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의 해부
앤드루 테일러 지음, 김하락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낯선 작가와의 첫 만남은 언제나 호기심 반 신중함 반을 요구한다. 잘만 하면 잿팟을 터뜨릴 수도 있겠지만 자칫하면 익숙함이라는 함정에 빠져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신천지가 되기도 하는데 앤드루 테일러 <아메리칸 보이>로 명성을 익히 듣고는 했지만 이번 기회가 아니면 히스토리컬 픽션이라는 생소한 장르를 만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소년 에드거 앨런 포의 영국 체험시절을 토대로 쓴 <아메리칸 보이>처럼 실존인물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18세기 영국을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을 읽기 전 작가의 이력을 잠시 살펴보았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그의 수상경력 중에서 두가지의 대거상 수상 및 후보등극이었다. 대거상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 걸 알게되었는데 그 중에서 다이아몬드 대거상은 수상하고 히스토리컬 대거상은 후보로 올랐던 전력이 있었다. 장르소설을 접하다보면 보통 어디 주관 베스트셀러 선정 아니면 수상경력인데 정말 이 계열에도 많은 시상이 이루어지고 있고 그 점은 책으로 고르는데 어느 정도 참고가 되긴하지만 솔직히 그 상들의 권위나 정확한 선정기준, 주관단체는 잘 모르면서 그냥 수상결과로만 인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참고는 그냥 참고일 뿐, <유령의 해부>를 읽는 데 있어서 하나의 경이다.

 

 

<유령의 해부>는 1786년 영국 케임브리지 예루살렘 칼리지 배경으로 한다. 손에 열쇠를 쥔 한 여인이 얇은 가운에 망토만 걸친 채 비틀거리며 예루살렘 로에 이른다. 그리고 숨을 몰아쉬며 정원 문을 밀치고 들어가는 여인. 여인은 예루살렘 칼리지에 들어가는데 성공했지만 연못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는데 그녀의 유령을 본 사람이 있다. 로싱턴 주교의 미망인 앤 올더쇼의 아들인 프랭크 올더쇼였다. 그는 케임브리지 칼리지의 대학생으로 죽은 여인의 유령을 보았다고 주장하며 정신적 충격에 빠진다. 죽은 여인은 케임브리지 램본 하우스의 주인 필립 위치코트의 부인 실비아 위치코트였다.

 

정신이상자로 내몰린 아들의 실추된 명예회복을 위해 엄마는 손수 팔을 걷어불였다. 그 해결책은 존 홀즈워스라는 서적상을 고용하여 아들이 학업을 중단하게 된 상황이나 사정을 조사하고 아들이 보았다는 유령의 실체를 벗겨 정상으로 회복시키고자 한 것이다. 존 홀즈워스는 과거 아들이 물에서 익사하고 아내는 자식을 잃은 슬픔에 유령이라는 심령현상에 심취하다 결국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불행한 과거가 있던 남자이다. 이후 그는 <유령의 해부>라는 책을 써서 유령이란 현상을 부인하고 존재 자체에 대한 맹렬한 비판에 나서 세간의 논쟁을 불러 일으켰었다. 결과적으로 이슈가 된 그 책은 꽤 팔려나가면서 유명세를 얻었는데 자기가 설교한 것을 입증하고 실천하는 자리가 만들어진 셈이다. 앤 부인의 고용제안에 숙고를 거듭하던 존 홀즈워스는 마침내 제안을 받아들인다. 경제적 이유도 무시할 수 없었기에. 프랭크 올더쇼를 만나기 위해 예루갈렘 칼리지를 찾아간 그는 칼리지 인사들과 학생들,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사정을 취재하면서 죽은 여인의 사인에 대한 의혹을 품고 조사를 시작한다, 유령이란 믿음도 어떻게 확인하게 될까?

 

 

유령이라는 존재는 연약한 마음이 빚어낸 허상에 불구하다지만 신앙은 이를 인정하고 과학은 논거를 부정한다. 역사는 과거가 되어도 아직도 논쟁은 현재 진행 중이라는 점이다.  존 홀즈워스가 보았다는 아내의 유령은 내면의 죄의식이 만들어낸 꿈이었을까? 아니면 진짜 유령을 만났던 것일까? 책을 몇 번 읽어보아도 그 대목은 확연히 어느 쪽이라고 단정짓기는 힘들다. 그의 죄의식이 문제라면 죽음을 눈 앞에 둔 칼리지의 학장 카버리 박사의 부인 엘리너 카버리에게 품은 욕망은 도덕적 잣대로도 통제하기 힘든 유혹이다.  

 

이것만이 아니라 이 소설 속에는 인간의 욕망이 빚어내는 원죄의식이 사악하고 사납게 요동치고 있음을 여실히 드러낸다. 펠로우 임명권을 두고 신분의 수직상승을 위한 정치적 흑막과 성스러운 종교를 왜곡해서 음란마귀가 업고 벌이는 홀리 고스트 클럽의 추악한 의식 등은 대학이라는 신성불가침한 성역 이면에 숨어있는 위선과 죄악이라는 가면에 냉소를 날리고 있으며 초자연적 현상에 대한 추리적 접근은 풍자와 비판으로서 가능하다. 적대감은 도덕적 통찰로 극복하고 내면의 심리는 미신과 과학, 야만과 이성이 모호한 혼돈 속에서 시대를 충실히 재현하면서 마지막 반전을 통해 나름의 정점에 도달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역사와 픽션의 조화에 관심있는 독자라면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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