전공의 노교수가 살해되고 범인을 추적하는 동시에 이야기의 범위가 확장된다. 이야기의 무대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이끈다.

직지에서 구텐베르크 그리고 조선시대의 한글과 로마 교황청까지 종잡을 수 없는 속도감으로 독자의 시선을 이끈다. 시대적 공간적 배경이 예상치 못하게 확장되는 중에도 이야기의 밀도와 긴장이 놀라울 정도로 팽팽하다. 이전작으로도 증명이 되었지만 또 다른 소재에서 이야기를 엮어나가는 힘이 대단하다고 여겨지고 또한 그간의 작품들에서 한국의 역사와 재조명으로 독자의 마음에 구심점을 심어줬다고 볼 수 있다.

템푸스 푸지트, 아모르 마네트"
은수는 라틴어를 깨우치면서 이 글귀가 '세월은 흘러도 사랑은 남는다'는 뜻인 걸 알게 되었다. (p157)

직지의 부제목인 아모르 마네트에 대해 궁금했다. 사랑은 남는다. 활자를 통해 전해지는 지식의 전수 그 이상으로 사람에 대한 사랑을 상징하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김진명작가님의 이전작과 분명 다른 소재지만 읽고나서 마음을 강렬하게 사로 잡는 정체성은 읽는 즐거움 이상이다. 다만 이 종횡무진의 이야기가 철저한 자료조사와 철저하게 직조된 소설의 힘을 분명 확인하게 하지만 한편으로는 무리하거나 지나친 설정으로 이해할 소지가 분명하다. 그러나 그 스펙타클을 만나는 소설적 즐거움이 확실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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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우연한 고양이 문지 에크리
이광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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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라고 불리는 고양이들을 상상한다. ‘기형의 심장을 가진 늙은 고양이’인 보리와 ‘죽을 운명을 간신히 피한 어린 고양이’일다는 작가에게 ‘너’라는 관찰과 사유의 대상이 된다. 그들은 길고양이였으며 그들의 삶은 도시의 덧없는 리듬을 닮아있다고 한다. 작가의 동거인이 된 ‘보리’와 ‘일다’. 그에 따르면 ‘고양이에게 진짜 이름을 붙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하지만 동거의 첫 번째 조건이 이름인 것처럼 ‘보리’ 그리고 ‘일다’라고 붙여진다.

‘너의 이름은 보리이다. 그 이름을 붙여준 것은 어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보리라는 소리가 가진 친근함과 사소한 따뜻함.’ (p.16)

‘간호사가 수속을 위해 “고양이 이름이 뭐죠?”라고 물었을 때, 이 고양이가 생년월일도 이름도 없다는 사실이 오래전 비극처럼 느껴진다. 순간적으로 일다라는 이름을 떠올린다. 일다, 일다, 일다, 일다…… 이름은 주술이다.’ (p.55)

고양이와의 관계는 구축이지 종속이 아니다. 애완과 반려의 다른 차원이라고 말할 수 있다. 고양의 눈동자, 시선, 걸음걸이, 실루엣, 잠 등 고양이에 대한 섬세한 관찰은 대상에 대한 사유의 깊이 뿐만 아니라 삶의 낯선 감각들을 조명한다. 고양이라는 프리즘으로 사유에 접근하고 빛의 영역들이 선명하게 확장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 책에 등장하는 고양이 보리와 일다는 ‘너’라는 이인칭으로 불린다. 이인칭은 고양이라는 것을 의식하면서도 순간 읽고 있는 나, 즉 독자를 부르는 것처럼 낯선 경험이다. ‘너’에 이입하여 필자가 시도한 고양이 되기를 시도하는 것이다. 고양이의 눈으로 나에서 ‘너’가 되는 역전이 이어지기도 한다. 따라서 ‘너’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은 고양이들과 필자 그리고 읽고 있는 독자에게까지 해당된다.

그렇다면 왜 이인칭이어야 했을까. ‘나(고양이)’라는 설정은 명백한 허구로서 진정성의 순도가 떨어진다. 의인화된 고양이는 동거와 관찰의 대상을 벗어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그’라는 삼인칭은 대상화되어 자의적인 해석이 가능하다. 주체와 객체의 시선은 동등하지 못하다. 고양이를 내려다보는 수직적 시선은 적절한 관찰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너’로 불리는 대상은 관계로 구축되지만 자유로움을 짐작하게 한다. 종속이나 포섭이 아닌 언제든지 멀어지거나 거리를 좁힐 수 있는 날렵한 운동성은 고양이에 대한 해석으로 가장 설득력이 있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이 책은 ‘고양이 하기’ ‘고양이 되기’로서의 글쓰기가 가능한가에 대한 결과라고 한다.

‘고양이의 삶은 불가능하지만, 고양이로서의 삶이 시작되는 시간은 아무 데서나 찾아온다.(p.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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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싹오싹 도깨비 숲 작은 곰자리 40
구도 노리코 글.그림, 윤수정 옮김 / 책읽는곰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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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옹이

구도 노리코의 우당탕탕 야옹이 시리즈는 아기자기한 그림 뿐만 아니라 익숙한 이야기 구조로 항상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이번 여름은 오싹오싹 도깨비숲이다. 혹시라도 아이가 무서워할까 싶었지만 구도노리코가 그리는 도깨비나 오싹한 분위기는 그 조차도 너무 귀여웠다.

