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의 해부
앤드루 테일러 지음, 김하락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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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낯선 작가와의 첫 만남은 언제나 호기심 반 신중함 반을 요구한다. 잘만 하면 잿팟을 터뜨릴 수도 있겠지만 자칫하면 익숙함이라는 함정에 빠져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신천지가 되기도 하는데 앤드루 테일러는 <아메리칸 보이>로 명성을 익히 듣고는 했지만 이번 기회가 아니면 히스토리컬 픽션이라는 생소한 장르를 만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소년 에드거 앨런 포의 영국 체험시절을 토대로 쓴 <아메리칸 보이>처럼 실존인물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18세기 영국을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을 읽기 전 작가의 이력을 잠시 살펴보았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그의 수상경력 중에서 두가지의 대거상 수상 및 후보등극이었다. 대거상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 걸 알게되었는데 그 중에서 다이아몬드 대거상은 수상하고 히스토리컬 대거상은 후보로 올랐던 전력이 있었다. 장르소설을 접하다보면 보통 어디 주관 베스트셀러 선정 아니면 수상경력인데 정말 이 계열에도 많은 시상이 이루어지고 있고 그 점은 책으로 고르는데 어느 정도 참고가 되긴하지만 솔직히 그 상들의 권위나 정확한 선정기준, 주관단체는 잘 모르면서 그냥 수상결과로만 인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참고는 그냥 참고일 뿐, <유령의 해부>를 읽는 데 있어서 하나의 배경이다.

 

 

<유령의 해부>는 1786년 영국 케임브리지의 예루살렘 칼리지를 배경으로 한다. 손에 열쇠를 쥔 한 여인이 얇은 가운에 망토만 걸친 채 비틀거리며 예루살렘 로에 이른다. 그리고 숨을 몰아쉬며 정원 문을 밀치고 들어가는 여인. 여인은 예루살렘 칼리지에 들어가는데 성공했지만 연못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는데 그녀의 유령을 본 사람이 있다. 로싱턴 주교의 미망인 앤 올더쇼의 아들인 프랭크 올더쇼였다. 그는 케임브리지 칼리지의 대학생으로 죽은 여인의 유령을 보았다고 주장하며 정신적 충격에 빠진다. 죽은 여인은 케임브리지 램본 하우스의 주인 필립 위치코트의 부인 실비아 위치코트였다.

 

정신이상자로 내몰린 아들의 실추된 명예회복을 위해 엄마는 손수 팔을 걷어불였다. 그 해결책은 존 홀즈워스라는 서적상을 고용하여 아들이 학업을 중단하게 된 상황이나 사정을 조사하고 아들이 보았다는 유령의 실체를 벗겨 정상으로 회복시키고자 한 것이다. 존 홀즈워스는 과거 아들이 물에서 익사하고 아내는 자식을 잃은 슬픔에 유령이라는 심령현상에 심취하다 결국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불행한 과거가 있던 남자이다. 이후 그는 <유령의 해부>라는 책을 써서 유령이란 현상을 부인하고 존재 자체에 대한 맹렬한 비판에 나서 세간의 논쟁을 불러 일으켰었다. 결과적으로 이슈가 된 그 책은 꽤 팔려나가면서 유명세를 얻었는데 자기가 설교한 것을 입증하고 실천하는 자리가 만들어진 셈이다. 앤 부인의 고용제안에 숙고를 거듭하던 존 홀즈워스는 마침내 제안을 받아들인다. 경제적 이유도 무시할 수 없었기에. 프랭크 올더쇼를 만나기 위해 예루갈렘 칼리지를 찾아간 그는 칼리지 인사들과 학생들,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사정을 취재하면서 죽은 여인의 사인에 대한 의혹을 품고 조사를 시작한다, 유령이란 믿음도 어떻게 확인하게 될까?

 

 

유령이라는 존재는 연약한 마음이 빚어낸 허상에 불구하다지만 신앙은 이를 인정하고 과학은 논거를 부정한다. 역사는 과거가 되어도 아직도 논쟁은 현재 진행 중이라는 점이다.  존 홀즈워스가 보았다는 아내의 유령은 내면의 죄의식이 만들어낸 꿈이었을까? 아니면 진짜 유령을 만났던 것일까? 책을 몇 번 읽어보아도 그 대목은 확연히 어느 쪽이라고 단정짓기는 힘들다. 그의 죄의식이 문제라면 죽음을 눈 앞에 둔 칼리지의 학장 카버리 박사의 부인 엘리너 카버리에게 품은 욕망은 도덕적 잣대로도 통제하기 힘든 유혹이다.  

