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세 번 죽었습니다 - 8세, 18세, 22세에 찾아온 암과의 동거
손혜진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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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몇 번 태어날까?

-사람은 몇 번 태어날까? 단순하게 생각하면 답은 한 번 뿐이다. 세상과 처음 만난 순간, 우리가 태어난 날은 한 번뿐이다. 하지만 누군가 내게 "당신은 몇 번 태어났어요?"라는 낯선 물음을 던진다면, 쉬이 한 번이라고 대답하지 못할 것 같다. 질문을 곱씹은 끝에 "네 번 태어났어요."라고 대답할 것이다. 살다 보면 새 삶을 받게 되는 순간이 있다고 믿는다. 병원에서, 전쟁터에서, 각종 사고 현장에서 그런 기적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사람은 몇 번 태어날까에 관한 대답은 "사람마다 다르다."가 될 듯싶다.

이상한 나라, 병원에 가다

-어느새 나는 병원 대기실에서 마주친 아이들처럼 '병원 아이' 중 한 명이 되어 있었다. 아픈 아이들을 동정했던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나는 그 무리에 속해졌다. 누구나 살다보면 일생의 분기점을 만나게 된다. 어제와 오늘이 완전히 달라지는 사건을 겪게 되는 것이다. 내게는 그 일련의 사건이 그랬다. 여덟 살에 겪은 수술과 항암치료는 그 후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다.

시중에 에세이 책이 참 많이 나온다.

가벼운 캐릭터 시즌성 에세이부터 유명인사의 에세이, 그리고 독립출판사에서 나오는 책들까지 가볍게 읽기 좋아서

아무래도 출판도 많이 하나보다. 나도 에세이를 좋아해서 소설 다음으로 많이 읽는 편이다.

이번 책은 부들부들한~ 재질에 귀여운 일러스트까지 일단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폈다.

그런데 이게 왠걸.

에세이를 읽다가 울어본 적이 별로 없는데 이 책은...

<나는 세번 죽었습니다>를 읽고 몇번을 울컥했는지 모른다.

담담하게 쓴 저자의 글은 나를 울렸고 네 번째 삶을 씩씩하게 살아가며 주어진 삶과 소명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서 커다란 감동을 느꼈다.

이 작은 에세이 책에서 삶의 소중함을 이렇게 크게 느낄 줄이야...

소중한 마음만큼 소중한 책이다.

제목 <나는 세번 죽었습니다>를 보면 느낄 수 있겠지만

이 책은 8살에 소아암, 18살에 희귀암, 그리고 22살에 희귀암이 재발한 저저가 암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쓴 에세이다.

그리고 지금도 잘 이겨내고 있다.

<나는 세번 죽었습니다>를 읽고 사람들이 손혜진 작가님을 동정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는 병에 걸리지 않아서 참 다행이야'라는 폭력적인 생각과 위안도 제발 갖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저 이 책을 읽고 각자의 위치에 각자의 삶을 충실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나도 그래야겠다.

 

 

 

 

슬프지만 안도했고, 기쁘지만 불안했다

-모든 일이 그렇듯 어느 순간 슬퍼하며 하루를 보내는 대신 현실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언제까지 계속되는 슬픔은 없었다. 슬퍼할 시간을 계속 가질 수 없었다는 게 정확할 것이다. 시간은 방황하는 나를 떠밀며 앞으로 나아갔다. 잠시 멈칫거렸지만, 다시 내 일상에 병원을 포함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긴 받아들이지 않으면 또 어쩌겠나. 죽지 않으려면 살아남아야 했다. 어떤 환경 속에서도 나는 살고 싶었다.

죽는 게 뭘까?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고, 잘 모르겠다. 그때 죽을 수 없다고 생각한 이유는 우리 엄마, 그러니까 가족들이 슬퍼하는 걸 보고 싶지 않아서였다. 내 장례식이 너무 슬플까봐 그랬다. 아직은 이르다고.

 

죽음은 어디에나 있어

-그맘때쯤 언니에게 죽음이 무섭다고 말했더니 "정말 죽어? 그럴 수 있지. 하지만 지금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잖아. 그늘에 지지 말자. 지금을 빼앗기지 말자. ... 죽음은 어디에나 있어. 두려워 마." 라고 말해주었다. 그때 언니가 해준 말이 큰 울림을 주었다.