멍멍씨네 경단가게에 몰래 잠입한 야옹이들은 열심히 공간을 만든다. 그런데 경단이 회오리 바람에 휩쓸려가버린다. 경단을 찾아 도깨비숲에 들어가는 소동과 귀여운 변신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시그니처 장면이라고 할 수 있는 퍼엉!!!!은 여전히 찾아볼 수 있어서 반갑다.

나는 단행본 그림책을 좋아한다. 그 시작이 바로 우당탕탕야옹이 시리즈였다. 수개념이나 명명 혹은 아이와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방식이 너무 재미있었다. 아마 지금까지 오백번은 봤을텐데 ㅎㅎㅎ 이책은 얼마나 자주 볼지 모르겠다. 구도노리코를 선택하는 이유는 아마도 나의 취향과도 관련 있겠다.

그러나 이 사랑스러운 그림책은 실패가 없다. 너무나 고마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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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가능하다 루시 바턴 시리즈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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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가능하다
책을 읽으면서 무엇이든 가능하다라는 제목을 주문처럼 중얼거렸다. 처음에는 무한한 긍정이라고 믿었지만 불행을 예언하는 말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말의 주어는 삶일 것이다. 삶은 무엇이든 가능하다. 언제 닥쳐올지 모르는 불행, 감내해야하는 수치심과 좌절감, 그리고 놀라운 회복의 시간까지 모든 것이 가능한 것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내 이름은 루시바턴>의 등장인물들의 이후를 다루고 있다. 후일담이라기보다는 무대의 조명을 비춰주며 새로운 이야기들이 전개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9개의 이야기는 각각의 단편소설이면서 하나의 장편소설 된다. 어떤 이야기의 진실이 다른 이야기에서 의외의 인물에 의해 설명되기도 한다. <올리브 키터리지>처럼
생생한 인물들은 소설의 경계를 오고가며 살아간다. 단편소설이 삶의 단면을 예리하게 절단하여 보여준다면 이 작품은 단면 이상의 입체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 작품은 마치 돌림노래를 부르듯 인물이 조연에서 주연으로 등장하며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한다. 루시를 중심으로 주변의 인물들은 각각의 이야기에서 주인공이 된다. 9개의 이야기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계시"와 "풍차"였다.
토미는 화재로 농장을 잃은 비극에서도 담담히 살아간다. 돌이킬 수 없는 사고였지만 토미는 화재가 신의 계시였다고 생각해왔다. 자신이 불타는 집과 농장을 바라보며 하느님의 계시를 떠올리는 그를 상상하며 현현에 대해 떠올랐다. 그리고 피트와의 대화에서 무너지는 그의 모습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다음으로 "풍차"는 수치심과 회복에 대한 이야기다. 고등학교 진로상담교사인 패티는 상담중에 무례한 학생에게 심한 말로 상처를 준다. 그후 패티는 우연히 루시 바턴의 책을 보게 되고 고통과 좌절에 대해 공감한다. 패티에게도 공유할 수 없는 고통의 기억이 있었음을 떠올고 회복의 용기를 내본다.
어떤 영화 대사에서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라고 말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수치심은 누구에게 쉽게 경고할수 있는 것 아니다. 나의 내면 깊은 곳에서 외면하고 있던 트라우마는 스스로 극복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가능하다. 불행이 가능했으니 회복 또한 가능하다. 나는 그 가능성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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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의 푸가 - 철학자 김진영의 이별 일기
김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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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의 감각과 사유

우리는 이별에 대해서 대처하거나 극적 서사를 부여한다. 이별을 겪는 사람에게 위로할 때 이별은 대처와 극복이 가능한 삶의 과정이다. 누구나 이별했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단계가 된다. 또한 이별은 극적 서사를 극대화할 수 있는 사건이기도 하다. 이별은 감각의 고통이며 대상의 죽음이다.

이별은 온전히 그 자체일 수 있는가. 과장과 축소없이 이별을 사유함과 동시에 이별이 나의 삶을 관통하듯 감각할 수 없는가. 그러한 질문에서 이 책을 찾은 것은 아니었다. 이 책을 읽고 그것이 가능하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이별에 푸가>는 철학자가 쓴 이별에 대한 단상들을 모은 책이다. 당신이라는 이인칭으로 이별을 논하는 철학자의 목소리는 담담한 관조도 아니고 감정적 원망도 아니다. 이별을 경험한 고통 앞에서 당신을 치열하게 그리워하지만 그 자세는 정적이다. 문장에는 철학적 사유가 있지만 이론으로 수렴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재생된 이별의 순간에서 어떤 지점들을 해석하는 힘을 준다.

이 책의 저자가 롤랑바르트의 <애도일기>의 역자이고 인용도 되어있기때문에 어느정도 연상을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별의 정황과 그에 대한 감각적 사유에 있어서는 <이별의 푸가>가 더욱 인상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저자에 대해 지식이 부족하여 이 책에 이어 다음 책을 기대해보려고 저자 소개를 보니 작년에 작고하신 것으로 나와있다. 이또한 이별이라는 것에 마음이 먹먹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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