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를 보세요
커트 보니것 지음, 이원열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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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루먼 커포티, 레이먼드 카버, J. D 샐린저와 함께

이 사람이 쓴 단편은 무조건 믿고 보는 작가 중 하나, 커트 보니것!

여러 직업을 거쳐가며 다양한 인생을 산 만큼 글에도 그런 기록들이 묻어있어서 좋아한다.

그동안 나온 책들을 조금씩 아껴가며 곁에 두고 읽고 있었는데

(심지어 연설문을 모아놓은 에세이 <그래, 이 맛에 사는 거지>도 정말 좋다)

커트 보니것의 미발표 단편집을 문학동네에서 크리스마스 즈음 내줘서 올 겨울 크리스마스 선물은 이걸로 충분했다.

웃기고 슬프고 무섭고 재밌고 막 그렇다.

진짜 커트 보니것만이 쓸 수 있는 글이고 커트 보니것만이 생각할 수 있는 문체와 시선이다.

시니컬한 시선 속에 따뜻함도 숨어있고 오싹함 속에 아주 현실적인 삶을 투영하기도 하고...

14개의 단편을 하나하나 아껴 읽어가면서 또 한번 커트 보니것 컬렉션에 좋은 책을 끼워넣었다.

 

 

 

 

컬럼비아와 하버드, 아이오와 대학교 대학원에서 글쓰기를 강의할 때 학생들에게 소설 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무엇이라고 가르쳤는지 묻자, 커트가 말했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 모든 장면, 모든 대화가 서사를 전진시커야 하지. 그리고 가능하다면 깜짝 결말이 있어야 하고." 반전 요소는 커트가 지닌 관점의 역설을 나타내기도 한다. 모든 것이 이야기되고 글로 쓰였을 때, 결말의 반전이 이야기를 뒤집으며 의미를 부여해준다.

서문_시드니 오핏

커트 보니것의 단편들에 미발표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여기 실린 단편들이 출판으로 이어지지 않았던 것은 어떤 이유에서든 커트가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느꼈기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 에이전트와 편집자들, 그리고 그의 아들 마크가 증언하듯 커트는 작품을 고치고 또 고쳤다. 커트의 문체가 가볍게 툭툭 내뱉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는 줄거리와 문장, 단어에까지 완벽을 추구한 장인이었다. 브리지햄프턴과 이스트 48번가에 있던 그의 작업실 쓰레기통에 종이 뭉치가 가득했던 것을 나는 기억한다.

서문_시드니 오핏

글쓰기에 대한 커트의 야심의 고백에 가장 가까웠던 것은 자신의 소설 창작 규칙 중 하나를 내게 읊어주었을 때였다. "전혀 모르는 사람의 시간을 사용하되 그 사람이 시간을 낭비했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만들 것."

서문_시드니 오핏

이 편지는 자기연민이 가득한, 설교조의 엉터리 편지야. 하지만 작가들은 이런 유의 편지를 쓰는 것 같더군. 나는 GE를 그만두었고, 만약 작가가 아니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야.

1951년 밀러 해리스에게 보내는 커트 보니것의 편지


비밀돌이

-"비밀돌이랑 이야기해봤으면 당신도 이유를 알 것 아냐." 엘런이 말했다. "알지 않아?"

헨리는 계속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 "팔릴 거야, 팔릴 거야, 팔릴 거야." 그가 중얼거렸다. "맙소사. 정말 잘 팔릴 거야."

"그건 우리 마음속 최악의 부분에 직통으로 연결되는 물건이야, 헨리." 엘런이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울음을 터트렸다. "아무도 저걸 가져선 안 돼, 헨리. 그 누구도! 그 작은 목소리는 지금도 이미 충분히 시끄러워."

첫번째 단편글부터 강렬한 펀치를 날리는 것 같았다.

'비밀돌이'라는 신제품을 발명한 어느 남자. 회사에 치이고 가정에 치이고.. 그러다 우연히 비밀돌이라는 발명품을 만든다.

사람들이 마음놓고 비밀을 털어놓을 수 있는 바로 이 제품으로, 헨리는 대박이 나서 부자가 될 거라는 큰 꿈을 품는다.

"이야기할 사람! 진정으로 이해해주는 사람! 바로 그거지."

라는 비밀돌이의 말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상과 현실은 너무나 달랐다.

알고보니 비밀돌이는 내 마음을 들어주고 위로해주는 존재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 속 가장 어두운 심연을 건들이고 아픔을 들먹이고 말그대로 인생 최악의 부분에 직통으로 연결해서 사람들을 한방 먹이는 상처의 아이콘이자 촌철살인 기계였다.

커트 보니것의 시니컬한 풍자가 돋보이는 단편.