두려울 필요가 없구나. 사람은 누구나 죽음의 위협 속에 사는구나. 평소에 잊고 있을 뿐이지 특별한 게 아니구나. 그렇게 우주적 관점으로 멀리서 보니 괜찮아졌다. 사람들은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평소에 잊고 살기 때문에 살아갈 수 있는게 아닐까? 병에 걸린 사람들의 문제는 죽음을 수시로 자각한다는 데 있다.

... 한때 진지하게 고민했던 생을 끝내는 방법들, 그중 어떤 계획도 실행하지 않아서 나에게 고맙다. 그래도 살아있는 게 좋으니까. 힘들어도 가끔 기쁘잖아. 몹시 행복한 날들도 있잖아. 그런 날들이 주는 즐거움 때문에 살아있는 게 좋았다. 만약 내일 죽는다고 해도 오늘은 웃고 싶다. 사는 동안 웃는 날이 더 많으면 좋겠다. 죽음을 앞둔 순간에 "불행한 날보다 행복한 날이 더 많았어."하고 말할 수 있다면 좋겠다.

 

지금, 이 순간 행복하기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떠날 수도 있는 게 인생이랬다. 암 병동에 머무는 사람들은 삶을 정리할 기회를 얻었기에 어쩌면 좀 더 나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병원에 있자니 삶과 죽음에 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나는 죽음에 대해 아는 게 없고, 삶에 대해서는 더 아는 게 없는 것 같았다. 그저 그때 그때 최선을 다하며 살 뿐이었다. 미래에 관한 불안감에 시달릴 때, 나는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숨쉬기가 조금 편해졌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도, 결국 현재로 와서 지금이 될 테니까 미리 걱정하지 말자고 다독였다. 기다리는 내일이 오지 않을지도 모르니까 지금 행복해지자고.

*이 글은 알에이치코리아로부터 도서만을 제공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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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을 위한 실무 파워포인트 - 실전! 비즈니스 파워포인트 완전 정복, 최신개정판 직장인을 위한 실무 시리즈
김기만.배준오 지음 / 길벗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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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2020 최신 개정판! <직장인을 위한 실무 파워포인트> 책이 길벗에서 나왔다.

직장인이라면, 그리고 직장인이 아니더라도 학생이나 일반인들도 꼭 쓰는 MS 프로그램인데 이 시리즈 책은 활용도가 높다.

나만 해도 도서관에서 <직장인을 위한 실무~> 시리즈로 엑셀과 파워포인트를 빌려서

열심히 배우고, 메모하고, 실제로 실무에서도 잘 써먹었다.

그래서 이번 2020년 최신 파워포인트 개정판이 나왔다길래 누구보다 먼저 펼쳐봤다.

우선 이 책의 특징은 입문자부터 중급, 고급, 그리고 요즘 핫한 SNS 콘텐츠 제작까지 잘 배워두기만 하면 여러모로 쓸모가 많다는거다.

실제로 정말 간단한 엑셀 기본기부터 단축키까지 알려줘서 나도 다시 복습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실무에서 왜 이걸 안써먹었지? 하는 답답함을 느꼈는데

그래도 이제라도 안 게 다행이지 않나? 하는 긍정으로 승화시켰다.

나는 개인적으로 회사에서 엑셀, 파워포인트를 가장 많이 쓰고 있다.

하루 업무 중 자체 프로그램과 아웃룩을 제외하면 모든 시간을 엑셀, 그리고 파워포인트를 하고 있다.

그래서 유용하게 이것저것 배운 게 많지만 기억에 남는 몇가지를 적어봤다.

 

 

 

-슬라이드 마스터 활용해 레이아웃 지정하기

간지 장표를 포함해서 제안서를 쓰다 보면 놀랍게도 ppt 100장을 넘기는 일이 흔한데

그러다보면 슬라이드 마스터가 필수다.

근데 맨날 할 때마다 어떻게 했지? 하고 지난 ppt 포맷이나 네이버에 검색해서 그때그때 임기응변으로 작업하고는 했다.

아니면 급할 땐 그냥 일일이 수동으로 고정 도형과 자간을 넣는 식으로 하던지...