 

이것만이 아니라 이 소설 속에는 인간의 욕망이 빚어내는 원죄의식이 사악하고 사납게 요동치고 있음을 여실히 드러낸다. 펠로우 임명권을 두고 신분의 수직상승을 위한 정치적 흑막과 성스러운 종교를 왜곡해서 음란마귀가 업고 벌이는 홀리 고스트 클럽의 추악한 의식 등은 대학이라는 신성불가침한 성역 이면에 숨어있는 위선과 죄악이라는 가면에 냉소를 날리고 있으며 초자연적 현상에 대한 추리적 접근은 풍자와 비판으로서 가능하다. 적대감은 도덕적 통찰로 극복하고 내면의 심리는 미신과 과학, 야만과 이성이 모호한 혼돈 속에서 시대를 충실히 재현하면서 마지막 반전을 통해 나름의 정점에 도달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역사와 픽션의 조화에 관심있는 독자라면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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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ㅣ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요나스 요나손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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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란  칼손이 양로원 건물을 탈출할 때 심사숙고한 결정이 아니었다는 설명은 곧 그가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하는 타입이라는 걸 알려준다. 백살이 될 때까지 살아있었다는 사실을 장수만세로 퉁쳐 축하할 일인지 죽지못해 여태껏 살아왔다는 오욕의 세월이었는지 오로지 그의 1세기를 고스란히 따라 가 보는 방법밖에 없다. 현재와 과거를 넘나드는 교차전개로 인해 알란 칼손이라는 괴짜노인의 황당무계한 모험담은 수시로 진실일까? 아니면 노망기에서 비롯된 횡설수설일까 의심의 눈초리는 번뜩였다. 원래 이런 사람의 태생은 평범하지 않은데 알란도 역시나 였다. 세상에 대한 분노와 권력에 대한 불신으로 차 있었던 사회주의자 아버지는 생뚱맞은 전쟁을 선포했다가 개죽음을 당했고 엄마 또한 사회운동에도 적극 참여하실 정도 였으니 두 분 다 예사롭지 않은 삶을 살다 돌아가신 듯 하다. 

 

 

이 같은 상황을 토대로 보자면 정상적인 가정환경도 아니었고 변변한 정규교육도 수료못했던 알란이었지만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면서 폭탄물 제조 및 관리에 관한 기술만큼은 남달랐고 그것은 그의 평생을 좌지우할 중대한 스킬이 된 셈이다. 그리고그는 우연과 행운을 번갈아 쥐며 세계 곳곳을 누비며 중요한 역사의 현장에 반드시 있었다는 스토리로 전개된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연상하는 "포레스트 검프"의 그림자는 그리 진하게 투영되진 않았다. 적어도 개인적으로는 그랬다는 말이다. 그러했다고 단정짓기에 알란은 너무 오랜 세월을 살아왔고 역사의 현장에서 역사적 인물들과 교감과 친분을 쌓으며 의도했던 그러지 않았던 관계없이 적극적으로 개입했고 역사의 한 지평을 열었기 때문이다. 결코 그 자리에서 병풍으로만 남지 않았다는 점이 중요하다.

 

 

만약 그의 수명이 70세 정도였어도 이 기괴한 모험담에서 상당부분이 덜어내어 졌을 것이다. 유쾌하면서도 수시로 배꼽잡게 하지만 모든 여정들이 다 흥미진진 않다. 스페인 내전에서 프랑코와의 만남, 마오쩌둥의 아내를 구한 일, 그리고 발리 이야기 등 몇 몇 일화등은 솔직히 많이 지루해서 세계사의 변혁에 끼친 영향이 그리 와닿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일화를 찾아 읽기 위해 재빠르게 훓고 페이지를 넘겨야 했을 정도였으니, 역시 재미있는 대목은 미국의 핵무기 제조에 관여한 일과 스탈린, 김일성 부자와의 만남이고 책이 선택한 세계사에서 대중적 관심을 끄는 지점에 관해서는 개인적 취향과 선호도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것이리라.