과거에 쓴 글이겠지만 비밀돌이라는 단어 대신, SNS 를 넣어도 무방하겠다.

위로가 위로가 되지 못하는 세상. 아픔이 더 큰 상처로 돌아오는 이 세상을 커트 보니것은 이미 예전부터 느끼고 예상했나보다.

이 단편의 스포일지 모르겠으나 결국 헨리는 현명한 선택을 한다.

만약 세상에 비밀돌이가 있다면... 하고 상상해봤는데

책 속에서는 주인공 헨리가 이 발명품을 상품화하지는 않았지만 실제로 시중에 나온다면 잘 팔릴 수도 있겠다는 싶었다.

그래서 결과는.. 사람들의 행복은... 플러스가 될 지, 마이너스가 될 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듣고 싶은 말만 들으며 살 수는 없지만 굳이 없는 불행까지 만들어 살 필요가 있을까.

우린 이미 너무 많은 고민이 있고, 많은 걱정을 안고 산다.


푸바

-"언젠가 해봐야겠군요." 그가 말했다.

프랜신이 난간 위로 몸을 기댔다. "왜 언젠가라고 하세요?" 그녀가 말했다. "우울하면 지금 당장 수영하면 되잖아요?"

"업무시간중에요?" 퍼즈가 말했다.

"어차피 지금 당장 회사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없잖아요. 그렇지 않나요?" 프랜신이 물었다.

"없죠." 퍼즈가 말했다.

"그럼 하세요." 프랜신이 말했다.

"수영복이 없어요." 퍼즈가 말했다.

"수영복 입지 마세요." 프랜신이 말했다. "그냥 알몸으로 하세요. 훔쳐보지 않을게요, 리틀러 씨. 전 여기 있을게요. 기분이 정말 좋을 거예요, 리틀러 씨." 프랜신을 그렇게 말하고는 퍼즈에게 아직 그가 보지 못했던 자신의 일면을 보여주었다. 거칠고 강한 면이었다. "아니면 수영을 하지 않는 게 나을 수도 있겠네요, 리틀러씨." 프랜신이 불쾌하게 말했다. "불행을 바꿀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걸 보니 불행한 게 그렇게 좋은가보죠."

-시원하고 깊은 물은 그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즐거운 충격이었고, 자신이 창백하고 앙상하다는 느낌을 모두 벗겨냈다. 처음 몸을 던졌다가 다시 수면으로 올라왔을 때, 그의 폐는 웃음과 고함으로 가득찼다. 그는 개가 짖듯 소리를 질러댔다.

퍼즈는 소리가 메아리치는 것이 즐거워 좀더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먼 곳에서 대답이라도 하듯 훨씬 높은 목소리로 소리치는 게 들렸다. 프랜신이 환풍구를 통해 그의 소리를 듣고 소리친 것이었다.

 

 

 

 

 

시니컬한 커트가 있다면, 그 단면에는 따뜻한 시선의 보니것이 있다.

단편 <푸바>는 내게도 즐거운 충격을 준 글.

평범하고 따분한 일상은 사는 남자에게 프랜신이라는 새로운 직원이 좋은 활력소가 되었다.

우리 모두에겐 이런 아이같은 면, 피터팬 같은 모험심이 숨어있는데 말이다.

어른이라서 하지 못한 것, 조심스러워서 하지 못했던 일, 창피할까봐, 남들이 싫어할까봐 못한 일, 실패할까봐 안전을 택한 일.. 등 어른이 되면 제약이 많아진다. 그리고 그렇게 평범해진다.

고작 안쓰는 회사 수영장에 업무시간에 한번 들어간 것 뿐이지만

사소한 행동 하나는 환풍구에 메아리 퍼지듯 더 큰 결과의 시작이 되는 것 같다.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삶을 살아보면 어떻겠냐고 가볍게 잽을 날리는 커트 보니것의 글이 참 좋다.

이 외에도 섬뜩하지만 자꾸 생각나는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카메라를 보세요>도 기억에 남았고

실제 있을 법한 드라마같은 반전의 <지붕에서 소리쳐요>, <우주의 왕과 여왕>, <설명을 잘하는 사람>도 좋았다.

그리고 '역시 커트 보니것'이라고 말하고 싶은 SF 딘퍈 <작고 착한 사람들까지>.

언제나 느끼지만 이 작은 책 한 권이 물리적인 크기보다 더 큰 생각을 하게 해준다.

커트 보니것을 사랑한다면, 생각지도 못한 반전을 읽고 싶다면, 시니컬함과 따뜻함을 느끼고 싶다면,

그리고 흘러가는 이야기와 눈을 끄는 묘사가 읽고 싶다면 바로 여기 <카메라를 보세요>, 치즈.

*이 글은 문학동네로부터 도서만을 제공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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