이번 기회에 슬라이드 마스터를 꼭 정복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배웠다.

막상 해보니 엄청 쉽네~

다음 장표부터는 무조건 고정으로 슬라이드 마스터를 기억해서 써먹어야겠다.

 

 

 

-투명하게 배경 처리하기

다음은 이미지 삽입할 때 많이 쓰는 배경 제거 효과!

포토샵이 있다면 뾰로롱~ 마술봉으로 10초 안에 배경을 제거할 수 있지만 급하다면 ppt로도 무리없이 할 수 있다.

바로 "색"-"투명한 색 설정" 기능!

나는 배경 제거 만 써보다가 "투명한 색 설정"은 처음 써봤는데 이것도 무지 유용하다,

그리고 배경 제거 할 때 미세한 부분은 아무리 클릭 클릭~ 드래그 드래그~ 를 해도 잘 안될 때가 있는데

이 책에 나온 모바일 폰 모양으로 나도 연습해봐야지.

"보관할 영역 표시" 로 미세하게 조정해봐야겠다.

다른 오피스 활용 책들과 차이점이 있다면

다른 책들은 말 그대로 오피스 안에 있는 기능을 설명하고, 연습할 촌스러운(?) 예제를 주고, 답안을 보여주고 끝난다.

근데 길벗에서 나온 실무 시리즈의 최대의 장점은 꿀팁이 가득 들어있다는 것!

실제 써먹을 수 있는 유용한 방법들과 예제, 그리고 실무 감각을 늘릴 수 있는 디자인적 요소까지 알려준다.

나름 다른 사람들보다 파워포인트 고수라고 자부했는데..

다시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연습, 또 연습!

이 책을 곁에 두고 필요할 때마다 펼쳐봐서 주변 사람들에게도 꿀팁을 많이 알려주면 좋겠다.

*이 글은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길벗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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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지 않는 여름 1
에밀리 M. 댄포스 지음, 송섬별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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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책은 <사라지지 않는 여름>.

제목만큼이나 강렬하고 시원한 여름을 떠올리게 한다.

에밀리 M. 댄포스의 데뷔작이자, 클로이 모레츠가 주연으로 제작한 영화 <카메론 포스트의 잘못된 교육> 의 동명 원작 소설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해, 여름 손님> 이 많이 생각났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티모시 샬라메의 연약하면서도 미묘한 감정을 잘 그려낸 영화 <콜 미 바이 유어네임>으로도 기억할 것이다.

시원하고도 더운 여름 날, 두 주인공을 둘러싼 감정과 아름다운 배경, 그리고 OST 까지 먹먹함을 더했다.

이번 <사라지지 않는 여름>은 10대 소녀 주인공 카메론 포스트가 겪는 감정과 고백들이 담긴 이야기다.

스포는 아니고 책을 펴면 맨 처음 부모님의 사고 소식을 접하게 된다.

그 날은 평범할 것 없는 13살 소녀의 하루이자 친구인 아이린과의 잊지 못할 기억의 한편이자 더이상 철없는 아이가 아닌 부모 없는 새로운 삶을 마딱뜨리는 날이 된다.

<사라지지 않는 여름> 1권에서는 주인공 카메론이 1989년 여름, 그리고 1991년~1992년 고등학교 시절을 돌이켜보며 담담하게 고백하는 형식으로 담겨있다. 있었던 사실을 일기처럼 보여주고 어린 날 느꼈던 감정을 지금의 입장에서 해석해서 알려주기도 하고, 어느 부분에서는 마치 어제 있었던 일처럼 생생하게 그려준다.

아마 이런 게 에밀리 M. 댄포스 작가만이 색깔이라고 느껴졌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날, 카메론의 머릿속에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엄마 아빠는 우리 일을 몰라"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다행이라는 감정이다. 아이린과의 그해 여름 일어난 가볍고도 무거운 일은 부모님의 죽음에 이렇게 묻히게 될 것이라는 안도감.

아마 어린 나이에도 자세히 알지는 못했지만 사회적 시각을 정확하게 읽고 일반적으로 받은 교육에서 잘못된 일이라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직감한 것 같다.

한차례 이런 감정이 지나간 뒤 카메론은 뒤늦게나마 진짜 감정과 슬픔과 죄책감을 마주한다.