 

 

그렇다면 루즈벨트 미 대통령 시절 핵무기 제조에 참여하게 된 계기도 지극히 우연적 요인이 너무 남발되는 단점은 있지만 역 발상 차원에서 보면 그 점이 이 소설의 엉뚱한 매력이자 스타일임을 잘 보여준다고 볼 수 있다. 그런 부분에 독자가 될 수도, 우수수 떨어져 나갈 수도 있는 포인트이다. 스탈린에게 거슬리는 콧수염을 지적하는 대목에서는 알란 칼손은 위기에 닥쳐서도 마냥 비관하지 않고 어떡해서든 낙관적인 자세로 이 험난한 세상에서 끈질기게 살아남는 별종이기에 그토록 오랜 세월을 장수할 수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목숨은 하나지만 무모할 정도의 모험정신 때문에 평생을 한 곳에 제대로 정착 못하고 역마살이 끼어 떠돌아 다닐 팔자였다. 방랑하는 보헤미안의 집시처럼.

 

 

솔직히 개인적으로 가장 중점적으로 읽은 대목은 사실상 한국전쟁 중 북한의 김일성과 그의 오른팔인 어린 김동무, 즉 김정일을 만나게 되는 이야기이다. 인상적인 것은 어린 김동무의 성격 자체가 상당히 리얼리티하다는 것이다. 누구도 믿지 않겠다며 주위를 의심하고 맘에 안들면 생떼를 부리는 것은 얼핏 귀엽(?)기도 했지만 장차 일국의 독재군주가 될 만한 자질을 잘 나타내고 있어서 웃음 뒤에 인정을 하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상상했다. 어린 김동무가 성인이 되어 정권을 잡았을 때 알란과 재회하는 시나리오였으면 얼마나 박장대소 했을까 말이다.

 

 

한국인의 관점에서 바라 본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의 방랑기에 대한 진지한 소감이자 양로원을 탈출하며 도주하는 길에 만난 여럿 사람들과 인생이라는 종착역으로 선택한 곳이 현실에서도 휴양자이기에 먼저의 바람은 과도한 요구였나 싶은 되새김도 있다. 그는 너무 많은 일들을 고단하게 겪어왔으니 이제는 남은 여생을 편하게 보내야만 한다. 그래서 알란, 아만다. 율리우스, 베니, 예쁜 언니, 예르딘, 소냐, 아론손까지 지상최고의 낙원에서 마침내 그들은 행복을 찾았다. 능구렁이 같은 영감님 만수무강 하소서. 남들은 이미 관에 들어갔거나 카운트다운을 세고 있을 때 인생 제2막이 시작되려 하는구나. 나는 저 나이쯤이면(장수에 대한 헛된 욕심...)  멘붕없이 온전하게, 사람들 손가락질 받지 않고 버텨낼 수 있을려나. 아마 안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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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이베르크 프로젝트 ㅣ 프로젝트 3부작
다비드 카라 지음, 허지은 옮김 / 느낌이있는책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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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2차 세계대전 중인 1942년 11월 9일 폴란드의 유태인 강제수용소. 나치 SS의 수장 하인리히 힘러는 이 곳을 극비리에 방문했다가 자신을 겨냥해 저질러진 암살테러 속에서 극적으로 살아남는다. 희생없는 대가는 없다고 숙청과 피바람 부는 검거 바람은 자동연계. 그리고 배경은 현재로 넘어간다.  월스트리트에서 잘 나가던 주식중개인 제레미 노바체크란 남자가 있다. 어렸을 적 아버지가 이유도 없이 집을 나간 뒤 엄마랑 단 둘이 살았고 그때의 증오로 이름을 코빈에서 엄마의 처녀적 성을 따라 코빈에서 노바체크로 바꾼 것. 떼돈을 벌었지만 음주운전으로 한 아이를 치어 죽인 후 죄책감으로 폐인이 되다시피 했다. 어느날 미 공군으로부터 아버지의 사망소식을 전해듣고 엄마 병문안을 갔다가 엄마에게서 받은 펜던트에서 나치 표식의 열쇠를 보고 경악한다.

 

 

그때부터 찌질했던 제레미의 일상에 파문이 일기 시작한다. 회사대표인 버나드와 아버지는 CIA 요원이었다는 점, 자신과 엄마를 버렸다고 생각해왔던 아버지는 비밀임무를 수행 중이이서 부득이 가족을 멀리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알게되면서 혼란에 빠지는 제레미. 하지만 정체모를 암살자들이 어머니를 살해하고 자신마저 죽이려 하는 정체절명의 순간,이스라엘의 모사드 내의 메차드 키돈에서 일하는 에이탄 모르그란 남자가 나타나 암살자들을 처치하고 자신을 구해준다. 여기에다 버나드가 제레미의 신변보호를 위해 파견한 CIA 여요원 재키까지 합류하면서 세 명은 블레이베르크 프로젝트라 명명된 어떤 음모를 파헤치기 시작한다.

