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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귀 1 - 각성편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김진환 옮김 / 홍익출판미디어그룹 / 2021년 7월
평점 :
이 소설이 국내 정발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굉장히 잔인해서 국내 정발 불가능한 수준이라고 해서 도대체 어느 정도의 수위이길래 이리도 악명 자자한지 무척 궁금했는데 이렇게 기습적으로 나와 줘서 해당 출판사에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 그런데 원래는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하려고 했었는데 자꾸 취소처리 되더라는. 벌써 유해도서로 간주되어 반려되는 건가? 아직 19금 딱지도 붙지 않았는데... 아님 내가 잘못 신청한 건지.
에잇, 온라인 주문이나 해야겠다, 그렇게 맘먹고 우연히 서점에 갔다가 뜻밖에도 입구 가판대에 다른 장르소설들과 함께 버젓이 진열되어 있는 게 아닌가. 아니 히가시노 게이고와 나카야마 시치리의 소설과 등급이 다른데 잘도. 예상지 못한 만남에 주저할 것 없이 냉큼 주워 옴. 앞표지는 이미 공개되어 알고 있었지만 뒷표지도 피 갑칠이네. 그리하여 부푼 기대감을 안고 읽어 나간 서문에는 분명히 3인칭 다시점로 기술된 이야기에 위화감을 느낄 것이라고 자신 있게 도발하고 있었다.
속지 않겠노라 다짐하며 전개되는 이야기. 어느 여름날 TC 멤버스라는 이름의 친목동호회 멤버들이 후바타산을 등산하여 합숙한다. 밤이 되자 산장에서 캠프파이어를 하던 이들은 한 사람씩 돌아가며 자신이 알고 있는 가장 무서운 이야기하기 놀이를 시작하는데. 차례대로 이야기 하던 중 한 명이 후바타산이 악마의 산으로 불리게 된 경위를 말하는데 수 년 전 이 산에서 실제로 일어난 중학생 참살사건을 이야기한 것이다.
중학생들을 참살했다는 후타바산 살인귀 이야기에 두려움에 떠는 사람도 있었고 혹자는 코웃음 치는 이들도 있는 등 반응이 제각각이었지만 무심코 꺼낸 살인귀 이야기가 피비린내 나는 살육의 향연을 불러 올 줄이야. 캠프파이어가 끝난 후 잠자리 든 일행 말고는 으슥한 모처로 자릴 옮겨 꼭 딴 짓하는 부류가 있게 마련. 달밤에 뼈와 살이 타는 사랑을 나누던 남녀에게 갑자기 나타나 영문도 모른 채, 둘을 잔인하게 꼬치구이 만들어 버리는 살인귀.
잠자리에 먼저 들었던 일행들은 아침이 올 때까지 사라진 이들을 걱정하다 직접 찾으러 나서지만 숨어서 사냥감을 노리던 살인귀가 휘두르는 도끼에 차례차례 살해당한다. 피보라가 밤을 적시고 토막 난 살이 꽃을 피우는 지옥의 향연. 책 문구처럼 정말 잔인한 수법이었다. 캠프 현장에 나타난 살인마는 아무래도 13일의 금요일에 나오는 제이슨을 연상케하고 책에서도 실제 언급되기도 하지만 오히려 제이슨은 단칼에 죽여주니 양반일지도.
이 시리즈가 여타 호러, 추리소설보다 더 잔혹하다고 하는 이유가 바로 단숨에 죽이지 않고 어린아이가 곤충을 잡아 날개를 뜯고 다리를 하나하나 뜯어가며 천천히 죽이 듯, 살인귀는 희생자들을 바로 죽이는 건 시시하다며 시간을 최대한 뜸 들여가며 천천히, 세세하게 고통 주면서 죽이기 때문이다. 그런 살인귀의 심리와 제발 죽여 달라고 애원하며 극심한 고통과 패닉에 빠져드는 피해자의 심리가 겹치기 때문일 것이다.
어찌 보면 살인마가 사람들을 계속 죽여 나가는 고어물일 수도 있는데 호러 영화의 전형적인 공식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혼자 있으면 먼저 당하고 살인귀는 죽지도 않는 각설이로 종결되니까 말이다. 모두가 궁금해하는 고어의 수위는 확실히 잔인한 게 맞더라. <짐승의 성>, <살육에 이르는 병>을 모두 안드로메다로 보낼 정도다. 전반적으론 잔인하지만 여타 소설에서도 나름 맛 볼 수 있는 정도가 아닐까 싶다가도 장기적출 하던 몇몇 장면만큼은 창의적으로 압도하고 있으니까.
그것은 장기 적출하는 방법과 적출 후 살인귀가 취한 행동 등이 특히 그러하다. 그렇기에 초심자들은 당연히 감당하기 힘들다. 지하철에서 읽다 토할 뻔 했다는 현지 평은 과장이 아니다. 다만 고어 매니아들한테는 아무렇지 않을 테고 나 같이 나름 이런 잔혹함에 내성이 있는 독자들에겐 잔인하다고 느끼면서도 아무런 트라우마 없이 밥 잘 먹고 잠 잘자는 케이스로 나뉠 것이니 관심 있고 궁금한 이들은 자신 있게 담력 테스트하기 바란다. 난 견뎌내었다. 일부러 잔인한 장면들만 되새김질 듯 하며 음미했으니 염려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