나도 이런 비슷한 감정을 겪어본 적 있어서 이 장면을 읽을 때 먹먹함과 현실감과 참 어떻게 표현할 수 없는 부분을 꼬집어주는 것 같아 위로도 받았다.

너무 충격적이고 생각치못한 일을 겪으면 생각의 회로가 굳나보다. 그리고 이성적으로 생각하기 전에 뭔가 말도 안되는 것이 먼저 떠오르기도 하고 말이다. 그리고 나서 하나씩 하나씩 사실과 감정이 정리되면서 진짜 느껴야할 감정들과 생각들이 수면위로 떠오른다.

카메론이 너무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떠나보내게 되서 안쓰러운 마음과 함께 말로 할 수 없는 다양한 감정들, 그리고 애도와 죄책감 등 다양한 감정이 떠올랐다.

이제는 전과 다른 삶을 살게 될 카메론을 보여주는 중요한 장면일 것 같다.

부모님은 떠났지만 카메론의 삶은 계속 된다.

할머니와 루스 이모와 함께 살아가는 카메론은 수영도 계속하고 린지라는 새로운 인물도 만난다.

하지만 어린시절 아이린에게 느낀 감정과는 다르지만 점차 자신의 성적지향을 알게되고 받아들이고 맞서게 된다.

이런 부분들도 그동안 영화나 책에서 봤던 것들과 다르게 <사라지지 않는 여름>이 주는 매력인 것 같다.

그리고 아마 내가 읽어본 작품 중에서 <사라지지 않는 여름>처럼 10대 소녀의 눈으로, 마음으로 쓴 글도 없었던 것 같다.

진정한 자신을 찾기 위한 여정과 사회적 편견에 부딪힌 진짜 세상을 만나는 카메론.

아직 <사라지지 않는 여름> 2권도 읽어봐야 하겠지만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계속 책을 들고 읽고 싶어진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그날 오후에 나는 아이린 클로슨과 함께 상점을 털고 있었다.

그 전날 엄마와 아빠는 매년 여름 그랬듯이 퀘이크 호수로 캠핑 여행을 떠났고, 빌링스에 살던 할머니가 우리 집에 나를 돌봐주러 왔는데 조금 졸랐더니 아이린이 자고 가도 된다고 허락했다. "캐머런, 허튼 장난 치기에는 날씨가 너무 덥다." 할머니는 허락하자마자 그렇게 말했다. "그래도 우리 여자들은 여자들만의 시간이 필요한 법이지."

아이린은 고개를 돌려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우리의 얼굴은 또다시 바짝 맞닿았따. "너 나한테 절대 키스 못 할걸." 아이린은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말했다.

"도전이야?" 내가 물었다.

아이린은 '당연하지' 하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나는 곧바로 아이린에게 키스했다. 그 애가 다음 말을 잇기 전에, 아니면 그 애 엄마가 이제 씻고 저녁 먹으라고 부르기 전에.

나는 아직도 그때 문밖에 서 있었을 아저씨 모습을 그려보곤 한다. 문 두드리는 소리가 울려 퍼지기 전에는 나에게도 여전히 엄마 아빠가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 뒤에는 없었다는 것 말이다. 아저씨 역시 그 사실을 알았다. 6월 말의 어느 더운 밤 11시에 굳은살이 박인 손으로 문을 두드려 나에게서 부모님을 앗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여름방학, 루트 비어, 훔친 풍선껌, 도둑 키스. 열두 살짜리치고는 몹시도 만족스러운 인생을 살고 있었던, 어지간한 것들은 다알고, 모르는 건 기다리기만 하면 어렵잖게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던, 무엇보다도 내 곁에 언제나 아이린도 함께 기다리고 있었던 시절이었다.