 

<블레이베르크 프로젝트>는 유태인 출신 빅터 블레이베르크 교수가 아리안의 우월성에 입각하여 인간을 초인으로 개조하고자 한 비밀 프로젝트이다. 자신의 이름을 딴 이 프로젝트는 SS의 수장인 하인리히 힘러의 주도하에 인간을 생체실험도구로 삼아 실험을 계속했다. 그의 출신성분으로 따지자면 살아남기가 힘들었테지만 신분을 은연중에 숨긴 채 나치를 위해 심혈을 기울였고 마침내 실험체 중 살아남은 최후의 성공작 302호가 탄생한다. 자연의 섭리를 거부하며 경이로운 생명체로 재탄생한 302호. 그것은  바로 죽음으로 연결될 준비가 되어 있으니...

 

음모론을 바탕으로 한 팩션스릴러 <블레이베르크 포로젝트>는 정말 오랜만에 읽은 프랑스 스릴러. 어려서부터 미국의대중문화에 큰 영향을 받았다는 작가의 이력답게 전형적인 헐리웃 액션스릴러물이다. 심리 묘사보다는 몸으로 부딪치며 빠른 속도로 전개되는 특성이 있고 시로 프로젝트 3부작의 출발점으로서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강대국들이 세계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패전국인 독일은 물론 경쟁국의 군사기밀을 빼돌리기 위한 물밑공작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실감나게 그려진다. 비단 핵무기가 아니더라도 선점의 우위를 누리기 위해서라면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는 역사적 아이러니만큼 컨소시엄이라는 비밀조직의 성격을 잘 드러내는 현상은 없을 것이다. 

 

자신을 괴물로 만들어버린 컨소시엄의 파멸을 꿈꾸었던 기인 302호는 인격과 존엄성을 무참히 파괴하고 인위조작해버린 특정집단의 야욕을 누구보다도 분쇄하고 싶었을 것이고 그 분노는 인류의 존망에 위협을 가하는 자들에 대한 선전포고의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역사는 반복되고 망령은 되살아나 선이 악의 유혹을 이겨내고 선한 자들을 수호해 줄거라는 믿음은 제레미 일행에게서 이 거대조직을 상대로 승산없어 보이는 무모한 투쟁을 이끌어내도록 한 원동력이 되는 진짜 이유이다. 그러하므로 컨소시엄의 음모는 나치의 극단적인 이론에 동조해 과학의 논리를 통해 인류를 진화시킬 수 있다고 믿었으니 이 어찌 비극적이며 오만의 극치가 아니랄 수 있을까?  

 

겁도 없이 지옥의 문을 열고 유전자 변이를 통한 신인류의 탄생이라는, 인간의 이성을 초월한 극악무도한 만행을 그들은 거리낌없이 저지르려고 했다. 다만 계산에 포함시키지 못한 변수를 사전에 제거하지 못함으로서 결국은 우리가 익히 예상하고 있는 방식으로 일단 매듭짓는다. 하지만. 이제 빙산의 일각이 모습을 드러냈으니 본격적인 흥미진진함은 독자들을 영접할 준비를 하고 있으리라. 새로운 목표와 새로운 각오가 시작될 것이다. 기대치만 낮춘다면(특히 나치의 음모, 이런 걸 좋아한다면) 무난히 즐길작품이며 남녀주인공의 귀여운 로맨스는 보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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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의 비극 ㅣ 엘러리 퀸 컬렉션 Ellery Queen Collection
엘러리 퀸 지음, 서계인 옮김 / 검은숲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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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로어만으로 입항하던 라비니아D호의 선원들이 바다 위를 떠다니던 한 남자의 시체를 발견한다. 훼손 상태를 감안하면 몇 주 동안이나 방치된 상태로 표류했던 것으로 보이는 그 남자는 지난 성탄절 이전에 실종되었다고 알려진 요크 해터라는 화학자로 밝혀진다. 자살로 판명되었지만 문제는 죽은 남자의 남은 가족들이다. 미치광이 해터가로 세상에 악명을 떨치고 있는 이 후안무치한 가족들은 악명 높고 괴팍했으며 상식을 벗어난 행동을 일삼는 문제적 인물들이었다.  

