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ㅣ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요나스 요나손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7월
평점 :
알란 칼손이
양로원 건물을 탈출할 때 심사숙고한 결정이 아니었다는 설명은 곧 그가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하는 타입이라는 걸 알려준다. 백살이 될 때까지
살아있었다는 사실을 장수만세로 퉁쳐 축하할 일인지 죽지못해 여태껏 살아왔다는 오욕의 세월이었는지 오로지 그의 1세기를 고스란히 따라 가 보는
방법밖에 없다. 현재와 과거를 넘나드는 교차전개로 인해 알란 칼손이라는 괴짜노인의
황당무계한 모험담은 수시로 진실일까? 아니면 노망기에서 비롯된 횡설수설일까 의심의 눈초리는 번뜩였다. 원래 이런 사람의 태생은
평범하지 않은데 알란도 역시나 였다. 세상에 대한 분노와 권력에 대한 불신으로 차 있었던 사회주의자 아버지는 생뚱맞은 전쟁을 선포했다가 개죽음을
당했고 엄마 또한 사회운동에도 적극 참여하실 정도 였으니 두 분 다 예사롭지 않은 삶을 살다 돌아가신
듯 하다.
이 같은 상황을 토대로 보자면
정상적인 가정환경도 아니었고 변변한 정규교육도 수료못했던 알란이었지만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면서 폭탄물 제조 및
관리에 관한 기술만큼은 남달랐고 그것은 그의 평생을 좌지우할 중대한 스킬이 된 셈이다.
그리고그는 우연과 행운을 번갈아 쥐며 세계 곳곳을
누비며 중요한 역사의 현장에 반드시 있었다는 스토리로 전개된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연상하는 "포레스트 검프"의 그림자는 그리
진하게 투영되진 않았다. 적어도 개인적으로는 그랬다는 말이다. 그러했다고 단정짓기에 알란은 너무 오랜 세월을 살아왔고 역사의 현장에서 역사적
인물들과 교감과 친분을 쌓으며 의도했던 그러지 않았던 관계없이 적극적으로 개입했고 역사의 한 지평을 열었기 때문이다. 결코 그 자리에서
병풍으로만 남지 않았다는 점이 중요하다.
만약
그의 수명이 70세 정도였어도 이 기괴한 모험담에서 상당부분이 덜어내어 졌을 것이다. 유쾌하면서도 수시로 배꼽잡게 하지만 모든
여정들이 다 흥미진진 않다.
스페인 내전에서 프랑코와의 만남, 마오쩌둥의 아내를 구한 일, 그리고 발리 이야기 등 몇 몇 일화등은 솔직히 많이 지루해서 세계사의 변혁에 끼친
영향이 그리 와닿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일화를 찾아 읽기 위해 재빠르게 훓고 페이지를 넘겨야 했을 정도였으니, 역시 재미있는 대목은 미국의
핵무기 제조에 관여한 일과 스탈린, 김일성 부자와의 만남이고
책이 선택한 세계사에서 대중적 관심을 끄는 지점에 관해서는 개인적 취향과 선호도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것이리라.
그렇다면 루즈벨트 미 대통령 시절
핵무기 제조에 참여하게 된 계기도 지극히 우연적 요인이 너무 남발되는 단점은 있지만 역 발상 차원에서 보면 그 점이 이 소설의 엉뚱한 매력이자 스타일임을 잘 보여준다고 볼 수 있다.
그런 부분에 독자가 될 수도, 우수수 떨어져 나갈 수도 있는 포인트이다. 스탈린에게 거슬리는 콧수염을 지적하는 대목에서는 알란 칼손은 위기에
닥쳐서도 마냥 비관하지 않고 어떡해서든 낙관적인 자세로 이 험난한 세상에서 끈질기게 살아남는 별종이기에 그토록 오랜 세월을
장수할 수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목숨은 하나지만 무모할 정도의 모험정신 때문에 평생을 한 곳에 제대로 정착 못하고 역마살이 끼어 떠돌아
다닐 팔자였다. 방랑하는 보헤미안의 집시처럼.
솔직히 개인적으로 가장 중점적으로
읽은 대목은 사실상 한국전쟁 중 북한의 김일성과 그의 오른팔인 어린 김동무, 즉 김정일을 만나게 되는 이야기이다. 인상적인 것은 어린 김동무의
성격 자체가 상당히 리얼리티하다는 것이다. 누구도 믿지 않겠다며 주위를 의심하고 맘에 안들면 생떼를 부리는 것은 얼핏 귀엽(?)기도 했지만 장차 일국의 독재군주가
될 만한 자질을 잘 나타내고 있어서 웃음 뒤에 인정을 하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상상했다. 어린 김동무가 성인이 되어 정권을 잡았을 때
알란과 재회하는 시나리오였으면 얼마나 박장대소 했을까 말이다.
한국인의 관점에서 바라 본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의 방랑기에 대한 진지한 소감이자 양로원을 탈출하며 도주하는 길에 만난 여럿 사람들과 인생이라는 종착역으로 선택한 곳이
현실에서도 휴양자이기에 먼저의 바람은 과도한 요구였나 싶은 되새김도 있다. 그는 너무 많은 일들을 고단하게 겪어왔으니 이제는 남은 여생을 편하게 보내야만 한다.
그래서 알란, 아만다. 율리우스, 베니, 예쁜 언니, 예르딘, 소냐, 아론손까지 지상최고의 낙원에서 마침내 그들은 행복을 찾았다. 능구렁이 같은
영감님 만수무강 하소서. 남들은 이미 관에 들어갔거나 카운트다운을 세고 있을 때 인생 제2막이 시작되려 하는구나. 나는 저 나이쯤이면(장수에
대한 헛된 욕심...) 멘붕없이 온전하게, 사람들 손가락질 받지 않고 버텨낼 수 있을려나. 아마 안 되겠지.