할머니가 앉아서 TV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초인종이 울렸고, 나가보니 주 경찰관이 찾아와서 전해주기를, 사고가 났고, 그래서 엄마와 아빠, 그러니까 내 어머니와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이야기 해주었다고 했다. 그때 내가 처음 한 생각, 머릿속에 맨 처음 떠오른 생각은 이거였다. 그러니까 할머니는 아이린과 나 사이의 일에 대해 모르시는구나. 아무도 모르는구나. 할머니가 그 말을 하고 나서, 그래서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걸 알고 나서도, 적어도 내 귀에 그 이야기가 들리고 나서까지도 나는 곧장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 엄청난 사건, 내 세상을 온통 뒤흔들어버린 어마어마한 소식을 이해해야 하는데, 내 머릿속에는 여전히 엄마와 아빠는 우리 일을 몰라. 엄마 아빠는 몰라, 그리니까 안전해, 하는 생각만이 맴돌고 있었다는 뜻이다. 이제 우리 사이에 있었던 일을 알게 될 엄마와 아빠는 세상에 없는데.

그때는 미처 깨닫지 못했으나 메쓰거움, 따끔따끔하게 몸에 퍼져나가는 열기, 상상조차 되지 않는 깜깜한 어둠 속을 헤엄치는 듯한 기분 속에서, 살아 있는 엄마 아빠를 마지막으로 본 뒤 내가 했던 모든 일이 환하게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키스, 풍선껌, 아이린, 아이린, 아이린. 그 모든 것은 전부 죄책감이었다. 마음이 미어질 것 같은 생생한 죄책감이었다. 나는 타일 바닥에 누운채 죄책감 속에 한없이 가라앉았다. 스캘런 호수의 다이빙대에서 깊은 물속으로 뛰어들 때처럼, 폐가 아려올 때까지 깊이, 더 깊이 내려갔다.

나는 린지를 사랑하지 않았고 린지 역시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그 사실에는 별로 개의치 않았으며 이 때문에 서로를 더 좋아하기도 했다.

그 여름 내내 린지와 했던 일은 아이린과 나누었던 경험만큼 강렬하지 않았다. 그때가 더 어렸는데도, 아이린과 있었을 때는 함께하는 어떤 행동이나 감정도 우리 둘보다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린지와 함께 있을 때면 모든 게 반대였다.

*이 글은 다산북스로부터 도서만을 제공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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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보세요
커트 보니것 지음, 이원열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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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루먼 커포티, 레이먼드 카버, J. D 샐린저와 함께

이 사람이 쓴 단편은 무조건 믿고 보는 작가 중 하나, 커트 보니것!

여러 직업을 거쳐가며 다양한 인생을 산 만큼 글에도 그런 기록들이 묻어있어서 좋아한다.

그동안 나온 책들을 조금씩 아껴가며 곁에 두고 읽고 있었는데

(심지어 연설문을 모아놓은 에세이 <그래, 이 맛에 사는 거지>도 정말 좋다)

커트 보니것의 미발표 단편집을 문학동네에서 크리스마스 즈음 내줘서 올 겨울 크리스마스 선물은 이걸로 충분했다.

웃기고 슬프고 무섭고 재밌고 막 그렇다.

진짜 커트 보니것만이 쓸 수 있는 글이고 커트 보니것만이 생각할 수 있는 문체와 시선이다.

시니컬한 시선 속에 따뜻함도 숨어있고 오싹함 속에 아주 현실적인 삶을 투영하기도 하고...

14개의 단편을 하나하나 아껴 읽어가면서 또 한번 커트 보니것 컬렉션에 좋은 책을 끼워넣었다.

 

 

 

 

컬럼비아와 하버드, 아이오와 대학교 대학원에서 글쓰기를 강의할 때 학생들에게 소설 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무엇이라고 가르쳤는지 묻자, 커트가 말했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 모든 장면, 모든 대화가 서사를 전진시커야 하지. 그리고 가능하다면 깜짝 결말이 있어야 하고." 반전 요소는 커트가 지닌 관점의 역설을 나타내기도 한다. 모든 것이 이야기되고 글로 쓰였을 때, 결말의 반전이 이야기를 뒤집으며 의미를 부여해준다.

서문_시드니 오핏

커트 보니것의 단편들에 미발표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여기 실린 단편들이 출판으로 이어지지 않았던 것은 어떤 이유에서든 커트가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느꼈기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 에이전트와 편집자들, 그리고 그의 아들 마크가 증언하듯 커트는 작품을 고치고 또 고쳤다. 커트의 문체가 가볍게 툭툭 내뱉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는 줄거리와 문장, 단어에까지 완벽을 추구한 장인이었다. 브리지햄프턴과 이스트 48번가에 있던 그의 작업실 쓰레기통에 종이 뭉치가 가득했던 것을 나는 기억한다.