 

가장인 요크 해터는 특히 아내인 에밀리 해터 부인의 전제적이며 광폭한 폭압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그런데 에밀리 해터 부인이 전 남편 사이에 낳은 딸 루이자 캠피언을 누군가 독살하려는 시도가 발견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나서게 되고 섬 경감은 이들 가족들을 용의자로 의심한다. 집안 식구들이라면 누구나 루이자에 대한 살인동기를 가지고 있었을 터, 섬 경감은 은퇴한 노배우 드루리 레인에게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하여 도움을 요청한다.

 

그런데 또 다른 살인사건이 이 집안에 발생했다. 루이자를 범인의 범행목표로 추측했건만 어찌된 일인지 고약한 에밀리 해터 부인이 실제로 살해당한다. 드루리 레인은 목격자인 루이자의 오감 중 시각을 제외한 후각과 촉각 등에 전적으로 의지하며 추리의 천라지망을 펼치는데 그 발상이 실로 대단하다. 수학적 사고를 논리의 축에 둔 채 그가 머릿속에서 짜 나가는 전개는 자신 또한 귀가 들리지 않는 신체적 한계를 넘어선 신중함으로 촉발시켜 명쾌한 관찰과 분석으로 강화시킴으로서 드라마틱한 결말을 완성시켜냈다.  전신마비인 링컨 라임처럼 정상인들도 해내지 못하는 추리의 완성을.

 

산 자가 죽은 자를 움직인 사건은 냉정한 시각에서 바라본다면 범인의 미숙한 자질과 착각 때문에 당초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도록 한 것은 합리성에 의구심을 심으려는 시도가 아니었을까? 그것조차 간파해낸 드루리 레인이 범인의 정체를 시차를 두고 밝혀낼 수 없었던 이유는 놀랍게도 범인의 정체에 관한 의외성에 있다. 지금까지 추리소설을 수도 없이 읽어왔지만 이토록 충격적인 반전은 볼 수 없었다. 그가 범인이라니.... 마치 감옥이나 정신병동에 갇힌 죄수나 환자같이 광기에 짓눌려 저항과 변화를 포기한채 순응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미치광이 해터가의 유전적 환경이 만들어낸 악이라는 본성 앞에서 드루리 레인이 대처방안을 놓고 고심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이 이해된다.

 

예상치 못한 범행동기와 트릭, 결말, 범인의 정체 등은 사회에 책임을 묻고 집행을 맡기기에는 너무나 잔혹한 운명이었고 드루리 레인으로써도 알고서도 어쩔 수 없었던 것은 인간적인 차원에서 안쓰러웠던 셈이다. 앞서 범인을 암시한 대목이 있었는데 설마 하고 넘겨 버렸던 방심을 비웃듯 예리하게 입증시켰기에 당황스럽기도 했고 범인에 대한 뒤늦은 처리를 두고 한동안 이해를 못해 어리둥절하다가 다른 서평들을 읽고서야 무릎을 탁 치게 되니 감탄에 또 감탄.

그런 거 였어 하며. 

 

여러모로 복잡한 심경 속에서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니 뭔지 모를 몽롱한 기분이 들면서 오늘은 일찍 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스토리가 뒤죽박죽인 황홀한 꿈을 꾸었던 것도 같다. 간만에 단 잠을 그렇게 잤다. 세계 3대 추리소설의 마지막 퍼즐을 맞추고 나니 이런 포만감이 들 줄이야. 나머지 두 작품과 최소한 어깨를 나란히 하거나 머리 한 뼘이 더 크다고 느껴지는 이 작품은 정밀함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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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을 만들다 - 특별한 기회에 쓴 글들
움베르토 에코 지음, 김희정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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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토 에코”의 <적을 만들다>는 열네 편의 칼럼들이 공작새가 날개를 펼쳐 화려한 자태를 뽐내는 것이나 진배없다. 그 열네 편의 면면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공통된 주제나 일치하는 스타일이 발견되지 않아 공저가 아닌가라는 착각이 들 정도이다. 과연 세계적인 지성이자 석학이라 불릴만한데 방대한 지식의 양과 깊이는 그가 얼마나 많은 공부와 끊임없는 열정과 끈기로 축적한 데이터인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척도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부제 <특별한 기회에 쓴 글들>는 말 그대로 특별한 기회, 즉 학회나 간담회 등에서 발표한 내용을 위주로 실린 글들인데 철학, 미학, 역사, 기호학, 언어학 등등 다방면으로 사방팔방 뻗어나가며 고정된 틀에서 벗어나 무한한 상상력과 엉뚱한 호기심, 지적인 고찰로 능동적이고 창의적인 접근을 도모한다. 어떤 생각으로 글을 써내려갔을지 충분히 짐작 가는 대목들이다. 