서문_시드니 오핏

글쓰기에 대한 커트의 야심의 고백에 가장 가까웠던 것은 자신의 소설 창작 규칙 중 하나를 내게 읊어주었을 때였다. "전혀 모르는 사람의 시간을 사용하되 그 사람이 시간을 낭비했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만들 것."

서문_시드니 오핏

이 편지는 자기연민이 가득한, 설교조의 엉터리 편지야. 하지만 작가들은 이런 유의 편지를 쓰는 것 같더군. 나는 GE를 그만두었고, 만약 작가가 아니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야.

1951년 밀러 해리스에게 보내는 커트 보니것의 편지


비밀돌이

-"비밀돌이랑 이야기해봤으면 당신도 이유를 알 것 아냐." 엘런이 말했다. "알지 않아?"

헨리는 계속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 "팔릴 거야, 팔릴 거야, 팔릴 거야." 그가 중얼거렸다. "맙소사. 정말 잘 팔릴 거야."

"그건 우리 마음속 최악의 부분에 직통으로 연결되는 물건이야, 헨리." 엘런이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울음을 터트렸다. "아무도 저걸 가져선 안 돼, 헨리. 그 누구도! 그 작은 목소리는 지금도 이미 충분히 시끄러워."

첫번째 단편글부터 강렬한 펀치를 날리는 것 같았다.

'비밀돌이'라는 신제품을 발명한 어느 남자. 회사에 치이고 가정에 치이고.. 그러다 우연히 비밀돌이라는 발명품을 만든다.

사람들이 마음놓고 비밀을 털어놓을 수 있는 바로 이 제품으로, 헨리는 대박이 나서 부자가 될 거라는 큰 꿈을 품는다.

"이야기할 사람! 진정으로 이해해주는 사람! 바로 그거지."

라는 비밀돌이의 말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상과 현실은 너무나 달랐다.

알고보니 비밀돌이는 내 마음을 들어주고 위로해주는 존재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 속 가장 어두운 심연을 건들이고 아픔을 들먹이고 말그대로 인생 최악의 부분에 직통으로 연결해서 사람들을 한방 먹이는 상처의 아이콘이자 촌철살인 기계였다.

커트 보니것의 시니컬한 풍자가 돋보이는 단편.

과거에 쓴 글이겠지만 비밀돌이라는 단어 대신, SNS 를 넣어도 무방하겠다.

위로가 위로가 되지 못하는 세상. 아픔이 더 큰 상처로 돌아오는 이 세상을 커트 보니것은 이미 예전부터 느끼고 예상했나보다.

이 단편의 스포일지 모르겠으나 결국 헨리는 현명한 선택을 한다.

만약 세상에 비밀돌이가 있다면... 하고 상상해봤는데

책 속에서는 주인공 헨리가 이 발명품을 상품화하지는 않았지만 실제로 시중에 나온다면 잘 팔릴 수도 있겠다는 싶었다.

그래서 결과는.. 사람들의 행복은... 플러스가 될 지, 마이너스가 될 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듣고 싶은 말만 들으며 살 수는 없지만 굳이 없는 불행까지 만들어 살 필요가 있을까.

우린 이미 너무 많은 고민이 있고, 많은 걱정을 안고 산다.


푸바

-"언젠가 해봐야겠군요." 그가 말했다.

프랜신이 난간 위로 몸을 기댔다. "왜 언젠가라고 하세요?" 그녀가 말했다. "우울하면 지금 당장 수영하면 되잖아요?"

"업무시간중에요?" 퍼즈가 말했다.

"어차피 지금 당장 회사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없잖아요. 그렇지 않나요?" 프랜신이 물었다.

"없죠." 퍼즈가 말했다.

"그럼 하세요." 프랜신이 말했다.

"수영복이 없어요." 퍼즈가 말했다.

"수영복 입지 마세요." 프랜신이 말했다. "그냥 알몸으로 하세요. 훔쳐보지 않을게요, 리틀러 씨. 전 여기 있을게요. 기분이 정말 좋을 거예요, 리틀러 씨." 프랜신을 그렇게 말하고는 퍼즈에게 아직 그가 보지 못했던 자신의 일면을 보여주었다. 거칠고 강한 면이었다. "아니면 수영을 하지 않는 게 나을 수도 있겠네요, 리틀러씨." 프랜신이 불쾌하게 말했다. "불행을 바꿀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걸 보니 불행한 게 그렇게 좋은가보죠."

-시원하고 깊은 물은 그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즐거운 충격이었고, 자신이 창백하고 앙상하다는 느낌을 모두 벗겨냈다. 처음 몸을 던졌다가 다시 수면으로 올라왔을 때, 그의 폐는 웃음과 고함으로 가득찼다. 그는 개가 짖듯 소리를 질러댔다.

퍼즈는 소리가 메아리치는 것이 즐거워 좀더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먼 곳에서 대답이라도 하듯 훨씬 높은 목소리로 소리치는 게 들렸다. 프랜신이 환풍구를 통해 그의 소리를 듣고 소리친 것이었다.

 

 

 

 

 

시니컬한 커트가 있다면, 그 단면에는 따뜻한 시선의 보니것이 있다.

단편 <푸바>는 내게도 즐거운 충격을 준 글.

평범하고 따분한 일상은 사는 남자에게 프랜신이라는 새로운 직원이 좋은 활력소가 되었다.

우리 모두에겐 이런 아이같은 면, 피터팬 같은 모험심이 숨어있는데 말이다.

어른이라서 하지 못한 것, 조심스러워서 하지 못했던 일, 창피할까봐, 남들이 싫어할까봐 못한 일, 실패할까봐 안전을 택한 일.. 등 어른이 되면 제약이 많아진다. 그리고 그렇게 평범해진다.

고작 안쓰는 회사 수영장에 업무시간에 한번 들어간 것 뿐이지만

사소한 행동 하나는 환풍구에 메아리 퍼지듯 더 큰 결과의 시작이 되는 것 같다.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삶을 살아보면 어떻겠냐고 가볍게 잽을 날리는 커트 보니것의 글이 참 좋다.

이 외에도 섬뜩하지만 자꾸 생각나는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카메라를 보세요>도 기억에 남았고

실제 있을 법한 드라마같은 반전의 <지붕에서 소리쳐요>, <우주의 왕과 여왕>, <설명을 잘하는 사람>도 좋았다.

그리고 '역시 커트 보니것'이라고 말하고 싶은 SF 딘퍈 <작고 착한 사람들까지>.

언제나 느끼지만 이 작은 책 한 권이 물리적인 크기보다 더 큰 생각을 하게 해준다.

커트 보니것을 사랑한다면, 생각지도 못한 반전을 읽고 싶다면, 시니컬함과 따뜻함을 느끼고 싶다면,

그리고 흘러가는 이야기와 눈을 끄는 묘사가 읽고 싶다면 바로 여기 <카메라를 보세요>, 치즈.

*이 글은 문학동네로부터 도서만을 제공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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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맵 STARTUP MAP - 고객가치 중심 아이템 발굴부터 돈 버는 비즈니스 모델 구축 방법까지!
이경식 지음 / ceomaker(씨이오메이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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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흐름을 깨닫고 중심을 잡으며 인사이트를 나눌 수 있는 책을 만났다.

이경식 저자님의 <스타트업 맵>은 아이템 발굴부터 남다른 비즈니스 모델을 만드는 법까지 실제 삼성전자의 보르tv 제품을 만들었던 사례와 스토리까지 직접 들려주었다.

남과 달라야 하지만 남들보다 먼저 이 흐름을 잡아야 성공할 수 있다.

그리고 도전과 혁신을 두려워하지말고 새로운 기술과 변화로 한발 나아가야 한다.

이경식 저자님이 실제로 겪고 느낀 것과 함께 이 책을 펼쳐봤다.

포괄적인 사회의 흐름부터 고객의 특성과 타겟 분석, 그리고 그러한 코어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원츠와 니즈를 파악하고 마지막에 가서는 발굴한 사업 아이템으로 어떻게 돈을 벌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찾는다.

"새로운 기회는 무언가 변화가 일어나는 과정에서 찾을 수 있다"는 저자의 말처럼 그 기회를 함께 찾아봐야겠다.