 

“적을 만들다”에서는 인류역사에서 민족과 인종, 국가와 계급 사이에서 우리는 어떻게 편을 가르고 증오를 키우며 성벽을 쌓았으며 분리와 차별을 시도했는지 세부적인 사례들로 조목조목 제시한다. 제일 인상 깊었던 사례는 유대인에 대한 지독한 반감이다. 나라가 없어 유목민처럼 떠돌며 방랑했던 민족 유대인은 고대 이집트 왕조로부터 히틀러의 대학살, 대팔레스타인 분쟁으로 이어지는 고난과 박해, 투쟁이라는 기나긴 여정을 거쳐 왔다. 유대인은 어린 아이들을 살해하고 그 피를 마시는 적으로 규정된 내용에서 이 민족에 대한 지독한 혐오가 묻어난다. 용모는 흉측하면서 말의 억양은 몹시 거슬린다는 "히틀러"의 어조는 적을 만드는 과정들에서 반복되는 모델이다. “마녀신드롬” 또한 이성으로도 제어할 수 없는 장벽이었다.​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에 대해서는 일단 가장 위대한 프랑스의 시인이라는 “앙드레 지드“와 자신이 “빅토르 위고”라고 믿었던 미치광이 “장 콕토”를 인용한 점을 봐도 알 수 있듯이 어떠한 경우에도 의심할 바 없는 위대한 작가였다는 의미로 이해시키고 있다. 그러나 “위고”의 문학을 관통하는 특성으로 과잉의 기술과 등장인물들이 전지적 시점에서 역사를 움직이며 바꾸려는 불굴의 시도를 하고 있음을 강조함에 따라 절대권위를 부정하고 있다. 따라서 무수한 결점과 말도 안 되는 허풍쟁이로 둔갑시키려하는 표현은 “에코”만의 또 다른 독설이다. 그것이 밉거나 거부감 들지 않는 선에서 조근 조근 이야기된다. 충분히 흥미롭다.  

 

<위키리스크에 대한 고찰>도 빼놓을 수 없는 칼럼이겠다.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고 있으면서 새로운 형식이자 스캔들인 “위키리스크”는 사적인 뒷담화가 공공연한 담화가 되어 만천하에 드러남으로서 널리 알려진 사실을 다르게 확인시키는 역할도 담당하고 있는데 그것은 밝혀진 비밀들을 단순히 기록 전달하기보다 침묵할 것인지, 권력과 협상할 것인지를 독립적으로 결정하는 의결권이 된 것으로 분석한다. 그러면서 기술적 발전이 뒷걸음 칠 수 있다고 하는데 “마타하리” 같은 미녀 스파이가 밀서를 전달하는 상황을 전망하는 이유도 전혀 근거 없지않음을 설명한다. 역시 인상적이었다.

 

“움베르토 에코”는 자신의 생각이, 자신의 글이 망각 속으로 소멸되기를 두려워했던 것 같다.  그래서 계속해서 버티고 살아남는 글쓰기에 주력하려 한다. 결국 “움베르토 에코”가 강조하는 것은 우리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폭넓은 유연성을 지님으로서 가치를 측정하고 그것을 드러내는 일이 사명이기 때문에 능동적인 글쓰기와 능동적인 책 읽기는 명백한 도전이자 즐거운 혼란의 한가운데 지점이란 사실이었다.

​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적이 없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우리에게 외부의 적은 없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우리는 그 적들이 누구인지 의견의 합일을 볼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계속해서 서로 싸워 왔기 때문이다. 피사는 루카와 맞서고, 궬피당은 기벨리니당과 맞서고, 북부는 남부와 맞서고, 파시스트들은 파르티잔들과 맞서고, 마피아는 국가와 맞서 싸운다. 그리고 베를루스코니 정부는 사법부와 싸운다. 그러는 동안 로마노 프로디가 이끌었던 두 차례의 정권이 여전히 몰락하지 않았다는 것은 도리어 애석한 일이다. 만약 그러했다면, 나는 그 택시 기사에게 아군의 포격 때문에 전쟁에서 지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설명할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 P.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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