 

 

 

-기업 생존을 위해 변화에 얼마나 민첩하게 대응하느냐 하는 부분은 19세기 진화론자로 유명한 다윈이 그의 저서에 남긴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가장 강하거나 똑똑한 종이 아닌 가장 변화에 잘 적응하는 종이 살아남는다."

이 문장에서 나오는 종이란 단어를 기업이란 단어로 바꿔보면, "가장 강하거나 똑똑한 기업이 아닌 가장 변화에 잘 적응하는 기업이 살아남는다."로 급변하는 사업환경에서 치열하게 경졍하고 있는 기업들에게 생존을 위한 전략방향에 있어 아주 중요하고 명확한 메시지를 제시한다.

 

 

-고객여정지도에서 중요하게 보는 두 가지 요소는 다음과 같다.

첫째, 고객의 '접점 Touch Point'이다.

상품 매장, 기업 홈페이지, 온라인 쇼핑몰 등 고객과 기업, 또는 상품 간의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접점은 고객이 그 기업이나 상품에 대해 좋든 싫든 감정을 느끼는 곳이기 때문에 보다 친화적이고 강한 인상을 심어 주어야 한다.

...

둘째, 고객의 '행동 분석'이다.

고객여정지도는 앞에서 살펴본 인구 통계학, 소득 수준, 지역, 교육 수준 등 단순한 통계지표 분석을 넘어 실제 고객이 활동하는 행동 패턴을 상세히 정리한다. 여기서 고객이 어떤 성향을 나타내고, 선호하거나 불편해하는 경험들이 무엇인지 입체적으로 기술함으로써, 궁극적으로 고객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고객여정지도는 실제 고객의 입장에서 고객이 경험하는 모든 과정을 시간적 흐름에 따라 시각적으로 정리함으로써, 타깃 고객층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이해를 하는데 활용도가 큰 기법이다.

 

 

 

 

-이알알씨 ERRC 전략이란 말 그대로 상품 콘셉트를 구체화함에 있어 고객에게 전달할 가치가 약한 것은 과감하게 빼거나 줄이고, 고객이 진정으로 원하는 가치는 늘리거나 새로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결정된 이알알씨 전략을 바탕으로 가치 곡선 형태로 보르도 TV의 최종제품 콘셉트를 만든 것이 그림 58이다.

통상적으로 새로운 상품을 기획할 때 기존에 있는 기능들은 대부분 유지한 채 어떻게 새로운 기능을 더 적용할지에 집중하였다. 그러나, 이알알씨 전략에서는 빼거나 줄일 것을 먼저 고민하라고 하니 이 부분을 진행하는 과정이 가장 힘들었고, 시간도 오래 걸렸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거나 성능을 향상시키려는 방안보다는 고객의 관점에서 있으면 좋지만 그렇다고 꼭 필요하지 않은 부분을 과감하게 빼거나 줄여, 고객을 위한 핵심가치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한 부분이 이알알씨 전략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였던 것이다.

이 <스타트업 맵>을 읽다보면 실제 실무에서 사용하는 고객여정지도나 니즈,원츠, 디멘드의 속성, 그리고 코틀러의 마켓 4.0 등 다양한 이론을 함께 배울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이경식 저자님이 삼성전자 근무 당시 혁신적으로 성공을 이끈 보르도 TV의 탄생 비결도 함께 들을 수 있었다.

바로 꼭 필요한 것만 남기고 버리는 빼기의 힘, 이알알씨 전략이다.

욕심이 과하고 장점만 계속 부각하려고 하다 보면 결국 아무것도 강조하지 못하게 된다.

일하다가도 많이 느끼는 현상들이다.

바로 이럴 때 고객의 가치에 집중해서 진짜 필요한 것만 남기고 버리는 전략 포인트가 더 눈에 띄었다.

마치 카피같기도 하고 말이다.

책 한 권 속에 고객과 사업아이템,그리고 성공하는 비즈니스 모델 구축법까지 알아볼 수 있었다.

급변하는 사회에서 창업을 꿈꾸는, 또는 창업을 한 사람들에게 <스타트업 맵> 일독을 권한다.

*이 글은 씨이오메이커로부터 도서만을 제공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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